둥지 밖의 언어
이상규 지음 | 생각의나무
둥지 밖의 언어
이상규 지음
생각의나무 / 2008년 11월 / 276쪽 / 9,800원
왜 언어 다양성이 중요한가
1. 언어 지배와 공존1927년 프랑스 식민 통치 아래에 있었던 아프리카의 코트디부아르 출신인 아마두 쿠루마(Ahmadou Kourouma)가 쓰고 유정애가 번역한 소설 『열두 살 소령』(미래인, 2008)에 보면 아프리카의 코트디부아르의 한 마을에 밤바라족과 말랑케족, 그리고 그 옛날 토착민들이 프랑스의 지배 아래 살면서 그들의 원활한 의사소통을 위해서 네 가지의 사전을 사용하는 소통의 질서를 이야기하고 있다. 이 소설은 식민 지배의 언어 침탈에 대한 고발과 지배자의 언어와 토착민의 언어 갈등과 또 종교의 충돌을 통해 망가져 가는 12살짜리 주인공의 처참한 삶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지난 15세기 이후 서구 유럽의 강국을 중심으로 피지배 국가나 민족 또는 부족에 대한 언어 지배가 강력하게 진행되어 왔다. 제국의 식민지배는 기호를 지배함으로써 완성된다. 그러나 기호를 지배해 왔던 어떤 제국도 결코 영원하지는 않았음을 우리는 인류역사를 통해 알고 있다. 서방 유럽의 몇몇 국가의 언어가 아프리카와 오스트레일리아, 뉴기니, 아메리카에 살던 수많은 원주민들의 토착 언어를 포식하였다. 지난 세기에 비해 21세기는 언어적 억압을 받는 사람이 기하급수로 증가하고 있다. 물론 그 지배 방식에서도 많은 차이가 난다. 착취당하고 억압받는 이들은 문화적 식민주의의 끊임없는 위협을 받는다.
2. 위기에 처한 언어의 다양성지난 수세기 동안 실개울처럼 흐르던 언어 절멸 현상이 이제는 큰물이 되어 숱한 토착민의 언어를 휩쓸어 가고 있다. 언어의 절멸이 고대 제국이나 낙후된 오지에서만 이루어지는 현상이 아니다. 바로 우리 이웃에 있는 숱한 언어가 절멸되거나 그 위기에 처해 있다.
이처럼 세계의 많은 언어들이 무서운 속도로 죽어가고 있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사회에 미치는 다양한 유형의 압력에 대한 반응 때문이다. 사회적, 문화적, 경제적, 심지어 군사적 압력일 수 있다. 21세기를 지나는 동안 6천여 가지의 언어 중에 절반가량이 절멸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중요한 것은 절멸한 언어는 대체 가능하지 않다는 것이다.
3. 우월한 언어란 존재하지 않는다1966년에 이미 세계 우편물의 70퍼센트, 텔레비전 방송 점유 60퍼센트, 국제무역, 금융, 고등 교육, 과학 부문에 영어가 독점적인 언어로 자리매김하고 있었다. 최근 웨일스 어, 마오리 어, 아이마라 어 등이 국가 공식 언어로 인정되었으나 이들 언어는 모국어 사용자가 1천 명도 되지 않는 위태로운 상황이다.
언어가 변화하는 데는 환경, 경제, 정치적 원인으로 인한 사회적 격변이 내재되어 있다. 언어 절멸에는 감춰진 폭력과 말 못할 사정이 있는 것이다. 언어가 생성되고 절멸하는 이유를 언어 자체로만 볼 것이 아니라 그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의 전체적인 삶의 모습으로 보아야 한다. 이러한 견해가 언어학적 생태관이다.
언어 생태적 관점에서 본 사전 지식1. 『옥스퍼드 영어사전』에 얽힌 두 가지 이야기1928년 6월 6일 영국 런던의 세인트폴 대성당 옆 필립 하드윅 궁전 앞에는 축하 만찬 행사가 진행되었다. 바로 『옥스퍼드 영어사전』의 출간을 기념하는 자리였다. 『옥스퍼드 영어사전』은 프레데릭 퍼니발과 제임스 머리 등 사전 편찬을 위해 기여한 많은 사람들의 노력 덕분으로 완성될 수 있었다. 그중 윌리엄 마이너는 살인 혐의로 정신 병동에 수용되어 있으면서 이 사전을 만드는 작업에 참여한 감동적인 뒷이야기를 남기기도 했다. 또 하나의 이야기는 1857년 무렵, 영국이 아프리카와 인도 그리고 아메리카를 비롯한 많은 나라를 정복하고 지배하면서 그들의 언어 통일은 매우 긴요한 국가 정책 과제가 되었다. 길어도 10년이면 될 것으로 생각했던 사전은 결국 71년 만에 탄생하게 됐다고 지질학자이자, 언론인 출신의 사이먼 윈체스터 씨는 자신의 책 『영어의 탄생: 옥스퍼드 영어사전 만들기 70년 역사』에서 적고 있다.
2. 사전 둥지 바깥 언어사전의 바깥에 방치된 국어가 절멸 위기에 처했다면 한국어는 잠재적 위기에 처했다고 할 수 있다. 지금 한국어는 사회적, 경제적으로 불리한 위치에 있고, 더 큰 언어로부터 커다란 압박을 받고 있으며, 앞으로 인구감소로 나이 어린 사용자가 줄어들 징후를 보이고 있다. 이제 미시적 관점에서 거시적 관점으로, 표준화에서 다원화의 관점으로, 자본 중심지에서 변두리로 우리의 눈길을 되돌려야 한다. 이런 맥락에서 사전 편찬자들은 사전의 둥지 밖에 있는 수많은 어휘가 사전과 규범이라는 틀 때문에 부당하게 도태당하도록 해서는 안 된다.
3. 토착 언어의 절멸문화 유형학의 관점에서 표준어는 모종의 질서를 갖춘 것으로 방언은 무질서한 것으로 간주되어 왔다. 표준어는 내부 영역으로 방언은 외부 영역으로 인식하면서 '문화↔야만, 지식인↔민중, 질서↔혼돈, 외세 언어↔토착'의 이항적, 항등 형식이 고정되었다.
농경사회에서 산업화 사회로 옮겨오는 과정에서 자연적으로 우리 곁을 떠나게 되어 있었는지도 모르지만 국어사전을 편찬하는 과정에서 인위적 방식으로 이를 내팽개치고 포기해버린 탓이 더 크다. 이로 인해 소중한 어휘들이 표준어 둥지 밖에서 서성이다가 문명의 변화와 함께 소리 소문 없이 우리 곁에서 사라져가고 있다. 사전은 국어의 참모습을 비추어 주는 거울이 되어야 한다. 사전이 앞장서서 국어의 생태계를 파괴해서는 안 된다.
4. 국어의 외연을 넓히자표준어 개념을 재검토하기 위해서는 몇 가지 전제해야 할 점이 있다. 표준어와 비표준어로 양분하는 방식을 점진적으로 폐지해야 한다. 이상태, 조태린 외 여러 사람이 쓴 『한국어의 규범과 다양성』(태학사, 2008)은 '표준어'의 범주와 계층성에 대한 문제를 본격적으로 논의한 글을 모은 책이다. 조태린의 「계급언어, 지역 언어로서의 표준어」에서 "표준어의 지역성(서울 중심주의)은 표준어의 계급성(중간 계급 중심주의)을 지역적으로 표현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 자체로 '서울 대 지방', '특권 지역 대 소외 지역'이라는 유사 계급적 차별의 구조를 재생산하는 데에도 기여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표준어 비표준어를 대립되는 개념으로 이해할 것이 아니라 낱말 사용 실태 조사에 주력하여 방언이라도 필요한 경우에는 규범적인 공통어로 채택할 필요가 있다. 표준어의 기반을 이루는 수도 지역의 말, 즉 '서울말'이라는 제약도 개정하지 않을 수 없다. 일본에서도 동경중심의 '표준어' 정책에서 탈피하여 다중들이 많이 사용하고 있는 방언을 가려 모아서 사용하는 공통어 정책을 채택하고 있다.
지혜의 심장, 국어사전
1. 국어사전이란 무엇인가?'사전'이라는 용어는 한자말 '사전(辭典)'을 빌려 쓴 것으로 개별 어휘에 대한 언어학적 정보를 실어 담은 것이다. 동음이의어로서 '사전(事典)'이라는 말은 '여러 가지 사항을 모아 그 하나하나에 해설을 붙인 사전(辭典)'의 의미로 언어학적 기준 외에 다양한 정보를 포함한다는 측면에서 차이가 있다. 곧 '사전(辭典)'은 언어 사실에 대하여 풀이한 것이고 '사전(事典)'은 사물 일반에 대한 풀이한 것이라는 면에서 차이가 있다. 그런데 사물 일반에 대한 풀이라 하더라도 그것을 나타내는 말은 언어 단위임에 틀림이 없다. 다만 그 풀이체계나 범위에서 언어 중심의 사전과 성격을 달리할 뿐이다. 이런 점에서, 언어학적 관점에서 만든 국어사전이나 어떤 용어 사전에는 '사전(辭典)', 사물을 풀이한 백과사전 등에는 '사전(事典)'이라고 구분해서 사용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백과사전' 류를 '-사전(辭典)'으로 쓴 예도 없지 않기 때문에 엄격하게 이를 구분하기란 쉽지 않다.
사전의 유형은 사전의 크기나 범주 등과 같은 다양한 기준에 따라 분류할 수 있다. Yakov Malkeiel(1976)은 사전을 범주(range), 전망(perspective), 명시성(presentation)이라는 기준에 의해 3가지로 분류하고 있다. 첫째, 범주는 사전 항목 어휘의 크기나 범위에 따라 구분하는 데 이것은 사전의 질적 밀도와 깊은 관계가 있다. 범주의 다른 한 측면은 대상 언어의 범주에 따라 단일어 사전, 이중어 사전, 다중어 사전으로 구분된다. 단일어 사전은 전적으로 한 가지 언어로만 기술된다. 이중어 사전은 단일 방향성 또는 이중 방향성을 갖게 된다. 『한영사전』과 『영한사전』은 각각 한국과 미국의 모국어 화자의 입장에서는 단일방향성을 갖는다. 곧 한 영, 영 한이라는 단일 방향성을 갖지만 한국의 모국어 화자 입장에서만 본다면 한 영이라는 이중 방향성을 갖게 된다. 그리고 삼중어 사전은 비교적 희귀한 편이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충분하게 이해하는 두 가지 바탕 언어에 대한 친숙하지 않은 대상 언어로 구성된다. 예를 들어 영어와 라틴어 로망 언어 사전이나 영어와 프랑스어의 고전 라틴어 사전이다.
둘째, 전망은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편집자의 철학적 견해에 기반을 두게 된다. 곧 시간을 역사적인 것까지 확장하느냐 아니면 제한하느냐에 따라 통시적(diachronic) 사전과 공시적(synchronic) 사전으로 구분된다. 셋째, 명시성은 사전을 정의하는 정도, 곧 어느 정도 충분하게 설명하는가라는 문제와 관련이 있다. 예를 들어 단일어 사전이 이중어 사전보다 훨씬 더 충실하게 기술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2. 사전의 계열적 체계 문제먼저 국립국어원에서 간행한 『표준국어대사전』의 이름을 꼼꼼히 새겨볼 필요가 있다. '표준국어+대사전'인가? 아니면 '표준+국어대사전'인가? 전자라면 '표준국어'를 다 모은 대사전이라는 뜻이 될 것인데 어찌 표준국어의 대사전이 필요한 것인지 이해할 수 없다. 『표준』대사전은 근본적으로 여러 가지 체계적인 문제를 안고 있다. 앞서 말한 바와 같이 표준국어사전이라면 규범이 정하는 표준어의 범주와 일치해야 할 필요가 있지만, 이 문제를 어김으로써 빗발치는 민원의 대상이 되고 있다. 한국 어문규정은 〈한글 맞춤법〉, 〈표준어 규정〉, 〈외래어 표기법〉, 〈국어의 로마자 표기법〉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네 가지 규범에 담긴 내용을 토대로 한 '표준어'의 범주와 이 사전에서 담고 있는 '표준어'의 범주가 일치하지 않는다는 점은 심각한 문제이다. 또한 지식 생산 기반이 강화되면서 외국으로부터 밀려오는 전문용어나 외국어도 2005년도부터 발표된 〈국어기본법 시행령〉에 따라 전문용어 표준화 작업을 거친 다음 반드시 국어심의회의 심의절차를 거치도록 되어 있다. 규범을 반영하고 국어기본법의 입법 정신을 충실하게 담아낼 수 있도록 『표준』대사전의 관리 및 운용방식을 전면 개편해야 한다.
3. 사전에 없는, 책에 담겨진 지식최근 온라인 소통의 시대에 빠르게 발달하는 언어 정보 처리 기술에 따라 외국으로부터 유입되는 각종 신지식이 급격하게 증가하는 추세를 보이고 있어 거의 대부분의 나라들이 이 새로운 사전 지식의 언어를 어떻게 처리할까 대책 마련에 골몰하고 있다. 문자와 아이콘 그리고 영상과 오디오 등 다매체로 생산되는 지식정보를 횡단하면서 사전 올림말로 담아내지 않는다면 다중은 쏟아지는 정보의 물결 속에 나침반 없는 지식 탐색의 항해를 계속해야 한다.
언어의 다원성을 지켜내기 위해서는 표준어의 둥지 외연에 있던 다양한 생활 직업어를 조사하여 국어의 자산 안으로 끌어안아야 할 것이다. 또한 구술 자료에서도 많은 유용한 어휘 자료를 수집할 수 있다. 이러한 어휘들이 다행히도 국립국어원에서 2007년부터 10년간 민족 생활 어휘로 조사되고 있다. 민족 생활어 조사 사업은 〈국어기본법〉 제2조(기본이념)와 제9조(실태조사 등)에 근거하고 있다. 사전 자료가 종합적으로 구축된다면 규범어와 상용어, 전문용어 등 사용 용처에 따라 다양한 사전으로 세분화하여 만들 수 있다.
4. 표준국어대사전의 발전방향『표준』대사전은 우리말을 집대성한 사전이다. 그러나 국립국어원에서는 『표준』대사전의 보완 및 정비 작업을 지속적으로 추진하여 이제 그 중간성과를 웹기반 사전으로 공개하기에 이르렀다. 이 사업은 언어 정보 처리의 기술력의 확보와 함께 지속적으로 사전 내용을 세계적인 수준으로 발전시켜야 한다.
1) 국가사업으로 진행해 온 『표준』대사전이 담당할 수 있는 지식 자원은 이미 포화 상태에 도달했다. 따라서 새로이 생산되는 지식 영역의 대중화를 위해서는 가장 먼저 사전 지식의 기준을 새로 설정하고 또 그 자료의 생산과 관리를 강화해야 한다.
2) 규범과 국어기본법 시행령을 철저하게 실현하는 사전으로
『표준』대사전에서 '맞춤법'은 "어떤 문자로써 한 언어를 표기하는 규칙"이라고 정의하고 있고, '표기법'은 "부호나 문자로써 한 언어를 표기하는 규칙"으로 정의하고 있다. 그런데 '맞춤법'에도 문장부호에 관한 내용이 포함되어 있으니 차라리 '맞춤법'보다 '표기법'이라는 용어가 더 적합할 것 같다. 또 다른 문제는 〈한글 맞춤법〉의 제3항의 외래어 규정과 〈표준어 규정〉의 제1장 총칙 제2항의 규정이 서로 상충되고 있다는 점이다. 곧 〈한글 맞춤법〉의 제3항의 외래어에 대한 규정은 '표준어'와 같은 범주를 정하는 것이 아니고 별도의 표기법을 마련하는 근거만을 제시하고 있다. 그러나 〈표준어 규정〉의 제1장 총칙 제2항의 '외래어'의 범주는 "외래어는 따로 사정한다"고 규정하였으나 어디에서도 사정 원칙과 범주를 표시한 규정이 없다.
3) 표준어 둥지 밖의 언어 자산 관리
표준어의 둥지 밖에 방치되어 있는 전문용어, 신어, 한자어, 민속 생활 어휘, 지역어, 인문 사회 과학의 각종 전문 학술 용어 등을 규범에 맞도록 재정비하면서 표준어 대상의 외연을 넓혀야 한다. 또한 어문 규범과 국어사전 간의 규범 집행과 관리의 모순을 개선해야 국민으로부터 신뢰를 받을 수 있다.
4) 언어 정보 처리 기술력의 강화
앞으로 인터넷을 활용한 유비쿼터스 학습 방식을 통해 스스로 지식을 축적하고, 추론을 통해 스스로 새로운 지식을 창출하며, 이를 사람과 기계 간, 기계와 기계 간 적절히 이용할 수 있는 자연 언어 처리 기술력으로 고도화해야 한다. 규범 검색, 전자사전 지원, 전문용어 검색, e-books, e-학습기기, GPS, DVD, 게임기 등 다양한 기기를 융합하여 실용화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5) 사전의 계열적 체계의 균형
현재의 사전은 올림말과 그 뜻풀이를 중심으로 지식 체계를 구축한 것이다. 이들 올림말의 의미적 상호 관계나 뜻풀이와의 관계를 파악할 수 있는 다양한 검색이 가능하도록 하는 한편 어휘 의미적 계열 관계를 체계적으로 재구성하는 방안이 넓은 의미에서 사전적 온톨로지라고 할 수 있다. 이 사전적 온톨로지는 일종의 지식 지도이다. 종이 사전의 텍스트를 다양한 정보로서의 활용도를 높여야 한다. 현재의 기록 지식으로서의 종이사전을 이용자의 편의를 고려하여 디지털 지식 지도로 전환하면 보다 유용하게 지식의 생성이나 관리가 가능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