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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나라에서 잘 사는 길

박홍규 지음 | 휴먼비전
작은 나라에서 잘 사는 길

박홍규 지음

휴먼비전 / 2008년 3월 / 304쪽 / 12,000원

제1장 네덜란드형 삶




하멜과 네덜란드: 우리 역사에 등장하는 최초의 서양인은 네덜란드 사람 하멜(Hendric Hamel,?~1692)이다. 하멜은 1653년 제주도에 표류하여 13년간 감옥생활을 하고 탈출하여 『하멜 표류기』로 알려진 서양 최초의 조선 소개서를 썼음은 이미 우리 역사의 상식이다. 그러나 당시는 물론 그 후 오랫동안 우리는 네덜란드를 몰랐고, 지금도 사실은 잘 모른다. 하멜시대에도 네덜란드는 지금처럼 우리보다 작은 나라였으나 이미 세계 경제를 지배한 강국이었다. 당시 네덜란드는 1609년 서양으로서는 최초로 그리고 유일하게 일본과 친교를 맺었는데 그 후 오랫동안 쇄국 상황 하에서 일본을 근대화시키는 역할을 했다. 우리도 하멜을 귀하게 대접하고 세계 방방곡곡에 청년들을 보냈다면 역사는 근본적으로 바뀌었을지도 모른다.



네덜란드에 대한 종래 우리의 관심은 주로 작은 나라이면서도 잘사는 나라를 만든다는 경제적 문제의식과 그들의 경제정책에 주어졌다. 1980년대에는 실업률이 두 자리이고 재정적자는 GDP(국민총생산) 대비 6.6%까지 늘어'네덜란드 병'이라는 악명도 얻었으나, 1990년대에 실업률이 3%대로 줄고 국제경쟁력이 유럽은 물론 세계의 톱에 이른 '네덜란드 기적'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 기적의 최대요인은 노사정 합의에 의한 '임금 인상 없는 고용확보'로서 그것이 고용과 사회 보장의 개혁을 결과하고, 파트타임 제도의 도입에 의한 일자리 나누기(워크셰어링)로 연결되어 실업률의 저하를 초래했다. 바로 '정부, 기업, 노동조합'이라는 3자의 합의형성이 낳은 '네덜란드 모델'이다.



'매우 작은' 나라가 잘사는 방법: 네덜란드나 한국이나 '매우 작은' 나라이다. 아니 네덜란드는 우리의 반도 안 된다. 그런 좁은 땅에 인구가 1600만 명이 살고 있으며, 네덜란드의 인구밀도는 미국의 20배, 영국의 2배이다. 우리나라 역시 세상에서 인구밀도가 가장 높아 세상에서 가장 좁게, 어깨를 비벼대며 모여 살고 있다. 그래서 언제나 싸우고 지지며 볶고 산다. 좁은 땅에 인구가 많아 문제라고 한다. 그러나 비슷한 환경의 네덜란드는 세상에서 가장 살기 좋은 나라 중의 하나이다. 캐나다, 미국, 영국, 프랑스, 독일 등은 우리와는 비교하기 어려운 강대국이다. 그러나 '매우 작은' 나라 네덜란드는 우리나라처럼 자원이 거의 없고, 있는 것은 사람뿐이며 경제규모도 우리와 유사하다. 그러나 같은 조건인 네덜란드에서는 우리와 같은 땅과 아파트 투기 문제나 교통문제나 환경문제 그리고 교육문제나 정치문제가 심각하지 않다.



왜 그럴까? 단적으로 네덜란드는 자전거의 나라이기 때문이다. 작고 좁은 나라 네덜란드에서는 모두 자전거를 탄다. 이는 교통문제나 환경문제의 해결에 가장 좋은 방법이고, 나아가 도로 건설로 인한 토지문제도 해결될 수 있고, 국민 건강에도 도움이 된다. 비싼 자동차 값이나 기름 값이나 주차비도 절약하니 가계와 나라 살림에도 도움이 된다. 대부분의 국민이 자전거로 출퇴근을 하고 쇼핑을 비롯한 여타의 생활에도 자전거를 이용한다. 특히 장관이나 국회의원들이 그렇다. 네덜란드의 역사가 호이징가(Johan Huizinga, 1872~1945)는 네덜란드 건국의 특징을 "행동에 대한 의지, 정의와 공평의 관념, 자비와 경애의 신앙"이라고 하고, 네덜란드 인의 특질을 "소박, 검약, 청결, 올곧음, 산문적 감각, 일상성"이라고 했다. 자전거 타기야말로 그 모든 것을 상징하는 것이 아닐까?



네덜란드인의 이상 '허젤러흐': 네덜란드 사람들은 자기들의 이상을 '허젤러흐(gezellig)'한 것이라고 말한다. 그것은 조국이니 경제니 인간이니 하는 거창한 이상이 아니다. 겨우 '편안하다' '유유자적하다' '여유 있다' '따뜻하다' '부드럽다'라는 뜻을 함께 갖는 말이다. 그러나 그렇게 번역하면 그 맛이 제대로 나지 않으니 더욱 구체적으로 느껴볼 필요가 있다. 가령 다음과 같은 경우다. 우선 네덜란드 사람들이 가장 이상적이라고 생각하는 상황, 즉 저녁에 가족이 함께 따뜻한 실내에 앉아 촛불을 켜고 커피를 끓이면서 커다란 창문으로 밖을 바라보며 그들은 허젤러흐하다고 느끼다. 또는 추운 겨울날 오후에 들어간 따뜻한 카페 분위기를 허젤러흐라고 한다. 아이들이 시끄럽게 굴면 허젤러흐하라고 소리치기도 한다. 인기가 있는 맥주를 선전할 때도 허젤러흐한 것이라고 자랑한다. 허젤러흐만큼 네덜란드에서 흔한 말도, 네덜란드인 누구나 좋아하는 말도 없다.



네덜란드인에게 왜 허젤러흐라는 말을 그렇게도 좋아하느냐고 물었더니 좁은 땅에서 하루하루 어렵게 살아야 하기에 그렇다고 했다. 이는 우리도 마찬가지가 아닌가? 우리도 언제나 그렇게 힘겹게 살기에 편안하고 유유자적하고 따뜻하고 부드러운 것을 누구나 좋아한다. 네덜란드에서는 문제해결을 위한 대화와 의견교환이 반드시 필요하다. 따라서 허젤러흐한 대화, 특히 반대의견 제시가 문제 자체만큼 중요하다. 그것이 바로 관용의 윤활유인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언제나 남의 말에 대해 "과연 그렇군요. 그렇지만"이라고 운을 떼며 반대의견을 피력하는 것에 익숙하다. 네덜란드의 사무실 금연운동의 포스터 슬로건에는 "반대의견 받습니다"라는 말이 반드시 적혀 있다. 어떤 경우에도 대화로 풀지 대결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심지어 마약범도 경찰과 대화하지 대결하지 않는다. 네덜란드에는 양당이 아니라 열 개가 넘는 정당이 있고, 언제나 연립 정부를 꾸린다. 생각이 다르면 다르게 산다. 그러나 함께할 때면 함께한다. 그것이 허젤러흐이고, 네덜란드인이 도덕적 이상으로 삼는 관용이다.



더치페이와 절약의 허젤러흐: 네덜란드 사람들에게는 누가 돈을 낼 것인지를 걱정하는 것은 허젤러흐하지 못하다. 반대로 자기가 먹은 것은 자기가 계산하는 것이 허젤러흐하다. 물론 자기가 내고 싶으면 미리 낸다고 분명히 밝힌다. 그것이 허젤러흐하기 때문이다. 분명한 것이 편하기 때문이다. 네덜란드 사람들은 경제적 동물이라고 할 정도로 근면하고 절약한다. 그것도 허젤러흐하기 때문이다. 네덜란드인의 경제관념을 가장 잘 표현하는 소위 '더치페이'란 사실 서양인 모두의 태도이기는 하지만, 네덜란드인의 경우 더욱 철저한 것도 사실이다. '더치페이'습관은 일본에도 있다. 그런 습관이 없는 나라는 중국과 한국뿐이다.



나는 합리적인 '더치페이'가 정말 좋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회식 자리가 끝난 뒤 누군가 한 사람이 계산하는 것이 보통이다. 처음부터 누가 계산할지 정해지지 않기 때문에 계산할 때 서로 내려고 하거나, 또는 그렇지 않으려고 하거나 하여 이상한 행동들이 벌어진다. 그래서 피차 어색한 기분으로 헤어지는 것이 보통이고, 그 행동을 두고두고 비난하게 된다. 그러나 결국은 서로서로 비난하는 것이어서 대한민국 사람 모두 '쫀쫀한' 물질주의자가 되기 마련이다. 그러나 유럽, 특히 네덜란드에서는 그렇게 하지 않는다. 특히 그렇게 하는 것을 공평하다거나 공정하다 생각하지 않는다. 아무리 많은 사람이 있어도, 아무리 잘난 사람이 있어도 자기 스타일은 자기가 절대로 지킨다는 것이 유럽에서 말하는 공정함이기 때문이다. 좋아하는 것이 각자 다르기 때문이 그 기호를 인정하고 그 차이를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유럽식이고, 특히 네덜란드에서 그렇다. 이런 점에서 '더치페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 원리, 즉 각자의 개성을 존중해주는 사람들의 생활방식이다.

자유와 평등, 그리고 일상과 관용의 현실주의: 네덜란드에서는 매춘도 합법적인 노동으로 인정된다는 점으로 유명하다. 뿐만 아니라 동성애 결혼, 마리화나 소지, 존엄사도 자유롭게 인정되고 있다. 요컨대 이 세상 어느 나라보다 자유롭다. 그러나 그 자유라는 것이 실질적으로 누려지기 위해서는 최소한의 평등이 보장되어야 한다. 이 최소한의 평등이란 모든 사람들에게 인간다운 삶이 보장되는 것을 말한다. 그런 정도로도 평등하지 않은 사회에서는 자유란 처음부터 있을 수 없다. 이는 그런 정도의 기본적 평등조차 없는 미국에서 특히 문제이다. 빈부 갈등이 심한 곳에서 사람들은 애초부터 평등하지 않다. 그런 곳에서는 부자만이 자유롭다. 그래도 거대한 미국은 기회의 나라라고 한다. 반면 우리는 땅이 좁고 사람만 많아 그런 기회가 많지 않고 기본적 평등조차 없으면 당장 굶어죽을 사람들이 너무 많다. 따라서 부자는 규제될 수밖에 없다. 적어도 빈민보다는 높은 비율로 세금이 부과되어야 한다. 그리고 그 세금으로 빈민을 구제해야 한다. 그렇지 않고서는 이 좁은 땅에 복작거리고 사는 사람들 모두의 기본적인 행복은 있을 수 없다.



네덜란드에 빈부격차가 크지 않은 이유는 부자가 되려고 해도 엄청난 누진세 때문에 불가능하고, 빈민이 되려고 해도 완벽한 사회보장 때문에 불가능하기 때문이지 원래부터 빈민이나 부자가 없었던 탓이 아니다. 나는 매춘, 동성애, 마리화나, 존엄사 등의 자유에 대해서는 솔직히 별 관심이 없다. 그러나 적어도 국가보안법과 같은 사상의 근본적인 규제에 대해서는 이제 그 철폐를 분명히 생각해봐야 한다. 물론 북한의 위협을 걱정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북한의 실체란 것을 우리는 이제 다 알지 않는가? 그 따위를 두려워해서, 불필요한 다른 양심이나 사상의 문제를 야기해 국제적으로 비난받을 수 있다면 그런 것은 없앨 필요가 있지 않을까?



네덜란드의 탈물질주의: 네덜란드가 탈물질주의인 기본 이유는 네덜란드에는 우리나라와 달리 부자도 극빈자도 거의 없이 대부분 중산층이기 때문이다. 네덜란드에서는 모든 국민이 수입의 33~60%를 세금으로 내고 사회보장이 완벽하다. 그 인적 자원의 수준은 유엔에 의해 캐나다, 미국, 일본 다음으로 평가되었다. 그러나 노동조건은 우리와 비할 바가 못 된다. 가령 1년에 최소 25일의 휴가가 주어지고, 노동조합은 가입률이 낮고 온건하다. 네덜란드는 농업과 상공업이 조화를 이루고 있고, 농산물 수출이 미국과 프랑스에 이어 세계 제3위이어서 우리의 농촌 붕괴와 다르다. 네덜란드에 있는 필립스를 비롯한 다국적기업들은 고품질 고가품을 수출하는 전략을 취했다. 또한 네덜란드에는 외국계 기업이나 다국적기업이 5천 개 이상 들어와 있을 정도로 외국 기업의 유치에 적극적이고, 외국에도 엄청나게 투자한다. 가령 한국에 투자한 외국자본의 규모에서 네덜란드는 3위이다.



네덜란드는 주변의 강대국 중에서도 특히 독일을 싫어한다. 제2차 세계대전 때 중립을 선언했음에도 독일군이 네덜란드에 침입하여 유태인들을 수용소에 보내는 등의 만행을 저질렀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지금도 네덜란드 사람들은 독일로 관광을 가지 않는다. 그러나 네덜란드 사람들이 프랑스 남부 프로방스나 이탈리아로 가고자 할 때면 독일 고속도로를 이용하는데, 이유는 유료인 프랑스 고속도로와 달리 독일 고속도로는 무료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렇게 돈을 아끼는 그들이 가령 TV에서 신체장애자를 위한 기부금을 모으는 경우 당장 수십억 원이 모일 정도로 엄청난 자선사업 열기가 있다. 심지어 이는 60%까지 이르는 세금 부담 위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국민소득의 0.7%를 후진국 원조에 제공하자는 선진국 사이의 원조공약을 지키는 나라는 유럽에서 스웨덴과 네덜란드뿐이다.



제2부 네덜란드의 정치 경제 사회



합의형 민주주의: 네덜란드에는 수많은 집단, 소수자, 여성, 고령자, 장애자 등이 단체를 형성하고 있다. 네덜란드 민주주의는 이러한 무수한 시민자치단체는 정책자문위원회에 참가하여 이를 통한 합의로 이루어진다. 그러한 위원회는 법적인 보호를 받고 정부로부터 지원금을 받으며 정부는 그 자문을 받아들일 의무는 없으나 회답할 의무는 진다. 네덜란드에서는 하나의 법률을 제정하기 전에 몇 년간 공개적으로 토론하고 실험을 한다. 경찰이나 법원 당국은 그 실험이 위법해도 그것을 묵인하여 기소하지 않는 독특한 관용정책을 실시한다. 따라서 그 실험이 법률로 제정되는 때에는 그것은 이미 상식적 내용이 되어 있는 것이 보통이다.



여기서 주의해야 하는 점은 합의라는 것의 내용이다. 네덜란드에서 합의란 반드시 다양한 의견을 하나의 의견으로 만들어낸다는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른 것, 즉 다양성을 상호 인정한다는 의미이다. 다수결에 의해 하나의 의견을 채택한다는 것은 사실 소수의견을 제외한다는 것을 전제로 하며, 찬성한 이상 의견의 다양성은 무시되는 것이다. 즉 종래의 다수결은 소수자만이 아니라 다수자의 다양한 의견도 무시하여 성립하는 것으로서 문제가 있다. 반면 네덜란드에서는 가령 노사정 대화를 하는 경우 모두 협동 조정적 연수를 하고, 이를 토대로 하여 합의는 3자의 양보에 의해 3자가 모두 납득하는 윈윈 상태에서 이루어진다.



국제관계와 군대의 현실주의: 영국, 독일, 프랑스라는 강대국 틈바구니에서 살아온 네덜란드는 그 생존을 위하여 전통적으로 평화주의와 중립을 지향했다. 여기서 우리는 네덜란드 사람들이 평화주의와 중립을 원래부터 좋아하고 평화를 사랑하는 민족이어서가 아니라, 약소국으로서 생존하기 위해서는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다고 하는 현실주의에서 나온 것임을 분명히 인식해야 한다. 동시에 제2차 세계대전 시에 독일 침략을 경험한 뒤에는 이를 포기하고, 나토의 집단안보체제에 참여하고 있음도 역시 현실주의적인 점에서 이해할 필요가 있다. 이는 우리나라가 지금 한미일 안보체제에 편입되어 있는 것과 같다. 그것이 많은 문제점을 안고 있는 것은 사실이고, 그래서 원론적인 평화주의와 중립에 충실하자는 이상적인 주장도 나올 수 있다. 그러나 과연 지금 우리가 그런 길을 선택할 수 있을까? 한스라는 소년의 손가락 같은 국력으로 댐이 터지는 것을 막지 못한다면 그런 집단안보체제에 들어가는 것이 불가피하지 않을까? 그것이 작은 나라로서 택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 아닐까?



그러나 네덜란드와 한국은 군대에 대한 생각에서 서로 다르다. 두 나라의 차이 중에 가장 현저한 것의 하나가 군대 규모이다. 우리는 60만 '대군'이라고 하나, 네덜란드에는 5만 '소군'밖에 없다. 인구비례로 따져도 우리 정도가 되려면 네덜란드 병력은 20만 명이어야 하나, 실제로는 그 4분의 1에 불과하고, 전체로는 12분의 1에 지나지 않는다. 특히 육군은 그 반에 반도 안 된다. 이제는 육군보다 기술력을 요구하는 공군과 해군이 더 필요하다는 현실주의적 판단에서 그렇게 한 것이리라. 게다가 우리의 징병제와 달리 네덜란드에서는 1996년부터 모병제로 바꾸었다. 징병제였을 때도 병역기간은 18개월에 불과했고, 외국에서 근무하면 12개월이었으니 우리보다 더욱 짧았다. 게다가 그 18개월이란 아침저녁으로 자택에서 출퇴근하는 우리의 방위병제도와 같은 것이었다. 그렇게 하면 훌륭한 군인을 만들 수 없는 것일까? 게다가 군인은 장발을 비롯한 모든 시민적 권리를 누렸고, 지금도 누리고 있다. 우리 군인들이 머리나 수염을 기르면 전쟁을 치를 수 없을까? 징병제 시절에는 양심적 병역거부도 물론 인정되었다. 그것을 인정한다고 해서 국방의 댐에 구멍이 뚫리는 것은 아니었다.

네덜란드 모델: 네덜란드 모델, 즉 네덜란드의 경제시스템은 정부-민간-기업 3자가 대등한 파트너로 협의하고 합의하여 운영하는 것을 말한다. 노사관계에서는 그 민간이 노동조합이나 노동자단체이나, 일반적으로는 NGO가 그 역할을 한다. 그러나 노사관계만이 아니라 일반적 경제모델을 말하는 경우 민간, 즉 NGO란 정부(국익)이나 기업(수익) 이외의 제3자(공익)를 추구하여, 시만의 참가에 의해 운영되는 시민사회를 말한다. 따라서 여기에는 노동단체만이 아니라 환경단체나 종교단체까지 포함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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