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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 피는 삶에 홀리다

손철주 지음 | 생각의나무
꽃피는 삶에 홀리다

손철주 지음

생각의나무 / 2009년 3월 / 319쪽 / 12,000원



1장 꽃피는 삶에 홀리다



자태는 기록하지 않는다


간이식수술을 받은 사람의 이야기를 들었다. 그는 수술 이전에 싱거운 음식만 먹어야 했다. 간이 나쁜 사람은 간을 맞춘 음식을 못 먹는 신세가 된다. 상태가 호전된 뒤에 소금으로 간을 친 음식을 먹고 나서 그는 희열에 들떠 외쳤다. "음식의 간은 삶의 질이다!" 간이 없으면 사는 게 사는 게 아니란 이야기다. 너무 맵거나 짜지 않다면 음식에서 간은 입맛을 돋우는 구실을 한다. 음식만 그럴까. "문장에 파란이 없으면 여인에게 곡선이 없는 것과 같다"고 말한 이는 수필가 린유탕이다. 공자도 "말에 무늬가 없으면 멀리 가지 못한다"고 했다. 파란과 무늬는 음식에서 간과 같다. 말은 간이 맞아야 남을 설득하고, 글은 간이 들어가야 잘 읽힌다.

모 아니면 도인 세상은 무섭다. 진보냐 보수냐를 두고 목청을 높이는 정치판에서 비진보나 비보수는 맥을 못 춘다. 수천만 인구가 매달린다는 인터넷은 더하다. 안티 아니면 프로다. 그악스러울 정도로 싫어하고 무작스러울 정도로 좋아한다. 중용과 균형은 기회주의이거나 수상쩍은 대안이 된다. 이 강퍅한 난장에서 모질고 독해지는 것은 언어다. 말에 완곡함이 사라지고 글에서 행간이 증발한다. 인터넷 게시판을 보면 안다. 다짜고짜 육두문자로 시작한다. 욕설과 비속어는 그저 간투사일 따름이다. 말과 글에서 교행의 틈이 사라지고 있는 것이다. 말하는 본새와 글 쓰는 품새에 간을 맞추지 않으니 곱씹을 맛도 없다. 음미와 상상이 봉쇄된 말글에서 목도하는 것은 파시즘적 광증이다.

말투와 글투에 대한 걱정은 이 시대에 갑자기 든 생각이 아니다. 옛날에도 그런 우려는 있었다. 조선시대의 문체반정은 순정을 빙자하여 독창성을 짓누르는 엇길로 나아가기도 했다. 다산 정약용은 문체의 물태와 인정의 표현이라고 보았다. "물태를 보노라면 천태만상이지만 그 까닭을 알아보니 모두가 냉冷과 온溫 두 가지 실상일 뿐이다. 인정 역시 천태만상이지만 그 까닭을 알아보니 모두가 이利와 해害 두 가지 실상일 뿐이다"라고 썼다. "물태에 근본을 두고 인정에 발로하는 법이니 문체가 이와 같다"는 것이 다산의 결론이다.

다산의 관찰은 언뜻 보면 도식화의 혐의가 짙다. 냉온이든 음양이든 물성의 본질을 무 자르듯 나누는 것하며 인정이 오직 이해관계에 따라 움직이는 것으로 파악한 것은 명쾌하긴 해도 편협성을 벗어나긴 어렵다. 그것은 또 다른 의미에서 '모' 아니면 '도'가 될 수 있다. 그러나 다산의 본심은 바로 그 양단이 지배하는 시대를 비판할 요량이었다. 그래서 그의 문체론은 분석과 반성을 겸한다. 그가 산 시대의 정서가 냉탕과 온탕을 강요했다. 다산은 그에 따른 말투와 글투의 미묘한 변질을 포착했다. 문장은 중정을 저버리고 시대의 폐단을 따라갔다. 백성의 말글살이가 굴러가는 꼴을 한탄한 셈이다. 그는 실제로 문체반정을 꿈꾸었고 사회변혁을 꾀했다. 불문곡직하는 직설은 사람을 찌른다. 깜짝 놀라게 해서 제압하는 방식이다. 거기 비해 완곡함은 뜸을 들이면서 에두른다. 듣고 읽는 이가 비켜갈 틈을 준다. 그렇다고 완곡함이 곡필인 것도 아니다. 잘못된 길로 접어들도록 하는 게 아니라 화자와 독자의 교행이 이루어지는 공간을 준다. 곱씹어볼 말이 사라지고 상상의 여지를 박탈하는 글이 군림하는 세상은 살풍경하다. 말과 글이 세상을 따라갈진대 세상을 갈아엎지 않고 말과 글이 세상과 함께 아름답기는 난망한 일인가. 아마 아닐 것이다. 막힐수록 옛것을 더듬으라고 했다. 물태와 인정이 극으로 나뉘는 세상에서 다산은 선인들이 왜 산을 바라보며 즐기되 그 흥취의 반을 항상 남겨두는지 궁금했다. 그는 미인을 만났던 사람이 적어놓은 글에서 그 까닭을 발견했다. 그가 본 글은 이러했다. "얼굴은 아름다웠으나 그 자태는 기록하지 않는다,"

묘약을 어디서 구하랴

사무실을 옮기다 잊고 있던 짐 하나가 나왔다. 보따리를 풀었더니 약들이 쏟아진다. 알약, 가루약, 물약, 고약, 첩약, 탕약…. 참 골고루도 섞여 있다. 먹는 약, 바르는 약, 붙이는 약, 죄다 있다. 일 년 전 것이 있는가 하면 십 년 전 것이 있다. 양이 놀랍고, 종이 신기했다. 대부분 겉봉을 뜯지도 않은 것들이다. 희한하게도 내가 산 약은 없었다. 하나같이 선물 받은 것만 모아놓았다. 약이 선물이 되는지 모르겠다. 준 사람은 선물이라고 했다. 그들은 약을 건네며 "건강하세요"라는 덕담을 빠뜨리지 않았다. 왜 이리 많은 약을 받은 것일까. 내가 병치레 잦은 약골로 보였나 싶어서 민망했고, 먹으라고 준 선물을 입에 대지도 않은 것이 미안했다. 약통의 먼지를 털어내며 그들의 마음씨를 돌이켜보았다.

촌스러운 포장지를 붙인 약에 먼저 눈이 간다. 오래전 미국에서 사는 화가가 북한에 가서 사온 것이다. 그는 약 이름이 재미있다고 깔깔 웃었다. '다시마 알'이다. 다시마에 무슨 알이 있을까 보냐. 내용물은 알약이다. 다시마에서 추출한 성분을 환으로 만들어서 그런 이름이 붙었다. 따지자면 약품이 아니라 식품이다. '식약동원食藥同源'이라는 말이 유행하고, 내남없이 몸에 좋은 것은 다 약이라고 하니 그냥 넘어가자. 아닌 게 아니라 효능 설명서를 읽었더니 약을 뺨친다. 동맥경화증을 예방하고 치료한다. 중금속 해독에 좋다. 한술 더 떠서 방사선 피해 방지까지 한단다. 나는 피폭의 염려가 거의 없는 사람이다. 재미화가가 별 걸 다 걱정해 주었구나 싶었다. 아니, 아닐지도 모른다. 최근 피폭을 상상하는 사태가 이 땅에 벌어졌으니 말이다. 그렇다면 그는 선견지명이 있다고 해야겠다. '다시마 알'을 만든 북한은 괘씸하다. 병 주고 약 주는 셈이다. 하루 세 번 세 알씩 먹으라는데, 지금이라도 먹어볼까 하다가 다시 보니 유통기한이 오 년이나 지났다. 개똥이 아니라 '다시마 알'도 약에 쓰려면 없다.

이래저래 몸 보하기는 글렀구나 하다가 플라스틱 용기에 든 약에 손이 미쳤다. 무슨무슨 '골드'라고 되어 있다. 이것도 건강보조식품이다. 시골 사는 한 여성이 연말선물로 주었다. 잘 되었다 싶어 성분과 함량을 살펴보았다. 눈이 번쩍 뜨였다. 자라의 특정 부위를 순간적으로 얼렸다 말린 뒤 잘게 부수어 분말로 만들었다고 한다. 자라는 강정제로 쓰인다는 것쯤 나도 안다. 게다가 강력한 성분이 첨가되었다. '질 좋은 캐나다산 물개에서 짜낸 기름'이 들어 있는 것이다.

나는 또렷이 기억한다. 선물을 준 여성이 한 말을. 그녀는 "건강하세요" 하지 않고 "힘내세요" 했다. 말랑말랑한 캡슐을 만지작거리며 그 여성을 그려보았다. 배려가 고마워 눈시울이 뜨겁다. 이 '단백질과 미네랄, 비타민의 우수한 공급원'을 장복하면 힘 좀 쓰게 될지 모른다. 제품 맨 아래쪽에 유통기한과 권장소비자가격이 씌어 있다. 가격은 이십팔만 원. 이 정도 고가라면 효능에 절로 믿음이 생긴다. 그런데 이런 낭패가 있나, 이마저도 유통기한이 지나버렸다. 헛물켜다 만 꼴이다. 보따리에 든 숱한 약은 버리고 선물한 사람의 마음은 챙겼다. 돌아보면 그들은 나와 교분이 두텁고 고마운 사람들이다. 유독 나에게 약을 권한 적이 없는 선배의 얼굴이 겹친다. 그의 말이라면 콩 심은 데 팥 난다고 해도 믿었다. 그는 약 대신 말로 때웠다. 조선 후기 한의학자로 '사상의학'을 창안한 이제마의 말이다. "사람의 엉덩이에는 게으름이 들어 있고, 어깨에는 교만함이, 허리에는 음란함이, 심장에는 욕심이 들어 있다." 게으름과 교만함과 음란함과 욕심이라니, 이야말로 만병의 근원 아닌가. 몸이 아예 병덩어리다. 몸은 마음에 의지하고 마음은 몸에 깃드니 어느 세상에서 묘약을 구하겠는가. 아무래도 백약이 무효일 성싶다. 그 많은 약을 선물한 친구들아, 섭섭하겠지만 도리 없다. 무슨 수가 있겠는가. 아무 수가 없다. 나는 약 안 먹고 버티련다. 삶은 고치는 것이 아니라 견디는 것이다. 그것이 직방이다.

2장. 사람의 향기에 취하다



연꽃 있는 사랑이야기


고려 충선왕의 연애담은 애틋하다. 그는 원나라에 머물면서 한 여인과 정을 나누었다. 환국을 앞둔 날, 여인이 그의 소매를 잡고 놓지 않았다. 그는 연꽃을 꺾어주며 몌별(袂別)했다. 몸은 오고 마음은 둔 탓일까. 그리움이 사무쳐 근황이나마 듣고자 하였다. 밀명을 받고 원나라에 간 사람은 심복인 이제현이었다. 그는 탐문 끝에 여인을 만났다. 여인의 꼴은 초라했고, 먹지도 말하지도 못했다. 여인이 겨우 붓을 들어 이제현에게 시 하나를 적어주었다.

떠나가시며 준 연꽃 한 송이

처음에는 참으로 붉었답니다

줄기를 떠난 지 며칠이 못 되어

초췌한 모습 저를 닮았답니다



충선왕은 이별의 정표로 연꽃을 주었다. 받은 지 얼마 되지 않은 꽃은 시들었고 홀로 된 여인은 수척해졌다. 돌아오지 않는 왕을 그리는 여인의 잔영이 시의 행간에서 바스락거린다. 사뭇 애처로운 시정이다. 이제현은 귀국하여 충선왕에게 거짓을 고했다. 여인이 술집에서 젊은 남자와 놀아나고 있는데 불러도 오지 않더라고 했다. 왕은 땅에 침을 뱉었다. 한 해가 지나고 그제야 이제현은 왕에게 머리를 조아리며 털어놓았다. 여인의 행색을 들려주고 전해 받은 시를 올렸다. 왕은 하염없이 눈물을 떨구었다. 주군의 처신을 헤아려 일부러 거짓말을 한 신하의 충성심 때문은 아니었다. 시들어버린 그 연꽃조차 더는 찾을 길이 없으리란 걸 안 까닭이다. 성현의 『용재총화』에 나오는 이야기다.

가엾기는 원나라의 여인이다. 말라버린 꽃에는 향기가 없고 박제된 사랑에는 훈기가 없다. 시든 연꽃 걸어두고 이제나저제나 기다려도 떠난 사랑은 꿈에서나 만날까. 꽃은 자태라도 있지만 몽중의 연인은 깨고 나면 그림자보다 못하다. 하여 청나라 시인 원매는 이렇게 읊조린다.

저는 빈방에서 꿈을 꿉니다

임이 먼 곳에 계신 걸 잊었고

이별한 마음마저 익숙지 않아

몸 돌려 껴안는데 허공이더이다



그리워 그리다가 꿈에 만난 임 얼싸안았더니 웬걸 임이 누웠던 빈자리에 팔을 둘렀다는 하소연이다. 빈방은 썰렁해서 외롭고 시든 꽃은 되살아나지 않아 서럽다. 애잔한 이별의 이미지가 대저 이와 같다.

원나라 여인을 떠올리며 맞춤한 도자기 하나를 고른다 충선왕이 재위하던 시기와 겹치는 14세기 원나라의 작품이다. 이 청자는 신안 해저 유물선에서 인양한 것으로 국립중앙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다. 도자기는 빼다 박은 듯 중국 여인의 형용이다. 얼굴에 전형적인 후육미가 소담하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여인의 어깨에 있는 꽃이다. 활짝 핀 연꽃이다. 꽃잎 속에 마치 수술처럼 불쑥 올라온 곳은 초를 꽂는 자리다. 그래서 이름 붙이기를 <청자 여인상 촛대>다. 높이는 이십 센티미터가 채 안 된다. 여인의 몸통에 바른 유약은 투명한데 유려한 빛깔을 내비치고 있다. 치마에는 매듭으로 장식한 리본이 달려 있다. 한껏 멋을 부린 모습이다. 어깨에서 미끄러지지 않게 하려고 연꽃 아래에 줄을 매어 두 손으로 다잡았다.

도자기 모양은 귀엽다 못해 안차다. 여느 도자기에서 보기 어려운 형태다. 더욱 놀라운 것은 여인의 얼굴과 손을 처리한 기법이다. 청자빛 몸통과는 별스런 갈색을 띄고 있다. 어찌하여 이색지게 되었을까. 도공은 얼굴과 손 부분에 유약을 바르지 않고 가마에 넣었다. 노태駑胎, 즉 도자기용 태토가 그대로 드러나게 작업한 것이다. 그 결과 얼굴과 손은 살갗의 질감을 고스란히 지니게 되었다. 한갓 도자기에 불과하지만, 숨을 쉬고 피가 통하는 듯한 생취生趣는 여간내기의 솜씨가 아니다. 이런 상쾌한 아이디어를 동원한 도공을 과연 14세기, 저 까마득한 고래의 인물이라고 여길 수 있을까.

여인의 표정은 깜찍하고 새침하다. 뾰로통한 낯빛처럼 보이기도 한다. 살집이 도톰한 얼굴에 눈꼬리는 살짝 올라가 있다. 오른쪽으로 잔뜩 몰린 눈동자도 기막히다. 그녀는 어깨 위의 연꽃을 곁눈질로 살피는 낌새다. 물론 촛대에 꽂힌 촛불이 꺼지지 않는지 감시하는 눈초리다. 하지만 감상하는 이에 따라 달리 보이기도 한다.

그녀는 누구를 닮았을까. 아무래도 시든 연꽃에 애끊는 충선왕의 여인과는 거리가 멀다. 차라리 연꽃의 아름다움을 시샘하는 여인네가 어울린다. 그렇다면 멀리 갈 것도 없다. 조선 정조시대에 '부용'이라는 이름의 여인이 있었다. 부용은 연꽃의 다른 이름이다. 부용은 시 잘 짓는 기생으로 양반인 김이양의 소실이 되었다. 이름이 말하듯 그녀는 연꽃처럼 아름다웠다. 부용은 자신의 미모와 재치를 자랑하는 시 하나를 지었다. 그녀의 이름을 겹쳐가며 읽어보자.

부용꽃 피어 못 가득 붉은데

남들은 부용이 나보다 예쁘다고 하네

아침나절 내가 둑 위를 걸어가면

어찌해 사람들은 부용꽃을 보지 않는가



이 시에서 부용은 무슨 말을 하려고 하는가. 사람들은 연꽃이 내 얼굴보다 더 예쁘다고 말하지만, 정작 내가 걸어가면 연꽃은 보지 않고 나만 쳐다본다는 것이다. 은근히 자신의 용모를 뻐기는 재기발랄한 시다. 연꽃은 꽃보다 향기가 윗길이다. 비길 데 없이 청량하다. 오죽하면 그 향기로 차를 만든 여인이 있었을까. 청나라 수필문학의 백미인 『부생육기』에 나오는 운이란 여인이 그 주인공이다. 운은 연꽃 봉오리가 입 다물 무렵 얇은 천에 찻잎을 싸서 넣었다가 다음 날 입을 벌릴 때 끄집어내어 차를 끓였다고 한다. 그 맛이 어땠을까. 차에 스민 연꽃 향내는 고혹적이다. 중국문학사상 가장 사랑스러운 여인 운이 탄생할 만한 맛이라고 할까.

여름날 뙤약볕 아래 핀 백련은 눈이 시리도록 정결하다. 백련은 고고한 기품이 감돈다. 홍련은 붉은색을 자랑하지만 지나친 교태와는 거리가 멀다. 야하지 않아 수줍은 미소를 머금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군자의 처신과 닮았고, 요조숙녀의 정조와 가깝다. 연꽃은 심산유곡에 피는 난초와 다르다. 연못은 원래 연꽃이 피는 못을 뜻하지만, 연꽃 없는 못도 연못이라 부를 정도로 익은말이 되었다. 여성의 이름에 '연꽃 연'자는 또 얼마나 많이 쓰는가. 해서 연꽃은 새물내 나는 군자의 꽃이자 신분을 떠나 두루 사랑받는 꽃이 된다. 원나라 도자기에 등장한 여인은 조선 기생 부용도 아니고, 충선왕의 여인도 아니다. 그러나 연꽃의 눈부신 용모를 질투하는 마음, 연꽃이 시들어가는 것을 보며 순정이 식었다고 하소하는 마음은 시대가 바뀌어도 변하지 않는 여인의 속정이기도 하다.

입 다문 모란, 말하는 모란

한번 떠나간 잠이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하릴없이 문득 서가를 본다. 서가에 꽂힌 책들은 앵돌아앉았다. 집게손가락으로 책등을 죽 훑어나간다. 잠시 손이 멈춘 곳, 몸피 튼실한 책이 눈에 들어온다. 먼지 낀 종이상자를 벗기자 푸른 장옷을 걸친 옥골이 드러난다. 손가락 점고로 간택한 이 책이 오늘 내 무료한 밤의 심심풀이가 될까. 제목을 읽다가 뜨끔해진다. 하필이면 『격재집』이다. 모시 고르려다 삼베 얻은 격은 아니지만, 야밤의 환정을 도모하기에 버거운 상대다. 도리 없이 어른을 모시는 긴 밤이 될 판국이다.

격재 손조서는 세종 때 집현전 학사였다. 사육신의 옥사에 격분해 낙향했고, 한훤당 김굉필과 일두 정여창이 문하에 출입했다. 안동 일직 손문인데, 『격재집』은 딱 하나 남은 그의 문집이다. 1989년 후손들이 영인본으로 꾸몄고, 나는 지금 그 책을 들고 있다. 기록에 보면, 격재는 송나라의 『심경』을 강해한 『심경연의』를 남겼다 하나 전하지 않는다. 퇴계보다 앞서 토를 달고 주를 매겼으니 가장 이른 시기에 『심경』의 중요성을 인지한 분이다. 『격재집』에는 송시 계열의 고답한 깨우침을 담은 시가 여러 편 실려 있다. 나는 자나깨나 당시가 좋다. 그중에서도 아려한 기운이 서린 시들을 즐겨 음송한다. 마침 내가 밑줄을 쳐둔 격재의 시 한 편이 있어 읊조려 본다. 제목은 「붉은 모란」이다.

바탕이 어여쁘니 누구든 사랑하겠지만

저 붉은색의 깊이를 어찌 알까

가지 가득 벌나비 날아들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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