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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지혜, 듣기

서정록 지음 | 샘터
서정록 지음

샘터 / 2007년 7월 / 431쪽 / 14,500원

1장 태교의 비밀 - 내 아이를 부드럽게 흔들거라, 바람아



산과 들과 노을 속에서, 인디언의 태교


세계 어느 민족이나 모두 태교의 가르침을 갖고 있다. 다만 민족에 따라 태교에 대한 태도가 약간씩 차이가 있는데, 대체로 전통사회와 원주민 사회로 갈수록 태교의 중요성이 높아지고 현대로 올수록 태교의 중요성은 간과되는 경향을 보인다. 가장 특별하다고 할 수 있는 북미 인디언의 태교는 어머니가 임신을 인식한 순간부터 시작된다. 산모는 모든 일을 중단하고 자신의 몸과 영혼을 깨끗이 정화하고는 조용한 숲길이나 호숫가, 강가를 거닐며 뱃속의 태아와 대화를 시작한다.



그녀는 자기 민족은 물론 별나라에서 이 지구로 여행 온 영적인 존재들에 대해 이야기해 준다. 과거 와 미래 세계에 대해 들려주고, 이 세상이 어떻게 창조되고 인간이 어떻게 출현했는지를 들려준다. 이야기를 통해 뱃속의 아이는 친척들과 민족의 영웅들, 그리고 돌아가신 분과 살아있는 사람들을 알게 된다. 흥미로운 것은 어머니가 태아에게 이야기를 들려줄 때 반드시 가락에 실어서 들려준다는 것이다. 인디언들은 춤과 노래야말로 인간의 행위 중에서 가장 고귀한 영적인 행위라고 믿는다. 따라서 그들이 아이에게 이야기를 옛 가락에 실어서 들려주는 것은 너무나도 자연스런 행위라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들은 왜 뱃속의 아이에게 끊임없이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일까? 그들의 이야기는 이렇다. 뱃속의 아이들은 말은 못해도 어머니가 하는 말은 다 알아듣는다는 것이다. 신비롭기 짝이 없는 이야기지만 그들은 그리 믿는다. 그래서 그럴까. 인디언 갓난아기들은 칭얼대고 우는 법이 없다. 우리의 갓난아기들이 조금만 불편해도 울고 짜고 난리인 것과 천지차이다. 그렇다면 인디언 태교의 핵심은 무엇인가? 그것은 한마디로 '듣기'이다. 아이에게 끊임없이 이야기를 들려준다는 것은 그러한 과정을 통해 아이의 귀를 열어 줌으로써 세상과 자연과 사람에 대해 준비하게 하기 위한 것이다. 귀를 연다는 것은 어느 면에서 가슴과 마음을 여는 것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인디언의 듣기 문화는 아이들의 요람에도 잘 나타난다. 이들의 요람은 좀 특별하다. 널빤지 같은 것을 바닥에 대고 그 위에 아이를 눕히고 가죽으로 덮은 다음 팔다리를 움직이지 못하도록 단단히 조이는 것이다. 그래서 요람 안의 아이는 어머니 등에서도 누워서 산과 하늘을 바라보며 귀로는 동물과 곤충들, 바람과 냇물이 내는 소리에 귀를 기울일 수 있다. 부모가 바쁠 때는 요람은 나뭇가지에 매달기도 하는데, 이때는 어머니가 조용히 노래를 불러준다. 이렇듯 인디언 아이의 생활은 어머니 뱃속에 있을 때나 태어났을 때나 이야기와 노래로 가득 차 있다.



아이가 태어나면 인디언들은 아이를 자연의 친구들(예: 동서남북, 대지, 태양 등)과 인사시키는 풍습이 있다. 뱃속에서 들어오던 자연의 친구들에게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는 것이다. 예를 들어 땅에게 인사를 시키는 경우 아이의 작은 발을 대지에 대고 이렇게 말한다. "사랑하는 어머니, 언젠가 이 아이가 크면 당신 위에서 걷고, 놀고 뛸 것입니다. 그가 어디를 가든지 그를 보살펴 주실 것을 청하옵니다." 이렇듯 마음으로 인사를 나눈 자연의 친구들은 나와 분리된 저만치 떨어져 있는 대상이 아니다. 그들은 내 삶의 일부요, 내 영혼의 또 다른 표현인 것이다. 인디언들의 삶이 생태적일 수밖에 없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이들의 태교와 듣기에는 이처럼 깊은 지혜가 담겨 있다.



어머니의 목소리가 아이의 뇌를 키운다.

태아는 수정된 지 며칠 내에 초보적인 귀를 발달시키기 시작하며 달팽이관은 4개월 반 만에 완전한 크기로 성장한다. 이런 사실에 기초하여 알프레 토마티는 인간의 언어발달이 언제부터 시작되는지 알고자 노력했다. 그는 각 발달단계에서 태아가 내는 소리의 주파수 내용을 분석하여, 언어발달은 뱃속에서 어머니의 목소리를 듣는 방식으로부터 시작한다는 것을 알아냈다. 오늘날 태교가 서구 사회에서도 관심사로 떠오른 것은 토마티 덕분이다.



현대 과학에 따르면 태아는 자궁 속에서 한 달이 지나면 내이에 전해지는 소리 에너지를 분류할 수 있다고 한다. 이것은 태아가 의식을 갖고 있는 존재라는 것을 의미한다. 자궁 속에서 느끼고, 지각하고, 기억하고, 경험을 통합한다는 것이다. 이때 태아 의식의 중추를 이루는 것이 귀다. 왜냐하면 뇌의 신경체제는 귀가 들은 소리를 기록하고 기억하기 위해 활동함으로써 발달하기 때문이다. 이는 듣는 것이 태아의 발달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가를 짐작하게 한다.



뱃속에 있는 태아에게 일찍 귀가 발달해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학자들에 따르면 귀는 소리를 듣거나 몸의 균형을 잡는 기능 못지않게 태아에게 심리적 안정감을 주고 뇌를 충전시켜 활성화시키는 기능이 있다. 우리 뇌는 세 가지 에너지원(산소, 음식물, 소리와 운동)에 의존하는데 이 중에서 소리(파동)와 운동(진동)을 관장하는 기관이 바로 귀이다. 귀가 소리를 통해 뇌를 자극하고 충전하는 방식은 산소나 음식물보다 훨씬 미묘하고 신비롭다.



소리가 태아의 뇌를 충전시키고 신체 발달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면 태아에게 가장 바람직한 소리는 어떤 것일까? 외부의 소리는 어머니의 배를 통과하여 양수를 지나 태아에게 전달되는 동안 줄어들지만, 어머니의 목소리는 척추를 지나 골반에 전해지는 동안 오히려 증폭된다. 첼로의 공명통과 같은 역할을 하는 골반이 척추를 통해서 전해진 소리를 증폭시키기 때문이다. 따라서 태아에게 전달되는 소리 중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은 어머니의 목소리일 수밖에 없다. 이런 사실을 발견한 토마티는 어머니의 목소리를 '소리의 탯줄'에 비유한다.



물론 태아는 아직 언어를 해독하지 못하므로 어머니의 목소리에 담긴 메시지의 의미를 알지 못한다. 태아가 이해하는 것은 메시지에 담긴 감정이다. 따라서 기쁨과 평온, 따뜻함, 사랑, 희망 등의 감정을 실어 나르는 목소리는 태아가 듣고자 하는 욕망을 부추길 것이다. 반대로 걱정과 근심, 불안과 두려움, 그리고 분노의 감정이 뒤섞인 목소리는 듣고자 하는 욕망을 꺾을 것이다. 인디언 여성들은 이런 사실들까지 알지 못했지만, 태아에게 이야기를 들려줄 때면 늘 노래와 가락에 실어서 들려주었다. 그것도 사랑을 듬뿍 담아서…. 어머니와 아이의 교감이 얼마나 깊었는지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태아는 어머니를 통해 바깥세상의 새로운 소리에 늘 관심을 갖고 귀를 기울인다. 따라서 태교를 목적으로 한다면 태아에게 재미있는 이야기를 많이 들려주되 기왕이면 노래를 곁들여 불러 주는 것이 좋다. 만일 그렇게 해 줄 수 없는 상황이라면 음악을 들려주는 것도 좋다. 토마티는 태아에게 적당한 음악으로 모차르트, 그레고리안 성가, 바로크 음악, 민요나 옛 가락을 권한다. 이런 곡들은 어머니의 불안과 두려움을 줄여주고, 태아의 귀를 즐겁게 해준다. 또한 음악에 귀를 기울이는 것은 어머니와 아기가 자연스럽게 서로 귀를 기울이고 대화하는 기회를 만들어준다. 토마티는 말한다. 아이에게 따뜻한 가슴을 주고, 삶의 욕망을 주고, 목소리를 주는 것은 바로 어머니라고. 어머니의 목소리는 태아에게 천사의 소리요, 신의 소리와 같다고.



2장 잃어버린 지혜, 듣기 - 귀 있는 자는 들으라



왜 고독이 주는 선물을 외면하는가. 인디언의 듣기


인디언들은 사물의 본질을 신명을 통해 본다. 신명이란 육신의 눈이 아니라 영적인 눈으로 보는 것이다. 인디언들은 이러한 신명은 오직 침묵과 듣기를 통해서만 도달할 수 있다고 말한다. 침묵하고 들을 때에만 자기 내면으로 향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실제로 사춘기에 접어든 인디언 소년들이 하는 신명탐구(vision quest: 들판이나 산에 가서 여러 날 동안 단식하며 영적 탐구를 하는 의식)는 침묵 속에서 신과 자기 내면의 목소리를 듣는 과정이다. 이 영적 탐구 과정을 통해 그들은 세상의 모든 존재가 연결되어 있으며, 결국 모든 생명은 하나라는 것을 깨닫는다. 그리고 자신의 삶에 필요한 지혜와 타인에 대한 이해와 용서의 힘을 얻으며, 자신이 누구인지, 왜 이곳에 왔는지, 그리고 이곳에서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알게 되는 것이다.



한 인디언 부족은 이제 막 사춘기에 들어서는 아이에게 이렇게 말한다. "이제 너는 뭔가를 알고 싶어 해. 그런데 어디서부터 시작하지? 답은 '듣는 것'이란다. 북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공기에 귀를 기울이고, 대지의 숨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거지. 그리고 밤하늘을 여행하는 별들에게 귀를 기울이는 거야." 그는 듣는 것이 마음을 열고, 영적 세계로 입문하는 첫 단추임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어머니 뱃속에서 듣는 교육을 받은 인디언들이라 하더라도 자기 내면으로 들어가서 안과 밖에서 나는 소리와 그 소리 너머의 것을 듣는다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인디언들은 봄이 되면 아이들을 큰 나무 밑에 앉힌다. 그리고 나무 수액이 뿌리에서 줄기를 타고 올라가는 소리를 듣게 한다. 인디언들은 나무에게 말을 걸면 나무가 말을 한다고 한다. 바람이라도 불면 나무들이 스스로 흥에 겨워 호들갑을 떨며 노래를 부른다고. 나무 밑에 앉아 귀를 열고 봄이 오는 소리를 들으며 자란 인디언 아이들은 바람, 구름, 산과 강, 들판에 핀 꽃들, 해와 달과 별이 하는 말도 다 알아듣는다.

나무와의 대화는 인내가 필요하다. 이럴 때 인디언 영적 교사들은 말한다. 나무란 말없이 내 모든 이야기를 들어주는 친구라고. 내가 무슨 말을 하든 성냄 없이 열심히 들어준다고. 인디언들에게 나무와 대화하는 것은 궁극적으로 마음을 열고 존재의 문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그래서 나무가 바로 나임을, 내가 나무임을 느끼고 아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석가모니가 보리수 밑에서 깨달음을 얻었다는 것은 매우 상징적이다. 아이들이 듣기에 어느 정도 적응이 되면 듣기는 점차 자연의 모든 존재로 확대된다. 왜냐하면 자연의 존재들 또한 생명을 갖고 있고 우리처럼 느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인디언들은 일상의 모든 행위에서 자연의 존재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내면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라고 말한다. 이것이야말로 생명을 공경하고 다른 존재를 이해하는 것이라고. 이런 침묵과 듣기는 사람을 성숙하게 만들고 투명하게 만든다. 결코 나를 앞세우고 남위에 올라서려고 하지 않는다. 오히려 가슴을 열고 낮추게 된다. 이런 침묵과 듣기는 우주 안에서, 자연 속에서, 그리고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올바른 관계를 맺는 토대라고 할 수 있다.



기도는 신의 음성을 듣는 일, 성경의 듣기

모든 종교와 영적 전통은 예외 없이 듣기에 대해 말하고 있다. 성경에는 구약에서 1천 번 이상, 신약에서 425번 이상 듣기와 관계된 말이 나온다. 구약에서 신은 모세에게 몇 번이고 강조한다. 내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을 때 이스라엘을 벌하고 심판하겠노라고. 신약에서는 예수가 시종일관 "귀 있는 자는 들으라"고 말한다. 이는 구약시대에 신이 자기의 말에 귀 기울이라고 명령하는 것과는 다른 것이다. 예수는 우리의 내면에 직접 호소하고 있는 것이다. 신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라고.



신의 말씀에 귀 기울인다는 것은 무엇을 뜻하는가? 그것은 신에게 귀의하고 말씀에 복종하는 것을 의미한다. 내 의지가 아니라 신이 인도하는 대로 사는 것이다. 신이 나의 삶을 인도하도록 나를 낮추고 순종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매우 어려워 보인다. 자신의 삶을 모두 신에게 헌신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하여 토마티는 말한다. "신은 오직 진실된 듣기를 통해서만 만날 수 있다. 그러나 일상의 많은 요구와 관심들은 비상한 듣기 능력을 파괴한다. 그러나 신과 하나 되기 위해서, 신의 음성을 듣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우리들 자신에 대해 잊어버릴 필요가 있다."



그렇다면 신에게 나아가는 가장 좋은 방법은 무엇인가? 성경은 기도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네가 은밀히 기도하는 것을 보시고 응답하실 것이다.(마태복음 6장 6절)" 한마디로 기도는 내면의 소리를 들으라는 것이다. 그 내면으로부터 신의 음성을 들으라는 것이다. 테레사 수녀는 기도할 때 특별히 내면의 침묵에 귀 기울이기를 권한다. 독실한 신앙생활을 했던 키에르케고르는 다음과 같은 시를 남겼다. "기도라는 것은 자기가 말하는 것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 아니다. 기도는 침묵하는 과정이며 나아가 침묵 속에 들어가 마침내 신이 나의 말을 들을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다."



JC 하쉬는 말한다. 듣는 것이야말로 기도를 기도답게 하는 것이라고. 신 또한 나와 마찬가지로 하실 말씀이 있다고. 기도는 신에게 나아가 그의 말씀을 귀담아듣는 데 진면목이 있다고. 성경에서 끊임없이 "들으라" 하는 것도 바로 그 때문이라고. 우리가 온전히 신 앞에 나아갈 때 기도는 절로 될 것이다. 그래서 신 앞에 나를 낮추고 겸손해질 것이다. 신에게 요구하기보다 신의 말씀을 듣는 데 더 많은 시간을 보내게 될 것이다. 그렇게 듣기로서의 기도가 생활이 될 때 마음의 평화를 얻고 내면에서 기쁨이 차오를 것이다. 신의 은총과 축복이 늘 함께하기 때문이다.



예수는 신의 아들로 거듭나기 전, 광야로 나아가 40일 동안 단식하며 기도했다. 신의 음성을 듣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그는 신의 음성 대신 자신의 욕망을 만난다. 그 대목을 마태복음에서는 "마귀의 시험"이라는 이야기로 쓰고 있다. "마귀는 그를 높은 산으로 데려가 온 세상을 보여주며 말했다. 만일 네가 내게 엎드려 절한다면 온 세상을 너에게 주겠다." 예수 역시 우리와 똑같은 인격이 있었다. 그 역시 사람들에게 기적을 보이고 싶어 하고 세상의 권세를 누리고 싶은 마음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예수는 욕망의 길로는 사람들을 구원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그 길을 거부했던 것이다.



그런 욕망은 우리 내면에 있는 어두운 에너지다. 나를 내세우고 싶고 다른 사람을 지배하고 싶은 마음, 그 에너지를 털어버린 뒤에야 예수는 온전히 영적인 길을 갈 수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예수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해 외치기 시작한다. "귀 있는 자는 들으라. 천국이 가까이 왔다!"



3장 나다 브라마 - 우주는 소리다. 소리가 신이다



어머니 품처럼 인간을 감싸주는 신비한 주파수


과학은 때로 우리가 모르는 것을 밝혀 우리를 놀라게 할 때가 있다. 슈만 공명이라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지구의 대기권 상층부에는 이온층이 형성되어 있다. 이온층은 라디오나 TV의 공중파 전파를 반사시키는 역할을 한다. 그런데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이온층과 지구 표면 사이의 공간이 일종의 공명통 역할을 한다는 점이다. 대기권에서는 천둥 번개가 1초당 200번씩 전기와 소리 에너지를 방사하는데, 그 결과 평균 7Hz~10Hz 사이의 주파수대의 공명이 유지된다고 한다. 이 공명현상을 '슈만공명' 또는 '가이아의 뇌파'라고 부른다.



놀라운 것은 이러한 슈만공명의 주파수가 인간의 뇌파의 평균 주파수와 정확히 일치한다는 사실이다. 물론 평소에는 슈만공명의 소리를 거의 의식하지 못한다. 활동할 때의 뇌파가 슈만공명보다 높은 베타파(4~50Hz) 상태에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가만히 쉬거나 명상을 할 때 우리는 슈만공명과 같은 알파파(8~14Hz) 상태에 있게 된다. 이때 우리는 더할 수 없는 안락함과 편안함을 느낀다. 만일 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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