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마음대로 살아라
톰 디즈브로크 지음 | 도솔출판사
네 마음대로 살아라
톰 디즈브로크 지음
도솔 / 2008년 5월 / 296쪽 / 11,000원
1. 당신은 진정 자유로운가?우리는 법의 테두리 안에서 많은 자유를 누리며 살고 있다. 누구나 자기 생각을 드러내놓고 말하거나 글로 표현할 수 있으며, 자신이 바라는 곳에서 바라는 방식대로 바라는 사람과 살수도 있다. 역사이래 어느 시대에도 이렇게 많은 사람이 지금 같은 환경에서 살지는 못했다. 법이라는 제한이 있긴 하지만 우리 사회는 최대한 자유를 제공하고 행복을 보장하려고 한다. 적어도 겉보기에는 그렇게 표방한다. 그러나 우리의 정신과 마음은 다르게 느끼는 것 같다.
외적 자유는 바깥세상과 주변 환경, 다른 사람들뿐만 아니라 나의 능력과 소유물 그리고 육체를 위해 마련된 모든 가능성의 합이다. 나의 외적 자유는 내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규정한다. 내적 자유란 내가 가진 능력과 가능성이 충분하다는 점을 알고 내 안에서 최상의 것들을 끌어내어 쓰는 일을 말한다. 즉 새로운 것을 배우고 스스로를 발전시켜나가며, 삶을 즐기고 기뻐하며, 다른 사람과 더불어 창조적으로 살아가며, 자기 확신을 갖고 사는 것을 말한다. 이는 내적으로 충만한 삶과 성공으로 이끄는 모든 것들의 합이다. 내적 자유를 발전시키려면 먼저 외적 자유를 자각하고 인정하는 법부터 배워야 한다. 이는 간단해 보이지만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나는 어느 특별한 순간 나 자신과 이 세상에 진심으로 만족감을 느낀 적이 있다. 그 순간에 나는 내가 가진 한계의 범위가 확장되거나 아예 사라지는 것을 느꼈다. 자유롭고 행복한 순간이었다. 편안하게 앉아서 가능한 한 긴장을 푼다. 눈을 감아도 좋다. 자유로웠거나 가능성이 활짝 열려 있으며 행복하다고 느낀 순간을 마음속으로 떠올려보라. 자신이 과거에 겪은 상황을 다시 한 번 비슷하게 경험해볼 수 있도록 노력해보자. 자기가 맡은 역할에 몰입하는 배우처럼 말이다. 이제 과거의 기억에서 돌아와 현재에 머물러보자. 그런 다음 마치 과거의 그 순간에 머무는 듯 모든 인상을 느껴보자. 자유로운 느낌이 최고조에 이르렀다고 여겨지면 잠시 그 순간을 음미한 다음 그림에 이름을 써넣듯 이 순간에 이름을 붙여본다. '해변의 나', '나는 자유롭다', '나의 힘' 등 어떤 이름이든 이 순간을 떠올리게 해주는 것이라면 무엇이라도 좋다. 이런 짧은 '여행'을 떠나본 느낌이 어떠한가? 물론 그때만큼 좋고 강렬한 느낌을 받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자유로웠던 느낌을 단 20%만이라도 재현해낸다면 그 자체로 커다란 도움이 된다. 이제는 내적인 자유를 경험하던 때의 좋은 느낌을 언제라도 환기할 수 있을 것이다. 자주 연습할수록 이런 순간을 재현하는 일이 더 쉬워진다. 이 연습을 여러 번 해보고 익숙해지면 일상에서나 마음속에서 얽매임을 느낄 때 내적인 자유를 느끼는 상태로 옮겨가는 일이 그다지 어렵지 않을 것이다. 내 몸속의 자유를 불러내는 리모컨 같은 것이다.
2. 자기 인생의 감독이 되라
심리학에서는 삶에 대해 가지는 감독으로서의 마음가짐을 '자기효능감(self-efficacy)'라고 부르는데, 이 용어는 캐나다 심리학자 앨버트 반두라(Albert Bandura)가 처음 사용했다. 이와 달리 단역배우로서의 마음가짐은 '학습된 무력함'이라고 부른다. 자기효능감이 강한 사람일수록 어려운 상황을 맞아도 잘 헤쳐나가리라는 확신을 갖는다. 우리는 도전할수록 자기 자신이 성숙해진다고 느낀다. 스스로의 능력을 믿어야 무언가를 이루어낼 수 있다. 자기 자신과 가능성을 확신하는 사람은 그렇지 못한 사람보다 분명 더 의욕적이고 노력도 더 많이 한다. 그래서 강한 자기효능감을 지닌 사람은 자신의 실제 능력 이상의 성공을 거둘 가능성이 크다. 자기효능감이 강한 사람은 스스로를 믿고 자신을 지지하는 모든 것들에 훨씬 더 개방적이다. 그래서 실패하기보다는 성공하는 예가 더 많다. 실패는 그런 긍정적인 세계관에 걸맞지 않다. 그런 사람은 실패를 몰라서가 아니라 실패에 큰 의미를 두지 않기 때문이다.
강한 자기효능감을 가진 사람은 여론을 주도하는 역량 있는 사람으로 거듭난다. 감독은 자신이 감독이라는 증거를 이곳저곳에서 발견한다. 유감스럽게도 단역배우도 마찬가지다. 주변의 모든 것들이 그가 단역배우라는 사실만을 입증해준다. 단역배우는 자신의 역랑이 특정 임무를 이행하는 데 충분하지 않다고 굳게 믿는다. 모험을 감행하지 않기 때문에 자신을 믿어볼 만한 기회조차 가지지 못한다. 감독은 항상 새로운 것을 경험하고 그 경험 안에서 지속적으로 배우고 발전해나간다면, 단역배우는 늘 자기 테두리를 벗어나지 못한다. 단역배우는 스스로를 믿지 않기 때문에 자신에게 주어진 기회조차 알아차리지 못한다. 그래서 단역배우는 감독이 경험한 세계를 접해보지도 못하는 것이다.
3. 진정한 자유는 목표를 필요로 한다
자유라는 것이 소극적일 수 있을까? 그런데 적극적인 자유와 소극적인 자유라는 말은 가치를 염두에 둔 표현이 아니다. 자유를 이 두 가지 개념으로 처음 나눈 사람은 정치철학자 이사야 벌린(Isaiah Berlin)이다. 적극적인 자유와 소극적인 자유의 개념 차이는 '우리가 바라는 목표를 이루기 위해 자유를 어떻게 이용할 것인가'에 답하는 중요한 열쇠가 된다. 우리의 자유를 제한하는 것들은 많다. 주변 여건이나 다른 사람들, 국가와 같은 외적 요인들, 두려움과 약해진 믿음, 내적 강요 등의 내적 요인들이 그렇다. 아프거나 돈이 없어서, 또는 감옥 등에 갇혀 외적 자유를 제한받을 때 우리의 관심은 그 상황에서 빨리 벗어나는 일에 쏠린다. 자유스럽지 못하면 괴로운 나머지 빠져나갈 궁리만 하게 된다. 이때 우리가 얻으려는 자유가 바로 소극적인 자유다. 이 자유는 부자유 상태에서 벗어나려는 데 급급하다. 자신이 처한 상황이 불편하고 제한이 많을수록 거기서 빨리 벗어나고자 하는 욕구도 커진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은 불쾌한 상황에 빠져 헤어나지 못해도 자신이 거기서 벗어날 권리가 있음을 보여주지 못한다. 그것은 마치 집이 불타고 있는데도 "차라리 여기 있을래. 그냥 도망칠 수는 없어"라고 말하는 격이다.
만일 그런 사람들이 자신의 소극적인 자유를 인식했다면 피신할 수 있다는 사실도 알았을 테고 "더는 참을 필요가 없어. 나는 나가도 돼!"라고 말했을 것이다. 그 순간 자신이 어디로 가야 하는지는 전혀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그들이 무언가를 바꿀 수 있고 또 바꿔도 된다고 생각하는 점이다. 이것이 첫 번째 단계다. 그리고 현재 있는 곳이 마음에 들지 않아 다른 곳으로 가고 싶다면, 자신이 추구하는 목표를 이루기 위해 어떤 길을 갈 것인지 선택해야만 한다. 이것이 두 번째 단계다. 적극적인 자유가 뒤따르지 않는 소극적인 자유는 아무런 쓸모도 없다. 스스로 목표를 세우고 이루어갈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한다면 삶은 방향을 잃고 말 것이다. 소극적인 자유와 적극적인 자유는 동전의 양면과도 같으며, 함께 행복한 삶의 기반을 이룬다.
4. 진정한 자유는 자신의 한계를 아는 데서 시작된다
"월급 통장에 50만 원만 더 들어오면 얼마나 좋을까!" 이런 바람을 이야기하자면 끝이 없을 것이다. 또 절망스러울 만큼 적은 월급에 대해 불평하라면 이 또한 마찬가지다. 이런 말을 계속 내뱉는다고 해서 자신의 월급이 저절로 올라갈까? 그럴 리 없다. 자신의 상황과 한계에 대해 불평하면 할수록 의욕만 사라진다. 압력솥의 원리를 생각해보자. 압력솥 내부에서는 압력이 상승하기는 해도 폭발하지는 않고 솥이 감당할 수 있을 만큼만 압력이 가해진다. 그러고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사람이 자유를 너무 많이 제한받으면 당연히 압박감을 받게 되고, 그런 내적 압박감은 제한이 심해질수록 '터질' 때까지 지속적으로 상승한다. 그러나 압력솥처럼 처신하는 사람은 습관적으로 상황을 불평하고 운명을 한탄하면서 터지지 않을 만큼만 압박감을 덜어낸다. 이러는 데에도 장점이 있다면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놔둘 수 있다는 점이다. 스스로 적당한 한계를 지우는 셈이다. 우리도 가끔은 압력솥처럼 행동하지 않는가? 적극적으로 행동에 나섰을 때 생길 위험이 마음에 걸리는가? 스스로 자유를 제한하면서 살 생각이라면 가끔씩 불만을 토로하거나 자기연민에 빠진다 해서 크게 문제될 것은 없다. 그러나 그런 수동적인 태도는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그러다 결국 호된 대가를 치르게 되며, 언젠가는 늘 피해자로 보이는 것에도 흥미를 잃을 것이다.
우리 안의 한계는 압박감뿐만 아니라 불만족도 만들어낸다. 하지만 한계를 경험하는 일은 긍정적인 일이다. 이 기회를 통해 우리는 한계를 극복하고 좀 더 성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계를 극복하고자 한다면 그 한계가 정확히 어디에 있는지 알아야 한다. 장애물까지 돌진하지 않는다면 자신의 자유의지가 얼마나 큰지, 장애물이 어디에 있는지 결코 경험할 수 없다. 기본적으로 자신의 한계가 어디에 있는지 알아둘 필요가 있다. 그것이 자기 정체성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젊은 사람은 자신의 한계를 잘 인식하지 못한다. 그러나 나이 먹을 만큼 먹은 성인이 자신의 한계를 잘 모르거나 다른 사람에 견주어 자신의 한계를 제대로 인식하고 지켜내지 못한다면 문제가 된다. 분명한 한계는 우리에게 아주 중요하다. 물론 그 한계가 절대 극복할 수 없다거나 확고부동한 것으로 비친다면 문제는 다르다. 그런 경우 개인의 자의식은 안정적이기는 해도 전혀 변화나 발전이 없을 것이다. "나는 원래 그래. 그리고 그렇게 살 거야"라고 생각하는 경우 삶에 어떤 변화가 생기거나 압박을 받으면 문제가 발생한다. 새로운 환경이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행동하고 생각하고 느낄 것을 요구하는 경우 말이다. 지금까지 모든 문제를 망치 하나로 해결해왔는데, 갑자기 못이 아닌 나사를 다뤄야 한다면? 그래도 계속 망치를 사용할 것인가? 아니면 새로운 도구를 사용할 때가 왔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겠는가?
5. 자유의 적, 두려움과 습관을 극복하라
자유로워지려면 절대로 두려움을 피해서는 안 된다! 우리가 두려움에 공격적으로 대처할 때 결과적으로는 더 많은 것을 얻는다. 물론 오래된 사고방식이나 생활태도를 버리고 새로운 것을 시도하는 일은 두렵다. 두려움은 우리가 새로운 도전을 할 때 치러야 하는 대가인 셈이다. 먼저 이 세상에서 자기 자신을 믿고 의지하는 자유로운 사람이 되기란 정말 쉽지 않다는 것을 깨달을 필요가 있다. 대부분의 사람은 자유를 확장하는 데 두려움을 갖는다. 하지만 그럴수록 자신의 두려움을 인정할 줄 알아야 자기 자신을 두려움 앞에 맞세울 기회도 갖게 된다. 자유라는 것이 언제든 새로운 선택을 할 수 있음을 뜻한다면 두려움 때문에 익숙한 것들에 파묻혀 그것만 고수하는 사람은 자유가 없는 것이다!
습관적인 생활은 부분적으로 습득된 것이며, 대부분의 생활 영역에서 사회가 요구하는 바이기도 하다. 어릴 때부터 '하지 말아야 할 것'을 주입받았거나 까닭을 설명해주지도 않고 특정한 방식대로만 행동하도록 배웠다면, 우리의 사고는 유연성을 잃게 된다. 삶을 지루하게 만드는 습관이 있는가 하면 긍정적인 습관도 있다. 규칙적으로 운동하거나 매일 아침 명상하는 습관이 있다면 굳이 이를 계속해야 할지 고민할 필요는 없다. 이런 습관은 마음의 자유를 가로막는 내부의 적에 대항하는 데 도움이 된다. 이렇게 규칙적이고 의식적으로 하는 활동은 우리의 삶에 체계와 리듬을 잡아준다. 어떤 습관이 내 삶을 풍요롭게 만들고 지루하게 만드는지를 찾아내는 일은 각자의 몫이다.
그런데 우리의 삶이 습관에 지배당하고 있음을 아는 사람은 아주 드물다. 사람들은 늘 똑같은 방식으로 행동하는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인다. 다른 방법이나 가능성이 있다고는 생각하지 못한다. 자신이 무엇을 바라는지도 모른다면 익숙해진 습관, 오래된 행동 방식, 형식에만 치우친 사고를 어찌하기 어렵다. 우리는 다른 대안이 없기에 그런 태도를 고수한다. 나는 인생 코치로 일하면서 사람들이 현재 자신의 충동이나 욕구를 지나친 것으로 여기고 있음을 자주 보아왔다. 물론 습관의 뇌는 이러한 문제에 쉽게 대답해주지 않는다. 외부에서 들어오는 정보를 늘 같은 방식으로 처리할 뿐이다. 그래서 우리는 매일매일 활동하지만 늘 한정된 습관의 범위에만 머무르게 된다. 더불어 우리는 자신이 창의적이거나 자유롭다거나 행복하다고 느끼지 않는다. 지금 이 시점에서 자신의 개인적 욕구와 충동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보기를 권한다.
6. 아직도 남은 자유의 적들
마음의 균열은 마음속에서 갈등을 빚어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도록 만드는 상태다. 마음의 균열은 두려움이라는 감정처럼 우리가 자신의 한계에 가까이 다가섰고 미지의 세계로부터 위협받고 있음을 알리는 징후이다. 그러나 두려움은 우리가 직접 느끼고 반응할 수 있는 것이지만 마음의 균열은 알아차리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너무 걱정할 필요는 없다. 마음의 균열은 분열된 인격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알고 있는 아주 일반적인 현상이다. 우리는 내적으로 명확한 입장만 갖지 못하고 곧잘 마음이 분열되고는 한다. 이를테면 배고픔을 느끼는 동시에 살을 빼야 한다는 생각을 하고, 누군가에게 화가 나면서도 그를 부당하게 비판하는 태도는 경계한다. 여기에서 두 가지 입장 가운데 한쪽이 훨씬 강하다면 오래 고민할 필요 없이 그쪽을 선택하기 마련이겠지만, 그렇다고 반대쪽 입장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는 없다.
우리는 하나의 사안을 두고 진전이 없으면 대체로 이렇게 행동한다. 스스로를 더 압박하기! 가끔은 이것도 도움이 되지만 마음에 균열이 있을 경우에는 역효과를 낳을 수 있다. 말하자면 압박을 가한다고 해서 갈등이 해소되지는 않는다. 마음속에 있는 두 경쟁자를 중재해야 한다고 상상해보라. 그들에게 바로 화해하라고 강제로 요구할 것인가? 분명 아닐 것이다. 마음의 균열은 결정을 서두르라고 재촉하거나 압박을 가하지 말고 처리해야 한다.
자유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중독 현상은 오히려 자유 상실의 한 형태다! 알코올이나 니코틴에 의존하든 구매 행위나 게임에 의존하든, 중독은 어떤 경우라도 우리에게서 선택과 결정의 자유를 빼앗아간다. 흡연자들은 담배를 끊고 싶어도 그럴 수 없다고 말한다. 담배가 워낙 중독성이 강한 탓이다. 흡연자들은 담배에 불을 붙일지 말지를 스스로 결정하지 못한다. 이는 결정되는 것이다. 결국 우리의 자유의지는 소용없어지고 자신이 전혀 바라지 않는 행위를 지켜봐야만 한다. 그러나 중독이 정말 자유의지를 정복할 수 있을 만큼 막강한 괴물일까? 분명 중독은 상당 부분 잠재의식 차원에서 작용하는 무척 복잡한 현상이다. 그리고 중독에서 벗어나는 일이 결코 간단하다고 보지 않는다. 나 역시 한때 니코틴 중독이었기에 중독의 배반 행위에 대해서도 아주 잘 안다. 그러나 나는 인간이 지닌 결정의 자유가 이를 해결할 수 있다고 확신한다. 나는 중독을 결정의 자유에서 예외로 두어야 한다고 보지 않는다. 우리에게는 늘 선택의 자유가 있다. 오늘이나 내일, 대단히 무력하게 느껴지고 의욕이 없다 해도 괜찮다. 그러나 자신의 자유를 계속하여 포기하는 일은 자신에게 너무나 소중한 부분을 희생시키는 것이다!
7. 자유를 위한 감정 조절법
감정은 우리가 직감을 통해 빠르게 결정을 내리도록 도움을 준다. 가령 호랑이가 집 앞을 떡 버티고 선 상황에서 감정은 더욱 긴요하다. 우리 조상들은 수천 년이 넘도록 그렇게 감정과 직감에 기대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