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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기 배우기1: 형태의 아름다움을 찾아서

마테오 마랑고니 지음 | 생각의나무
보기 배우기 1

마테오 마랑고니 지음

생각의나무 / 2008년 10월 / 355쪽 / 22,000원



고통과 대책


대부분의 사람은 미술관에 가지 않는다. 거기에서 그들은 엉뚱한 소리를 하지 않으려 하고, 무지한 세계에 당혹해하기 때문이다. 혹은 거기에 간다고 하더라도 과시욕 때문이거나, 관례에 따라 가거나 무엇인가를 배우러 가는 것이지, 즐거워서인 경우는 분명 드물다. 관객이 저렇게 많은데 무슨 소리냐고? 그러나 잠깐 다시 보자. 교양이 없는 관객은 자신도 잘 알아볼 정도로 잘 알려진 거물들 앞에서 걸음을 멈추는 반면 라파엘로, 미켈란젤로, 티치아노 카를로 돌치, 귀도 레니 등 교양 있는 관객은 돌치나 레니 앞에서 너무 지체하지 않는 편이 낫겠다는 점을 안다고 하더라도, 왜 그렇게 해야 하는지 진심으로 이해하지는 못할 것이다. 내심 기를란다요라던가 안드레아 델 사르토를 좋아하면서도 파올로 우첼로라던가 안드레아 델 카스타뇨의 작품이 어째서 그토록 호평 받아야 했는지 이해하지 못하는 만큼, 오늘날 그는 바보 취급이나 받게 될 뿐이다!



원칙적 오류는 아직 보고 이해하지도 못하는 사람들에게 예술작품을 보여주고 또 그것에 대해 끊임없이 이야기한다는 사실이다. 고고학적 관심거리를 마치 예술작품처럼 보여주거나 혹은 진정한 영예와 허위를 구별하거나, 아름답고 추한 것을 가릴 줄도 모르며, 오로지 역사적 지식에나 흥미롭고, 작품의 아름다움을 즐기게 할 수도 없는, 해묵은 미술사적 전통이라는 공론을 되풀이함으로써 예술과 현학을 끊임없이 뒤섞는 것보다 더, 순수한 동기를 환멸에 빠뜨리고 지치게 하기 쉬운 것도 없다. 반대로 무지한 사람들에게, 거기에 관심을 두게 하고, 처음부터 실망하지 않게 하려면 걸작과 졸작을 확실히 구분하고 고고학적 가치뿐인 것을 가려내면서 작품의 순수한 예술성만 보여주어야 한다.



그러면 어떻게 예술작품의 가치를 최소한 경험해보고 이해하도록 대중을 훈련할 수 있을까? 무지한 사람들에게 한 점의 그림이나 조각을 구성하는 형태소, 즉 프로필을 그려내는 선, 표면을 묘사하는 조형적 단면, 명암대비 효과, 빛과 그림자의 계조, 색채의 다양한 면모 등 요컨대 언어를 구성하는 요소들, 또 조형예술의 경우 '눈에 보이는 것'을 구성하는 요소들을 보여주거나 폭로함으로써 그러한 결과에 이를 수 있다는 것이 오래된 경험칙에 따른 필자의 확신이다. 우리가 '형식' 혹은 '표현'이라고 부르는 이 언어야말로 미술 그 자체이다. 화가가 그려내는 것은, 화가가 표현하려는 어떤 것의 상징이 아니라(그토록 많은 사람들이 여전히 그렇게 믿고 있듯이) 미술의 기적을 통해서 작가의 정신적 생명의 직접적 표현이 되고 미술 그 자체가 된다. 즉 '미술은 직접적 언어'이다. 그러므로 어떤 화가에 대해서 이야기하기에 앞서 그 표현 수단과 언어가 무엇인지 보여주어야 한다. 결국 이 언어야말로 무엇보다도 특히 어떤 예술작품을 보고 음미하는 데에서 숙달해야 할 시급한 것이다. 이것이 대중과 예술 사이의 영원한 오해를 더는 유일한 방법이다.



내용과 형식

가령 미켈란젤로 풍의 확고부동한 건축적 행태에 둔감한 사람은 그 본질적 내용을 느끼지 못할 것이다. 언제나 그렇듯 작가 정신은 곧장 그리고 오직 형태를 통해서만 완전하게 드러나기 때문이다. 진정한 예술가로서 미켈란젤로는 자신이 구사하는 언어만을 갖고 있을 뿐이다. 사실상 그에게는 상당히 다른 두 가지 표현 수단이 있다. 하나는 완벽한 기법에 이른 것으로 그 자신의 거장적 솜씨에 자족하는 듯하며, 거칠고 단지 시도에 불과한 또 다른 하나는 무시되는 듯하다. 이는 너무나 압도적이며 노숙한 전통으로부터 벗어나려는 고통이다. 이는 자신의 영혼을 표현하기에 적합한, 자유롭고 즉각적인 새 언어를 창조하면서 사실상 그의 최후의 작품들에서 실현되었던 것들이다.



이 새로운 '미완'의 언어는 조각 작품에서까지 빛의 효과로 혹은 사실상'색채'효과로 변형되는 힘을 지닌다. 미켈란젤로는 자기 시대의 삶으로 밀려들었던 신비주의적 열망을 향한 정신적 변화를 표현해야 한다고 직감하고 있었을 텐데, 거기에서는 바로 레오나르도라는 빛의 시인을 통해서 이미 또 다른 수법으로 수용되고 실현된 회화적 수단이 조형적 수단보다 더욱 적합했었다.



따라서 미켈란젤로의 성모에 담긴 스타일의 의미작용을 통찰하려면(다른 예술 작품과 마찬가지로) 이 영웅적 형상이 뿜어대는, 특히 사각형으로서 분명하게 리듬이 실린 형태 속에서 팔다리의 이상적 구성에서 솟아나는 힘과 압도적 표현을 '어머니'보다는 '무녀'상으로서 느껴야 하며, 우리를 설득하려는 그 종합적 통일을 파악할 수 있어야 한다. 이는 미켈란젤로가 그 언어의 도움으로, 실제로 그런 것보다 더 신비해 보이는 이런 과정을 통해서 강인함과 정력이 넘치는 자신의 영혼을 표현할 수 있었던 형태들이다. 이에 대한 증거가 필요할까? 그렇다면 정신적으로 우리가 방금 본 작품과 직접 대립하지만 주제는 유사한, 너무나도 유명한 〈성좌聖座의 성모〉를 보자.



라파엘로는 무엇보다도 주제를 염두에 두고 있음이 분명하다. 라파엘로의 이상은 정념을 완전히 무시하는 맑고 고요한 정신적 균형에 있다. 그런데 바로 이 스타일적 해석 과정을 반복한다면, 미켈란젤로의 이상은 사각형과, 운동에 담긴 내면적 감각과 일치하는 반면, 여기에서는 모든 것이 어떤 견고한 형태도 차분하고 맑은 리듬을 거스르지 않고서 원만한 화면을 이루게 되는 유연하고 매력적인 곡선의 흐름일 뿐이다. 다만, 아쉬운 점이라면 맵시는 있지만, 없어도 좋았을 어린 세례 요한이다. 그는 스타일에서 일관성이 없으며, 불가분하게 서로 얽힌 이상적 형태 속에서 원운동을 힘차게 암시하는 가운데 무릎을 들어 올린 동정녀라는 천재적 발상을 약화시킨다. 이 작은 인물을 가려놓고 본다면, 눈에 더 시원하게 들어오는 이 전체 군상의 경이로운 건축적 구조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으리라.

스타일의 일관성보다는 낭만적으로'표현'이라는 것을 그토록 배려하는 오늘날 누가 다시금 이러한 미묘함을 알아차릴까? 오늘날에는 작품의 내용을 중시하고, 그것이 형태의 일관성을 대신한다는 생각이 확산일로에 있는 만큼, 이러한 비판에 호응하는 사람은 거의 없겠지만, 가장 형편없는 사람들의 동의를 구하고 싶지도 않다. 보티첼리는 어떻게 시인하던가. 청년기에 그린, 리피의 작품을 거의 베끼다시피 했던 이노첸티 병원의 성모에서 그는 그 모범으로 삼은 작품의 모든 결함을 그토록 다행스럽게 피할 수 있었다고 생각하고 있었으니까 말이다.



화가가 주제를 완전히 모사하면서도 스타일의 모든 가능성까지 활용할 구실을 찾는 미켈란젤로의 〈성가족〉을 보자. 여기에서 예술가의 상상을 부추기는 것은'거룩한 감정'이나 세속적 감정은 분명히 아니다. 이런 식으로 해석된 가족은 차라리 우리를 무신론자로 만들기 때문이다. 반대로 미켈란젤로는 여러 가능성 가운데 어떤 정신적 스타일이 그 필연적인 종합 속에 담긴 이 군상에 적합할 것인지 느끼고 있었다. 그가 이 세 인물의 사지를 이렇게 뒤틀고 억누른 것은 화려한 부분을 그리려고 해서라기보다 오히려 그 스타일에 내재된 긴장 속에, 힘과 의지에 찬 자기 영혼의 구체적 이미지를 옮겨놓으려 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 순수한 조형 요소들에서 이 작품의 특징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에게, 그 모든 감각과 암시는 효력이 없다. 르네상스의 가장 독창적이며 전형적인 것으로 보이는 이러한 일관성과 통일의 재능을 확인하려면, 전문적이고 확실한 교육을 통해 그 언어 요소들을 충분히 이해하고 익히는 것이 필수적이다.

왜곡

결국 미술은 언제나 왜곡이며, 추상적 형태이거나 서정성이거나 스타일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왜곡이란 기술적으로 주어진 것이 아니라 오직 그 자체로서 예술적 현상이다. 이런저런 방법으로 진정한 예술에 이르는 길이란 예술이 그 자체의 결과에 따라 판정될 때에만 정당하고 진실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상당히 기형적 왜곡에 대한 '우선적' 기준을 정하고 구별하는 것은 말이 안 된다. 심지어 편견이 적은 사람조차 이런 함정에 빠지거나 "왜곡의 역사는 기독교 역사의 이랑을 따라 전개된다"(틴티)라고 쓰기도 한다. 이런 편견은 작가정신을, 형상언어 요소들을 구체적 이미지로 직접 옮긴 것이 아니라 그 상징으로 생각하는 데에서 빚어지는 만성적인 오류에서 나온다. 어쨌든 우리는 '왜곡'이라는 말을 계속 사용하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그 말은 실용화되었고, 고작해야 우리가 그것을 대신할 수 있었던 '개성화'라는 또 다른 용어가(다행히도 하나님은 거기에서 우리를 구해주시기는 했지만 말이다), '자유 스타일Liberty style'의 불길한 산물을 연상시키기 때문이다.

일관되고 조화로운 스타일

자연의 추상화인 미술이 항상 상당한 '왜곡'이라는 점을 증명하기 위해 작품 몇 점을 검토해 보자. 예컨대 〈9월〉을 상징하는 이 저부조를 보자. 이 로마네스크 조각가는 사실적 신빙성을 거의 염두에 두지 않았음이 분명하다. 그래서 실생활이라면 이런 인물상은 대단히 기이한 것일 수 있겠다. 그런데 미술에서는 그것이 어떻게 미적 요소로 변형되는 것일까? 그것은 우선 그 스타일이 일관되어 간단명료하다. 작가는 자신의 기질에 충실할 뿐 아니라 자신의 시와 언어를 그것에 결부시키게 될 그 시대, 그 화파의 취미와 문명의 형식에도 충실하다. 요컨대 걸작의 특징은 그 표현언어적 요소들의 동질성이라고 단언할 수 있겠다. 하나의 요소는 필시 다른 요소를 배척하는 경향을 띠며, 그 역의 관계 또한 마찬가지이기 때문에, 절충적 작품이나 화파들은 그들의 삶이 그렇듯이 예술에서도 개성이 없다.

오직 사실적 신빙성에 대한 편견에서 벗어난 문명에 속한 예술가만이, 그리고 결국 단호한 '왜곡자'만이 스타일의 통일성이라는 목적을 위해 그토록 자유롭게 자신의 공상을 구사할 수 있었을 것이다. 이러한 까다롭고 세련된 의도를 실현하려고 작가는 밝고 기본적인 사각형 공간에, 그 또한 밝고 커다랗고 통일된 것일 수 있는 또 다른 충만한 형태들을 대립시켜야 했다. 바로 이런 것들을 위해서 작가는 덩어리를 빈약하게 하거나 그 균형을 파괴하지 않게 하면서, 충만과 공허의 관계가 완벽하게 어울리도록 머리와 사지, 다발과 잎사귀의 비례를 과장해야 했다. 바로 이것이 르네상스 이후의 낡아빠진 실증주의적 경향에서 완전히 벗어난 우리로서는 오랫동안 원시적이며 거친 것으로 비쳤던 당대의 작가에게서 의심하기 어려운 세련되고 미묘한 기법들이며, 반대로 거기에 고취된 오늘의 예술가들이 증명하듯이 이 시기야말로 미술의 역사에서 가장 성숙하고 진화된 시기였다.

일관성의 완벽한 또 다른 사례를 보자. 12세기 것으로 추정되는 베네치아 조각가의 빼어난 〈구세주〉는 여전히 비잔티움의 영향 아래 있다. 우리가 방금 보았던 저부조 〈9월〉은 조형감각과 공간적 균형, 정태적이며 명확한 형태를 겨냥했던 반면, 이 작품은 선의 약동, 추상에의 감흥, 무형의 이미지를 겨냥한다. 전자의 작가는 그 향수를 감추지 못하는 로마의 후손이었고 후자는 오리엔트의 후손이다. 필자는, 마음속에 유사한 신비적 반향을 일깨우며 고조되는 리듬으로서 특히 대담한 왜곡으로써 정확히 암시된 이 형상의 영적 성격에 충분히 공감했으면 싶다. 이 대단히 순수하게 건축적인 구조의 인체에서 옷주름의 유연한 운동은 완벽한 스타일의 통일에 부응한다.



브레라미술관 별관, 영예로운 자리에 걸린 라파엘로의 청년기 작품으로 유명한 〈동정녀의 결혼〉이 있다. 이것은 그 컬렉션의 진주로 간주된다. 그러나 필자는 이 작품에 통일성이 부족하기 때문에 결코 열광하지 않았다(이와 같은 저자의 견해에 동의하는 미술사가, 평론가들이 예로부터 적지 않았다). 사실상 이 작품은 서로 다른 두 스타일로 구상되었다. 윗부분들이 결정체처럼 명쾌한 만큼이나 아랫부분의 형태들은 유약하고 모호하다. 공방에서 상투적으로 그려낸 듯 어쭙잖은 옷주름 속에 희미하고 더러운 오른 발에 그의 것이 아닌 듯이 보일 지경이다 지탱된 불안정한 자세로 서 있는 성 요셉의 유감스럽고 작위적인 모습만 보면 된다. 같은 전시실에 덜 눈에 띄는 벽에는 이와 반대로 진정한 걸작이자 브레라의 진정한 보석인, 피에라 델라 프란체스카의 〈성모와 성자들〉이 걸려 있다. 여기에서도 인물과 건축이 등장하지만 성모의 머리 위에 걸린 난형 조개비로써 거의 상징화한 공간적, 조형적 균제와 조화가 이처럼 완벽하게 구현된 르네상스의 이상을 잘 느끼게 해줄 수는 없을 듯하다. 피에로 델라 프란체스카는 어떻게 건축과 군상이 같은 수법, 같은 정신

으로 빚어진 듯 보이는 놀라운 조화를 획득했을까? 그는 모든 실용적

소도구들을 제거하고 전체를 가장 추상적 회화 요소인 빛에 종속시키면

서, 인간상을 건축구조적 형태의 이상적 추상화에 따르게 함으로써 그렇

게 했다. 색채는 피에로의 절대적 빛으로서, 여기에서 처음으로 그 수용

에 이상적으로 예견된 형태에 따라 훌륭하게 결합되면서 그 또한 조형

성을 맡고 있다. 바로 그러한 색채가 예술의 힘찬 통일성이다. 이렇게

복잡한 과정에서 형태는 그 추상화 과정에서 얻었던 것을 운동으로서

소진시키며, 인물들의 소묘는 마치 하나의 원구처럼 오목한 단면의 회전에 따라 생성됨으로써 어떤 선적 양상도 제시하지 않는다. 바로 이러한 운동 부재와 도해적 요소 또한 스타일 요소에 복종하는 그런 미술의 의미를 꿰뚫어볼 줄 모르는 대중을 당황하게 하고 그들이 피에로 델라 프란체스카를 멀리하게 하는 훌륭한 이상적 추상화이다. 마치 그에게 공물이라도 바치기라도 하듯이 라파엘로의 '걸작' 앞에 모여든 관중은 바로 그 곁의, 아무도 주목하도록 배려하지 않은 또 다른 진정한 걸작에 눈길 한 번 주려 하지 않는다.



아름다운 것과 추한 것

여기 스타일과 시대가 전혀 다른 두 점의 〈베누스〉상이 있다. 첫 번째 것은 유명한 〈메디치 베누스〉이다. 이 입상은 거의 세속적 이상에 가까웠으며, 르네상스로부터 신고전주의를 통해 전달된 현대의 평균적 이상에 머물고 있었음직하다. 전문가들이나 이 입상의 대단한 인기를 부당하게 여기리라. 반면에 고전적 베누스에 대한 무의식적 차용을 뚜렷이 보여주는 안토니오 리초의 〈이브〉를 보자. 이 입상은 오직 그것을 알아볼 줄 아는 사람들에게나 이탈리아 조각의 걸작에 속할 뿐이다. 〈메디치 베누스〉와 비교할 때 그 무명성은 여전히 사실적 신빙성에 대한 편견 때문이다. 그러한 편견으로 이 베누스를 '아름다운' 것으로, 리초의 〈이브〉를 '추한' 것으로 간주하고 만다.



그렇다면, 베누스의 미와는 전혀 딴판인 이브의 미는 어디에 있는 것일까? 베누스의 조각가가 여성의 부드럽고 육감적인 우아함을 재현하기에 바빴지만, 리초는 인물을 각각의 사지가 작품 전체를 지배하는 리듬에 따라 두드러지도록 건축구조적 유기성으로 구성하는 데에만 몰두한다. 따라서 이 조각의 가치는 순수하게 스타일에 있다. 즉 작가는 현실 생활 속에서가 아니라 지적 생활 속에서 그 샘을 끌어내는 그런 미를 겨냥해서 이 여체를 '왜곡'시킨다. 이 두 입상의 운동을 비교해보면 베누스에서는 운동감이 주제의 관례에 따라 부과된 그럴 듯한 외양적 몸짓으로 축소되지만 이브의 몸짓은(그 자체로서는 무의미한 편이다) 전체 형상과 더불어 명쾌한 스타일로 다듬어진 내적 역동성을 드러낸다. 어떤 절실한 감각에 순종하고 어떤 식으로든지 고전적 베누스 상이 암시하려 드는 것을 피해 공간적 감정을 창조하면서 리듬에 따라 전개되는 이 이상적 형태를 즐겨보자. 여러분은 그런 비교를 통해서, 육감적 유혹을 끌면서도 메디치의 베누스가 얼마나 차가우며 생기가 없는지 알게 될 것이다. 그러나 그 추상성 속에서 이브는 묵묵히 풍부한 운동과 내면에 잠재된 생명력을 드러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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