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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을 디자인하라

이동산, 정주연 지음 | 두리미디어
이동산, 정주연 지음

두리미디어 / 2007년 10월 / 313쪽 / 15,000원

Prologue_ 왜 내 생각은 없는 걸까?

왜 생각이 어려울까? 정답을 찾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정답은 없습니다. 오직 각자의 논리가 있을 뿐입니다. 아뿔싸! 생각 자체가 없다고요? 정말이지 아무런 생각도 나지 않는다고요? 그럴 리 없습니다. 정리된 생각이 없을 뿐, 확고한 생각이 없을 뿐, 근거들이 부족할 뿐, 매끄러운 언어가 없을 뿐 우리들 모두에겐 숨겨둔 생각들이 많습니다. 심지어 모순으로 가득한 생각일지라도 모두에겐 숨겨둔 생각들이 많습니다. 생각의 조각 말입니다. 유식하게는 편린(片鱗)이라고도 합니다. 첫 번째 할 일은 생각의 조각을 꺼내어 놓는 일입니다. 그게 생각의 첫걸음입니다. 거기서부터 출발해야 합니다. 내 생각의 조각과 무관한 정답을 쫓지 말고, 나만의 조각을 거대한 하나의 그림으로 완성해 나가야 합니다. 그게 자기의 논리입니다. 그러니 정답 찾기는 그만해야 합니다. 그래야 생각이 쉬워집니다.



철학자 쇼펜하우어는 말했습니다. "스스로 생각하는 자는 자신의 의견을 먼저 정립한 후 비로소 이를 보증하고자 권위 있는 학설을 습득하여 그 의견을 보충한다. 반면에 '서적 철학자'는 타인의 권위에서 출발한 후 이들의 학설을 긁어모아 하나의 체계를 정리한다. 그러므로 타인으로부터 얻은 재료로 만들어진 철학이 인형이라면, 자신의 생각으로 만든 철학은 살아 있는 인간인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오직 자기 자신에게 집중해야 합니다. 각자의 내면에 잠재되어 있는 생각의 끄트머리를 잡아야 합니다. 자기 자신의 내면이 뭐냐고요? 그것을 어려운 말로 비전(Vision)이라고 합니다.



우리 모두에게는 각자의 비전이 있습니다. 각자가 오랫동안 관찰한 현실에 대한 관찰기록일 수도 있고, "아, 인간들 정말 싫다. 자기 이익만 챙기냐"라는 투정처럼 주변 인간을 관찰한 결과 얻은 인간관일 수도 있습니다. 혹은 "아, 내신 경쟁 정말 짜증난다!"라는 불평과 같은 현재 벌어지고 있는 작고 큰일들에 대한 판단일 수도 있습니다. 혹은 "정말이지 대학 따위는 사라졌으면 좋겠어!"라는 미래에 대한 전망과 소망일 수도 있고요. 아니면 "답답하다, 자유롭고 싶다!"라는 막연한 바람인 경우도 있습니다. 각자의 정제되지 않은 날것의 생각, 그게 비전입니다.



우리의 출발 지점은 딱 거기서부터 입니다. 혼란스런 각자의 비전을 명료하게 만드는 일에서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왜냐고요? 그런 각자의 비전이 논리를 만들어 내기 때문입니다. 그런 각자의 비전이 지식을 갈구하기 때문입니다. 반대의 경우는 없습니다. 논리가 비전을 만들지 않습니다. 지식이 비전을 만들지 않습니다. 그런 경우는 타인의 비전을 외우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경우가 바로 쇼펜하우어가 말한 서적 철학자가 아닐까요? 우린 오직 우리 자신의 비전으로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자기 자신의 비전을 발견하기만 한다면 논리와 지식 따위의 보조물들은 얼마든지 습득할 수 있습니다. 그래야만 쇼펜하우어가 말한 "스스로 생각하는 자"일 수 있습니다. 우리의 바라는 바인 우리의 비전을 스스로의 힘으로 획득해 봅시다. 그게 생각(논술)의 시작과 끝입니다.



비전의 갈등

인간을 믿기도 하고, 안 믿기도 하고

형식적 모순과 비논리의 이면에는 사실 우리 자신도 몰랐던 거대한 논리의 대립이 잠복해 있다. 상반되는 비전의 갈등! 이 장은 그것을 발견하는 과정이다. 아래는 총기 소유가 개인의 안전 보장을 위한 현실적인 대안이라고 생각하는 학생의 예시다. 부언하건데, 보편적인 글은 아니지만 상당수의 학생이 이와 유사한 주장을 펼친다. 총기 소유를 찬성하는 아래 글을 통해 주장 이면에 자리하고 있는 논리적 전제(다양한 세부 주장들을 관통하는 제일 근본적인 주장, 이 책에서는 비전(vision))가 무엇인지 알아보자.



현대 사회는 기술 혁신이 이뤄낸 컴퓨터· 텔레비전· 엠피쓰리· 엘리베이터 등으로 타인과 함께하는 생활이 줄어듦에 따라 점차 개인주의가 심해져 왔다. 이기주의라고 불릴 정도다. 이렇게 남을 배려하는 인식이 사라지고 있는 현대 사회에서 폭력 역시 심화되고 있다. 최근 들어 유괴나 연쇄 살인 등의 강력 범죄가 늘고 있는 현상이 대표적인 예시다. 조직폭력배의 증가 같은 문제도 마찬가지다. 어쩌면 인간의 본성 자체가 발현되는 것일 수도 있다. 그렇지만 이렇게 증가하는 폭력으로부터 개인들은 자신을 보호할 안전장치를 전혀 갖고 있지 못하다.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전기충격기조차 허락되지 않는다. 경찰은 늦장 출동을 밥 먹듯 해서 범죄로부터 개인을 전혀 보호하지 못하고 있다. 부유층은 여타 안전장치로 자신을 보호하고 있지만 그것을 설치할 수 없는 사람은 완전히 무방비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점을 미루어 보면 국가가 폭력으로부터 개인을 보호하는 것에는 한계가 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개인은 스스로를 강력한 범죄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총기를 소지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미국과 같은 선진국을 닮을 필요가 있다. 미국에서 총기 난사 사건이 많다고 하지만, 전체적인 범죄율은 한국보다 훨씬 낮다는 통계를 어디선가 본 적도 있다. 그러므로 미국처럼 개인들이 총기를 소유하여 자신을 보호하는 법률이 하루빨리 도입되어야 한다. 그렇게 된다면 범죄자들은 총기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더욱 적게 범죄를 저지를 것이다. 총기를 소유한 사람들이 함부로 사용하여 범죄가 높아지지 않을까 우려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누구나 총기를 가지고 있다면 총기에 대한 공포 때문에 함부로 사용하는 일은 발생하지 않을 것이다.



총기 소유가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주장의 이면에 자리하고 있는 논리적 전제는 두 가지다. 하나는 인간 본성에 대한 불신이다. '이기적'이라거나 '폭력적'이라며 인간 본성을 비판하는 대목이 논리의 첫출발이다. '이기적'이라고 이름 붙인 인간 본성에 대한 불신은 곧장 무기를 통해 자신의 안전을 지켜야겠다는 주장으로 이어진다. 게다가 총기 소유가 필요하다는 주장을 강조하기 위해 인간 본성에 대한 불신과는 다른 논리적 전개를 추가했다. 그것은 정부를 비롯한 공권력에 대한 강한 불신이다. 그리하여 강력한 정부가 이 문제의 해결을 하도록 하기보다 누구나 자유롭게 총기를 가질 수 있는 상태가 차라리 낫다는 결론에 이르게 되었다. 그러한 결론은 개인들이 자기를 보호하게 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총기 소유자 사이의 균형이 범죄를 줄여 줄 것이라는 낙관적인 기대로 이어지고 있다.

이 예시문에는 중대한 논리적 흠결이 숨어 있다. 쉽게 보이지 않지만 중대한 문제다. 이 예시문의 진짜 문제는 논리의 출발인 전제와, 논리의 결말인 대안 사이의 모순이다. 논리의 첫 출발은 분명 인간 본성에 대한 강한 불신이었다. 폭력이 난무하는 현실은 폭력을 사용해서라도 자신의 이익을 갖고자 하는 인간 본성 때문이었다. 하지만 결말에 이르러, 총기를 갖기만 하면 문제는 해결될 것이라고 낙관했다. 왜 반대의 결말은 추론하지 않았을까?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폭력'을 마구 휘두르는 인간들에게 총기도 허락했을 때 더 극단적인 문제가 발생할 것이라고는 왜 예상하지 않느냐 말이다. 총기 소유자 사이의 균형 때문이라고? 상대도 총기를 갖고 있다는 두려움 때문에 범죄를 함부로 저지르지 않을 거라고? 그러나 그렇게 되려면 인간들이 충분히 합리적이어야 하지 않나? 상대를 압도하기 위해 엄청난 무기를 구입해 무법천지의 사회를 만들 것이라는 가정을 왜 하지 않느냐는 말이다. 만일 그렇다면, 인간 본성에 대한 강한 불신은 인간 본성에 대한 느슨한 낙관으로 비약했다고 봐야 한다. 우리들은 늘 이런 식이다. 늘 인간 본성에 대한 비관과 인간 본성에 대한 낙관을 교차한다. 비관하다 낙관하고, 낙관하다 비관한다. 이와 같은 모순은 도처에서 발견할 수 있다. 사회를 이기적인 인간들의 경쟁사회라고 가정하면서도 "부자들은 사회에 환원해야 한다"라는 주장을 무작정 나열할 때, '이기적인 인간'에 대한 불신은 '이타적인 인간'에 대한 낙관으로 비약한다. 국제 관계를 이기적인 국가들의 경쟁 사회라고 생각하고 강대국이 되어야겠다는 열망에 사로잡혀 있으면서도 강대국의 아량 따위를 기대할 때, '이기적인 국가'는 '이타적인 국가'로 비약한다.



특히, 함부로 교차하는 결과나 부자나 강대국과 같은 강자의 선함에 대한 낙관이란 점은 이 문제가 논리적 오류 이상임을 암시한다. 예를 들면, 우리들 대부분은 이라크나 북한과 같은 나라들이 핵무기를 보유하는 것에 대해서는 국제 사회의 평화를 깨뜨리는 사악한 행위라고 비판하면서도 미국의 핵무기 보유에 대해서는 침묵하거나 세계 평화를 위한 불가피한 방식이라고 말한다. 요컨대 강자 예외주의로 이름 붙일 수 있는 이런 주장은 무책임하다. 당연히 약자가 입을 피해를 방치하거나 강자에게 복종한다는 비판에 직면할 수밖에 없다. 총기소유를 찬성하는 앞의 글 역시 마찬가지다. 이기적이고 불합리한 인간들이 난무하는 현실이 당신의 경험과 관찰이라면 그것을 탓할 수는 없겠지만, 개인들이 총을 갖기만 하면 갑자기 합리적인 인간으로 돌변할 것이라고 믿어 버리는 주장 또한 무책임하다고 비판받아야 한다. 총을 가진 인간이 더욱더 탐욕스런 인간으로 진화해 버린다면 "그때 발생하는 피해는 어쩔 수 없다"라는 주장과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니, 부디 자신의 첫 발걸음과 마지막 발걸음을 재차 확인하시길.



결국 우리는 핵심에 다다랐다. 핵심은 인간 일반에 대한 불신과 강자를 포함한 인간 일반에 대한 신뢰라는 모순이다. 이기적인 인간으로 출발했다면 이기적인 인간으로 끝맺어야 하고, 이타적인 인간으로 시작했다면 이타적인 인간으로 끝맺어야 한다. 그래야 단단한 글이 되지만, 그렇게 하지 않는다. 그래서 허약한 글이다. 출발은 명확하다. 모순되는 전제 가운데 하나를 버리고,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그런데 어느 것을 선택해야 할까? 정답은 없다. 오직 각자의 정답만 있을 뿐이다. 당연히 자신에게 물어야 한다. 인간은 충분히 선하고 합리적인지, 아니면 제도를 통해 엄격히 통제해야 할 만큼 악하고 이기적인지에 대해 자신에게 물어야 한다. 어느 쪽이든 자신의 경험과 관찰에 따른 선택이 필요하다. 역시 필요한 것은 당신의 인간에 대한 관점이다.



내 안의 논리 찾기

인간은 이기적이다 vs 인간은 이타적이다

이 장은 테스트를 통해 내 안에 숨은 '진짜 나'를 찾아보고, 테스트 유형에서 얻어진 결과에 따라 '나는 어떤 유형인지', 진짜 자기에 근접한 자신에 맞서는 시간이다. 자기 발견 테스트의 목적은 각자의 인간관(人間觀)을 확인하기 위한 과정이다. 크게는 이타적인 인간과 이기적인 인간으로 구분할 수 있지만, 그 사이에는 무시할 수 없는 많은 관점이 존재한다. 어느 관점이든 각자의 관점이란 점이 중요하다. 정답은 없다. 당연히 솔직하면 할수록 자기 내면의 인간관을 잘 들여다볼 수 있다. 이 실험이 중요한 까닭은 각자의 인간관에 따라 삶의 방식과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자기발견 테스트 A : Who Am I ?

당신은 난파된 타이타닉호에서 생존한 열두 명 중 한 사람이다. 당신은 13인용 구명보트에 타고 있다. 구조 신호는 보냈고, 구호선이 일주일 후쯤 도착할 예정이다. 식량은 구조되기까지 필요한 양보다 상당히 모자란다. 모두가 간신히 한 끼를 먹을 정도다. 그런데!! 새로운 생존자가 물속에서 살려달라고 애원하고 있다. "제발 날 좀 구해 주세요!!" 선뜻 구해주고 싶다. 구해주는 게 인간의 도리다. 그런데 구해 주면 여분의 식량을 나누어주어야 한다. 일찌감치 '싸가지' 없는 일은 도맡아 하던 김씨가 말을 꺼낸다. "동정심 따윈 집어치워. 현실적으로 생각하라고! 그냥 지나가면 안 되나?"



Check

1. 당연히 도와야죠! 그렇게 내버려두고 음식이 목구멍으로 넘어가겠어요? 조금만 나누면 되는데 그렇지 않으려는 사람은 지독히 이기적인 거죠! 좀 늦게 오면 그만큼 쪼개 먹으면 되죠. 그 정도의 위험은 감수해야 해요.

2. 음, 도와주는 게 좋은 일이지만, 근데 구조선이 일주일 뒤에 온다고 어떻게 확신하지? 만일 늦게 오면 우리는 위험에 처할 수도 있잖아요. 그러니 좀 야박하지만 김 씨의 말을 따르는 게 합리적이지 않나요? 불쌍하지만 그냥 지나쳐야 할 듯.



자기 발견 테스트 B : 정말이니 ?

당신은 비시각장애인이다. 그리고 당신은 안마사의 자질을 타고났다. 하루라도 안마를 하지 않으면 손가락에 가시가 돋는다. 정말이지 안마는 내 천성이다. 그런데!! 시각장애인들만 안마사를 할 수 있는 법령이 당신의 천성을 가로막고 있다. 법령의 취지는 시각장애인을 사회적 약자로 규정하고, 이들의 삶이 곤궁하지 않게 도울 수 있는 안전장치로 안마사라는 직업에 대한 독점적 권리를 보장해 준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건 남의 일인 경우다. 당신은 "나도 먹고살아야 한다. 사실 내 천성이라고 했지만, 그것보다 중요한 것은 배운 것도 없고 가진 기술도 없는 나는 안마 외에 특별히 잘하는 일도 없다. 그래서 이 법령의 폐지를 위해 노력해야 한다"라고 생각한다.

Check

1. 안마사 자질을 타고났다면 그 직업을 갖는 게 좋겠지만, 다른 일을 구할 수도 있지 않나? 현실을 둘러봐! 시각장애인이 할 수 있는 일은 별로 없다니까. 내가 양보하는 게 나을 것 같다. 2. 실업률을 좀 보라구. 나도 할 일이 없어. 막노동이라도 하면 할 수 있겠지만 내가 왜 그래야 하지? 먹고사는 문제는 누구나 중요한데, 양보할 수 없어.



자기 발견 테스트 C : 정말 그럴까 ?

수행 평가 시즌이다. 이번 수행 평가는 모듬별 평가다. 유적을 답사하고 보고서를 작성해야 한다. 아이들 모두 필사적이다. 내신 상대평가가 도입된 이후로 모두들 내신 점수 1점에 '목숨 걸고' 있다. 당연히 열심히 해야 한다. 하지만, 조원 구성이 영 마음에 들지 않는다. 항상 K가 문제다. 철수· 영철· 영신이 모두 훌륭하지는 않지만, 뭐 각자의 몫은 한다. K는 도대체 할 줄 아는 게 없다. 담임에게 빼 달라고 말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다. K가 불쌍하지 않느냐고? 내 알 바 아니다. 수행 평가 점수가 몇 점인 줄 아나? 한 번 망하면 복구가 진짜 어렵다. 일단 내가 살고 봐야 하지 않냐 말이다. Check

1. 아, 이건 아니다. 누군가를 희생시켜서 내가 이익을 얻어야 한다면 차라리 난 얻지 않겠다. 어떻게든 K와 잘해 보겠다. 잘 되지 않더라도 이런 식으로 점수 얻고 싶지는 않다.

2. 어쩔 수 없지 않나? K의 무능력을 내가 책임질 이유는 없다고 생각한다. 이런 꼴 당하지 않기 위해 K는 열심히 했어야 하지 않나? 내 책임이 아니다. K의 무능력 탓이다.



결국, 우리는 중요한 사실을 확인했다. 세 가지의 생각 실험을 거치면서 다종다양한 소재들에서 비교적 일관된 주장을 하게 만드는 가장 강력한 원천은 각각의 소재들에 있는 정보와 지식이 아니라 그것들과 전혀 무관한 '인간 일반에 관한 관점'이라는 점을 확인했다. 인간에 대한 비전 말이다. 자신과 타인의 인간 본성을 이타적이라고 가정하는지, 혹은 이기적이라고 가정하는지에 따라 세부 주장들은 현격하게 달라진다. 실제로 그렇다. 당신을 포함하여 어려운 공부를 하는 대학교수에서부터, 중요한 정책을 결정하는 정부 관료와 국회의원에 이르기까지 자신과 타인의 인간 본성을 어떻게 가정하는지에 따라서 세상을 대하는 태도에 결정적인 차이를 보이게 된다. 인류학적 상상 혹은 인간상이라고도 불리는 인간에 대한 각자의 관점과 인간에 대한 비전은 그래서 중요하다.



그러나 다섯 개의 고정 관념을 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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