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기 두려운 메디컬 스캔들
베르너 바르텐스 지음 | 알마
읽기 두려운 메디컬 스캔들
베르너 바르텐스 지음
알마 / 2008년 2월 / 272쪽 / 13,500원
1장 진료 시간
환자를 기막히게 하는 말들
의사들이 내뱉는 의학적 상투어를 포함한 모든 말이 환자의 말문을 막히게 하거나 그들의 마음을 상하게 하거나 모욕한다고는 할 수 없다. 하지만 수많은 사람들이 의사에게서 이 같은 경험을 한다.
23세에 첫 아이를 출산한 부인이 6년 후 정기검진을 받기 위해 부인과를 찾았다. 검사가 끝나자 여의사가 말했다. "부인의 골반저는 해먹처럼 축 처졌네요. 좋은 상태가 아니에요." 부인은 의사의 표현에 당황스러우면서 화가 치밀었다. 여의사의 말이 그녀의 마음을 상하게 한 것이다. 의사는 이야기를 계속했다. "치료를 하지 않으면, 요실금이 오거나 자궁탈출증의 위험이 있어요." 그녀는 상담을 하고 싶었지만 여의사는 다른 얘기를 하고 있었다. "부인은 운동을 해야 합니다. 이 책을 추천해드리겠습니다. 이 책에 적혀 있는 대로 하세요." 여의사는 곧바로 작별의 악수를 청하며 부인을 문으로 안내했다. 사실 젊은 부인은 많은 것을 묻고 싶었다. 병원을 나오자마자 부인은 서점으로 가서 책을 샀다. 그녀는 자동차 문을 열었을 때야 비로소 스스로에게 물었다. "도대체 이게 무슨 꼴이야?"
2장 환자 길들이기
15분의 여유
응급실에 환자가 실려 왔다는 보고가 올라올 때마다 의사는 느긋하게 대처한다. 그는 커피를 타고, 전화통화를 하고, 신문을 읽고, 전문 서적에 몰두한다. 응급실의 호출에 의사는 늘 이런 식으로 반응한다. 사실 의사가 환자를 기다리게 하는 것은 환자를 길들이기 위해서이기도 하다. "난 환자를 최소한 15분은 기다리게 하지. 그러면 환자는 의사에 대해 더 큰 존경심을 품게 되거든," 내 동료인 그는 자랑스럽게 말했다. 그의 가치관에 따르면 환자는 그저 성가신 존재일 뿐이었다. 환자는 오로지 그를 화나게 하고, 그의 삶을 힘들게 하기 위해 존재했다. "환자만 없었다면 의학은 훌륭한 학문이었을지도 몰라." 동료는 이렇게 말하곤 했다.
그는 위급한 환자를 치료하기 위해 하던 일을 그만두고 연구실을 나올 때마다 굉장히 격분했다. 혹시 자신이 야근하는 동안 부득이하게 병실이나 응급실에 들러야 할 일이 생기면 그런 상황을 초래한 환자나 신참 의사에게까지 불쾌감을 표시했다. 환자들은 이미 성가신 존재였다. 하지만 그에게 더 성가신 존재는 환자의 가족들이었다. 그들은 자신들이 의사의 시간을 빼앗으며 매번 똑같은 질문만 해대는 것을 알지 못했고, 알고 싶어 하지도 않았다. 환자의 가족들은 어째서 그들의 소중한 사람이 이런 중병에 걸렸는지, 그리고 다시 건강해질 수는 있는지 - 무엇보다 언제 완쾌되는지 - 묻곤 했다.
3장 수치심의 경계너머
수녀의 눈물
원래 그(방사선 전문의)의 성품은 순했다. 항상 환자들에게 친절하고 쾌활했다. 자기가 환자보다 우월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는 농담도 잘했다. 어느 날 아침 50대 후반의 수녀가 방사선과를 찾았다. 수녀가 계속된 복통을 호소하고 대변에 피가 섞여 나온다고 하자 그녀의 주치의가 큰 병원으로 보낸 것이었다. 환자는 '대장 조영촬영'을 해야 했다. 굉장히 부담스러운 촬영이었다. 수녀는 러닝셔츠만 입은 채 우리 앞에 섰고, 수줍어하며 몸을 돌렸다. 물론 수녀가 부끄러워했음은 말할 것도 없다. 방사선 전문의는 수녀의 직장에 존데(관 모양의 의료기구)를 삽입하고 신중하게 조영제를 투여했다. 의사는 환자에게 견딜 만한지 계속 물어보았다. "네, 네. 괜찮아요. 세 끼는 더 먹은 것 같아요. 조이는 느낌이 드네요! 금방 배가 터질 것 같아요." 수녀가 대답했다.
잠시 후 그녀의 대장이 화면에 나타났다. 장은 모두 정상이었다. 수녀는 두세 번 몸을 돌려야 했는데, 바로 그때 그 일이 터졌다. 수녀가 자기도 모르게 몇 차례 방귀를 뀌어버린 것이다. 수녀는 너무 창피해서 땅속에 숨어버리고 싶었다. 자신의 직장에 관이 삽입될 때보다 훨씬 수치스러웠다. 그러나 그것은 전초전에 불과했다. 검사가 끝나자 쉴 새 없이 방귀가 나오기 시작했던 것이다. 수녀는 엄청난 장압에 대항하여 헛된 싸움을 시작했다.
방사선과 전문의가 그녀에게 수건을 건넸다. 수녀는 수건을 받아 재빨리 엉덩이를 감쌌다. 그러나 수건은 엉덩이를 가리기에는 너무 작았다. 다시 방귀가 나오기 시작했고 그녀의 항문에서는 끈적끈적한 하얀 조영제가 뚝뚝 떨어졌다. 수녀는 당장 땅속에라도 꺼져버리고 싶었다. 하지만 어디로 가야하지? 방사선과 전문의는 불쾌하겠지만 정상적인 일이라고, 다른 환자들도 모두 겪는 일이라고 수녀를 위로했다. 그리고 결코 부끄러워할 일이 아니라는 말도 덧붙였다. 의사는 수녀를 진정시키려고 할 뿐 그녀의 알몸을 가려줄 생각은 하지 못했다. 수녀는 재빨리 복도를 지나갔다.
수녀는 러닝셔츠 차림이었기 때문에 복도에 있는 사람들이 그의 다리에 묻어 있는 하얀 약물을 볼 수 있었다. 게다가 허리에 두른 수건 사이로 그녀의 엉덩이와 허벅지도 흘깃 볼 수 있었다. 수녀는 뭔가를 걸치고 싶었지만 '자연 상태'로 난관을 뚫고 지나갈 수밖에 없었다. 검사 전 주입한 조영제와 공기가 끊임없이 새어나오며 수녀를 괴롭혔다. 수녀는 무력감과 굴욕감을 느꼈다. 방사선과 전문의가 고의로 수녀를 웃음거리로 만든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의사는 그녀의 체면이 손상되지 않도록 신경을 써주거나 낯선 상황과 마주친 그녀를 좀 더 세심하게 보호해줘야 한다는 생각을 전혀 하지 못했다. 그럴 때에는 커다란 수건이나 칸막이만으로도 환자의 수치심을 덜어줄 수 있다. 이런 작은 배려가 환자를 난감한 상황에서 구해주는 것이다. 환자들은 알몸 상태에서도 존중받아야 한다.
수녀는 탈의실에 숨어 울음을 터뜨렸다. 나는 그녀가 괜찮은지 확인하기 위해 탈의실 문을 노크했다. 수녀는 옷을 갈아입고 의자에 플라스틱 의자에 웅크리고 앉아 흐느끼고 있었다. 그녀는 격분한 표정으로 날 노려보았다. 지금까지 그런 표정은 본 적이 없었다. 더구나 수녀가 그런 표정을 지으리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이런, 몰인정한 인간들 같으니라고! 이런!" 그녀가 씩씩거리며 말했다. 수녀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내 곁을 지나가 버렸다. 자신의 사진도 챙기지 않고 사라져버린 것이다.
4장 누가 이들 좀 말려줘요
자업자득
우리 과장 의사는 규율을 지키지 않는 사람을 경멸했다. 그를 화나게 하는 것은 '태만'이었다. 너무 뚱뚱하거나 술, 담배를 많이 하는 환자들은 혐오대상이었다. 이런 과장 의사의 눈에 뛴 사람은 술과 담배 때문에 식도암에 걸린 세르비아 출신의 남자 환자였다. 과장 의사는 환자의 병이 자업자득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환자가 몇 년 안에 죽을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었다. 환자의 상태는 좋지 않았다. 환자는 자신이 곧 죽을 것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매일 회진을 돌 때마다 우리는 그에게 용기의 말을 전하거나 어떻게든 그의 기분을 풀어주려고 애썼다.
그날도 우리는 회진을 하고 있었다. 회진을 돌던 과장 의사는 세르비아 환자의 병실에 도착했다. 신참 의사가 차트를 꺼내들었다. "다른 환자의 차트만 있으면 돼!" 과장이 말했다. 다른 환자란 옆 침대에 있는 경찰을 의미했다. 과장 의사는 세르비아 환자에게 눈길 한 번 주지 않았다. 그를 무시함으로써 벌을 준 것이다. 이번 회진에서 눈길 한 번 받지 못한 세르비아인은 애절한 눈빛으로 우리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과장 의사는 병실을 떠나며 "어차피 가망 없는 환자야. 들여다 볼 가치도 없다고"라고 말했을 뿐이다. 의사의 시선에 그렇게 심한 경멸과 혐오가 담긴 것은 처음 보았다.
며칠 후 세르비아인은 다른 병원으로 이송되었다. 우리는 그런 절차가 그렇게 빨리 이루어진 것에 경악했다. 과장 의사가 그 끔찍한 인간을 더 이상 보고 싶어 하지 않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5장 동정 없는 의학
다용도실에 버려진 환자
의사와 간호사들은 그 여자 환자가 여전히 일반 병실에 있다는 게 견딜 수가 없었다. 그들은 그 환자를 더 이상 돌보고 싶지 않았다. 죽음을 앞둔 그녀에게는 모든 치료가 헛수고였던 것이다. 환자를 찾아오는 방문객은 거의 없었다. 옛 이웃이 딱 한 번 찾아온 적이 있었다. 환자의 외동딸은 영국에 살고 있었다. 딸은 4주 전 엄마가 입원했을 때 딱 한 번 방문했을 뿐이다. 결국 환자는 병실을 비워줘야만 했다. 의사들은 죽음을 앞둔 환자를 매일 진료할 필요가 없었다. 의사들은 그녀를 다른 환자들과 똑같이 대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의사들이 환자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일주일에 한 번 회진을 도는 과장은 그녀에게 뭘 해줄 수 있을까? 과장에게 그것은 자신의 능력과 시간을 낭비하는 것이었다. 그는 자기가 더 이상 도울 수 없는 환자들과 대면하는 것을 불쾌하게 여겼다. 과장의 좌우명은 "치료하고, 증세를 완화시키고, 도와주자"이지 "죽게 두자"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8번 병실은 다음 날 오전 회진이 끝난 뒤 비워졌다. 환자는 침대에 누운 채 간호사들에 의해 다용도실로 보내졌다. 환자의 차트는 환자의 발치에 놓여 있었다. 복도를 이동해가는 환자의 눈빛은 절망적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우리의 착각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녀가 문득 눈을 부릅뜰 때면 우리는 그녀의 표정에서 많은 것을 읽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다용도실의 문이 닫히자 의사들과 간호사들은 그녀로부터 확실하게 해방되었다. 그 환자는 더 이상 우리의 일과에 포함되지 않았다.
물론 다용도실에 있는 환자에게 계속 식사를 제공했고, 환자용 변기에 앉을 수 있도록 도움도 주었다. 하지만 간호사들도 죽어가는 환자가 있는 다용도실을 피하기는 마찬가지였다. 단지 임시 간병인만이 규칙적으로 이 노부인을 찾아갔다. 그녀는 누구나 겪을 수 있는 비상 상황에 도움을 주기 위해 모집된 여자였다. 환자는 복도 너머에 있는 골방으로 보내진 지 4일 만에 죽었다. 그날은 과장이 회진을 도는 날이었다. 과장이 물었다. "그녀는 갔나?" "네, 그녀는 갔습니다. 영원히."
6장 환자들의 서열
환자들이 원하는 것
친구는 소위 '좀 배웠다는 사람들'이 살고 있는 지역의 일반 내과의였다. 그의 병원을 찾는 환자들은 친구가 "조금 더 봐드릴까요?"라고 물으면 몹시 기뻐했다. 그 친구가 내건 의료 서비스들은 보험금을 지불하지 않는 것뿐이었다. 그의 의료 서비스는 환자의 돈주머니를 털어 병원 금고를 채우는 것들이었다. 친구는 '생명공명요법'을 썼다. 모든 핵심어를 포함하는 이 요법은 자칭 좀 배웠다는 사람들을 사로잡았다. '생체'라는 단어는 왠지 멋지게 들렸고, '공명'이라는 단어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수많은 연구에도 불구하고 그 효과는 증명되지 않았다.
그의 병원에서 실시하는 다른 서비스들 역시 학문적으로 검증되지 않은 것들이었다. 순수한 돈벌이일 뿐. 한 봉지에 300유로 하는 의약품이든, 병원 한쪽의 건강관리실에서 파는 약초와 엑기스 혼합물 -친구가 직접 제조한 것이었다- 이든 돈벌이용이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이 서비스가 병을 낫게 한다거나 건강을 지켜준다는 증거는 부족했다. 친구가 제공하는 가장 심각한 의료 서비스는 이른바 항노화 검사였다. 이 검사를 위해 다수의 불필요한 혈액 검사가 이루어졌다. 사실 그가 언급하는 성분들은 모든 사람의 혈액에 이미 존재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환자들은 이런 성분들을 언급하기만 하면 굉장히 깊은 인상을 받는다. 하지만 이런 검사는 굉장히 비전문적인 것이다.
나는 친구에게 그런 엉터리 치료를 하면서 아무런 문제가 없었는지 물었다. 그는 "학문적으로 검증된 바가 없다는 건 알아. 하지만 환자들이 그런 치료를 원하는 걸." 또한 그는 환자들이 건강을 위해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것이 더 잘못이라고 했다. "난 나를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완벽하게 봉사하고 있다구." 어쨌든 그는 건강을 원하는 사람들이 필요로 하는 다양한 검사들을 모아놓았다. 또한 그는 자신의 전공과는 아무 상관도 없는 미용 관련 의료 영역으로까지 발을 넓혀, 화장품에 대한 피부 적합성 테스트, 남자들의 탈모 치료, 피부 관리도 해주고 있었다. 그의 의료 서비스에는 대안 치료와 침술까지 포함되어 있었다. 그 후 나는 그 친구를 만나지 않았다. 그저 다른 친구들을 통해 그가 아주 돈벌이가 좋다는 소문만 들었을 뿐이다.
7장 위험과 부작용
사냥꾼 또는 수집가
우리 과의 수석의의 취미는 희귀한 증후군을 연구하는 것이었다. 그의 가장 큰 목표는 자신의 이름을 의학 서적에 새기는 것이었다. 물론 그러기 위해서는 제물이 필요했다. 얼마 후 우리는 그 제물이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오후 회의 시간에 수석의는 53세 남자의 사례에 대해 설명했다. 마침 과장 의사는 부재중이었다. 그 환자는 복부에 작은 종양이 있었다. 수석의는 환자가 어떤 암에 걸렸는지 정확히 알지도 못하면서 진찰 결과 환자가 심각하지 않다고 말했다. 그리고는 자신이 추천하는 치료법에 대해 설명한 뒤 당장 치료에 나서지 않을 거라고 말했다.
나는 이해가 되지 않아 노련한 주임 의사에게 물었다. "그래도 수술을 받아야 하지 않을까요?" 그는 심술궂은 미소를 지었다. "물론 당연히 모든 치료법을 시도해봐야지." "그렇다면 왜 그러지 않겠다는 거죠?" 나는 당황해서 물었다. "자네도 수석의가 어떤 사람인지 알고 있잖나. 환자를 잠시 치료하지 않고 내버려두면 병의 경과를 훨씬 더 잘 살펴볼 수 있지. 게다가 저 환자는 희귀 증후군에 걸린 걸 수도 있고." 여전히 이해하기가 힘들었다. 그는 더 노골적으로 말했다. "일단은 환자를 방치해놓는 거야. 그러면 나중에 논문에 저 환자의 사례를 충분히 인용할 수 있겠지." 다행히도 환자는 며칠 후에 꼭 필요한 치료를 받았다. 나와 마찬가지로 다른 의사들도 당분간 치료하지 말라는 수석의의 지시에 당황했다. 결국 그들은 과장 의사에게 이 사실을 알렸고, 과장 의사는 즉시 환자를 치료하라고 지시했던 것이다.
내게 불안의 노래를 불러다오
나는 병원에서 시행하는 건강검진에서 흉곽 X선 촬영을 했다. X선 촬영을 했다는 사실 조차 잊고 있는데 집으로 편지가 한 통 배달되었다. X선 사진에 이상이 발견되었다며 재검사를 받으라는 내용이었다. 불안했다. 결핵? 암일까? 이렇게 금요일에 편지가 도착하면 고민하며 주말을 보내게 된다. 의사들은 병원이 인간에게 두려움을 줄 수 있는 특수한 곳이라는 사실을 잊는다. 만약 그 편지의 내용이 위협적인 것이 아니라 단지 재검을 권유하는 것일지라도 불안하기는 마찬가지다.
나는 월요일 아침이 되자마자 방사선과로 갔다. 수석의가 재검사를 권유하는 것은 첫 번째 사진과 두 번째 사진을 비교하기 위해서였다. 완벽을 기하기 위해, 그리고 나를 안심시키기 위해서라고 의사가 말했다. 하지만 의사는 나를 안심시키기는커녕 오히려 불안하고 걱정스럽게 만들었다. 설령 두 번째 촬영으로 아무 이상이 발견되지 않을지라도 말이다. 나는 회의적이었고, 뭔가 미심쩍었다. 어쩌면 이 방사선 전문의가 재검을 요구한 이유는 자신의 연구 논문 때문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머리를 스쳐 지나갔다. 방사선 전문의가 동료에게까지 이런 불안감을 유발하고, 거기다 불필요한 재검까지 요구한다면 도대체 의사가 아닌 환자들에게는 어떻게 할까?
8장 삶과 죽음의 갈림길
목숨을 건 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