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환의 모색
장회익 , 최장집, 도정일, 김우창 지음 | 생각의나무
전환의 모색
장회익, 최장집, 도정일, 김우창 지음
생각의나무 / 2008년 9월 / 328쪽 / 15,000원
장회익 - 온생명사상, 과학문화, 삶과 학문의 새로운방향장회익은 주역과 실학의 과학사상과 물리학 이론을 접목시킨 온생명개념을 통해 자생적인 환경생태사상을 확립하였다. 이 대담에서는 온생명사상, 생태환경운동, 문학과 생태학적 상상력, 인문학과 자연과학의 통섭, 과학과 종교의 관계 등 다양한 주제로 이어졌다.(대담 진행 정정호 - 중앙대 교수)
온생명과 생명윤리, 인류의 미래를 위한 진단정정호 - 선생님, 오랜만에 뵙게 되어 반갑습니다. 첫 번째로 나누고 싶은 이야기는 생명문제, 생명담론의 문제입니다. 오늘날 '생명'문제는 인류문명사에서 최대의 핵심어로 떠올랐기 때문입니다. 물리학자로서 선생님은 특이하게도 '생명'에 대한 관심을 갖고 오늘날의 과학문명과 환경생태 등에 관해 많은 말씀을 하셨습니다. 최근에는 환경생태학, 생명공학, 유전공학 등의 발달로 '생명'에 관한 관심이 부쩍 늘었습니다. 선생님께서 우리 시대에 '생명론'또는 '생명담론'에 관심을 가진 이유와 그것이 중요한 이유를 말씀해주십시오. 아울러 선생님의 생명사상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온생명'에 대해 요약해서 설명해주셨으면 합니다.
장회익 - 제가 생명에 관심을 가진 것은 물리학자로서 학문적 관심에서였습니다. 보통 물리학은 생명을 대상으로 다루지 않는다고 생각하지만, 자연현상의 보편적 원리를 살피는 물리학의 입장에서 볼 때에 생명 또한 이를 바탕으로 이해되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쉽게 이야기해 '생명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답을 물리학적으로 풀어 보고 싶었습니다. 외부로부터의 결정적 지원이 없이 그 자체로 생명현상을 지속할 수 있는 존재를 온생명(global life)이라 할 때, 우리가 흔히 그 안에 생명을 담았다고 보는 여타의 생명체들은 사실 이 안에서 온생명의 나머지 부분에 결정적으로 의존하는 의존적 존재들이 됩니다. 이렇게 온생명 개념을 먼저 설정하고 그것을 통해서 생명을 보니까 생명이 제대로 이해되었습니다.
우리는 흔히 생명체 하나를 놓고 그 안에 생명이 있다고 하는데, 이 생명체 하나만으로는 생명현상이 나타나지 않습니다. 쉽게 말해 이것을 고립시켜 놓으면 생명현상에 해당하는 그 어떤 현상도 나타나지 않습니다. 생명체 내부의 여건과 생명체 바깥의 여건이 정교하게 결합이 될 때 비로소 생명현상이 가능해집니다. 그래서 이러한 외부의 여건을 모두 포함시켜 더 이상 외부의 도움을 받지 않고 생명현상을 가능하게 하는 그 전체가 어디에 이르는지를 살피고, 그 경계 안에 든 것을 우리가 온생명이라고 한다면, 진정한 의미의 생명은 이 온생명 안에 있는 것이지, 그것의 '의존적 한 부분'인 개별생명체 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정정호 - 최근 생명문제와 관련해 '국가생명윤리위원회'에서 황우석 사태 이후 뜨겁게 논란이 되었던 '체세포 배아복제'를 일부 허용했습니다. 그리고 얼마 전에 서울대학교 이병천 교수팀이 체세포 복제방식으로 늑대 두 마리의 복제에 성공했고, 또 독일에서는 인간의 뇌세포를 이용하여 정자를 만드는 데 성공하여 남성 불임문제에 획기적 돌파구를 마련했다는 소식도 들리고 있습니다. 체세포 복제가 우리에게 유전학상, 의학상으로 크게 기여할 수도 있겠지만, 생명경시 풍조라든가 황우석 사태 때의 난자취득 과정에서 볼 수 있듯이 이것이 오용되거나 악용된 사례가 있습니다. 과학지식인으로서 선생님께서는 온생명 담론체계 안에서 이러한 생명윤리의 문제를 어떻게 보십니까?
장회익 - 결국 생명윤리는 생명을 다룰 때, 온생명은 온생명에 맞게 대우하고, 그 안의 개별 생명체들 곧 낱생명은 낱생명의 성격에 맞게 대우하는 것이 생명을 가장 적절하게 대하는 방식이라는 것이 제 기본적 입장입니다. 자연스런 생명의 질서 곧 생명체가 자연스럽게 생성되고 사라져가는 방식이 온생명 전체의 순리적 생리입니다. 거기에 어긋나지 않게 해야 하는데, 현재의 생명공학이 이를 어기고 있어서 많은 문제들이 생겨납니다.
자연스런 진화과정에서 나타나지 않은 것들은 그 어떤 문제가 있기에 나타나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은 것이며, 또 생태계와의 조화에 대한 고려 없이 만들어진 것들은 온생명의 생리에 역행할 가능성이 매우 큽니다. 지금 우리가 해야 할 중요한 일들은 오히려 생태계의 훼손을 적게 하고, 훼손된 생태계를 정상적으로 복원하려는 노력입니다. 훼손을 적게 하면서도 우리가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하는데, 정상적이지 않은 방법으로 무엇인가를 조작한다는 것은 생태계에 위험을 안기는 것이고, 크게 보면 온생명의 생리를 그르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저는 아주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그런 조작이 없어야 한다고 봅니다.
정정호 - 이와 관련하여 선생님께서는 어느 글에서 '온생명체계'에서 개체생명인 '인간'의 위치와 책무를 논하시면서 인간이 '중추신경계적 기능'의 역할을 해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선생님께서 말씀하시는 '일원이측면론'을 인간의 중추신경계적 기능과 연결해 설명해주십시오. 아울러 온생명체계 안에서 언제나 이성적이 아니고 자주 비이성적인 인간의 윤리적 강령이랄까 실천이 어떻게 가능할까요?
장회익 - 저는 온생명체계 안에서 인간이 중추신경계적 역할을 할 수 있고, 또 그 역할을 할 수 있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인간은 지금까지 생존하기 위해 다른 생물종 못지않게 어렵게 살아온 한 생물종입니다. 그런 과정에서 자기생존을 위해 최대한으로 노력하는 본능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인간의 지적 능력은 그 물리적 활용 면에서 생명 전체에 영향을 미칠 만큼 커졌습니다. 본능과 행위규범은 크게 못 미치는 데 반해 힘이 넘치는 것이 현 위기의 원인입니다. 이성적으로 생각해보면 우리 인간이 생태계의 일부이고, 전체 생태계 안에서 인간만이 의식적 사고와 행위를 수행할 능력을 가졌고, 온생명의 진로를 의식적으로 설정할 수 있다는 사실을 자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아직 우리 인간의 느낌이나 문화 속에 이것이 제대로 젖어 있지 않기 때문에, 현실적으로는 인간의 중추신경계적 역할이 미흡하다는 진단이 맞다고 봅니다.
저는 생명을 이해하면서, 가장 놀라웠던 것이 그 안에서 주체의식을 가진 존재가 나타났다는 사실입니다. 원자, 분자들이 흩어져서 움직이고 재결합되면서, 물질의 현상이 다양하게 전개되다가 그 가운데 일부가 스스로 '나다' 하는 주체적 존재선언을 하고 나선다면 이건 분명 놀라운 일입니다. 우리는 사실 물질덩어리인데, 물질덩어리가 말을 하고 자기의식을 갖게 된 것입니다. 물질은 물리법칙에 따라 수동적으로 움직이는데, 인간은 '나'라는 의식을 갖고 있으며, 움직이고 싶으면 능동적으로 의지에 따라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습니다.
문제는 내가 마음대로 움직인다고 하는 것도 실은 자연법칙에 의해 그렇게 움직이도록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내가 주체적으로 보면 내 마음대로 움직이는 것이지만 같은 현상을 외부적으로 보면 물리법칙에 따라 움직이는 것입니다. 결국 하나의 같은 현상인데 내면으로 보면 내가 움직이게 하는 것이고 외면으로 보면 자연법칙이 그렇게 하도록 만드는 것입니다. 내가 곧 물질이라는 점을 확실히 하면 물질이 하는 것이 곧 내가 하는 것이 됩니다. 단지 물질은 물리학에서 이해하는 바와 같이 외면적 성격만 있는 것이 아니라 주체가 직접 느끼는 바와 같이 내면적 성격도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제가 주장하는 일원이측면론(一元二側面論)입니다.
최장집 - 민주주의의 민주화최장집은 우리 시대의 대표적인 진보적 정치학자로 지난 10여 년간 한국 정치사의 중요한 전환기마다 시의 적절하고 의미 있는 발언을 해왔다. 대담에서 민주주의의 민주화라는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해방 이후 현재까지 한국 민주화의 과정과 우리 정치의 당면과제에 대해 의견을 개진하였다. (대담 진행 임지현 - 한양대 교수)
민주주의의 이상과 현실
임지현 - 선생님 귀한 시간 내주셔서 감사하고 오늘 이야기를 나눌 기회를 가져 개인적으로는 영광이라 생각합니다. 선생님께서는 최근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로부터 『민주주의의 민주화』에 이르기까지 일련의 저작을 통해 한국사회에서 민주주의의 정치현상에 대한 광범위한 문제제기를 해주셨습니다. 선생님의 최근 정국과 노무현 정권에 대한 비판이 단순히 어떤 정치현상에 대한 비판이라기보다는 민주주의란 무엇인가 특히 '민주주의의 민주화'라는 선생님의 문제의식과 맞닿아 있는 정치사상적 혹은 정치철학적 맥락을 기반으로 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먼저 현상에 대한 비판의 밑바탕이 되는 민주주의라는 정치사상, 정치철학에 대한 선생님의 기본적 출발점을 여쭙고 대화를 풀어갔으면 합니다.
최장집 - 민주주의는 상당히 다층적이고 이 안에 포괄할 수 있는 의미가 굉장히 다양한, 포괄적 경향을 갖지 않나 생각합니다. 우리나라가 해방부터 87년 민주화를 할 때까지 40년 정도, 반세기에 가까운 시간 동안 우리는 대체로 권위주의체제 하에서 정치적 경험을 했는데, 이 권위주의를 통해 한국의 정치질서와 사회질서가 만들어졌다고 볼 수 있습니다. 분단된 국가에서 군부 권위주의하의 산업화를 통해 한국사회의 전체적 틀이 형성되었던 것이 민주화 이전까지의 상황이고 조건이었어요. 좁은 의미의 민주화는 이러한 조건에서 정치체제를 민주적으로 바꾸는 것이었습니다. 이를테면 인민주권의 원리, 시민의 정치적 자유, 참여의 평등, 주기적 선거, 정당이나 이익결사체 같은 자율적 정치조직 등을 통해 민중이나 인민이라고 말할 수 있는 보통사람들이 대표를 통해 통치하는 체제가 근대적 의미의 민주주의입니다. 이런 민주주의는 그냥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기존의 권위주의 정치질서나 사회질서에 대한 하나의 안티테제로 나타났습니다. 우리의 경우, 강력한 권위주의적 국가와 투쟁하는 과정에서 민주화세력이라고 통칭할 수 있는 반대세력이 형성되었고, 광범위하고 격렬한 장기적 운동을 통해 민주화를 이루어냈습니다.
문제는 민주주의를 제도화하고 현실적으로 실현하는 데 있어서는 이것만으로 가능하지 않다는 데 있습니다. 즉, 과거 권위주의시기와는 상당히 다른 종류의 정치체제를 만드는 경험이 필요한데, 이러한 현실을 직면하고 이와 관련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민주주의의 특징이라면 특징이라 하겠습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민주주의에서는 정당의 제도화를 통해 가능합니다. 제가 정당을 자주 강조하는 이유는 민주주의에서는 일반대중의 이익과 의사, 가치와 열망을 조직하고 대표할 수 있는 조직이 정당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정당이 잘 제도화되는 것이 민주주의가 정상적으로 작동하는 데 필수적 조건이라고 생각합니다.
임지현 - 선생님께서는 결국 민주주의가 제도화되고 민주주의가 확산되는 채널은 정당정치이고, 그 정당정치, 채널 자체가 제대로 작동하지 못해서 민주주의가 실패했다고 최근에 누누이 강조하셨습니다. 저는 지금 민주화운동 세력이 권력주체가 됐을 때 한편에서 그러한 리얼리즘이 상대적으로 부족했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운동현장에서 현실정치로 장을 옮긴 정치가들의 상당수가 자기 생계를 스스로 꾸려 생활해본 경험이 없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선생님께서 말씀하신 보통사람들의 열망과 좌절과 같은 것을 읽지 못하고, 정작 사람들이 살아가는 방식에 대해서는 무심하지 않은가 생각합니다. 도덕주의적 정치인식에 대한 문제제기라든가, 정당의 메커니즘, 왜 정당정치가 제대로 되지 않는가 라는 것에 대해서 선생님의 생각을 더 듣고 싶습니다.
최장집 - 민주화운동에서는 민주주의의 이상과 목표를 최대한 실현할 때 그것을 진정한 민주주의라고 생각하는 최대 강령적 이해(maximalist conceptions)가 지배적이 되는 경향이 큽니다. 그러나 민주주의를 실제로 건설하고 제도화하는 과정에서는 최소강령적인(minimalist) 문제의식과 이해가 필요하고, 그것이 현대 대의제 민주주의의 의미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그 전환이 참으로 쉽지 않습니다. 현재의 정치현실에서 민주화, 운동을 통해서 나타난 이상과 열정을 완전히 부정하지 않고 이것을 어떻게 현실로 전환해서 변화를 만들어내느냐는 것이 저의 가장 중심적인 관심사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 개인에게 노무현 정부의 경험은 상당히 중요합니다. 노무현 정부가 잘했냐 못했나를 떠나서 노무현 정부는 어쨌든 대통령선거 과정에서 앞의 정권과 다르게 구시대와 거리를 두었고, 노무현 정부를 지지했던 중심세력은 대체로 386이라고 말하는 민주화운동 세대였습니다. 이런 세력이 만든 정부가 어떻게 해나가느냐가 민주주의를 이해하고 앞으로 발전시켜나가는 데 중요한 하나의 사례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노무현 정부는 기대에 비해 실망스러운 결과를 보여주었습니다. 따라서 우리가 민주정부에 대해 이상적으로 지나치게 높은 목표를 잡는 것보다는 기대할 수 있는 것을 현실적으로 생각하는 것이 훨씬 더 바람직합니다. 그래서 정당의 중요성을 강조했습니다. 민주주의의 대표적 정치조직으로서 정당이 일상 속에서 작동할 수 있는 메커니즘을 발전시키는 것이 대안입니다.
한반도의 통일과 동북아시아의 평화체제
임지현 - 이제 통일문제를 마지막으로 오늘의 대담을 마무리할까 합니다. 선생님께서는 정부의 구체적 정책보다는 우리 지식인들 사이에서 통일문제에 대한 고집스러운 집착, 또는 한국사회의 문제를 자꾸 분단의 문제로 환원시키는 그러한 인식론적 경향에 대해서 중요한 문제제기를 하셨습니다. 그 문제를 조금 더 설명해 주셨으면 합니다.
최장집 -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정치적, 사회적 이슈는 남북한관계를 중심으로 하는 민족문제와 노동 복지정책을 포괄하는 사회경제적 문제라고 할 수 있습니다. 민족문제는 분단의 문제가 아직 해소되지 않았기 때문에 상당한 현실적 위력을 갖고 지속되고 있습니다. 앞선 김대중 정부가 남북한 간의 데탕트를 추진해서 정상회담까지 이어지는 좋은 성과를 거둔 것은 부정할 수 없습니다. 그것을 이어받은 노무현 정부도 그런 정책을 펴고 있습니다. 이러한 데탕트의 노력을 통해 남북한관계는 일정하게 변할 것입니다. 이 점에서 우리는 떠들썩한 남북한관계 변화나 대북정책 변화와는 달리 실제로 사태를 변화시키는 문제에 더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봅니다.
왜냐하면 여기에는 두 가지 수준의 다른 문제가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는 남북한은 실제로 분단 이후 완전히 다른 사회로 발전해왔다는 사실입니다. 이 점에서 통일이라는 말은 수사에 불과합니다. 다른 하나는 남북한관계는 남북한만의 관계가 아닙니다. 한반도의 분단문제는 기본적으로 국제적 분단이고 미 소대결과 냉전의 결과물입니다. 이것이 동북아 세력균형의 중심축이 되기 때문에 남북한관계만의 문제로 볼 수 없습니다. 말하자면 미국의 한반도정책에 대해 변화를 가할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것은 우리 정부로서 절대로 필요하지만, 한국정부가 그 한반도정책의 주도권을 행사할 만한 주체적 역량을 가지고 있느냐에 대해 저는 극히 회의적입니다. 동아시아 국제정치의 구조에서 한국의 위상이 그렇다는 이야기입니다.
임지현 - 선생님 말씀대로 남북한의 통일문제는 남과 북의 주체적 민족역량보다는 역시 국제관계에서 이루어집니다. 만일 그렇다면 남북관계를 둘러싼 동아시아의 국제정세가 좀 더 바람직한 방향으로 전개되기 위해서 우리가 모든 것을 주체적으로 할 수는 없겠지만, 어떤 이니셔티브를 잡고 주어진 여건 내에서 남북한 간의 평화체제 혹은 긴장이 완화되는 방식으로 혹은 냉전이 완화되는 방식으로 동북아시아의 국제정세가 더 바람직한 방향으로 흘러가게 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한국의 진보세력과 민주화세력, 양식 있는 시민집단들과 지식인집단들이 어떠한 방식으로 이 문제에 접근해야 할지 이 문제에 대해서 혹시 선생님이 생각하신 바가 있으면 말씀해주십시오.
최장집 - 미국의 동아시아정책은 중국을 가상의 적으로 상정하면서 반중동맹이랄까, 일본을 앞세우면서 한국을 미국의 동아시아 영향력의 교두보로 삼는 방향으로 그 양상이 나타나는 것 같습니다. 바꿔 말해 냉전시기의 이데올로기적 적대구조와는 다른 맥락에서 세계화시대의 또 다른 적대구조가 부상하는 것이 오늘날 동아시아의 국제정치 상황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여기에는 국가 간 군사전략적 힘의 관계에서 중국을 고립시키는 정책, 중국과 일본이 적대하게 되고 한국은 그 중간에서 친중과 친일을 오락가락하게 되는 구조가 한편에 있고, 다른 한편으로는 경제적 세계화가 빠른 속도로 진행되면서 동아시아지역이 통합되는 이중적 구조가 있습니다. 이런 국제적 현실에 비춰볼 때, 한국의 대외정책에는 많은 문제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한국의 역대정부가 냉정하게 남북한관계의 데탕트를 원한다면 일본과의 관계를 돈독히 해서 미국의 강경노선을 견제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동북아시아 관계 속에서 말하자면 중국과 일본이 대립해서 또 다시 냉전시대와 같은 적대구조로 나가는 길을 막는 것이 한반도 긴장을 풀어내는 공동의 안전장치가 될 수 있습니다. 이것을 해결하는, 즉 동북아에 평화구조를 만들 수 있는 좋은 이슈가 한반도문제라고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