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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젤리나 졸리, 세 가지 열정

로나 머서 지음 | 글담
안젤리나 졸리 세 가지 열정

로나 머서 지음

글담 / 2008년 8월 / 192쪽 / 9,800원

1부 첫 번째 열정, 자신의 선택에 당당하라!



누군가에게 의지하지 않는 삶을 선택하라!


영화배우의 딸로 태어나다: 안젤리나 졸리의 아버지는 1978년 <귀향>이란 영화로 오스카상을 거머쥔 연기파 배우 존 보이트이다. 존 보이트는 마셀린 버트랜드(안젤리나의 어머니, 영화배우)와 이혼할 당시 최고의 전성기를 누리고 있었다. 존 보이트는 딸을 굉장히 사랑했다. 2002년 두 사람이 함께한 인터뷰에서 존 보이트는 안젤리나가 태어나던 순간을 다음과 같이 묘사하고 있다. "너는 기억하지 못하겠지만, 네가 엄마의 자궁에서 세상 밖으로 나왔을 때, 난 널 몸에 안아 들고 네 얼굴을 쳐다보았단다. 넌 한쪽 볼 옆에 손가락을 대고 있었는데 아주 영리해 보였지, 네 엄마와 나는 네가 태어나서 얼마나 행복한지 모르겠다고 네 귀에 속삭였어. 그리고 널 잘 돌보겠다는 말도 했지. 네가 어떤 아이인지 잘 살펴보고, 하느님이 주신 놀라운 가능성을 네가 실현할 수 있도록 도와주겠다는 약속도 했단다. 내가 약속하는 말을 듣고 분만실에 있던 사람들이 모두 눈물을 흘렸지만, 나는 울지 않았어. 너와 시선을 맞추느라 정신이 없었으니까." 이혼 후 더 이상 함께 살지는 않았지만 아이들에게 늘 관심과 애정을 쏟으려 노력하던 존 보이트는 1982년 당시 일곱 살이던 안젤리나를 영화에 출연시켰다. 그래서 안젤리나는 <라스베가스의 도박사들>이란 영화에서 얼떨결에 아역으로 데뷔하였다.



유명인 아버지 밑에서 자란다는 것: 1987년, 존 보이트는 딸을 이렇게 묘사했다. "정말 놀라운 아이입니다. 어쩌면 저를 조금씩 닮아 가는지도 모르겠어요. 아이러니하게도 그 점이 걱정이 됩니다. 안젤리나는 재치있고 상상력이 대단한데다 대단히 활동적인 아이예요. 무언가를 끊임없이 해야만 하는 성격을 지녔지요. 마치 똘똘한 사내 아이 같아요. 아기 때부터 남의 도움을 받지 않으려고 했어요. 알파벳을 처음 배울 때도 도움을 거부하더군요. '싫어, 나 혼자 할 거야. 내가 할 수 있다니까!'라고 말했으니까요. 그게 바로 안젤리나의 본성입니다. 저를 닮았지요. 고집 세고 남의 말 듣길 싫어해요." 한편, 안젤리나는 아버지가 유명인이라는 것을 불편해했다. 어느 날 존 보이트는 아이들을 데리고 어느 레스토랑에서 저녁 식사를 하고 있었다. 그때 한 남자가 머뭇거리며 다가와 반가운 표정으로 알은체를 했다. 그러고는 식사를 방해해서 죄송하다며 혹시 영화배우가 아니냐고 물었다. 안젤리나는 그날따라 기분이 안 좋았는지 그 남자에게 이렇게 쏘아 붙였다. "그게 뭐 어때서요? 이제 좀 그만 하세요. 우리도 사생활이란 게 있다고요." 물론 그 남자는 매우 민망해서 어쩔 줄 몰라 하며 물러섰다. 존 보이트는 이날 유명인을 둔 아이들이 내색은 잘 하지 않아도 불편한 일을 많이 겪게 된다는 걸 잘 알게 되었다. 아버지가 팬들과 더 가까워질수록 안젤리나는 아버지와 자신의 사이는 점점 멀어지는 것만 같았다. 또한 자신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도 그냥 귀여운 여자 아이로 보는 것이 아니라 유명 배우의 딸로서만 바라본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아버지의 성을 떼어버리다: 안젤리나도 배우로서 아버지의 업적은 자랑스럽게 생각했다. 안젤리나가 배우가 되기로 결심했을 때 존 보이트는 딸이 자신과 치열한 접전을 벌일 수 있을 만큼 연기에 재능이 있다고 믿었고, 또 이를 진심으로 기뻐했다. 그러나 어머니를 매니저로 안젤리나가 처음 배우를 시작할 때, 그녀는 아버지와 비교되는 게 싫어서 아버지를 멀리하려고 했다. 스물한살 때 안젤리나는 아버지에 관해 이렇게 말했다. "아버지를 사랑하지만 저는 아버지가 아니에요." 안젤리나는 자신이 존 보이트의 딸이라는 사실을 공적으로 밝히지 않으면 아버지에 대한 부담을 덜 수 있다고 생각했다. "아버지의 존재를 알리지 않고 인터뷰나 오디션에 응하는 게 훨씬 편하고 쉬웠어요. 또 대본을 아버지께 보여드릴 필요도 없었죠." 딸이 아버지의 전철을 밟아 배우가 되었다는 사실이 너무 강조되면 배우로서 일할 때 오히려 방해가 될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또한 유명인의 딸이라서 특혜를 입었다거나 그 아버지의 연기와 비교되는 대상이 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결국 안젤리나 졸리는 자신의 이름에서 '보이트'라는 성을 떼어 버렸다. 아버지에게 배우의 기질이라는 유전자를 이어받았지만 배우 '존 보이트의 딸'이 아니라 배우 '안젤리나 졸리'로 당당히 서기 위한 선택이었다. 이러한 결정에는 자신의 인생을 누구에게도 의지하지 않고 스스로 개척하려는 그녀만의 철학도 작용하였다. 아버지의 성을 떼어 버린 안젤리나 졸리는 스스로 서기 위해 더 열심히 연기에 몰입할 수 있었고, 결국 기존 할리우드 스타들과는 다른 자신만의 길을 개척할 수 있었다.



외모가 아닌 재능으로 승부하라



'여배우'가 아닌 '배우'로서 성공하기 위해


안젤리나는 스크린에서 예쁘게 나오는 배역을 원하지 않았다. 1999년 아버지 존 보이트와 함께 출연한 인터뷰에서 안젤리나는 이렇게 말했다. "여배우가 영화에서 옷을 걸친 상태로 나오려면 엄청난 노력을 기울여야 하죠. 저는 주연 남자 배우의 예쁜 애인 역할은 맡고 싶지 않아요." 이 말은 여배우들이 성적인 대상 또는 섹시 코드로서만 영화에 이용된다는 뜻이다. 안젤리나는 여배우로서 섹시하게만 보이거나 나약해 보이는 이미지를 좋아하지 않았다. 그 대신 개성 강한 연기력과 강인한 열정을 가진 여자들을 연기하길 원했다. 그래서 선택한 영화들이 바로 <본 콜렉터>(1999)와 <처음 만나는 자유>(2000)이다. 이 영화들에서 안젤리나는 옷을 벗고 나오거나 주연 남자배우의 애인 역할로 나오지 않았다. 그 대신 지적이고 냉철한 여형사 역할과 거칠지만 강한 성격의 정신질환자 역할을 맡게 되었다. 이 두 영화 때문에 그녀는 좀 더 확고히 연기파 배우라는 꼬리표를 달 수 있게 되었다.



<처음 만나는 자유>, 리사에게 빠져들다: 작가 수잔나 케이슨(Susanna Kaysen)은 『처음 만나는 자유(Girl, Interrupted)』를 집필했을 때, 나중에 오스카를 수상할 영화로 만들어지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고 한다. 이 책은 1960년대 후반, 보스턴 맥린 정신병원에서 작가 본인이 겪은 이야기들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그녀는 18살에서 20살까지 2년 동안 정신병원에 입원했었는데, 약물과용으로 자진해서 들어간 것이라고 한다. 병원에 있을 때 수잔나는 인격 장애의 경계선상에 있다는 진단을 받았다. 인격 장애는 감정과 인간관계, 자기 이미지, 정체성, 자아에 대한 개인적인 감각이 불안정하다는 특징을 보인다. 수잔나 케이슨은 자신을 인격 장애로 판단한 진단에 의문을 제기하면서, 방황하며 사춘기를 보내는 자기 또래의 다른 여자 아이들과 자신이 무엇이 그렇게 다른지 의아해했다. 그녀는 이런 불만들을 책 속에 등장하는 십대 후반의 소녀들을 통해 표현하고자 노력하였다. 자살이라는 생각이 낯설지 않은 안젤리나는 수잔나의 글을 읽자마자 공감대를 느낄 수밖에 없었다. 이 책을 끝까지 읽는 동안 유난히 안젤리나의 관심을 사로잡은 인물이 있었는데, 바로 수잔나와 같은 병동에 있던 '리사 로우'라는 환자였다. 리사가 안젤리나의 시선을 끈 이유는, 안젤리나가 '리사를 사랑했고 자신과 동일시했기' 때문이었다. 리사는 반사회인으로 진단받은 반항적인 인물이다.



안젤리나는 책을 읽을 때 마치 리사가 자신에게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 같았다고 한다. 그래서 이 책이 영화화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그녀는 제작자를 찾아가 리사 역할을 해달라고 애원하다시피 하였다. 위노나 라이더 역시 21살 때 수잔나 케이슨의 작품을 읽고 안젤리나와 비슷한 감동을 받았다고 한다. 1971년 미네소타에서 태어난 위노나 라이더도 안젤리나처럼 과거에 심리적인 문제를 겪은 적이 있었다. <헤더스>(1989), <가위손>(1991) 등의 영화를 통해 배우로서 명성을 얻었지만, 열아홉 살이라는 젊은 나이에 우울증, 불안발작, 극도의 피로 증세로 정신병원에 입원해서 치료를 받아야 했다. 수잔나 케이슨은 <처음 만나는 자유>에서 이해받지 못한다고 느끼는 젊은 여성의 좌절과 욕구불만에 대해 연구했는데, 위노나 라이더는 그런 감정을 제대로 알려야 한다고 생각했고, 이 책을 영화화하는 작업에 제작자와 배우의 입장에서 적극 추진하였다.



드디어 오스카를 손에 쥐다: 안젤리나가 오스카를 손에 쥐게 된 이유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우선 작품을 보는 안목을 가지고 있었다는 점이다. 또한 정신질환을 앓거나 사회와의 소통이 원만하지 못한 사람들에 대한 연민과 공감대가 없었다면 그렇게 훌륭한 연기를 펼치지 못했을 것이다. 또 하나의 이유로는 안젤리나가 자신의 외모가 아닌 자신이 가진 재능으로 연기에 대한 승부를 보려 했기 때문이다. 다른 배우들과는 달리 오히려 예뻐 보이는 역할을 멀리하고, 자신의 연기에 대한 열정을 충분히 발휘할 수 있는 역할들을 선호한 결과, 영광의 오스카를 손에 쥘 수 있게 된 것이다. 안젤리나는 '여배우'가 아닌 '배우'로서 사람들에게 남길 원했다. 그러한 이유로 그녀는 더 좋은 연기를 펼칠 수 있었고, 아카데미 심사위원들은 그녀의 이런 면들을 간과하지 않았다. 2000년에 열린 제72회 아카데미 시상식의 여우조연상이 <처음 만나는 자유>의 리사 역을 맡은 안젤리나에게 돌아간 것은 어쩌면 매우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2부 두 번째 열정, 끊임없이 자신을 변화시켜라!



방황과 일탈의 경험을 통해 변화해라!


안젤리나 졸리는 어려서부터 보통 아이들과는 달랐다. 다른 아이들은 부모님께 강아지나 아기 고양이를 애완동물로 사달라고 조를 때 안젤리나는 블라디미르라는 이름의 도마뱀을 키웠다. 또 다른 애완동물로 뱀을 키우기도 하였다. 그리고 여자 친구들이 발레리나를 꿈꿀 때 안젤리나는 흡혈귀나 장의사가 되고 싶다고 했고, 그림을 그려도 노인의 얼굴이나 나체여성, 고함치는 입 등을 그리곤 하였다. 어른들이 보기에 안젤리나는 확실히 정서적으로 불안정한 아이로 느껴졌을 것이다. 이런 점들이 잦은 이사와 외도로 인한 아버지의 부재에서 비롯된 것인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안젤리나의 정서에 불완전한 가족의 배경이 영향을 줬음에는 틀림이 없는 것 같다. 다음과 같은 안젤리나의 말을 살펴보면 알 수 있다. "이사를 많이 하다 보니 저는 영원히 한곳에 정착할 수 없다는 생각이 자주 들곤 했어요. 그래서 항상 다락방을 갖고 싶어했죠. 언제라도 그 자리에 있고 올라가기만 하면 옛일들이 새록새록 기억나는 다락방 말이에요. 다락방은 포근히 절 안아 줄거라 생각했어요." 십대 시절 안젤리나의 이런 면은 더욱 도드라졌다. 이때부터 자살을 생각하게 됐고, 자신의 몸에 자해를 하며 만족감을 느꼈다. 또한 거친 행동으로 학교에서 문제아로 낙인 찍혔고, 열여섯 살에 남자친구와 자신의 집에서 동거를 하기도 했다.



남다른 감수성을 가진 소녀: 안젤리나가 9살 때 외할아버지가 돌아가셨는데, 감수성이 예민한 어린 소녀에게 외할아버지의 장례식은 굉장히 매력적인 의식으로 보였다. 대부분의 또래 친구들은 장례식이라면 왠지 마음이 움츠러들고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느끼지만, 안젤리나는 전혀 그렇지 않았다. "제가 9살 때 외할아버지께서 돌아가셨어요. 생전에는 활기차고 멋진 분이셨는데, 장례식은 아주 끔찍했어요. 모두가 히스테리 증세를 보였지요. 저는 장례식이 생명을 경축하는 행사일 거라고 예상했는데, 가보니까 방 안 가득 당황한 표정의 사람들이 모여 있었어요. 어려서부터 전 죽는 게 두렵지 않았어요. 그래서 다들 절 보고 어두운 사람이라고 얘기하는 건가 봐요. 그런데 사실 전 무척 긍정적인 사람이에요." 안젤리나는 자신을 이렇게도 설명했다. "저는 전통이나 뿌리와 관련된 부분에 아주 관심이 많아요. 그래서 장례식에 그렇게 정신이 팔렸었나 봐요." 외할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후, 안젤리나는 검정색 옷을 입기 시작했다. 산책할 때도 무덤 주변을 걸어 다녔고, 책을 읽을 때도 시체를 방부 보존하는 방법이나 시체 안치에 관한 과학 책을 읽었다. "죽음에 관한 이미지를 떠올리면 마음이 안정되는 게 느껴져요. 만약 내가 내일 죽는다고 가정해 보면 지금 나의 삶을 객관적인 위치에서 감상하는 게 가능해지지요."



안젤리나, 방황에서 벗어나다: 안젤리나는 십대 시절 자신이 대단히 제멋대로 행동했음을 뒤늦게 깨달았다. 폭넓은 관점에서 문제를 바라보고 생각해야 하는데 자신은 전혀 그러지 못했고 오로지 자기 문제밖에 신경 쓰지 않았다는 것을 깨닫고 부끄러워하였다. "제 심술궂은 행동과 자해를 보며 아마 의사들은 어머니와 아버지에 대해 소곤댔을 거예요. 14살 때 누군가가 저를 아시아나 아프리카 한가운데 떨어뜨려 놓았다면, 제가 얼마나 자기중심적인 사람인지 깨달았겠죠. 그곳에서는 고통, 죽음과의 진정한 싸움이 한창이었으니까요. 그런 모습을 목격했다면, 자신과의 어리석은 싸움은 하지 않았을지도 모르죠." 하지만 안젤리나에게 십대 시절의 반항과 방황은 앞에서도 얘기했다시피 그녀의 연기에 큰 자양분이 되어 주었다. 그뿐만 아니라 그녀가 전쟁으로 폐허가 된 가난한 나라의 난민과 불쌍한 어린이들을 돕는 데 감정적인 공감대를 이끌어 낼 수 있는 충분한 경험이 되었다. 만약 그녀가 마냥 행복하기 만한 어린 시절을 보내고, 온실 속의 꽃처럼 보호받고 자랐다면 지금의 안젤리나처럼 세계의 위험한 곳은 모두 헤치고 다니며 박애를 실천할 수 있었을까? 또한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타국의 아이들을 입양하여 충분히 사랑을 줄 만한 용기와 자애를 가지게 되었을까? 아마 아닐 것이다.

여느 할리우드의 여배우들처럼 성형 수술에 거액을 투자하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또한 그녀는 청소년기에 스스로를 자해하며 학대했지만 그러한 마음을 이기고 자존감을 지켜냈다. 그렇게 자신을 지키고 사랑해 나가는 데 그녀의 연기에 대한 열정과 사람에 대한 폭발할 듯 넘치는 애정이 큰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불우한 십대를 보냈던 안젤리나의 성공적인 변화는 지금 불우하고 어두운 시절을 보내고 있는 청소년기의 아이들에게도 용기를 주고, 귀감이 되기에 충분하다.



나의 문제에서 벗어나 넓은 시야를 가져라!



여전사에서 박애주의자 안젤리나 졸리로


<툼 레이더> 촬영이 끝난 후 안젤리나가 다시 LA의 빌리 밥에게 돌아왔을 때 그녀는 많은 것이 바뀌어 있었다. 비단 안젤리나의 외모만 바뀐 것이 아니었다. 오랫동안 가정에서 멀리 떠나 지내던 그녀는 새로운 문화를 접하면서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견해를 갖게 되었고, 세상을 더 폭넓은 시각으로 바라보게 되었다. 즉 빌리 밥에게는 안 된 일이지만, 안젤리나는 결혼할 당시와는 거의 180도 다른 사람으로 변해 있었다.



미국의 관점에서 벗어나 세계를 바라보다: 이러한 변화를 야기한 여러 가지 원인 중 하나는 안젤리나가 영국에 머무는 동안 뉴스를 시청한 시간이 많았다는 점이다. 뉴스를 통해 세상을 보는 눈이 열리면서 그녀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미국에서 성장한 그녀는 그동안 미국적인 관점에서만 세상을 바라보았다는 걸 깨달았고, 영국에 머무는 동안 전에는 경험하지 못하던 많은 일들을 경험하고 눈으로 목격하였다. 안젤리나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미국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저는 미국 역사에 대해서만 배웠어요. 그리고 정치적 이슈나 사건이 터지면 저 자신과 미국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 가에만 관심을 가졌지 전 세계적인 영향력에 대해서는 생각해 본적이 없었어요. 영국에서 뉴스를 시청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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