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상 가이드
피터 도어티 지음 | 알마
노벨상 가이드
피터 도어티 지음
알마 / 2008년 4월 / 351쪽 / 19,800원
스웨덴 효과 기나긴 겨울에 지쳐있는 12월의 스톡홀름. 그러나 노벨상 수상일인 12월 10일은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스웨덴 사람들을 들뜨게 하는 날이다. 사람들은 하는 일을 멈추고 텔레비전 앞으로 몰려든다. 왕과 왕비, 정장 차림을 한 수백 명의 사람들이 모인 모습은 이만저만한 장관이 아니다. 스웨덴 사람들은 자기네 문화와 전통에 굉장한 자부심을 갖고 있다. 스칸디나비아의 민주주의, 단합, 공명정대의 전통에 크나큰 일체감을 느낀다. 그래서 해마다 노벨상 수상식을 중심으로 벌어지는 식전행사는 스웨덴 사람들에게 인류의 위대한 노고, 그리고 그 노고를 진작시키는 일에 스웨덴이 차지하고 있는 자리를 크게 일깨워주는 것이다.
노벨상 수상자를 선정하는 작업은 많은 논의와 오랜 시간이 걸리는 과정이다. 선정의 틀은 지금까지도 알프레드 노벨의 인생과 뜻에 따르고 있다. 부유한 실업가이자 폭약 제조업자였던 노벨의 인생은 흥미로운 역설을 보여준다. 노벨은 기폭제, 다이너마이트, 포탄을 추진시키는 무연화약(어떤 의미에서 보면 이것들은 모두 파괴하는 데 쓰이는 것들이다)을 발명했으나, 많은 사람들은 노벨이 노벨상을 제정한 의도가 세계 평화를 증진시키고자 함이었다고 믿는다. 이런 의미에서 보면 상들은 모두 '평화상'이며, 널리 대중의 의식 속에서는 '평화'와 '노벨'이 분명하게 한 묶음을 이루고 있다. 이따금 내가 노벨평화상 수상자로 소개될 때도 있는데, 그때마다 이런 생각이 나의 폐부를 찌른다. 노벨이 남긴 특이한 유산이 아니었다면, 그리고 한 치의 어긋남 없이 그 유산이 관리되어 오지 않았다면, 아마 인간 노벨(결혼도 안 했고 자식도 없었다)은 지금쯤 거의 잊혀졌을 것이다.
1896년 12월 10일, 세상을 뜨기 전에 노벨은 자기 부동산의 대부분을 투자해서 거기서 적립되는 이자를 우리가 오늘날 노벨상으로 알고 있는 상의 자금으로 쓰이도록 지시를 내렸다. 유언장에서 노벨은 표창해야 할 부분들, 수상자 결정에 책임을 질 기관들, 수상자의 자격 요건에 대한 지침을 명기했다. 노벨상의 자리매김을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단일 요인은 노벨 유언장에서 뽑은 발췌문의 맨 마지막 문장에 담겨 있다. 스웨덴어를 우리말로 번역해보면 다음과 같다. "상을 수여하는 데 있어서 후보자의 국적을 따져서는 안 되며, 스칸디나비아 사람이든 아니든 가장 가치 있는 업적을 이룬 사람에게 상이 돌아가도록 하는 것이 나의 특별한 바람이다." 바로 이렇게 해서 지금의 노벨상이 있게 되었다.
노벨상은 인간을 가장 크게 이롭게 하는 데 공헌한 사람들이 물리학, 화학, 의학과 생리학, 문학, 경제학, 평화 부문에서 이룬 가장 중요하고 의미 있는 업적을 가려내고자 하는 국제적인 상이다. 내 생각으로 노벨상은 이제까지 합리적이고 증거에 기초한 탐구, 진리와 평화, 번영과 참여민주주의를 이루는 기본 구성단위들과 관련된 가치들에 널리 사회의 관심을 집중시키는 크나큰 역할을 해왔다. 앞으로 21세기를 살아가면서 인류에게 만족을 주는 긍정적인 성과를 거두려면 알프레드 노벨이 수상 부분으로 인정했던 각기 다른 문화들이 한데 뭉쳐 서로를 지원해주면서 상호작용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또한 이 작은 행성에 사는 사람들 모두가 건강하고 만족스러운 삶을 살도록 하기 위해 정치와 기업의 실세들, 금융가와 종교 지도자가 합심하는 것도 필요할 것이다. 화합, 평화, 지구의 번영을 이루길 희망하는 우리로서 이것 외에 달리 어떤 방도를 찾을 수 있을까?
과학 이야기 - 면역1901년 노벨상이 출범한 이래 수상자 중 열일곱 명은 전문 면역학자로 분류하는 게 합당할 것이다. 3년마다 대규모 국제면역학회의가 열리고 보통 5,000명 이상의 사람들이 모여든다. 면역학은 대단히 역동적인 분야다. 따라서 면역학이 과거 100년 동안 인류를 위해 무슨 일을 해왔으며 지금 어디를 향해 가고 있는지는 물어볼 만한 가치가 있을 것이다.
면역학과 노벨상을 이야기하기 전에 면역체계가 어떻게 작용하는지 먼저 설명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면역체계는 바이러스, 세균, 진균류, 연충 같은 아주 단순한 유기체들이 우리처럼 복잡한 고등 척추동물의 겉이나 속에서 기생하게 되면서 유발된 부담을 줄여주는 기능을 한다. 만일 효과적인 면역 제어가 없다면 세균 독소에 중독되거나, 세포와 기관이 바이러스에 의해 파괴되거나, 걷잡을 수 없이 성장하는 외부 침입자들에게 압도당해 결국 우리는 죽고 말 것이다. AIDS 환자 또는 암세포를 죽이는 데 쓰이는 방사선치료와 화학요법 때문에 심각한 면역억제 상태가 된 사람들에게 일어날 수 있는 일이 바로 이것이다.
면역체계는 쉽게 말해 보안 메커니즘이 작동하는 것이다. 우리 몸에 감염원이 들어오면 선천면역체계(Innate Immune System)라고 부르는 것에 의해 1차 방어선이 구축된다. 식세포작용 발견의 공로로 1908년에 일리야 메치니코프(Ilya Machnikov)에게 수여된 노벨의학상이 그것이다. 식세포, 달리 말해 대식세포(대식가라는 뜻)는 외부에서 들어온 미생물이나 우리 몸의 손상된 세포들을 삼켜서 파괴하는 세포를 말한다. 선천면역 연구는 현재 급속도의 진전을 이루어가고 있으며, 앞으로 적어도 한 번은 노벨상 감으로 인정받을 가능성이 있다.
많은 면역학자들은 면역학 쪽에서 분명한 노벨상 감인데도 놓쳐버린 수상업적이 한 가지 있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가슴샘의 기본 기능을 발견한 업적이다. 가슴샘의 기본 기능은 효과적인 면역체계 발달을 돕는 T세포 생성과 연관된다. 모든 발생과정을 보면 어떤 기관이 뇌, 간, 콩팥 같은 친숙한 형태를 갖춰가는 과정에서 많은 세포들이 죽는다. 이런 죽음이 없으면 생명이 지속될 수 없다. 모든 세포들은 죽도록 프로그램되어 있으며, 필요 이상으로 많아지거나 어떤 식으론가 손상된 경우 세포가 죽는 것은 정상적이다. 선택적 세포의 죽음은 '이타적 자살'이라고(Altruis Suicide)이라고 불린다. 내가 연구하는 T세포(이른바 '살해' T세포)들은 바이러스에 감염된 세포를 인식하면 그 세포에게 자살하라는 분자신호를 전송하는 방식으로 기능한다. 위험한 돌연변이를 담고 있는 세포에서 이런 자살과정이 일어나지 않을 때에는 암이 발생할 수 있다. 가슴샘은 이런 역할을 담당하는 T세포를 만들고 있다.
면역학에서 해결해야 할 진짜 문제는 개발도상국에서 매년 수십 만 명이 말라리아와 결핵 같은 병으로 죽어나가는데도 아직까지 우리에게는 효과적인 백신이 전혀 없다는 것이다. 더 최근으로 오면 수백만 명의 목숨을 앗아가는 HIV-AIDS 공포가 있다. 이 감염성 질병은 모두 감염원이 부분적 효과만 보이는 적응반응(나중에는 무너지고 만다)에 맞서 몸속에 '숨어서' 존재한다는 공통된 특징을 갖고 있다. 우리는 현재 그 문제를 인식할 수는 있으나, 어떤 주요 개념적 및 기술적인 돌파구가 마련되어야 비로소 해법을 찾아낼 수 있을 것 같다.
면역의 성질을 조명하면서 이룩된 이식 분야를 보자.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당연하게 생각하는 콩팥, 심장, 허파, 간의 성공적인 이식은 지난 50년 동안 면역, 특히 세포매개성 면역의 성질을 조명해나가면서 이룩된 것들이다. 이식수술의 세계에서 성배(聖杯)라 할 만한 것은, 지속적인 면역억제제 처방을 할 필요 없이 이식된 조직과 장기에 내성을 갖게 하는 방법을 알아내는 것이다. 미국국립보건원은 그 해법을 찾아내기 위해 기본적인 '면역내성 네트워크'에 자금을 지원하고 있다. 가능한 일일 테지만 아직 우리가 해법에 도달하지 못한 것은 확실하다.
이식 분야에서 활발하게 연구되고 있는 또 하나의 문제는 다른 종의 장기를 이용하는 것이 가능한가 알아내는 것이다. 이 연구 영역에서 한 가지 걱정거리가 있다면, 돼지에게 숨어 있는 바이러스의 일부가 장기이식을 하면서 옮겨져 HIV처럼(침팬지에서 유래한 바이러스다) 사람들에게서 자리를 잡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만일 앞으로 돼지에서 사람으로의 이식이 실현가능해진다면, 돼지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이 믿음과 생존 문제 사이의 긴장을 어떤 식으로 풀어낼지 살피는 것도 재미있을 것이다.
이제까지 여기서 언급했던 다양한 의학적 적용 외에도 계속해서 우리의 주의를 사로잡는 개념적으로 아주 기본적인 물음이 몇 개 더 있다. 그중에서 까다로운 물음을 하나 들어보자. 면역체계는 어떻게 해서 비교적 한결같은 크기를 유지하는 걸까? 머리뼈 안에 단단히 갇혀 있어 크기가 제한된 뇌와는 달리 면역세포들은 몸 전체에 단단히 갇혀 있지만 몸 전체에 흩어져 있으며 고도로 활동적이다. 그런데도 면역체계는 전체적으로 일종의 균형을 유지한다. 그러나 우리는 면역이 조절되는 방식을 전혀 분명하게 이해하고 있지 못하고 있다. 생물학은 대단히 복잡한 분야다. 그런 생물학에서 면역학은 특히 복잡한 분야다. 윈스턴 처칠(Winston Churchill)의 말을 바꿔 말해보면, 우리는 이제야 첫걸음을 마친 것이다.
이번 세기도 미국의 세기가 될까? 노벨상이 인정하는 과학은 나라와 나라 사이의 경계를 뛰어넘어 보편적인 것을 다룬다. 과학은 인간의 지식에 이바지하고 그 지식을 토대로 한 기술은 모든 나라 모든 사람들이 누릴 수 있다. 그러한 과학 활동, 과학에 대한 지원 수준과 인식 수준은 사회마다 천차만별이다. 이런 차이가 개인의 경력, 나라의 운명에 영향을 끼칠 수 있고 인류 전체 나아가 인류의 생존에 심대한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활력이 넘치고 상상력이 풍부한 창의적인 과학자들은 충분한 재원과 적극적 지원이 모이는 중심지와 열정적인 동료들을 찾아 몰려간다. 그래서 새로 맞은 21세기에는 경제적인 힘과 독립성을 갖추길 원하는 나라라면 창의적인 사람들을 끌어들여 확보할 필요가 있다. 그러려면 개방성, 교육, 혁신, 지식에 역점을 두어야 한다. 새로운 발견과 해결책을 지향하는 문화(부수적으로 과학 분야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할 만한 문화)의 개발을 목적으로 하는 나라에서 중심이 되는 물음은 이것이다. '그렇게 하려면 무엇이 최선일까?'
지난 50년 동안, 이런 문화의 본보기가 되었던 나라가 바로 미국이다. 사실상 20세기 전체를 미국의 세기라고 여기는 분위기가 널리 퍼져 있다. 비교적 개방적인 이민정책, 혁신과 아울러 근면한 개인적 참여의 가치에 대한 관대한 평가, 신기술에 대한 공격적인 상업화, 이 모든 것이 막대한 경제적 성공과 힘을 가져왔다. 또한 양질의 대학교육과 기초 연구에 대한 연방 차원의 아낌없는 자금지원이 그 기초를 튼튼히 해주었다. 그 결과 20세기 전반에 미국 거주자들에 돌아간 노벨 과학상이 30퍼센트 아래였던 데 비해 20세기 후반에는 70퍼센트가 넘었다.
그러나 과연 21세기도 미국의 세기가 될 것인가? 다른 나라들은 미국의 경험으로부터 배워 연구에 돈을 투자하고 저마다 과학적 기반을 구축하고 있다. 제조 산업 활동이 전 세계적으로 퍼져감에 따라 전반적인 생활수준이 상승하게 되면서, 가장 번영하는 경제의 근원은 상상력이 풍부하고 재능 있는 사람들의 통찰과 창의성이 될 것이다. 지식생산과 혁신의 중심지라는 면모를 당당하게 자랑스러워하는 미국 같은 나라들도 이 점에 주목해야 한다. 인적 자본은 가장 중요한 자본이다. 발견과 기술개발의 원동력을 잃어버리면 경제 부문의 활기도 잃어버릴 수 있다.
역동적인 연구문화 발전에 관건이 되는 것은 당연히 돈이다. 진지하게 연구개발(R&D)을 생각하는 나라들은 연구개발비 지출을 최소한 국내총생산의 2.5% 수준까지 올리려고 한다. 여기에는 공공 부문과 민간 부분이 모두 포함되며, 정부는 세금감면정책과 산업계 연구개발을 더욱 장려하겠다는 약속을 한다. 과학에서 얻은 혜택을 인류 복지를 위해 현실로 전환하는 문제에서, 미래형 모델은 정부와 민간 부분 사이의 암묵적인(꼭 공식적일 필요는 없다) 동반자 관계에 달려 있다. 이번에도 미국은 훌륭한 본보기가 되어준다. 미국에서는 대학의 실험실이나 연구기관에서 이루어낸 발견들이 재빨리 민간 부문으로 옮겨간다. 과학자들 스스로 새로운 생명공학 벤처회사를 차리거나, 현실적으로 가능한 치료제로 부각될 시점까지 새로운 발견을 개발하는 일에 거대제약회사들(Big Pharma)이 즉각 관여할 때 이런 전환이 일어날 수 있다. 최초의 AIDS 약도 바로 이 같은 과정을 거쳐서 나오게 되었던 것이다. 미국 외의 나라들에서 이런 과정이 잘 진행되려면 두 가지가 필요하다. 기초과학에 대한 정부의 지원 수준이 높아야 하고, 투자자들과 경제부분의 안목이 높아야 한다.
최선의 과학은 모든 사람들에게 이로움을 주는 보편적인 활동이다. 과학적 발견과 개발을 널리 인류의 모든 구성원들의 '것'으로 보게 되면 국제사회는 더욱 긍정적으로 변화될 것이다. 이런 주인의식에는 발견과 개발이 서로 연결되어 있는 과학의 과정에 사람들 저마다가(이용당하는 것이 아니라) 관여하고 있다는 이해와 감각을 어느 정도 가져야 함을 함축하고 있다. 교육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총명한 젊은이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하는 것은 물론, 개개의 시민, 기업, 정부가 자기들이 넘어야 할 도전 과제에 어떻게 접근할 것이며, 자기들 앞에 열려 있는 기회에 어떻게 다가갈 것인지 길을 잡아줄 만한 과학적으로 깨어 있는 문화를 각 나라별로 구축할 필요가 있다.
세계적인 부의 불평등, 각 나라의 연구사업에 대한 재원분배의 불평등을 해결할 간단한 해법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각 나라가 가진 선택적인 이점과 이타적인 국제적 동반자 관계에 역점을 두면서 목표를 정해 신중하게 과학에 접근한다면 각 나라 나름의 탁월함을 실어내는 하나 이상의 연구 영역을 구축할 현실적 가능성을 갖는다. 말라리아, AIDS, 또는 기아문제를 해결할 돌파구를 찾아낸다면 개발도상국에서 일하는 과학자에게도 충분히 노벨의학상이나 평화상이 돌아갈 수 있을 것이다.
미국은 현재 파벌주의로 인해 득세한 반과학적·반지성적 태도의 흥기로 고통 받고 있다. 정치와 언론은 편협한 종교적 근본주의, 그리고 큰 기업체들은 눈앞의 이해관계와 결탁하고 있다. 하지만 미국은 포용력 있는 대중의 자세와 실천을 통해 극적으로 이 위기를 헤쳐 나가고 있으며, 바라건대 이것은 그저 잠깐의 추세로 끝나게 될 것이다. 미국에서 공부하는 학생이라면 누구나 비범한 성공을 거둔 이 나라가 이제까지 어떤 과정을 거치면서 주기적으로 스스로를 다시 세워왔는지 예민하게 깨닫게 된다.
서로 다른 프리즘 - 과학과 종교
신앙에 기초한 세계관은 과학을 비롯하여 새로운 지식을 쌓아나가는 것과 과연 어김없이 충돌하게 될까? 종교적 전통과 실천을 고수하면 한 나라나 개인이 새로운 생각들, 세계를 보는 새로운 방식을 포용하려는 의지를 제한하는 걸까? 역동적인 과학 문화를 수반하는 사회적 다양성에 대한 관용이 과연 종교에 위협이 될까? 과학적 발견과 이론은 종교적 믿음과 화해를 이룰 수 있을까? 아니면 서로 다른 이 가치체계들 사이에선 그 어떤 유익한 대화도 불가능한 걸까?
과학은 물음을 묻고 생각들을 시험하고 발견한 것들의 지적인 결론과 철학적 결론을 포용하는 사람들에게 어울리는 활동이다. 과학에는 절대적이거나 계시적인 진리 따위는 있을 수 없다. 다시 말해서 현재 검토할 수 있는 증거에 더 이상 들어맞지 않으면 그 어떤 믿음이나 이론도 곧 폐기되거나 잊혀지게 된다. 과학 문화와 종교 문화 사이에 근본적인 차이가 있기 때문에 신앙에 기초한 관점을 가진 사람들은 이런 점을 이해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