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 선생님, 영국 가다
한문정, 김태일, 김현빈, 이봉우 지음 | 푸른숲
시간과 공간의 중심에 서다 _ 그리니치 전문대그리니치 천문대는 런던 도심에서 그리 멀지 않은 국립 해양 박물관 뒤편의 그리니치 공원 위쪽 언덕에 자리 잡고 있다. 그리니치 천문대는 이름 그대로 천체를 관측하는 곳이지만, 우리가 그리니치 천문대를 기억하는 것은 바로 지구본 위에 그려져 있는 세로 선들의 기준선인 경도 0도선이 그리니치 천문대를 지나가기 때문이다. 바로 공간의 중심인 것이다. 그렇다면 그리니치 천문대에서 정확히 어느 곳을 경도의 기준으로 삼은 것일까? 이것은 아주 쉽게 찾을 수 있다. 정문을 통과하자마자 바로 앞에 보이는 긴 선이 바로 경도선이다. 이 경도선이 지나가는 곳에 건물이 한 채 서 있는데, 이 건물의 문 위에는 밀레니엄 시계가 걸려 있다. 이 시계는 2000년 자정에 이곳에 설치돼, 2000년 이후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 보여 주고 있다.
한편 그리니치 천문대는 1675년 설립된 왕립 천문대로, 지금은 천문대의 역할을 하지 않기 때문에 구 왕립 천문대라고 부르고 있다. 그런데 천문대라고 해서 단순히 천체를 관측하기 위해 지은 것이 아니라, 천문 지도를 만들어 항해술을 발전시키기 위해 지어졌다고 한다. 당시 영국은 '해가 지지 않는 나라'로 불릴 만큼 세계 곳곳에 식민지를 개척했는데, 바다를 항해하려면 배가 있는 정확한 위치를 알아야 했고, 이때 기준으로 삼은 것이 바로 별이었기 때문에 별의 위치를 정확하게 기록한 지도가 필요하였던 것이다. 아무튼 그리니치 천문대에서는 오랫동안 태양과 달을 비롯한 여러 행성과 항성의 위치를 관측해 왔으나, 런던의 공해가 심해지면서 더 이상 천문대의 역할을 하기 어려워져, 1946년 천문대 본부를 영국 남부 허스트몬슈로 옮겼다. 그리고 이곳은 국립 해양 박물관과 통합되어 관광과 교육 목적으로 쓰이고 있다.
그러면 경도와 시각과의 관계를 잠깐 살펴보자. 우리나라의 시간대를 GMT+9라고 한다. 여기서 GMT는 그리니치 표준시(Greenwich Mean Time)의 약자이다. 즉 GMT+9란 우리나라의 시각이 영국보다 9시간만큼 빠르다는 것을 나타낸다. 여기서 그리니치 천문대와 시간이 서로 밀접한 관계가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즉 시각과 경도로 위치를 파악할 수 있는 것이다. 지구는 구 모양이기 때문에 장소마다 태양의 위치가 다르다. 지구가 서쪽에서 동쪽으로 자전하기 때문에 동쪽으로 가면서 시간이 점점 더 빨라진다. 만약 영국에서의 시각과 현재 지역에서의 시각이 2시간 차이가 난다면 경도로는 30도 차이가 나는 것이다. 이것을 이용하면 지도상에서 지금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 찾을 수 있다. 즉 정확한 시각을 알면 정확한 경도를 알 수 있고, 바다에서의 위치도 파악할 수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이 경도와 시간은 서로 밀접히 관련되어 있으므로 그리니치 천문대 안에 시간 전시관이 마련되어 있는 것이다. 결국 그리니치 천문대는 공간의 중심인 동시에 시간의 중심인 셈이다.
한편 시간 전시관의 입구로 들어가면 팔각실이 나오는데, 팔각형 모양의 방인 이곳에는 오래전 그리니치 천문대에서 천문 관측을 하는 데 사용한 기구들이 놓여 있었다. 예로 존 해리슨이라는 시계 기술자가 만든 정확한 시계인 '해리슨 1호'에서 '해리슨 4호'까지 4개의 시계가 전시되어 있었다. 천문대를 나서면서 다시 경도의 기준선 위에 올라섰다. 바로 이곳이 진짜 세상의 중심이다. 동쪽과 서쪽이 만나는 공간의 중심이요, 이 세상의 시작을 알리는 시간의 중심이다.
현대 과학의 산실 _ 케임브리지케임브리지는 런던에서 80킬로미터 정도 북동쪽으로 떨어져 있는 오래된 대학 도시로, 케임브리지셔 주의 행정 중심이다. 소프트웨어, 바이오 분야에서 유럽의 중심지 역할을 하고 있어, 케임브리지를 둘러싼 지역을 실리콘 펜이라 부른다. 참고로 2001년 인구 조사에 따르면 약 11만 명에 이르는 인구 중에서 2만 2,000명이 학생이라고 하니, 가히 대학 도시로 불릴 만하다. 한편 케임브리지 대학은 1209년에 설립되었는데, 이곳에는 뉴턴이 공부한 트리니티 칼리지, 원자의 구조를 밝히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캐번디시 연구소, 왓슨과 크릭이 DNA의 구조를 발견한 유서 깊은 연구소 등이 있다. 한마디로 서양 과학사의 큰 뼈대라 할 수 있다.
첫 목적지는 옛 캐번디시 연구소였다. 1897년 톰슨이 최초로 전자를 발견한 유서 깊은 연구소로, 노벨상 수상자를 무려 29명이나 배출해 화려한 명성을 자랑하고 있다. 그리고 이 연구소는 지난 130년 동안 세계 과학사를 새로 쓸 정도로 획기적인 연구물들을 내놓은 곳이다. 참고로 이곳 출신의 대표적인 과학자로는 원자의 구조를 밝힌 보어, 중성자를 발견한 채드윅, DNA의 이중 나선 구조를 발견한 왓슨과 크릭 등이 있다. 아울러 이 연구소는 전통과 규율을 매우 중시하기로 유명한데, 어떻게 보면 유행에 따라 연구 분야를 이리저리 바꾸는 여느 연구소들과 달리, 기초 과학 한 분야만을 파고드는 것이 캐번디시 연구소의 특징이라 할 수 있겠다. 다음으로 발걸음을 옮긴 곳은 휘플 박물관이었다. 이 박물관은 1944년에 설립되었는데, 17세기에서 19세기까지 케임브리지에서 만든 다양한 소장품을 갖춘 과학사 박물관이다. 규모는 크지 않았지만 소장품 하나하나는 눈길을 끌기에 충분했는데, 갈릴레이의 달 스케치가 그려져 있는 17세기 이탈리아의 책, 톰슨의 음극선관, 그리고 빛에 바래지 않도록 검은 천으로 덮어놓은 뉴턴의 『프린키피아』 등이 있었다.
점심식사를 하고 우리는 몇 군데의 유명한 칼리지 순례에 나섰다. 먼저 간 곳은 킹스 칼리지였다. 이 이름이 붙은 것은 1441년 헨리 6세의 하사금으로 세워진 곳이기 때문이었다. 킹스 칼리지에는 과학적으로 특별히 유명한 것이 있지는 않았기에 들어가지 않았다. 다음으로 간 곳은 트리니티 칼리지. 1546년 헨리 8세가 세운 트리니티 칼리지는 현재 160명의 교수와 320명의 학위 과정 학생, 650명의 학부생이 있는 케임브리지에서 가장 큰 대학인데, 이 칼리지는 뉴턴이 다녔던 대학으로도 유명하다. 참고로 뉴턴을 비롯해 이 대학을 다녔던 유명인들의 석상이 전시되어 있는 예배당으로 들어가는 잔디 광장에는 간단한 구조의 해시계가 놓여 있었고, 예배당 안으로 들어가자 베이컨, 아이작 배로, 맥스웰 등의 조각상이 늘어서 있었으며, 정중앙에 홀로 서 있는 뉴턴의 조각상 뒤로 이곳 출신 유명 인물들의 명단이 보였다.
잠시 동안의 휴식을 취한 후에 퀸스 칼리지로 향했다. 퀸스 칼리지는 아름다운 해시계로 유명한 곳인데, 건물 벽에 크고 복잡하게 생긴 해시계가 있었다. 날짜에 따라 다른 줄을 읽도록 된 것이 우리나라의 앙부일구의 원리와 비슷해 보였다. 퀸스 칼리지 옆으로 난 작은 문으로 나가니 폭이 넓지 않은 강이 나왔고, 강에는 펀팅을 하는 관광객과 학생들로 가득 차 있었다. 펀팅은 작은 배를 타고 노를 바닥에 찔러 앞으로 나아가는 것으로, 케임브리지에서 전통으로 이어 내려오는 놀이이다. 그리고 강 위에는 퀸스 칼리지와 바깥을 연결하는 나무다리가 있었는데, 이름이 '수학의 다리'였다. 다리의 구조가 복잡해서 수학자들이 설계했다는 전설 아닌 전설이 있어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그 뒤 퀸스 칼리지에서 나온 우리는 왓슨과 크릭이 DNA를 발견한 유서 깊은 연구소를 찾아 나섰다. 케임브리지의 골목을 헤매기를 1시간여, 드디어 건물 한구석에 있는 표시를 찾았다. DNA를 발견한 곳이라는 표시가 벽에 붙어 있었다. 연구소는 4층 높이의 평범한 벽돌 건물이었고, 오래된 건물에 출입문과 창문만 최근에 보수한 것처럼 보였다. 최신 설비를 갖춘 화려한 연구소로는 보이지 않았는데, 이런 곳에서 DNA를 발견하였다니……. 반드시 많은 자금과 뛰어난 시설이 있어야 역사적인 발견을 하는 것은 아닌 모양이다.
열두 곳의 과학 명소를 거닐다 _ 옥스퍼드옥스퍼드는 인구 20만 명 중 학생이 5만 명이나 되는 대학 도시로, 그 역사는 13세기부터 시작되었다. 약 43개의 독립적인 칼리지들로 구성된 옥스퍼드 대학은 케임브리지 대학과 함께 영국 대학의 양대 산맥으로 손꼽히는데, 철의 여인으로 이름 높은 마거릿 대처와 블레어 전 총리를 비롯한 영국의 많은 총리들이 옥스퍼드 대학 출신이며, 핼리 혜성으로 유명한 에드먼드 핼리와 화학자 보일도 옥스퍼드에서 연구를 했다. 무엇보다 옥스퍼드는 영국에서 가장 오래된 대학으로, 특히 대학 내 과학사 박물관과 자연사 박물관의 역사가 깊기로 유명하다. 한편 이곳에 오기 전에 옥스퍼드 홈페이지를 방문했을 때 '사이언스 워크'라는 프로그램이 눈에 띄어 읽어 보니, 과학자들이 살았던 집, 실험실, 박물관 등 열두 군데에 이르는 과학 유적지를 차례로 소개하고 있었는데, 홈페이지에서 뽑은 흐릿한 지도를 보며 걱정은 됐지만 마치 보물찾기라도 떠나는 양 들뜬 마음으로 첫 번째 지점을 찾아 나섰다.
옥스퍼드 사이언스 워크는 식물원에서 시작한다. 1621년에 만들어진 이 식물원은 처음에는 허브와 약용·실험용 식물을 재배했는데, 그 뒤 수집을 더해, 지금은 수천 종의 식물들이 자라고 있다. 식물원 담 넘어 바깥쪽에는 축구 경기를 할 수 있을 만큼 널찍한 잔디밭이 펼쳐져 있었는데, 바로 이곳에서 영국 최초의 열기구 비행사 제임스 새들러가 열기구를 타고 하늘로 올라갔다고 한다. 한편 식물원 입구에는 페니실린 기념비가 있었다. 페니실린을 발견한 사람이 알렉산더 플레밍이라는 사실이 널리 알려져 있으나, 그는 푸른곰팡이에서 나오는 항생 물질인 페니실린을 발견하기만 했을 뿐, 추출해 내지는 못했고, 그로부터 10년 후 옥스퍼드 대학의 두 학자, 어니스트 체인과 하워드 플로리가 순수한 페니실린을 정제해 내어 드디어 페니실린을 약으로 널리 쓸 수 있는 길이 열렸다. 아무튼 페니실린을 시작으로 여러 항생제들이 만들어졌고, 항생제는 세균 감염으로 생명을 잃을 위기에 놓인 많은 사람들을 구해 왔다. 이런 페니실린을 추출해 낸 장소가 바로 옥스퍼드 대학이니, 이곳에 기념비를 세워 놓을 이유가 충분하다.
한편 사이언스 워크에 표시된 장소들 중에 눈에 띈 과학자들이 있었는데, 바로 보일과 훅 그리고 핼리였다. 일정한 온도에서 기체의 압력을 높이면 부피가 감소한다는 것을 실험으로 증명한 보일, 그리고 현미경을 만들어 살아 있는 세포를 보게 한 훅, 과학 시간에 등장하여 익숙한 두 과학자의 기념관을 보며, 보일과 당시 보일의 조수였던 훅이 함께 성능 좋은 공기 펌프를 만들어 공기를 빼내고 진공 상태를 만드는 실험을 했을 장면을 떠올려보았다. 다음 코스는 에드먼드 핼리의 집. 문패에 적힌 핼리의 이름을 빼놓고는 특별한 것이 없어 보이는 단출한 건물이었다. 당시 혜성의 주기를 계산한 핼리 덕분에 뉴턴 역학의 정당성이 확인되었고, 전쟁이나 전염병 등 재앙의 징조로만 믿어 왔던 혜성에 얽힌 미신이 사라지게 되었다.
다음으로 방문한 옥스퍼드 과학사 박물관은 1683년에 지어진 세계 최초의 과학사 박물관으로, 대중을 위해 지어진 첫 번째 과학사 박물관이라는 점에서도 의미가 있다. 말하자면 옥스퍼드 과학사 박물관은 옥스퍼드와 영국 과학의 역사가 뿌리 깊다는 것을 보여 주는 곳인데, 이곳은 소장품을 볼 수 있는 전시관인 동시에 연구를 위한 실험과 강의가 열리는 과학 교육의 장소이기도 하다. 대략 1만여 점에 이르는 전시물은 자연 관찰이 시작된 이래 20세기 초까지 거의 모든 분야의 실험 기구와 과학 관련 자료들을 망라하고 있다고 하는데, 각양각색의 해시계와 모래시계들에서는 어떻게 하면 태양의 움직임을 이용해 정확한 시각을 알 수 있는지에 대한 노력을 읽을 수 있었다. 무엇보다 해시계 전시장 안에는 우리나라의 앙부일구가 있어 어찌나 반갑고 기분 좋던지……. 그밖에도 현미경과 망원경, 카메라 등의 광학 기구와 화학 실험에 쓰인 실린더와 비커, 페니실린을 추출해 낸 실험 장치 등도 있었다. 과학은 이렇게 다양한 실험 도구와 관측 장비들을 만들고 사용하여 얻은 노하우 속에서 한 걸음씩 나아갔으리라.
한편 과학사 박물관 맞은편에는 자연사 박물관이 있었는데, 전시실을 둘러싼 기둥들을 바라보다가 나도 모르게 감탄사가 새어나왔다. 모두 30개의 기둥이 건물을 받치고 있었는데, 각 기둥의 윗부분은 복잡하고 화려한 식물, 새 등의 조각상으로 장식되어 있고 기둥 사이에는 과학자들의 조각상이 자리 잡고 있었다. 두 개의 렌즈를 들고 있는 갈릴레이, 손아래 두 마리의 뱀이 지팡이를 감고 있는 히포크라테스, 발치에 떨어진 사과를 내려다보는 뉴턴, 도형이 그려진 두루마리를 들고 있는 유클리드 등 과학사를 이끈 대표적인 과학자들이 둘러서서 우리를 지켜보고 있는 듯했다. 그리고 중앙 홀에는 티라노사우루스를 비롯한 많은 공룡 뼈들이 전시돼 있었는데, 옥스퍼드 근처에서 발견된 공룡 뼈와 발자국을 재현해 놓은 것들이 많았다. 2층으로 올라가니 몇 세기에 걸쳐 대학에서 수집한 동물과 식물, 곤충, 광물 표본들이 발코니마다 전시되어 있었다. 참고로 옥스퍼드 자연사 박물관은 런던 자연사 박물관처럼 크고 화려하지는 않지만 대학에서 오랫동안 연구하고 수집해 온 자료를 효율적으로 전시했다는 점에서 인상적이었다.
과학 기술의 역사를 기록한 파피루스 _ 런던 과학 박물관런던 하이드 파크 남쪽, 사우스 켄싱턴의 '박물관 거리'에는 세계적으로 알려진 박물관들이 늘어서 있다. 빅토리아 왕조의 호화롭고 경쾌한 모습을 보여 주는 미술과 공예의 전당인 빅토리아·앨버트 박물관, 19세기의 화려한 건축물, 바로 화석 수집물로 유명한 런던 자연사 박물관, 그리고 런던 과학 박물관, 이 세 곳 중에 빅토리아·앨버트 공예 박물관은 제쳐두고 두 박물관이라도 제대로 보려면 시간이 많이 필요했다. 우리 일행은 일정 중 하루를 박물관 탐방의 날로 정하고 두 팀으로 나누어 관람하기로 하였다.
지상 6개 층과 지하, 그러니까 전체 7층으로 이루어진 런던 과학 박물관에는 과학, 기술, 그리고 산업 발달의 증거가 되는 자료와 역사적인 유물이 전시되어 있었는데, 비행기의 동체, 산업 기계와 같이 규모가 큰 것에서부터 마이크로 칩, 반도체와 같은 매우 작은 것까지 망라되어 있었다. 말 그대로 영국의 과학사를 한 자리에서 살펴볼 수 있는 살아 있는 과학 교과서로, 산업 혁명을 일으키며 현대 문명을 견인해 온 영국의 자존심을 펼쳐 보이는 곳이라 할 수 있었다. 'Making the Modern World'라는 이름의 전시실은 1750년대부터 2000년에 이르기까지의 250년을 7개의 시대로 구분하였다. 1750년에서 1820년까지의 시기는 과학이 태동하는 시대였는데, 18세기에 이르러 과학자들은 연구와 실험을 통해 세상을 이해할 수 있다는 확신을 품게 되었다. 이 시대의 과학사 관련 전시물 가운데 먼저 눈길을 끈 것은 1783년 사를 교수가 한 수소 열기구 실험 장면이었다. 그리고 이 시대를 대표하는 아이콘으로는 1777년 제임스 와트가 개발한 펌프질하는 증기 기관이 전시되어 있었는데, 이 증기 기관에는 '오래된 영광'이라는 이름이 붙어 있었다.
과학의 개화기를 거쳐 1800년대로 넘어오자 사람들은 자신감과 활력이 넘치기 시작했는데, 이런 자신감은 전시물에도 느껴졌다. 이 시대를 대표하는 아이콘으로는 1833년 리처드 트레비식이 발명한 엔진이 전시되어 있었는데, 여기에는 '무한한 가치를 지닌 기계'라는 문구가 붙어 있었다. 참고로 처음에 증기 기관차는 광산에서 석탄을 운반하는 역할에만 머물러 있었는데, 그 후 트레비식은 광산의 철로를 일반 도로에 깔아 증기 기관차로 철도 운송을 시도했고, 그러면서 기차는 육상 운송 수단의 혁명을 일으켰다. 트레비식에 이런 철도 운송을 확실하게 정착시킨 사람은 조지 스티븐슨이었는데, 그는 1830년 총 길이 45킬로미터인 리버풀-맨체스터 철도의 건설을 맡아, 그 철도에서 증기 기관차를 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