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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 사용 설명서

이병준 지음 | 영진닷컴
남편 사용 설명서

이병준 지음

영진닷컴 / 2008년 5월 / 205쪽 / 10,000원

1. 서비스를 의뢰하기 전에_ 이럴 땐 고장이 아닙니다



남의 편이라서 남편


"남편은 늘 남의 편이었어요. 평소에도 남의 편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섭섭할 때가 많은데 결정적인 도움이 필요할 때까지도 남의 편인 것이 너무 억울하고 힘들어요. 어떨 때는 나를 의도적으로 외면하고 피하는 것 같이 느껴지기도 해요. 도대체 왜 그런지 이유를 모르겠어요."



각 태어난 유아는 어느 정도 폐쇄된 심리적 체계를 형성하는 정상적 자폐 단계를 지난다. 공생기에 접어들면서 아이는 필요를 충족시켜주는 대상을 조금씩 인식하게 된다. 이 공생기는 미소반응을 통해서 예고된다. 공생이라고 표현을 한 것은 아이의 존재가 부모에게도 많은 기쁨을 주기 때문이다. 그 다음이 분리 개별화 과정으로 부화, 연습단계, 재접근단계를 거쳐 대상항상성의 단계로 성장을 하게 된다. 이 과정을 '심리적 탄생'이라고 한다. 심리적으로 건강한 사람은 '심리적 탄생'을 한 사람을 일컫는다. '심리적 탄생'은 신체 발육과는 달라서 심리적 발달단계가 정상적이지 못할 때 그 단계에 고착되어 버린다.



사실 부부들이 겪는 답답한 의사소통은 배우자가 '고착'된 상태이기 때문이다. 신체적 '발육'은 정상적으로 이루어졌지만 심리적 '발달'은 자폐기나 공생기 단계에 고착되어 분리 개별화를 이루지 못한 상태인 것이다. 이렇게 되는 이유는 살아남기 위한 본능이며 무의식적인 동기이다. 그 결과 살아남기 위한 '생존지능'은 가졌지만 삶을 풍성하게 하는 행복지수, 즉, '관계지능'은 성장할 수 없었다. 이 자폐 성향이 강할수록 아내와 자신을 분리하지 못하고 병리적 자폐성향을 보이게 된다. 자기만을 생각하고, 조금만 맞지 않아도 버럭버럭 화를 내고, 아예 도망가거나 반응하지 않고, 일체 대화에 응하지 않거니와 응한다 할지라도 말을 못 알아듣는다. 아내를 비하하고 공격하면서도 그것이 비하나 공격인 것을 인식 못하고, 조금만 불편해도 참지 못하고 아이처럼 고함지르거나 심한 경우 폭력을 쓰면서도, 그것이 잘못되었다는 생각을 전혀 하지 못하는 것이다.



앞에서 이야기 했던 '생존지능'은 칼 융의 용어로 '페르소나'에 해당된다. 페르소나는 '가면'이란 뜻이며, 집단이 개체에 요구하는 도리, 본분, 역할, 사회적 의무에 해당하는 것, 그 집단에서는 누구나 그렇게 생각하고 느끼고 행동해야 할 여러 유형을 말한다. 즉, 페르소나는 생존하기 위한 외형인격이므로 페르소나의 탁월성이 발달되면 성취를 이뤄내는 인생이 되고 결혼의 매력적인 조건이 되기도 한다. 그래서 남의 편일수록 밖에서는 탁월성을 발휘할 가능성이 높다. 그 탁월성에는 부드러운 얼굴표정, 말씨, 태도, 친절한, 유머, 재능, 카리스마 등이 포함된다.



이런 남편들은 남들이 볼 때에 완벽하게 보이지만 집에 들어오면 악마로 돌변할 수 있다. 왜냐하면 집에 들어오면 가장 먼저 가면을 벗고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오기 때문이다. 그래서 집에서 보는 남편에게서는 화려하지도 멋지지도 않은 정도를 넘어 냄새나고 더럽고 약한 모습이 훨씬 더 많이 보인다. 결혼 전에는 목숨을 걸면서까지 도와주는데, 결혼 후에는 부탁에 부탁을 거듭해도 아내 말이라면 무조건 거절하는 것이 다 이런 이유에서이다. 영문도 모르는 여성들은 그런 남편의 겉모습만을 보기 때문에 그 남편을 칭찬하는 것은 물론, 함께 사는 아내에게 부러움의 시선을 보내기까지 한다. 또 그 남편하고 사는 아내가 같이 사는 답답함을 호소하면 '배부른 소리'라고 한마디로 일축해버린다. 그럴 때 같이 사는 아내의 속마음은 억울해서 터지기 일보직전일 것이다.



밥만 찾고 TV만 보고

집에만 들어오면 TV만 보는 남편, 휴일에도 하루 종일 TV하고만 뒹구는 남편 때문에 부부싸움을 한다는 경우는 남의 이야기가 아니다. 하긴 과도한 TV시청이 문제이긴 하다. 왜 남자들은 집에만 들어오면 TV에 몰두할까?



그 첫 번째 이유는 쉬고 싶은 욕구 때문이다. '집=휴식'이라는 공식은 피곤하고 지칠수록 집에서 축 늘어지고 싶은 욕구가 더욱 커지도록 만든다. 즉 TV를 보는 것이 목적이라기보다는 추욱 늘어지고 싶은 욕구의 표현일 뿐이다. 그러나 TV의 마력이 워낙 강하다보니 습관적으로 리모컨을 잡다가 중독수준까지 이르게 되는 것이 문제다. 두 번째 이유는 TV화면이 불빛이기 때문이다. 시각지향적인 남자들은 특히 불빛에 민감하다. 왜 그럴까? 선사시대에는 수렵이 가족의 중요한 생계수단이었고 남자에게 맡겨진 중요한 역할이었다. 하루 종일 수고해서 사냥감을 잡아온 남자는 아내가 요리하는 불빛을 보면서 그날 하루에 있었던 일을 영화필름처럼 되감아 본다. 사냥감을 발견했던 짜릿하고 흥분되는 순간, 사냥감이 자기를 공격했던 위험했던 순간, 마침내 사냥에 성공한 자신의 대견한 모습을 보면서 흐뭇한 행복감에 빠져드는 것이다. 그래서 집에 들어옴과 동시에 사냥이라는 엄청난 과업을 내려놓고 자신의 수고와 땀을 통해 얻어진 것을 누리고픈 욕구가 발동하게 되는 것이다. 집에 있는 대형 벽걸이 TV의 불빛은 따뜻한 모닥불이다.



TV를 보고 있는 남편의 표정을 유심히 보라. 행복하다. 그 몰입의 깊이가 얼마나 깊은지 어려운 일도 해결해낼 것 같은 진지함이 가득하다. TV를 보는 열성과 집중력이 일에 투자된다면 성공하지 못할 남자는 아무도 없을 것처럼 보인다. 가끔 TV에게 정실의 자리를 뺏기고 첩으로 밀려난 아내들이 질투하면서 코드를 빼기도 해보지만 오히려 악착같이 정실을 두둔하며 감싸고도는 통에 속만 더 상할 뿐이다.



거기에 한 가지가 더 있다. 남편은 늘 밥을 찾는다. 남편들이 부리는 신경질의 많은 부분은 먹을거리와 관련된 것이다. 그런 남편을 보며 부인은, 자신의 역할이 밥할 때만 필요한 하숙집 주인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허탈함을 느끼게 된다. 퇴근할 때는 물론이거니와 부부나 가족이 동시에 외출했다 돌아와도 가장 먼저 밥을 찾는다. 당장 먹을 밥이 없거나 밥 준비를 하지 않고 있는 아내를 보면 버럭 화를 낸다. 또 원하는 반찬이 없거나 맛이 없을 땐 반찬투정, 음식 타박을 한다.



물론 남녀노소에 관계없이 먹는 것은 사람의 제 1욕구다. 건강한 사람은 식욕이 강하고, 몸과 마음이 상하면 입맛부터 없어진다. 그런데 왜 남자들은 먹는 일을 그렇게 중요하게 생각할까? 그 이유는 따뜻한 밥이 휴식의 선언과 안정감의 제공을 뜻하기 때문이다. 특히 하루 종일 긴장 속에 생활하다 넥타이를 풀고 나면 육체적 필요를 먼저 충족하고 싶은 욕구가 자연스레 생성된다. 밥을 맛있게 먹어 1차 욕구가 채워지면 TV나 취미나 운동, 섹스와 관계욕구로 향상되어 올라가면서 아내와 자식이 보이기 시작하는 법이다.



돈 이야기만 하면 돈다

남성들이 돈에 대해서 민감한 이유를 살펴보면, 첫째,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남성에게 돈은 생명이기 때문이다. 어릴 적 지독한 가난 속에서 성장한 사람들은 돈에 대한 집착이 더 강한데 돈은 곧 생명이자 생존이었기 때문이다. 인정이자 칭찬과 격려를 받지 못하고 자랐다면 더욱 돈에 집착하고 잔소리를 한다. 그래서 때로는 남성이 여성보다 훨씬 더 돈에 인색하다. 여성들은 평소에 아끼고 절약하지만 써야할 자리에서는 대범하게 쓴다. 그러나 남성들은 써야할 자리에 대범하게 쓰지 못하고 자신의 체면과 명분을 위해서 돈을 쓰기 때문에 가족들이 희생을 당하게 된다. 이런 맥락에서 남편들은 가정경제를 책임지는 것으로 역할을 다 했다고 생각한다.



둘째, 돈은 곧 남성에게 자존심이기 때문이다. 아내가 돈 이야기하는 것을 자신의 능력을 평가한다고 생각해서 자존심이 상하기 일쑤다. 어느 날 시장을 다녀온 아내가 "여보, 돈 만 원을 들고 마트에 갔는데 콩나물 한 봉지하고, 두부 한 모 사니까 돈이 없더라"고 말한다. 아내의 이 말은 물가가 비싸다는 얘기다. 그냥 지극히 일상적인 이야기이며 이런 것들이 행복의 소재가 되기에 자연스레 말을 꺼낸 것뿐이다. 그때 남편이 "그래, 물가가 정말 비싸지? 내가 가져다주는 돈 많지 않은데, 그 돈으로 알뜰하게 살림한다고 고생 많지? 내가 당신 마음 다 알아" 하고 말해 주면 좋겠지만 이렇게 말하는 남자는 멸종되고 없다. 대신 이렇게 말한다. "그래~ 니 남편 돈 못 번다 왜?" 이때 "쥐꼬리만한 월급 받아오는 주제에 "라는 아내의 말은 남편을 확인 사살하는 총알이다.



급여명세서 받는 순간, 남편은 누가 뭐라 하지 않아도 스스로 자신의 능력을 평가하게 되고, 그 결과에 만족하지 못할 때는 주눅 든 어깨에 더욱 힘이 빠진다. 일할 의욕이 떨어지고 자신이 더욱 비참하고 초라하게 느껴진다. 인생의 오후인 중년기가 되면 더욱 그렇다. 친구들이나 자신과 가까운 남성들이 점령하는 고지를 볼 때마다, 그러지 못한 자신의 모습이 한없이 비참하다. 돈이 아니라면 명예라도 있어야 그나마 어깨가 처지지 않지만, 그것마저도 없다면 처지는 어깨를 막을 길이 없다.

나만 문제고 자긴 아무 문제없다구?

"너만 바뀌면 돼. 난 아무 문제없어!" 세상에 문제없는 사람이 있을까? '행복한 가정이란 문제가 없는 가정이다'는 명제는 참일까? 그렇지 않다. 행복한 가정도 반드시 문제를 갖고 있다. 그러나 문제를 풀어가는 방식에서 현저한 차이를 보인다. 반면, 역기능 가정은 문제 자체를 인정하지 않거나 문제가 발생하고 나면 문제에 빠져서 헤어나지 못한다. 그러나 순기능의 가정은 문제를 겸허히 인정하며 문제가 생겼을 지라도 대화라는 방식을 통해 해결할 뿐 아니라, 문제를 에너지로 전환시켜 가족전체가 성장하는 계기를 만들어낸다. 따라서 문제가 있을 수 없다고 말하는 것만큼 큰 문제는 없다.



"너만 바뀌면 돼, 난 아무 문제없어." 이 말은 "난 문제투성이야. 그리고 문제를 인정하지 않는 똥고집으로 가득 차 있어. 그래서 당신이 더더욱 힘들고 답답할 거야"라고 동시통역을 해서 들어야 한다. 그렇다면 왜 끝까지 고집 피우면서 부정하거나 투사할까? 아내에 대한 두려움과 변화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다. 여성은 수평관계를 맺는 일에 탁월성이 있어 동등한 관계를 나란히 맺어도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오히려 동등한 수평관계가 많을수록 더 큰 행복을 경험한다. 그러나 남성은 수직관계를 만들기 때문에 라이벌 의식이 강하고 수직관계의 서열 속에는 자신 혹은 몇 사람밖에는 넣지 못하게 된다. 수평관계의 경험이 없으니 수평관계의 폭이 넓은 아내를 은근히 두려워하고 어려워하는 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우리 부부 문제 있으니까 부부세미나 가서 좀 행복하게 바꾸어 보자"라는 아내의 말을 수평적 차원의 권유나 친절한 안내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수직적 차원에서 아랫사람이 윗사람에게 건방지게 대든다는 것으로 해석한다. 특히 가부장적인 문화권에서 남자는 여자보다 우위라는 집단무의식이 깔려 있어 아내가 권유하는 것이라면 콩으로 메주를 쑨다고 하는 평범한 진리도 절대 믿지 않을 뿐 아니라 이유도 분명치 않은 화를 버럭버럭 내면서 거부하는 것이다. 어떤 남편들은 어느 정도 자신에게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내가 만난 남성 그룹에서는 자신들의 문제를 잘 알고 있는 남편들이 꽤 많아서 남성들로만 이뤄진 그룹에서는 속마음을 표현하기도 했는데 아내 앞에서는 그것마저도 하지 못하는 것을 보았다. 그 밑 마음속에는 두려움이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남편들은 아내가 조금 당겨주면 못 이기는 척 하고 끌려온다. 은근히 기다리고 있다.



살수록 수수께끼

인생의 오후 시점이 되어서 찾아온 그분들의 모습에서 때로는 평온한 관계를 보기도 한다. "보기에는 문제가 없으신 것 같은데 무엇 때문에 오셨습니까?"고 묻는 것이 인사가 되기도 한다. 그러나 많은 경우, 그것은 위장된 평화에 불과하다. 마흔을 넘어 쉰에 가깝도록 가정을 이루고 사는 동안, 겉으로 이룰만한 성취도 나름대로 얻었고 아이 양육도 끝내놓은 시점이라 표면적인 평화를 만들어내지만 실제로는 위장된 평화이며, 더 이상 싸울 여력이 남아있지 않아 암묵적인 동의 후 싸움을 중지하고 있는 휴전상태의 평화일 뿐이다. 그러나 이들의 마음은 상대방에 대한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를 간직하고 있다. 살면 살수록 수수께끼! 아무리 상식과 객관적 기준을 동원해서 이해하려고 해도 답을 찾을 수 없다. '그저 참는' 방법을 사용해 보지만 그것도 별 효력이 없다. 용기를 내어 잔소리를 해도 안 되고 수 없는 다짐과 각서를 받아도 해결되지 않는 영역이다.



'그림자'라는 심리학 용어가 있다. 건드리면 발끈하는 부분이나 숨기고 싶은 약점을 말하는 '그림자'는 칼 융의 심층 심리학 용어로 인간의 가장 외형인격인 '페르소나'를 지나 내면 속으로 들어가면 만나게 되는 존재다. 아주 복잡하게 얽혀 있다고 해서 'complex'라는 용어로 표현할 수도 있다. 건드리면 발끈할 뿐 아니라, 왠지 모르지만 뭔가에 접촉되기만 하면, 화가 나거나 침울해지거나 무의식적 행동이 튀어나오는 영역이다. 그래서 배우자의 그림자를 이해하는 것은 깊은 부부관계를 만들어가는 데 필수조건이 된다. 그런 의미에서 그림자의 이해 없이 행복한 부부관계를 유지하고 있다는 말은 다 거짓말이다. 즉, 배우자의 어린 시절과 성격형성의 비밀, 그 사람의 그림자 영역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면 그것은 껍데기의 사랑, 위장된 평화, 남들에게 보여주는 접대용 부부관계일 뿐이다.



2. 남편, 이렇게 사용하세요



남편, 내 편 만들기


휴렛 팩커드의 창업자인 데이비드 패커드는 "좋은 사람을 만나는 것은 신이 주신 축복이다. 그 사람과의 관계를 지속시키지 않으면 축복을 저버리는 것과 같다"고 했다. 그의 말마따나 남편은 쉽게 끊을 수 있는 관계가 아니다. 아무리 남의 편이라도 아내는 남편과 좋은 관계를 유지해야 행복을 얻게 된다. 그러기에 남편을 내 편으로 만드는 일은 아내의 행복과 불행을 결정하는 중대사이며, 반드시 성공해야 할 과업이다. 결코 소홀히 하거나 포기할 수 없는 일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남편을 내 편으로 끌어당길 수 있을까? 그 대답은 늘 '인정과 칭찬 그리고 격려를 아끼지 말라'는 것이다. 이 말은 식상하리만치 고전 중의 고전 중임에도 불구하고 나는 여전히 이 말을 쓰지 않을 수 없다. 남편은 인정과 칭찬, 격려에 늘 굶주려 있다. 그래서 본능적으로 자신을 칭찬하고 인정해주는 쪽으로 코를 킁킁대며 찾아간다. 교류분석의 에릭 번은 사람을 움직이는 힘은 '인정자극'이라고 했다. 즉 모든 사람은 인정자극을 받을 때 기분이 좋고 그것을 교환할 때 행복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입에 발린 말은 효용이 없다. 반드시 인정과 칭찬에 마음을 담아야 한다. '격려'라는 말의 라틴어 어원도 '심장'에서 나왔다고 한다. 참된 격려란 뜨거운 심장을 주는 것, 마음을 뜨겁게 해주는 것이라야 효력을 발휘한다.



아내가 남편을 인정하고 칭찬하고, 격려해야 한다고 말을 하면 대부분의 아내들은 화를 내면서 "예쁜 짓을 해야 인정하고 칭찬할 것 아니냐?"고 반문한다. 그러나 보통 사람들은 예쁜 짓을 하기 때문에 칭찬과 격려를 한다면, 아내는 칭찬과 격려를 함으로써 남편이 예쁜 짓을 하도록 만드는 유일한 존재다. 그래서 여성이 남성보다 더 탁월하고 풍부한 정서적 자원을 갖고 있는 것이다. 굳이 한 번 더 이야기하자면 남성은 생존지능만으로 관계지능을 가진 여성을 정복하기 어렵지만, 관계지능을 가진 여성은 생존지능의 탁월성을 가진 남성을 정복하는 것이 가능하다. 이 힘을 매력이라고 한다. 매력이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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