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중심주의를 비판한다
제임스 M. 블로트 지음 | 푸른숲
유럽 중심주의를 비판한다
제임스 M. 블로트 지음
푸른숲 / 2008년 8월 / 433쪽 / 18,000원
막스 베버 : 서구의 합리성 베버는 자기가 속한 시간과 공간, 계급의 전형적인 망상을 끝까지 붙들고 있던 인물이었다. 바로 당시의 유럽 자본주의가 사회적 진화의 정점이었다는, 다시 말하면 사회 진화의 최종 산물까지는 아니더라도 최소한 그때까지 인류가 이룰 수 있는 최고 수준의 성취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합리성 베버가 유럽 사회가 모든 사회 가운데 가장 우월하다는 사실을 역설했던 것은 합리성을 첫째 이유로 생각했다. 베버는 사회적 진화를 본질적으로 지적 진보로, 즉 지성과 윤리를 의미하는 인간의 '합리성'이 고대 사회에서 현대사회에 이르기까지 향상되어온 과정으로 이해했다. 특히 근대 유럽 사회는 모든 사회 가운데 가장 합리적인 사회이며 동시에 인간의 의식적 선택의 산물, 곧 인간 의지의 산물이라고 단정 지었다. 베버의 역사 서술은 터널식이었다. 터널식이란 터널이란 공간을 중심으로 역사를 주관적으로 해석하는 태도를 의미한다. 베버는 이 관점에서 역사를 파악함으로써, 한층 더 합리적인 사회를 향한 전진은 유럽에서 그리고 유럽인들 사이에서만 일어났으며, 유럽이 지나온 시간의 터널 바깥에서는 모든 사회가 관습적이고 최소한 어느 정도라도 비합리적이었던 것이다. 그가 유럽인들의 합리성을 주장했던 요인은 인종주의였다. 유럽인들은 유전적으로 비유럽인들보다 우월하다는 것이다. 베버가 유럽인들의 인종적인 우월성을 강조하는 이유는 유럽인들의 생물학적 유전 형질이 다른 종족에 비해, 뛰어나다는 것이다. 곧 인종은 차별화 과정을 작동시키는 최초의 추진력이면서, 또 유럽인들의 사고나 선택이 비유럽인들의 사고나 선택보다 더 합리적이 되도록 언제 어디서나 작용하는 '포착하기 어려운 영향력'이 되고 있는 것이다.
동양적 전제주의베버가 유럽 사회의 우월주의를 강조하고, 동양이 유럽에 비해 열등한 두 번째 이유로 동양적 전제주의를 그 근거로 제시했다. 아시아나 이집트의 주요 문명들은 비가 많이 오지 않는 물리적 환경에 세워졌기 때문에 관개 농업에 의존해야 했고, 여기에서 다른 문명들과 확실히 구별되는 특징들을 획득 형질처럼 갖게 되었다는 것이다. 관개 농업에 의존하는 문명들에서는 국가가 전제적-비민주적-이어야만 하는데, 국가가 관개 과정이나 관개 시설 유지를 체계적으로 통합하기 위해서는 주민들이 관개 시설을 건설, 유지하도록, 또 물 분배와 관련해 불가피한 결정들을 받아들이도록 강제해야만 하기 때문이다. 유럽인들은 이런 형태의 사회를 '동양적 전제주의'라고 불렀는데, 결론적으로 아시아인들은 동양적 전제주의라는 경직된 체제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진보적일 수 없다는 것이다.
"오직 서구에서만…"베버가 유럽 우월주의의 근거로 삼고 있는 논거들을 살펴보면, 여러 부분에서 설득력을 잃고 있다. 첫째는 근대화가 진행중인 사회와 여전히 전통에 매여 있는 사회 사이의 차이를 구체적으로 지적한다. 베버는 유럽에서는 진보가 계속되면서 사회가 혈연이나 미신과 같은 '비합리적인' 신념들로부터 한결같이 멀어지는 쪽으로만 움직였으며, 비유럽국, 예를 들면 중국 사람들은 마법이나 미신을 이겨내지 못했기 때문에 비합리적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 논거에는 중대한 허점이 있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비유럽 사회의 빈곤이 '전통적 태도'라는 비합리성 때문이 아니라 독재자들, 다국적 대금업자 등등의 탐욕과 억압에서 시작되었으며, 비유럽 국가들은 베버가 말한 것처럼 '전통적 태도'라는 질병을 앓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둘째는 비유럽도시들은 본질적으로 정치적 지배의 자리였던 반면, 유럽의 도시들은 역사적으로 자치를 누리고 '자유로웠으며', 그리하여 사회 진화의 현장이 된 것이라고 믿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동방 도시들은 베버가 믿었던 것보다 훨씬 더 자치적이었고, 서방 도시들은 훨씬 덜 자치적이었던 사실이 드러난다. 중세 유럽 도시들에는 '자유'가 있었다고 주장하는 것은 근대 도시들의 특징들을 시간을 거슬러 중세 도시들에 덧씌우는 오류를 범하는 것이며, 동방적인 모든 도시들에는 '전제'를 덧씌우는 확산주의적 오류를 범하고 있는 것이다. 즉 오직 동양적 전제주의라는 관점에서 파악하는 것이다.
셋째는 동방과 서방의 토지 보유 체제를 다루고 있다. 베버가 보기에는 동방 세계의 대규모 농업용 보유자들은 국가나 군주의 소유였으며, 이 봉토를 경작하는 농민들에게서 소득을 얻었던 지배층은 진정한 지주들은 아니었다는 것이다. 그들은 단지 국가에 복무하는 대가로 국가가 봉토를 빌려준 임시 양수인에 지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중세 서구에서는 군주와 영주가 여러 가지 윤리적 구속에서 발생한 합리적인 관계를 맺고 있었으며, 이에 따라 영주에게 영지를 내리는 것은 실제로 소유권을 양도하는 것이라는 것이다. 이런 차이 때문에 서구에는 개인주의가, 그리고 사유 재산이, 마침내는 자본주의가 발달하고, 동방 제국에서는 이런 일들이 일어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역사를 자세히 살펴보면, 유럽의 영주에게 주어진 봉토도 군주를 섬기는 동안에만 주어졌고, 또 유럽과 비유럽을 막론하고 여러 지역에서 봉토들이 영구 보유지로, 따라서 사적 소유물로 굳어져가는 경향을 보였다.
린 화이트 2세 : 유럽인의 창의성 화이트의 논거는 주로 농업 분야의 생산 기술을 다루고 있는데, 화이트는 이 기술 결정론을 통해 유럽중심주의적 터널 사관을 견지하고 있다.
중세 농업 혁명린 화이트는 농업 혁명이라고 할 만한 것은 중세에 오직 유럽에서만 일어났다고 단언한다. 화이트는 이 혁명이 세 가지 중요한 기술적 혁신과 함께 일어났다고 보았다.
첫째는 무거운 쟁기의 발명이다. 이 무거운 쟁기는 보통 황소 여덟 마리가 함께 끌었는데, 화이트는 이 쟁기가 중세 유럽에서 처음 등장했으며 샤를마뉴 대제 시대쯤에서는 이미 북서유럽 전역에 퍼져 있었고, 카롤링거 왕조가 지배하던 지역이 8세기에 폭발적인 활기를 띄게 된 것이 바로 이 쟁기를 사용해서 농업 혁명이 일어났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무거운 쟁기는 경작 지역을 넓히고 단위 면적당 생산성을 높여 주었다는 점에서 중세에 유럽 전역에서 나타났던 농업 생산량 증가와 큰 관련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화이트에게 쟁기는 원인이었고 사회 변화는 그 결과였다. 기술 혁신은 새로운 양식의 협업 공동체를 낳았고, 이 공동체적인 협업 구조는 장원 경제로 이행하게 되었다고 주장한다. 다시 말하면 무거운 쟁기 때문에 사회 구조가 크게 달라졌다는 인과관계적 시각인 것이다.
그러나 린 화이트의 '무거운 쟁기설'이 설득력을 상실하고 있는 것은 무거운 쟁기는 꼭 유럽에서만 발명되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인도 북부 지역에서는 이미 기원전 5~6세기부터 많게는 황소 스물네 마리가 끄는 무거운 쟁기를 사용하고 있었다는 증거가 있다. 그리고 로마 지배를 받던 무렵의 브리튼에는 볏이며 보습까지 달려 있는 무거운 쟁기를 사용했다. 이와 같은 사실을 통해 살펴보면, 화이트가 묶어 놓은 원인과 결과의 고리는 그렇게 튼튼하지 않다는 데 화이트의 논거는 문제성을 안고 있다. 화이트는 쟁기의 사용이 농업 혁명을 일으켜서 이는 경작지의 확장을 가져오고, 더 나아가서 공동체적인 협업 방식의 구조를 탄생시킴으로써 사회구조를 변화시켰다는 의견은 필연적인 인과관계를 가지고 있지는 않다는 것이다. 화이트의 주장대로 인과관계가 있다면 무거운 쟁기를 사용했던 비유럽지역에서도 이와 동일한 현상이 나타나야 할 것이다.
두 번째는 유럽 우월주의 논거로서 마력(馬力)의 발견을 들고 있다. 화이트가 마력이 유럽주의를 입증하는 근거가 된 것은 말 자체가 아니라 말굴레라는 물건이었다. 말굴레 때문에 12세기에 말이 무거운 쟁기와 수레를 끄는 짐승으로서 소를 대체하게 되었고, 그리하여 결국 말굴레가 북유럽의 농업과 곡물 수송을 일거에 바꾸어 놓았다는 것이다. 말 한 마리가 수소 한 마리보다 적어도 15퍼센트 정도 물건을 빨리 끈다는 것은 사실이겠지만, 그러나 소를 이용한 생산비보다 말을 이용한 생산비가 비싸게 먹혔다. 말을 이용한 운송은 소를 이용한 운송보다 효율적이었기 때문에 상업 활동의 빈도가 높아졌으며, 이로 인하여 농가의 이동반경이 넓어지고, 결과적으로 경작지도 더 넓어져서, 결과적으로 촌락이 도시의 규모로 커지게 되었다. 이는 말을 자유자재로 다룰 수 있는 말굴레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말굴레의 사용 역사를 연구해보면, 중국은 북유럽보다 몇 세기나 앞서서 쓰고 있었던 것이다. 니덤(Needham)은 유라시아에서는 아주 오래전부터 말굴레가 널리 퍼져 있었으며, 처음에는 낙타에 봇줄 따위를 맬 목적으로 발명했으리라고 추측하고 있다. 따라서 서방 문화의 "거대한 전변"을 이 하나의 도구에 끌어다 매는 것은 분명히 잘못이다. 말이 소보다 빠르기는 했지만 말을 제대로 유지하기 위해서 말먹이 용 귀리나 건초를 따로 경작함으로써 곡물 경작지의 제한을 유발했다는 것은 말의 효용성을 의심하게 만든다. 특히 운하가 발달한 중국에서는 곡물 수송은 말을 쓰는 대신 운하용 짐배들이 맡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린 화이트는 유럽우월주의 논거로 삼포식 돌려짓기에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삼포식 돌려짓기는 프랑스 북부에서 처음 등장해 8세기 후반 들어 폭발적인 양상으로 퍼져 나갔다가 그 뒤로는 한결 천천히 영역을 넓혀 12세기에는 잉글랜드에까지 보급되었다. 삼포제는 1대 1이었던 경작지 대 휴한지 비율을 2대 1 정도로 늘려 놓았으며, 이는 생산성 향상으로 나타났고, 더 나아가서 경작지 확대를 가져옴으로써 유럽 발달의 중요한 원인으로 작용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삼포제 방식이 반드시 선진적인 방식이 아니었으며, 이포제 방식이 오히려 삼포제 방식을 밀어낸 경우도 허다하다는 것이다. 이탈리아 북부나 네덜란드의 몇몇 지역에서는 "가까운 밭-먼 밭"을 나누는 식으로 경작 방식이 자리를 잡았던 것으로 보이고, 또 토양의 영양 상태나 수분 함량 따위의 조건들이 잘 맞아떨어졌던 꽤 많은 유럽 지역들에서는 토양을 황폐화시키지 않고도 이어짓기를 무한정 계속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더구나 삼포제는 농민들이 충분한 땅을 갖지 못하고 지주들은 언제나 더 많은 잉여를 짜내려 하는 농업 체제에서는 세계 어디서나 일어나는 농업 집약화 과정의 전형적인 한 사례였을 뿐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삼포제 방식도 설득력이 없는 주장인 것이다.
에릭 L. 존스 : 유럽의 기적 에릭 L. 존스의 『유럽의 기적』은 유럽인들이 다른 모든 인간 집단들보다 항상 우월했고 지금도 여전히 우월한 모든 이유를 하나의 포괄적 진술로 제시해보려고 한 최초의 체계적 연구이다. 그가 그의 저서 『유럽의 기적』에서 밝히고 있는 유럽 우월주의와 그의 주장에 대한 허구를 살펴본다.
"유럽됨의 특성"여기에는 『유럽의 기적』 전체에서 전개하는 세 가지 주요 명제가 담겨 있다. (1) 유럽은 오로지 유럽 환경만이 줄 수 있는 "선물들"을 누리고 있었다. 다시 말하면 유럽의 물리적 환경에서 유럽의 우월성이 나왔던 것이다. (2) 비유럽인들은 갖고 있는 자원들을 발전보다는 인구 증대에다 생각 없이 써버렸다. 그저 "평범한 인간들을 번식시키느라" 이 자원들을 "소진"했던 것이다. (3) 인구 증가를 통제하지 않고 이렇게 내버려두는 것은 그리하여 자원을 낭비하고 경제적으로 발전할 기회를 날려버리는 것은 "분별없는" 짓이다. 한 마디로 비유럽인들은 비합리적인 것이다. 에릭 L. 존스의 유럽우월주의 논거들은 이와 같은 세 가지 명제 위에 전개된다.
유럽이 언제나 우월했던 이유를 해명하기 위해 존스가 짜낸 체계적 논거로 넘어가보면, 우선 이 논거는 자연환경에 관한 일련의 근거 없는 진술들로 시작한다. 존스는 유럽 환경은 아시아와 아프리카 쪽 환경보다 우량했다고 주장한다. 바꿔 말하면, 중위도 지역 환경이 열대 지역 환경보다 좋다는 논거인 셈이다. 존스의 이야기인즉, 무더운 기후에서는 "인간 활동력"이 떨어질뿐더러 질병도 무서운 문제가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기온이 어떤 식으로든 인간의 활동력과 관계가 있다는 통념은 대략 반세기 전에 완전히 폐기되었다. 근세 이전에는 열대 문명들도 중위도 문명들과 대체로 같은 시대에 같은 정도로 번성했다.
존스는 역사가 생긴 이래 유럽이 줄곧 우월한 가장 큰 이유는 아시아인들이 생식 행위를 제어하지 못하는 데 반해 유럽인들은 인구를 조절하는 경이로운 능력을 갖고 있기 때문이라고 믿고 있다. 대신 유럽인들은 진보가 가져다준 열매를 자본으로서, 앞날의 발전을 위해 투자했다는 것이다. 이 논거는 유럽인들은 비유럽인들보다 더 합리적이라는 고전적인 공리를 뿌리로 삼고 있다. 또한 존스는 유럽인들이 비유럽인들보다 진보적인 이유로 핵가족 제도를 들고 있다. 그는 『유럽의 기적』에서 핵가족은 유럽인들의 고유한 특질이며 유럽이 태곳적 종족에서부터 시작했다고 주장한다. 핵가족은 아시아의 확대가족, 그리고 확대가족 가구와도 확실히 다른 것이다. 그러나 존스가 주장하는 핵가족의 우월성에 대한 의견은 최근에 와서 비판받고 있다. 요즘에는 확대가족 가구가 핵가족 이상으로 인간관계의 결속을 다지고 경제활동에 더 효율적으로 기여할 수 있다는 주장이 만만치 않다. 뿐만 아니라, 존스가 유럽은 핵가족 제도, 비유럽은 확대가족 제도로 이분법적인 선을 긋는 것은 정확한 논거가 아니다. 유럽의 고대는 대가족 제도였으며, 비유럽구가에도 핵가족 제도를 얼마든지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기술적 초인들존스에 따르면 유럽인들은 기술적인 면에서 초인들이다. 유럽의 비범한 기술적 능력은 유럽식 사고의 특별한 합리성, 창의성, 혁신성에서 나온 것으로 되어 있다. 하지만 존스는 왜 유럽인들만 특별히 창의적이고 혁신적인지 그 근거를 제시하지 않는다. 존스는 유럽 밖에서는 농경 집단들의 생활양식이 과잉 인구에, 관개에, 동양적 전제주의에 짓눌러 있었던 반면 유럽 쪽 사람들은 자유로웠고, 잘 먹었으며, 진보적이었고, 여기서 유추할 수 있거니와, 기술적으로 혁신적이었다는 논리를 편다. 그러나 이 논리는 완전히 꾸며낸 이야기일 뿐이다. 고대 유럽의 종족들은 지금 우리가 여기에 다루는 모든 분야에서 고대 아시아나 아프리카의 종족들과 거의 같은 수준이었다. 이를테면 문자사용이나 도로 건설, 건축술을 비롯한 많은 혁신들 대부분은 관개에 바탕을 둔 문명권에서 나왔다. 결국 존스는 자기가 보기에는 아주 태곳적 특질인 바 유럽의 기술적 합리성을 낳은 저 고대의(로마 지배 이전의) 원인들에 대한 논거를 제대로 밝히지 못하고 것이다. 이 사실에서 존스가 이 기술적 합리성이라고 주장하는 특질의 뿌리를 물리적 환경이 아니라 "유럽됨이라는 속성"에서 찾는다고 추론할 수 있다.
그 다음으로 존스는 유럽 기술의 꾸준한 발전은 다른 어디서도 비길 만한 사례가 없었으며, 분명히 중세에 일어난 "유럽의 기적"의 한 요소이기도 했다는 점을 보여주려고 한다. 존스는 이 논거에 의거해서 몇몇 새로운 기술 산물들이 유럽 밖에서 발명되었다고 시인하고 나서도, 구체적인 성격의 산물들은 모두 유럽에서 사실상 발명되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중요한 산물들의 목록을 보면, 꼭 유럽에서 발명되지도 않았거니와 그렇다고 유럽에만 소개된 것들도 아니었다. 예를 들면, 중국에서 발명된 화약을 들 수 있다. 존스의 주장과는 달리 중국에서는 유럽보다 훨씬 일찍 화약을 발명하고 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