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스타벅스에서 불온한 상상을 한다
강인규 지음 | 인물과사상사
나는 스타벅스에서 불온한 상상을 한다
강인규 지음
인물과사상사 / 2008년 8월 / 292쪽 / 14,000원
무관심을 파는 다방, 스타벅스 - 미국인들의 삶에서 커피숍이 갖는 의미대다수의 미국인들에게 '커피숍'이라는 공간은 생소했다. 유럽이나 한국과 달리 미국에는 찻집에서 친구들과 몇 시간씩 이야기를 나누는 문화가 존재하지 않았다. 스타벅스의 성공은 단순히 상품이나 마케팅의 성공이 아니라 새로운 문화의 등장, 즉 '다방 문화'의 확산을 의미한다. 스타벅스의 슐츠 회장은 《뉴욕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미국 내에서 스타벅스는 가정과 직장 사이의 '제3의 장소'로서 등장했습니다. 우리가 가정의 베란다를 확장했다고나 할까요. 사람들이 스타벅스에서 하는 일은 이야기를 나누는 것입니다. 커피는 수백 년 동안 대화의 매개체였습니다." 그러나 미국인들 다수는 커피숍에 혼자 와서 오랜 시간을 보내다 돌아간다. 신문을 뒤적이거나 책을 읽는 사람들도 있지만 대개는 노트북을 들여다본다. 그 때문에 대부분의 매장은 무선 인터넷 서비스를 제공한다. 손님들 가운데 상당수의 귀에는 이어폰이 꽂혀 있다. 이런 상황이라면 아무리 강력한 '대화의 매개체'를 컵에 담아주더라도 입을 열기 어려울 것이다.
스타벅스의 별명 가운데 하나는 '작가들의 천국'이다. 경제활동의 영역이 확장되면서 사람들은 집과 일터가 아닌 '제3의 장소'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게 됐으며 작가나 번역가처럼 아예 커피숍을 일터로 이용하는 사람들도 늘었다. 가족이 없는 사람은 적막한 집이 싫어서, 가족이 있는 사람은 조용히 집중할 장소가 필요해서 이곳을 찾는다. 어쩌면 스타벅스라는 공간은 가정의 베란다보다는 사무실 책상의 확장일지 모른다. 미국에서 이런 장소의 제공은 새로운 시도였다. 사람들은 커피 값치고는 비싸지만 '휴게실'이나 '사무실'임대료 치고는 저렴한 스타벅스에 기꺼이 돈을 지불했다. 마치 취객이 하룻밤 쉬어가기 위해 목욕탕보다는 비싸지만 모텔보다는 싼 찜질방에 기꺼이 8000원을 내듯이.
동거남과 젖소의 관계 - 미국인들의 연애, 동거 그리고 (비)결혼한국에서는 자식들이 애인을 데리고 와 인사를 시키고 난 뒤 부모들의 '선고'를 기다려야 한다. 이에 반해 미국 부모들은 '통고'라도 받으면 다행이다. 작년 크리스마스에 마지막으로 본 자식이 어느 날 문득 낯선 남자나 여자를 데리고 와서 "우리 약혼했어요"라고 밝히는 것은 미국 부모들이 흔히 경험하는 일이다. 한국인으로서는 부모의 간섭이 적은 것이 부러울 수도 있다. 그러나 이것은 대가를 지불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미국의 자식들은 한국에 비해 더 많은 자유를 누리는 대신 부모로부터 더 적은 혜택을 받는다. 대학원 학비까지 대주고 서른이 넘은 자식을 결혼 전까지 부모가 데리고 사는 영장류는 오직 한반도에서만 찾아볼 수 있다. 한국의 부모들은 자식들을 오래 보호해주는 대가로 그들의 삶에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것이다.
수십 년 전까지 미국에서 동거는 '방탕한 삶'으로 불리며 도덕주의자들의 위기의식을 한껏 고조시켰다. 그러나 이제 미국에서 동거는 결혼이라는 공식적 관계에 들어서기 전 상대방을 관찰하는 '시험기간'으로 이해되고 있다. 그러나 동거커플의 40%가 헤어지고, 또 주거비 절약 등 경제적 이점 때문에 동거를 택하는 젊은이들이 늘면서 동거는 이제 독립적인 '관계'의 한 형태가 되었다.
미국에서 동거는 이제 윤리나 종교적 문제가 아니라 사회학적인 이슈가 되었다. 결혼에서 생길 수 있는 문제를 보완한다는 통념과는 달리, 동거가 결혼생활을 개선하거나 이혼을 예방하는 데 실질적인 도움이 되지 않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정신 의학자 로빈스와 라이거의 1990년 공저 『미국 정신질환』에 따르면 동거 커플이 우울증에 걸릴 확률은 결혼한 부부의 세 배가 넘는다. 동거 뒤 결혼한 커플이 오히려 이혼율이 더 높다는 연구도 있다. 동거가 상호 이해와 헌신도를 높인다는 생각도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졌다. 심리학자 새커포드의 2001년 연구 『동거, 결혼, 살인』에 따르면, 동거관계에서 발생하는 신체적, 성적 폭력의 비율은 결혼관계에 비해 훨씬 높았다. 심지어 동거 상대자에 의해 살해당하는 비율은 배우자에 비해 무려 아홉 배에 달한다.
비록 동거를 부정적으로 보는 시선이 사라지고 여성에 대한 가혹한 이중 기준도 더 이상 존재하지 않지만, 동거가 남자의 태만을 부른다는 사실은 미국도 예외가 아니다. 실례로 몇 년 동안 여자 친구와 동거하다가 헤어진 친구가 있었다. 여자는 남자의 결혼 신청을 기다리며 유무언의 압력을 넣었지만 남자는 별로 서두르는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조심스럽게 결혼을 미루는 이유를 묻자 그는 장난스럽게 답했다. "우유를 공짜로 먹을 수 있는 데 소를 왜 사?" 남자들이 철 안 드는 것은 만국 공통인 것 같다. 얼마 전 여자는 그 친구를 차버리고 더 멋진 남자를 만나 사귀고 있다.
재채기를 막아라, 팔뚝으로! - 미국인들의 독특한 위생 관념과 '세균과의 전쟁'
미국에서는 손바닥에 재채기를 하거나 손을 씻지 않고 화장실을 나오는 행위, 땀에 젖은 손으로 악수를 청하는 것은 모두 사회적 금기에 해당한다. 재채기를 하지 않는 것이 가장 좋지만, 불가피한 경우에는 입을 막고 해야 한다. 이때 손바닥은 곤란하다. 그 손은 언제든지 '교류용'으로 사용될 수 있으며 돈이나 문손잡이, 컴퓨터 키보드, 전화수화기, 수도꼭지 등 공적자산을 광범위하게 오염시킬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미국인들은 재채기를 막는데 가장 바람직한 부위로 팔뚝을 꼽는다. 공개된 장소에서 코나 귀, 입 속에 손가락을 넣는 행위도 피해야 한다. 코를 후비는 것은 재채기와 달리 생리적 현상이 아닌 '유희'의 영역이며, 오염된(씻지 않은) 손으로 화장실을 뜨는 것은 허술한 위생 관념을 드러낼 분이다. 여기에는 어떤 변명의 여지도 있을 수 없다.
몇 년 전, 거지같은 행색으로 여행을 다녔던 적이 있다. 그러다가 일본 청년을 만났다. 둘이 주머니를 털어 빵 한 덩어리를 샀다. 그리고는 벤치에 앉아 빵을 반으로 나누었다. 일본인 친구는 빵을 먹다가 주먹만 한 조각을 땅바닥에 떨어뜨렸다. 그 친구는 차분하게 빵을 집어 먼지를 털더니, "5초 안에 주워서 먹으면 괜찮아"라고 말했다. 흥미로운 건 미국에도 똑같은 미신이 있다는 사실이다. 이른바 '5초 법칙five-second rule'. 재빨리 움직이면 균에 오염되기 전에 음식을 집을 수 있다는 것이다. 몇몇 미국 과학자들이 실험을 했다. 결론은? 5초 이내에 얼마든지 바이러스가 침투할 수 있었다. 중요한 것은 '몇 초'가 아니라 '어느 바닥'에 떨어지느냐다. 당연하지 않은가? 결국 '5초 법칙'은 땅에 떨어진 음식을 집으면서 '과학'의 이름으로 위안을 얻으려는 노력이다.
미국은 어떻게 '비만제국'이 되었나 - 미국의 패스트푸드 산업과 국민보건
미국의 영양학자들은 과식의 원인을 외식산업의 발달에서 찾고 있다. 외식산업이 고객들로 하여금 많이 먹도록 유도한다는 것이다. 단적인 예로 맥도날드가 사업을 시작했던 20세기 중반만 하더라도, 미국인들의 한 사람 몫으로 주문하던 햄버거, 감자튀김, 탄산음료의 열량은 600Kcal가 되지 않았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슈퍼사이즈' 메뉴로 앞의 세 가지 음식을 주문하면 총 열량은 1500Kcal를 쉽게 넘어선다. 오늘날의 외식업계는 가격 할인을 미끼로 '세트 메뉴'를 구입하도록 유도하고 있으며, 여기에 '슈퍼사이즈' 전략으로 사람들을 유혹한다. 이처럼'먹을 것을 권하는 사회' 속에서 개인이 음식 섭취에 대한 객관적 판단과 통제력을 행사하기는 어렵다. 사회적 환경을 바꾸지 않는 한, 음식을 팔기 위해 엄청난 광고비를 쏟아 붓는 업체들의 유혹을 이길 수는 없다. 이익을 위해 배고프지 않아도 먹게 하며, 심지어는 포만 상태에도 음식을 찾게 만드는 것이 바로 오늘날의 사회 환경이다.
입맛에 음식을 맞추는 것이 아니라 음식에 입맛을 맞추는 곳, 그곳이 바로 패스트푸드 체인점이다. 우리들이 패스트푸드 체인점에서 한 끼 식사로 지불하는 비용은 결코 싼 가격이 아니다. 간편하다는 생각 또한 마찬가지다. 오랫동안 서서 주문해야 하는 번거로움과 불편한 좌석, 그리고 소란한 실내는 객관적인 의미의 즐거움이라고 볼 수 없기 때문이다. 좋아하기 어려운 식품을 좋아하도록 만들기 위해서 패스트푸드 산업이 사용하는 전략은 '즐거움'에 대한 환상이다. 획일화된 상품은 질이 아닌 양을 강조할 수밖에 없고, 결국 그것이 사회적 비만의 한 원인이 된 것이다. 한마디로, 현대의 합리화 제도가 야기한 비합리화의 대표적인 예가 바로 패스트푸드에 의한 비만이다.
재즈, '가장 미국적인' 예술양식? - 재즈의 발전사를 통해본 음악의 국적과 의미지금은 미국인들이 나서서 '가장 미국적인 예술'이라고 부르지만 20세기 중반까지도 재즈는 예술과 거리가 멀었다. 당시의 인식으로는 홍등가나 음침한 댄스홀에서 남녀가 부둥켜안고 춤을 출 때 흘러나오는 '음란하고 퇴폐적인' 음악일 뿐이었다. 2차 세계대전 중 미군과 함께 건너간 재즈가 유럽 전역으로 확산됐지만, 이는 '미국적 문화'보다는 '미국적 문제'에 가까웠다. 많은 유럽 젊은이들이 재즈를 즐기기 시작했으나 각국 정부는 이 점잖지 못한 음악의 확산에 적잖이 당혹스러워했다. 재즈에 담긴 인종적 함의나 미국에서 온 음악이라는 사실은 음악의 품격을 낮추는 데 한몫을 했다. 그러나 재즈가 환영받지 못했던 결정적 이유는 이것이 귀보다 몸으로 듣는 음악이라는 데 있었다.
재즈의 역사를 훑어보면 1960년대 이후부터 기록이 희미해지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이 시기는 '재즈의 위기'로 표현되기도 한다. 그러나 이 시기는 재즈가 전 세계적으로 확산되어 나름의 발전을 시작한 때이기도 하다. '가장 미국적'이라고 불리는 재즈는 가장 세계적인 음악이기도 하다. 재즈는 이미 오래 전 미국의 뿌리에서 분리되어 전 세계 다양한 음악과 결합해 발전하고 있다. '국적'에 얽매이지 않고 나라를 건너뛰어 영향을 주고받으며 발전하는 것은 문화의 기본적 특성이기도 하다. 오늘날 재즈는 어느새 '취향을 타지 않는' 음악, 그래서 커피숍이나 식당에서 가장 흔하게 들을 수 있는 음악으로 자리 잡았다. 불과 수십 년 전만 해도 이것은 그리 '당연한' 일은 아니었다.
재즈는 '가장 미국적인 음악'인가? 알 수 없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재즈 속에 수많은 아픔과 고통의 목소리가 녹아 있다는 사실이다. 고난 속에서 재즈를 잉태했던 이들은 조롱 속에서 그 음악을 길러냈고, 차별 속에서 전파했다. 그렇다면 재즈는 '가장 미국적인 예술 형식'인가? 알 수 없다. 그러나 한 가지만은 분명하다. 적어도 그 음악을 가능케 했던 '가장 미국적인 예술가'들과 '가장 미국적인 미국인'들이 합당한 대접을 받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과거뿐 아니라 지금 이 순간까지도.
단 한 사람을 위한 교통표지판 - 복지의 불모지 미국, 그러나 부러운 장애인 배려
유럽에 비해 미국은 '복지'라 할 만한 것이 거의 없는 나라다. 하지만 이 복지의 불모지에서도 공공도서관과 장애인 정책만큼은 빛을 발한다. 미국 공공도서관은 각 지역 구석구석에 마련되어 있다. 겨우 인구 수천 명의 작은 마을에도 공공도서관이 있을 정도다. 공공도서관은 쾌적한 시설에 다양한 도서, 음반, 영화 등을 갖추고 방문자를 맞는다. 이곳은 주민들을 위한 독서클럽, 전시회, 저자와의 대화 등 문화 행사의 공간으로도 사용된다. 또한 필요한 자료를 온라인으로 예약할 수 있고 신청한 자료가 준비되면 신청자에게 이메일이나 전화로 알려준다. 여러 지역의 도서관들과 데이터베이스를 공유하고 있기 때문에, 다른 지역의 자료도 신청할 수 있다. 그리고 잘 훈련받은 사서들이 이용을 돕는다. 그러나 이처럼 훌륭한 도서관보다 더 부러운 것이 있다. 바로 장애인에 대한 사회적 배려다.
내가 사는 도시에서 한 시간쯤 차를 몰면 인적이 드문 교외가 펼쳐진다. 사람이 거의 살지 않는 곳이라 지나는 차가 많지 않다. 언젠가 이곳을 지날 때 교통표지판을 보았다. 이렇게 쓰여 있었다. "근처에 청각장애인이 살고 있으니 주의해서 운전하시기 바랍니다." 표지판 위쪽의 언덕 위에 집 한 채가 보였다. 미국에서는 '장애인용 화장실'을 찾기 어렵다. 화장실 전체를 장애인의 편의를 기준으로 설계하기 때문이다. '범용 설계' 또는 '장벽 제거 설계'라 불리는 이 방식은 어린이와 노약자들을 포함한 모든 사람에게 환영을 받는다. 1990년에 통과된 장애인 보호법은 '차별을 금한다'는 막연하고 추상적인 내용이 아니라 "상점과 식당 등 대중시설의 출입문은 최소한 32인치(약 80센티미터) 이상 열려야 한다"는 등 구체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 만일 이 규정을 지키지 않으면 장애인들은 업소를 고소할 수 있다. 대기업의 경우, 장애인 보호법 위반으로 고소를 당하는 것 자체가 기업 이미지의 치명적인 손상을 의미한다. 그 때문에 기업들은 거의 강박에 가까우리만큼 시설에 신경을 쓴다.
콜럼바인의 악몽이 계속되는 이유 - 미국사회를 괴롭히는 '작은 정부'와 '큰 자본'
1999년 4월 20일. 콜로라도의 한 학교에서 고등학생 두 명이 총을 난사해 학생 12명과 교사 1명이 죽고 23명이 다쳤다. 1년 후,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미국총기협회의 정기총회가 열렸다. 당시 총기협회 회장을 맡고 있던 찰튼 헤스턴은 이렇게 말문을 열었다. "앞으로 6개월 동안 앨 고어는 여러분들을 사악한 적으로 만들 겁니다. 여러분은 그냥 참고 계시겠습니까? 만일 이 사기극을 멈추고 싶다면 전국의 모든 총기 소지자들께서 대통령 선거 때 투표장으로 나오셔야 합니다." 그러고는 남북전쟁 당시 쓰였던 재래식 소총을 머리 높이 들어 올린 후 분노를 담은 목소리로 외쳤다. "이 시기에, 나는 이 두 마디를 여러분에게 던집니다. 내 말을 듣는 여러분 모두, 그리고 특히 앨 고어 당신에게, 내 손에서 총을 빼앗으려면 나를 먼저 죽여라!" 그로부터 7년 뒤 버지니아공대에서 32명이 총기 난사 사건으로 목숨을 잃었다. 그러나 정부는 아무런 대책을 내놓지 않았다.
부유층과 재계의 이익을 대변하는 보수적 정치집단일수록 '작은 정부'를 주장하는 경향이 있다. 미국도 예외는 아니다. '작은 정부'는 한국에서도 익숙한 표어가 되었다. 정치인들은 '작은 정부'를 '선진화'를 위해 당연히 가야 할 길로 홍보하고 있으며 이를 위해 '민영화'와 '탈규제'를 서두르고 있다. 한국 정부가 미국과 FTA를 맺어야 한다고 주장하며 내세운 이유는 '경제 모델 업그레이드'. 그것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알고 싶다면 미국을 보면 된다. 미국의 보수 정치 집단은 기업의 이익 극대화를 보장하는 것이 '신의 뜻'이라고까지 주장한다. 사익 추구가 신의 뜻과 어떻게 연관되는지 알 수 없지만 성경은 '돈을 사랑하는 것이 만 악의 뿌리'라고 가르치고 있다. 연단 위에서 총을 높이 치켜들 때 '칼로 선 자는 칼로 망한다'는 예수의 가르침은 헤스턴 자신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왔을까. 2008년 4월 그의 사망 소식이 전해졌을 때 풍자 신문인 〈어니언〉은 이렇게 보도했다. "찰튼 헤스턴, 결국 죽어서 총을 빼앗기다."
'의약 난민'을 아시나요? - 약을 사기 위해 국경을 넘는 미국인들미국에서는 국경을 넘거나 우편 주문으로 외국의 약을 구입하는 것이 보편화되어 있다. 미국 내에서 처방약은 웬만한 중산층도 감당하기 어려울 만큼 비싸다. 이로 인해 국가를 넘나드는 '약 쇼핑' 단체관광객은 물론, 의료비를 감당하지 못해 아예 이민을 떠나는 이들까지 있다. 이처럼 약을 사거나 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