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암 박지원에게 중국을 답하다
유광종 지음 | 크레듀
1장. 담을 쌓는 13억의 지략가들
담장 - 폐쇄적 속성을 가진 중국 역사와 문화의 상징
중국의 수도 베이징(北京)의 문화는 담장의 문화다. 평균 11미터나 되는 붉은 담으로 둘러쳐진 자금성(紫禁城), 중국 지도부들이 모여 사는 중남해(中南海), 골목길로 들어가면 늘 부딪치는 전통 주택 사합원(四合院), 무장 경찰이 지키는 각종 관공서 모두 높은 담으로 꼭꼭 둘러싸여 있다. 베이징에서 북쪽으로 한 시간 정도 올라가면 바로 마주치는 만리장성(萬里長城)은 이 담들의 '두목'이다. 무려 6,000킬로미터에 이르는 거대한 벽을 쌓아 중국의 안전과 부(富)를 지키려고 했으니, 중국인은 담 구조물에 관한 한 '편집증 환자'일지도 모른다.
한반도에 살았던 사람으로서 연암(燕巖) 박지원 선생은 중국을 매우 주의 깊게 관찰한 지식인이다. 그의 중국 연행록 『열하일기(熱河日記)』를 보면 베이징에 도착할 무렵 현재의 허베이(河北)성으로 추정되는 어느 지역에서 마을 전체가 담으로 둘러싸인 곳을 흥미롭게 관찰한 대목이 나온다. 그가 본 송가장(宋家莊)이라는 곳의 풍경은 연암을 의아하게 만들었다. 전체 촌락을 둘러싼 성곽이 2리 남짓이요, 높이는 여남은 길은 됐고, 문 위에는 망루(望樓)를 세운 모습이었다. 송씨 집성촌으로 보이는 이 마을의 외곽이 군사적 용도인 담으로 둘러싸인 모습에 조선의 지식인은 궁금증이 인 것이다.
요즘 중국인들도 담을 좋아한다. 중국의 아파트는 담이 확실하게 둘러서야 일단 호화 아파트의 기준을 충족시킨다(아파트의 문짝에는 밖에서 잡아당기는 고리가 없다. 열쇠가 있는 사람만이 문을 쉬이 열 수 있게 되어 있다. 열쇠가 없는 사람은 발 들여놓을 생각을 말아야 하는 문이다). 중국에서는 사무실 배치에도 담장 문화의 특징이 배어 있다. 현대식 초고층 빌딩에 입주해 있는 중국 기업의 웬만한 사무실을 출입하노라면 뭔가 답답함이 느껴진다. 문 앞을 턱 가로막고 서 있는 출입구의 벽부터가 그렇고, 비교적 높은 파티션도 색다름을 느끼게 하는 풍경이다. 이런 것들은 공간을 훤하게 열려 있는 구조보다는 뭔가 감추려는 구조로 만들기 쉽다.
담벼락의 기능이 안을 철저하게 가리는 것이라면 중국인들은 마음속에도 겹겹이 담을 쌓아놓고 사는 것 같다는 인상이다. 담과 담끼리 연결되어 있는 사회에서는 사람이 키우는 상상력 또한 매우 현실적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사람들끼리의 교류는 담을 경계로 해서 진행된다. 현실적 계산이 늘 앞서게 마련이고 정확한 경계(境界)인식, 나아가 그를 중심으로 하는 사람 사이의 관계가 형성되기 십상이다. 담은 폐쇄적 속성을 가진 중국 역사와 문화의 한 상징이다. 아울러 중국인 내면에 오랫동안 축적된 다른 이와의 교류와 거래 방식, 일반적 의사소통 구조 등을 살펴볼 수 있는 좋은 상징임이 틀림없다.
바둑과 마작 - 중국인들의 의식에 자리잡은 권모술수의 상징
지금은 한국 기사들이 세계를 호령하지만 각각 19개씩 씨줄과 날줄로 엮인 361칸에서 벌어지는 바둑은 중국인의 발명품이다. 생각으로 펼치는 전쟁인 바둑에서는 상대를 제압하기 위해 사람이 생각할 수 있는 모든 수(手)가 동원된다. 모두 네 개씩 한 조합을 이루는 136가지 패를 이용해 승부를 가르는 마작(麻雀) 또한 중국인이 만든 게임이다. 역시 무궁무진한 수가 서로 어울리면서 하면 할수록 재미를 자아내는 게임이다. 바둑과 마작. 승부를 다투는 이 게임 판에서 나타나는 것은 권모(權謀)의 세계다. 나를 감추고 상대를 재빨리 읽어야 하며, 상대의 허점이 보이는 대로 바로 공격해 들어가야 한다. 명분을 두고 고민하거나 인정에 얽매여 머뭇거리면 판을 망친다.
게임과 도박으로 상징되는 권모의 세계는 중국인들의 정신세계를 이루는 중요한 요소이다. 한국인들이 권모술수와 중상모략을 부정적으로 인식하는 데 비해 중국인들은 현실 게임에서 승부를 가르는 지침으로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 손자(孫子)는 권모와 술수의 게임 세계를 집대성한 인물이다. 그리고 공자와 노자 못지않게 중국인의 현실적 처세술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는 인물이기도 하다. 그의 유명한 저서 『손자병법(孫子兵法)』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전쟁에서 이기기 위한 모략(謀略)을 망라한 책이다. 그는 '전략을 운용하는 것은 물과 같아야 한다'고 말했다.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자연스럽게, 깊은 곳에서는 일단 숨을 멈춘 뒤 다시 흐르고 얕은 곳을 거침없이 흘러 지나가는, 상황과 때와 지형 조건에 맞춰 스스로 변화하는 물과 같아야 한다는 말이다.
1920년대에 중국인의 권모술수와 모략에 관한 이면적 사고들을 종합해 체계화를 시도한 리쭝우(李宗吾)의 『후흑학(厚黑學)』은 1990년대 들어 다시 출판되면서 지금까지 중국 서점의 중요 판매대를 장식하고 있다. 마오쩌둥과 덩샤오핑 등 중국 최고위 지도자들 또한 잘 알려진 모략의 열렬한 팬이다. 이들은 침대 머리맡에 『이십오사(二十五史)』, 『자치통감(資治痛鑑)』 같은 역사책들을 놓고 과거 제왕을 둘러싼 권력 암투가 어떻게 진행됐는지를 늘 연구한 모략의 마니아급 인물들이다.
중국인들은 모략을 일상화하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 모략은 중국인들에게는 목적을 이루기 위한 당당한 수단이다. 아무리 그럴싸한 명분이 있더라도 이를 실행해 옮길 방법이 없다면 사람의 뜻은 그저 헛된 수고, 즉 도로(徒勞)에 그치기 마련이라는 생각에서다. 중국인들은 더 나아가 모략을 사람이 거창하게 이루려는 뜻, 즉 도(道)와 나란히 두고 가치를 매기는 경우도 있다. 모략은 결국 머리를 어떻게 운용하는가 하는 방법과 경험을 헤아리는 방식이다. 또한 경쟁을 전제로 하면서 상대와의 싸움에서 승리를 거두는 방법에 대한 종합적인 모색이다. 이를 테면 놀음과 도박은 결국 모략의 세계가 집중적으로 표현되는 경쟁의 형식인 셈이다.
바둑과 마작에 나타나는 정치(精緻)하기 이를 데 없고 그 범주가 하해 같기만 한 모략의 세계. 이는 사람의 씀씀이가 끝도 없이 이어지는 무형의 싸움터다. 세계 어느 나라 어느 사람들보다 도박과 함께 그 속성인 머리싸움을 즐길 줄 아는 중국인들. 겉으로 나타나는 느릿느릿함 속에 숨어 있는 상황에 대한 예리한 관찰력, 그에 부응하는 기민한 술수 구성력, 이것이 중국인들을 결코 얕잡아 볼 수도 없고 또 그래서는 절대 안 되는 이유이다.
내 발에 신발을 맞춘다 - 시간적 물리적으로 유구하고 방대한 대(對) 자연 투쟁사
베이징에는 명·청 시대에 전문적으로 금붕어를 키워 황궁과 귀족들에게 판매하는 진위츠(金魚池)라는 곳이 있었다. 이곳에서 사람들의 눈을 즐겁게 하기 위해 수많은 금붕어가 고쳐지고 비늘이 수없이 떼여 나가는 고역을 치렀다. 중국인들은 이렇게 자연을 자연스러움 그대로 두는 습성이 없다. 항상 고치고 만드는 버릇이 배어 있다. 그것도 '나'를 위한 기호품과 관상용 또는 심리 만족의 도구로 말이다. 기형이어야 몸값이 오르는 금붕어는 여성의 발을 묶었던 전족과 함께 작위성을 두려워하지 않는 중국인의 발명품들이다.
사람의 손길로 자연을 길들이는 습성은 돌을 쌓아 산을 만들고, 물을 끌어다 하천의 모양을 흉내 내는 가산가수(假山假水)식 중국 정원(庭園)문화로 면면히 이어졌음을 알 수 있다. 전설이긴 하지만, 거대 공정에 대한 자부심은 중국의 고사성어에 처음 보인다. '어리석은 늙은이'라고 할 수 있는 나이 아흔의 우공이 산을 옮겼다는 우공이산(愚公移山)의 고사다. 태형(太形)과 왕옥(王屋)이라는 산을 '내가 못하면 아들이, 아들이 못하면 손자가 옮긴다.'는 맹세로 끝내 산을 없앤다는 얘기다. 중국 춘추전국 시대 작품인 『열자(列子)』에 나온 이야기다.
우공이산의 이 같은 정신세계는 인류 역사상 보기 드문 거대 공정으로 나타났다. 유목민의 침입으로부터 자신의 안전을 보장하기 위한 거대한 담, 만리장성은 진시황(秦始皇) 이전에 시작해 2000여 년 동안 쌓아온 축조물이다. 총길이 1,764킬로미터에 달하는 대운하(大運河), 쓰촨(四川)성 청두(成都) 평원을 촉촉이 적시는 2100여 년의 수리 공사 도강언(都江堰)은 잘 알려진 중국 고대 공정 문화의 작품들이다. 길이 700여 킬로미터, 평균 폭 1.1킬로미터의 거대한 호수를 만들어낸 쌴샤(三峽)댐 공사는 이 같은 거대 공정의 중국 문화가 오늘에 이어져 생겨난 걸작이다. 오늘의 중국의 모습도 예외는 아니다. 중국 정부는 자연이 주는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온갖 공정(엔지니어링)에 열심이다. 이러한 거대 공정은 결국 자연과의 싸움에서 지지 않으려는 인간의 자존심과 노력, 끈기를 보여준다. 문제는 자연 질서를 지배하려는 데서 생겨나는 지나친 작위성(作爲性)이 문제다.
'공정'이라는 말은 요즘 중국에서 유행하는 단어다. '1300여 년의 오해'라며 기존의 인식을 완전히 뒤엎고 고구려사를 자국사로 편입하려는 이른바 '동북 공정' 또한 지나치게 작위적인 의도를 내포하고 있는 중국식 '공정 문화'의 소산이다. 동북 공정은 자연스런 역사 경계에 인위적인 손길을 가하는 중국 정부의 태도에서 비롯되었다. 한(漢) 왕조 이후 생성된 중화(中華)라는 정치적 이데올로기도 예외는 아니다. 세계 중심에 중국이 놓여 있고(그래서 가운데 중이라는 글자를 사용했다) 주변은 모두 중심에 복속해야 한다는 중화주의적 역사관, 땅 위에 사는 사람이 모든 것을 개조할 수 있다는 자신감, 그래서 생겨난 중화주의적 세계 질서 편입, 이를 기점으로 생겨나는 또 다른 여러 종류의 작위적 질서, 아마 이런 것들 때문에 부상하는 중국이 부담스러운 것이 한국의 현실일지도 모른다.
2장. 중국의 두 얼굴 공자와 노자
빽빽한 네모 집합 - 질서와 위계, 반듯한 구획과 영역 의식, 숨 막힐 듯한 형식미의 근간
중국 수도 베이징에 남아 있는 옛 황궁 자금성에 대한 인상이다. 이 거대한 황궁은 베이징 옛 성곽의 정(政)남문인 영정문(永定門)으로부터 북쪽 끝의 종루(鐘樓)까지 8킬로미터에 이르는 중간 축선을 두고 모든 것이 좌우대칭으로 배치된 것이 특징이다. 황궁 안의 무수한 전각뿐 아니라 황제가 신하들을 만나 조례(朝禮)를 하던 마당, 전각을 받친 축대, 후궁의 무수한 담, 구중궁궐 속의 각종 집채가 모두 사면체다. 하늘에서 찍은 사진을 보면 이 수많은 네모가 엄격한 좌우대칭과 남북향 비례에 따라 아주 정밀하게 구획되어 있는 점이 눈에 쏙 들어온다. 중국 전통주택인 사합원도 네모 질서를 빼놓고는 설명하기 힘들다. 모든 것이 좌우대칭으로 배열된 사각형(方形) 구조다.
네모 구조는 중국 관가(官家)에서 사용하는 언어에도 많이 나타난다. 네 글자를 한데 엮어 쓰는 사자성어(四字成語)가 그 예다. 요즘 언론 보도에서 자주 나타나는 실사구시(實事求是), 3개 대표(三個代表, 공산당이 선진 생산력, 선진 문화발전, 광대한 인민의 근본이익을 대표해야 한다), 화평굴기(和平 起, 평화롭게 일어서자), 퇴경환림(退耕還林, 밭을 다시 숲으로 만들자), 서부개발(西部開發), 표본겸치 또는 중재치본(標本兼治, 重在治本, 겉과 근본을 함께 치유하되 중점은 근본 치유에 둔다) 등을 들 수 있다. 네 자로 된 말은 따로 두 글자씩 뗄 수 있어 좌우대칭을 이루는 구조다. 아울러 두 글자는 서로 주(主)와 보(補)의 구조를 이루면서 각자 한구석을 담당하는 의미에서 완연한 네모꼴이다.
네모꼴의 문화는 질서와 위계로 상징되는 중국 관가(官街), 사합원에 거주했던 상류층과 문인 및 지식인들의 문화로 주류를 이룬다. 네모꼴 문화에서 나타나는 것은 형식주의의 병폐이다. 송나라 때 만들어진 문체인 팔고문(八股文)은 명과 청대의 과거 시험 문장으로 자리잡으면서 중국 선비들의 두뇌 작용을 매우 오랫동안 편향적으로 지배한 형식미의 최고 구현체다. 그러나 500년 넘게 중국 지식층을 끊임없이 지배해오면서 자유스런 사고를 크게 가로막는 비인간적인 문장 형식이었다. 팔고의 전통은 끈질기게 살아남아 사회주의 새 중국을 건국한 마오쩌둥도 공산당 내에서 형식에 집착해 자신의 생각을 감추기에 급급한 간부들을 향해 '당(黨)의 팔고를 집어치워라'라며 격노한 적이 있다.
네모꼴 문화를 보여주는 중국의 행정 체계도 만만찮은 문제를 안고 있다. 자리와 업무 배치가 지나치게 형식적이고 작위적이어서 필요한 행정을 수반하지 못하는 단점이 있다. 자금성의 무수한 네모체와 현대 중국 관변 사회의 엄격한 자리 구획성, 절차의 까다로움과 번잡성이 들어 있는 팔고문의 문화적 양태는 우연히 맞아떨어진 모습이 아닐 것이다.
이러한 문화의 전통은 어디에서 비롯한 것일까? 중국은 잘 알려진 것과 같이 매우 오래된 전통 농업 사회다. 이를 바탕으로 발달된 제도는 종법(宗法)이다. 혈연을 중심으로 형성된 종법 질서는 그 집안의 가부장을 필두로 수직적인 위계질서가 극도로 발달한 제도이며, 장자(長子) 우선의 가계 질서가 우선적인 특징이다. 위에서 명령하면 아래에서는 그대로 따라야 하는 상명하복(上命下服)은 종법에서 내세우는 규정, 즉 종규(宗規)다. 이는 사람의 자유로운 행위와 사고를 철저하게 억압한다. 종규에 의해 사람의 '잘못'이 다스려지는 극단적인 사례는 바람을 피웠다고 의심되는 종법 질서 안의 부녀자가 한 사람이 겨우 들어가는 작은 우물 속에 갇혀 굶어 죽는 경우다. 전족을 거부한 종가 질서 속의 여아들은 종규에 의해 집단 몰매를 맞아 죽기도 했다.
이러한 문화 전통하에서 네모는 움직이기 힘든 구조이다. 네 아귀가 철저하게 맞아떨어져 움직임, 즉 변형성(變形性)이 크게 떨어진다. 하지만 견고함은 다른 모습의 구성체가 넘어서기 힘들다. 느릿느릿해 보이면서도 뭔가 대단한 안정을 이루고 있는 중국의 외연은 아무래도 이런 네모꼴 문화가 주도한다고 봐야 옳을 것 같다.
돌고 돌아라, 동그라미 - 변칙과 임기응변 융통성에 능한 중국인 사고의 뿌리
쓰촨성에 전해 내려오는 민간 예술 가운데 얼굴 바꾸기라는 뜻을 지닌 볜롄(變 )이라는 것이 있다. 전통 경극에서 보는 요란한 분장을 한 사람이 나와 많게는 1분 동안 30여 차례 얼굴 모습을 바꾸는 일종의 기예(技藝)다. 큰 행사나 잔칫집 등에 초대되어 입으로 불을 내뿜으면서 한편으로는 얼굴을 순식간에 바꾸는 볜롄의 마술은 보는 이들의 정신을 홀딱 빼놓는다.
변화 혹은 변(變)에 대한 관념은 중국인들에게서 대표적으로 관찰되는 특징 중 하나다. 정해진 원칙대로 초지일관하는 것은 아예 기대하지 않고, 상황과 현실에 맞는 방법을 찾아 목적을 달성하는 행동 양식이다. 따라서 이는 수많은 변칙과 임기응변(臨機應變), 융통성으로 이어진다. 중국이 때로는 엄격하게 통제된 나라라는 인상을 주면서도 한편으로는 '위에 정책이 있으면 아래에는 대책이 있다(上有政策, 下有對策)', '되는 것도 없고 안 되는 것도 없는' 식의 이상한 나라라는 느낌을 주는 것은 이 같은 변칙과 변통(變通) 행위들과 무관하지 않다.
중국의 최고 부자 동네로 꼽히는 저장성 윈저우(溫州)는 한국인에게는 기이한 인상을 주는 곳이다. 공업 개발구의 가내 수공업 업체로 보이는 다 쓰러져 가는 공장에서 최첨단 부엌 가구가 만들어지고, 이탈리아 최고급 가죽 소파가 쏟아져 나오며, 첨단 컴퓨터와 주변기기들이 만들어진다. '전화 몇 대 돌리면 주변에 있는 벌집 같은 공장들에서 필요한 부품이 한꺼번에 다 배달되고 업자는 가공 솜씨를 발휘해 뭐든지 만들어낸다'는 게 한 원저우 신문 기자의 소개다. 수십만 달러 규모의 무역을 척척 해내는 홍콩의 페이퍼 컴퍼니(서류만으로 만든 회사), 한 달도 채 안 걸려 영화 한 편을 뚝딱 만들어내는 홍콩 영화, 이 모든 것을 일컫는 '홍콩 익스프레스(초특급)' 현상은 모두 이 변칙과 변통에 입각한 임기응변의 문화적 산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