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기억은 진짜 기억일까?
엘리자베스 로프터스,캐서린 케첨 지음 | 도솔
우리 기억은 진짜 기억일까?
엘리자베스 로프터스, 캐서린 케첨 지음
도솔 / 2008년 6월 / 496쪽 / 18,000원
기억의 놀라운 속임수나는 기억 연구에 일생을 바쳐온 심리학자로서 25년 동안 연구를 하고, 대학원생들을 지도하고, 책과 기고문을 쓰고, 전 세계를 다니며 회의에 참석하고 강연을 해왔다. 내 연구 이력은 '잘못된 정보로 인한 기억의 왜곡', '인지의 정보처리 개념화', '오 정보 효과: 사후 정보에 의한 기억의 변형'과 같은 제목의 논문들로 채워져 있다. 나는 기억의 순응성에 관한 권위자로 인정받은 덕분에, 배심원들이 목격자의 증언과 지목 - "바로 저 사람이에요" "저 사람을 봤어요" "저 사람이 그랬어요" - 을 믿느냐에 한 개인의 명운이 달린 수많은 재판에서 증언을 해왔다. 증인석에 선 나는 학자로서의 진실을 말하면서, 우리의 기억이라는 것이 분필과 지우개로 끊임없이 썼다 지워졌다 하는 변화무쌍한 칠판이라는 점을 경고하고, 외부의 영향에 쉽게 좌우되는 우리 마음의 본질을 배심원들에게 각인시키려고 애쓴다.
취지를 보다 잘 전달하기 위해 이런 비유를 들기도 한다. "우리 마음을 맑은 물이 담긴 그릇이라고 합시다. 그리고 각각의 기억은 그 물에 뒤섞여 들어가는 한 스푼의 우유라고 보고요. 모든 성인의 마음속에는 이처럼 뿌연 수많은 기억들이 들어 있습니다. 어느 누가 거기서 물과 우유를 따로 구분해낼 수 있을까요?" 내가 이 비유를 특히 좋아하는 이유는, 기억이 마치 코드화된 컴퓨터디스크나 서랍에 고이 모셔둔 빳빳한 서류철처럼 우리 뇌의 특정 부위에 존재한다는 흔한 해석을 뒤집는 비유이기 때문이다. 기억은 인출되기를 기다리며 한곳에 머물러 있지 않고 마음속을 이리저리 떠돌아다닌다. 기억은 붙잡을 수 있는 무엇이라기보다는 구름이나 수증기에 더 가깝다. 과학자들은 '영spirit'이나 '영혼soul'같은 말의 사용을 꺼리기는 하지만, 나는 기억이 물적인 실체보다는 영적인 실체에 더 가깝다고 인정할 수밖에 없다. 기억은 바람이나 숨이나 증기처럼 존재하지만, 만지려 하면 흐릿하게 사라져 버린다.
기억에 대한 이런 식의 견해는 받아들여지기 힘든 것이었다. 인간은 자신이 기억하는 과거에 애착을 느끼는데, 그것은 우리의 기억 속에 간직된 사람, 장소, 사건이 바로 나 '자신'이라고 생각되는 사람을 구성하고 정의해주기 때문이다. 그런데 만일 기억이 꿈과 상상에 뒤섞여 들어가는 우유 입자와 같다는 사실을 받아들인다면, 무엇이 진실이고 무엇이 아니라고 어떻게 아는 체할 수 있겠는가? 우리가 진실이라 여기는 것이 언제든 변할 수 있는 것이라고, 우리가 진실이라 여기는 것은 단지 우리의 기억일 뿐이며 그 기억은 있는 그대로의 진실인 경우가 드물기에 진실은 사실상 불가해한 것이라고, 그 누가 믿고 싶겠는가?
기이한 심리치료: 린 이야기마지막으로 삼촌에게 강간당한 지 13년이 지났을 때, 린은 자기 지역의 한 심리치료 클리닉에 전화를 걸었다. 50파운드 과체중을 지닌 그녀는 수년간 섭식장애로 고생하고 있었다. 정크 푸드로 폭식을 한 뒤 이뇨제와 설사약물을 써서 쏟아내는 일을 반복할 때마다 그녀의 죄책감과 회환의 감정은 더 커져갔다. 그녀는 '정상'이 되고 싶었다. 그녀는 전화를 받은 카운슬러에게 상황을 설명했다. 그는 린의 이야기를 잠시 가만히 듣더니, "혹시…… 성추행 당한 일이 있나요?"라고 물었고, 린은 "삼촌만으로도 충분했어요"라고 웃으며 말했다.
린은 그 주에 바로 심리치료를 시작했고, 카운슬러는 처음부터 그녀의 어린 시절 성추행을 상세히 밝히는 일에 몰두했다. 린은 고통스런 기억을 되풀이해서 떠올려야 했다. 두 번째인가 세 번째 상담이 끝날 무렵, 치료사의 질문은 린의 부모 쪽으로 눈에 띄게 방향을 바꾸었다. "그런 일들이 벌어지고 있을 때 당신 부모님은 어디 있었나요?" 그가 물었다. 린은 반박했다. "부모님은 몰랐어요. 말하지 않았으니까요. 너무 부끄러웠어요. 부모님은 지독하게 가난했죠. 부모님은 제가 맏이니까 제 일은 제가 알아서 하고 무슨 문제가 있으면 이야기할 거라고 생각하셨어요." "그냥 한번 생각해보라는 겁니다." 치료사는 안심시키듯이 부드러운 어조로 말했다.
"당신은 어떤 기억을 게워내려고 애쓰는 중이에요." 카운슬러는 단언했다. "일단 과거의 진실을 기억해내기만 하면, 뭔가를 쏟아낼 필요가 없어지면서 섭식장애는 점차 사라지게 될 겁니다." "부모님은 절대 날 건드리지 않았어요!" 린은 불쑥 화가나 외쳤다. "들어봐요, 린." 카운슬러는 반항적인 아이를 다루는 부모의 인내와 노기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물론 삼촌의 일도 끔찍했지만 그것만으로 설명하기에는 당신의 증상이 너무 심각하고 지속적이에요. 당신은 그 일들을 기억했고, 그가 당신에게 저지른 일을 직시하고 받아들였지만, 섭식장애는 여전하고 통제할 수 없는 기분도 계속되고 있지요. 왜 그런지는 모르겠고요. 제 생각엔 당신의 과거에 다른 무언가가 있는 게 분명해요. 지금까지 당신이 직시할 수 없었던 훨씬 더 나쁜 문제 말입니다."
한 달 동안 필사적으로 기억을 찾아 헤맸으나 아무 성과도 없자, 린은 개별 치료 외에 여덟 명의 여자들과 함께 매주 집단치료를 받기로 했다. 섭식장애에서부터 우울증, 성추행에 이르는 문제들을 지닌 여성들을 향해 치료사가 말했다. "기억이 돌아오게 내버려두세요. 두려워 말아요. 오랫동안 잃어버렸던 기억을 되찾을 수 있다면, 당신을 지배하던 그 기억의 힘이 사라지면서 자유롭게 당신 자신으로 되돌아 갈 수 있을 겁니다." 치료사는 마음의 '관문'에 관해 말하기를 좋아했다. 그의 말로는 누구나 마음속에 작은 관문이 있는데, 그 관문을 잠금으로써 고통스런 트라우마적 기억을 의식에서 차단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린은 두려웠다. 사실은 죽을 만큼 두려웠다. 그녀가 믿고 소중히 여겼던 모든 것이 의심받고 있었던 것이다. 그녀는 부모님에게 사랑과 보호를 받아왔다는 사실을 의심한 적이 없었다. 하지만 왜 부모님은 자신을 삼촌에게서 지켜주지 않았을까? 치료사의 말이 맞는 걸까? 언제나 믿고 살아온 부모님이 자신을 성추행했단 말인가? 만약 그렇다면 자신의 삶은 환상과 부인 위에 세워졌다는 이야기다. 이런 의문들이 끊임없이 마음속을 맴돌면서, 린은 이러다 미쳐버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기가 자기 과거에 대한 진실을 모른다면, 지금 현실이라 알고 있는 것들은 얼마나 불확실한가? 자기가 자기 부모에 대한 진실을 모른다면, 그 누구의 진의를 믿을 수 있겠는가?
진실에 대한 본격적인 탐색이 시작되었다. 여덟 명의 여성은 빽빽하게 둘러앉아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치료사의 독려에 힘입어 좀 더 자세한 이야기로 나아갔다. 기억의 조각들이 하나하나 맞춰지더니, 이제 린에게 모든 것이 보였다. "아버지가 제 다리를 벌리려고 해요. 아버지가 제 위에 올라타 있어요." 린은 걷잡을 수 없이 흐느끼며, 잠긴 목소리로 간신히 내뱉었다. "맙소사, 안 돼요. 아빠, 안돼요!"
몇 주 뒤, 또 다른 기억이 수면 위로 떠올랐다. 집단 치료 시간에 린은 4학년 때 어머니가 목욕을 시켜주며 분홍색 헤어롤로 머리를 말아주던 기억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사흘 뒤, 린에게 또 다른 장면이 떠올랐다. 그녀는 욕조 안에 있었고, 그녀의 머리를 감기던 어머니의 손이 서서히 아래쪽으로 내려가 린의 가슴을 문지르더니, 계속해서 더 아래쪽으로 내려가 은밀한 곳을 만지고 찔러대는 것이다. 린은 그룹 사람들에게 이 기억을 이야기하면서 당혹감과 수치심으로 얼굴을 붉혔다. "당신의 몸은 25년 전 느꼈던 수치심을 고스란히 기억하고 있어요." 치료사가 설명했다.
치료사가 린에게 부모를 과거의 진실 앞에 대면시키라고 제안한 것은 치료가 시작된 지 두 달이 채 못 되어서였다. 부모 앞에서 그녀가 겪은 성추행에 관해 솔직하게 말함으로써만 과거로부터 해방될 수 있다고 치료사는 장담했다. 린은 부모님에게 전화를 걸어 섭식장애로 치료를 받고 있다고 말했다.우울증, 불안, 불면증으로 세 종류의 약을 처방받고 있으며 자살을 생각할 정도로 심각했다고 설명했다. 그리고 자신의 상태를 걱정하는 치료사가 부모님을 만나보는 것이 도움이 될 거라고 하는데 치료 모임에 와줄 수 있겠느냐고 물었다. 린의 부모는 흔쾌히 수락하며 언제 어디로 가야 되는지 물었다.
'공동 치료'가 있기 일주일 전, 린은 부모와의 대면을 연습했다. "당신은 너무 친절해요." 그룹의 한 여성이 린에게 조언했다. "당신은 부인하고 있어요." 린의 치료사도 거들었다. "당신 내면의 어린아이가 여전히 부모에게 복종하고 있기 때문이죠. 잊지 말아요. 부모님은 분명 성추행에 관해 알고 있었어요. 그렇다면 그들도 공범이에요. 물러서지 말고 강하게 나가야 합니다." 린은 부모로부터 상처받고 학대받은 일들의 목록을 들고 치료 모임에 참석했다. 그녀의 치료사는 린이 심각한 상태임을 설명하는 것으로 모임을 시작했다.
린은 자신이 적어온 목록을 읽어 내려갔다. "부모님은 저를 이해해준 적이 없어요. 저를 진심으로 사랑하지 않았어요. 농구 시합에도 와주지 않았어요. 제게 소리를 지르거나 절 때리곤 했어요. 아버지는 저를 헤퍼(heifer. '어린 암소' 라는 뜻으로 젊은 여자를 경멸적으로 부르는 말-옮긴이)라고 부른 적도 있어요. 삼촌이 저를 성추행 했지만 부모님은 막지 않았어요." "우린 그런 일이 있는 줄도 몰랐다." 린의 아버지가 더듬거리며 말했다. "끼어들지 마세요." 치료사가 말했다. 린의 어머니는 울음을 터뜨렸고, 치료사는 그녀에게 휴지를 건넸다. 린은 간단한 질문하나를 추가해 넣었고, 아버지를 똑바로 바라보며 마지막 질문을 내뱄었다. "정말 제 아버지세요?" 린의 아버지가 웅얼거리는 소리로 말했다. "그런 것 같구나." 린은 자리에서 일어나 방을 나갔고, 곧바로 뒤따라나간 치료사는 "훌륭했어요"라고 말하며 린을 꼭 안아주었다. 린은 닫힌 문 뒤에서 어머니가 목메어 우는 소리를 들었다.
이듬해 린은 다섯 차례나 자살을 시도했고, 그중 한 번은 이틀 간 병원에 입원해 있었다. 그녀는 동시에 여러 종류의 처방약을 복용해야 했다. 불안증에 자낙스, 플래시백(flashback, 과거 경험이 순간적으로 생생하게 떠오르는 현상-옮긴이) 억제에 멜라릴, 급격한 기분변화에 리튬, 위궤양에 잔탁과 카라세이트, 불면증에 리스토릴, 두통에 다르보셋 등이었다. 치료사의 진단은 계속 바뀌었다. 채 1년이 안 되는 기간 동안 린은 정신분열장애, 양극성장애, 주요우울장애, 신경증적 우울장애, 만성적 외상후스트레스장애, 임상적 우울증, 해리성장애, 기분부전장애, 경계성 인격장애 진단을 받았다. 집단 치료를 받던 다른 여자들 역시 빠른 속도로 내리막길을 걸었다. 각자 자기소개를 하며 자신의 문제를 간단히 이야기하던 최초의 모임에서 자신이 성추행 피해자라고 밝힌 사람은 한 명뿐이었다. 그러나 3개월이 지나자 전원이 한 명 이상의 가족 구성원에게 성추행 당한 기억을 되찾았다.
묻힌 기억을 찾아내려는 노력은 도를 더해갔다. 어느 날 린의 치료사는 린에게 눈을 감고 심호흡을 하며 긴장을 풀라고 주문했다. 그리고 몇 분 뒤, 린이 태어나던 날로의 '연령 퇴행age regression'을 시도했다. 묻힌 기억을 불러내는 데 연령 퇴행이 효과가 없자 다른 기술들이 동원되었다. '트랜스 라이팅trance writing'은 집단치료에서 가장 즐겨 쓰는 훈련 방법이었다. 여자들은 눈을 감고 심호흡을 하는 기본적인 긴장이완술에서 출발해, 어떤 생각이나 심상이 떠오를 때마다 아무리 사소하고 별난 것이라도 그 내용을 글로 쓰도록 지도받았다. 집단 치료는 점점 더 예측불가능하고 감정적으로 혼란스러운 상태가 되어갔다.
1987년 5월, 린이 자살 조짐을 보이자 치료사는 린을 정신과 병동에 입원하도록 했다. 린은 3개월 뒤에도 퇴원하지 못했고, 여전히 자살을 생각했으며, 자신이 미쳐간다고 생각하게 만드는 잔인하고 기괴한 장면들에 시달렸다. 학대와 고문의 새로운 기억들은 그녀의 온전한 정신을 파먹어 들어가는 듯했다. 몇 달 전 가족들과의 모든 관계를 끊은 린에게 이제 치료 그룹 외에는 친구 한 명 없었다. 6개월 동안 실직 상태에다 차도 회수된 상태였다. 진정제, 이완제, 항정신병제, 수면제에 중독된 린에게 삶은 흐릿한 꿈들의 연속처럼 느껴졌다.
마지막 지푸라기조차 사라진 것은 린의 보험회사로부터 한 통의 편지가 날아온 날이었다. 편지에는 최근의 진단코드들에 대해 보험료를 지급할 수 없으며 더 이상의 지급 청구를 거부한다고 적혀 있었다. 치료사는 린의 병실로 들어가 편지를 읽어주었다. "이제 어쩔 셈이죠?" 치료사의 목소리는 화난 듯 굳어 있었다. "병원비와 치료비용은 어떻게 지불할 셈인가요?" 치료사가 따졌다. "어쩔 셈이죠? 치료비는 어떻게 낼 겁니까? 이제 어디로 갈 건가요?" 치료사는 같은 질문을 되풀이했다. 린은 세상 그 누구보다 신뢰했던 사람에게서 버림받았음을 느끼고 마지막으로 말했다. "집에서 썩어 가는 수밖에 없겠네요."
이튿날, 린의 치료사와 정신과 의사가 서명한 보호감호 명령서를 가지고 보안관들이 병원에 왔다. 린은 손에 수갑을 찬 채 주립시설에 들어갈 수 있는지 평가를 받기 위해 정신진단센터로 호송되었다. 린은 넓고 혼잡한 방 한쪽 구석에 앉아 흐느꼈다. 12시간이 지나자 그녀의 몸은 금단증상으로 인해 경련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도움을 요청하자 간호사는 그만 울고 좀 참으라고 했다. "당신은 분명 주립시설로 가게 될 거에요." 간호사는 진절머리난다는 듯이 린을 보며 말했다.
72시간 뒤, 린은 주립병원 의사와 면담을 가졌다. 그녀는 걷잡을 수 없이 가슴이 요동치고 손이 떨리는 상태로 의사가 그녀의 차트를 훑어보는 것을 지켜보았다. 잠시 후 의사가 린을 쳐다보며 말했다. "당신은 시설에 들어갈 사람이 아니에요." 의사는 린에게 집에 돌아가 다시 열심히 살아보라고 하면서 퇴원명령서에 서명했다.
다음 몇 주가 어떻게 흘러갔는지 린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기억에 의하면 한 친구가 그녀를 자기 집으로 데려갔고, 약 살 돈 한 푼 없는 린은 금단현상으로 몸을 떨고 땀을 흘리며 뜬눈으로 밤을 보냈다. 린은 자기가 심리치료에서 대체 무슨 일을 겪었는지 이해하려고 애썼다. 그 모든 생생하고 끔찍한 기억들은 어디서 왔을까? 그게 진짜였을까? 시간이 지날수록 그 기억들은 다채로운 만화영화 같은 느낌으로 변하면서 점점 고통을 주지 않게 되었다. 술과 약물 없이 몇 달을 보낸 뒤 린은 진실을 깨달았다. 부모에게 성추행 당하는 그 모든 기억이 약에 절은 혼란스런 자신의 마음이 만들어낸 환상이었다는 진실 말이다.
내가 부모님에게 무슨 짓을 했던가. 이제 부모님을 무슨 낯으로 볼 것인가 하는 생각에 린은 육체적인 고통을 겪었다. 그녀는 부모님을 끌어안고 용서를 구하기를 간절히 원했지만 용기를 낼 수 없었다. 그녀는 계속 가족의 소식을 전해오던 여동생에게 전화를 걸었다. 린은 여동생의 집에서 부모와 재회했다. 3년 만에 딸을 만난 린의 부모는 다시는 린을 떠나보내지 않을 것처럼 두 팔 벌려 린을 끌어안았다. 그들은 린에게 지나간 일에 대한 해명도 사과도 요구하지 않았다. 그들은 원하던 것, 지난 몇 년간 영영 잃은 줄 알았던 것 - 제정신으로 안전하게 살아 있는 딸 - 을 얻었기 때문이다.
존재하지 않는 과거를 찾아 나서다이것만은 확실히 말할 수 있다. 이와 같은 일로 고통스러워하는 사람이 린만은 아니고, 오랫동안 묻혀 있던 기억의 문제를 끄집어내는 치료사가 린의 치료사만은 아니며, 외롭고 마음이 혼란한 사람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