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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알아야 할 선사시대 101가지 이야기

프리데만 슈렌크, 슈테파니 뮐러 지음 | 플래닛미디어
미래 - 과거로부터 우리는 무엇을 배울 것인가?



왜 우리는 선사시대에서 미래를 배워야 할까?


우리가 살아가는 지구는 발전 과정에서 수많은 변화를 겪어왔는데, 오늘에서야 비로소 우리는 그 변화의 규모를 제대로 인식하게 되었고, 미래를 전망하며 보다 나은 결정을 내리기 위해 그러한 지식을 활용할 수 있게 되었다. 예를 들면 지금으로부터 약 20억 년 전, 각종 박테리아들의 광합성 활동이 대기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쳐서 사상 최초로 참담한 결과를 동반한 기후 변화를 유발했는데, 이러한 사실은 생물체란 언제라도 대재앙을 유발할 수 있는 존재가 될 수 있다는 진리를 우리에게 가르쳐준다. 이는 특히 우리 '인간들'에게 해당되는 사실인데, 만약 우리가 자연과 역사의 메커니즘을 이해하는 방법을 배우지 않는다면, 상황은 더욱더 악화될 것이 분명하다.



한편 수백만 년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사라져간 수많은 동물들은, '다양성'이 생존에 있어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는지 분명하게 보여주었는데, 아프리카 대륙의 소규모 개체에서 비롯된 존재, 즉 '호모 사피엔스'로서 우리 인간들은 이 세상에 '우월한' 인종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자각해야 할 것이다. 뿐만 아니라 우리가 다른 모든 생물체들과 더불어 지구를 공유하고 있다는 사실은, 인간이 다른 동물들과 마찬가지로 지구환경에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음을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홍적세(180만 년 전~1만1,800년 전) - 극단을 오가는 기후가 세계를 지배하고, 인간이 문화를 창출하다



홍적세의 지구는 어떤 모습을 하고 있었을까?


'홍적세'란 지구의 북반구에 빙하기가 닥친 시기를 말한다. 빙하기에도 유럽지역에는 동결지역이 단 두 곳밖에 없었다. 알프스산맥에서 피레네산맥에 이르는 지역과 북유럽 지역인데, 산의 정상부는 얼음 위에서 살 수 없는 동식물들에게 피난처를 제공했고(산 정상부를 제외한 나머지 지역은 태양열 반사로 인한 기온 하강의 영향을 받았기 때문에 동식물들이 서식할 수 없었음), 온난기에는 계곡이 동식물의 피난처가 되어주었다. 그 밖에도 베링 해협 주변에 또 다른 동식물 피난처가 형성되었다. 소위 '베링기아'라 불리는 이 지역은 해수면이 낮아지는 빙하기가 찾아올 때마다 아시아와 북아메리카 대륙을 잇는 지협이 되었다. 이 길을 따라 작은 포유동물들이 아메리카 대륙으로 건너갔을 것이고, 어쩌면 그 이동 대열에 최초의 인간들도 끼어 있었을지 모른다.



인간은 언제부터 정착생활을 시작했을까?

지금으로부터 약 1만 3,000년 전인 신석기시대 초반부터 인간은 정착생활을 시작했는데, 이 시기를 기점으로 하여 인간은 사냥꾼이자 채집자로서의 삶을 서서히 청산하고 농부가 되어 정착생활을 하기 시작했다. 이 같은 근본적인 사회적·기술적 변혁을 '신석기 혁명'이라 하는데, 신석기 혁명의 결과물들은 인간 사회의 근간을 완전히 뒤흔들어놓았을 뿐만 아니라, 사람들의 사고와 의식을 변화시켰다. 한편 이 같은 변화가 이루어진 핵심 지역은 소아시아, 좀 더 정확하게 말하면 유프라테스강 하류에 있는 타우루스산맥과 자그로스산맥 주변 지역으로 추정되는데, 빙하기가 끝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곳(소위 말하는 '비옥한 초승달 지역')에서는 영양 사냥꾼들이 출현해 어마어마하게 많은 동물들을 죽음으로 몰아갔다. 또 그들은 저장고를 건설해 그곳에다 남은 고기를 저장했고, 사방에 지천으로 널려 있던 야생곡물도 체계적으로 수확했으며, 남아 돌아가는 식량 덕분에 인구는 대폭 증가했다. 또한 신석기 혁명은 인간의 사회 구조와 권리 개념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치게 되어, 이 시기에 이르러 사상 최초로 토지와 농기구에 대한 소유권 및 재산권이 인간의 삶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기 시작했다.

네안데르탈인은 현생인류의 조상인가?

생물학적 관점에서 보았을 때, 현생인류(호모사피엔스)와 계보상으로 가장 가까운 친척은, 네안데르탈인이 유럽에서 절정기를 구가했던 4만 년 전보다는 훨씬 더 이전인 20만 년 전에 아프리카에서 태어나 약 10만 년 전에 아프리카에서 근동지역으로 진출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북쪽 지역에서 절정기를 구가하고 있던 네안데르탈인도 같은 지역으로 이동하여, 이 두 종족은 거의 3만 년 동안 같은 지역에서 함께 살았다. 또 유럽으로 널리 진출한 현생인류 역시 네안데르탈인과 수천 년 동안 함께 살았다. 이처럼 오랜 공존 기간을 감안할 때, 혹시 부분적으로나마 이 두 종족이 만나 서로 섞이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 것도 당연하나, 이 두 종족 간에 문화적인 접촉들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두 종족이 생물학적으로 혼합되었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 참고로 화석 네안데르탈인의 DNA와 현생인류의 DNA를 연구한 결과, 차이가 나는 부분은 약 27개에 달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결론적으로 최후의 네안데르탈인은 현생인류의 유전자 풀에 그 어떤 결정적인 기억도 하지 못했다는 사실이 입증되었다.

신제3기(2,300만 년 전~180만 년 전) - 현생 종(종)들이 등장하고 최초의 인간이 출현하다



'신제3기'는 어떠했을까?


한랭기와 온난기가 지속으로 교체되었던 신제3기 초기는 고제3기에 이어 여전히 '빙하기'였는데, 마이오세(Miocene Epoch : 중신세, 2,300만~550만 년 전)에 동식물계에 몇 가지 사건이 일어났다. 다양한 고래가 등장하기 시작했고, 중부 유럽에 유인원이 등장했으며, 육지에서는 풀과 채소가 널리 확산되었는데, 지금으로부터 약 600만 년 전에 이르러 지구의 해수면이 급격히 낮아지면서 모습을 드러낸 수많은 지협들이 아프리카와 아시아, 그리고 유럽 대륙들 사이에서 활발한 동물교류를 가능하게 해주었다. 또 당시 아프리카판과 유라시아판이 충돌을 일으키면서 유럽에서는 오버라인 분지를 비롯한 다수의 분지가 생겨났고, 화산활동도 활발하게 전개되었다. 그리고 약 533만 년 전에 시작된 플라이오세 초기에는 지구 자기장의 양극이 뒤바뀌어, 남극이 북극이 되었고, 북극이 남극이 되었다. 참고로 대륙의 표류와 자기장의 변화로 말미암아 해저 표면에는 변화무쌍한 극성을 띤 암석들로 이루어진 줄무늬가 만들어지는데, 이 줄무늬는 한 가지 패턴이 아니라 끊임없이 변화하는 양상을 보여주고 있다.

왜 우리는 두 다리로 걷게 되었을까?

우리는 이 질문에 대한 해답을 지금으로부터 약 1,000만 년 전, 아프리카 서부에서 동부에 걸친 지역에 영향을 미쳤던 기후 및 생활환경의 변화에서 찾을 수 있다. 마이오세 중기에서 후기까지, 그러니까 약 1,000만 년~700만 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아프리카 유인원의 확장은 이 지역에 국한되어 있었는데, 지구가 냉각되면서 한때 거대했던 삼림지대가 크게 줄어들었다. 그리고 약 800만 년~700만 년 전, 아프리카 동부지역에서는 목초지대의 비율이 높아졌고 열대초원이 형성되었으며, 이때를 기점으로 유인원 집단은 숲과 강이 인접한 열대우림 주변지역에 거주하기 시작했으며, 이러한 '강변지대에 형성된 거주지'는 직립보행하기에 이상적인 장소가 되어 주었다. 그리고 유인원들은 수영을 하지 못했기 때문에 물속에 들어가면 두 다리로 서야만 했고, 물속에서 이동을 할 때에도 두 다리를 사용해야만 했다. 아무튼 직립보행을 하게 되면서부터 인간은 음식물을 보다 효율적으로 운반할 수 있게 되었다.

고제3기(6,550만 년 전~2,300만 년 전) - 포유동물의 시대가 시작되다



고제3기에는 어떤 일이 일어났을까?

고제3기는 신생대 제3기 초기에 해당하는데, 오늘날 고제3기는 팔레오세, 에오세, 올리고세로 나뉜다. 고제3기에 발생한 가장 주목할 만한 변화는 아마도 에오세에 오스트레일리아가 남극 대륙에서 분리되어 나온 일인데, 이로써 바닷물의 흐름이 바뀌어 남극 대륙 주변에는 예전보다 더 차가운 물이 흐르게 되었다. 그 결과 광범위한 지역이 동결되었고, 전 세계적으로 기온이 내려갔다. 동물의 세계에서는 조류가 현생 조류의 발달단계에 도달했고, 그 무렵 육지에 살던 육식 포유동물이 진화해 오늘날의 고래가 생겨났으며, 초기 상어가 바다공룡이 살던 지역을 차지했다. 그리고 해저 세계에는 고래 외에 다른 포유동물들도 살고 있었는데, 오늘날의 바다표범, 물개, 바다코끼리 등이 여기에 속한다. 그 후 올리고세에 발생한 급격한 기온하강 현상은 동물의 세계뿐만 아니라 식물의 세계에도 대량멸종사태를 유발했다. 왜냐하면 아열대 우림지역이 초원지역으로 서서히 대체되었기 때문이다.



오스트레일리아의 '주머니동물'들은 어떻게 생겨났을까?

북아메리카에서 살던 유대류(有袋類, Marsupialia) 동물(주머니동물)들이 백악기가 끝날 무렵 모두 멸종해버린 것과는 대조적으로 오스트레일리아에서 살던 유대류 동물들은 오늘날까지 꿋꿋하게 살아남았는데, 오늘날 학자들은 동물들이 남아메리카와 남극 대륙을 경유해 오스트레일리아까지 이주했으며 그 중에서도 유대류 동물의 경우에는 선조뻘 되는 한 종류가 남아메리카를 거쳐 오스트레일리아로 진출해 오늘날 오스트레일리아에 살고 있는 유대류 개체를 형성했을 것이라고 추측하고 있다.



참고로 오스트레일리아가 동물 진화사에서 매우 특별한 위치를 점하고 있는 것은 전적으로 고립된 대륙의 위치 때문이다. 거대한 유대류 맹수가 살던 시대에 등장해서 오늘날까지 살아남은 동물로는 작은 주머니고양이와 태즈매니아 주머니곰이 있는데, 오스트레일리아 대륙에 호모사피엔스가 출현하면서부터 비로소 먹이를 둘러싸고 유대류 동물들과 다툼을 벌일 경쟁자가 생겨나게 되었다. 한편 지금으로부터 4만 년~6만 년 전에 오스트레일리아 원주민들이 딩고(오스트레일리아 들개)를 들여온 데 이어, 200년 전에는 유럽 사람들이 가축과 식용동물들을 들여왔는데, 인간이 인위적으로 끌어들인 이러한 신종 동물들은 오스트레일리아 생태계에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했다. 왜냐하면 오스트레일리아 생태계 내부에 새롭게 들여온 이 동물군의 과잉증식을 견제할 천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백악기(1억4,600만 년 전~6,550만 년 전) - 온실효과와 대재앙이 시작되다



백악기의 대재앙을 유발한 원인은 무엇이었을까?


지구 역사상 가장 유명하면서도 가장 최근에 일어난 대재앙은 백악기 말기인 6,500만 년 전에 멕시코 유카탄 반도를 강타한 지름 약 10킬로미터의 대형 운석이었다. 운석의 타격은 대기 중에 엄청난 양의 먼지를 불러일으켰고, 이것은 마치 두꺼운 외투처럼 지구 주변을 감싸 태양광선의 입사를 차단해버렸다. 이로 인해 전 세계적으로 기온이 곤두박질쳤으며, 수백 년 동안 겨울이 지속되면서 먹이사슬이 끊어져버렸다. 아무튼 최후의 공룡을 비롯한 다른 수많은 생물들이 그 시기에 멸종했지만, 그래도 몇몇 동물들은 끝까지 살아남아 지구 전역으로 퍼져나갔다. 이렇게 퍼져나간 포유동물은 수많은 다양한 그룹으로 분화되어 예전에 파충류가 차지하고 있던 생태학적 빈틈을 장악했다.



대재앙을 유발한 원인을 설명하는 또 다른 이론은 선사학자들의 관심을(거대한 현무암층이 있는) 인도로 이끄는데, 그곳에 있는 현무암층은 매우 강력한 화산활동 때문에 생겨난 것인지도 모른다. 또 백악기 지층과 신생대 제3기 지층 사이에 존재하는 '이리듐 띠' 역시 적어도 이론상으로는 화산폭발을 통해서도 생겨났을 수 있다. 이렇듯 당시의 화석 증거물들은 양쪽 시나리오를 모두 뒷받침해준다. 그러므로 두 가지 사건이 함께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다. 그러나 이러한 대재앙에도 불구하고 몸을 숨기기가 용이하고 음식물이 거의 필요 없는 몸집이 작고 개체수가 많은 동물들과 뛰어난 재생 능력과 무성생식 능력을 갖춘 식물들의 경우에는 비교적 심각한 타격을 받지는 않았다.



공룡도 날 수 있었을까?

날아다니는 공룡의 기원은 아직까지도 분명하게 밝혀지지 않았다. 최초의 익룡이 2억 2,000만 년 전 트라이아스기에 이미 존재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이것들은 약 6,500만 년 전에 가장 가까운 친족인 다른 공룡들과 함께 멸종해버렸다. 참고로 모든 익룡은 하나같이 완벽한 비행사들이었다. 물론 아직까지는 익룡이 날개를 상하로 움직이면서 이동하는 '날개치기' 비행방식을 사용했다는 증거도, 비행의 기원을 알려주는 증거도 발견되지 않았다. 하지만 익룡이라는 존재 자체가 이미 2억2,000만 년 전에 오늘날 조류가 사용하는 것과 동일한 비행방식이 존재했을 것이라는 사실을 증명해주고 있는데, 화석으로 남겨진 익룡의 뼈는 생김새로 보아 익룡의 활공능력을 암시하고 있다. 아마 익룡은 공기주머니 시스템을 이용해 비행에 필요한 양력을 얻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쥐라기·(2억 년 전~1억4,600만 년 전) - 공룡들이 지구를 장악하다



'쥐라기 공원'에서는 어떤 일들이 일어났을까?


공룡이 전성기였던 쥐라기에는 기후가 비교적 따뜻했다. 그리고 지구 역사상 또 한 번의 대규모 멸종의 시대, 즉 트라이아스기에서 쥐라기로 이행되던 시기에 이미 메가조스트로돈(Megazostrodon)과 같이 앞니와 송곳니, 그리고 어금니를 갖춘 최초의 포유동물이 출현했다. 참고로 이 시기에는 거대한 남쪽 대륙 곤드와나가 분열되기 시작했고, 북대서양과 남대서양이 생성되었으며, 오늘날의 해저표면 중에서 가장 오래된 부분이 형성되었다. 이와 때를 같이 하여 육지에서는 최초의 속씨식물이 등장했다. 그리고 쥐라기의 바다는 익룡과 바다미나리, 악어, 그리고 상어가 장악하고 있었고, 당시 육지를 점령하고 있던 양치류 식물과 침엽수, 그리고 소철과 식물들은 그 시절 얼마 되지 않았던 육지 척추동물들의 먹이가 되었다. 또 쥐라기 중기는 암모나이트 화석으로 유명하며, 목이 긴 용각류 공룡 메갈로사우루스와 알로사우루스 같은 거대한 육식공룡들이 주도권을 장악하고 있었다. 또한 쥐라기에는 가장 오래된 조류인 아르카이오프테릭스가 최초로 모습을 드러내기도 했다.



공룡들은 어떻게 살았을까?

공룡들은 얼마나 영리했으며, 어떻게 살았으며, 무엇을 먹고 살았을까? 학자들은 이미 오래 전부터 이런 질문들을 제기해왔는데, 40년 전에야 비로소 "공룡이 활동적이고 지능적인 동물이었다"는 견해가 학계에서 대두되기 시작했고, 오늘날에 와서는 1억5,000만 년도 더 전에 지구의 삶을 지배했던 공룡이 생물의 진화역사상 '가장 성공적인' 동물군이었다는 데 의견이 일치하고 있다. 참고로 모든 공룡들은 발가락 끝으로 걸었으며, 화석공룡의 치아를 보면 공룡이 물고기, 육류, 연체동물, 풀과 야채 등 다양한 음식을 먹은 것으로 추정된다. 그렇다면 공룡들의 신진대사는 어떤 방식으로 이루어졌을까? 브라키오사우루스처럼 목이 길고 몸집이 어마어마하게 큰 공룡의 화석을 면밀하게 관찰해보면, 그들이 대순환과 소순환이 완전히 분리된 한 개의 심장을 가지고 있었다는 사실을 추측할 수 있다. 뇌까지 혈액을 공급하되, 폐로 혈액이 흘러드는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해서는 필수적으로 혈압이 높아야만 했다. 한편 공룡의 번식방법과 관련하여 지금까지 알려진 것이라고는 오늘날 조류에게서 전형적으로 찾아볼 수 있는 번식방법이 전부이다. 즉 일종의 '둥지'라 할 수 있는 곳에 알을 낳고, 경우에 따라서는 알을 지키거나 심지어 알을 품어 부화하는 공룡들도 있었다. 뿐만 아니라 이런 공룡들이 세심한 보살핌을 받았다는 사실 또한 입증되었다. 아무튼 분명한 사실은 먹이사슬에서 육식공룡이 가장 높은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으며, 거대한 용각류 공룡에게는 천적이 거의 없었다는 것이다.



트라이아스기(2억5,100만 년 전~2억만 년 전) - 파충류와 원시 포유류가 땅 위에서 번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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