끄는 부모 미는 부모
허영림 지음 | 글로벌콘텐츠
끄는 부모 미는 부모
허영림 지음
글로벌콘텐츠 / 2008년 9월 / 366쪽 / 13,800원
끄는 부모, 미는 부모요즘 아이들은 어릴 때부터 학원이나 과외를 쫓아다니느라 놀 여유가 없다. 예전에는 학교가 끝나면 집에 가방을 내려놓기가 무섭게 밖으로 뛰쳐나가 하루 종일 쏘다니며 노는 게 아이들의 일과였다. 일부러 창의적인 놀이를 하려고 애쓰지 않아도 아이들의 아이디어는 늘 반짝였고, 갖가지 방법과 다양한 시도들을 통해 호기심을 채우느라 심심할 사이가 없었다. 그러나 요즈음은 사정이 많이 달라졌다. 많은 부모들이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면 대부분은 주위에 휩쓸려 저학년 때부터 아이를 이 학원 저 학원에 보낸다. 그러나 어려서 놀이에 집중하던 집중력이야말로 학교에 가서는 공부에 몰두하고, 성인이 되어 사회에 나가서는 자신에게 주어진 일을 잘 해낼 수 있는 원천이 된다. 사실상 놀이와 공부와 일이 하나의 연장선상에 있는 것이다. 놀이는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모든 인간에게 삶의 활력을 주는 생활의 일부다. 공부만 강조하는 요즘같이 아이들이 노는 것을 시간 낭비로 생각하고, 나이와 학년에 상관없이 선행 학습만을 강요하다 보니 아이들은 일찍 스트레스를 경험하게 된다. 하고 싶은 대로 해 본 아이가 통제력이 있고 너그러우며, 다른 사람의 감정에도 민감하게 반응한다.
내 아이가 누구보다 똑똑하고 잘나가기를 바라는 것은 모든 부모의 한결같은 마음이다. 하지만 과연 아이가 요구하기 전에 학습지나 학원 등 모든 걸 준비해 주는 게 부모의 올바른 역할일까? 아이가 정말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하는 것과 부모가 시켜서 어쩔 수 없이 하는 것은 효과 면에서 하늘과 땅 차이다. 부모가 앞장서서 아이를 끌고 가려다 보면 아이가 자칫 자신을 위해 공부하는 게 아니라 부모를 위해 공부하는 것으로 생각하거나 싫증을 내기 때문에 교육적인 효과가 훨씬 떨어질 수밖에 없다. 대부분의 부모들이 조기 교육이라고 하면 좀더 자란 후에 배울 것을 미리 배움으로써 다른 아이들에 비해서 이른 시기에 월등한 지식을 갖추는 것으로 생각한다. 실제로 지금 이루어지고 있는 조기 교육 대부분이 학원을 중심으로 한 이러한 주입식 교육이다. 그러나 참된 조기 교육은 아이의 특정한 능력을 기르는 것이 아니라 발현되지 않은 아이의 잠재 능력을 개발하여 유연한 두뇌를 가진 아이로 만드는 것이다.
미는 부모는 아이가 주체가 되게 하고 끄는 부모는 부모 스스로 주체가 된다. 학습은 평생 지속되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아이 스스로 할 수 있도록 해 주어야 한다. 물론 1차적 교육은 부모가 맡아야 하지만, 한풀이 식으로 부모 자신이 못했던 공부나 악기교육을 자식에게는 꼭 시키고 말겠다는 마음에서 강요해서는 안 된다. 대개 동양권에서는 부모가 적극적으로 개입해 끌고 가는 교육 형태가 많다. 물론 부모가 교육에 열성적인 덕분에 아이가 공부를 잘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는 초등학교 3학년 이하의 아이에게만 해당되는 말이다. 초등학교 3학년 이후부터는 스스로 자신이 원하는 것을 선택해 자율적으로 공부하는 아이들이 부모 등쌀에 못 이겨 겨우 따라가는 아이보다 훨씬 잘한다. 부모가 시켜 마지못해 억지로 하는 공부는 결국 아이가 학습을 노동으로 여기게 되므로 오래할 수 없고 즐거움을 느끼지 못한다. 부모가 인내심을 가지고 아이를 믿고 기다려 주어야 자율적이고 창의적인 아이로 키울 수 있다.
놀아 주는 아빠가 똘똘한 아이를 만든다여러 연구에 따르면 어려서 아빠와 많이 논 아이가 인내심이 많고 학업 성취도와 사회성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조금씩 활동하기 시작하는 단계가 되면 아이는 신체를 이용한 놀이를 좋아하게 되는데, 이 시기에는 특히 아빠와의 놀이가 중요하다. 아빠를 통해 아이의 IQ가 발달한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아이의 지적 호기심을 충족시켜 주는 면에 있어서도 아빠의 역할은 매우 중요하다. 대부분의 아이들은 지적 궁금증에 대해서는 아빠에게 물으려는 경향이 강하다고 한다. 다만 자신들의 욕구를 채워 줄 아빠가 없다 보니 급한 대로 곁에 있는 엄마에게 질문하는 것이다. 이때 집안일이며 아이 뒤치다꺼리로 정신없는 엄마가 건성으로 대답한다면 이건 최악의 교육이다. 황당한 엄마의 대답을 들은 아이는 더 이상 엄마에게 이러한 질문을 하려 하지 않을 것이다. 아이들의 질문은 성장의 무기다. 그리고 그 무기가 힘을 발휘할 수 있게 하는 것이 부모와의 상호 작용이다.
아이를 올바로 키우기 위해서는 아빠와 엄마의 역할이 병행되어야 한다. 아빠를 통해 지적 호기심을 충족하고 정의감을 배우며, 엄마를 통해 사랑을 배울 때 아이가 완성된 인격체로 올바로 성장할 수 있다. 이를 위해 엄마 자신부터 돈은 남편이 벌어오고 집안일과 육아는 아내가 한다는 생각에서 벗어나야 한다. 아빠가 아이의 일에 관심을 가질 수 있게 하고, 주말에 아이들과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계획을 세워 주는 게 바로 엄마의 역할이다. 아빠가 실수를 하더라도 엄마가 민감하게 반응하거나 비난하지 않는 것도 중요하다. 예를 들어 아빠가 아이의 옷을 잘못 입혔다거나 기저귀를 잘못 채웠다고 해서 두 번 손이 가지 않도록 잘하라고 지적한다면 아빠는 기분이 나빠질 수밖에 없다. 또한 아빠를 무시하는 듯한 엄마의 이런 태도는 아이에게 교육적으로 좋을 리 없다. 아빠가 육아에 관심을 갖게 하기 위해선 그들의 생각과 의견을 받아들이는 여유가 필요하다. 아이는 아빠와 엄마의 공동 작품이다. 그러므로 아빠의 역할에 한계와 범위를 정하기보다는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주인 의식이 필요하다.
아이의 성격, 부모하기 나름"아니, 너는 무슨 여자애가 그 모양이니? 조신하지 못하게……." "남자가 씩씩해야지." "어디 여자애가 감히……." 우리가 무심코 하는 말 가운데 성별에 따라 행동을 규제하는 말이 적지 않다. 유교적 남존여비 사상이 여전히 뿌리깊게 박혀 있다 보니 자연이 아이를 교육할 때도 미리 정해진 틀에 맞추려는 부모가 많다. 물론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성별이 정해져 있다. 하지만 아이의 성격과 정서는 오히려 자라면서 어떤 교육을 받느냐에 의해 형성된다. 특히 성별에 따라 강요된 역할 교육은 아이에게 성별에 따른 획일화를 요구할 수 있다. 그러나 이는 아이의 기질을 무시하는 처사다. 아이마다 각기 다른 성향을 파악하지 않은 채 아이가 어떤 성향으로 자라 주기를 바라는 것은 자칫 그 아이에게 열등감과 다른 성에 대한 그릇된 인식을 심어 줄 우려가 있다.
어린아이들이 가장 좋아하고 많이 하는 놀이가 가정생활을 반영한 소꿉놀이다. 2,3세 때에는 성 역할 개념이 뚜렷하지 않아 남자아이가 소꿉놀이를 하기도 하고, 여자아이가 권총이나 탱크를 가지고 놀기도 한다. 이럴 때 부모가 "쯧쯧, 남자가 그게 뭐니? 고추 떨어진다"거나 "여자애가 얌전하지 못하게……"라며 창피를 주면 아이는 부모의 고정관념의 틀 속에 갇혀 버리게 된다. 오히려 유아기에는 다른 성의 역할을 경험해 볼 수 있는 장난감이나 환경을 제공해주는 배려가 필요하다. 이런 기회를 통해 남자와 여자의 역할을 배울 수 있고 서로의 성에 대한 편견도 없앨 수 있다. 현대 사회에서는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고 여성성과 남성성을 고루 갖춘 양성성의 성격, 즉, 바람직한 여성적 특성과 남성적 특성이 공존하는 성격 특성이 이상적이다. 이런 면을 생각해 볼 때, 평소 일부러라도 남자아이에게 설거지나 걸레질을 시키거나 여자아이에게 전구를 갈아 끼우는 아빠를 돕게 하는 것이 좋다. 여자와 남자의 일을 구분 짓지 않고 이것저것 해 보게 함으로써 성별의 구분 없이 양성의 역할을 체험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아이에게 남성으로서 또는 여성으로서 어떤 역할을 담당해야 한다고 규정지어 주기보다는 아이의 우수한 기질을 발견해 이끌어내고 그것을 발전시킬 수 있도록 북돋워 주는 것이 중요하다. 21세기 현대 사회에서는 남자의 일과 여자의 일을 구별할 필요가 없으며 장차 아이가 살아갈 사회는 오히려 '남자 같은 여자'와 '여자 같은 남자'가 더 우대받는 시대가 될 것이다.
숨겨진 아이의 가능성을 찾아라인류가 과학에 관심을 갖게 되면서 지능의 개념은 변화를 거듭해 왔다. 지능의 개념은 18세기에는 재능, 19세기에는 학습 능력, 20세기 초반에는 세상을 이해하는 능력, 20세기 후반에는 정보 처리 과정으로 조금씩 달라졌다. 지능이 이런 개념의 변천 과정을 거쳐왔지만 인류는 한 사람 한 사람의 독창성을 무시하고, 지능을 종합적인 틀에서 해석하지 못하고 단지 언어적 수학적인 과제만을 중시해 왔다. 우리 사회에서도 '지성인'은 보통 학력이 높고 고소득의 직업을 가진 생활수준이 높은 사람을 말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20세기가 낳은 최고의 천재 아인슈타인 박사나 90년대 대한민국을 뒤흔들어 놓았던 음악 천재 서태지 등 한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낸 사람들이 모두 학창 시절에 소위 말하는 '모범생'이었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들이 각자의 분야에서 최고라고 인정하는 것을 주저하지 않는다. 재능은 어렸을 때 발견되기도 하지만 커가면서 서서히 드러나기도 한다. 학교에 들어가기 전의 아이들은 아직 가능성이 많고 어느 분야에 소질이 있는지 확인하기가 쉽지 않으므로, 지금 당장 아이의 재능이 눈에 띄지 않는다고 조급해할 필요는 없다.
수학에는 별 흥미를 못 느끼지만 춤은 기가 막히게 잘 추는 아이가 있다면 춤을 더 잘 출 수 있도록 소질을 개발해 주는 게 우선이지, 수학 과외를 시켜 한 문제라도 더 풀게 하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다. 주위에 휩쓸려 무조건 공부만 강요하면 아이는 스트레스와 부담감으로 피곤해하고, 심지어 반발심마저 느끼기 때문에 부모가 기대하는 효과를 얻지 못하게 된다. 또한 이것저것 모두 시켰다가 이도 저도 못하면 오히려 자신감을 잃는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 사실 교육 현장에 있는 초등학교 교사들은 일찍 이것저것 해 본 아이들이 수업 시간에 집중하지 못하고 산만하며 새롭게 무언가를 배우고 학습하는 것에 재미를 느끼지 못해 쉽게 지루해 한다고 우려한다. 아이가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전에 이것저것 배우게 해 잘하는 게 많은 '만능'아이로 만들려는 부모의 마음은 이해가 되지만 아이는 절대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지금은 개성 시대다. 어떤 분야가 제일 낫다는 식의 획일적인 사고는 이제 사라져야 한다. 현대 사회는 다양한 재능이 인정받는 시대다. 비록 부모의 기대와는 다를지라도 아이가 가지고 있는 재능을 인정하고 꾸준히 개발할 수 있도록 이끌어 주는 게 바로 진정한 부모의 역할이다. 무엇이든지 잘하는 만능 아이, 즉 멀티 지능형 아이는 긴장과 스트레스 속에서 살 수 있고, 한두 가지를 특별히 잘하는 아이, 즉 모노 지능형 아이는 자신이 잘하는 분야에서 인정받아 성취감을 맛보며 지낼 수 있다. 실제로도 박세리, 박찬호, 서태지 등 한 가지 분야에서 탁월한 모노 지능형 인간이 모든 이의 인정을 받고 있지 않은가. 부모 스스로 자신의 아이가 멀티 지능형이 되기를 원해 이것저것 가르치다가 결국 멍청한 아이로 만들고 있지는 않는지 생각해 보아야 한다.
세 살 적 버릇 여든까지 간다많은 학자들이 0~3세 아이를 스펀지 혹은 찰흙에 비유하곤 한다. 스펀지처럼 주어지는 대로 모든 것을 흡수하고 찰흙처럼 만드는 대로 형태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아기는 생후 1년 반 정도까지 부모와의 충분한 스킨십과 대화를 통해 '자극 허기(Stimulus Hunger)'를 채우며 부모와의 강한 애착 관계를 형성한다. 이 시기에 부모가 가능한 많은 시간을 할애해서 아기와 놀아주어야 아기가 자신을 사랑받는 존재로 인식해 정서적 안정감을 얻을 수 있다. 훗날 만나게 되는 다른 사람들과 원만한 인간관계를 형성할 수 있는 자신감이 이때 형성된다. 만약 이 시기에 자극 허기가 채워지지 않으면 아이는 불안감을 느끼게 된다. 대체로 어릴 때는 부모와 몸으로 부대끼는 신체적 접촉을 통해 자극 허기를 채우지만, 어느 정도 자라면 말로 칭찬하고 인정받으며 '인정 허기(Recognition Hunger)'를 채우고 싶어한다. 가령 "넌 참 잘하는 게 많아", "넌 충분히 할 수 있어", "엄마는 너를 믿는다" 등의 말을 통해 능력을 인정받고 격려 받으며 자신에 대한 믿음을 확인한다.
18개월~3세 사이에는 자기를 표현하는데 때로는 공격적인 충동을 보이면서 자기주장을 하기도 한다. 어차피 할거면서 일단 "싫어" "안 해" 하며 반항적인 태도를 보이기도 한다. 따라서 이 시기부터 부모가 적절히 개입하여 애정을 바탕으로 한 훈육을 통해 자율성과 독립성, 충동 조절 능력 등을 길러 주고, 옳고 그름, 해야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 등을 구체적으로 가르쳐 준다. 이 시기에 적절한 훈육이 이루어지지 못한 아이는 나중에 여러 형태로 문제 행동을 보인다. 가령 집에서 부모가 엄격하게 통제하는 탓에 순종적인 모습을 보이며 참고 지내는 아이의 경우,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하지 못하고 하기 싫은 것을 해야 할 때가 많은 만큼 내적으로 계속 불만이 쌓이게 된다. 이러한 아이는 집 밖으로 나가 부모의 통제를 벗어나면 친구를 때리는 등 난폭한 행동으로 그동안 쌓였던 욕구불만을 터뜨리게 된다. 아이가 이러한 행동을 보이는 경우 아이의 욕구불만의 원인을 찾아서 해결해 주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
또한 좋은 습관을 들이느냐의 여부는 어릴 때 주변 환경을 어떻게 조성하느냐에 달려있는데 바람직한 습관을 형성하기 위해서 올바른 훈육이 이루어져야 한다. 좋은 습관은 좋은 훈육에서 나오는 것이다. 아주 어린 아이라도 부모가 일관된 태도로 되는 것과 안 되는 것을 명확하게 구분 지어 훈육하면 충분히 알아듣는다. 때로 아이는 제 뜻대로 안 되면 떼를 쓰거나 고집을 피우기도 한다. 이미 떼를 쓰면 통한다는 것을 많이 경험해 왔기 때문에 아이는 이번에도 통할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부모가 판단했을 때 들어줄 수 없는 요구라면 아무리 고집을 부려도 끝까지 들어주지 말아야 한다. 처음엔 안 된다고 했다가 나중에 결국 들어주는 것은 가장 비교육적이다.
아이에게 좋은 습관을 들이기 위해서는 칭찬이 필요하다. 칭찬을 받은 아이는 다른 사람에게 인정받았다는 생각에 기뻐하고, 한번 기쁨을 맛본 아이는 다음에도 칭찬받을 수 있는 행동을 하려고 한다. "혼자 양말을 신었구나. 아주 잘 신었어. 양말 뒤꿈치를 좀더 잡아당겨 신으면 더 편하게 신을 수 있단다" 하는 식으로 잘한 점을 먼저 칭찬하고 나중에 보완할 부분을 지적해 주면 아이는 조금씩 새로운 것을 배워 나갈 수 있다. 아이가 잘못했을 때는 왜 혼나는 것인지 이유를 설명하되 길게 잔소리를 늘어놓으며 혼내기보다는 가능한 짧게 지적하고 끝내는 것이 효과적이다. 부모가 먼저 올바른 생활 태도를 보이는 것도 중요하다. 아이는 부모를 보고 선악의 판단을 익혀 나간다. 부모는 하지 않으면서 아이에게만 시킨다든지, 나중에 하겠다고 했다가 약속을 지키지 않는다든지 하는 행동을 보이면 아이는 부모를 불신하게 된다. 아이에게 말로만 주입하거나 꾸짖어서 잘못을 교정하려고 하지 말고 부모가 먼저 본보기를 보여 아이가 배울 수 있게 한다.
우리아이에게 친구가 생겼어요'공부'의 상대 개념이 '놀기'라고 생각하는 어른들 입장에서는 마냥 신나게 뛰어노는 아이가 걱정스러울 수도 있다. 그러나 아이들에게 있어 놀이는 곧 학습이자 정서 순화의 수단으로 성격 발달에 큰 영향을 미친다. 아이는 놀이를 통해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세계에 대해 탐색하면서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많은 것을 배운다. 즉, 아이에게는 놀이가 곧 학습이다. 아이는 놀면서 사물을 관찰하고 여러 방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