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생목록
재생목록이 비어 있습니다.
-
-
0:00 0:00
화면 너비 (여백)
좁게
보통
넓게
최대
배경 테마
글꼴
바탕/명조
돋움/고딕
글자 크기
작게
100%
크게
줄 간격
좁게
보통
넓게

20세기 환경의 역사

J.R. 맥닐 지음 | 에코리브르
20세기 환경의 역사

J. R. 맥닐 지음

에코리브르 / 2008년 12월 / 688쪽 / 38,000원

프롤로그_ 한 기묘한 방탕한 세기




환경의 역사에서 20세기는 커다란 생태학적 변화를 불러온 사건들이 수없이 발생했다는 점에서 '기이한 세기(peculiar century)'라 할 수 있다. 인류는 오랫동안 벌목과 광물채취, 쓰레기 양산, 작물 재배, 수렵 등을 하며 살아왔다. 이러한 행위는 현대에 이르러 더욱 빈번히 자행되었으며 특히 1945년 이후에는 과거 어느 때보다 훨씬 더 심각한 상태에 이르렀다. 비록 오존층 감소처럼 20세기에 처음 나타난 인위적 환경 변화가 있기는 하지만, 생태학적인 면에서 20세기를 기묘한 세기라고 한 것은 환경변화를 불러오는 인류의 행위가 과거에 비해 규모와 강도 면에서 훨씬 더 강력해졌기 때문이다.



산업혁명 이전까지 인간에게 허락된 에너지는 자기의 근력을 이용하거나 가축의 힘을 빌리는 것, 풍력과 수력, 나무나 그 밖의 바이오매스에 저장된 화학에너지를 이용하는 것이 전부였다. 그런데 산업혁명으로 화석연료의 시대가 열렸다. 증기기관 발명과 석탄 사용 증대로 전 세계 에너지 생산은 19세기에 3배나 증가했으며 20세기에는 석유, 천연가스, 원자력의 사용 등으로 다시 13배나 증가했다. 인류역사에서 한 세기 동안 에너지 사용이 그처럼 획기적으로 증가한 적은 일찍이 없었다. 아마도 지난 20세기에 사용한 에너지량은 그 이전까지 인류가 사용했던 모든 에너지의 합보다 더 많을 것이다. 그러나 화석연료의 사용은 심각한 환경오염을 야기했고 전 세계적으로 극심한 부와 권력의 불평등을 초래했다.



제1부 지구의 음률



지표면 : 암권과 토권


20세기 인간 활동은 지표면을 생물학적 화학적 물리학적으로 크게 바꿔놓았다. 농업이 태동하던 그 시절부터 인간은 지구 곳곳에서 토양의 영양공급 체계를 변화시켰다. 질소와 인의 결핍은 식물 성장을 저해하고 작물생산을 감소시킨다. 농업의 역사는 바로 이런 영양분을 확보하기 위한 투쟁이라고 할 수 있다. 1842년 영국의 농부 존 로스는 인광석에 황산을 부어 토양에 직접 살포할 수 있는 농축 과인산염을 얻는 데 성공했다. 로스는 화학비료를 만드는 데 처음으로 성공한 뒤 세계 최초의 화학비료 제조회사를 설립했다.



질소는 공기 중에 매우 풍부하지만 공기 중에서 질소를 추출하는 일은 20세기에 와서야 가능해졌다. 1909년 프리츠 하버가 암모니아 합성법으로 공기 중의 질소를 추출하는 방법을 처음 발견했다. 이어 카를 보슈는 하버의 방법을 활용해 질산염을 대량 생산하는 법을 고안했는데, 이를 하버-보슈의 암모니아 합성법이라 한다. 하버-보슈 암모니아 합성법은 제1차 세계대전 이후 상업적으로 대단한 성공을 거두었다. 1940년 전 세계 화학비료 사용량은 약 400만 톤이었으나 1965년에 연간 4000만 톤에 이르렀고, 1990년에는 거의 1억 5000만 톤으로 증가했다. 이로 인해 전 세계 토양의 화학적 조성이 획기적으로 변했다. 농경지에 뿌려진 대부분의 비료는 식물에 흡수되지 못하고 수질오염원으로 작용했다.



토양오염

20세기 화학공업계는 토양오염을 불러일으켰다. 토양오염은 화학공업과 제련업이 발달한 지역에서는 어디서나 심각한 문제가 되었다. 특히 유럽, 북아메리카 동부지역, 소련, 일본 등이 그러했다. 주요 토양오염원 중 하나는 납, 카드뮴, 수은, 아연 등이 포함된 광물을 채굴·제련·정제하여 제품으로 생산하는 과정에서 발생했다. 이런 금속 제품들은 현대 화학공업과 금속공업에 아주 중요하며, 이들 금속은 20세기 산업화에 절대적으로 필요했다.



일본은 토양 오염의 극적인 경험을 했다. 메이지유신(1868년) 이후 광산업과 제련업이 크게 번성하면서 중금속 오염이 심각한 문제로 대두했다. 19세기 말엽 몇몇 광산 주변에서 구리 오염으로 쌀 생산이 크게 감소했지만 처음에는 단지 국지적인 문제로 간주되었다. 20세기 초엽 광산채굴과 제련 산업이 더욱 번성하면서 하천유역에서 심각한 중금속 오염 현상이 나타났고 급기야 농부들이 쌀 생산 피해를 문제삼아 시위를 벌이는 사태로 번졌다. 또 제2차 세계대전 직전에는 도야마현 진즈강(神通川) 유역에는 '이타이이타이('아프다 아프다'라는 뜻의 일본 말)'라는 희귀한 질병이 몇 건 발생했다. 이 질병은 카드뮴 중독 때문인 것으로 밝혀졌는데 전쟁이 끝나면서 환자 발생 수가 수백 명에 이르렀다.

일본의 중금속 생산과 그에 따른 오염은 1950년 한국전쟁의 발발로 중공업 발전에 일대 전기가 마련되면서 더욱 심화되었다. 중금속은 여러 경로로 농경지의 관개용수를 오염시켰다. 논에서 물이 빠지면 중금속은 자연스레 농경지에 그대로 남게 되었다. 특히 카드뮴은 쉽게 벼에 흡수되었는데, 1980년 약 10%에 달하는 일본의 논들이 카드뮴에 오염되어 거기서 생산된 쌀은 식용으로 적합하지 않다는 판정을 받게 되었다. 일본은 지난 20세기 동안 카드뮴을 비롯한 중금속을 식품으로 섭취함으로써 수백 명이 사망하고 수천 명이 심각한 고통을 겪었다. 채광과 제련, 논농사 등이 한 지역에서 동시에 이루어짐으로써 일본은 다른 어느 나라보다도 더 심각하고 끔찍한 토양오염을 겪어야만 했었다.



유독성 폐기물

산업화는 금속류뿐만 아니라 각종 유독성 폐기물 역시 함께 방출했다. 1900년 이후 현재까지 대략 1000만 종의 화학물질이 합성되었다. 그중에서 약 15만 종이 상업적으로 이용되었을 것이다. 1950년 이후 화학공업계가 번성하면서 유독성 수준이 급격히 높아졌다. 독성폐기물의 상당 부분은 쓰레기 매립지에 묻혔다. 1980년 이전까지 폐기물 문제는 일상적인 주의사항 정도에 불과했다.



1936년 미국에서는 화학공장에서 생성된 유독성 폐기물의 80~85%가 전혀 처리되지 않은 채 주변의 구덩이나 연못, 하천 등에 함부로 버려졌다. 그런데 1976~1980년 미국 뉴욕 버팔로 근처 러브 운하 근처에서 1942~1952년에 매립된 화학물질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이는 현상이 나타났다. 암 발생률이 높아지고 기형아들이 잇따라 탄생한 것이다. 이 지역은 과거에 후커 케미컬(The Hooker Chemical Company)이 점액 상태의 유독성 폐기물을 다량 땅속에 파묻고 그 위에 잔디를 입혀 지역사회에 양도했던 곳이다. 해당 지자체가 여기에 학교를 건립하고 주택단지를 조성했다. 1980년 연방정부는 수천 명의 지역주민들을 이주시키고 이 지역을 국가재난 지역으로 공식 선포하여 완전히 봉쇄해버렸다. 그러자 곧 수백 군데 지역 사회에서 주민 건강 문제와 화학물질 매립을 동일시하는 일이 벌어졌다. 독성 화학물질 매립지는 1980년 미국에서만 5만 곳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1970년대에는 수출을 통해 다른 나라에 유독성 폐기물을 처리하면서 국제거래가 이루어졌다. 멕시코는 미국의 독성 폐기물 매립장이 되었고 동남아시아 국가들은 일본의 폐기물을 받아들였으며, 모로코와 그 밖의 서아프리카 국가들은 유럽 국가들과 미국의 폐기물을 수용했다. 아마도 1989년 이전까지 세계 최대의 유독성 폐기물 수입국은 동독이었을 것이다. 1980년 말에 이르러 유독성 폐기물의 국제 무역량이 연간 수백만 톤에 달했는데, 부유한 국가들은 유독물 처리 대가로 가난한 나라들에 엄청나게 많은 돈을 지불하면서 정치적인 저항을 불러왔다. 1987년 미국의 폐기물 소각로에서 배출된 유독성 비산재를 가득 실은 선박 한 척이 그것을 받아줄 나라를 찾아 대서양을 배회하는 일이 발생했다. 그 이후 1980년대 후반부터 1990년대까지 일련의 국제회의가 열려 그동안 불법적으로 자행되던 유독성 폐기물 무역 문제를 규제하게 되었다.



대기권 : 도시의 전설



1900년 이전의 대기 오염


인류가 동굴에서 거주하게 되고 그곳에서 나무를 태워 난방과 취사를 해결하게 되면서 인류 최초의 대기 오염이 나타나게 되었는데 바로 실내오염 문제였다. 고대 역사에서 야금술은 새로운 오염물질을 등장시켰다. 금속을 제련하는 과정에서 나오는 유독성 연기는 때로 육지와 바다를 건너 멀리까지 확산되곤 했는데, 이는 대기오염이 지역적 규모로 확대되기 시작했음을 보여주는 최초의 증거였다. 지중해를 중심으로 했던 고대 세계에서는 채광과 제련이 경제에서 아주 중요한 몫을 했다. 스웨덴과 스위스의 만년습지에서 수집한 지층자료와 그린란드의 빙하에서 채취한 얼음코어에서는 로마 시대의 납 농도가 그 이전보다 10배 더 높게 나타났다.



그린란드의 얼음코어 자료는 산업혁명 이전 대기 중에 방출된 구리 농도가 두 차례나 크게 증가했음을 보여준다. 한번은 고대 로마 시대에 구리 동전이 사용되었을 때이고 다른 한번은 중국에서 시장기능이 크게 약진했던 송나라 시대(960~1279년)로 경제가 부흥하면서 구리 생산이 비약적으로 증가하던 시대이다. 당시 비효율적인 제련 공정에서 전체 구리 생산량의 약 15% 정도가 대기 중으로 방출되었다. 로마와 송나라 시대에 대기 중으로 방출된 구리의 총량은 1990년대 방출량의 약 10%에 달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1900년 이후의 대기 오염

산업혁명으로 석탄시대가 열리면서 대기오염의 새 역사가 시작되었다. 19세기 후반 두 번째 산업 혁명이 진행되면서 철강, 제강, 화학공업이 주역을 담당했다. 그리하여 석탄의 수요는 더욱 늘어났다. 1910년대와 1920년대에는 유럽과 북아메리카의 도시들에 석탄 연소로 생산되는 전기가 공급되었다. 이 모든 지역에는 매연, 검댕, 아황산가스가 공장과 도시 주변을 마치 담요로 감싸듯이 에워쌌다. 석탄과 함께 20세기 대기오염의 두 번째 중요한 요인은 자동차의 등장이다. 대기오염의 역사는 산업화와 '자동차 보급'의 역사를 따랐다. 1990년에는 도로교통이 '전 세계적으로 가장 중요한 대기 오염원'으로 간주되기에 이르렀다. 전 세계 총 자동차 대수는 1910년까지는 100만 대 미만이었다가 1930년에 500만 대에 이르렀고, 1955년에는 1억 대를 넘어섰으며 1985년에 다시 5억 대를 돌파했다. 1995년에는 승용차, 버스, 트럭 등 모두 합쳐서 7억 7700만 대에 이르렀다.



산업화와 자동차 보급이 20세기 전 기간 동안 급속히 진행되었지만 선진국에서의 대기 오염도는 전보다 개선되기 시작했다. 특히 1945~1980년에 대기질이 눈에 띄게 개선되었다. 그 이유로 경제적 정치적 지리적 원인 등 세 가지를 꼽을 수 있다. 첫째, 경제적 원인으로 1920년 이후부터 전 세계적으로 연료 사용의 다변화가 점차 청정 연료를 선호하는 방향으로 진행되었다. 둘째로 환경오염에 반대하는 정치적 반응이 그 효과를 나타내기 시작했다. 정치적 압력이 환경오염을 통제하기 시작했고, 법률적 규제와 기술적 수단이 동시에 도입되면서 그 효과는 더욱 증대되었다. 이런 규제는 미국에서는 주로 1966년부터, 서유럽과 일본은 1970년대, 한국에서는 1980년대에 크게 진작되었고 동유럽권에서는 1990년대에서야 시작되었다. 셋째로 지리적인 변화 역시 환경오염을 감소시키는 데 일조했다. 에너지집약적인 중공업은 오래전부터 철광석과 석탄을 공급할 수 있는 광산근처에서 발달했는데, 1960년대 이후로 세계 전역으로 서서히 퍼지게 되었다. 게다가 새로 들어서는 중공업 단지들은 도시를 더나 별도의 산업단지나, '녹색지대'에 들어서게 되었다. 그리하여 대기오염에 노출되는 사람들의 수가 급격히 줄어들게 된 것이다. 물론 이런 공장배치는 전체 오염물질 방출에는 별 효과가 없었지만 도시 거주자들에게는 환경오염 감소 효과가 있었다.



지역적 범지구적 대기 오염의 역사

지역적 대기 오염 문제는 공기 중에 며칠 또는 몇 주일 동안 머무를 만큼 대기오염물질을 다량 방출하는 중공업으로 인해 비롯되었다. 중공업단지는 19세기 말부터 국가 정책 혹은 석탄과 광물과 시장의 요구가 서로 결합해서 조성되었다. 이런 거대한 산업단지들은 적어도 1975년까지는 20세기 경제 성장의 주동력으로 칭송받았으나 아황산가스, 분진, 질소산화물 등 엄청난 양의 대기오염 물질을 방출했다.



독일 루르 지방은 면적이 약 1500㎢로 산업 중심지로서는 비교적 좁은 편이다. 하지만 그 아래 지하에는 세계에서 가장 큰 규모의 석탄층이 길게 이어져 라인 강 동쪽 지역까지 뻗쳐있다. 1850년에 루르는 평화로운 농촌마을이었지만 1910년에 1억 1000만 톤의 황 농도가 높은 석탄을 생산했고 40만 명의 노동자를 고용하는 광산지대가 되었다. 이곳에는 독일 군산복합체로 대단히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크루프 사와 티엔 사가 위치했다. 당시 독일은 중공업이 매우 중요했기 때문에 정부 규제가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으며, 매연 검댕 아황산가스 같은 엄청난 대기 오염이 발생했다. 루르 지방의 중공업이 없었다면 독일은 아예 제1차 세계대전을 일으킬 마음도 못 먹었을 것이다.



이 지역 대기 오염의 심각성을 보여주는 사건이 있었는데 1923년 초 패전 후 독일이 보상금을 제대로 지급하지 못하자 프랑스와 벨기에 군대가 루르지방을 점령하게 되었다. 곧 파업이 일어났고 이 지방의 공장들이 모두 문을 닫게 되었다. 그러자 갑자기 청명한 하늘이 나타났다. 이 일대 농작물 수확이 50% 더 증가했고 나무들 역시 잘 자랐다. 하지만 파업 때문에 프랑스는 원하던 석탄을 얻을 수 없었고 독일 정부는 화폐 남발로 마르크 가치가 크게 하락해 두 나라는 오랜 협상 끝에 파업을 종결시켰다. 아울러 대기 오염에 대한 공식적인 조사도 이루어졌다. 하지만 기업의 이익과 일자리 확보가 더 시급했기 때문에 오염방지책은 별 효과를 거두지 못했다. 그런데 1961년 빌리 브란트가 독일 수상 선거에 나서면서 루르의 하늘이 다시 맑아져야 한다고 공언한 것을 계기로 루르의 대기 오염 문제가 다시 정치 문제로 발전했다. 브란트는 이 선거에서 패배했지만 1960년대부터 효과적인 매연 규제 대책들이 세워졌다. 루르 지방은 이후 30년 동안 지속적인 대기질 개선을 이룩했다.



기후 변화와 성층권의 오존 문제

20세기 인간의 활동은 대기권에 온실기체의 양을 늘리고 성층권 오존 농도를 감소시켰다. 1930~1931년 토마스 미즐리가 프레온을 발명했다. 프레온은 최초로 만들어진 염화불화탄소류(CFCs) 화합물로서 매우 다양한 용도로 쓰이며 냉장고의 냉매와 분사 추진제로 탁월한 효과를 발휘한다. CFCs를 비롯한 할로젠화탄소 화합물은 대단히 안정적이어서 그 무엇과도 반응하지 않는다. 이 속성 때문에 대기 중으로 방출되는 경우 쉽게 분해되지 않고 성층권에까지 이른다. 그곳에서 강력한 햇빛과 반응하여 마침내 부서지게 되는데 그 분해산물이 다시 오존 분자에 작용해 분자구조를 깨뜨리게 된다.



대기 중으로 방출되는 CFCs의 양은 1930~1940년대에는 소량에 그쳐 1950년까지는 연간 2만 톤 정도로 추정된다. 그러나 1970년에는 75만 톤이나 방출되었다. 이후 1985년에 영국의 파먼은 남극대륙 상공에서 오존층이 실제로 파괴되고 있음을 증거로 보여주었다. 오존층 파괴의 증거가 속속 발견되면서 국제사회는 이례적으로 발빠른 대처에 나섰는데, UV-B복사량이 증가했을 때 예상되는 피해에 대한 우려가 매우 컸기 때문이다. 1985년 유엔환경계획(UNEP)은 오존층 보호를 위해 빈협약을 채택했다. 이 협약은 1987년 몬트리올 의정서로 발전했으며, 이어 1990년(런던), 1993년(코펜하겐), 1995년(빈)에 각각 개정 재개정되었다.

전문 열람 제한

미가입 상태이므로 요약본의 일부만 제공됩니다.
더 깊이 있는 내일의 통찰력과 지식 에너지를
프리미엄 무제한 이용권으로 충전해 보세요!

멤버십 가입 / 결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