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이 초대한 대형참사
제임스 R. 차일스 지음 | 수린재
인간이 초대한 대형참사
제임스 R. 차일스 지음
수린재 / 2008년 12월 / 509쪽 / 22,000원 "그런 공포는 처음이었소. 나는 그 순간을 결코, 결코 잊지 않을 거요." 왕의 그 이야기를 듣고 왕비가 말했다. "왕께서는 그 순간을 잊어버리실 것입니다. 기록해두지 않는다면." -루이스 캐럴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1871)-
기계
대형참사는 누적된 요인들이 합쳐져서 일어난다 우리는 이제까지 존재하지 않았던 새로운 세계를 건설하고 있다. 그 세계가 과연 무엇인지를 알기 위해서는 헝가리의 레프첼락에 있는 탄산(炭酸)제조회사에서 1969년 1월에 일어난 사고를 다시 돌아보아야 한다. 이 회사는 천연가스에서 이산화탄소를 추출해내어 판매하는 사업을 하고 있었다. 액체이산화탄소는 암모니아에 의해 냉각되고 있는 거대한 탱크 4기 이외에 소형 봄베(고압 기체를 넣는 철제용기)에도 저장되어 있다. 천연가스가 공장에 도달할 쯤에는 반드시 제거해주어야 하는 극소량의 수분을 포함하고 있었다. 간혹 그 수분이 계기와 기기, 전량계, 심지어는 안전밸브까지 동결시켜 작동을 못하게 하는 경우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공장은 수분을 제거하지 않은 채 조업을 계속했다.
1968년 12월 31일, 일을 마치려고 조업 중지를 했을 때의 잔량계에 의하면 각 탱크에는 적어도 20톤의 액체이산화탄소가 들어 있었다. 조업을 개시한 것은 새해 1월 1일 야간이었다. 액체이산화탄소를 저장하는 봄베가 부족했기 때문에 기계를 담당하는 기사는 C탱크로 액체이산화탄소를 보냈다. C탱크 저장용량은 충분했어야 하는데, 무슨 이유에선지 충분하지 못했던 것 같다. 대략 반시간 후, C탱크가 폭발했고 그 파편에 의해 D탱크도 터졌다. 탱크 2기의 폭발에 의해 주위에 있던 네 사람이 사망하고 A탱크는 고정 볼트가 풀려 직경 30센티미터의 구멍이 생겼다. 이 구멍에서 고압의 액체이산화탄소가 굉장한 기세로 새어나와 로켓 추진제(로켓 따위를 추진하는 데 쓰는 연료와 산화제) 같은 작용을 했다. A탱크는 그 추력에 의해 발사하듯이 연구소의 벽을 깨부수고 수 톤의 액체이산화탄소를 바닥 전체에 흩뿌렸으며 안에 있었던 다섯 사람을 그 자리에서 순간 냉동시켜 버렸다. 액체이산화탄소의 분출에 의해 실내는 섭씨 영하 78도가 되었고, 호흡할 수 있는 공기도 없이 두툼한 드라이아이스 층에 덮여버렸다.
우리는 이미 이백 년 이상의 기간 동안 철을 기반으로 해서 하나의 세계를 구축하기 위해 필사적인 노력을 하고 있다. 그러나 기계라는 이 새로운 세계는 지구에 깊은 공포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몇 안 되는 존재로 남겨졌다. 기계는 언제라도 문제를 일으킬 수 있기 때문이다. 최근의 연구에 의하면 기계 사고에 의한 참사는 대부분의 경우 복합적인 실수와 실패가 있은 연후에 발생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단 하나의 불운, 단 하나의 원인만으로는 좀처럼 대참사에 이르기 어렵다. 대참사는 허술한 관리, 정확하지 못한 의사소통, 실수라는 요인이 합쳐짐으로써 발생한다. 그 요인들은 시간을 두고 서서히 형성되어 가는 것이다. 이 책을 통해 한 가지 호소하고 싶은 것은 새로운 세계에서는 평범한 실수가 막대한 피해를 초래할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이를 인정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보다 높은 수준의 경계가 요구될 뿐 아니라, 가정과 기업까지도 고도의 경계를 해야 할 필요가 있다.
사소한 시스템의 균열이 참사를 부른다 시스템의 균열은 다음과 같이 설명할 수 있다. 소리가 잘 울리는 동굴에 들어가 본 일이 있을 것이다. 정적을 깨고 "야" 하고 외쳐보면 소리가 울리는데 그 소리는 점점 작아지고, 몇 초 지나면 완전히 사라진다. 이는 네거티브 패드백이라고 불리며 파동이 서로 작용하고 소멸하는 현상이다. 그러면 매우 특수한 동굴(포지티브 피드백을 가진 일종의 거대한 시스템의 동굴)에 들어갔다고 가정해보자. 이러한 동굴 안에서 소리를 지르면 울림은 회를 거듭함에 따라 강해질 것이다. 이윽고 연속된 굉음 밖에 들리지 않게 되고 마침내는 천장이 붕괴할 것이다. 이것은, 거대한 시스템이 최악의 상황에 직면했을 때에 나타낼 법한 행동과 비슷하다. 하나의 문제가 생기면 그것이 다른 결점에 부딪쳐 되돌아오고, 그것이 또 다른 문제를 일으키면서 점점 확대되어 가는 것이다.
우리는 모두 동시대의 각종 구조물과 기계가 원인이 되는 위험에 직면하고 있다. 각종 구조물과 기계에서 나타난 지극히 작은 시스템의 결함일지라도 거기에 휘말리게 된 사람에게는 최악의 심각한 결과를 초래할 가능성이 있다. 1998년 7월 뉴욕 시의 포타임 스퀘어 빌딩 건설현장에서 높이 210미터에 있던 발판과 승강기 회전축의 윗부분이 떨어지면서 그 파편이 옆 블록의 주거용 호텔 지붕을 뚫어 맨 위층에 살고 있던 85세의 노파가 사망했다. 이와 같은 현상은 화재나 폭발이나 자동차사고에서도 흔히 일어날 수 있다. 보통, 시스템의 균열은 장기간에 걸친 실수와 불행한 사고가 겹쳐진 결과로 발생하는 것(절대 청천벽력 같은 일은 아니다)이라는 사실과, 인간의 실수는 몇 개의 카테고리로 분류될 수 있다는 것을, 그리고 초기단계에서 적절한 조치를 취하면 연쇄적인 사고의 발생을 끊을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 사고를 막을 가능성은 한층 커진다.
맹점
거대하고 무감각한 공포가 엄습한다 1996년 10월 2일 페루항공 603편이 추락했을 때다. 그날 밤, 보잉 757기종은 좌측의 유체총압관(비행기 동체 옆 부분에 설치. 비행 때의 압력을 측정해서 비행기의 속도를 측정하는 장치) 위에 테이프를 붙인 채 리마를 출발했다. 비행 전 기체 청소 후 정비사들이 테이프를 벗겼어야 했지만 잊어버린 것이다. 정비사도 조종사도 이 지극히 심각한 문제를 알아차리지 못한 채 이륙했다. 이 상황이 왜 심각한가 하면 비행에 없어서는 안 될 계기류, 특히 속도계와 고도계에 대해, 단 몇 센티미터의 테이프가 큰 지장을 주기 때문이다. 조종실 테이프 레코더의 기록에 의하면 페루항공의 승무원들은 계기가 나타내는 허위 정보를 바탕으로 바른 정보를 얻기 위해 열심히 노력했다. 그들은 사회학자인 칼 위크가 '뷰자데'라고 이름붙인 상태를 체험하고 있었다. 뷰자데란, 이 세상이 결코 이해할 수 없는 실로 끔직한 감각이며 누구도 도달한 적이 없을 만큼 이질적인 장소와 환경에서 헤매고 만다는 무서운 감각이다. 위크는 이 점에 관해 프로이드를 인용하여 이렇게 술회하고 있다. 사태가 극도로 악화하면 "거대하고 무감각한 공포가 엄습한다."
기장은 각종 제어스위치와 자동조정장치를 현명하게 조작했지만 757기는 거의 제멋대로 진로를 바꾸고 고도를 바꾸며 비행을 계속했다. 그들은 하염없이 경보가 울리는 데 정신을 빼앗겨 제대로 비행하고 있는데 왜 속도계와 고도계가 급격히 변동하는지, 그 이유를 추측할 수가 없었다. 항공관제관과 긴밀히 연락을 주고받으며 기장은 30분간 필사의 노력을 계속했지만 기체는 태평양에 추락했고, 68명의 사망자를 냈다. 추락했을 때에도 고도계는 고도 2,900미터를 가리키고 있었다.
무엇보다도 위험한 것은 기계를 운전하는 사람 자신이 스스로 '무엇을 모르고 있는지' 모르는 경우다. 맹점이라는 문제는 모든 시스템에서 일어날 수 있다. 그 원인으로서는 계기의 오판, 보이지 않는 위치에 있는 장치, 제어에 대한 둔감한 반응을 들 수 있다. 기계를 다루는 당사자가 기계에 관해서 자신이 아는 것은 얼마나 적은 부분인가 하는 자각을 갖지 않는다면 문제를 더욱 악화시키게 되며 위기적 상황 속에서 그들은 잘못된 가설을 날조하고 현실적 정황이 눈앞에 드러나도 그 가설에 집착한다.
기한
기술적 경고가 관료적 일정에 의해 묵살당한다 로저 보이스졸리가 1986년 1월 28일에 경험한 악몽 같은 사건은 누구라도 다시 마주치고 싶지 않을 것이다. 그 전날 밤에 열린 우주왕복선 챌린저의 발사에 관한 원격화상회의에서 보이스졸리는 성실한 기술자로서 자신의 모든 충성을 바친 회사 모톤 시오콜 사를 설득하였다. 일기예보에서 다음날 케네디 우주센터에 심한 한파가 예상되니 NASA(미국항공우주국)가 발사를 단념해야 한다고 설득하자는 것이었다. 시오콜 사의 고체로켓 담당인 알란 J. 맥도널드도 보이스졸리와 같은 생각이었다. 그는 NASA의 책임자들에게 기후가 좋지 않으니 부스터(로켓보조추진 장치)의 온도가 섭씨 12도로 오르도록 햇빛이 나올 때까지는 발사하지 말도록 진언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부스터 접합부를 봉인하고 있는 고무로 된 링에 틈새가 생겨 금속제 케이스에서 가스가 새어나와 연소하여 파멸적인 대형사고를 일으킬 위험이 있었다.
NASA의 대표자들은 원격화상회의에서 이에 대해 봉인에 틈이 생기는 문제는 이미 숙지하고 있는 요소이고 대책이 강구되어 있으며 게다가 저온상태의 링과 가스누출과는 어떠한 의미에서도 결정적인 상관은 없다고 답했다. NASA의 기술자들은 시오콜 사가 주장하는 최저온도 섭씨 12도라는 것은 전혀 근거가 없을 뿐 아니라 그 이전의 동계 발사에서는 그보다 낮은 온도에서도 시오콜 사가 동의한 전례와 모순된다고 내심 생각하고 있었다. NASA의 부스터 책임자인 래리 멀로이는 그러한 견해를 화상전화를 통해 한마디로 물었다. "그럼 도대체 시오콜은 언제 발사하라는 겁니까? 날이 완전히 풀리는 4월이요?" 30분간의 휴식 후, 시오콜 사의 기술책임자들은 이의를 취하한다고 연락해왔다. 물론 시오콜 사의 맥도널드와 보이스졸리와는 의견을 달리한 견해였다. NASA는 결국 기술적 경고를 받아들이지 않고 챌린저를 발사했다. 챌린저 발사 60초 후 발화시스템 담당자인 밥 이블링은 안전한 발사에 감사하며 기도를 올렸다. 그러나 그로부터 30초 후 챌린저는 공중분해되어 구름처럼 번지는 흰 줄무늬를 그렸다.
이 사고에 관한 저서의 결정판이라고도 말할 수 있는 다이안 보간의 『챌린저 발사의 결단』에 의하면 NASA와 모톤 시오콜 사 쌍방 모두가 관료적인 목표달성을 우선으로 한 나머지 커져가고 있는 문제가 있어도 적당하게 해석하고 급기야는 묵인해버리는 체질에 빠져들었고 그 때에 사태를 악화시켰다고 한다. NASA는 이 문제를 우주비행사들에게 직접 전달해 의견을 물으려 하지도 않았고, 또한 위험성을 진지하게 받아들여 적절한 조치를 취하기 위해 계획을 일시 중단하려고도 하지 않았으며 내열 접착제를 바르거나 링의 시험과정 또한 눈 가리고 아웅 식의 대책으로 위기를 묻어버리려 했다. 시오콜 사가 기술적인 판단을 능가하는 훨씬 설득력 있는 제안을 해오지 않는 한 발사를 연기할 의사는 없었다. 보간의 말에 의하면 그것은 '비정상의 일상화'였다. "잠재적 위험이 내재하는 시스템의 발사를 허가해버리는 강력한 이유는 단 하나……"라고 주임우주비행사 존 W. 영은 대재앙 후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그것은 "발사 스케줄이라는 압박이다."
미국의 우주왕복선 챌린저는 위대한 국가적 열망으로 탄생한 거대 프로젝트였다. 계획을 출범시킬 목적에서 내걸었던 과도한 약속은 계획이 착수하는 순간부터는 오로지 전진을 위한 노력으로 바뀌며, 현장의 기술자들이 문서로 지적하는 구체적인 위험성은 무시되기 시작한다. 사고 직전의 많은 사례들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어떠한 경우도 열의를 담은 경고의 메모는 거의 뜻을 이루지 못했다. 정해진 기한과 끊임없는 자금부족을 겪고 있는 NASA의 담당자들에게 있어서 이제까지 부스터가 불타 녹는 일이 없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챌린저는 안전하다고 생각되었다. 프로젝트라는 것은 전방에서 정지신호인 붉은 기가 흔들리고 있어도 실행해 나가는 관성이 있다는 사실을 모든 참사들은 보여준다. 챌린저의 경우도 사소한 불량은 고의적으로 묵인하게 된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물질
세계에서 가장 사치스러운 초등학교가 폭발로 무너진다 어딘가에서 사고가 일어난 후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조사해보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맨 처음 떠올리는 것이 안전장치이다. 난로에서 가스가 새면 달걀 썩은 것 같은 냄새가 나는데 이것도 안전을 위해 일부러 그렇게 만든 것이다. 천연가스의 주요 성분인 메탄은 냄새가 없다. 가스회사는 냄새를 첨가해서 가스누출을 알아차리도록 하고 있다. 이 달걀 썩는 듯한 냄새가 오늘날과 같은 복잡한 사회 속에서 존재가치를 갖는다는 교훈은 한 빨간 벽돌의 학교로부터 배운 것이다.
1937년에는 아직 대공황이 맹위를 떨치던 때인데 텍사스 주 뉴런던에는 전혀 그 여파가 미치지 않고 있었다. 이 마을은 전설적인 이스트텍사스 유전의 중심부이다. 남북 70킬로미터, 동서 20킬로미터에 걸쳐 퍼져 있는 유전지대는 머지않아 시작될 대전으로 연합국 측에 풍부한 석유를 제공하게 된다. 처음에는 탱크로, 나중에는 송유관으로 원유를 동북부의 모든 주에 보냈다. 뉴런던 마을은 풍요로운 부를 바탕으로 '세계에서 제일 사치스럽다'고 평판받는 학교를 건설했다. 학교 주변 여기저기에 유정 망루가 서있었고 학교의 부지 내에도 유정이 7개나 있었다. 교사는 크고 길이가 77미터였으며 E자형으로 배치되어 있었다. E는 '폭발물(explosive)'의 약자이기도 하다. 1937년 이 학교는 그 지역 가스인 유나이티드 가스 사와의 난방용 가스계약을 중단했다. 그리고 학교의 직원들은 학교 당국의 승인을 얻어서 페리어드 가솔린 사로부터 원유에서 나오는 잔유가스를 사기로 했다. 많은 가정과 기업이 그렇게 하고 있었다. '그린 가스(green gas)'를 사면 학교에 있어서는 매월 대략 3,000달러가 절약된다.
1937년 3월 18일 오후 3시 뉴런던 인디펜던스 스쿨에서 초등부 수업이 끝났지만 학교 안에는 아직 500명 정도의 교사와 학생이 있었다. 그날 오후 이른 시간에 복잡한 난방시스템의 접합부에서 가스가 새어나왔다. 하지만 가스는 무취였기 때문에 이를 알아차린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가스가 섞인 공기가 지하와 1층에 있는 교실을 채웠고 그 농도는 폭발 범위에 가까웠다. 공작 선생님인 레미 버틀러가 연마기를 작동시키려고 스위치를 넣는 순간 1층 바닥 전체가 들어올려지고 벽과 지붕은 무너져내리는 대폭발을 일으켰다. 뉴런던 학교 사고로부터 꼬박 9개월 후 텍사스 주는 천연가스의 판매회사에 악취제 첨가를 의무화하는 법률을 통과시켰다. 냄새로 가스누출을 알아차리게 하기 위해서이다. 298명의 생명을 빼앗아간 이 사고의 최종 보고서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사고는 지극히 평균적인 사람들의 과실이 누적되어 일어난 것이고 그러한 사람들은 예방책의 필요성에 관해서 알지 못했거나 무관심했기 때문에 지식을 갖추지 못하여 위험과 장애를 예견할 수가 없었다."
한계
운용한계를 무시하면 체르노빌 원전사고는 또 일어난다 1986년 4월 26일 오전 0시가 조금 지났을 무렵 V.I. 레닌 체르노빌 발전소 4호 원자로의 조종실. 그곳에는 기사, 전문기술자, 팀장 등으로 이루어진 소집단이 있었다. 그들은 연1회의 정기점검수리를 위해 4호기를 운전정지하는 시간에 어떤 시험을 실시하려 하고 있었다. 체르노빌 사고를 간단하게 설명하자면 이렇다. 운전을 정지할 때 관성에 의해 회전을 계속하고 있는 발전기가 어디까지 비상용 전력을 공급할 수 있는지 테스트하라는 명령이 내려왔다. 그 명령을 실행할 때에 기술자들은 긴급자동정지장치를 해제해버렸다. 이것은 안전규칙 위반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