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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무 : 내 남자 내 마음대로 길들이는 행복한 조련법

에이미 서덜랜드 지음 | 물푸레
샤무 : 내 남자 내 맘대로 길들이는 행복한 조련법

에이미 서덜랜드 지음

물푸레 / 2008년 11월 / 275쪽 / 12,000원



인간이 동물이라는 걸 기억하기




주방 싱크대 앞에서 설거지를 하고 있을 때, 등 뒤로 왔다 갔다 하는 남편의 기척이 느껴졌다. "내 자동차 열쇠 못 봤어?" 출근시간에 쫓기는 남편의 음성에서는 이미 짜증이 덕지덕지 묻어났다. 예전의 나였다면 잽싸게 수돗물을 잠그고, 남편의 뒤를 쫓아 함께 돌아다니며 열쇠를 찾아 함께 눈에 불을 켰겠지. 가끔은 마누라답게 잔소리를 하기도 하고, 내 기분이 안 좋을 때는 쏘아붙이기도 했다. 내 대응이 어떻든 남편 스콧은 대개의 경우 더 신경질적이 되었고, 열쇠를 못 찾는 사소한 일 따위가 곧 공포영화의 한 장면으로 이어지는 빌미가 되곤 했다. 그러나 지금의 나는 접시를 닦는 데에만 몰두한다. 고개도 돌리지 않는다. 한마디도 말하지 않는다. 돌고래 조련사에게 배운 조련법을 동원하는 중이다. "무시하기."



이런 사소하고도 짜증스런 일로 별거나 이혼까지 생각하지는 않았지만, 남편을 향한 사랑이 무뎌진 것만은 확실하다. 그리하여 나는 나름대로의 남편 길들이기 전투에 나섰다. 물론 내가 선택한 무기는 가장 손쉽게 동원할 수 있는 '잔소리'였다. 하지만 내가 잔소리를 하면 할수록 내가 바랐던 것과는 정반대의 결과가 나타났다. 애교 띤 목소리로 얼러보기도 하고, 로봇같이 무덤덤한 말투로 부탁하기도 했다. 하지만 온갖 방법이 실패로 돌아가자 나는 그만 미칠 것만 같았고 급기야 소리를 지르고 부부싸움을 했다. 그리고 한번 시작된 부부싸움은 차츰 그 빈도가 잦아졌다. 결혼생활을 순조롭게 해보려고 전문상담소를 찾아갔지만, 상담자는 뭔가를 메모지에 적기만 했을 뿐, 우리의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지는 못했다.



그러다가 내 인생 최대의 마법 같은 일이 벌어졌다. '동물조련사'란 기상천외(?)의 방법을 발견한 것이다. 우리는 우리집 애완견인 목축견 딕시를 위해 애견훈련소를 찾았다. 운 좋게도 우리가 만난 조련사는 진보적이고 긍정적인 훈련기법을 이용했다. 내가 예상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철학에 기초한 방법이었다. 우리는 그곳에서 개들을 쥐고 흔들어 인간에게 순종적으로 만드는 방법이 아니라, 인간이 개와 의사소통을 하고 협조하는 방법을 배웠다. 조련사는 우리에게 개를 앉게 하는 방법이 아니라, 개를 동반자로 생각하게 하는 방법을 가르쳤다. 언제 그런 생각이 들었는지 꼬집어 말할 순 없지만, 조련사들이 개 원숭이 돌고래를 대상으로 좋은 성과를 얻는다면 그 방법을 종(種)이 다를 뿐이지 동물이기에는 매한가지인 인간에게 적용하지 못할 이유가 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동물조련 실습장에서 배운 내용을 가정생활에 적용하기 시작했다. 우선 먼저 남편이 짜증나는 행동을 하면, '이럴 때 동물조련사라면 어떻게 반응할까?'라는 생각을 했다. 어쩌다 식구들이나 친구와 의견충돌이 생겼을 때에도 그렇게 했다. 상점 점원이나 우체국 직원이 뻣뻣하게 굴어도 마찬가지였다. 남편과 친구들에게 얌전히 앉아 있도록 가르쳤느냐고 묻는다면 그 답은 '물론 아니다'이다. 하지만 내 목적은 사람들을 내 뜻대로 움직이게 하는 게 결코 아니었다. 내 하루하루를 더 좋은 관계로 채우려는 게 내가 지닌 진정한 목적이었다. 나는 그 시도를 통해서 결국 분명한 교훈을 얻었다는 점을 먼저 강조하고 싶다. 나는 남편을 비롯하여 나를 힘들게 하는 모든 사람들을 잘 참고 봐주는 법을 배웠다는 것이 그것이다. 그것은 그 흔한 자기 계발에 관한 도서를 읽거나 심리치료사와 상담을 해도 얻지 못할 교훈이었다. 만약 그런 지혜의 말을 상담자로부터 듣거나 책에서 읽었다면 '됐거든요'라면서 나는 계속 주변의 누군가를 답답해했을 것이다.



이제 나는 남편이 안달복달하며 열쇠를 찾을 때에도 나 자신에게 이렇게 묻는다. '돌고래 조련사라면 이럴 때 어떻게 할까?'그 물음에 대한 대답은 '무시한다'이다. 경험 많고 현명한 돌고래 조련사일수록 돌고래의 마음에 드는 행동에는 상을 주고, 탐탁지 않은 행동은 무시한다. 나도 지금 탐탁지 않은 스콧의 행동(열쇠를 못 찾아 성질을 내는)을 무시하고 있다. 오히려 입을 꼭 다물고 설거지를 계속한다. 이윽고 사방이 조용해진다. 잠시 후 스콧이 주방으로 들어와 손에 든 열쇠를 흔들어 보이며 차분해진 목소리로 말한다. "찾았어"라고. 나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그래요. 잘 다녀와요"라고 말한다. 더 이상의 소동을 피했으니, 스콧에게 고등어 한 마리를 던져줘야 될 것 같다. 그리고 잘 참으며 조련사의 방식을 고수함으로써 상황이 나빠지는 것을 막은 나한테도 한 마리를!



내가 원하는 대로 '샤무'하려면



나의 결혼생활 속에서 짜증 충돌 불화를 솎아내는 대신 이해 배려 존중으로 채우기 위해 동물조련기법을 적용했다는 칼럼이 발표되자, 뭇 남성들로부터 항의성 메일이 빗발쳤다. 그들 대부분은 남편을 '동물'에 비유함으로써 모욕하였을 뿐 아니라, 남편을 내 마음대로 조종하려 한다고 나를 비난했다. 그 때문에 혼쭐이나기는 했지만 나는 여전히 조련사들에게 의지한다. 특히 '어떤 상호작용도 조련이다'는 격언을 염두에 두고 있다. 그 말을 해석해보면, 어떤 형식으로든 동물과 접촉-먹이를 주거나 말을 걸거나 우리 앞을 지나가는 등-할 때마다 우리는 알게 모르게 그 동물을 가르치게 된다는 뜻이다. 동물을 쳐다보는 것만으로도 의도하지 않은 훈련이 될 수도 있다. 동물은 끊임없이 환경으로부터 배우며, 우리가 그 환경의 일부라면 동물은 우리와 우리의 행동에서 한두 가지를 배우게 된다. 동물들은 매우 빨리 배우기 때문에 조련사들은 특히 유의해야 한다. 무심코 소리치거나 적당치 않을 때 상을 남발하면, 동물은 예기치 못한 행동을 한다.



동물들은 의도하지 않은 가운데에서도 조련될 수 있다. 최대한 야생상태를 보존하여 두려고 조련을 피하는 구식 동물원에서조차도 동물들은 여러 가지의 행동을 배운다. 사육사가 아침마다 같은 시간에 같은 장소에 먹이를 놔주면, 동물들은 오전 8시가 되면 물통 옆에 아침상이 차려진다는 사실을 익히고, 수의사가 나타나면 피하는 게 상책이라는 것도 재빨리 배운다. 조련사들은 말한다. "왜 동물들에게 제대로 가르치지 않아요? 왜 우연히 아무렇게나 배우도록 내버려둡니까?" 나는 사람에 대해서도 같은 질문을 해보았다. 우리는 상대방의 행동을 바꾸려고 애쓰느라 긴 시간을 보낸다. 앞차에 바싹 붙어서 갈 때면 앞차가 속도를 더 내거나 길을 비켜주기를 바란다. 또 모범적인 행동을 할 때, 예컨대 재활용 쓰레기를 완벽하게 분류하거나 잔디밭을 가꿀 때에는 이웃도 본받기를 바란다. 사람에 따라 직접적이거나 간접적이고, 공손하거나 불손하다는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목적은 결국 같다.

살면서 무의식적으로 나는 남편을, 남편은 나를 조련했다. 내 방식은 잔소리, 가끔 타협안 제시하기, 애걸하기, 비아냥대기였다. 개인적으로 가장 선호하는 방식은 무시하기였고, 남편의 방식은 듣지 않기, 가끔 으름장 놓기, 선포하기, 여전히 못들은 체하기였다. 하지만 우리는 그런 방식을 통해서는 원하는 결과를 얻지 못했다. 그러다가 나는 우연히 스콧에게 정원손질 이야기가 나오면 욕실로 피하는 것이 상책이라는 것을 가르쳤다. 우리 두 사람은 자신의 배우자에 대한 조련술이 썩 훌륭하진 않지만, 한 가지 조련술만 아는 옛날 서커스단의 조련사들처럼 밀고나갔다. 각자 부정적인 방식으로. 친구 친척 동료까지는 그만두고라도, 남편을 변화시키려 하면서 나는 왜 의식적인 방법을 쓰지 않았을까? 효과적인 방식까지는 생각지 못했다 하더라도 말이다. 왜 진보적인 조련사들처럼 생각하지 않았을까? 우연에 기댈 것이 아니라 분명한 목적을 가지고 남편의 행동을 변화시키려 했다면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었을 텐데. 목적을 세운 조련사들의 방식은 이렇다. 우선 조련하고 싶은 행동을 고르고, 그 다음 목적달성을 위한 단계별 계획을 세운다. 좌우지간 조련사처럼 계획이 있든 없든, 몇 가지 목표를 정할 필요는 있었다. 무턱대고 지속할 게 아니라 원하는 바와 원치 않는 바를 확실히 구별지어 생각해야 했다. 예컨대 전에는 바다사자에게 공을 던져놓고 어떻게 되는지 보자는 식이었지만, 바다사자의 코에 몇 초 간 공을 올려놓자면, 그보다는 훨씬 의도적인 조련이 필요했다.



'조련'이 오늘날까지 먼 길을 왔건만, 아쉽게도 구시대적 이미지는 여전히 사람들의 머릿속에 남아있다. 대다수의 사람들이 '조련'이라고 하면 옛날의 전형적인 방식을 떠올린다. 전통적인 조련에서는, 동물을 인간의 명령에 따라 움직이게 만드는 것이 그 주된 목표였다. 동물을 때리면서 누가 주인인지를 가르쳤고, 그런 방식이 사람들에게 '조련'이라는 낱말을 부정적으로 생각하게 했다. 하지만 진보적인 조련사들은 근본적으로 그와는 정반대의 접근법을 취한다. 그들은 조련을 대상 동물과의 '의사소통'이라고 생각한다. 길들이기보다는, 가르치려고 노력한다. 동물들에게 무엇을 하게 만들지 않고, 하도록 유도한다. 그들의 목표는 동물이 복종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참여하게 하는 것이다. 그들은 동물이 조련을 좋아하기를 바란다. 목을 조르거나 때리는 짓은 결코 하지 않고 심한 경우 '안 돼'라는 말조차 사용하지 않는 조련사도 있다. 그들은 처벌이 아닌 상으로만 동기를 준다. 개에게 앉으라고 신호를 보낸다. 개가 그 신호에 따라 엉덩이를 바닥에 대면, 상을 받는다. 앉지 않아도 벌은 없다. 다만 간식을 못 먹을 뿐이다. 조련사들은 상을 주는 기법을 통해, 이전에는 조련이 불가능했던 동물들이 불가능했던 행동들을 할 수 있도록 가르쳤다.



내가 잔소리를 그만 둔 이유



난 잔소리쟁이였다. 가끔은 기발한 말로 돌려치기는 해도, 어쨌든 지독한 잔소리쟁이였다. 잔소리를 하다 보면 그것이 나로 하여금 남편에게 더 발끈하게 만드는 상승작용을 하기도 했다. 그는 내가 몹시 징징대고 불평을 터뜨려야만 내가 원하는 대로했다. 그러다가 나는 동물조련사들은 그럴 때 어떻게 하는지 아니, 하지 않는지 알게 되었다. 조련사들은 잔소리로 바다사자를 인사하게 만들지 않았고, 개코원숭이에게 꾸짖음으로 몸을 돌리게 만들지 않았다. 진보적인 조련사들은 조련대상동물로부터 원하는 행동이 나오면 보상을 했고, 원하지 않는 행동이 나오면 무시했다. 후자도 전자만큼 중요하다. 이런 개혁적인 접근법은 해양포유동물조련사들에서부터 시작되었다. 그들은 철저히 그 방법만을 사용하여 동물들을 조련한다.



하버드대의 심리학자 B.F. 스키너는 1930년대에 내놓은 조작적 조건화 이론에서 행동은 결과에 영향을 받는다는 것을 실험을 통해 보여주었다. 좋은 결과는 그 결과를 있게 한 행위를 부추겨서, 그것을 반복하게 만든다. 비둘기가 피아노 건반을 부리로 쫄 때마다 모이가 나타난다면, 비둘기는 그 모이를 먹기 위해 계속 건반을 누를 것이다. 모든 피조물들이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얻기 위한 동작을 반복할 것이라는 것은 빤한 이야기 같지만, 스키너는 그것을 인간을 포함한 모든 동물이 학습하는 근본적인 방식임을 과학적으로 증명했다. 긍정적인 보상은 여러 이유로 처벌보다 더 효과적이다.



처벌이 효과를 내지 못하는 것은 처벌을 너무 즐겨 사용하기 때문이다. 우리 인간들은 툭하면 처벌부터 생각한다. 우리는 너무 헐렁하게, 너무 무심하게, 너무 게으르게, 너무 상투적으로 벌을 준다. 또 벌을 과다하게 주는 경우도 빈번하다. 벌을 주는 이유를 명확하게 설명하지 못하기도 한다. 엉뚱한 때에 벌을 주는 경우도 많다. 잘못이 저질러지고 너무 오랜 시간이 경과된 뒤에 처벌을 가하고, 심지어는 상대가 칭찬받아 마땅한 일을 하는데도 지난 일에 대하 벌을 준다. 어쩌면 우리는 꾸짖는 행위 자체에는 전혀 관심이 없을지 모른다. 오직 복수하려고 처벌을 가할 꼬투리를 찾는지도 모른다. 누군가가 싫거나 그 사람보다 우위에 서려는 이유 때문에 그러기도 한다. 내가 만난 진보적인 조련사들은 결코 동물들에게 군림하려 하지 않았다. 그들은 그럴 필요를 느끼지 않는다. 그들은 동물과의 협력관계를 원하고, 누가 명령을 하고 누가 명령을 받는가 하는 것과는 관계없이 강화라는 원칙이 효과를 발휘한다는 것을 철칙으로 알고 있다.



조련학교에서 퓨마를 다루는 마라 로드리게즈는 어깨를 펴고 꼿꼿이 걷는다. 우두머리처럼 보이기 위해서가 아니라 먹잇감으로 보이지 않기 위해서이다. 그녀는 퓨마의 무례한 짓을 참아주지 않는다. 봐주고 넘어가 버릇하면 퓨마는 그녀를 차츰 저녁밥으로 보기 시작할 테니까. 하지만 그녀는 퓨마가 뭔가 제대로 할 때, 또 뭔가 가르치고 싶을 때에는 아낌없이 긍정적인 강화법을 쓴다. 우리는 매를 아끼면 아이를 망치게 된다고 걱정한다. 우리는 기강이 해답이라고 확신하기 때문에 기강이 제대로 서지 않았다고 생각되면 묘하게도 상황을 과장해서 언성을 높이고, 자녀에게 더 긴 외출금지령을 내리고, 배우자와 1주일을 지나 2~3주일씩 말을 하지 않고, 종업원의 급여를 깎고 싶은 본능을 느낀다. 긍정적인 강화로 조련하는 조련사들은 그런 충동을 극복해야 한다.



사람들은 상대방이 원치 않는 행동을 할 때 그것을 모르는 척하면서 무시를 해도 결코 난장판이 되는 일이 없다는 사실을 충격적으로 받아들인다. 범고래는 무시당했다 해도 폭동을 일으키지 않는다. 코끼리도 반란을 일으키지 않고, 북극곰도 반항하지 않는다. 원치 않는 행동을 무시하는 것은 절반짜리 비법이다. 나머지 절반은, 원하는 행동을 한 것에 대해서 적절히 보상하는 것이다. 두 가지가 같이 간다. 나는 누군가가 내가 원하는 행동을 하면 그것을 놓치지 않으려고 잘 관찰한다. 어느 날 남편이 집에서 내가 원하는 일(저녁 설거지, 자동치 시동 걸기, 우편물 가져오기)을 많이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전에는 그것을 당연하게 여겼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그런 일에 대해 스콧에 고마워하기 시작했다. 남편이 가득 찬 쓰레기봉투를 내가면 고맙다고 말했다. 그이가 차의 속도를 알맞게 줄이면 또 고맙다고 인사했다. 마찬가지로 그가 더러워진 티셔츠를 빨래바구니에 넣으면, 침실 의자가 그의 옷들로 반쯤 파묻혀 있어도 고맙다고 말했다. 내가 원하는 일에는 보상을 하고, 원치 않는 일은 무시하는 게 요점이었다. 여기저기 시행착오는 있었지만 불평과 비난이 극적으로 줄어들었다. 처음에는 말을 참기가 힘들었지만, 곧 좋은 결과가 나오자 참는 노력에 대한 보상이 되었다. 그리고 내가 뭔가 해달라고 부탁을 하면 그는 더 적극적으로 처리했다. 아내의 말에 귀를 막았던 태도가 기적적으로 개선되었다. 어쩌면 예전에는 가져보지 못했던 새로운 느낌과 방식으로, 그는 나를 신뢰하기 시작했는지도 몰랐다.



긍정적 강화법 사용하기



외래동물조련사들은 무계획하게 먹이를 던져주지 않는다. 조련사들은 이유가 있을 때에만 동물에게 상을 준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긍정적인 강화는 효과를 잃고, 더 나쁜 경우 의도하지 않은 행동을 가르치는 결과가 생길 수도 있다. 조련사가 손에 든 당근은 그저 뾰족한 모양의 주황색 야채일 수도 있고, 우정으로 주는 맛 좋은 간식이 될 수도 있다. 또는 영리하게 쓰면 코뿔소가 지시에 따라 뒷걸음을 칠 수 있게 하는 수단이 될 수도 있다. 그런 이유 때문에 나는 사방팔방에 '천사표'인 체 하지 않았다. 내가 싫어하는 남들의 행동을 무시하는 것만으로도 어느 정도는 더 쾌활해지고 고무되었다. 특히 남편을 대함에 있어서는 더욱 그랬다. 그에게 잔소리를 거의 하지 않게 된 것만 해도 대단하다. 스콧에게는 여전히 애정과 관심이 있었지만, 조련사처럼 그가 내 마음에 드는 구체적인 행동, 즉 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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