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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 - 당신을 변화시키는 무의식의 힘

베레나 카스트 지음 | 프로네시스
1장 꿈의 매혹



길가메시부터 융까지, 흥미로운 꿈의 역사



길가메시의 악몽

길가메시는 두 개의 꿈을 꾸었는데, 그중 하나를 여기에 옮겨보겠다. 길가메시가 야생 암소 여신인 어머니 닌주나에게 꿈을 설명하자, 그녀는 꿈을 해석해주었다. 그녀는 미래를 알고 있었다. 닌주나의 성전에는 아마도 꿈 신탁소가 있었을 것이다.



오, 나의 어머니시여, 내가 지난밤에 꾼 꿈은 이러합니다.

하늘의 별들이 내게 나타났습니다.

아눔의 조각들처럼 그것들은 되풀이해서 내 위로 떨어졌습니다.

그중 하나를 치켜들려고 했지만, 나는 힘이 모자랐습니다.

나는 그것을 들썩거리게만 했을 뿐 걷어낼 수는 없었습니다.



나는 그것을 아내처럼 사랑했고 애무했습니다.

나는 그것을 높이 치켜들었고 당신의 발밑에 던졌습니다.

그런데 당신은 그것을 나와 같은 위치에 두려 하시더군요.



그의 어머니 야생 암소는 그 꿈을 다음과 같이 해석해주었다. 길가메시는 아눔(하늘 신)의 조각들처럼 강한 동지를 얻게 될 것이며, 그를 아내처럼 사랑하게 될 것이며, 그 친구는 여러 상황에서 그를 구할 것이다. 그리고 그녀, 즉 어머니는 그를 자식처럼 여기게 될 것이다. 이 꿈과 내가 여기서 소개하지 않은 다른 꿈은 니니베(Ninive)에 있는 아수르바니팔(Ashurbanipal)도서관의 토기판에서 발견되었다. 기록으로 전해진 꿈 중 가장 오래된 꿈이라는 사실이 중요하다. 길가메시 서사시가 대략 기원전 3000년에 씌어진 것임을 암시해주는 자료들이 있다. 그리고 이 매혹적인 서사시는 계속해서 새로운 방식으로 인식되고 있다. 이 꿈은 하늘에서 길가메시에게 보낸 것이었고, 그는 꿈을 진지하게 받아들였다. 꿈이 공포를 불러일으켰던 것일까?



이 꿈은 해석되었으며, 인생의 변화에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지침을 주었다. 길가메시는 그 자연인과 싸움을 해서는 안 되는 운명이었으며 그를 사랑해야 했다. 그래서 그의 동지가 되었고, 길가메시의 어머니는 그 자연인을 입양했다. 괴롭힘을 당한 우루크의 남자들은 엔키두에게서 도움을 얻길 기대했고, 길가메시는 그와 싸웠지만 이길 수 없었다. 이때 그의 꿈과 꿈의 해석이 그에게 전해진 것이다. 그는 싸움을 멈추었고, 동지를 얻게 된 것을 기쁘게 여겼다. 그들은 우정과 사랑의 관계를 맺었다. 하지만 이 우정에는 대가가 따랐다. 길가메시 서사시에는 인류 역사상 최초의 장례식이 기록되어 있는데, 이는 그의 꿈을 해석해준 엔키두의 장례식이었다. 이 토기판은 대략 서기 160년쯤에 꿈 해석에 관한 책을 처음으로 쓴 달디스(Daldis)의 아르테미도로스(Artemidorus)가 발견했다. 그 책의 자료를 구하기 위해 그는 당시의 문명 세계를 찾아다니며 꿈에 관한 텍스트들을 모았다고 한다.

꿈은 무의식의 세계이다 - 근대 시인들과 철학자들에게 있어서의 꿈

고대 후기에 이르자 꿈에 대한 관심은 약간 뒷전으로 밀려났다. 교회의 신부들은 꿈을 연구하는 데 몰두했다. 성적인 방탕함을 포기한 후 그와 관련된 꿈을 꾸었던 아우구스티누스가 누구보다도 이에 앞장섰다. 그 꿈은 그에게 어느 정도 절망적인 상태에 있는 인간이, 자신이 꾼 꿈에 대해 책임을 느껴야 하는지 자문하게 했다. 오늘을 사는 우리들로서는 누군가에게 '당신이 꾼 꿈에 대해 책임을 느낄 필요는 없지만, 자신의 성적인 욕구를 그 정도까지 억제한 데 대해서는 책임을 느껴야 한다'고 답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꿈에 대한 연구가 완전히 사라진 적은 없었다. 데카르트는 『꿈의 논증』에서 꿈에 대해 언급했다. 데카르트는 진리의 토대에 대해 탐구했다. 그는 자신이 거짓된 것들을 얼마나 많이 배웠는지를 확실히 한 후에 자신이 의지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탐구했다.



또 그는 무엇 때문에 정신이 꿈속에서 때때로 실수를 하는지, 깨어 있을 때는 그렇게 비판적이던 사람이 꿈속에서는 왜 그냥 믿어버리는지를 자문했다. 이에 대한 답으로 그는 꿈이 우리에게 "오래된 인간 문화의 상태들"을 다시 가져다주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또한 의식과 무의식의 관계를 본질적으로 지적하는 말들도 발견된다. "아주 오랫동안 의식적인 사고만이 일반적인 사고라고 생각해왔던 사람들이, 이제야 비로소 우리의 정신활동의 가장 커다란 부분이 무의식적으로 진행된다는 진리를 깨닫고 있다."



꿈과의 대화



꿈은 욕망의 창조물이다

꿈에서 깨어난 후에야 꿈은 비로소 꿈이 된다. 꿈은 우리가 깨어난 뒤에도 어느 정도 기억할 수 있는 잠에서의 인상적인 체험이다. 그것은 현재 우리 삶에서의 중요한 감정적인 상황에 대해 무언가를 이야기해주며 인지적이고 감정적인 결합을 야기하고 변화를 일으킨다. 그것은 잠 속에서 표현되는 우리 자신이다. 외부의 영향을 거의 받지 않은 순전한 우리 자신의 창조물인 것이다. 융은 "꿈이란 자의적인 활동이 아닌, 심적 활동의 단편일 뿐이지만, 깬 상태에서도 재생할 수 있을 정도로 많은 의식성을 지니고 있다"고 말한다. 꿈은 무의식적인 마음의 과정에서 나온다. 이 때문에 프로이트는 꿈을 "무의식으로 가는 지름길"이라고 불렀다. 그러나 이 무의식 과정에는 의식이 동반된다. 이런 점에서 또한 꿈은, 의식이란 도대체 무엇인가라는 문제를 탐구하는 데에도 아주 중요한 단서가 된다.



우리가 꿈을 꾸고 있는 한, 꿈에서 막 구성된 세계는 우리의 고유한 세계다. 암소들이 롤러스케이트를 탄다 해도 놀라지 않고 수학 방정식을 풀면서 울고 있는 거인을 봐도 신기해 하지 않는다. 꿈에서 우리는 잊을 수 없을 만큼 강렬한 감정적 경험을 할 수 있다. 공포뿐만 아니라 즐거움, 흥미, 분노도 체험할 수 있다. 꿈을 꾸고 있는 순간에, 우리에게 아주 실제적이고 실존적으로 의미 있는 사건이나 짧은 에피소드 속에서 깨어난 후에야 비로소 그것은 꿈이 된다. 그리고 스스로도 놀라워한다. 어떻게 내가 그런 꿈을 꿀 수 있을까? 우리 기억 속에 꿈이 남아 있다면 우리는 그 꿈을 다른 사람들에게 설명할 것이다. 또 꿈에 대해 떠오르는 것이 있다면, 그것을 현실세계나 다른 꿈 또는 그에 대한 감정의 갈등이나 우리의 그리움이나 바람 등과 연관시킬 것이다. 이렇게 꿈은 깨어 있는 현실세계와, 과거에 일어났던 사건, 그리고 미래에 있을 사건과 얽힌다.



기억과 망각

꿈을 기억하는 경우에만 우리는 비로소 꿈을 꿈이라고 한다. 우리는 하룻밤에도 여러 가지 꿈을 꿀 수 있다. 렘수면 단계에서는 꿈이 약간 더 기이하고, 렘수면 단계가 아닌 경우에는 약간 더 사유적 이다. 그것들은 매우 인상적이지만 사실 우리가 실제로 기억하는 것은 아주 소수의 꿈들뿐이다. 이는 우리가 꿈을 꾸는 동안 전전두 피질이 잠을 잔다는 사실과 관련이 있다. 그럼에도 꿈을 좀 더 잘 기억하는 사람들이 있으며, 꿈이 좀 더 많이 기억나는 상황들이 있다. 이미 많은 연구자들이 꿈을 기억하는 능력에 대해 연구했다. 이와 관련해서는 여러 가지 흥미로운 이론들이 존재한다. 정신 건강을 연구하는 만하임(Mannheim)중앙 연구소의 슈레들(Schredl)은 잠과 꿈에 대해 연구하던 중에 꿈의 기억과 망각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되었다. 그는 "시각적인 표상 능력이 뛰어날수록, 각인된 판타지 활동이 뚜렷할수록, 백일몽을 꾸는 빈도가 높을수록" 꿈을 잘 기억한다는 주목할 만한 연구결과를 내놓았다. "예술을 하는 사람들과 취미로 그림을 그리는 사람들이 꿈을 기억하는 빈도가 가장 높았다. 시각적으로 창의적인 활동을 하는 사람들이 꿈을 더 잘 기억한다는 의미다.



꿈은 왜 필요할까?



삶의 의미를 잃어버렸을 때

융에게 꿈과 꿈에 대한 연구는 '무의식과의 씨름이자'이자, 심리치료의 중심 주제였다. "(……)내가 인간적으로 그리고 학문적으로 연구한 거의 모든 문제들은 꿈이 동반되었거나 선행된 것들이었다(……0." 융을 따르는 대부분의 분석가들은 이 말을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다. 「심리치료의 목적」이라는 논문에서 융은 이렇게 쓰고 있다. "나의 환자들 중 대략 3분의 1은 임상적으로 노이로제라 규정될 만한 문제를 전혀 겪고 있지 않았다. 그들에게는 삶의 의미와 목표가 없었다." 융에 따르면, 이 환자들에게는 의식의 자원들이 고갈되어 있었다. 융에 따르면 꿈은 정체된 삶에 다시 흐름을 부여해준다. 오늘날 우리에게 부족한 의미 체험과 우울증과 무료함이라는 문제와 연관 지을 수 있는 정체로부터, 관심과 의미 경험과 미래에 대한 조망과 더불어 다시 삶의 본궤도로 진입하는 흐름을 부여하는 것이다. 꿈과 대면하고 꿈을 명상하고 늘 마음에 품는다면 그렇게 될 수 있다고 융은 말한다.



나쁜 기억에 갇혀 있을 때

하르트만에 따르면 꿈은 일정한 양식에 따라 외상을 가공(加工)한다. 먼저 두려움 그리고 놀람과 결합된 외상이 꿈에서 반복된다. 그러나 이미 작은 변화가 생겼을 수도 있다. 이 경우 꿈속의 장면과 실제로 체험했던 장면이 쉽게 구별된다. 불이 난 집에서 마지막 순간에 구출된 여자가 그 상황에 대한 꿈을 꾸었다. 비록 정확하지는 않았지만 그녀는 꿈에서 불을 체험했고 그 후 소스라치게 놀라며 깨어났다. 그러나 꿈은 이미 상황을 약간 변형시켰다. 그녀가 다시 불을 체험한 것은 사실이지만 여기에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그녀는 여전히 놀라면서 깨어났지만 예전처럼 뜨겁게 느끼지는 않았다. 꿈이 외상을 흘려보내기 시작한 것이다. 꿈은 이제 그 자료를 유사한 다른 자료와 연결시키며 경우에 따라서는 이전의 외상 경험과도 연결시킨다.



하르트만에게 꿈은 안전한 장소이다. 아무리 흥분된 상태에 있는 사람도 눈동자를 움직이거나 숨을 쉬는 것 외에는 어떤 식으로도 움직일 수 없는 기이한 렘수면 또한 그렇다. 꿈은 극도의 두려움이나 결과에 대한 부담감을 느끼지 않고도 많은 결합과 연결을 만들어낼 수 있는 안전한 장소다. 자극을 통해서 그리고 이 자극의 지배자가 되고자 하는 시도를 통해서 기억은 변화하기 시작한다. 따라서 하르트만이 생각하기에 꿈은 기억을 견고하게 만들어 주지 않는다. 오히려 꿈은 기억을 확장시켜 준다. 우리가 꿈에서 어려운 상황들을 극복했다면, 이 극복의 경험도 기억 속에 저장될 것이다. 꿈을 기억하는 것이나 꿈을 이야기하는 것 또는 꿈을 해석하는 것은 하르트만에게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그에게 중요한 것은 꿈을 꾸는 동안 발생하는, 가로지르는 연결들이다.



물론 이런 식의 견해는 꿈이 긴장감 넘치는 이야기들일 수도 있음을, 또 우리에게 중요한 자극을 줄 수 있는 밤의 세계와 우리를 연결해주는 것임을 등한시한다. 당연히 우리는 깨어 있을 때도 연관을 짓는다. 우리가 어떤 것에 매우 화가 나 있다고 가정하자. 이때 이와 유사한 상황들이 떠오른다. 우리는 이와 비슷한 상황에서 세련된 해결책을 어떻게 발견했는지를 기억할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가 아무런 손도 쓸 수 없던 상황들이 떠오를 가능성이 훨씬 더 크다. 우리의 감정은 진정되지 않고 더 커진다. 단단히 걸려드는 것이다. 꿈에서는 이런 일이 본질적으로 더 적게 일어나기 때문에, 꿈이야말로 감정적 흥분 상태와 문제들에 대처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하르트만은 주장한다.



2장 융과 함께 꿈 분석하기



융의 꿈 이론

하르트만은 꿈에는 '심리치료에 가까운 기능'이 있다고 가정했다. 조절되어야 할 감정들을 연관 관계 속에 세운 후 이를 새롭게 연결하고, 또 감정들을 통해 드러난 흥분까지도 이런 식으로 조절함으로써 꿈은 그러한 기능을 해낸다. 융 또한 그렇게 보았다. "꿈은 심성의 자극을 기초로 하고 있는 게 분명한데, 낯익은 콤플렉스들이 그 속에서 함께 펼쳐진다(……)."



융은 자기는 어떠한 꿈 이론도 내세운 적이 없다고 주장하지만, 우리는 그에게서 적어도 두 가지 이상의 잘 다듬어진 꿈 이론을 발견할 수 있다. 첫 번째 꿈 이론은 콤플렉스가 꿈을 야기한다는 이론이다. 이에 대해 융은 다음과 같이 이야기한다. "우리를 무의식으로 이끄는 것은 꿈이 아니라, …… 꿈과 증후의 원인이 되는 콤플렉스이다." 꿈 심리학은 의식이 방해하지 않을 경우 콤플렉스가 어떻게 인격화되어 등장하는지를 바람직한 정도로만 명료하게 보여준다(……). 콤플렉스들은 우리 힘으로는 어찌해볼 수 없는 우리의 꿈에서 행동하는 사람들이다.



두 번째 꿈 이론은 꿈이 의식적인 태도를 보상한다는 보상이론이다. 꿈은 현재 간과하고 있거나 더 발달되어야 할 인격의 어떤 측면들을 우리에게 보여준다. 또한 이 이론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삶의 현재 상황뿐 아니라 인생 전체의 성취, 즉 개성화과정을 위한 마음의 자기조절이다.



콤플렉스가 우리를 소유하고 있다



감정은 꿈에 모사된다 - 자기 체험의 '격정적인 핵', 감정

"감정이 강조된 콤플렉스와 마음에 미치는 그것의 일반적인 작용이라는 장에서 융은 인격의 본질적인 토대가 '감성'이라고 주장한다. 융이 말하는 감성이란 느낌, 심성, 감정을 의미한다. 매우 현대적인 주장처럼 들리지 않는가? 사실 이는 오늘날 널리 받아들여지고 있는 견해다. 깨어 있을 때건 꿈을 꾸고 있을 때건 인간의 삶에는 언제나 감정이 동반된다. 감정은 한 인간을 연속시켜주는 본질적 요소이다. 모든 감정은 자기 체험의 '격정적인 핵'을 이루며, 이 핵은 모든 변화 속에서도 우리가 우리 자신임을 체험하게 해준다. 우리는 반복해서 우리를 자극하는 부담스러운 경험들을 심리치료를 통해 찾아낼 수 있다.



심적인 문제들 또한 분명히 감정적인 문제들이다. 예를 들어, 마음속에 항상 분노를 쌓아두고 있지만 그것을 전혀 표현하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고 하자. 이 경우 그는 자신의 상황 속에서 불편한 심기를 건드릴 능력이 없는 것이다. 그는 자신이 인간관계의 제반 상황을 명백히 할 수도, 그렇다고 변화시킬 수도 없음을 감지한다. 그리고 그는 다른 사람들이 이해하기 어려운, 그리고 상황에도 전혀 어울리지 않는 커다란 분노로 반응한다. 자기 자신이 너무 소극적이고, 의욕이 없고, 모든 것에 무관심하다고 느끼는 사람들이 있다. "나는 내가 화를 내지도 기뻐하지도 않는다는 사실이 두렵습니다. 또한 나는 그 무엇도 걱정하지 않습니다. 나는 모든 것에 관심을 잃었습니다. 삶은 아무런 의미도 없이 지루할 뿐입니다." 그녀는 자신의 느낌을 조절하는 일을 소홀히 했고, 그 결과 이제는 더 이상 활기를 찾을 수 없다고 생각하기에 이른 것이다.



꿈은 콤플렉스가 연출하는 극장이다 - 판타지는 영혼의 자발적 활동이다

마음을 바라보는 융의 시각에서 콤플렉스와 꿈은 매우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그것(콤플렉스)들은 우리의 꿈에서 하나의 인격이 되어 활동한다(……)." 그리고 "꿈 심리학은 의식이 방해하지 않을 경우 콤플렉스가 어떻게 인격화되어 등장하는지를 바람직할 정도로 명료하게 보여준다(……)." 콤플렉스와 꿈과 상징이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견해는 이런 발상을 통해 생겨난 것이다. 융은 이미 1916년의 논문인 「초월적 기능」에서 이러한 연결을 중요하게 바라보았다. 융은 이 논문에서 감정이 강조된 내용(콤플렉스)이야말로 판타지, 즉 상징 형성의 출발점이라고 표현했다. "격정적인 장애 안에는(……)장애를 겪는 이가 부적용 상태를 제거하기 위해 자유롭게 사용해야 할 에너지가 들어 있다." 융은 이미 1916년에 마음을 스스로 자기 자신을 조절하는 시스템이라고 보았다. 즉 역학적인 균형을 이루는 것을 목표로 하는 시스템으로 바라본 것이다.



꿈에서 콤플렉스 경험들은 이른바 '낮의 잔여물' 속에서, 따라서 감정적으로 아직 낮에서 벗어나지 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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