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의 실크로드를 찾아서
심형철 지음 | 포스트휴먼
1부. 대지의 기나긴 복도
실크로드의 출발지 - 시안의 안정문을 나서며
중국의 역사를 보려면 시안(옛 당나라의 수도)으로 가라는 말이 있다. 시안은 천년의 고도답게 고색 창연한 빛이 감도는 곳이다. 당나라가 세계 최고의 제국이었던 8세기까지 창안(시안의 옛 이름)은 세계의 중심이었다. 문화의 다양성을 수용하고 활용하여 새로운 문화를 창조할 줄 알았던 당나라 사람들의 정신세계는 분명 실크로드와 연결되어 있다. 창안은 서역과 중앙아시아, 유럽을 잇는 실크로드의 출발지이자 종착지이다.
"문화는 물과 같아서 고이면 썩게 마련이다. 문화는 흘러 들어와 섞이고 다시 흘러 나가야만 발전할 수 있다는 진리를 고도 창안에서 보았다." 실크로드 답사에 앞서 이곳에 들른 이유는 진시황의 병마용을 보기 위해서도 당 현종과 양귀비의 로맨스 현장을 보기 위해서도 아니다. 그 이유는 바로 이곳이 실크로드의 시작과 끝이기 때문이다. 과거 실크로드로 향하는 첫 발걸음은 시안 성문을 나서는 일이었다. 나도 실크로드의 첫걸음을 여기서 시작하고 싶었던 것이다. 안정문은 시안의 서대문으로 서역의 안태강정을 기원하는 의미가 담겨 있다. 안정의 의미를 담고 있는 안정문을 통과하면서 실크로드 답사가 안전하고 의미 있게 이루어지기를 기도하였다.
란저우에서 황허를 바라보다
란저우는 감숙성의 성도이다. 서역으로 가는 기나긴 대륙의 복도 허시저우랑
의 기점인 동시에 실크로드의 중요한 거점으로서, 서역의 생산품 및 서역을
통해 들어오는 페르시아와 유럽의 물건들이 집결되었던 곳이다. 란저우의 시
내 복판으로 중국의 젖줄 황허가 흐른다. 란저우의 주위에는 온통 황토 산이
다. 그래서 강물도 황토 흙을 머금고 유랑한다. 언젠가 TV에서 보았던 황허 모친상을 바로 란저우의 강변에서 볼 수 있었다. 이것은 엄마가 아기를 품에 안고 있는 모습인데 이를 창작한 사람은 황허가 중국의 어머니와 같은 존재라는 것을 표현한 것이라 한다.
황허는 정말 누렇다. 누렇다 못해 붉다. 석양빛이 드리우면서 강물은 점점 붉어진다. 넘실넘실 흘러가는 저 강물이 히말라야 눈 덮인 봉우리에서부터 흘러와 중원을 가로질러 서해까지 흘러간다고 하니 그 길이가 얼마인가. 강물의 길이만큼 긴 실크로드를 따라 떠난다니 기대와 설렘이 물 위에 넘실댄다.
대지의 복도, 허시저우랑
허시저우랑은 감숙성의 성도 란저우에서 둔황으로 길게 이어지는 기나긴 협곡 길이다. 이 길은 치롄 산맥 북쪽과 허리산, 룽서우산의 남쪽 사이로 동서로 1천 킬로미터나 길게 뻗어 있다. 허시저우랑은 황허의 서쪽에 있는 긴 복도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이곳은 한 나라 장건이 실크로드를 개척한 이래 서역 문물과 중국 문물이 교환되는 유일한 통로였고 역대 중국 왕조와 흉노, 티베트 등은 서역과의 무역통로를 확보하기 위해 서로 치열한 전투를 벌였다. 허시저우랑을 통과하는 기차는 유서 깊은 고대도시 우웨이, 장예, 져우취엔을 거쳐간다. 우웨이는 제비보다 빠르다는 동분마(제비를 밟고 나는 듯 달리는 말의 조각상)가 출토된 곳이다. 동분마는 1969년 중국이 소련과의 전쟁에 대비하여 방공호를 파던 중 우연히 발견한 지하묘실에서 출토되었는데 미국과 중국의 국교 수립 때 닉슨 미국 대통령에게 복제품을 선물할 정도로 예술적 가치가 있다고 한다.
허시저우랑은 중국 4대 미인의 한 사람인 왕소군이 흉노 왕에게 시집갈 때 지나갔던 길이다. 원래 왕소군은 한나라 원제의 궁녀였는데 흉노와의 화친을 위해 흉노 왕에게 보내졌다. 흉노 왕이 원제의 궁녀 중에 왕소군을 고르자 원제도 왕소군의 미모에 빠져버렸다. 원제는 약속을 지키는 대신 3일간의 시간을 달라고 하고는 왕소군을 자신의 처소로 불러 3일 밤낮을 시간을 함께 보냈다고 한다. 또한 왕소군을 밉게 그려 원제가 왕소군을 만날 수 없도록 만든 화공을 참형에 처했다고 한다. 이렇게 하여 흉노 왕을 따라 허시저우랑을 지나가던 왕소군이 고향생각을 하며 비파를 뜯자, 날아가던 기러기가 왕소군의 아름다움에 반해 날개 짓을 잊고 떨어졌다고 한다. 그 후로 사람들은 왕소군을 낙안이라고 불렀다.
밍사산에서 낙타를 타다
시안을 출발하여 서역으로 가는 길에 처음 마주치는 오아시스는 둔황이다. 광활하지만 쓸모 없는 땅 고비사막 위의 거대한 오아시스 둔황에 도착하여 모래산인 밍사산을 찾았다. 밍사산은 하나의 봉우리가 아니라 동서로 40킬로미터 남북으로 20킬로미터에 걸쳐 분포한 모래 구릉 전체를 지칭한다. 이방인에게 밍사산의 가장 커다란 묘미는 낙타를 타고 모래 능선을 따라 모래 숲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가장 높은 모래 언덕에 올라 끝없이 펼쳐진 모래 능선을 바라보며 모래 바다의 파도를 감상한다. 모래 파도 밖으로 오아시스 도시 둔황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다는 것도 또 하나의 매력이다.
질리도록 모래숲을 헤매다 돌아오는 길에는 초승달샘을 굽어볼 수 있다. 모래산과 모래산 사이에 아늑히 자리잡은 달 모양의 작은 호수 월아천(초승달샘), 어찌 그리 이름과 모양이 절묘한 조화를 이루는지 직접 본 사람은 모두 감탄하고 만다. 갈대와 풀꽃들은 샘의 곡선에 따라 둘러친 울타리 같기도 하고, 햇빛에 반사될 때에는 달무리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리고 초승달의 움푹한 호선을 끼고 들어앉은 월아산장은 고즈넉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꺼지지 않는 불심, 둔황의 막고굴
고비사막 깊숙한 곳 둔황시에서 동남쪽으로 25킬로미터 떨어진 밍사산과 산웨이산 사이의 계곡을 끼고 1600미터에 이르는 기나긴 절벽에 벌집처럼 석굴이 조성되어 있다. 현존하는 석굴 492개, 석굴 벽화의 전체 면적이 4만 5천 평방 킬로미터에 이르는 중앙아시아 최대의 석굴 사원이다. 깎아지른 벼랑을 뚫고 만들어진 석굴에는 아름다운 벽화와 조각상들이 가득하다. 이곳이 바로 사막의 박물관이라 불리는, 둔황학이라는 새로운 학문을 탄생시킨 곳이다.
둔황의 대표적인 석굴은 막고굴이다. 서기 366년 당시 전량(5호 16국 중의 하나)의 승려 낙준이 이곳에 도착한 후 꿈에서 빛나는 구름에 쌓여 있는 천 명의 부처를 보았다고 한다. 그는 불심이 깊고 부유한 여행자에게 안전 귀향을 위해 석굴 하나를 완성하여 부처님께 봉헌할 것을 권하였다. 이렇게 시작된 석굴이 수백 년간 이어져 천불동이란 장관을 이루게 된 것이다. 막고굴은 4세기~13세기 동안 조성되었기 때문에 각 시대의 예술적 특징과 동서양의 교류를 통한 문화의 융합이 표현되어 있다. 신라의 혜초도 막고굴에서 자신이 서역에서 경험한 모든 것을 『왕오천축국전』에 남겨 놓았다. 그의 여행기록은 당시 인도, 아라비아 등지의 역사와 서역 각지의 종교와 문화를 연구하는 데 귀중한 자료로 평가받고 있다.
{{
}}2부. 별, 하미꽈 그리고 포도
아름다운 이름 싱싱샤
싱싱샤는 도대체 어떤 협곡일까? 싱싱(성성)이란 별이 무수히 많다는 뜻이고, 샤
(협)는 커다란 계곡을 뜻하니 은하수 계곡으로 이해하면 될까? 싱싱샤에 들어서
는 순간 강웨이우얼 자치구에 들어선 셈이며, 이곳은 신강을 향해 가는 길에서
처음 사람 냄새가 나는 곳이다. 둔황을 출발하여 싱싱샤까지 오는 200킬로미터는 고비사막을 지나는 길로 민둥산, 모래, 돌멩이뿐이다. 그런데 이름은 어찌 이렇게 아름다울까? 상상의 날개를 펼쳐 보면 아주 오래 전 시원하게 흐르는 계곡이 있었고 계곡을 따라 가는 길 양쪽에는 산으로 병풍이 둘러쳐 있었기 때문에 오직 별빛만을 벗 삼아 걸어야 한다는 뜻으로 그렇게 이름을 붙였을 듯하다.
이곳은 주민이 채 100명도 안 되는 작은 마을로 생산품도 특산품도 없고 그저 작은 식당을 열고 나그네의 허기를 면하게 해주는 것으로 생활하는 곳이다. 그러나 마을이 작다고 싱싱샤가 짧은 것은 아니다. 이곳은 차로 두 시간 정도를 달려야 비로소 푸른빛을 볼 수 있는 긴 복도 같은 곳이다. 역사상 많은 문인, 상인, 군인들이 이곳을 지나갔을 것이고 이제 나도 그중 한 명이 되었으니 싱싱샤는 나의 기억 속에서 영원히 존재하는 실크로드의 일부분이 되었다.
실크로드의 동대문, 하미
하미는 시안에서 이어지는 실크로드를 따라 신강 지역에 들어서면 처음으로 나타나는 오아시스 도시다. 하미는 실크로드의 남로와 북로가 모두 연결되기 때문에 지리적으로 매우 중요한 실크로드의 거점 도시다. 당나라 현장도 인도를 가기 위해 하미에 들렀다. 당시 이 지역을 관할하던 고창왕국의 왕은 현장이 하미에 도착하자 현장과 의형제를 맺었다고 기록이 전한다. 하미는 청나라 때까지 자치권을 인정받은 하나의 왕국으로 존재하였는데 왕국의 흔적은 하미왕릉에 남아 있다. 하미시 서쪽 2킬로미터 지점에 있는 하미왕릉에는 9대에 걸쳐 존재한 역대 왕들의 무덤이 남아 있다.
서역의 첫 번째 맛, 하미꽈
중국인이면 누구나 하미라는 지명을 잘 알고 있다. 도시보다는 하미꽈(주황색 수박 모양의 과일)라는 과일이 유명하기 때문이다. 하미꽈 껍질을 벗겨 한 입 베어 물면 사각사각하고 달콤한 것이 수박, 참외, 메론 등 여러 가지 과일 맛을 동시에 느낄 수 있다. 하미꽈의 원래 고향은 하미보다 서쪽에 있는 싼싼현이지만 과일의 이름에 하미가 붙여진 데는 유래가 있다.
청나라 건륭제 때 하미왕이 황실로 공물을 보내는데 지금의 하미꽈를 끼워 보냈다. 처음 보는 과일을 먹어본 황제는 맛이 좋다면서 옆에 있는 신하에게 과일의 이름을 물었다. 그런데 신하는 하미에서 진상한 과일이니까 하미꽈겠지, 하고 생각하고는 "신강의 하미꽈라고 합니다"라고 답하였다. 이렇게 하여 잘못 붙여진 이름이 지금까지 굳어져 내려온 것이다. 하미꽈의 도시에 도착하여 그 달콤한 맛을 보지 않고 지나친다는 것은 불경죄를 저지르는 일이다. 인적 드문 비포장도로를 달리다가 수박과 하미꽈를 쌓아놓은 수레를 발견하고 즉시 차를 세웠다. 수박과 하미꽈 한 통씩을 주문하자 장사꾼은 신이 나서 식칼로 조각조각 과일을 잘랐다. 수박이야 어디서나 먹을 수 있는 것이라 모두 하미꽈만 집중 공략했다. 그런데 하미꽈는 열을 내는 작용을 해서 너무 많이 먹으면 입 안과 목 안이 터지기도 하고 심하면 코피가 나기도 한다. 인간에게 맛있는 것만 너무 많이 먹지 못하게 하는 신의 섭리가 과일에도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붉게 이글거리는 훠옌산
투루판은 우루무치에서 약 180킬로미터 동남쪽에 위치하고 있다. 우루무치에서 투루판으로 가는 도로는 보기에는 평지지만 사실은 계속 내리막길이다. 도로는 좁은 협곡을 따라 건설되었고 양쪽 산은 투루판으로 갈수록 민둥산으로 변해간다. 드디어 삼장법사가 손오공을 데리고 서역으로 불경을 구하러 가는 길에 지났다는 훠옌산에 도착하였다. 『서유기』에서 손오공이 철산공주와 싸우던 이야기의 배경이 바로 훠옌산이다.
훠옌산! 이곳은 신라의 혜초도 지났으리라. 사막 한가운데 민둥산일 뿐, 풀 한 포기 생존할 수 없는 황량한 곳, 차를 타고 멀리서부터 보아도 붉게 보이는 산, 몇 천 년을 사막 가운데 외롭게 서 있었을 그에게도 친구가 있다면 그것은 태양과 바람이리라. 차를 타고도 오기 힘든 이 험난한 길을 두 다리에 의지하여 한낮의 불볕을 온 몸으로 받아가며 한 걸음씩 옮겨 갔을 불심이 새삼 위대하게 다가왔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그저 지나가는 길목이었을 뿐인데 지금은 관광객을 유치하기 위해 기념관도 짓고 기념품 파는 가게도 즐비하다. 산을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찍도록 훠옌산이란 글자를 붉게 새겨놓은 커다란 돌이 산 정면에 놓여 있다. 넋 놓고 보고 있자니 삐끼가 낙타를 타고 사진을 찍으라고 수작을 걸어온다. 엎드린 낙타에 올라타자 낙타가 몸을 일으킴과 동시에 2층 높이에 앉았다. 인간의 키 높이에서 바라본 세계와 낙타 위에서 바라본 세계는 분명 차원이 다른 것, 경이감에 서서히 적응되자 이대로 낙타를 타고 산꼭대기까지 달리고 싶다.
포도의 천국, 투루판
투루판시는 인구 약 25만 정도인 작은 도시이다. 물이 부족하고 여름에는 고온 현상이 지속되어 화주라고 불릴 정도로 몹시 더운 고장으로 정말 가마솥에 들어가 있다는 표현이 딱 맞는 곳이다. 이곳의 주인은 웨이우얼족, 하사커족, 훼이족인데 주로 밭농사와 목축을 생업으로 하고 있다. 웨이우얼족은 주로 녹색 계통에 챙이 없고 수를 놓은 모자를 쓰고, 하사커족은 주로 중절모나 베레모를 쓴다. 그리고 훼이족은 전통적으로 챙이 없는 흰색, 청색의 모자를 즐겨 쓴다. 여자들은 민족에 따라 얼굴을 가리는 천이나 치마 색이 다르지만 중동지방의 민족과 비슷하다.
투루판의 포도는 중국 내에서 매우 유명하다. 먹는 맛도 탁월하지만 잘 말린 건포도는 단연 세계 제일이라고 하기에 손색이 없다. 투루판의 명물인 포도를 맛보기 위해 포도원에 도착하였다. 포도원 입구에는 티엔산의 눈이 녹아서 만들어진, 얼음같이 찬 계곡 물이 흐르고 있다. 포도원은 길이 8킬로미터, 폭 2킬로미터에 이르는 실로 광대한 포도밭이다. 하늘이 안 보일 정도로 포도넝쿨이 뒤덮인 길을 따라 산책을 하고, 연못가 평상에 앉아 웨이우얼족 전통복장을 한 아가씨들이 쟁반에 담아주는 탐스러운 포도를 실컷 먹었다. 이곳에서 포도를 재배한 역사는 2천 년 이상이고 종류만도 100여 가지에 달한다고 한다. 황무지를 이렇게 거대한 포도농장으로 일군 이곳 사람들의 애환과 고통이 바로 포도로 영글어 가는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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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부. 모래의 나라
서역의 하와이
"한 번 들어가면 다시 돌아오지 못한다"는 타클라마칸
사막에 들어가기 전에 물 구경 한번 실컷 하자는 의미에서 버스텅 호수에 들르기로 하였다. 아침 일찍 투루판을 출발하여 퉈커쉰현을 지나니 슬슬 시장기가 느껴진다. 훼이족 마을에 도착하여 점심을 먹기 위해 정차하였다. 길가 간이식당에는 거의 메뉴가 빤미옌 한 가지밖에 없다. 빤미옌은 원래 서역 지방의 국수인데 스파게티와 또 다른 맛을 느낄 수 있는 서역 별미이다. 주로 양고기를 토마토, 피망, 마늘, 야채, 식초, 설탕 등과 함께 볶아 소스를 만들고 손으로 뽑은 졸깃졸깃한 국수에 비벼 먹는다. 손으로 막 뽑은 국수라 면발 맛이 그만이다. 훼이족은 상업에 능한데, 특히 국수를 깨끗하고 맛있게 만들기로 유명하다. 그래서 북경의 한족들도 훼이족이 만든 국수를 즐겨 먹는다.
버스팅 호수는 티엔산 동남쪽 이옌치 분지 허숴현에 있는데 투루판에서 서쪽으로 약 240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위치한다. 수면이 해발 1천 미터에 이르고 총 면적 980평방 킬로미터나 되는 자연호수이다. 한마디로 표현하면 사막 위의 투명한 거울이라 할 수 있다. 이곳에 사는 주민들이야 호수의 존재만으로 감사할 따름이지만 멀리서 찾아온 이방인들은 호수변의 모래사장에 마음을 빼앗긴다. 신강의 하와이라고 불리는 모래톱은 곱고 아름다워 금빛 모래라는 뜻의 금사탄이라는 예쁜 이름을 얻었다. 모래를 느끼며 눈을 감고 있노라면 어느새 사막은 푸른 물결 춤추는 바다가 된다. 답사 중 모처럼 일정에 쫓기지 않고 하루쯤 몸과 마음을 추스르는 것도 답사의 의미를 반추하는 소중한 시간이었다.
돌아올 수 없는 타클라마칸 사막
죽음의 모래 바다 타클라마칸을 횡단하는 도로의 길이는 522킬로미터이다. 북의 티엔산 산맥과 남의 쿤룬 산맥을 잇는 인간승리의 전리품이다. 나는 이 도로가 20세기에 개척한 새로운 실크로드라고 생각한다. 타클라마칸 사막은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유동사막(모래가 바람에 의해 수시로 움직이기 때문에 지형도 따라 변하는 사막)이기 때문이다. 유동사막을 관통하는 도로를 닦는다는 것은 상상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