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구의 자멸
리처드 코치, 크리스 스미스 지음 | 말글빛냄
서구의 자멸
리처드 코치, 크리스 스미스 지음
말글빛냄 / 2009년 1월 / 317쪽 / 15,000원
머리말1900년, 서구의 시민들은 대부분 자신의 문명에 굉장한 긍지와 자신감을 가지고 있었다. 미국과 영국 사람들, 유럽과 캐나다 사람들, 호주와 뉴질랜드 사람들은 사상 최고로 강건하고 발전적이고 진보적이고 흥미로운 문명에 속해 있다는 공통된 의식을 강하게 지니고 있었다. 그러나 오늘날 그런 의식은 사라졌다. 왜일까? 경제나 외부적인 현상들 혹은 외부의 적들 때문이 아니다. 만약 서구가 위기에 직면해 있다면 그 위기는 '내부'에서 생겨난 것이다. 위대한 문명은 단지 외부의 적 때문에 무너지지 않았다. 로마제국이 분열된 것도 그들이 이방인들의 도전을 받기 전에 이미 퇴폐해있었기 때문이다. 히틀러가 독일의 인도적이고 민주적인 문명을 파괴할 수 있었던 것 역시 그러한 문명의 옹호자가 너무 적었기 때문이다. 오늘날의 서구도 마찬가지다. 진정한 위협은 내부의 분열과 결함이다.
서구인의 뿌리 깊은 무의식적 사고 및 행동 패턴에는 서구문명을 번영케 한 여섯 가지 주된 요인이 있다. 크리스트교, 낙관주의, 과학, 경제 성장, 자유주의, 개인주의다. 하지만 이 여섯 가지 요인은 한 세기 동안 지속적인 공격을 받았다. 오늘날 서구를 특별하고 가치 있게 만들었던 요소들을 인정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냉소와 비관론, 무심함이 가득할 뿐이다. 우리의 논점은 서구사상이 변화했으며 특정한 핵심 사상에 대한 신뢰가 약화되었거나 경우에 따라서는 거의 무너졌다는 것이다. 이대로라면 집단적인 자멸은 불을 보듯 뻔하다.
개인의 자살은 스스로 자신의 삶을 끝내는 일을 말한다. 마찬가지로 문명의 자멸은 스스로 그 문명을 끝내는 일이다. 『챔버스Chambers 사전』에서는 자살을 '종종 비의도적으로 스스로 몰락을 불러오는 일'이라 정의하기도 한다. 우리가 말하는 앞으로 일어날 수 있는 서구의 자멸은 바로 이런 의미이다. 외부의 적 때문이 아니라 서구인들이 하는 일과 하지 못하는 일 때문에 거대한 문명이 우발적으로 종말을 맞게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가 말하는 자멸은, 서구사회 내의 모순을 해결하여 서구의 이상을 보존하는 데 실패했다는 의미이다. 이 책에서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는 매우 간단하다. 서구문명을 번영케 한 여섯 가지 주된 요인을 통해 서구가 직면한 위험과 기회를 짚어보는 것이다. 질문은 네 가지다. '서구문명에 특별한 점이 있는가? 서구문명이 그토록 번영한 이유는 무엇인가? 서구문명은 왜 위협받고 있는가? 서구문명은 살아남을 수 있을까?' 하는 질문을 던지고 답을 내리는 것이다.
크리스트교크리스트교가 독특한 점은 신을 개개인이 접할 수 있는 존재로, 보통사람들을 굉장히 중요한 존재로 만들었고, 신의 목적에 따른 개개인의 자기개선을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것으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크리스트교는 세계 최초의 개인화되고 행동주의적인 자기 수양 운동이었다. 이는 서구가 지구상의 다른 40~50개 문명보다 성공한 이유이기도 하다. 크리스트교가 대폭발을 일으킨 중심에 있는 것은 '인간은 신의 본질을 공유할 수 있다. 모든 인간은 신성의 불꽃을 품고 있기 때문이다'라는 개념이다. 크리스트교는 유대교와 그리스 사상을 결합하고 확대하여 훨씬 낯설고 놀랍지만 어느 쪽과도 비교가 안 될 만큼 유력한 세계관을 만들어내었다. 하나의 핵심 믿음과 네 가지 실제적인 행동 효과로 이루어져 있었던 새로운 크리스트교는 역사를 통해 힘차게 울려퍼졌다.
· 핵심 믿음: 신이 인간이 되었다. 이 핵심 믿음으로 인류 역사 전체와 지구상에 있는 모든 이의 잠재적 운명은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더 나은 쪽으로 변화했다. 개개인의 삶이(지극히 평범한 사람들의 삶도) 더없이 중요해졌다. · 행동 효과 1: 개인의 책임. 바울로(1세기 후반 활동)는 고린토에 있는 크리스트교도들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이렇게 썼다. '여러분의 몸은 여러분 안의 성령이 계시는 성전입니다.' 이 행동 효과로 개인은 신의 무한한 사랑을 인식함으로써 더 훌륭하고 쓸모 있는 사람이 될 의무를 느끼게 되었다. · 행동 효과 2: 그리스도의 힘을 통한 변화. 이 행동 효과로 개인은 그리스도 안에 존재하는 신의 힘에 접근함으로써 신이 부여한 내적 자질을 끌어낼 수 있었고, 자주적인 개인으로서 자신감 있고 자유로운 행동을 취할 수 있었다. · 행동 효과 3: 약자에 대한 원조. 예수는 죄인과 매춘부, 억압 받는 이들, 병자와 불구자, 이방인들에게 엄청난 주의를 기울였다. 이 행동 효과로 모두는 신의 사랑을 받고 존경받을 가치를 가질 수 있었다. 서구문명이 유일하게 노예무역과 노예제도를 자발적으로 폐지한 것은 우연이 아니었다. 서구문명은 최초로 기근을 없애고 때이른 죽음을 거의 정복했으며, 최초로 시민들을 위해 사회지원 체제를 세우고, 최초로 일반 남성들에게, 후에는 여성들에게도 자유와 평등을 부여했다. 또한 서구문명은 최초로 인종이나 피부색, 장애, 성적 취향에 다른 소수자들에 대해 차별을 철폐하기 시작했다.· 행동 효과 4: 저주받은 이들의 구원. 이 행동 효과는 그리 밝은 이야기는 아니다. 출발 시점부터 크리스트교는 보편적인 동시에(누구든 구원받을 수 있다) 분열적이었다(구원받은 이들과 저주받은 이들). 크리스트교 유전자에는 폭력에 가까운 편협함이 내재되어 있어서 사랑과 자기희생을 강조하는 태도와 극적인 긴장을 이루고 있다. 마태오는 지옥과 불구덩이 속 영원한 천벌을 강조하고 있다. 소수만이 구원을 받고 대다수의 인간은 지옥불에 빠질 것이라는 '선민' 교리는 마태오복음에 실려 있는 좁은 문과 넓은 문 이야기에서 그 기원을 찾을 수 있다. 옳은 생각을 강요하는 경향, 세상을 선과 악으로 나누는 경향, 이교도에게 십자군으로 맞서고 유대인에게 폭력으로 맞서는 경향, 신의 벌이라는 명목의 대량 살육, 완강한 이교도들에게 크리스트교의 규범을 강요하는 경향, '더 고귀한' 최후를 위한 편협과 잔인성, 종교재판, 고문을 통한 개인 사상 침해 등은 모두 서구 크리스트교의 유산이다. 이러한 주제들은 일부 크리스트교 근본주의자들 사이에서 여전히 되풀이되고 있다. 적어도 1세기 반 동안은 크리스트교에서 극단적인 편협성이 나타나지 않았다. 그러나 비종교적인 수단, 혁명적인 테러나 극단적인 민족주의, 공산주의, 나치즘 그리고 다른 종교의 악용 등에서 편협성은 불쑥불쑥 고개를 내밀고 있다. 이러한 수단들 역시 주로 크리스트교와 서구에서 비롯된 것이다.
낙관주의서구 문명이 시작된 후, 20세기 초까지 서구 역사를 지배한 것은 한 가지 사상과 한 가지 현실이었다. 그것은 바로 인류에 대한 그 어느 때보다도 강한 낙관주의와, 끊임없이 세계를 개선할 수 있다는 능력에 대한 확신이었다. 서구의 낙관주의의 중심에는 서로 얽혀 자리하고 있는 세 가지 믿음이 있다. 그중 하나는 자율성의 신화다. 인간은 자발적이고, 자율적이며, 자신의 운명을 책임질 수 있는 잠재력을 가지고 주변 세계를 자신에게 유리하게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두 번째로, 선의 신화다. 신의 창조물은 궁극적으로 선하므로, 인간도 신의 창조물 가운데 하나로서 기본적으로 선하며 더욱더 선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세 번째는 진보의 신화다. 역사는 진행 중에 있으며, 현재는 과거보다 낫고 미래는 현실보다 나아진다는 것이다.
그리스 철학자들 중 아리스토텔레스는 잠재력이라는 개념을 제시하여 진보의 신화에 큰 영향을 미쳤다. 진정한 현실은 현재의 상태가 아니라 미래의 상태라는 것이다. 그는 궁극적인 현실은 시작이 아닌 목적, 즉 결말이나 최종 형태에 있다고 말했다. 굉장히 낙관적인 세계관이었다. 이 세계관은 만물이 더 나은 모습의 우주, 신의 섭리에 의해 계획되고 인간의 이성에 의해 추진되는 점증적이고 발전적인 우주를 향해 나아가고 있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잠재력에 대한 새로운 관점이 가장 뚜렷하게 나타난 것은 르네상스 시대였다. 리처드 타너스(Richard Tarnas)는 이렇게 말했다. "한 세대 안에서 레오나르도와 미켈란젤로와 라파엘은 엄청난 대작들을 만들어냈다. 콜럼버스는 신세계를 발견했고, 루터는 … 종교개혁을 시작했으며, 코페르니쿠스는 … 과학혁명을 개시했다. … 인간은 자연의 비밀을 꿰뚫어볼 수 있게 되었다. … (인간은) 알려져 있지 않은 세계를 확장하고, 새로운 대륙을 발견하고, 지구를 일주했다. … 음악, 비극과 희극, 시, 그림, 건축, 조각은 모두 새로운 차원의 정교함과 아름다움을 갖추게 되었다." 르네상스인은 자신을 신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공동창조자라고 생각했다. 서구의 사상과 사고 패턴, 포부, 추진력 그리고 우주의 합리성과 인간의 상상력에 대한 믿음은 그들을 세계로 나아가게 했다. 여기에서 보듯 서구를 특징짓는 요인은 개개인의 자발적인 행동이다. 기존의 구조나 체계와는 거의 무관한 인간의 독창력, 탐험 정신, 무언가 다른 혹은 더 나은 것을 찾고자 하는 끊임없는 탐구가 서구의 특징을 만들어냈다.
지난 100~150년 동안 낙관주의의 가장 큰 장애물은 인간 본성에 대한 비관이었다. 1914~1945년 사이에 일어난 사건들만큼 18~19세기의 낙관주의적 환상을 철저히 파괴한 것도 없었다. 인간의 자율성과 선, 그리고 서구문명의 진보에 대한 믿음은 일련의 사회적 격변과 그에 대한 반응으로 인해 한 세대 동안 어쩌면 영원히 깨져버렸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1차 세계대전의 무시무시한 본질과 결과, 1920년대 프란츠 카프카의 예언적인 소설에서 나타난 것처럼 인간은 사실 자유롭거나 자기결정적이지 않으며 무시무시하고 관료적이고 이해할 수 없는 악한 영향의 지배를 받는다는 인식이 믿음을 꺾어놓은 것이다. 이러한 무시무시한 사회관습은 스탈린과 히틀러가 서구문명을 손상시키고 파괴함에 따라 중유럽과 동유럽으로 퍼져나갔다. 그 영향을 받지 않은 미국과 일부 유럽 지역에서도 1930년대는 경제 붕괴와 서구문명에 대한 불만으로 얼룩진 시기였다. 낙관주의자인 루즈벨트의 꿋꿋한 노력을 통해 조금은 악몽을 면할 수 있었을 뿐이었다. 1917~1989년까지 공산주의와 나치즘의 성쇠로 서구의 생존은 불확실했다. 공산주의와 나치즘은 둘 다 서구의 사상이지만 서구문명의 지독하고 치명적인 적이다. 전체주의 악몽의 결과 60년에 걸친 평화와 번영도 서구의 역사적인 낙관주의를 재건하지 못했다. 서구가 낙관주의로 돌아서기 위해서는 전혀 새로운 이론적 · 실제적 움직임이 필요하다.
과학 백년 전 막스 베버(Max Weber)는 "오늘날 우리가 발전되었다고 인정할 만한 수준의 과학은 오직 서구에만 존재한다"고 자신 있게 말했다. 서구가 과학을 발전시킨 최초의 문명이었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서구는 과학에 우선권을 줌으로써 경제 및 사회의 본질을 변화시키고, 서구 내의 보편적인 번영을 일궈내고, 이전까지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기술상의 기적들을 만들어내고, 전 대륙을 정복할 수 있었다. 그러나 흥미로운 문제는 왜 서구가 과학 분야에서 두드러지는가 하는 것이다.
과학의 근원에는 다른 두 가지 서구사상, 즉 크리스트교의 완벽하고 전능하고 합리적인 창조주에 대한 믿음, 그리고 인간 본성에 대한 낙관주의의 자극이 있다. 중세 및 초기 근대 유럽에서 과학이 가장 큰 진보를 이룩하고 있던 때를 살펴보자. 당시 학자들은 우주의 비밀을 풀 수 있다고 믿었다. 전능한 창조주가 합리적으로 자연법칙을 세웠다고 믿고 있었기 때문이다. 우주가 합리적이고 일관적이라는 확신은 현대과학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부분이었다. 논리적이고 일관된 해답이 존재한다는 믿음은 과학자들로 하여금 그 해답을 추구하게 만드는 동기가 되었다. 신과 우주의 본질에 대한 중세의 이러한 믿음은 크리스트교의 특징이었다.
하지만 20세기 과학과 유행하는 생각들은 이 두 가지 사상에 대한 믿음을 손상시켰다. 20세기 서구의 자신감과 지배력의 중요한 동력이었던 과학에 기이하고 중대한 일이 일어난 것이다. 이론적인 문제는 뉴턴의 우주가 무너졌다는 것이다. 양자역학과 상대성이론 등 물리학의 진보로 인해 수수께끼와 불확실성, 우연이 지배하는 종잡을 수 없고 이해할 수 없는 우주가 모습을 드러낸 것 같았다. 상대성이론과 양자역학은 매우 기묘했지만 핵폭탄, 원자력, 트랜지스터, 컴퓨터, 현대우주론 등 엄청난 실제 효과를 낳았다. 19세기 말과 20세기 대부분에 걸쳐 종교에 대한 믿음은 기울고 과학에 대한 믿음이 증가했다.
과학에 대한 믿음이 정점에 이른 것은 아마도 1969년 아폴로 우주 비행사들이 달에 착륙했다가 무사히 귀환한 때였을 것이다. 그러나 이미 과학에 대한 대중의 평가에는 강력한 반대 흐름이 존재하고 있었다. 두 번의 세계대전 사이에 시작된 이러한 흐름의 바탕에는, 과학이 인간성을 빼앗고 너무나 쉽게 권력자나 특권 계층의 도구가 된다는 인식이 깔려 있었다. 과학에 대한 의심은 히로시마 참사, 1962년 쿠바 미사일 위기에서 겪은 것처럼 핵무기가 인류 문명을 말살시킬 수도 있다는 공포로 인해 엄청나게 증폭되고 심화되었다. 히로시마 원자폭탄 투하 이후 아인슈타인은 이렇게 말했다. "그들이 이런 일을 벌일 줄 알았다면 나는 구두수선공이 되었을 것이다."
1969년 이후 시들해진 우주탐사는 대중의 상상력을 다시 사로잡지 못했다. 1960년대부터는 과학의 성공이 이미 지구의 물과 공기, 토양을 오염시키기 시작했다는 증거들이 쌓이기 시작했다. 온실효과와 오존층 파괴, 지구 생태계 파괴, 아마존 열대우림 파괴 그리고 핵무기와 생화학무기의 가공할 확산들이 모두 과학의 산물로 비쳐졌다. 천문학자 마틴 리스는 인간이 생명을 위협하는 대재앙을 겪지 않고 다음 세기까지 살아남을 확률은 50 : 50에 불과하다고 추정했다. 20세기 후반 과학에 대한 믿음이 약해지면서부터는 종교적인 믿음이 되살아났다. 그러나 과학에 대한 믿음을 버리기에는 명분이 너무나 부족하다. 가장 이상적인 형태의 문명은 바로 합리성과 과학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성장약 200년 전 다소 갑작스럽게 서구의 경제성장은 막을 수 없게 되었다. 이때까지 인류의 역사는 미미한 성장 혹은 제로 성장에 머물러 있었다. 인구와 생활수준은 자연에 의해, 무엇보다 굶주림과 질병에 의해 고르게 유지되었다. 1950~1820년 사이 영국은 기계시대로 들어섰다. 기계는 자동적인 성장이라는 새로운 현상을 불러왔다. 스스로 뻗어나가는 성장은 인류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변화라해도 과언이 아니다. 증기기관 및 산업과 함께 성장은 급속하게 서구 전역으로 확산되었다. 1세기도 채 지나지 않아 경제성장은 서구에 세계 지배권을 안겨주었다.
성장이 없으면 사회와 개인의 진보는 불가능하며, 인간의 정신은 시들해버리거나 파괴적인 결말을 맞게 된다. 그러나 성장통 역시 필연적이다. 서구에 부와 성장은 그 어느 때보다 상승세를 타고 있었지만 산업자본주의에 의해 개인적 자치권이 무참히 깨졌다. 아크라이트나 와트 같은 창조적 개인들이 산업기술을 고안했지만 기계 기반의 경제는 갈수록 중앙집권화되었고 자본을 필요로 하게 되었다. 기업에 투입되는 노동자 수와 자본, 복잡한 계층구조와 전략의 중앙 통제는 갈수록 커졌고, 개인 노동자의 중요성은 갈수록 작아졌다. 점점 더 큰 조합을 구성하는 것만이 노동자들이 어느 정도 대항력을 행사할 수 있는 길이었다. 19세기 중반부터 20세기 중반까지 자본주의에 대한 적개심이 굉장했던 데에는 이런 배경이 있었다.
오늘날 인구 및 경제성장의 가장 큰 문제(아마도 금세기 최대의 이슈)는 숲·물고기·토양·화석연료·식물·동물·공기·햇빛·물·공간 등 유한한 자원의 고갈과 독성 화학물질·대기가스·외래 식물종 등 환경 손상의 증가이다. 산업-기계시대가 불러온 자동적인 성장은 20세기를 지나는 사이 서구를 넘어 곳곳으로 확산되었다. 미국과 유럽, 일본 외의 국가들이 현재 서구의 소비 수준에 도달하게 되면, 자원과 환경에 가해지는 부정적인 영향은 12배로 증가하게 될 것이다. 지구는 그런 충격을 견디지 못한다.
그렇다면 지구 자원의 유한성과 막대한 인구팽창을 생각할 때 여분의 성장, 지속불가능한 성장의 핵심은 무엇일까? 밀턴(Milton Friedman)과 로즈 프리드먼(Rose Friedman) 부부는 이렇게 말했다. "소비자운동, 환경운동, 전원생활 운동, 야생환경 보호운동, 인구 제로성장 운동, '작은 것이 아름답다' 운동, 반핵운동 등 지난 20년 동안 진행된 모든 운동은 한 가지 공통점을 지니고 있었다. 이 운동들은 모두 반성장운동이었다." 이러한 환경 비평은 지식인들과 대중들의 반향을 불러일으킨다. 그러나 유권자들은 계속 성장을 요구하고 있다. 결국 그 결과는 집단적인 정신분열증이다. 우리는 성장이 지속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지만, 습관을 버릴 수 없다. 서구의 가치관과 요구에 완전히 일치하는, 유한한 자원의 사용을 최소화하면서 성장할 수 있는 또 다른 방법이 있을까? 아마도 해결책은 있을 것이다. 적어도 서구는 오래 지나지 않아 그 해결책에 도달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