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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아버지들의 위대한 자녀교육

진탕 지음 | 북스토리
평범한 아버지들의 위대한 자녀교육

진탕 지음

북스토리 / 2008년 6월 / 286쪽 / 11,000원



절대 책임을 회피하지 못하게 한 레이건의 아버지 - 존 에드워드 레이건


미국 제40대 대통령이었던 로널드 윌슨 레이건은 빼어난 정치가였는데, 이런 그에게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사람은 아버지 존 에드워드 레이건으로, 사람들은 그를 잭이라고 불렀다. 가정 형편이 어려웠지만 잭은 아이의 교육을 소홀히 하지 않았고, 특히 레이건이 어렸을 때부터 책임감을 길러주려 애썼다.

1922년 어느 날, 레이건에게 평생 잊지 못할 사건이 일어났는데, 후에 그는 그 당시 사건을 다음과 같이 회상했다. "열한 살이었던 그해 7월 4일 전날 밤, 저는 어떤 경로로 발포가 금지된 폭죽을 손에 넣게 되었어요. 오후에 록 강다리 옆에 가서 벽에 기대 폭죽을 터뜨렸는데, '뻥!' 하는 굉음이 터져서 정말 귀청이 떨어져나가는 줄 알았죠. 신이 나서 득의양양해하고 있을 때, 차 한 대가 다가오더니 운전기사 아저씨가 저에게 차에 타라고 하는 거예요. 모르는 사람 차에 타면 안 된다고 배웠기에 전 당연히 안 타겠다고 했죠. 그랬더니 그 아저씨가 경찰 배지를 내밀어서 할 수 없이 차에 올라탔어요. 경찰서에 도착해서 국장님이 계신 곳으로 가게 됐어요. 아버지가 국장님과 종종 카드 게임을 즐기셔서 저는 관대하게 처리되겠다 싶어 속으로 뛸 듯이 기뻤죠. 하지만, 국장님은 곧바로 아버지께 전화를 걸어서 제가 한 나쁜 짓을 말씀드리더군요. 아버지는 벌금 12달러 5센트를 내셔야만 했어요."

나중에 사건 정황을 알게 된 아버지 잭은 레이건에게 자신의 잘못은 스스로 책임져야 한다고 말했다. 그 말에 레이건은 "전 돈이 없는 걸요"라고 말하며 난처한 얼굴로 아버지를 쳐다보았다. 그러자 아버지는 냉정하게 말했다. "너에게 12달러 5센트를 빌려주마. 일 년 뒤에 반드시 갚아야 한다." 그 후, 레이건은 학교 수업이 끝나면 남는 시간을 이용해 무려 반년 동안 아르바이트를 한 덕분에 12달러 5센트를 모았고, 아버지에게 빌렸던 돈을 갚을 수 있었다. 그러자 아버지는 레이건의 어깨를 두드리며 다음과 같이 말해줬다. "자신의 잘못을 책임질 줄 아는 사람이 돼라."



잭은 부자간에 다소 냉정해 보일지 모르지만, 엄격한 기준을 내세워 레이건에게 책임감을 심어주었다. 다시 말해, '자신이 한 모든 일은 반드시 자신이 책임져야 한다. 그 누구도 대신 책임져줄 순 없다'는 사실을 가슴 깊이 심어준 것이다. 레이건은 과거를 회상하면서 감동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자신의 힘으로 잘못을 책임진 후, 저는 그 덕분에 '책임을 진다'는 게 뭔지 제대로 깨닫게 됐어요."

차이를 존중하여 열등감을 극복시킨 버스카글리아의 아버지 - 로코 바르톨로메오 버스카글리아

레오 펠리스 버스카글리아는 미국의 베스트셀러 작가이자 서던캘리포니아 대학교의 교수이다. 그는 자라면서 아버지의 영향을 많이 받았는데, 아버지에게서 '자아 긍정'의 힘을 배웠다. 이탈리아 이민자인 버스카글리아의 부모님은 영어를 거의 쓰지 않아서 그는 학교에 다니면서도 사투리를 고치지 못했다. 중학생 시절의 어느 날, 버스카글리아는 학교에서 남학생 몇 명에게 괴롭힘을 당했다. 많은 사람 앞에서 괴롭힘을 당한 버스카글리아는 화가 나 씩씩대며 집에 돌아와 문을 쾅 닫고 펑펑 울었다. 잠시 후, 아버지가 따뜻하게 그의 이름을 부르며 문을 열어보라고 달래자 그는 방문을 살짝 열었다. 아버지는 따뜻하게 그를 안아주며 "말해보렴, 얘야. 무슨 일이니?"라고 물었다. "저는 이탈리아인이 아니었으면 좋겠어요." 이 말을 들은 아버지는 확고하면서도 근엄한 목소리로 말했다. "다시는 그런 말을 안 들었으면 좋겠구나. 레오, 이탈리아인의 후손인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해야 한다. 생각해보렴. 미국도 이탈리아인이 발견하고서 미국이라 명명한 거야. 그리고 이탈리아인은 감미로운 음악을 수없이 만들어냈고, 다채롭고 뛰어난 명화를 그려냈고, 또 아름다운 다리도 많이 만들었단다. 이 모든 것이 이탈리아인의 자랑거리야. 게다가 너는 행운아란다. 위풍당당한 미국인이니까 말이야." "하지만 저를 괴롭히는 애들은 그런 걸 모른단 말이에요." 그러자 아버지는 확신에 차 말했다. "아니야! 너는 특별하단다.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똑같은 모습으로 만들지 않으셨어. 사람마다 다 생김새가 다르듯이, 모든 이는 자신만의 모습을 가지고 있단다. 차별을 두려워하지 말거라. 다른 사람과 다르다는 것은 때로는 좋은 일이기도 하단다. 너를 때리고 욕한 아이들과 똑같은 사람이 되고 싶니? 다른 사람이 너 때문에 마음 아파하고 울었으면 좋겠어? 아니지? 오히려 다른 사람과 달라서 기쁘지 않니?"

버스카글리아는 차츰 마음이 진정되자 아버지의 말씀이 옳다는 것을 깨닫고는, 그저 침묵을 지켰다. 그러자 아버지는 계속해서 물었다. "아직도 그 아이들처럼 되고 싶니? 너에게 상처를 준 아이들처럼?" 그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러자 아버지는 "그래. 그러면 어서 눈물을 닦고, 널 자랑스럽게 여기렴. 앞으로 어딜 가든 그런 사람들을 또 만날 거야.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사람들의 행동 하나하나에 상처받거나 슬퍼하지 마라. 그들은 무료하고 꿈이 없는 사람들일 뿐이니 절대로 두려워할 필요가 없어. 이제 다 컸으니, 널 함부로 괴롭히는 사람도 없을 거야." 버스카글리아는 자신 있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 이후로, 버스카글리아는 그런 사람들에게 조금도 두려움을 느끼지 않게 되었다.

버스카글리아의 아버지는 아이가 무시당하고 어깨가 축 처져 있을 때 바로 위로해주면서 다른 사람을 무시하는 행동은 잘못된 것이고, 그런 상황에서 도망치는 것 또한 나약한 행동이라고 가르쳤다. 그리고 버스카글리아는 아버지에게서 자신이 속한 민족이 위대하다는 것을 듣고 난 후 무의식 속에 자신을 인정하게 되었고, 자존심과 자신감이 마음속에 자리 잡았다. 이쯤에서 아이의 자아 긍정을 도울 수 있는 방법들에 대해 좀 더 생각해 보자. 먼저, 아이의 성공 파일을 만들어 주어야 한다. 비록 아주 작은 성공일지라도 모두 꼼꼼히 기록하도록 도와줘라. 그러면 아이는 가끔 그것을 꺼내 보면서 성취감을 다시 한 번 맛볼 수 있고, 또 거기에서 얻은 강한 자신감으로 모든 어려움을 이겨낼 것이다. 또 하나의 방법은 아이가 실패의 그림자에서 빨리 벗어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인데, 방법으로는 실패를 학습의 기회로 삼거나, 또는 실패를 철저히 잊어버리는 것이다.



가족 규칙으로 통제력을 키워준 아이젠하워의 아버지 - 데이비드 아이젠하워

아이젠하워는 20세기 서양에서 가장 뛰어난 사령관으로 그의 성공은 아버지가 정한 엄격한 가족 규칙과 밀접한 관련이 있었다. 아이젠하워는 미국 텍사스 주의 농가에서 일곱 형제 가운데 셋째 아들로 태어났는데, 잡화점을 경영하던 아버지는 어느 날 사기를 당해 엄청난 빚을 지게 됐고, 곧 작은 집으로 옮긴 아이젠하워 일가는 그때부터 지독히도 가난한 생활을 했다. 후에 아버지가 동생의 도움으로 2층짜리 등나무 집과 땅 3,670여 평을 싼값에 빌리면서 아이젠하워 일가의 궁핍한 생활은 점점 나아졌는데, 그 당시 아버지는 엄격한 가족 규칙을 정하기 시작했고, 가족들은 모두 그 규칙을 지켰다.

예를 들면, 기상, 취침, 식사, 집안일을 할 때 각각 정해진 시간에 따르도록 규칙을 정해놓고, 아이 스스로 자신의 생활을 통제할 수 있게 했고, 그러면서 점차 마음까지 스스로 조절하고 통제할 수 있도록 도와줬다. 물론, 처음에는 다들 규칙을 지키는 것을 어려워했다. 하지만 아버지는 아이들에게 규칙을 엄격하게 지킬 것을 꾸준히 요구했고, 시간이 흐른 후에 아이들은 어느새 스스로 자신을 통제하는 것이 습관화되었다. 참고로 아버지는 가족 규칙을 잘 지키느냐 아니냐에 따라 상과 벌의 기준을 두었는데, 아이들에게는 말로만 가르치는 것이 전혀 효과가 없으며, 반드시 '행동'으로 보여줘야 한다는 신념이 강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비록 무서운 아버지이긴 했지만, 그는 단 한 번도 아이들에게 욕을 하거나 때리지 않았고, 항상 아이들의 결정과 의견을 존중하고 믿어줬다. 이러한 가정 분위기 속에서 자란 아이젠하워는 어린 시절부터 점차 스스로 자기를 통제하는 습관을 들였고, 의지가 강하고 활력이 넘치는 소년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



한 연구 결과, 대다수 성인의 심리적 문제는 모두 어린 시절에서 기인한다고 밝혀졌다. 이는, 어린 시절에 건전하고 올바른 인격이 형성되지 않으면, 성인이 되었을 때 많은 문제를 일으킬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그래서 아버지는 아이의 미래를 위해 어릴 적부터 아이 스스로 옳고 그름을 분명히 판단하고, 잘못된 길로 빠져들지 않도록 상과 벌이라는 수단을 적절하게 이용해 도와줘야 한다. 참고로 아이가 제멋대로 행동하지 않게 하려면, 우선 아이가 자신의 일을 자각할 수 있게끔 일깨워주고 이를 통해 자신을 통제하는 것은 '어른이 되어가는 증거와 같은 것'이라고 이해하도록 해야 한다. 좋은 아버지가 되려면, 단순한 사랑만으로는 부족하다. 아이를 사랑해주는 한편으로, 아이젠하워의 아버지처럼 가정의 기강을 바로잡고 규칙을 정해 적절한 상과 벌로써 아이를 통제해야 한다.



대화를 통해 상상력을 자극시킨 안데르센의 아버지 - 한스 안데르센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덴마크 출신 동화 작가인데, 그가 쓴 『인어공주』와 『성냥팔이 소녀』 등의 이야기는 전 세계 어린이들에게 사랑받았을 뿐만 아니라, 어른들에게도 강한 인상을 남겼다. 안데르센이 이렇게까지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모두 어렸을 때부터 아버지가 그에게 상상의 날개를 달아준 덕분이다. 안데르센은 작은 도시에서 태어났다. 그곳에는 많은 귀족과 지주가 살았다. 하지만 안데르센의 아버지는 구두수선공, 어머니는 남의 집 가정부로 가정 형편이 아주 어려웠다. 그래서 귀족과 지주들은 위신이 떨어질 것을 우려해 자녀들을 안데르센과 놀지 못하게 했다.

안데르센의 아버지는 그 사실에 매우 분노했지만, 아이 앞에서는 그런 감정을 전혀 드러내지 않았다. 그는 오히려 "얘야, 다른 사람이 너랑 안 놀아주면, 아빠가 같이 놀아줄게!"라며 아들을 위로했고, 일이 마치면 자주 아들을 데리고 산책하러 나갔는데, 길을 거닐면서 아버지는 아들에게 자신이 어렸을 때 고생한 이야기나 다른 가난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러면 아들은 항상 목을 길게 빼고 눈을 크게 뜬 채 아버지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며 기뻐하기도 하고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한편 그 당시 부잣집 아이들은 항상 멋진 장난감을 가지고 놀았는데, 가난한 집안 형편으로 아들에게 좋은 장난감을 사주지 못하는 안데르센의 아버지는 어느 날, 일하다가 남겨둔 나무를 깎아서 정성을 다해 직접 아들의 장난감을 만들어줬다. 그러자 아들은 목각 인형은 갖고 재미있게 놀았고, 그런 아들에게 아버지는 말했다. "인형들을 가지고 더 재미있게 놀 수도 있어. 엄마에게 가서 안 쓰는 천을 얻어다가 목각 인형에게 입힐 옷을 만들어주자. 어때?" 안데르센은 바로 엄마에게 달려가 못 쓰는 천을 받아와서는 무척 즐거워하며 직접 목각 인형의 옷을 만들어 입혔다. 그러자 아버지가 아들에게 다시 제안했다. "인형이 꼭 배우 같네? 우리 연극하면서 놀까?" 안데르센은 신이 나서 탁자를 가져와 무대로 삼고, 어머니의 스카프로 무대 커튼을 만든 뒤, 덴마크의 극작가의 희곡을 대본으로 정했다. 그렇게 두 부자는 즐겁게 연기를 했고, 어머니는 그들 앞에 앉아 인형극을 감상하는 관객이 되었다.

그리고 아버지는 안데르센의 정신세계를 풍부하게 해주려고 작고 초라한 집을 마치 작은 박물관처럼 꾸며놓았다. 또 『아라비안나이트』 같은 고대 아랍의 민간 이야기를 종종 들려줬고, 때로는 홀베르그나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희곡을 읽어줬다. 아울러 평소에 안데르센에게 길거리에서 열심히 일하는 수공업자나 굽실거리는 거지, 마차에 앉아 의기양양해하는 귀족 등 다양한 사람들의 생활상을 관찰하게 했다. 이런 경험 덕분에 훗날 안데르센은 『성냥팔이 소녀』나 『미운 오리 새끼』 같은 감동적이고 섬세한 동화를 쓸 수 있었다. 안데르센의 동화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 지금도 예술적 생명력을 유지하고 있는 것은, 아마도 그의 동화를 통해 사람들이 사회와 인생에 대해 좀 더 깊이 생각할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아무튼 이 세계를 알아가고 바꿔가는 과정에서 상상력은 매우 중요한 작용을 한다. 만일 상상력이 없었다면 인간은 그동안 세상을 바꾼 많은 발명을 할 수 없었을 테고, 어떠한 예측도 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므로 당신의 아이가 상상할 줄 알고 또 상상력이 풍부하다면, 틀림없이 성공할 가능성이 훨씬 높다. 물론, 아이의 상상력은 그것을 계발하는 아버지의 지도가 뒷받침되어야 한다. 따라서 아이가 갑자기 당신에게 괴상한 질문을 했을 때, 당신은 이를 무시하지 말고 진지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왜냐하면 그때가 바로 그들이 인재로 나아가는 시작점이기 때문이다.



휩쓸리지 않는 개성을 심어준 마거릿 대처의 아버지 - 알프레드 로버츠

마거릿 대처는 평범한 가정에서 태어나 영국 최초의 여성 총리가 되었고, 잇달아 세 번이나 총리직을 맡았다. 영국의 발전에 촉진제 역할을 톡톡히 해낸 그녀는 정계에서 가장 뛰어난 여성으로 인정받았으며, '철의 여인'이라 불리고 있다. 하지만 대처는 결코 타고난 천재 정치가가 아니다. 그녀는 성격과 기질, 흥미 모두 아버지의 영향을 받았고, 그 성격과 생각은 인생에서 성공을 이루는 데 매우 중요한 요소였다. 또 하나, 그녀의 성공 비결은 바로 아버지의 교육을 통해 얻은 자신감이다.



대처의 아버지 알프레드 로버츠는 제화공의 아들로 태어나 열세 살에 학업을 그만두었다. 하지만 그는 독서를 아주 좋아해서 마을에서도 뛰어난 독학 정신으로 아주 유명했다. 그리고 인품과 재능, 부단한 노력으로도 명성이 자자했다. 로버츠는 대처가 어렸을 때부터 다른 사람에게 영합해서는 안 되고, 자신만의 확고한 견해와 이상이 있어야 한다고 가르쳤다. 그런데 대처는 학교에 들어간 후, 친구들이 자기보다 더 자유롭고 다양한 생활을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그 아이들이 부러웠던 대처는 늘 마음속으로 친구들과 자유롭게 놀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녀는 용기를 내어 자신의 그러한 마음을 엄하고 무서운 아버지에게 말했다.



하지만 아버지는 딸에게 매우 진지하게 말했다. "넌 너만의 주관이 있어야 해! 친구들이 한다고 너도 따라 해서는 안 돼. 무엇을 어떻게 할지는 네 스스로 결정해야지, 다른 사람들에게 휩쓸려서 따라가는 건 어리석은 행동이야." 아버지의 뜻을 이해한 대처는 다시는 그런 말을 하지 않았고, 아버지의 가르침은 어느덧 그녀의 언행에 깊숙이 스며들었다. 대처는 곧 강한 자신감과 독립적인 개성으로 모든 분야에서 뛰어난 두각을 보였다. 시간이 갈수록, 그녀는 더욱 과감하게 일을 처리하고 개성이 더욱 뚜렷해졌으며, 이것은 그녀의 정치 인생에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 만약 이러한 아버지의 교육이 부족했더라면, 그녀 역시 다른 사람과 별반 다르지 않은 평범한 인생을 살았을 것이다.



로버츠에게서 본받을 점은, 아이의 주관을 존중하고, 개성적인 행동을 격려했다는 것이다. 그는 항상 대처를 자극해서 주위 사물이나 현상에 대해 자신의 의견을 가지게 하고, 어려운 문제에 직면했을 때 깊이 생각하고 직접 부딪쳐보도록 가르쳤다. 사실 정치에 입문했을 당시만 해도, 대처는 총리가 되겠다는 생각은 없었다. 그런데 한때 위기를 맞은 보수당 지도부에는 자신의 명성이 땅에 떨어질 수도 있는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위기 상황을 만회해보겠다고 선뜻 나서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그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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