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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자들의 자녀교육

방현철 지음 | 이콘
빌 게이츠의 아버지는'부자 아빠'



21세기의 세계 최고 부호인 빌 게이츠는 '부자' 부모 밑에서 자랐는데, 아버지는 잘나가는 변호사였고 어머니는 은행장의 딸이었다. 따라서 빌 게이츠의 어린 시절은 '고생'과는 거리가 먼 것이었다. 부모의 돈으로 비싼 사립 중고등학교를 다녔고, 남들보다 먼저 컴퓨터에 접할 수 있었다. 그리고 미국 최고의 명문 대학인 하버드 대학에 입학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는 과감하게 대학을 중간에 그만두고, 사업의 길로 들어서 큰돈을 벌었다.



세계적인 주간지 타임은 빌 게이츠의 개인 생활을 커버스토리로 다루면서 그의 성격 분석을 통해 빌 게이츠의 성공 요인을 네 가지로 정리한 적이 있는데, 똑똑함, 추진력, 경쟁력, 집중력이 그것이다. 이런 성공 요인을 갖추기 위해서는 빌 게이츠 스스로의 노력도 중요했지만, 무엇보다도 어린 시절 성격의 틀을 잡아준 부모의 역할이 더 중요해 보인다. '부자 아빠'는 어린 빌 게이츠에게 삶의 무기로 어떤 것을 쥐어주었을까? 자세히 살펴보자.



빌 게이츠는 강연 중 청중이나 인터뷰 중인 기자가 "자신의 역할 모델이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하면, 서슴없이 "부모님"이라고 대답했는데, 빌 게이츠가 기억하는 부모의 모습은 '지식의 보고'였다. 다시 말하면 그의 부모는 정보의 보고인 책을 가깝게 여기고, 독서광이 되도록 빌 게이츠를 이끌어주었다고 할 수 있다. 그는 "자라나면서 부모님은 항상 내가 많이 읽고 다양한 주제에 대해 생각하도록 격려했다. 우리는 책에 관한 것부터 정치까지 모든 주제에 대해서 토론했다"고 회상하고 있다.



독서광과 부자는 얼핏 보면 연관성을 찾기 어려울 수도 있지만, 대다수의 부자들은 엄청난 독서광이다. 책을 읽는 것은 정보를 흡수하는 수단이기도 하지만, 집중력을 훈련하는 데도 도움이 된다. 빌 게이츠는 어른이 돼서도 정기적으로 책 읽는 습관을 유지하고 있는데, 그는 "내 아이들에게 당연히 컴퓨터를 사줄 것이다. 하지만 그보다 먼저 책을 사줄 것이다"고 말한 적도 있다. 왜냐하면 컴퓨터와 인터넷, 오디오와 비디오가 정보의 유통 통로를 풍부하게 만들었지만, 글쓰기와 글 읽기보다 정보를 더 효율적으로 생산하고 소비할 수 있는 도구를 인류가 만들어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빌 게이츠의 아버지인 윌리엄 게이츠가 아이들을 키우던 1950~1960년대 미국의 아버지들은 지금 한국의 많은 아버지들처럼 하루 종일 회사 일에 얽매여 있다가, 집에 와서는 자녀들에게 지시만 하는 엄한 권위를 과시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지만 윌리엄 게이츠는 달랐다. 자신이 일하면서 경험했던 내용을 자녀들과 대화하면서 나누고 아이들의 말에도 귀를 기울였다. 이 과정에서 자녀들은 스스로 독립된 인격체라는 인식을 가지게 됐고, 인생을 개척할 수 있는 힘을 얻었다. 그리고 빌 게이츠의 경쟁에서 이기려는 승부 근성은 경쟁과 게임을 즐기는 가족 분위기에서 비롯됐다고 할 수 있는데, 빌 게이츠의 집안은 매주 일요일이면 온 가족이 모여 카드 게임과 암호 맞추기 등의 게임을 했다고 한다. 아버지 윌리엄 게이츠는 타임지와의 인터뷰에서 "게임은 그냥 장난으로 한 게 아니었다. 언제나 누가 이기느냐가 중요했다"며 '경쟁'이 집안의 분위기였다고 묘사했다.



한편 아버지의 영향으로 비즈니스에 대해 일찍 눈을 뜬 빌 게이츠는 중고등학교에 다니면서 자신이 좋아하는 컴퓨터를 이용해서 돈을 벌 생각을 하게 된다. 빌 게이츠는 친구인 폴 앨런, 켈트 에번스 등과 함께 '레이크사이드 프로그래머즈 그룹'을 결성한다. 그룹의 목적은 돈을 버는 것이었다. 이들은 시애틀에 있는 중소기업 컴퓨터의 문제점을 찾아주거나 급여 계산 프로그램을 만들어주는 등의 일을 했다. 당시에 그들에게 일을 시킨 회사들은 그들을 만나기 전까지 중학교 2~3학년 학생들인지 몰랐다고 한다. 이미 중고등학교 때부터 비즈니스의 세계에서 단련된 그는 학교를 다닐 때 친구와 교사들에게 "20번 째 생일이 되기 전에 백만장자가 될 것"이라는 말을 자주 했다고 한다.



참고로 빌 게이츠의 아버지 윌리엄 게이츠는 "자녀에게 엄청난 재산을 물려주는 부모는 결국은 자녀의 재능과 에너지를 죽이는 것이다. 재산을 물려주지 않는다면 자녀들은 더 유용하고 더 가치 있는 삶을 영위할 기회를 누릴 수 있을 것이다."라는 19세기 철강왕 앤드류 카네기의 경구를 자주 인용하곤 했다. 즉 빌 게이츠의 아버지는 재산이라는 '물고기'를 물려주는 대신 '물고기를 잡는 그물'인 스스로 돈을 버는 방법을 가르치려고 했던 것이다. 아들 빌 게이츠는 아버지의 뜻을 이어받아 자신의 자녀들에게 앞으로 살아가는 데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1,000만 달러(95억 원, 빌 게이츠의 전체 자산의 0.02%에 불과함)만 물려주고 나머지는 사회에 환원하겠다고 선언했다. 아무튼 빌 게이츠의 부모가 자녀에게 쥐어준 무기는 학교의 명패가 아니라, 부모에게 의존하지 않고 독립적으로 살아가는 능력, 경쟁 사회에서 필요한 의지와 끈기, 정보를 습득하는 습관, 비즈니스 마인드 등이었다.

기부 가족을 만든 워런 버핏의 자녀교육



2006년 6월 26일 세계 2위의 부자 아버지 워런 버핏은 세 자녀에게 "아버지는 남을 돕는 데 열심인 세 아이(수전, 하워드, 피터)를 둔 걸 행운이라고 생각한다. 아버지는 너희가 하는 일이 자랑스럽다."로 끝맺음하는 편지를 각각 한 통씩 썼다. 편지 내용의 골자는 세 자녀가 각각 운영하고 있는 자선단체들에 자신이 살아 있는 동안 매년 5,000만 달러(약 475억 원) 상당의 주식을 기부하겠다는 것이었다. 워런 버핏은 자신이 죽을 때 많은 재산을 자녀에게 남기지 않겠다고 공언하고 있는 부자 중의 한 명이다. 하지만 그가 많은 재산을 남기지 않겠다는 것은 자녀들을 거지처럼 만들겠다는 뜻은 아니다. 자녀들이 아버지 재산에 기대지 않고 독립적인 삶을 영유할 수 있는 사람으로 키우겠다는 의지의 표현인 것이다. 그는 1986년 포천 지와의 인터뷰에서 "진짜 부자는 자녀에게 무언가 일을 해야 할 정도의 재산을 남기지,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충분할 재산을 남기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그의 자녀들은 아버지의 돈을 맡아서 기부하는 데 쓸 수 있다는 사실에 큰 의미를 두고 있었다. 세 자녀에게 기부 계획을 알리는 편지를 쓰던 그날, 워런 버핏은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할 편지 한 통을 더 썼다. 그 편지의 수신자는 세계 최고의 부자 빌 게이츠였는데, 빌 게이츠가 세운 세계 최대의 자선단체인 '빌 앤드 멜린다 게이츠 재단'에 자신이 살아 있는 동안 매년 소유한 주식의 5%를 기부하겠다는 내용이었다. 기부 약정 액수로 보면 빌 게이츠가 이제까지 약정한 돈(약 280억 달러)을 넘어서는 것으로 역사상으로 따져도 가장 많은 기부액이다. 워런 버핏의 자녀들은 서운한 생각이 들 수도 있었겠지만, 담담한 반응을 보였다. 큰아들 하워드 버핏은 "빌 게이츠는 전 세계를 대상으로 여러 가지 사업을 하면서 이미 준비된 사람이다. 그는 막대한 재산을 다룰 준비가 돼 있다"고 말했다. 그들에게 있어 아버지의 기부 계획은 놀랍거나 이상한 것이 아니었다. 워런 버핏의 자녀들은 부모에게 기대지 말고 독립적으로 살아야 한다는 것을 계속해서 배워왔던 것이다. 워런 버핏은 자녀에게 많은 것을 주면서 통제하는 대신, 그들이 자유롭게 자신의 인생을 개척할 수 있게 했다.



큰아들 하워드 버핏이 기억하는 또 다른 아버지 워런 버핏의 모습은 전문 투자가의 모습이다. 워런 버핏은 사실에 기초해서 합리적인 판단 과정을 거쳐서만 투자 결정을 내렸는데, 워런 버핏은 자신의 투자 결정 과정을 어릴 때부터 지켜본 하워드 버핏이 자신의 투자 철학을 잘 계승할 것으로 믿고 있다. 그런데 워런 버핏에게 투자 방법을 터득하게 한 사람은 그의 아버지인 하워드 버핏(워런 버핏의 큰아들과 이름이 같다)이다. 워런 버핏의 아버지는 네브래스카 오마하의 주식 중개인이었는데, 워런 버핏을 자주 사무실로 불러서 자신의 일하는 모습을 보여 주었고, 아버지 사무실과 같은 건물에 있는 '해리스 업햄'이라는 중개회사의 주식 중개인들은 어린 워런 버핏이 찾아오면 분필로 칠판에 주가를 적는 것을 돕도록 했다. 주가의 움직임은 어린 그의 투자 욕구를 자극했고, 그는 그때부터 꾸준히 주식 공부를 했다고 한다. 워런 버핏이 1950년 컬럼비아 경영대학원에 입학했을 때 수중에 9,800달러가 있었지만, 그 돈은 1956년 고향인 오마하에 자신의 투자회사를 세우기 위해 돌아갈 때 14만 달러로 불어나 있었다.



워런 버핏의 다섯 살 때 꿈은 '돈을 많이 벌어 부자가 되는 것'이었다. 그런데 워런 버핏을 다른 아이들과 구별 짓게 한 가장 큰 차이는 '실행 계획(액션 플랜)'이 있느냐 없느냐였다고 한다. 그는 어릴 때부터 여러 가지 장사를 하며 '싸게 사서 비싸게 팔아라', '객관적인 자료를 가지고 판단하라', '경쟁력 있는 상품을 팔아라', '브랜드의 가치를 파악하라' 등 훗날 자신의 투자 원칙이 될 것들을 어렸을 때부터 몸으로 익혔고, 부자가 되기 위한 계획을 세우기 위해 관련 서적을 어릴 적부터 많이 읽고 정보를 정리했다고 한다. 즉 워런 버핏은 '부자가 되겠다'는 막연한 꿈을 꾼 것이 아니라, 어릴 적부터 구체적인 실천 계획을 세우고 실행에 나선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한편 워런 버핏은 세계 2위의 부자이지만 낭비하지 않는 습관을 갖고 있는 것으로 유명한데, 그의 경영 스타일도 낭비를 최대한 줄이는 것을 기본 바탕으로 깔고 있다. 참고로 워런 버핏이 워싱턴 대학에서 강연을 할 때 "만약 지금 가진 것을 모두 잃고 처음부터 시작해야 하는데, 지금까지 삶에서 단 세 가지만 고를 수 있다면 무엇을 고르겠는가?"라는 질문을 받은 적이 있는데, 워런 버핏은 돈은 포기할 수 있지만 '지식'과 무슨 일이든 '계속 할 일' 그리고 새로운 일을 시작하는 데 필요한 '자금'을 빌릴 수만 있다면 다시 시작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부자가 되는 데 필요했던 것이 무엇인지를 스스로 평가한 것이다. 즉, 자신이 투자 결정을 내릴 수 있도록 도와준 지식과 생계를 유지할 수 있는 일만 있다면 현재와 다름없이 살 수 있을 것이라는 가정이다.



그리고 워런 버핏은 스스로에게 절약하는 습관을 들였을 뿐만 아니라, 자녀들에게도 이웃의 자녀들과 다른 특별대우를 해주지 않았다고 한다. "그렇게 절약하면서 살려면 왜 돈을 버는가?"라는 질문을 할 수 있다. 워런 버핏은 12살 때 30살이 될 때까지 백만장자가 되겠다는 포부를 밝힌 적이 있는데, 그 말을 듣고 이웃집 사람이 "워런, 도대체 많은 돈을 벌어서 무엇을 하려고 하는 거니?"라고 묻자, "제가 원하는 것은 돈 자체가 아니에요. 돈을 벌고 돈이 불어나는 것을 보는 것 자체가 즐거움인걸요."라고 말한 적이 있다고 한다. 워런 버핏은 커서도 돈을 버는 이유에 관해서는 어릴 적 그가 한 말에서 크게 바뀌지 않았다. 그는 자신의 일을 '자본을 배분하는 것'이라고 정의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벌게 된 돈은 단지 사회가 잠시 그에게 맡긴 돈일 뿐이고, 결국은 사회에 환원하고 세상을 떠나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는 것이다. 한편 워런 버핏은 절약의 습관을 가져야 한다는 교훈 외에 투자의 습관을 가져야 한다는 교훈도 주고 있다. 투자에 성공하기 위해서는 투자 습관을 몸에 익혀야 하고 투자 습관을 몸에 익히기 위해서는 원칙을 정하고 끊임없이 연마해서 습관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일벌레 부자의 근성을 길러준 잭 웰치의 부모



'20세기 최고의 경영자', '주식회사 아메리카의 살아 있는 경영 교과서', '경영 리더십의 거장' 등으로 표시되는 잭 웰치(Jack Welch)는 일흔이 넘은 나이지만 일을 쉬지 않고 있다. 그는 2001년 GE의 최고경영자(CEO) 자리에서 은퇴했으며, 2007년으로 72세를 맞지만 여전히 활발하게 책을 쓰고, 강연을 하고, 컨설팅을 하고 있다. 그의 일에 대한 열정은 24살이나 어린 부인 수지 웰치에도 뒤지지 않는다고 한다. 그런데 잭 웰치가 퇴임 후에도 일벌레처럼 일하는 습관을 유지하고 있는 것은 어린 시절 아버지에게서 배운 습관 때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잭 웰치의 아버지 존 프랜시스 웰치는 보스턴과 보스턴 근교를 오가는 열차의 차장이었는데, 그는 조용한 성격이고 집에서는 말이 없는 편이었지만 '노동 윤리'가 무엇인가를 직접 행동으로 아들에게 보여줬다. 새벽 5시면 어김없이 집을 나가 출근을 했고, 하루 종일 열차의 좁은 통로를 걸어 다니면서 승객들의 차표를 검사하는 일을 했었다. 아들은 아버지가 하루도 일을 쉬지 않는 모습, 날씨가 나쁜 날이면 하루 전에 준비하는 모습 등을 보면서 회사에서 자신이 하기로 약속한 일은 반드시 끝내야 한다는 생각을 커서도 가질 수 있었다고 한다. 즉 잭 웰치의 아버지는 스스로 모범을 보이면서 아들에게 열심히 사는 것이 무엇인지를 가르쳐주었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또 아버지는 어린 잭 웰치에게 일을 해서 돈을 벌어야 한다는 사실도 가르쳐줬다. 잭 월치는 열심히 일하는 아버지의 모습을 보면서, 그리고 아버지의 손에 이끌려 어릴 때부터 골프장 캐디 등으로 일하면서 일벌레와 같이 일하는 습관을 들이게 됐다고 한다. 그렇게 한 번 틀이 잡힌 일하는 습관은 쉽게 없어지지 않는 법이다. 잭 웰치는 CEO로 재임할 때도 '일 중독자'로 불릴 정도로 일을 했다. 그리고 잭 웰치의 아버지는 일벌레의 근성을 가르쳐준 것 외에도 정보를 수집하는 것의 중요성을 가르쳐줬다. 퇴근하는 아버지는 항상 아들에게 줄 신문 뭉치를 선물 꾸러미처럼 들고 역에서 나왔다. 잭 웰치는 지금도 자신을 '뉴스 중독자'라고 부를 정도로 정보를 수집하는 데 민감하다.

잭 웰치는 현재 세계에서 가장 인기 있는 강연자 중의 한 사람이다. 지금은 대중 앞에서 거침없는 말솜씨를 자랑하는 잭 웰치이지만, 실상 그는 어릴 적에 말을 더듬는 버릇이 있었다. 그 버릇 때문에 그는 남들에게 놀림감이 됐을 수도 있었지만, 잭 웰치의 어머니는 아들이 자신의 단점을 장점으로 여기도록 만들었다. 어머니는 그가 말을 더듬을 때면 그에게 "너는 너무 똑똑하기 때문에 그런 거야. 너처럼 똑똑한 아이의 머리를 너의 혀가 따라오지 못해서 그런 거야"라고 말해줬다고 한다. 너무 생각이 빠르기 때문에 말이 쫓아오지 못한다는 설명이었다. 때문에 웰치는 자신이 말을 더듬는 것을 창피하게 생각하지 않았고 자신감을 가질 수 있었다고 한다. 아무튼 잭 웰치가 인생에서 끊임없이 도전할 수 있었던 것은 그의 어머니가 어릴 적 키워준 자신감 덕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리고 어머니는 잭 웰치에게 리더십의 비밀도 가르쳐줬다. 참고로 잭 웰치의 경영 전략 중 핵심의 하나인 '1등주의'도 어머니가 심어준 것인데, 그의 경영 전략 중 가장 중요한 것은 '항상 시장에서 1등이 되고 시장을 지배하라'는 것이다. 잭 웰치가 어릴 적에 한번은 성적표를 받아 왔는데 5과목 중에서 A가 4개, B가 1개 있었다. 그런데 어머니는 'A를 4개나 받았구나'라고 칭찬하기보다는 잭 웰치에게 '왜 한 과목에서 B를 받았냐'며 캐물었다. 모두 A를 받지 않는 한 어머니는 만족하지 않았던 것이다. 이런 어머니의 엄격함을 잭 웰치는 직원들에게 그대로 적용하곤 했다. 아울러 잭 웰치의 어머니는 경쟁에서 이겨야 한다는 걸 끊임없이 아들에게 주입시켰지만 실패를 인정하는 것의 중요성도 가르쳐줬고, 아들에게 꾀를 부리지 말고 항상 성실하게 일을 하고 공부를 하라고 강조했다. 아버지가 스스로 열심히 일을 하는 모범을 보였다면, 어머니는 말로 아들에게 열심히 일하는 것이 왜 중요한지 가르쳤다고 할 수 있다.



아무튼 잭 웰치는 미국에서는 월급쟁이의 신화와 같은 사람이다. 가난한 아일랜드 이민자의 집에서 태어나 공립학교를 다녔지만, 그는 세계적인 기업인 GE에서 가장 어린 나이에 CEO의 자리에 올랐다. 참고로 잭 웰치는 박사 학위를 받은 후에 홀로 사업을 시작할 것도 고민했지만, 대기업의 자원을 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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