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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의 자화상 드라마

이영미 지음 | 생각의나무
한국인의 자화상 드라마

이영미 지음

생각의나무 / 2008년 10월 / 209쪽 / 6,800원



순정과 죽음: <가을동화> 그리고 조성모



왜 <가을동화>인가?


〈가을동화〉가 한창 인기를 끌던 무렵 학생들에게 이 드라마에 대한 의견을 묻곤 했는데, 20대 초반인 학생들은"얘기는 정말 뻔하고 현실성도 없어요. 꼭 순정만화 같아요. 그런데 재미있어요"라고들 대답했다. 〈가을동화〉에서 주목할 만한 것은 그 뻔한 발상과 구도가 1990년대 들어서서는 거의 사라지는 듯했다가 최근 몇 년 사이에 다시 부활한 형태라는 점이다. 여기에 덧붙여, 이 작품이 10, 20대 수용자를 넘어서서 중년여성들을 흡수할 수 있었던 근거에 대해서도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고 보인다. 늘 똑같아 보이고 뻔해 보이는 대중예술 속의 사랑이야기도 엄밀히 따져보면 조금씩 달라지는데, 바로 그러한 변화의 밑바닥에는 대중들의 사회심리, 세상과 인간을 바라보는 태도의 변화가 놓여 있다.

1990년대의 변화와 '순수한 사랑' 이데올로기의 부침(浮沈)

1990년대 대중예술은, 그 이전까지 지속되어온 순정에 대한 의심으로부터 시작되었다. 후기산업사회 대도시의 삶은, 사람들로 하여금 순정이나 순수하고 영원한 사랑이라는 태도를 지니기 힘들게 만들었다. 1990년대의 새로운 생각들이 지닌 과감함은, 1970, 1980년대 내내 축적하여 1990년대에 꽃피기 시작한 정치 경제적 여유의 뒷받침이 없으면 가능하지 않았던 것이다. 이러한 여유로움을 태도 사고방식의 변화로 가장 먼저 드러낸 세대는 청소년 세대였고, 다른 세대로까지 확산되어갔다. 그런데 이렇게 꽃피기 시작한 1990년대의 여유로움은 1997년의 경기침체로 설 기반을 잃어버린다. 1997년의 경제침체는 사회 전체에서 전복적 사고를 가능하게 하는 여유를 제거했고, 대중들은 다시 이전의 인간다움의 따뜻함으로 되돌아가고 싶어했다. 사람들 마음속에서 완전히 사라지지 않고 남아 있는 순수한 사랑이라는 관념과 그에 대한 욕구가, 이제 다시 살아날 조건을 얻은 것이다. 1990년대 말부터의 멜로물의 부활, 순수하고 순정적인 사랑의 부활은 이러한 맥락 속에 있다.



<가을동화>가 여러 세대의 지지를 얻을 수 있는 이유

<가을동화>에 대한 중년층의 예상치 못한 호응은 <가을동화>의 선택이 우연히 40대 중장년 주부층들에게 꽤 친근한 방향으로 이루어졌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남녀 간의 사랑보다 더 강력한 부모자식간의 사랑이라는 소재로, 현대적 질감을 가미함으로써, 신파성의 위력이 확연히 깨져가는 이 시대에 신파적 갈등을 구사하면서도 그다지 반감을 일으키지 않을 수 있었다. 또한, 순수한 사랑이라는 설정 자체가 청년문화 세대인 40대들에게는 익숙한 것이라는 점도 지적할 만하다. 게다가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여러 배경과 소품들, 서정적 화면 속에서 연약한 여주인공과 서정적 어투로 느리게 빚어지는 사건들은 1970년대 <러브스토리>열병에 감염된 적이 있는 중년 주부층들에게 충분히 호소력 있을 수 있다. 이 작품의 흥행 성공으로 <가을동화>를 전범으로 삼은 작품은 계속 양산되었다. 그리고 그것은 2002, 2003년 즈음에 현격하게 줄어들었다.



야망과 불황: 야망의 콩쥐팥쥐형 드라마에 비친 우리 사회의 자화상



'야망의 콩쥐팥쥐형' 드라마의 특성과 그 세계인식


이 글에서 분석하고자 하는 것은 1990년대 말부터 인기를 얻기 시작하여 2000년대 초에 전성기의 모습을 보였던, 선한 여자와 악한 여자와 일과 사랑을 놓고 치열한 경쟁을 벌이는 드라마이다. 설명의 편의를 위해 '야망의 콩쥐팥쥐형'이라고 부르고자 한다. 동년배 혹은 자매인 두 여자의 선악구도가 분명한 반면, 두 여주인공 모두 일과 사랑의 성취에 있어서 강한 야망과 적극적인 행동을 주저하지 않는다. 이 유형에 해당하는 작품으로는〈미스터 큐〉, 〈토마토〉, 〈이브의 모든 것〉, 〈진실〉, 〈비밀〉, 〈귀여운 여인〉 등을 들 수 있는데, 이 유형과 몇몇 중요 특성을 공유하는 작품으로는〈신데렐라〉로부터 〈덕이〉나 〈태양은 가득히〉에 이르기까지 상당히 많다고 할 수 있다.



경제불황의 절망감과 극단적 야망

1990년대 신세대문화의 상승하던 기류는, 1997년 경제불황이 확연해지면서 1990년대 초반의 작품경향으로부터 결별하는 모습을 보이기 시작한다. 대중가요계는 서정적인 발라드가 부활하기 시작했으며, 영화계에서 비현실적 비일상적 공간에서 시공을 초월한 순정적 사랑의 서정성이 부활하고(〈접속〉, 〈편지〉등), 〈친구〉에서 확인되듯 폭압적인 학창시절이나 폭력조직의 가학 피학을 함께 겪는 남성적 우정과 힘에 대한 그리움이 강하게 드러난다. 1990년대 초중반과 달리 먹고사는 문제가 다시 절박한 문제로 다가왔고, 따라서 1990년대 젊은 세대들이 보여준 변화의 바람을 수용할 만한 여유가 생기지 않는 사회 분위기가 만들어진 것이다. 대중들은 이전에 의심하고 부정했던 순정적 사랑이나 인간적 의리에 기대어 위로받으며 감상적이나마 눈물로 삶의 불안함을 해소하고 싶어진 것이다.



1997년 이후 잘 먹고 잘 살고 싶은 욕망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상대방을 찍어 누르지 않으면 안 되며, 그것을 위해서는 악마에게 영혼이라도 팔고 싶다는 극단적인 약육강식의 생존경쟁의 태도와 이런 세상으로부터 난자당한 마음의 상처들이, 바로 '야망의 콩쥐팥쥐형'으로 주조되어 드러나는 것이다. 흥미로운 것은 이 '야망의 콩쥐팥쥐형' 드라마와 같은 시기에 또 한 유형의 드라마가 함께 유행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바로〈육남매〉로 본격화되어 〈국희〉, 〈덕이〉로 이어지고 있는, 몇 십 년 전을 배경으로 하여 '가난했지만 희망을 잃지 않았다'는 상투적 명제에 꼭 들어맞는 내용으로 만들어진 작품들이 그것이다. 말하자면 '이렇게 어려운 시절을 거쳐왔는데 이 정도 고생에서 주저앉을 수 없다'는 의지와 희망을 불러일으키면서 그래도 지금보다 따뜻한 인간적 믿음에 위로받는 효과를 발휘하는 것에 비해, '야망의 콩쥐팥쥐형'은 살벌한 현재 자신들이 갖고 있는 각박한 경쟁적 삶과 승리 강박증, 불가능한 꿈에 대한 순정만화적 상상력의 소산이라고 보인다.



어쩌면 경제불황의 팍팍한 생활이, 대중들이 좀더 성숙하게 삶을 성찰하고 느낄 여유를 가질 수 없도록 하여 순정만화 같은 단순함으로 대중을 몰아넣은 것일 수도 있다. 이 경향에 뒤를 이은〈여인천하〉, 〈대장금〉등의 사극 역시 '야망의 콩쥐팥쥐형'의 핵심이었던 극단적인 서바이벌게임과 정치 9단들이 벌이는 지략싸움이 정치판이라는 배경 속에서 확대 재생산되고 있는 것이어서, 그 착잡함은 더하다. 만화처럼 유치한 상투적 드라마라고 한마디로 정리하고 머릿속에서 치워버리면 마음은 편안해질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수많은 수용자 대중들이 바로 이런 현실 속에서 이런 드라마에 공감하고 있으며, 그것이 이러한 드라마를 평가에 앞서 차분히 설명해내야 하는 이유다.



역사와 희생: 김종학류 퓨전사극의 특성과 대중예술사적 위상



퓨전사극과 젊은 여성시청자


퓨전사극이란 신조어는 〈대장금〉 등의 유행과 더불어 쓰이기 시작했다. 최근 몇몇 퓨전사극에서 새로운 현상이 나타나는 것은 주목할 만한 현상이다. 예컨대, 여태까지 사극을 싫어하던 젊은 여성시청자들이〈대망〉, 〈다모〉나 〈해신〉같은 드라마를 열렬히 즐기는 양상은 매우 새롭다. 또한 그간 사극을 열렬히 시청하던 중 노년 남성시청자들이, 이들 김종학류 퓨전사극에서 젊은 여성시청자들이 열렬히 좋아하는 요소들을 그다지 편안해하지 않는다는 점도 흥미로운 지점이다.



김종학류 퓨전사극의 몇 가지 특성

① 남성 해설자의 소멸 - 남성 해설자의 해설이 사라졌다는 것은, 김종학류 퓨전사극의 중심이 역사적 사건 자체가 아니라 그 속을 살아가는 인물이라는 의미이다. 특히 그 역사적 배경은 사실이 아니어도 되고 그저 복잡한 권력관계가 얽혀 있는 난세로 나타날 뿐이라는 점에서, 더더욱 역사적 근거를 강조하는 해설과는 어울릴 수 없는 것이다. ② 정치를 압도하는 애정 갈등 - 김종학류 퓨전사극에서는 인물들의 사적 갈등, 즉 혈연과 애정관계 등의 문제가 작품 전체를 이끌어가는 매우 중요한 힘으로 작용한다. 전반적으로 애정갈등이 인물들을 압도함으로써, 작품은 역사와 정치의 소용돌이 속에서 희생당하는 안타까운 사랑이라는 느낌을 강하게 준다. ③ 사건전개를 멈추는 액션과 서정적 대사 - 이 특성은 사건이 흘러가는 중간 중간에, 액션이나 탐미적인 아름다운 정경 등 볼거리 강한 화면이 배치되거나 혹은 서정적 대사가 배치된다. 김종학류 퓨전사극은 다른 사극에 비해 이러한 특성이 훨씬 강화되어 드러난다. ④ 비극적 액션장면과 서정적 음악 - 김종학류의 두드러진 특성 중의 하나라고 할 만하다. 대개의 사극에서는 대미를 장식하는 장면에서나 쓸 법한 이러한 장면이 도처에 널려 있다. ⑤ 과장된 비극성과 희극성의 이분화-주인공은 늘 비장하고 비극적이다. 이렇게 주요 인물이 늘 긴장해 있도록 만드는 것, 이것이야말로 김종학류 퓨전사극이 극적 긴장감을 유지하는 방법으로 보인다. 이런 긴장감을 중간 중간에 풀어주는 것은, 희극적 역할을 고정적으로 담당하는 조연급 인물이 전담한다. 김종학류 퓨전사극에서는 이 두 종류의 인간이 극단적인 이분법적으로 확연히 나뉜다.

김종학류 퓨전사극의 위상

김종학류의 퓨전사극의 영향은 적지 않다. 전혀 다른 부류의 사극인 〈불멸의 이순신〉이나 〈서동요〉 등에서도 그 흔적은 남아 있다. 무엇보다도 김종학 퓨전사극은, 피와 음모로 얼룩진 역사의 한복판에서 고통스럽게 살아가는 개인의 내면을 그려내는 하나의 방법을 관습화시켰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그러나 다른 한편 김종학류 퓨전사극은, 정치나 역사의 흐름과 개인의 욕망의 극단적 상충을 설정하고 후자의 희생을 그려냄으로써, 사회와 개인의 상투적 이분법이나 극단적인 정치허무주의에 함몰될 위험성을 늘 지니고 있다. 심지어 개인의 가슴 아픈 사랑을 두드러지게 하기 위해, 역사와 정치 같은 공적 영역은 늘 악한 역할만을 수행하도록 만드는 감도 크다. 이유야 어쨌건 이러한 설정은 결국 역사는 개인을 짓밟는 비정한 권력욕에 의해 이끌어지도록 되어 있고, 개인들은 늘 그 속에서 희생자일 수밖에 없으며 결국 부도덕조차도 어쩔 수 없는 것이라는 태도로 이끌게 되는 것이다.

시대와 여배우: 전옥에서 하지원까지, 그러면 윤은혜는?



철부지 악동 혹은 백치 같은 순수함: 안인숙적 인물형


1970년대 청년문화는 여성인물형에도 큰 변화를 초래했다. 모든 고난을 참고 견디는 현모양처형(전옥적 인물형), 국가와 가문을 재건하는 건실한 맏며느리형(최은희적 인물형)은, 기성세대와 자신을 뚜렷이 구별하고자 하는 욕망을 드러냈던 새로운 전후세대들에게는 전혀 매력적인 인물이 아니었다. 영화계에서 청년문화 세대의 시대가 개막되었음을 알린 이장호의〈별들의 고향〉, 김호선의 〈영자의 전성시대〉, 하길종의 〈바보들의 행진〉 등이 하나같이 전혀 의외의 여배우들을 자신의 여주인공으로 선택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이장호는 아역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던 안인숙을, 김호선은 가난한 조연급의 풋풋함을 지닌 염복순을, 그리고 하길종은 신인 오디션을 통한 대학교 1학년 학생 이영옥을 여주인공으로 선택했다. 소녀적 이미지를 간직하고 있던 안인숙과 그의 복사판인 이영옥은 이전의 여배우들과는 달리, 아이 같은 천진함을 주요한 이미지로 지니고 있었다.



즉 이 청년문화 세대들이 만들어낸 여성상은, 기성세대의 관점으로는 이해되지 않는 때 묻지 않은 아이 같은 순수함을 고스란히 지닌 인물형이다. 철부지이든 아니면 오염될 만큼의 학식과 부유함을 지니고 있지 않아서든 이들은 강하고 부유한 것만이 최고라고 믿는 기성세대들의 눈으로는 이해되지 않거나 그저 노리갯감으로만 여겨지는 존재이다. 바로 그 때문에 그들은 타락한 이 세상에서 상처받고 죽어간다. 너무도 순수해서 혼전임신을 했던〈별들의 고향〉의 경아는 창녀로 전락하여 결국은 눈밭에서 죽어가고, 〈어제 내린 비〉의 여주인공은 애인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기성세대가 남긴 상처 속에서 고통 받는, 애인의 형을 사랑하고 그의 아이를 가짐으로써 애인과 함께 죽게 된다.



깜찍하고 도발적이며, 독하기까지 한: 1990년대의 여성인물형

1990년대의 인물형은 1970년대의 변화보다도 훨씬 더 과감하다. 1990년대에 들어서야 비로소 우리는 직업을 가진 여성이 방송드라마 여성주인공의 주류를 형성하는 시대에 들어서게 된다. 1992년부터 연애와 결혼 이외의 사회적 삶을 지닌 인물이 여성인물형의 태반을 차지하였다. 심지어 신데렐라 인물형을 만들어낸 대표적인 작품이라 할 수 있는〈사랑을 그대 품 안에〉의 신애라조차 청순가련녀의 신데렐라 이야기가 아니라, 오빠한테 소리 빽빽 지르면서 가족을 먹여 살리는 씩씩한 캔디형 여주인공이었다. 2000년대 초반까지 이어져온 이른바 '캔디렐라'인물형의 시작이었던 것이다. 여성의 학력수준과 사회적 지위가 향상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청순가련형 애인과 전업주부, 성매매여성의 테두리를 벗어나지 못했던 1980년대까지의 대중예술 속 여성형은, 과거의 관행과 깨끗이 결별하는 1990년대 신세대들의 새로운 바람을 계기로 비약적인 변화를 갖게 된 것이다.



야망도 절망도 없는 윤은혜적 인물형

〈궁〉, 〈포도밭 그 사나이〉 등의 드라마에서 윤은혜적 인물형은 별다른 야망이 없고 그렇다고 똑 부러진 재주를 지닌 것도 아니다. 그 이전 세대가 그토록 바라던 직업적 성공 같은 것은 그다지 중요한 것 같아 보이지 않는다. 이들은 그다지 바라는 것이 있어 보이지도 않는다. 그들의 바람은 오래 축적되고 길게 지속되는 깊은 그 무엇이 아니라, 매순간 변화하는 다분히 즉흥적인 것이다. 오히려 이들의 바람은 현실에 그다지 물의를 일으키지 않으면서도 그 현실로부터 도망가는 것으로 보이기도 한다. 〈마이 걸〉, 〈풀 하우스〉 등에서도 결국 이상스러운 결혼(위장 결혼을 포함하여)으로 움직이게 만드는 동력은 땡전 한 푼 없고 살 집도 없는 현재의 경제적 상황 때문이다. 이들 여성인물형은 자신의 적극성으로 문제를 타개해나가지 않는다. 심지어 이들의 결혼조차 그러하다.



이러한 인물형은 그 이전 시기의 여성인물형과 매우 다르며, 자아를 채우고 적극성을 고양했던 이전의 변화방향과 비교해보아도 의외인 감이 있다. 이 윤은혜적 인물형은 21세기에 처음 맞은 새로운 여성인물형인 셈이다. 이 윤은혜적 인물형에는 이전 시대 여주인공들이 지닌, 성공을 향한 독기도 없고 '외로워도 슬퍼도' 울지 않는 '캔디'적 강인함도 없다. 그렇다고 1960년대의 여성인물형처럼 잘 참고 견디는 성숙함이 있는 것도 아니다. 자신의 운명은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결정되고, 자신에 의해 벌어지는 일이란 우연히 혹은 충동적으로 이루어지는 것들뿐이다. 심지어 그들은 결정적 상황에서 자신이 처한 상황을 설명하지도 못한다. 논리적으로 설명할 능력이 없어서이다. 그야말로 '대략난감'일 뿐이다. 그러다보니 이들이 만들어내는 삶은 방향성 없이 그저 부산스럽기만 하다.

하지만 이런 삶에 별로 자괴감도 절망도 없다. 이들이 못 견디는 것은 '바로 지금'의 괴로움과 지루함뿐이다. 그래서 이것을 벗어나기 위해 이들은 좌충우돌 방향 없이 움직인다. 하지만 이들 인물형은 남자들에게 그다지 위협적이지 않은 귀여운 인물이며, 어른들이 보기에도 그저 이해할 수가 없을 뿐 기존의 질서를 심각하게 뒤흔들 것으로 보이지 않는 인물형이다. 세상과 부딪칠 자신도 없고 그럴 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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