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도로 보는 세계미술사
바이잉 지음 | 시그마북스
지도로 보는 세계미술사
바이잉 지음/한혜성 옮김
시그마북스/2008년 11월/400쪽/22,000원
중세기의 미술유럽
4세기 초, 로마 황제 콘스탄티누스는 기독교를 국교로 선포했다. 그리하여 교회를 대거 건축하기 시작했다. 최초의 교회 양식은 바실리카 양식으로, 내부는 벽화와 모자이크화로 장식했는데 이는 기독교 건축의 기본적인 양식이 되었다. 종교사상의 변화와 건축 기술의 발전에 따라 훗날 차츰 로마네스크 양식과 고딕 양식의 교회가 나타났다. 비잔틴 미술이 남긴 가장 뛰어난 성과는 교회 건축 영역에서 나타난다. 콘스탄티누스가 건설한 성 소피아 성당은 비잔틴 미술의 이정표적인 건축물이자 비잔틴 건축예술의 가장 찬란한 성과이기도 하다. 5세기, 바바리안족은 서로마 제국을 멸망시켰다. 바바리안 미술은 세속적 흔적과 토착적 색채가 짙게 드러난다. 바바리안족 예술 유물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수공예 예술품으로 대부분 금속 주형, 금은도금, 옥석 모자이크 등으로 제작된 생활용품이다. 8세기에 이르러 프랑크 왕국의 국왕 샤를마뉴 대제는 카를링거 왕조를 세웠다. 그는 궁정을 중심으로 고전문화 부흥의 조류를 형성했다. 역사에서는 이를 '카롤링거 르네상스'라 부른다. 카롤링거 르네상스의 주요 예술적 성과는 책의 삽화와 건축 방면에서 드러난다. 샤를마뉴 대제 시대에서 가장 중요한 건축 공사는 아헨의 궁전이었는데, 이는 훗날 로마네스크 양식 성당의 기본 형식이 되었다. 로마네스크 양식의 성당은 비잔틴 미술과는 달리 모자이크화가 줄어든 대신 벽화와 스테인드글라스가 주를 이루었으며 인물은 대부분 정면을 보고 있다. 또한 색조의 조화를 중시하여 색채가 밝고 장식적 의미가 크다. 종교적인 압력 때문에 모두 천편일률적이라 창조성이 결여되어 있다. 고딕건축양식은 1140년대 프랑스가 생 드니 성당을 재건하면서 처음으로 등장했다. 고딕 양식 회화는 스테인드글라스가 벽화를 대신해 크게 번성하였다. 벽화, 특히 대형 벽화는 이탈리아에서만 지속적으로 발전하였다. 이 시기 이탈리아 회화는 극대화된 창조력을 뿜어냈는데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의미의 혁명으로 르네상스 미술의 발단이 되었으며, 이후 서양 미술의 발전에 크나큰 영향을 미쳤다.
아시아
당시의 아라비아 문화는 동서를 연결해주는 역할을 하였다. 신권 통치하의 중세기 유럽에서 고대 그리스의 저작들이 대부분 유실되었는데 아라비아인은 고대 그리스 예술 저작을 대량 번역함으로써 서구 문화의 단절을 보완했다. 유럽인은 번역본을 통해 고대 그리스, 로마의 예술을 이해하고, 나아가 이후의 르네상스를 시작했던 것이다. 아라비아 문자는 건축 장식, 공예 미술과 서적 장정에서 각종 문양 혹은 그림과 결합하여 다양한 변화와 풍부한 표현력을 가진 예술 수단이 되었다. 아라비아 건축은 그 웅장함과 화려함으로 세계적으로 이름을 떨치고 있다. 705년 건축된 다마스쿠스 우마이야드 모스크는 비잔틴과 시리아 양식을 모방한 건축물로 화려하고 웅장한 위용을 자랑한다. 아라비아 제국 말기의 건축은 인도건축양식의 영향을 받았는데 9세기에 건축된 사마라 이슬람 사원이 대표작이다.
중국은 수, 당 시기에 가장 찬란한 시기를 맞이하게 되었다. 수공예의 발달과 과학기술의 진보는 회화 기법의 발전을 가져왔다. 서예 예술은 당대의 해서, 초서의 성과가 가장 두드러진다. 조각은 수, 당 시기에 유례없는 번영을 맞이했다. 풍족한 경제는 수, 당 시기 도용의 성행을 촉진시켰다. 수대 도용은 조형 양식적으로는 둥근 얼굴, 작은 머리, 길고 가는 몸체 등 모가오 동굴 수대 벽화 공양인(供養人)의 이미지와 매우 닮아 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당삼채(唐三彩) 도용에는 인물, 동물, 진묘수(무덤을 지키는 상상의 동물) 등이 있으며 소재가 풍부하다. 그 밖에도 수, 당 시기에는 도자기가 한층 더 발전했다. 수, 당 백자의 성공적인 제작은 훗날 채색 도자기의 발전에 탄탄한 기반을 다져주었다. 장식 방법으로는 인화(印花), 획화(劃花), 각화(刻花), 퇴첩(堆貼), 날소(捏塑) 등이 사용되었다. 당시 해외로까지 판매되어 일본, 인도와 이집트 등에서 당대 자기가 출토되고 있다.
6세기 중기, 불교문화의 급작스런 유입은 일본 미술의 눈부신 발전을 이룩했다. 아스카 시대의 미술은 극히 직설적으로 중국 삼국 시대부터 초당(初唐)까지를 반영하고 있는데, 특히 양진 남북조 시대의 불교 미술양식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다. 나라 시대에 일본에는 대규모 사원 건설 열풍이 등장했는데 도다이지 불상의 개안(開眼 불상을 만든 후 처음으로 공양하는 일)은 나라 시대의 예술 창조력이 정점에 달했음을 보여준다. 이로써 일본 미술사의 제1차 정점이라 일컬어지는 덴표 양식을 완성했다. 헤이안 시대에는 일본 미술 영역에 전면적인 민족화 경향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일본 문자인 가나의 생성과 일본 고유의 정형시인 와카의 흥성은 가나 서법과 일본 특유의 회화 양식인 야마토에(중국풍의 수묵화인 한화와 구별하기 위해 쓰인 명칭)의 급속한 발전을 촉진시켰다. 이는 일본 민족 최초의 완벽한 형태를 갖춘 심미의 전형으로 훗날 일본 미술 발전의 본보기가 되었다.
아메리카
멕시코는 이곳만의 독특한 문명인 마야 문명, 톨텍 문명, 아스텍 문명이 발생했고 특이한 본토 예술이 만들어졌다. 멕시코 골짜기의 원주민 문화를 기반으로 한 아스텍 제국은 테오티우아칸과 톨텍의 특성까지 갖추었다. 건축과 조각, 회화에서 보여준 아스텍인들의 예술은 그 이전 문명의 수준을 뛰어넘었다. 아스텍인들의 회화 기술은 고대 수사본에 잘 나타나 있다. 아스텍 사람들은 역사적인 사건이나 사상, 정보 등을 종이 위에 각종 표의(表意) 도형으로 기록했다. 회화는 붉은색과 검은색을 가장 많이 사용했다. 아스텍의 도기는 주로 테라코타로 만들어졌으며 표면은 광택이 나고 세밀한 조각으로 생동감이 넘친다. 그리고 대부분 등황색 바탕에 검은색으로 도안을 그려 넣었다.
15~16세기의 미술유럽
르네상스는 이탈리아에서 시작되어 유럽 전체로 퍼져나갔다. 이탈리아의 르네상스는 초기와 후기로 나뉜다. 르네상스 초기 예술은 고전 문화를 배움으로써 새로운 문화를 창조하는 것, 나아가 새로운 생산관계와 새로운 의식이 예술 속에서 반영되는 것이 르네상스 초기 예술이 추구했던 바였다. 이 시기에 피렌체파, 시에나파, 움브리아파 및 파도바파 등 여러 화파가 출현했다. 그 중 피렌체파가 가장 큰 영향력을 발휘했다. 13세기 초, 피렌체의 치마부에와 시에나의 두치오는 회화의 영역에 자연을 한층 더 진실하게 묘사하고 고딕 양식 조각처럼 생동감 넘치는 인물 형상을 창조해 내고자 했다. 치마부에의 영향을 받은 조토 디 본도네는 피렌체파의 창시자로 중세기 예술이 르네상스 예술로 전환되는 과정에서 탄생한 첫 번째 화가이다. 그가 활동하던 시기부터 화가들은 자신의 작품에 이름을 남기기 시작했는데 바로 이로부터 미술사가 작품의 역사이자 미술가들의 역사가 된 것이다.
피렌체파가 부피와 명암을 중시했던 것과는 달리 시에나파는 선과 색채를 중시했다. 이 화파는 사실적인 수법으로 유명한 로렌체티 형제를 14세기의 대표적인 화가로 꼽는다. 그러나 15세기 시에나파는 쇠락하기 시작했으며 움브리아파가 그 뒤를 이었다. 이 화파는 부드러우면서 맑은 색조를 추구했는데 대표적인 화가로는 피에로 델라 프란체스카와 피에트로 페루지노가 있으며 화풍이 고상하고 우아하다. 페루지노는 성모를 즐겨 그렸는데 특히 깊은 생각에 빠진 성모를 묘사했다. 르네상스 전성기의 대가인 라파엘로가 그의 제자였다. 파도바파는 15세기 이탈리아 북부에서 형성된 지방 화파로 형식 구조를 중시하고 인물의 진실된 형체 묘사에 집중했다. 안드레아 만테냐가 대표적 인물이다.
16세기 후반기, 이탈리아에는 매너리즘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당시 작품에서는 과장된 자세와 표정, 왜곡되고 늘어진 형상과 억지스럽게 묘사된 인체 등이 주된 특징으로 나타났다. 색의 활용도 기이하고 부자연스러운 양상을 띠었다. 사실 이처럼 편협하고 독특한 풍격을 추구한 까닭은 예술언어와 사상의 결핍을 감추기 위해서였다. 1920년에 이르기까지 서양 미술사학계는 보편적으로 이를 전성기 르네상스 미술과 바로크 미술 사이에 생겨난 새로운 유파라고 여겼으며, 대표적인 화가로는 폰토르모, 로소 피오렌티노, 브론치노 등이 있다. 그중 피렌체파인 브론치노는 마니에리스모 양식을 대표하는 인물이며 정교한 필법과 냉정하고 자극적인 색채로 유명하다.
아시아
명대 초반부터 가정 시기까지 가장 영향력 있는 화파는 절파였다. 대진은 이 시기 화단을 주름 잡던 대표 화가였다. 대진의 뒤를 이은 오위와 진경초는 절파의 대표 화가이다. 명대 중기에 들어서면서 화단에서는 오파가 절파의 자리를 대신 차지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세대교체는 단순히 특정 화파가 또 다른 화파로 교체된다는 의미를 뛰어넘어 예술 내적인 형식 요소의 전환이자, 더 나아가 함축된 정서를 밖으로 끌어내는 새로운 시도라는 점에서 중요했다. 심주는 오파의 기반을 다진 화가이다. 심주는 변화무쌍한 필묵의 운용으로 송, 원대 문인 화가들의 화풍을 자유자재로 넘나들었다.
명대 가정 시대 이후부터 숭정 시대에 이르기까지는 문인화의 사의화조화가 빠르게 유행하며 진순, 서위 등의 화가들이 출현했다. 산수화 분야는 동기창을 주축으로 송강파와 그 외 여러 화파들이 형성되었고, 인물화 분야는 진홍수 등이 고대의 화법을 재현해 과장되게 표현한 변형주의 화풍을 창조해 냈고, 한때 초상화 분야에서는 파신파라는 화파가 유행하기도 했다. 진순의 화조화는 심주의 화풍을 계승해 붓 사용이 자유로운 은은한 담채화가 많았다. 서위는 진순보다 더 자유분방하고 호방한 화풍을 추구했으며, 발묵 필법의 사의화조화에 뛰어났다. 그는 후대에 이르러 진순과 함께 '청등, 백양'으로 불리기도 했다. 동기창은 필묵의 기세가 돋보이고 필치가 세련되며 묵색이 담백하고 풍격이 고아하고 아름답다. 그가 제창한 '남북종' 학설은 남종 회화의 정통적 지위를 강조함으로써 문인화의 창작활동을 정점으로 올려놓았다.
아메리카
15세기 전성기의 잉카 제국은 페루 남부의 쿠스코를 수도로 정하였다. 뛰어난 직공들을 이곳으로 집중시켜 잉카 제국 풍격의 미술을 창조해 냈다. 쿠스코에는 웅장한 태양 신전과 달의 신전과 별의 신전이 있다. 이곳의 건축물은 내부 벽이 방직물과 황금으로 만들어진 판으로 장식되어 매우 화려하고 웅장했다. 잉카 제국의 대형 조각물은 거의 보이지 않으며 소형 조각상의 조형은 매우 생동감이 넘친다. 일반적으로 동물의 형상은 개괄적으로 표현되었고, 소형 인물상 석주의 인물 묘사는 사실적이다. 인물의 머리에는 간단한 머리 장식이 있고, 복식은 간단한 기하형 도형으로 표현되었다. 이를 통해 잉카 예술가들의 개괄력과 표현력을 엿볼 수 있다. 잉카 도기 중 가장 전형적인 것은 뾰족바닥 토기이다. 도기 표면은 빨강, 검정, 노랑, 흰색 등의 동물문 혹은 기하문으로 장식되어 있어 빛깔과 광택이 화려하다. 방직품은 면직물이 주를 이루는데, 도안은 매우 풍부하고 다채롭다.
17~18세기의 미술17세기 유럽의 미술은 바로크 풍격으로 대표되는 다양한 풍격이 공존하면서 서로 영향을 주고받았다. 이탈리아에서 시작된 바로크 예술은 이후 유럽의 다른 지역으로 확대되어 17세기 유럽 미술 풍격을 대표하게 되었다. 17세기 유럽에서는 회화의 주제가 종교와 신화에서 차츰 인간과 생활로 옮겨지면서 새롭게 부각되었고 풍경과 정물도 잇따라 독립적인 회화 장르로 자리 잡았다. 화가들은 회화에서 빛의 응용과 색의 표현을 중시했고, 작품이 각광을 받음에 따라 신분 역시 변화했다. 이 시기에 유행했던 바로크 예술, 고전주의, 현실주의는 모두 후대 예술 조류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17세기에 들어선 후 이탈리아 미술에서는 바로크 예술, 현실주의와 함께 고전 전통을 신봉하는 '아카데미파' 등이 동시에 발생하여 더욱 복잡하고 다양한 시기로 진입했다. 바로크 미술은 로마 교황청과 가톨릭의 지지하에서 엄청나게 발전했고, 마침내 당시 미술계의 주류가 되었다. 16세기 말부터 17세기 초 사이, 아카데미파와 바로크 예술은 카라바조로 대표되는 현실주의 예술과 대립했다. 이 시기의 이탈리아 정치는 혼란스러웠고 시민들의 투쟁은 끊이지 않았다. 이런 상황은 카라바조에게 많은 영향을 미쳤다. 이를 계기로 카라바조는 자신의 작품 속에 세속적인 생활들을 생생하게 담아냈다. 그의 작품인〈디오니소스〉,〈마태오의 소명〉은 그 소재에 있어 여전히 종교적인 색채를 띠고 있다. 하지만 표현에 있어서는 르네상스 부흥기에 확립된 이상적인 유형을 버리고 신성한 인물과 장면을 흔히 볼 수 있는 사람과 배경처럼 현실감 있게 표현했다. 카라바조와 그의 예술은 루벤스, 벨라스케스, 램브란트, 루이스 르 냉, 라투르 등 유럽의 수많은 화가들에게 크고 작은 영향을 주었다.
17세기 플랑드르 미술은 가톨릭의 영향을 받아 바로크 예술의 특징을 강하게 담고 있으며, 바로크 회화의 절대자라고 할 수 있는 루벤스를 배출했다. 루벤스 작품의 특징인 약동하는 열정과 화려하고 다양한 색채는 오래도록 서양 화단에 영향을 미쳤다. 이후 낭만파의 대가인 들라크루아도 활력이 넘치는 그의 회화기법의 영향으로 광선에 따른 색채 변화를 강조한다. 이 밖에도 루벤스는 인상파에도 간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17세기 플랑드르에서 활동했던 또 하나의 유명한 화가는 야코프 요르단스이다. 루벤스처럼 웅장하지도, 반 다이크처럼 우아하지도 않은 그의 회화는 통속적이며 색깔과 광택이 타오르는 듯 선명하다. 요르단스는 즐거운 현실생활을 즐겨 표현했다.
17세기의 웅장하고 장엄한 고전주의 양식은 '로코코'라는 향락주의 예술로 점차 변모되어 갔다. 결국 로코코는 18세기 유럽 미술 양식을 대표하는 지배적인 위치에까지 올랐다. 로코코 예술의 등장은 바로크 예술이 극단적으로 인위적인 아름다움을 추구함에 따라 나타난 필연적인 현상이다. 프랑스의 부셰는 로코코 양식을 대표하는 화가이자 당시 회화에 가장 많은 영향을 끼친 궁정 화가이다. 부셰는 신화와 여성을 테마로 한 작품 외에도 궁정 인물의 초상화 역시 많이 그렸는데〈마담 드 퐁파두르〉가 그 대표작이다. 1770년대 이후, 부르주아 계급에 의한 혁명의 물결이 날로 고조됨에 따라 새로운 예술적 표현이 등장했다. 도덕적 관념을 외쳐대던 작품들은 외면당한 반면, 새로운 작품을 통해 영웅주의와 시민의 투쟁정신을 강조하면서 자연스럽게 신고전주의 예술이 탄생했다.
고야는 벨라스케스의 뒤를 이은 위대한 스페인의 현실주의 화가이다. 바로크 양식의 영향을 받은 그는 인물의 내면세계를 매우 솔직하게 표현함으로써 인물의 내면과 외형의 완벽한 조화를 이루었다. 고야는 화려한 귀족들의 겉모습으로도 감추기 힘든 그들의 오만함, 혼란스러움, 타락한 모습, 지극히 평범하고 공허한 모습 등을 매우 솔직하고 냉소적으로 묘사했다. 또한 어두운 색으로 거침없이 표현한 배경에서 질식할 것만 같은 무겁고 탁한 기운이 느껴진다. 고야는 일생 동안 투쟁하는 자세로 자신의 예술작품 속에 생활 모습을 진실하게 담아내려고 노력했다. 또한 들끓는 열정으로 시민을 찬양하고 시대를 반영했다. 19세기에 왕성한 활동을 보인 낭만주의자들과 현실주의자들은 모두 고야의 작품을 통해 새로운 깨달음과 자양분을 얻었다.
19세기의 미술프랑스 미술 19세기 유럽 미술의 중심은 프랑스였다. 특히 회화 분야에서는 다양한 화파를 탄생시킨다. 신고전주의는 장중함, 엄숙함, 경건함, 우아함을 중시하는 고대 그리스 로마의 고전 양식을 새롭게 부활시키는 한편 귀족사회에서 환영받던 바로크와 로코코 양식을 반대했다. 다비드는 신고전주의의 대표적인 인물 중 한 사람이다. 그의 작품은 단순하고 고귀한 아름다움을 표현했으며, 중요하지 않은 세부적인 표현들은 과감히 생략했다. 그의 제자 중에는 제라르, 그로, 앵그르 등이 있다. 그들은 모두 신고전주의 계승자로서 빛나는 업적을 세웠다. 낭만주의는 개성의 표현을 주장했고 자연을 찬양했으며 화가의 상상력과 색채를 중시했다. 제리코는 프랑스 낭만주의 회화의 창시자이다. 그의 작품〈메두사의 뗏목〉은 사실적인 인물 표현과 강렬한 명암의 대비, 실제 상황을 보는 듯한 색조 처리를 통해 더 큰 긴장감과 전율을 전해준다. 고전작품의 속박을 벗어던진 이 작품은 오늘날 낭만주의의 시작을 알리는 본격적인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조각을 통해서도 낭만주의를 추구하려는 사람들이 있었는데 뤼드와 카르포가 대표적인 인물이다. 카르포의 작품은 진실성과 젊음의 생명력을 갈구한다. 그의 대표작〈댄스〉는 나체의 소년소녀들이 열정적으로 춤추는 장면이 표현되어 있다. 누드를 통해 생활 모습을 반영하는 것은 당시 유행하던 조각의 새로운 표현방식이었으나 여론의 공격을 받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