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 비테 영재 교육법
기무라 큐이치 지음 | 푸른육아
칼 비테 영재 교육법
기무라 큐이치 지음
푸른육아 / 2006년 10월 / 309쪽 / 10,000원
PART 01 조기 교육이 영재를 만든다칼 비테는 1800년 7월, 독일 중부의 로효라는 마을에서 태어났다. 아버지의 이름 역시 칼 비테이며, 이 마을의 목사였다. 비테 아버지는 평범한 시골 목사였으나 대단히 독창적인 견해를 지닌 비범한 사람이었다. 그의 견해 중에서 가장 높이 평가할 만한 것은 교육론이었다. 그는 자기 아이가 태어나기 전부터 어린아이의 교육은 지력의 서광과 함께 시작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다시 말하면 교육은 어린아이가 태어나는 그 순간부터 시작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교육시키면 대개의 어린아이는 반드시 비범한 사람이 된다고 확신했다. 비테는 미숙하고 모자라 보이는 아이였다. 그러나 비테 아버지는 실망하지 않았고, 자신의 계획을 하나씩 하나씩 실행해 나갔다. 처음에는 아내조차도 남편의 노력에 동조하지 않았다. 그런데 오래지 않아 그 바보라고 불리던 아이가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하기에 이르렀다.
비테는 여덟 살 때 독일어, 프랑스어, 이탈리아어, 라틴어, 영어 및 그리스어 등 6개 국어를 자유롭게 구사했다. 또 동물학, 식물학, 물리학, 화학도 잘했지만 특히 수학 실력이 대단히 뛰어나 아홉 살 때는 라이프치히 대학교 입학시험에 합격했다. 그리고 1814년 4월, 불과 열네 살의 나이에 수학 관련 논문으로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2년 후인 열여섯 살 때는 법학박사 학위를 받았고, 더 나아가 베를린 대학교 법학 교수로 임명되었다. 비테는 교편을 잡기 전 프러시아 왕의 하사금을 받고 이탈리아로 유학을 다녀왔다. 1820년 이탈리아에서 돌아온 그는 다음 해인 1821년부터 브래슬라우 대학교에서 법학 강의를 시작하였고, 그 뒤 1834년 할레 대학교로 옮겨 1883년 여든세 살까지 강의를 계속했으며, 세상을 뜰 때까지 그 명성이 자자했다.
참으로 다행스러운 것은 비테 아버지가 열네 살까지 비테를 교육한 내용을 책으로 써서 공개했다는 사실이다. 『칼 비테 교육』이라는 책으로, 당시 사람들에게는 거의 관심을 끌지 못했고, 그 경로가 흔적도 찾아볼 수 없을 만큼 사라져 오늘날까지 남아있는 책은 거의 없다. 그런데 하버드 대학교 도서관에 한 권 남아 있게 되었는데, 현재 미국에 있는 유일한 책이라고 한다. 위너의 아버지 위너 박사는 하버드 대학교 교수였다. 박사는 이『칼 비테 교육』을 읽고 위너와 그 형제자매들을 교육시켰다. 사이디스의 아버지 사이디스 박사도 하버드 대학교 졸업생으로 그 역시 이 책을 읽고 아들 사이디스를 교육시켰다. 이백여 년 전에 비테가 받았고, 그 후 사이디스나 위너 등이 받은 교육은 한마디로 말하면 '조기 교육'이다.
그렇다면 어째서 조기 교육이 영재를 만드는 것일까? 그 이유는 어린아이에게 '가능 능력'이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어린아이가 있다고 하자. 그 아이가 아주 이상적으로 성장해서 100이라는 수치의 능력을 갖춘 사람이 될 수 있다면, 우리는 그 아이가 100의 가능 능력을 갖추고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이상적이라는 것은 현실적으로 거의 불가능하다. 100의 가능 능력을 갖고 태어난 어린아이라 할지라도 완전히 방치해 두면 20이나 30정도의 능력을 갖춘 사람으로밖에 자라지 못한다. 즉 그 가능 능력이 20%나 30%밖에 실현되지 못하는 것이다. 그렇지만 교육을 잘 시키면 60이나 70%, 때로는 80내지 90%의 능력을 갖춘 사람으로도 성장한다. 우리가 생각하는 교육의 이상은 어린아이의 가능 능력을 100%로 끌어올리는 것이다. 어린아이의 가능 능력에는 '체감 법칙'이라는 것이 있다. 예를 들어 100 정도의 가능 능력을 갖고 태어난 아이를 태어났을 때부터 이상적으로 교육시켰다고 하자. 아이는 100의 능력을 갖춘 사람이 된다. 반면 다섯 살 때부터 교육을 시키면 이상적으로 잘 교육시켜도 80 정도의 능력을 가진 사람밖에는 되지 못한다. 또 열 살 때부터 교육을 하면 아무리 이상적으로 교육을 시킨다 해도 60 정도의 능력밖에는 갖지 못한다. 즉 교육을 시작하는 시기가 늦어지면 늦어질수록 어린아이가 갖고 태어난 가능 능력의 실현 비율은 낮아지게 되는데 이것이 어린아이가 가진 가능 능력 체감 법칙이다.
초등 교육으로 인해 명인이 없어졌다는 말들도 있다. 서양에서는 피아노는 다섯 살, 바이올린은 세 살 때부터 시작하지 않으면 절대로 심오한 경지에 이르지 못한다고 한다. 우리의 능력은 그 발달 시기에 발달의 기회가 주어지지 않으면 하나씩 사라져 버린다. 그 결과 어린아이의 가능 능력 체감 현상이 나타나는 것이다. 조기 교육이 영재를 만드는 까닭도 바로 여기에 있다. 어떤 사람들은 조기 교육이 아이의 건강에 심각한 해를 끼친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이것은 조기 교육에 대한 오랜 비난이기도 하다. 그러나 비테는 지극히 건강하고 쾌활한 아이였고, 사이디스 박사, 워너 박사의 아이들도 물 만난 물고기처럼 언제나 밝고 건강하며 쾌활했다. 그러므로 조기 교육이 어린아이의 건강을 해친다는 것은 근거 없는 주장이다.
PART 02 칼 비테의 교육칼 비테 아버지는 비테가 열네 살이 될 때까지 실시한 교육을 책으로 출간해 세상에 공개했다. 1818년에 쓴, 『칼 비테 교육』이라는 책이다. 아마 조기 교육의 고전이 되는 책일 것이다. 이 책은 두 가지 이유로 당시 사람들에게는 별 관심을 끌지 못했다.
첫째는 집필 방법이 좋지 않았다. 천 쪽이 넘는 분량인데 그 내용의 대부분이 별로 중요하지 않은 이론들뿐이었다. 게다가 내용들이 무질서하게 설명되어 있었다. 위너 박사가 이것을 영어로 번역했는데, 그 서문에 중요하지 않은 부분은 생략하고 중요한 부분만 옮겨 놓았다고 밝히고 있다. 그 결과 삼백 쪽 분량으로 줄어들긴 했지만 여전히 장황하게 늘어놓은 내용들이 많았다. 그러니 당시 사람들이 이 책을 읽고 지루함을 느꼈을 것은 당연하다.
두 번째 이유는 이러한 교육 이론이 당시 사람들의 생각과는 크게 달랐기 때문이다. 비테 아버지가 주창한 교육 이론의 핵심은 어린아이의 교육은 아이에게 지력의 서광이 비치는 시점에서 시작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아테네 사람들에게 조기 교육은 하나의 전통이었지만 그 훌륭한 전통은 어느 사이엔가 사라져 버렸고, 게다가 언제부터인가 어린아이의 교육은 일고여덟 살 무렵에 시작해야 한다는 이론으로 바뀌었다. 오늘날에도 이 이론이 일반적으로 통용되고 있는데, 그 당시에는 더 확고했다. 또한 조기 교육이 어린아이의 건강을 해친다는 생각이 오늘날보다 훨씬 더 강하게 자리 잡고 있었다. 비테 아버지의 교육 이론도 당시 사람들에게는 거의 이치에 맞지 않는 정신 나간 이론으로 보였다. 당시 사람들은 비테 아버지의 교육 이론을 믿지 않았고, 『칼 비테 교육』은 세상에서 사장되었다.
칼 비테 목사에 대한 자료는 유감스럽게도 많이 남아 있지 않다. 그는 시골 목사에 지나지 않았으나 대단한 학자이고, 창조적인 식견을 가진 뛰어난 사람이었다. 게다가 의지력도 강해서 남의 비평에도 흔들리지 않았으며, 자기 생각을 거침없이 실행하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사람들에게 괴짜라고 불리기도 했다. 비테 아버지는 자신의 교육론을 가지고 비테의 교육에 들어갔다. 어린아이의 지력에 서광이 비치는 시점, 즉 이 세상에 태어나는 것과 동시에 교육을 시작했다. 아이가 가진 천성의 80~90%를 발휘시키기 위해서는 이렇게 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일찍부터 어린아이가 가진 능력을 발달시키기 위해서는 순서를 따라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 목적을 이룰 수가 없다. 그러면 어린아이의 능력을 일찍부터 발달시키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제일 중요한 것은 말을 가르쳐야 한다는 것이다. 말은 우리가 지식을 수확하는 도구로서, 이 도구가 없으면 우리는 지식을 거둬들일 수가 없다. 인류가 다른 동물보다 뛰어나게 진화한 것은, 다른 동물들에게는 없는 언어를 사용했기 때문이다. 비테 아버지는 비테가 주변의 사물에 관심을 보이자 말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그는 어린아이의 교육은 아무리 일찍 시작해도 빠른 게 아니라고 했다. "어린아이의 눈앞에 손가락을 내밀고 한번 움직여 보라. 아이는 그것을 발견하고 붙잡으려고 한다. 처음에는 감을 잡지 못해 좀처럼 붙잡지 못하지만, 조금 지나면 곧 성공한다. 그러면 아이는 매우 기뻐하며, 그것을 입으로 가져가서 빨기 시작한다. 이때 우리는 '손가락, 손가락!'하고 천천히 명확한 발음으로 반복해서 들려주어야 한다."그는 비테에게 분별력이 생기자마자 눈앞에 여러 가지 물건들을 꺼내 보이며 그 이름을 천천히 그리고 명확한 발음으로 반복해서 들려주기 시작했고, 비테는 얼마 지나지 않아 물건들의 이름을 정확히 발음할 수 있게 되었다.
어린아이에게 무언가를 가르치는 것은 대단히 어려운 일이다. 정말로 신중을 기해서 가르치지 않으면 제대로 되지 않는다. 비테 아버지는 그것을 참 잘했다. 우리가 외국어를 배울 때 단어를 많이 알고 있어야 한다는 것은 잘 알지만, 그렇다고 처음부터 단어만 외우려 든다면 힘만 들고 금방 잊어버리거나 싫증을 내게 된다. 단어를 많이 외우려면 재미있는 책을 많이 읽으면서 그 안에 나오는 단어를 외우는 것이 효과적이다. 마찬가지로 어린아이의 어휘를 풍부하게 하기 위해서 덮어놓고 단어만 머릿속에 집어넣으려고 한다면 아무런 효과가 없다. 비테 아버지는 그것을 효과적으로 진행시켜 나갔는데, 그 방법은 식탁 위에 있는 물건이나 집 안에 있는 물건들, 정원의 꽃이나 벌레 등을 잡아 비테와 여러 가지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었다. 그 이야기 속에서 새로운 단어와 그 의미를 알기 쉽게 가르쳤다. 처음에는 무척 간단하게 시작했지만, 매일 꾸준하게 반복했고, 비테가 조금이나마 이야기를 할 수 있게 되자, 매일 이야기를 되풀이해서 들려주었다. 어린아이에게 이야기만큼 중요한 것은 없다. 비테 아버지는 비테에게 이야기를 들려주기만 한 것이 아니라 그것을 따라 하게끔 했다. 그렇게 해야만 이야기의 효과를 충분히 거둘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방법으로 교육시킨 결과, 비테는 대여섯 살이 되었을 때 약 3만 개 정도의 많은 단어를 알게 되었다.
비테 아버지의 언어 교육 방법 중 절대로 그냥 지나쳐서는 안 될 것이 하나 있다. 비테에게 유아어나 사투리를 가르치지 않았다는 것이다. 어린아이에게 '응가'라든가 '멍멍이' 같은 유아어를 가르치는 것만큼 무의미한 것은 없다. 두 살 된 어린아이라도 천천히, 정확히, 반복해서 단어를 들려주면 대부분의 단어를 발음할 수 있다. 가르치면 할 수 있는데 일부러 가르치지 않는 것만큼 어리석은 일은 없다. 그는 올바른 독일어를 정확한 발음으로 반복해서 들려주며 신중히 가르쳤다. 비테가 잘 따라 하면 "잘했다, 잘했어" 하고 머리를 쓰다듬으며 칭찬과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 이렇게 해서 비테는 아주 어릴 때부터 대부분의 말들을 정확하게 발음했다. 그 결과 비테는 아기 때부터 말이 매우 분명했고, 보통의 아이들처럼 더듬거리지 않았다. 비테 아버지는 비테에게 어린아이 같은 단순한 표현만 계속해서 가르친 것이 아니었다. 점점 더 복잡한 표현을 이해하거나 사용할 수 있도록 가르쳤다. 그리고 그 표현을 분명하게 하도록 했고, 애매한 표현을 사용하지 않도록 교육시켰다. 머리를 명석하게 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말을 정확하게 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었다. 언어는 우리가 지식을 받아들이는 도구이다. 단순히 단어뿐만 아니라 여러 가지 표현 방법을 배우지 않으면 조기 교육의 목적을 달성할 수 없다.
비테 아버지의 교육적 이상은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원만한 사람을 만드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그는 지덕체 모두를 중시했다. 비테 아버지는 지덕체 이 세 가지 교육만으로는 부족하다고 여겨 거기에 교양의 함양을 더하고, 이것 또한 성심성의껏 실천해 나갔다. 그는 조화를 중요시하여 집안에 조화롭지 않은 물건은 두지 않았고, 격에 맞지 않는 품위 없는 물건도 두지 않았으며 선물을 받더라도 집에 어울리지 않는 것은 두지 않았다. 의복은 검소하고 품위 있는 차림을 했고, 옷매무새가 단정하고 깔끔하도록 신경을 썼다. 또한 비테의 문학적 교양을 기르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 결과 비테는 문학에 매우 능통했으며 유명한 시의 대부분을 암기하고 있었다. 그는 정서적으로 메마른 책벌레가 아니었다.
비테 아버지는 또 비테가 올바른 정서를 갖도록 하는 데도 주의를 기울었다. 비테가 세 살쯤 되었을 때, 하루는 그의 집에 많은 사람들이 와 있었다. 그들은 비테를 상대로 여러 가지 이야기를 하고 있었는데, 그때 집에서 기르는 개가 들어왔다. 보통 어린아이들이 곧잘 그러는 것처럼 비테가 개의 꼬리를 잡아당기는 것을 보고, 비테 아버지는 무서운 얼굴로 비테의 머리카락을 잡아당겼다. 비테가 놀라서 손을 놓자 아버지도 손을 놓았다. 그리고 "칼, 이렇게 머리카락을 잡아당기면 기분이 어떻지?" 하고 물었다. 비테가 얼굴이 빨개져서 "나빠요"라고 말하자 "그러면 개한테도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라고 말하고는 즉시 비테를 밖으로 내보냈다. 비테 아버지는 이런 교육을 통해 비테가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하도록 가르쳤기 때문에 비테는 착하고 인정 많은 사람이 되었다. 그는 사람들에 대해서도 배려가 깊었을 뿐 아니라, 동물을 대할 때도 동정심이 많았다.
PART 03 스토너 부인의 교육비테 아버지의 유저 『칼 비테 교육』을 읽고 자신의 아이를 그대로 교육시켜 놀라운 결과를 얻은 사람이 또 한 사람 있다. 미국 펜실베이니아 주의 피츠버그 대학교에서 어학을 가르쳤던 스토너 부인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부인은 래드클리프 여자 대학교 출신으로, 자신에게 처음으로 조기 교육에 관한 개념을 전해 준 사람은 제임스 박사라고 말했다. 아마도 『칼 비테 교육』의 가치를 최초로 인정하고 사람들에게 소개한 사람이 바로 고 제임스 박사였던 것 같다. 부인에게는 위니프레드라는 외동딸이 있었다. 이 아이는 세 살 때부터 시문을 쓰고 네 살 때에는 에스페란토어로 극을 썼다. 시와 소설은 다섯 살 때부터 여러 신문이나 잡지에 실렸으며, 그중 어떤 것은 책으로 출판되어 대단한 호평을 받았다. 스토너 부인은 위니프레드가 열두 살 때인 1914년에 『자연 교육』이라는 책을 써서 자신의 교육법을 발표했다.
아기는 일찍부터 사람의 목소리나 물건의 소리에 주의해서 귀를 기울인다. 이것만 봐도 어린아이에게 일찍부터 말을 가르치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녀는 위니프레드가 아주 어릴 때부터 말을 알아듣는 아이에게 하듯 말을 걸었다. 세상의 많은 엄마들이 사용하는 유아어는 사용하지 않았다. 아이에게 유아어를 가르치는 것만큼 무의미한 일은 없다. 아이는 유아어를 배움으로써 두 종류의 어휘를 배워야 하는 헛수고를 하게 되며, 어른이 되어서도 정확한 발음을 할 수 없는 손해를 입게 된다. 어린아이에게 가능한 한 빨리 많은 어휘를 가르쳐야 할 필요가 있기 때문에 절대로 유아어와 같은 비경제적인 언어를 가르치는 것은 좋지 않다. 세상에는 훌륭한 교육을 받은 사람인데도 불구하고 잘못된 발음을 하거나 잘못된 문법을 사용하는 사람이 많이 있다. 어린 시절에 제대로 된 교육을 받지 못한 결과이다. 스토너 부인 역시 위니프레드가 태어났을 때부터 가능한 한 정확하게, 가능한 한 훌륭한 영어로 말하고 들려주었다. 유아어만큼은 절대로 가르치지 않았다. 위니프레드가 겨우 한 살일 때 한 친구가 "위니프레드, 저 멍멍이 좀 봐"라고 말하자, 아이가 "저건 멍멍이가 아니야. 개야"라고 말해서 그 친구가 깜짝 놀란 적이 있다. 그녀는 갓난아기 시절의 언어 교육이 평생을 두고 그 사람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