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적 즐거움
필립 길버트 해머튼 지음 | 베이직북스
지적 즐거움
P.G. 해머튼 지음
베이직북스 / 2008년 8월 / 454쪽 / 18,000원
Part 1 지적 생활에 있어서의 육체적 기반정신노동이 질병을 일으키지 않지만 기존의 질병을 악화시킬 수 있는지 입증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질병의 유일한 원인이 아니라는 것은 널리 인정되고 있다. 또한 신체 기능에 지장을 초래하는 원인은 여러 가지가 있으므로 두뇌 활동이 적지 않은 원인이 된다고 누구도 단정할 수 없다. 지적 노동이 원인이 되어 병이 악화될 수 있다 해도 그 경우 지적 노동은 간접적인 원인에 불과한 경우가 많다. 우리의 몸이 병드는 것은 지적 노동 때문이 아니라, 너무 서재에 틀어박혀 있다가 생긴 운동부족이며, 취미생활을 즐기지 않은 빈약하고 단조로운 생활 때문이다.
월터 스콧 경(1771-1832, 스코틀랜드의 소설가, 시인, 역사가, 전기 작가)은 유별나게 건강에 자신만만했다. 말년에 찾아온 중풍 발작은 생활이 궁핍해져 너무 많은 일을 했기 때문이다. 그토록 심하게 지적 노동을 하지 않고 고민하지 않았더라면 그는 틀림없이 좀더 오래도록 건강을 유지했을 것이다. 바이런(17888-1824, 영국의 낭만파 시인, 풍자가)의 죽음은 시적 흥분 때문인데 그에 못지않게 방탕한 생활 태도가 원인이 되었다. 이처럼 두 가지 악영향이 겹치지 않고 어느 한 쪽만 있었다면 좀더 오래 살았을 것이다. 바이런의 경우 심신을 모두 소모시키는 생활을 하면서, 설상가상으로 끊임없이 시적인 흥분을 일으키는 격렬한 창작활동으로 인해 자기의 생명을 갉아먹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적 노동이 원인이 되어 병이 악화될 수 있다 해도 그 경우 지적 노동은 간접적인 원인에 불과한 경우가 많다. 우리의 몸이 병드는 것은 지적 노동 때문이 아니라 너무 서재에 틀어박혀 있다가 생긴 운동부족이며, 취미생활을 즐기지 않는 빈약하고 단조로운 생활 때문이다.
워즈워스는 집 밖을 거닐면서 시를 썼다. 그렇게 함으로써 책상에 틀어박힌 생활이 초래하는 해로움에서 몸을 지켜냈다. 일반적으로 걸출한 지성의 소유자가 자기의 능력을 지속적으로 충분히 발휘할 수 있었던 것은 책상에 틀어박혀 지내는 생활이 주는 나쁜 영향을 제거했기 때문이다. 칸트는 원래 건강을 타고나기도 했지만 평상시 자신의 생활습관에 극도로 주의를 기울였다. 칸트는 육체라는 기계를 원활하고 순조롭게 움직이기 위해서 30년 넘게 아침이면 어김없이 정확히 같은 시각에 일어났으며 신경질에 가까울 정도로 끊임없이 자신의 건강상태를 관찰했다. 칸트는 일상생활 속에서 세상의 일반 습관에 따르지 않고 자기 몸이 요구하는 것을 우선으로 삼았다. 워즈워스의 생활습관은 훌륭한 습관의 전형인데, 특히 그가 도보여행을 즐긴 것은 문필에 종사하는 사람에게 무엇보다 좋은 본보기가 된다. 그리고 괴테는 육체운동이면 무엇이건 즐겼다. 달빛을 받으면서 일름강에서 헤엄치거나 슈완제 호수에서 바이마르의 명랑한 신하들 몇 명과 스케이트를 타거나, 말을 타고 주변을 돌아다니며, 때로 넘쳐나는 정력을 주체하지 못하고 망나니처럼 군 적도 있다. 르네상스 시대에 가장 위대한 지성의 대표인 레오나르도 다빈치(1452-1519, 이탈리아의 화가, 조각가, 건축가)는 승마를 몹시 즐겼다고 한다. 이따금 빈곤에 허덕이기도 했지만 결코 손에서 말을 놓지 않아 마부가 휴가조차 내지 못했다고 한다. 이렇듯이 육체적 생활과 지적 생활은 충분히 양립할 수 있다.
Part 2 지적 생활에 있어서 정신적 기반지적 생활이 주는 기쁨이 큰 것은 지적 노동이 그만큼 힘들기 때문이다. 시를 창작하는 작업은 사람을 가장 도취하게 만드는 것이지만, 시 창작을 포함한 인간의 일이란 어떤 종류이건 모두 뼈를 깎는 듯 힘든 일이며, 훌륭한 성과를 거두려면 상당히 강한 정신력이 요구되는 것이다. 『아일랜드의 선율』과 『랄라 루크』의 작가 토마스 무어는 어떠한가. 그는 시가 머리속에 떠오를 때면 꿈속처럼 황홀한 천국에 있는 듯한 기분이 들지만 막상 그것을 정확한 말로 표현하려고 애쓰다보면 천국은커녕 지옥을 헤맨다고 했다. 시를 창작하는 일은 온갖 노력이 뒤따르는 것이라는 의미가 담겨있다.
지적인 사람들의 목표는 그들의 정신을 단련하고 또 단련하는 것이었다. 조르다노부르노(1548-1600, 이탈리아의 자연철학자, 이단자로 화형에 처해졌다)의 정신적 특질 중에서 최선, 최고의 것은 모두 철학을 향한 고귀한 정열에서 나온 것이다. 그는 철학을 위해서라면 노동도 고뇌도 귀양도 쉽게 견딜 수 있다고 했다. 그는 '짧은 노동 속에서 긴 휴식을, 가벼운 슬픔 속에서 커다란 기쁨을, 좁은 귀양지에서 광대한 조국의 땅'을 찾아냈던 것이다.
지적생활에는 커다란 쾌락이 뒤따르며 또 독특한 즐거움이 있다. 그 쾌락은 힘든 훈련을 견뎌내면서 마음의 지주로 자리잡는 것이지 훈련과 대립하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이 중심을 이루는 힘을 확립하려면 오직 훈련을 쌓아 단련하는 수밖에 없다. 이 힘이 없으면 자유로운 행동도 확실한 자제심도 지닐 수 없다. 해부학, 생리학, 식물학에 정통해 있었으며 동시에 뛰어난 시인이기도 했던 스위스 베른 출신의 알브레히트 본 할러(1708-1777, 생리학, 해부학, 식물학, 발생학, 시 및 과학적 문헌 등에 많은 기여를 한 실험 생리학의 창시자)는 특히 해부학 분야에서 당대 최고의 학자였다. 그는 해부학자가 된 것은 오로지 끊임없는 자기 훈련 덕분이었다. 훔볼트는 자기 지식에 만족한 적이 없으며 끊임없이 더 많은 것을 열렬하게 알고 싶어했다. 또 아무리 사소한 도움이라도 얕보지 않고 솔직하게 가르침을 받아들이는 열린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훔볼트는 이처럼 경건한 마음과 자신에 대해 흔들리지 않는 자신감을 품고 있었고, 개인적인 문제로 위기에 빠져도 늘 냉랭함과 예민한 관찰의 눈을 잃지 않았다.
예나 지금이나 부도덕한 생활을 한 지적 인간은 많다. 바이런은 실제로 부도덕했고 또 고의로 부도덕한 삶을 살았다. 지적인 사람의 삶의 방식에는 보통 사람에게서 볼 수 없는 어떤 특이한 면이 있다. 그 특이한 면 때문에 지적인 사람이 부도덕한 자로 몰리기도 한다. 그들은 이성의 지적인 부분에 강하게 끌린다. 서로 대화를 나누다보면 더욱 관심이 깊어지고 확대되어 그 상대방과 함께 살고 싶다는 바람을 가지게 된다. 또한 지적인 인간은 부도덕한 행위에 빠지지 않을 만큼 강하고 독특한 이성의 힘이 존재한다는 점을 덧붙여도 좋을 것이다. 이 정신적 기반인 이성의 힘 덕분에 고귀한 야심가들은 모두 자제력을 갖게 된다. 성취해야 할 대망이 있을 때 인간은 커다란 꿈을 위해 자제심을 발휘하고, 관능의 유혹과 싸우게 된다. 앞길에 놓여있는 거대한 무게를 견딜 수 있을 만큼의 강인한 육체와 이 지적인 두뇌를 유지할 수 있느냐 없느냐가 가장 중요하다.
Part 3 지적인 삶에 있어서의 교육우리가 과학이니 무지니 말하는 것은 단순히 지식이 비율이 많고 적음에 지나지 않는다. 지금까지 지식의 양만 많으면 아무런 의심 없이 좋은 것이라며 권장해 왔다. 하지만 지식의 양이 많은 것이 좋은지 나쁜지는 순전히 많은 지식으로 정신적 향상에 바람직한 영향을 미쳤는가의 여부에 달려있다고 하겠다. 딜레당티즘(예술이나 학문 등을 취미 삼아 하는 태도나 경향)의 본질이 불완전한 학식과 예능적인 재능에 만족하는 것이라면, 학교 교육을 받은 정도의 사람은 모두 딜레당트(예술이나 학문 등을 취미 삼아 하는 사람, 아마추어 학문, 예술 애호가)로 볼 수밖에 없지 않을까? 오늘날 학교 교육의 내용은 너무 다양하고 풍부해서 젊은이들은 부질없이 여러 분야의 것을 배우다 결국 어중간한 지식밖에 익히지 못하게 된다. 따라서 학교에서 배우지 않은 철저한 전문 직업 훈련을 착실하게 행해야 효과를 볼 수 있다.
우리는 지식을 넓혀 그것을 더 뛰어나고 더 유효한 도구로 만들기 위해 공부하는 것이다. 이것이 첫 번째 목적이다. 젊은 시절 괴테는 끊임없이 그때그때 가장 관심이 있는 것에 몰두하여 다방면의 연구에 정열을 기울였다. 그것은 탁월한 습득 능력과 풍요로움으로 쑥쑥 자라나 자제력을 갖춘 위대한 지성의 소유자가 다양한 토양에 뿌리를 뻗어 그곳에서 수액의 성분을 흡수해가는 모습을 여실히 보여주는 좋은 예라 할 수 있다. 전공인 법률학은 게을리 하고 전공 외의 과목조차도 게을리 했다. 그러나 대학에서 가르칠 수 있는 이외의 학문에는 대단히 폭넓게 관심을 갖고 있었으므로 그의 교양은 실로 풍요로웠다.
정신의 진정한 훈련은 실제적인 어떤 연상과 결부되어야만 결실을 거둘 수 있다. 쌍방의 연상 관계가 깊으면 깊을수록 또 관련성이 쌍방의 본질에 뿌리를 두고 있을수록, 또 표면적이고 사소한 것과 관계가 없으면 없을수록 그만큼 지성은 잘 단련된다. 그리고 합리적 기억법이란 자연과학에서 채용되고 있는 방법이다. 우리들이 해부학과 식물학을 기억하는 것은 그것이 가르치는 사실이 무수하게 많아도 자연의 구성 질서에 따라 배열되어 있기 때문이다. 언어 연구에서도 마찬가지이다. 각각 언어의 진정한 구조상의 관계를 파악하고, 그것을 기억하기 시작하면 몇 개 국어를 할 수 있다. 이처럼 본질적인 관련이 있는 것 간에 연상을 하여 머리속을 질서정연하게 만드는 것이 지성의 올바른 움직임과 조화하는 유일한 기억법이다. 과거에 모든 학문을 익혔다고 할 수 있는 인물은 레오나르도 다빈치이다. 그러나 현재는 그와 같이 걸출한 인물의 배출은 불가능하다. 현대의 전문가들은 레오나르도 시대보다 현격하게 진보해 버렸다. 그는 위대한 예술가였지만, 그 예술적 역량은 자유로운 경지까지 다다르지 못했다. 벨라스케스(1599-1660, 스페인의 화가, 19세기 프랑스 인상주의의 주요 선구자)의 거칠 것 없이 화려하고 다양한 붓놀림, 루벤스(1577-1640, 플랑드르의 위대한 화가)의 화려하고 자유분방함은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을 정도이며, 티치아노(1488-1576,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대표적인 베네치아 화가)와 파올로 베로네세(1528-1588, 16세기 베네치아 화파 화가)의 확실하고 탁월한 솜씨의 청아함에 그는 미치지 못했다.
교육이란 말은 다양한 의미에서 사용되고 있으므로 언제나 혼란이 생긴다. 어떤 사람은 지식 습득의 의미로 사용하고, 어떤 사람은 능력 개발의 의미로 사용한다. 전자의 의미에서 말하면, 절반의 교육밖에 받지 못한 사람이란 당연히 지녀야 할 지식을 절반밖에 갖고 있지 않는 사람, 혹은 완전한 교육을 받은 사람이라면 완벽하게 알고 있는 온갖 학문도 어중간하게 아는 사람이란 말이 된다. 페리클레스(B.C 495-429, 아테네의 정치가) 시대 그리스인으로 그의 절반만큼 지식이 있었던 자가 있었을까? 이것은 지식의 습득이라는 측면에서 본 것이고 능력 개발의 측면에서 보면 그가 얼마나 손쉽게 자기의 모든 능력을 자기 뜻대로 발휘할 수 있는 인물인지 생각해보기 바란다. 교육의 성과가 구체적 기술에 의해 평가되는 것이라면 그야말로 가장 훌륭한 성과를 체현하는 인물임에 틀림없다.
Part 4 지적인 삶에 있어서의 시간시간 절약에 대해 관찰한 점을 몇 가지 말하고 싶다. 첫째, 확실한 것은 당신처럼 진지하게 교양을 추구하고 도덕적 의무를 인생의 주된 목표로 삼는 사람은 어떤 식으로든 쓸데없는 일에 시간을 낭비할 우려가 없다는 점이다. 지적 생활을 하는 사람 중에 연구시간을 합리적으로 사용하는 방법을 터득한 사람은 거의 없다. 시간을 절약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무엇인가를 배우거나 행할 때에 반드시 완전하게 하겠다는 강한 기개를 가지고 임해야 한다. 한편 도저히 할 수 없다는 한계가 보일 때 깨끗하게 그것을 인정할 줄 알아야 한다. 시간과 기간은 인간의 평생을 좌우하는 중요한 요인이다. 그러나 시간과 기간에 대해 판단해 보면 너무도 쉽사리 오류를 범하고 있다. 보편적으로 모든 사람이 가장 근면하고 이성적인 인물조차 이 판단을 잘 못한다. 인생은 짧고 시간은 화살처럼 지나가 버리므로 지금 이 순간을 잘 이용해야 하는 것쯤은 누구나 알고 있다. 그러나 무엇을 하고 무엇을 하지 말아야 할지를 정확하게 알려면 풍부한 경험과 뛰어난 지혜가 있어야 한다.
지적인 인간은 모두 한 가지 이상의 연구에 종사하고 있다. 특히 그들이 가장 몰두하고 있는 연구를 당신은 자신의 직업이라 생각하면 된다. 그렇게 하면 나머지 연구는 시간상으로 보면 다른 연구자의 경우와 거의 대등하며, 화가가 문학을 공부하듯 직장인인 당신도 문학을 배우고, 문학자가 과학을 배우듯 당신도 과학을 공부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먼저 제1단계로 당신이 해야 할 일은 시간을 규칙적으로 합리적으로 사용하는 습관을 길러야 한다. 왜냐하면 일이나 건강에 상관없이 매일 2시간 가장 좋은 때에 책을 읽기 위한 시간을 얻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고도의 지적 노동은 조금이라도 초조함이 생기면 잘 안 되는 것이 현실이다. 과학적 발견도 마찬가지이다. 과학발견은 두뇌에 순간적으로 떠오르는 것인데, 그 번뜩임도 고통스럽게 실험을 거듭하면서 오랜 숙고를 통해 얻은 성과물인 것이다. 일의 순서를 잘 배치하는 것이 지적 생활의 가장 중요한 요소이다. 이것을 위한 비결은 선택이다.
러스킨(1819-1900, 영국의 비평가, 사회 사상가)과 단테 로제티(1828-1882, 영국의 화가, 시인)의 경우처럼 문학자와 예술가로서의 재능을 타고났으면서 균형을 이루며 산 사람들은 없다. 러스킨은 화가로서도 충분히 재능을 발휘할 수 있는 모습을 확실하게 보여주었고 로제티는 실제로 뛰어난 시적 재능을 지니고 있었으며 시인으로 살았다면 많은 뛰어난 시를 썼을 것이다. 이처럼 재능이 풍부한 사람들이 지금의 일을 하게 된 것은 재능의 문제라기보다 오히려 시간의 문제이다. 마찬가지로 앵그르(1780-1867, 프랑스의 화가, 프랑스의 신고전주의 회화를 이끈 지도자로 고전주의 회화를 완성)가 화가로 세상에 알려지느냐, 바이올리니스트로 알려지느냐는, 어느 쪽 재능이 우수한가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어느 쪽에 좀더 시간을 들였는가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다.
Part 5 지적인 삶에 있어서의 금전부유함이 가져다 준 쾌락이 단지 지적 노동을 게을리 하도록 유혹하는 것뿐이라면 아직은 저항하기 쉽다. 영국 국민은 건전하지 못한 쾌락에 빠지지 않을 만큼 당당하고 강한 정신력을 가지고 있다. 영국 국민은 휴식과 편리함의 장점을 좋아하지만, 타락한 생활로 인해 자기 몸의 활력을 희생물로 바치는 행위는 하지 않는다. 그러나 거액의 부는 다른 종류의 유혹이 뒤따르게 마련이므로 영국인도 여기에 굴복해버린다. 게다가 이런 종류의 유혹에 굴복할 때는 양심의 만족감이 있고, 당연한 노력을 완수하고 있다는 감정까지 수반되는 것이다. 심술궂게 부의 여신은 쾌락과 더불어 명예와 권력까지 준다. 부자는 타인에게 많은 일을 시킬 수 있고, 타인의 힘을 빌리지 않고는 아무 일도 할 수 없다고 느낀다. 그래서 일하는 것을 지도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강한 유혹에 내몰리게 된다. 부자는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단지 지불능력을 발휘하기만 하면 된다. 그것이야말로 자신의 가장 만족스럽고 유능한 능력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이러한 유혹을 잘 극복한 예로 대지주였던 천문학자 로스경(1800-1867, 아일랜드의 천문학자, 19세기 최대 반사망원경 '리바이어선'을 만듦)의 예를 들 수 있다. 로스경은 우수하지만 가난한 사람들이 연구하고 있는 천문학으로 명성을 얻었다. 그것은 로스경의 재산이 거대한 망원경을 만드는 데 쓰였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