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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의 탄생

콘스탄틴 J. 밤바카스 지음 | 알마
철학의 탄생

콘스탄틴 J. 밤바카스 지음

알마 / 2008년 5월 / 550쪽 / 28,000원

철학의 발상지 그리스 지역의 상황

그리스의 자연


주변의 자연과 이 자연을 관찰하는 방식은 고대 그리스인들의 성격이 형성되고 그들의 운명이 결정되는 데 매우 중요한 영향을 미쳤다. 지리적인 면에서 볼 때 그리스는 대립되는 자연현상들이 지속적으로 교체되는 곳이지만, 그 현상들 사이의 차이는 크지 않다. 긴 산맥들이 땅을 가르고, 이에 따라 작고 폐쇄된 무수한 계곡과 고원들이 만들어지며, 만灣과 정박지들도 수없이 많다. 앞으로 문화가 시작될 소아시아 지역의 해변과 그리스의 해변, 그리고 에게해에 흩뿌려진 수많은 섬들에서는 짙푸르게 빛나는 하늘 아래에서 땅과 바다의 대립적인 요소들이 만나 오랜 세월 동안 서로 스며든다. 그리스인들은 둘도 없는 충만한 빛의 세례를 받으며 지극히 온화하고 따사로운 기후를 누린다. 유럽의 먼 곳까지 여행한 후에 헤로도토스는 그리스가 여러 나라 가운데 "단연 최고의 기후"를 가지고 있다고 주장한다. 육지와 바다의 경계인 불규칙한 해변들과 영롱한 빛 - 이것이 그리스인들의 성격이 형성되는 데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 요소들이다. 지금도 그리스 해변의 모래사장에서 쉬면서 푸른 바다를 바라보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리스 자연의 매력을 체험할 수 있을 것이다.



헤시오도스 - 최초의 우주기원론

테베에서 델피로 향하는 길을 몇 킬로미터쯤 따라가다가 자그마한 네거리에서 왼쪽으로 올라가면 얼마 지나지 않아 헬리콘 산맥의 짙푸른 기슭에 자리 잡은 작고 아름다운 마을이 나온다. 그곳이 아스크라다. 헤시오도스는 기원전 8세기 말쯤에 이곳에서 태어났다. 그의 생애는 힘겹고 고달팠다. 헬리콘 산맥의 중턱에서 양 떼를 치며 살았던 그는 이 자연의 한가운데에서 『우주기원론』을 집필했다. 그가 전하는 바에 따르면 아홉 명의 뮤즈가 그의 앞에 나타나 "풍성하고 푸르른 월계수나무의 멋진 가지를 선물해주면서 지팡이로 사용하라고 했고, 내게 신의 노래를 불어넣어주면서 미래와 과거의 일들을 찬양하라고 했다. 그는 자신의 이름으로 문학작품을 발표한 유럽 최초의 시인이 되었다. 호메로스의 서사시들이 이오니아 귀족의 삶을 표현하는 반면, 그의 시구들은 농민의 고단한 삶을 반영하듯 절제되어 있고 겸손하다. 헤시오도스와 호메로스는 비슷한 시기에 살았지만, 헤시오도스의 합리적 사고는 호메로스의 신화적인 사고와 사뭇 다르다. 헤시오도스의 위대한 두 교훈시 『우주기원론』과 『노동과 나날』은 오락이 아니라 계몽을 목적으로 집필되었는데, 이런 성격의 작품을 쓴 것은 그가 처음이었다. 그는 이야기를 해 주는 대신 진리를 설파한다. 그는 단순히 신들을 열거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들을 서로 연결된 완전하고 질서 있는 체계 속에 편입시킨다. 그는 세계의 시작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있으며, 이로써 그의 신통기神統記는 우주기원론으로 변모한다. 영웅성을 찬양하는 대신, 그는 근면과 정의를 최고의 선으로 내세운다. 많은 사람들이 최초의 그리스 철학자로 간주하고 있는 그의 사유는 그 후에 철학 사상이 발전되는 데 커다란 영향을 미치게 된다.



소크라테스 이전 철학자들에 대한 개관 밀레토스의 탈레스

개성과 생애


탈레스는 그리스 최초의 자연철학자로, "자연연구를 그리스인들에게 알려준 최초의 사람으로 간주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그를 "'그런'(만물의 원리를 자연 속의 질료에서 찾는 - 옮긴이) 철학의 창시자"라고 평가한다. 또한 그는 "최초의 현자"로 불리기도 하고, 칠현인 가운데 "가장 현명했던 사람"으로 평가되기도 한다. 그는 생전에도 사후에도 그리스 전체의 존경과 경의를 누렸다. 그가 책을 썼는지는 불분명하지만 (『항해를 위한 점성술』과 『태양의 지점과 분점』을 썼다는 주장도 있다.) 설령 그랬다 하더라도 지금 남아 있는 것은 없다. 그는 현명한 사람이었고 자신의 사상과 이론에 푹 빠져 지냈지만, 현실적인 감각도 뛰어났으며 탁월한 천재성과 풍부한 경험을 지니고 있었다. 공공의 사안들에 대해서도 활발한 관심을 보였다. 그의 삶과 업적은 그가 구체적인 실제적 문제들을 해결하는 데 있어 이론과 실천, 추상과 발명 능력을 탁월하게 결합할 줄 알았다는 것을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너 자신을 알라"는 지혜로운 경고도 탈레스의 말로 알려져 있고, 통찰과 이성의 비범한 추출물인 일련의 다른 함축적인 격언들도 그에게서 유래된 것으로 간주되고 있다.



영혼

탈레스는 영혼이 생명의 원천일 뿐만 아니라 운동과 변화의 원천이기도 하다고 주장한다. "탈레스는 영혼이 지속적으로 운동하는 것, 스스로 운동하는 것이라고 최초로 주장했다." 그는 여전히 자연 속의 모든 것들이 영혼을 지니고 있다고 생각했고, 운동과 변화라는 특성을 만물의 천성적인 본성으로 보았다.



밀레토스의 아낙시만드로스

최초의 기원 - '무한자'


그는 존재하는 사물의 아르케와 근본 요소를 아페이론(무한자)이라고 부른다. 아르케라는 표현을 이렇게 쓴 것은 그가 처음이다. 이 말은 아낙시만드로스가 아르케라는 표현을 처음으로 사용했다는 뜻인지, 아니면 아페이론을 아르케로 본 첫 번째 사람이 그였다는 뜻인지 분명하지 않다. "제1원인의 원리"라는 뜻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지만, 아낙시만드로스가 아르케라는 말에 부여한 의미는 맨 처음에 존재한 것, 즉 '기원'이었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무한자'는 '기원'을 의미한다. 아-페이론(무-한한 것, 무-궁한 것)이라는 개념은 아낙시만드로스가 추상적인 사유를 거쳐 형용사 아-페이로스(무-한한)를 중성명사로 명사화시켜 만들어낸 개념이다. 아페이론은 여러 가지 뜻을 지닐 수 있다. 아낙시만드로스는 헤시오도스의 카오스 개념을 분명히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아낙시만드로스의 '무한자'는 카오스와 동일한 개념이 아니다. 헤시오도스의 카오스는 텅 비어 있는 중립적인 우주 기원의 시초를 의미한다. 이와는 달리 아낙시만드로스의 '무한자'는 꽉 차 있고 역동적인 원천을 의미하며, 또한 덧없는 것들과 지나간 것들을 받아들이는 수용자이기도 하다.



신적인 것

'무한자'는 신적이다. 아낙시만드로스는 '무한자'가 자신의 기원을 갖지 않는, 만물의 영원불멸하며 소멸되지 않는 기원이라고 생각하며, 따라서 무한자를 신적인 것으로 간주한다. "그리고 이것은 신적인 것이다. 이것은 불멸하며 영원하므로." 호메로스와 헤시오도스는 신적인 것을 탄생된 것, 인간과 유사한 것으로 간주한 반면, 아낙시만드로스는 신적인 것을 탄생되지도, 개인성을 지니지도 않는 무한자의 실존으로 격상시킨다. 그리고 이 무한자는 인간의 깊숙한 종교적 감정에 부응하는 어떤 역동성을 지니고 있다. "신적인 것은 만물을 포괄하고 횡단하고 보호하며, 만물을 조정한다." 따라서 아낙시만드로스가 말하는 이러한 조종자, 지도자, 보호자로서의 '신적인 것'은 훨씬 더 심오한 종교적 의미를 지니게 된다. 그는 무한자가 세계 안에 존재하는 사물들에 대한 존재론적 지배권을 행사한다고 주장한다. 우주론적인 현상에 대한 이러한 관점은 당대의 정치 공동체들 안에서 나타나고 있던 법적·정치적 질서에 착안하여 이를 우주 전체에 적용한 것으로 보인다.



밀레토스의 아낙시메네스


우주기원론, 우주론, 기상학

아낙시메네스의 우주기원론과 우주론은 그의 스승의 획기적인 관념들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는 허공에 떠 있는 원통 모양의 지구를 설정하는 아낙시만드로스의 대담한 관념을 거부하는 대신, 평평한 지구가 공기에 의해 떠받쳐져 있으며, "공기 위에 놓여 있다"고 했다. 아낙시메네스는 희박화와 농밀화라는 대립 개념을 사용하여 세계의 변화와 자연 과정에 대한 이론을 발전시켰으며, 이를 다시 우주기원론과 우주론, 기상학 등 과학의 모든 분야에 적용시켰다. "만물은 일종의(공기의) 농밀화와 이에 뒤따르는 희박화에 의해 산출된다.



후기: 밀레토스의 '자연철학자들'

밀레토스에서 시작된 자연철학의 전통은 아낙시메네스와 함께 막을 내린다. 기원전 494년에 밀레토스는 페르시아 군대의 공격을 받아 화염에 휩싸인다. 밀레토스 사람들이 폭군에 대항하여 일으킨 봉기에 대한 참혹한 복수였다. 이로써 최초의 철학적 언어와 과학적 언어를 만들어낸 정신의 요충지도 사라지고 만다. 아낙시메네스는 아낙시만드로스의 제자였고, 아낙시만드로스는 탈레스의 제자였다. 그러나 이 세 명의 밀레토스의 '자연철학자들'은 제각기 서로 다른 우주기원론의 체계를 만들어낸다. 이들 가운데 스승의 세계관을 명시적으로 부정한 사람도 없었고, 그들 사이에 어떤 논쟁이 벌어진 적도 없었다. 그러나 절대적인 타당성을 주장하는 이론이 스승으로부터 제자에게 독단적으로 계승되는 일도 없었다. 각각의 이론들이 후계자들에게 비판적 검증을 필요로 하는 요구이자 도전으로 받아들여졌던 것이다. 이는 세계에 대한 비판적 관찰을 권유하는 수준까지는 아니라고 해도, 적어도 이를 용인하는 자세가 처음부터 있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칼 포퍼는 이렇게 지적한다. "세대가 바뀔 때마다 제자가 스승을 비판하고 나서는 일이 이오니아학파에서 처음 일어났다는 것은 역사적인 사실이다. 그리스에서 생겨난 철학적 비판의 전통이 이오니아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것은 의심할 수 없는 사실이다. 비판적인 혹은 합리적인 전통은 이렇게 단 한 번 발생했을 뿐이다.



사모스의 피타고라스

개성


피타고라스는 누구였던가? 이 질문은 얼핏 보면 너무 초보적이라고 생각될 수도 있지만, 이렇게 물어볼 충분한 이유가 있다. 시간이 흐르면서 그의 학설에 대해서는 수많은 말과 글들이 쏟아졌지만, 그 자신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확실한 것이 없는 듯 하다. 그가 실제로 가르친 것과 이후에 전개된 피타고라스주의를 구별하는 것은 오로지 추측의 영역에 속할 뿐이다. 이는 피타고라스의 저작과 학설에 대한 당대의 문헌이 거의 남아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 자신은 책을 한 권도 쓰지 않았거나, 설령 썼다고 하더라도 지금까지 남아 있는 것은 전혀 없다. 이러한 사정은 침묵이 피타고라스 교단의 기본 규칙 중의 하나였다는 사실에서 일부 기인한다. 그들은 의식적으로 침묵을 지켰기 때문에, 피타고라스가 제자들에게 무엇을 가르쳤는지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초기에 피타고라스의 학설은 '발설되지 않았고', '은밀하게' 취급되었다. 게다가 여타의 모든 종교 교단에서처럼 피타고라스 교단에서도 교주에 대한 충성심으로 인해 일체의 이론과 발견들을 교주의 공로로 돌리는 경향이 강했다. 설령 그런 이론이나 발견들이 다른 단원들에 의해 성취되었다고 하더라도 말이다. 그래서 그들은 항상 "피타고라스가 직접 말하기를…"이라고 쓰는 것이다. 게다가 처음부터 피타고라스라는 인물 주위에는 그를 초인 혹은 반신반인으로 숭상하는 사람들이 있었고, 그들이 그에 대한 전설을 지어내었던 것도 이러한 사태의 한 요인이 되었다.



영혼의 불멸성

피타고라스는 영혼의 불멸이라는 근본적인 주장을 펼침으로써 서양 역사에 결정적인 전환점을 마련했다. 호메로스는 인간이 죽고 나면 영혼은 단순한 그림자로만 남게 되는 것으로 묘사했다. 영혼은 덧없는 육체와 함께 사라져버리는, 인간 실존의 창백한 그림자에 불과했다. 그리고 이오니아의 '자연철학자들'은 영혼과 육체를 구별하지 않았다. 피타고라스는 육체가 아니라 영혼이 인간 실존의 가장 중요한 담당자라고 선언한 유럽 최초의 인물이었다. 인간은 대우주, 다시 말해 우주 전체를 반영하고 요약해놓은 소우주로 간주된다. 이러한 인간은 지속적으로 변화와 발전과 파괴를 겪는 물질적인 육체와, 정신적 존재로서 지속적으로 운동하는 비물질적인 영혼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영혼은 자신의 고유한 존재방식을 지닌다. 인간의 영혼은 불멸한다. 이는 이 영혼이 불멸의 신적 존재로부터 파생된 것이기 때문이다. "영혼은 불멸한다. 영혼이 파생되어 나온 원천이 불멸하기 때문이다." 이로써 그리스 사상 최초로 영혼이 덧없는 육체에 대해 자립적인 존재를 획득하게 된 것이다. 육체는 영혼의 일시적인 감옥으로 간주된다. 그리고 오래지 않아 영혼이라는 개념은 개인의 자아의식이라는 개념과 동일시된다. 이 의미심장한 사건은 정신이 영구적인 존재론적 존재방식으로 구상되기 시작한 것을 의미하며, 이러한 영혼의 존재 방식은 물질의 존재방식과 정면으로 대립되는 것으로 간주된다.



콜로폰의 크세노파네스

인간중심적 이론


크세노파네스의 신은 인간의 작업에 대해 완전히 무관심하다. 이는 인간의 개인적 행위나 문화의 발전에 있어서 인간 자신의 역할은 어떤 것인가 하는 문제에 대한 근본적으로 새로운 관점이다. 그때까지 인간은 자신이 신적인 힘에 종속되어 있다고 느꼈다. 호메로스의 서사시에서는 신들이 인간의 삶과 작업에 개입하는 경우가 무수히 많다. 헤시오도스는 뮤즈로부터 진리의 말을 듣는다. 파르메니데스는 여신의 손을 잡고, 여신은 그에게 진리를 계시해준다. 인간은 행복과 부, 덕성, 명예, 명성을 얻고자 신들에게 기도하고 기대하며, 동시에 신들의 복수와 처벌을 두려워한다. 심지어 신들과 거래를 하거나 신들로부터 부유함을 구매하는 경우까지 있다. 에피카르모스(기원전 540~460년경, 그리스의 희극 작가이자 철학자, 자연 연구가였다. - 옮긴이)는 "노력이라는 대가를 지불하면 신들은 우리에게 모든 재화를 판매한다"고 말한다. 크세노파네스는 신이 감독관, 지도자, 영감의 제공자, 후원자, 공동 행위자들로서 인간사에 개입한다는 것을 부정한 유럽 최초의 사상가였다. 이로써 인간의 행위는 오로지 인간 자신의 책임으로 돌려진다.



인식

"실로 신들은 인간에게 처음부터 모든 것을 보여주지 않았다. 인간은 추구하는 가운데 서서히 더 나은 것을 발견해간다"는 크세노파네스의 선언은 인식의 획득 전체에 대해서도 유효하다. 브루노 스넬은 이렇게 지적한다. "인간은 자신의 탐구를 통해 능력과 지식을 획득한다는 새로운 사상이 여기서 나타난다. 인간적인 것으로부터 신적인 것으로 나아가는 데 있어 인간의 활동, 인간 자신의 추구와 노력이(크세노파네스에 이르러) 처음으로 중요한 위상을 차지하게 된다." 그는 부단한 추구와 탐구를 통해 자신의 인식을 명확히 하고 확정함으로써 "만물에 대한" 근본적인 당혹감으로부터 벗어나고자 했다. 이는 그 자신의 감각을 사용함으로써 경험적인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우리는 앞서 물리적 현상들을 묘사하고 설명하는 그의 날카로운 관찰 능력을 확인한 바 있다. 그래서 그를 경험주의자로 분류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이는 일면적인 평가에 지나지 않는다. 크세노파네스는 "감각은 기만적"이라고 생각했으며, "감각과 표상을 떨쳐버리고 오로지 로고스(이성)만을 믿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따라서 그는 연구를 통해 얻어지는 경험적 소여들은 항상 논리적인 작업과 판단을 거쳐야만 올바른 인식을 낳을 수 있다고 생각했던 합리주의자이기도 했던 것이다.



에페소스의 헤라클레이토스

대립물들의 끊임없는 투쟁


대립물의 통일은 대립물들이 평화롭게 정적으로 공존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대립물들은 부단하고 역동적인 긴장 속에서 갈등하며, 서로 경쟁과 전쟁과 "투쟁"의 관계를 맺고 있다. 그리고 이 투쟁에는 필연성과 정의라는 요소가 들어있다. "전쟁은 만물에 공통된 것이고, 분쟁이 법이며, 분쟁과 필연성에 따라 모든 일이 일어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투쟁은 세계를 조종하는 가장 높고 보편적인 원리다. "전쟁은 만물의 아버지이며, 만물의 왕이다…." '크쉬노스'라는 말은 '공통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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