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성욱의 과학 에세이
홍성욱 지음 | 동아시아
홍성욱의 과학 에세이
홍성욱 지음
동아시아 / 2008년 7월 / 298쪽 / 13,800원
제1장 현대 사회와 과학기술 과학자는 로맨티스트가 없다?
우리나라에서도 히트를 한 <아멜리에>,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 <네 번의 결혼식과 한 번의 장례식> 같은 영화를 '로맨스 코미디'라고 부른다. 로맨스 코미디의 주인공들로는 대개 관객들의 사랑을 듬뿍 받을 수 있는 성격의 남녀가 등장한다. 이들의 직업을 살펴보면 천차만별이다. 책방주인, 음반 제작자, 사진작가, 소설가, 웨이트리스 등 그런데 과학자가 주인공으로 나온 로맨스 코미디는 본 적이 없다. 왜 그런지는 어렵지 않게 추측할 수 있다. 데이트를 하려면 시간이 많아야 하는데, 과학자를 주인공으로 설정하면 뭔가 앞뒤가 맞지 않는다. 또 말주변도 어느 정도 되어야 하고 성격도 매력적이어야 하는데, 과학자는 이와도 잘 맞지 않아 보인다. 두꺼운 안경을 쓰고, 하얀 실험실 가운을 입고, 더부룩한 머리를 한 중년의 과학자는, 다른 영화는 몰라도 로맨스 코미디에는 적격이 아니다. 그렇다면 과학자가 나오는 영화는 어떤 영화일까. 영화에 나온 과학자의 이미지를 오랫동안 분석한 과학기술학자 김명진 씨는 대부분의 영화에서 과학과 과학자의 이미지가 부정적으로 나온다고 지적한다. 과학은 인류멸망이나 환경오염과 같은 암울한 미래 사회를 낳은 주범이고, 과학자들은 연구에만 미친 사람이든가 아니면 자신의 연구 결과에 의해 지배당하는 사람으로 그려진다는 것이다. 이러한 고정적 이미지는 영화가 처음 대중화되던 20세기 초엽부터 등장해서, 지금까지도 별로 변화가 없다.
우리가 잘 아는 007시리즈에 등장하는 과학자들은 세계 지배를 꿈꾸는 악당의 명령을 묵묵히 받아들이는 사람이며, <에일리언>의 과학자는 자신의 호기심을 위해서 외계 생명체를 붙잡아두었다가 큰 화를 자초하는 사람으로 등장한다. 영화 <쥬라기 공원>에서도 과학적 호기심에 의해 시작된 실험은 공룡에 대한 통제를 잃으면서 큰 혼란을 불러일으킨다.
의 주인공은 전형적인 '미친 과학자(mad scientist)이다. 이런 영화에서 과학자들은 경제적 이득이나 과학적 호기심 때문에 자신의 연구에만 몰두하고, 반면에 자신의 연구 결과가 세상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파악하지 못하는 맹목적인 연구자의 모습을 하고 있다. 아직도 보통 사람들은 정치보다는 과학을 더 신뢰한다. 따라서 소설이나 영화 속의 부정적 이미지들은 분명히 과학에 대한 사람들의 느낌과 이해를 전적으로 반영한 것은 아니다. 또 영화나 소설 속의 이미지가 과학에 대한 이해를 결정짓는 가장 중요한 요소도 아닐 것이다. 그렇지만 문제는 이러한 대중적 이미지가 청소년들에게는 큰 영향을 줄 수도 있다는 데 있다. 친구나 애인도 없이 매일 실험실에서 밤을 새고,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도 모르고, 게다가 연구 결과는 인간과 환경을 위협하는 영화나 소설 속의 과학자는 이미지의 세상에 살고 있는 신세대 젊은이들을 과학에서 멀어지게 하는 중요한 원인이다. 몇 년 전 과학자들과 함께 남극을 탐험한, 네 명의 독일 청소년들은 이번 탐험에서 무엇이 가장 인상적이었느냐는 질문에 대해 "매일 밤 전자 메일로 아내에게 사랑의 편지를 쓰는 스페인 과학자의 모습이 가장 인상적이었다"고 대답했다고 한다. 더 인간적이고, 더 따뜻하고, 더 로맨틱한 과학자를 영화나 소설에서 자주 보게 되는 날, 과학과 시민 사이의 거리는 조금 더 가까워질 것이다.
20년 후의 미래 과학기술 트렌드
영화 <프리퀀시>에는 미래를 경험하고 돌아온 주인공이 친구에게 '야후'의 주식을 사라고 넌지시 암시하는 대목이 나온다. 우리가 미래에 대해 궁금해하는 진짜 이유는 지적 호기심이 아닌 세속적 욕망 때문일 수 있다. 내일 어느 회사의 주식이 급등할지, 환율이 어떻게 될지, 로또 당첨 번호가 어떻게 될지 하루 전에만 알 수 있다면 큰돈을 벌 수 있다. 그렇지만 안타깝게도 이를 예측할 방법은 없다. 하루 뒤를 예측할 수 없다면 1년이나 10년 뒤는 어떤가. 10년 뒤 세상을 주도할 유망 기술을 알 수 있다면 지금 투자를 할 수도 있다. 정부의 입장에서는 미래에 중요해질 분야에 연구비를 집중해서 산업 기술 부문의 국제 경쟁력을 획기적으로 높일 수 있다. 참여 정부 시절에 '로드맵'이라는 말이 유행했다. 말 그대로 앞으로 나아갈 길에 대한 지도를 그린다는 개념이다. 당시 화학시술부가 '과학기술 로드맵'을 만들 때, 100명이 넘는 전문가가 동원되고 수억 원의 연구비가 사용되었다. 그런데 이렇게 힘들게 만들어진 로드맵의 수명이 불과 몇 개월밖에 안 되었다. 게다가 로드맵보다는 지금 당장 무엇을 해야 하는가에 정책의 초점을 맞추고 있는 실용 정부는 미래에 대한 청사진을 그리는 것과 같은 작업에 상대적으로 무관심하다. 사실 현재에 너무 몰입하다 보면 앞으로 올 미래에 신경을 쓰기 힘들다. 그런데 머나먼 미래만을 생각하면서 현재를 등한시하는 것도 문제지만, 그 역도 문제이다. 지금 화석 에너지와 원자력 에너지의 사용에 어려움이 없다고 해서, 앞으로 천년만년 이러한 상태가 지속될 수는 없다.
대체 미래 사회를 예측하는 것이 가능할까? 과학철학자 칼 포퍼는 미래 예측이 불가능하다고 못 박았다. 미래 사회를 알기 위해서는 사회를 변화시키는 과학기술의 방향을 예측해야 하는데, 과학지식이 어떤 방향으로 발전할지 예측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랩톱 컴퓨터와 그래픽 유저 인터페이스를 발명한 미국의 컴퓨터 파이오니어 앨런 케이(Alan Curtis Kay, 1940~, 미국의 전산학자)는 "미래를 예측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미래를 발명하는 것"이라는 유명한 격언을 남겼다. 미래는 예측하는 것보다 만드는 것이 차라리 쉬운 것일까? 20세기를 3분의 2정도 살았던 1967년에 사람들은 20세기의 남은 3분의 1동안 어떤 변화가 일어나서 2000년에는 대체 세상이 어떻게 바뀌어 있을까 궁금해했다. 미국 허드슨 연구소의 전략가 허먼 칸(Herman Kahn, 1922~1983, 전략이론가·미래학자)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급속하게 발전한 과학기술의 역사를 추적하고 여기에 통계적 기법을 동원해서 2000년도의 세상을 그려냈다. 그가 예측한 것 중에는 컴퓨터와 컴퓨터 산업이 사회의 핵심이 된다는 것과 사람들이 컴퓨터를 이용해서 돈을 전송하고, 범세계적 통신망이 구축되리라는 것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렇지만 틀린 예측이 더 많았다. 칸은 1970년대 내로 실용적인 레이저 살상 무기가 개발될 것이라고 했고, 2000년에는 로봇이 대부분 집안일을 할 것이며 홀로그래피를 이용한 3차원 TV가 보편화될 것이라고 예견했다. 칸의 예측보다 훨씬 더 빗나간 예측도 많았다. 1967년에 미국시민의 대부분은 2000년이 되면 화성과 금성 여행을 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1940~1950년대 미국의 엔지니어들은 21세기가 되면 개인용 헬리콥터가 보편화되며, 자동차가 비행기같이 변해서 자동차의 과속 한계가 200km가 될 것이라고 예측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때나 지금이나 자동차의 과속 한계는 비슷하다.
제2장 과학과 창의성
'잡종'과 '경계인'으로서 아인슈타인
2005년은 세계 물리학의 해이자 아인슈타인의 해였다. 1905년, 박사학위도 없던 무명의 물리학자 아인슈타인은 학위 논문을 완성했을 뿐만 아니라, 광전효과(photoelectric effect,금속 등의 물질에 일정한 진동수 이상의 빛을 비추었을 때 물질 표면에서 전자가 튀어나오는 현상, 빛의 입자성을 나타내줌), 브라운 운동, 특수 상대성 이론에 대한 논문 세 편을 연달아 독일 학술지 《물리학 연보(Annalen der Physik)》에 발표했다. 물리학자들과 과학사학자들은 이 세편의 논문 각각이 노벨상 감이었다는 데 동의한다. 남들은 평생 노력해도 한 편 쓰기 힘든 논문을 한 해에 세 편이나 발표했으니, 아인슈타인의 1905년을 '기적의 해'(Annus Mirabilis)라고 부르기에 손색이 없다. 스위스의 작은 도시 베른의 특허국에서 근무하던 청년 아인슈타인은 어떻게 이렇게 폭발적인 창의성을 드러냈던 것일까? 창의성을 설명하는 담론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그중 하나는 '한 우물을 파라'는 것이다. 또 다른 하나는 '섞어야 산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우리 사회에서는 '한 우물을 파라'는 담론이 절대적으로 우세했지만, 최근에 퓨전과 잡종성이 주목을 받으면서 '섞어야 산다'는 얘기도 심심치 않게 들리고 있다. 하나라도 제대로 깊이 알아야 남들이 못 한 일을 할 수 있다는 말도 설득력 있어 보이지만, 한 우물만 파는 것은 결국은 남이 개척한 분야에서 뒤치다꺼리만 할 뿐이라는 얘기에도 고개가 끄덕여진다. 창의성은 문제를 잘 푸는 능력이 아니라 세상을 새롭게 이해하는 방법을 제시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기존에 존재하는 전통을 마스터하면서 동시에 여기에 도전하고 이를 뛰어넘어야 한다. 진정 창의적인 사람들은 자신의 전문 분야에서 필요한 지식과 선임 연구자들의 업적을 충분히 숙지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이를 넘어서려는 의식적 노력을 통해서 새로운 지식과 문화를 만들어낸다. 이것만 보더라도 창의적인 사람들은 보통 사람들이 동시에 갖추기 힘든 두 가지 상반되는 성향을 함께 지닌 경우가 많음을 알 수 있다. 창의적 업적을 낸 사람에 대한 최근의 연구는 이들이 상상력이 풍부하지만 현실 세계에 대한 확고한 인식을 가지고 있으며, 겸손하면서도 동시에 자기 일에 대해 깊은 자부심이 있고, 일에 대해서 열정이 있지만 동시에 무척 객관적이며, 일하는 과정에서 어려움과 고통을 겪지만, 동시에 즐거움을 느낀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이들은 일에 집중할 때에는 혼자서 오랜 시간 연구에 몰두하지만, 자신이 필요할 경우에는 다른 사람들과의 협력도 잘 이끌어낸다. 창의적인 사람은 외견상의 모순을 융합해서, 이를 한 단계 더 높은 차원으로 승화시켜낸다. 따라서 창의성을 고양하기 위해서는 서로 연관이 없어 보이는 요소들 사이에 새로운 연관을 만들어내는 능력도 중요하고, 동시에 기존의 지식에 비추어 이렇게 만들어진 새로운 연관 중에 무엇이 중요한지 판단하는 능력을 키우는 것도 중요하다. 즉 한 우물을 파는 것과 경계를 넘어서 이것저것 섞어보는 능력이 모두 중요하다. 섞어야 기존의 관념을 뛰어넘는 새로운 것을 만들 수 있지만, 이 중에 무엇이 중요한지 판별하는 능력은 기존의 패러다임을 충분히 이해하고 여기서 무엇이 결정적인 문제인가를 이해하는 깊이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창의적인 업적을 내기 위해서는 무조건 섞기만 해서도 안 되며, 무작정 한 우물만을 파서도 안 된다. 하나의 문제를 끈기 있게 생각하고,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다양한 요소들을 섞어보고, 이 중에 어느 것이 가장 혁신적이며 중요한 의미를 지닌 것인가를 직관적으로 파악해야 하기 때문이다.
과학 영재의 성공과 실패
뛰어난 과학자들이 항상 과학 영재였던 것은 아니다. 미적분학, 만유인력과 고전 역학의 발견자인 아이작 뉴턴 경은 수학 영재이기는커녕 대학에 들어가기 전까지는 수학에 흥미도 보이지 않았고 재주도 없었다. 아인슈타인도 영재 축에는 끼지 못했다. 아인슈타인의 고등학교와 대학교 성적은 나쁜 편은 아니었지만, 세계 최고의 물리학자가 되리라고 생각하기에는 한참 떨어진 것이었다. 진화론을 제창한 찰스 다윈도 어릴 적에는 영재와 거리가 있었고, 대학에 들어온 뒤에도 학업 성적이 별로 좋지 못했다. 근대 전자기학의 기초를 놓았던 패러데이는 어릴 적에 아무런 교육도 받지 못했고, 따라서 영재성을 보일 기회조차 없었다. 반대로 아주 뛰어났던 영재가 성공적인 과학자로 성장하지 못했던 예도 많이 존재한다. 한국의 김웅융 군은 IQ210으로 이 부분의 기네스북 기록의 보유자였는데, 다섯 살 전에 4개국 언어를 하고 미적분을 풀었던 것으로 유명했다. 그렇지만 그는 1981년에 한 지방 국립대학교의 토목공학과에 입학해서 1998년 늦깎이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그의 지도교수는 "별달리 특이점을 찾기 어려운 평범한 학생이었다"고 평가했다. 2000년 2월에 초등학교를 졸업한 송지용 군은 7개월 동안에 고입, 대입 검정고시에 합격하고 2001년 3월에 포항공대에 조건부 입학해서 물리, 수학, 화학의 3과목 12학점을 수강했다. 하지만 2001년 9월에 '수업 계속 불가'판정을 받고 집으로 돌아갔다. 송지영군의 아버지 송재열 씨는 "영재 교육을 하기 위해서는 영재성이 있는 아이들이 지식을 체계화할 수 있도록 책임지고 도와줄 전담 프로그램과 인력이 필요한데, 우리 사회는 이 시스템이 없다"는 데 아들이 실패한 이유가 있다고 주장했다. 반면에 포항공대 측은 송지용 군이 이해력과 습득력은 뛰어나지만 응용력이 부족하다고 평가했다. 2006년에 여덟 살의 나이로 인하대학교에 입학한 송유근 군도 2008년 현재 수업을 계속 수강할지에 대해서 갈등 중이라고 알려져 있다.
천재 소년의 실패는 한국에만 있는 현상이 아니다. 20세기 초엽에 전 세계적으로 미디어의 주목을 받았던 윌리엄 제임스 사이디스(혹은 빌리 사이디스)는 세계 최고의 영재성을 보였던 소년으로 기억되고 있다. 그의 IQ는 250~300사이로 추정되며, 한 살 때 글자를 쓰기 시작하고 18개월에 《뉴욕타임스》를 읽었다. 네 살 때 라틴어로 쓰인 카이사르의 『갈리아 전기』를 읽고 그리스 알파벳을 공부하고 호메로스를 그리스어로 읽었으며, 아리스토텔레스 논리학을 여섯 살 때 배웠고, 역시 여섯 살 때 러시아어, 프랑스어, 독일어, 헤브루어, 터키어, 아르메니아어를 배웠다. 이렇게 천재적인 영재성을 보인 그는 초등학교를 7개월 만에 졸업하고, 일곱 살에 하버드 의대 해부학 시험을 통과하고 여덟 살에 MIT입학시험을 통과했다. 사이디스는 1909년에 열한 살의 나이로 하버드대학교에 입학해서 열여섯 살에 최우등생으로 졸업한 뒤에, 열여덟 살에 다시 하버드 의대에 입학했다. 그렇지만 스무 살 경에는 그의 영재성이 사라졌다는 소문이 퍼졌고, 비슷한 시기에 보스턴에서 경찰에게 붙잡힌 이후에 사회에서 자취를 감추었다. 사이디스가 다시 발견된 것은 1924년 스물여섯 살 때였다. 그는 그때 뉴욕 증권가에서 허드렛일을 하는 사람이 되어 있었고, 유일한 취미는 전차의 환승권을 모으는 것이었다. 사이디스는 2,000개의 환승권을 모았는데, 1926년에는 이를 모아서 환승권에 대한 책을 집필하기도 했다. 세계 최고의 영재라고 세간의 관심을 모았던 사이디스는 1944년에 아무도 모르는 채로 46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제3장 누구를 위한 과학기술인가?
육식과 광우병에 대해 다시 생각함
19세기 중엽까지 사람들은 채식 위주로 식사를 했다. 고기는 귀하고 비쌌다. 서구 사회의 경우 이 시기 평균 식비의 90%는 밀, 귀리와 같은 곡식을 사는 데 쓰였다. 산업화가 진행되면서 식단에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다. 산업혁명의 종주국 영국에서는 노동자들의 노동력을 효율적으로 이용하는 방법의 하나로 육식이 장려되었다. 가난한 노동자들도 고기를 먹을 수 있게 저렴한 가격으로 고기를 공급하기 위해서 과학적 축산이 장려되었고, 미국에서도 고기를 싸게 수입하기 시작했다. 고기의 저장과 운반 기술이 급속히 발전했으며, 미국의 도축장에는 자동화 기계가 도입되었다. 19세기 후반이 되면서 미국에서 도살된 수백만 마리의 가축은 뉴욕으로, 영국과 파리로 운송되었다. 육류 소비는 1950년 이후에 급증했다. 패스트푸드가 발달하면서 고기의 소비가 지난 50년간 4배나 뛰었다. 사람들은 점점 더 싼값에 고기를 먹을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이것이 비싼 대가를 수반하리라는 것은 생각하지 못했다. 우선, 동네 풀밭이나 뒷산에서 소가 풀을 뜯어먹던 시절에는 집에서 기르던 가축을 도살하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