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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크라테스 씨, 질문 있어요!

크리스토퍼 필립스 지음 | 민음사
1. 덕이란 무엇일까요



사라진 덕을 찾기 위해 대화를 시작하다

2004년 하계 올림픽 준비에 여념 없는 인구 400만의 도시, 정신없이 뻗어 가고 있는 분주한 아테네 한가운데 자리 잡은 아고라, 조용한 그 공간에 스무 명 정도가 모여 있었다. 아고라는 일반적으로는 '시장'으로 번역되는데, 나는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 더 적절한 번역이라고 생각한다. 아고라는 고대 아테네 폴리스, 그러니까 도시국가의 심장부에 위치하고 있는데, 아테네 폴리스는 진정한 민주주의의 요람이었고, 퓰리처상을 수상한 역사가 다니엘 부어스틴의 말에 따르면, '서구 세계가 거기에 기반해 자신의 도덕을 발견하고, 공동체를 형성하며, 국가를 공고히 하고, 제국을 건설하게 되는 원대한 개념들'을 다진 곳이었다. 기원전 5세기경 소크라테스가 친구나 지인들은 물론 자신의 적대자와도 어울려 가며 철학적인 대화를 나누었던 바로 그 자리에서 우리는 '덕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졌다.

마리아 : "지금 우리가 앉아 있는 여기, 소크라테스에 대한 재판이 열렸던 이곳은 세상에서 가장 덕이 높은 곳이었어요. 덕으로 가득 찬 오아시스였어요. 소크라테스가 죽음을 선택한 방식은 덕 그 자체인 것 같아요. 그는 위엄과 고결함을 지닌 채 죽기로 선택했습니다."



기오르고스 : "바로 이곳에서 소크라테스는 이런 질문들을 던졌습니다. 정의란 무엇인가? 덕이란 무엇인가? 절제란 무엇인가? 용기란 무엇인가? 선이란 무엇인가? 경건함이란 무엇인가? 이 여섯 가지 질문들을 통해 그가 단순히 덕의 속성들을 더 잘 이해하려고만 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자신이 발견한 것을 적용하고 싶었던 거죠. 다른 사람들도 자신들 안에 있는 고귀한 잠재력을 깨달을 수 있게 말입니다. 요즘 이런 일을 하는 사람이 있습니까?"



은퇴한 역사학 교수 안토니스 : "우리는 그가 던졌던 질문들을 더 이상 던지지 않는다면, 덕에 대해서 더 이상 배울 수도 없고 더 많은 덕을 지닐 수도 없겠지요. 소크라테스는 병든 사회를 치유해 줄 방법을 찾기 위해 이런저런 질문을 던졌습니다. 그런 질문에 파고들면 파고들수록 가능한 '치유책'을 더 많이 발견하고 실험할 수 있었겠지요."



나는 지난 몇 년간 세계 곳곳을 돌아다니며 철학 카페를 열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전 세계가 나의 아고라가 되어 가고 있다. 그 과정에서 적어도 한 가지 면에서는 소크라테스의 삶을 실천해 보려고 했다. 어디를 가든 역사적 인물로서의 소크라테스가 묻고 다녔던 질문, 플라톤이 그의 초기 대화록에 적어둔 여섯 가지 질문을 물었던 것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인간의 본성과 더 뛰어나게 될 수 있는 잠재력, 개인이나 사회가 더 뛰어난 상태가 되기 위해 필요한 덕의 유형이나 형태들을 발견하려 했던 그의 여정을 내 나름대로 되살려 보려 했다.



내가 여행했던 곳들에서 나는 소크라테스가 철학을 하던 당시 아테네를 기울게 했던 진통과 유사한 위기를 볼 수 있었다. 그때와 마찬가지로 내가 방문했던 곳의 사람들은 자신들의 사회가 도덕적으로 방향을 잃어 가고 있으며, 몇몇 경우에는 사회조직이 와해될 지경에 이르렀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오늘날 사람들은 자신들이 살고 있는 사회의 추락이 불가피한지, 아니면 다시 바로잡거나 뒤집을 수 있는지 궁금해 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바로 지금 인간의 뛰어남에 대한 이 근본적인 질문들에 대해 전 지구적 차원에서 이야기해 보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여겼다. 우리가 함께 찾아낸 대답들이 우리가 처한 곤경을 이해하고, 과거와 현재의 실수나 성공을 통해 무엇을 배울 것이며, 어떻게 그것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을지를 아는 데 도움이 될 것으로 보였다.



나바호 인디언들이 전하는 조화

"덕이란 무엇일까요?" 나는 나바호 원주민 보호구역의 경계선 부근에 자리 잡은 자치단체 회관에 둥글게 모여 앉은 열여덟 명의 자치구 주민들에게 물었다. 1700만 에이커에 달하는 나바호 원주민 보호구역은 미국에서 가장 큰 원주민 보호구역으로 애리조나와 뉴멕시코, 콜로라도, 유타 주에 걸쳐 있으며, 16만 명에서 20만 명 정도의 주민들이 살고 있다.



마리아 : "우리 나바호 언어에 '조화롭게 하다'라는 뜻으로 '호조(hozho)'라는 단어가 있어요. 호조에 가까이 가면 갈수록 본인은 물론 주변의 모든 사람들까지 행복하게 만드는 아름다움과 질서, 조화와 가까워지는 것이죠."

베스 : "우리 종족의 호조 개념은 우리말로 '사하 나가이 비케 호준'이라는 것에 바탕을 두고 있습니다. 인간의 삶은 우주의 나머지 부분과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는 철학이지요. 이를 실천에 옮기는 사람은 '타 호 아지트 이고'를 얻게 되는데요, 이것은 세상에서 바르게 행동하며 사는 사람에게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위대한 영혼과 행복을 말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바르게 행동한다는 것은 세상을 좀더 조화롭게 만드는 방향으로 행동하는 거예요. 자신이나 자신의 종족에 대해 책임감을 가지고 행동하는 것, 매일매일 마주치는 크고 작은 악에 맞서 싸우는 것이지요. 악을 선으로 바꾸려고 노력하는 것은 그 자체로 이미 덕입니다."



데비 : "나바호 족의 덕목인 호조는 바로 치료와 회복에 관한 것이라고 할 수 있어요. 나쁜 것에서 좋은 것을 창조해 내는 것이죠. 그것이 자기 안에서의 갈등이든 사람들 사이의 갈등이든, 아니면 인간과 우주 사이의 갈등이든 말이에요. 우리는 모두 우리 종족을 좀더 조화롭게 만드는 데 각자의 역할과 책임이 있어요. 만약 우리 각자가 호조를 목표로 삼는다면, 그러니까 이곳 보호구역에서뿐만 아니라 모든 곳에서 그럴 수 있다면, 우리가 살아갈 세상은 나쁜 것보다는 좋은 것이 더 많은 세상이 될 거예요. 그런 곳에서 인간들은 사악함보다는 덕을 더 많이 가지게 되겠죠."



사람들 사이에서 호조는 어떻게 되는 것일까? 보호구역 내에서 들려오는 불협화음들, 젊은이들의 탈선과 종족 구성원들 사이에 증가하는 법적 다툼 등을 보면, 그들의 호조는 새로운 환경에서 제대로 실천되고 있지 않는 듯하다. 나바호 자치구의 대법원장인 로버트 야지가 쓴 에세이에 따르면 '나바호 자치구에서는 해마다 2만 8000건의 크고 작은 사건들이 발생'한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합심된 노력이 이루어지고 있다. 나바호 자치구에서는 '피스 메이커(peace maker)'라는 선구자적인 프로그램을 통해 범죄 가해자와 피해자 사이에 호조를 회복시키는 일을 하고 있다.



야지 대법원장은 피스 메이커 식 접근의 목적을 다시 아름다워지기 위한 화해와 회복, 다시 서기라고 말하고 있다. '서구의 범죄 재판 체계에서는 문제를 단지 행위자에게서만 찾고, 그에 따라 유일한 해결책으로서 가해자의 감금을 정당화'하고 있는 반면, 나바호의 체계는 '사람들의 행동'을 다루고 있다. '서구의 판결이 무슨 일이 있었고 누가 그런 짓을 했는지를 찾는 데 집중한다면, 나바호의 피스 메이킹은 사건이 미친 영향에 주목하면서 누가 다쳤는지, 다친 사람들의 기분은 어떤지, 상처를 치유하려면 어떤 일을 해야 하는지를 생각한다'는 것이다. 어떻게 하면 호조를 회복할 수 있는지를 말이다. 야지는 피스 메이킹이 범죄 예방을 위해서는 가장 빠른 시간 내에 효력을 볼 수 있는 방법이라고 말한다. 그 긍정적인 결과가 자치구 전체로 퍼져나가고 있다. 종파 간에, 또는 이웃 간에 조화를 회복하고 그를 통해 미래에 있을지도 모를 사회 불안을 미리 예방하고 있다.



소크라테스가 본 덕

학자인 폴 카트리지에 따르면 전성기의 고대 아테네는 '창의적인 정치·사회학적 실험들'이 타의 추종을 불허할 만큼 많이 이루어지던 곳이었다. 그뿐 아니라 미학적이고 철학적인 실험도 있었다. 그런 실험과 새로운 적응들 덕택에 고대 아테네는 '역동적·사회적 균형'을 얻을 수 있었고, 다시 그 균형에서 '놀랄 만한 안정성'이 가능해졌다. 혼란스러운 역동성이긴 했지만 그것은 조화의 전범(典範)이었다. 아테네가 창의적이고 실험적이기를 그만두었을 때, 자신 안에서 닫혀 버리고 성장과 변화에 신경 쓰지 않게 되었을 때, 이 도시국가는 정적인 형태의 안정성을 얻었고 그와 함께 활동하지 않는 사회, 결국에는 사라져 버릴 사회가 되고 말았다.



이러한 아테네에서 소크라테스는 덕을 어떻게 보았을까? 플라톤의 대화집 『프로타고라스』에서 소크라테스는 다음과 같이 묻는다. "덕은 정의와 절제, 충실함으로 구성된 인본주의적인 하나의 실체인가? 아니면 이 각각의 요소들의 각각의 실체인가?" 소크라테스는 이 자질들을 모두 가지지 않으면 덕을 가질 수 없다고 주장했다. 단순히 충실함과 절제, 정의뿐 아니라 용기와 선도 필요했다. 소크라테스는 덕을 좀더 역동적인 방식으로 정의해 보려고 애썼으며, 덕이 추구하는 목적과 관련해서 정의 내리려고 애썼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소크라테스가 본 덕은 개인이나 사회가 덕이 있는가 없는가 하는 것은 인본주의적인 목적을 밀고 나아가는 구체적인 행보와 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사용되는 방법이 또한 인본주의적인가의 여부에 따라 결정된다.



그렇다면 인본주의적인 덕의 구체적 실천 방법의 하나로서 소크라테스가 던진 질문 자체도 덕이 될 수 있을까? 정치학자인 리처드 대거는 『공공의 덕(Civic Virtues)』에서 소크라테스는 '널리 있는 기존 견해에 질문을 던지고 도전하는 것 자체가 가장 높은 형태의 덕 가운데 하나임을 사람들에게 설파했다'고 했다. 하지만 나는 소크라테스가 질문을 던지고 도전하는 행동을 하는 것만으로 가장 높은 형태의 덕 가운데 하나를 실천하는 것이라고 믿었던 것 같지는 않다. 생산적인 소란을 일으키는 사람들이 분명 있다. 개인과 전체를 위해 좀더 뛰어난 삶을 실현하려는 목적을 위해 질문을 던지는 사람들이다. 하지만 소모적인 소란을 일으키는 사람들도 있기 때문이다. 이들은 위대한 선을 이룩해야 한다는 목적은 전혀 고려하지 않고, 그저 위협하고 겁을 주며 파괴하기 위해 그런 행동을 한다.

2. 절제란 무엇일까요



미국인들이 말하는 절제

애리조나에 있는 템피는 아담한 크기의 도시로 주변의 사막 경관을 해치지 않는 범위 내에서 개발이 이루어진 곳이다. 애리조나 주립 대학교를 중심으로 생활하고 있는 주민들은 자신들의 도시를 '템피 인민 공화국'이라고 부르는데, 이 도시는 보수적인 정치 성향의 사막 한가운데 서 있는 진보의 오아시스라고 일컬어지기도 한다. 우리가 모인 카페는 둥근 천장, 목재로 마감한 벽면, 스테인드글라스 등 실내 장식이 매혹적이었다. 열세 명의 학생과 일곱 명의 지역 주민들이 모여 '절제에 대해' 물었다.

여학생 : "절제란 결국 자제력이 아닐까요? 일주일에 6일은 제가 먹는 것들을 유심히 살펴요. 그리고 강박적으로 열량을 계산하죠. 건강에 도움이 되지 않는 음식은 절대로 안 먹어요. 그러다 7일째는 뷔페에 가서 한바탕하는 거죠. 그런 뒤에 몸무게가 늘어나면 안 되니까 열심히 운동해요. 그런데 운동을 마칠 때쯤이면 왠지 잘못한 것 같고 어지럽기도 하고 그러거든요. 제 말이 선생님 질문에 직접적인 대답이 됐는지 모르겠지만, 저는 어떻게 하면 대부분의 시간 동안 자제력을 유지할 수 있을지 참 많이 고민해요."



사라 : "저는 절제란 자제력과도 관련 있지만, 그것보다는 균형의 문제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단순히 먹고 마시는 것뿐만 아니라 물건이나 우리가 사용하는 천연자원, 전반적인 삶의 자세 모두와 관련 있는 것이지요."

맥스 할아버지 : "미국에 이제 절제 같은 것은 없습니다. 필요한 만큼은커녕 도무지 만족을 모르는 소비 세태를 한번 봐요. 아무도 한계를 생각하지 않으니까 의지력을 발휘할 일도 없지. 절제에 꼭 필요한 자질인데 말입니다. 거대한 뷔페와 거대한 몸집이 그렇게 많은 것도 다 그런 이유 때문입니다.(사회 평론가인 에릭 슐로서는 베스트셀러인 패스트푸드 공화국(Fast Food Nation)』에서 이렇게 전한다. "지난 수십 년 동안 미국인의 유전자가 급격히 바뀐 것은 아니지만, 미국인들의 삶의 방식, 특히 식습관은 크게 달라졌고 전 세계 산업화된 나라 중에서 미국은 비만도가 가장 높은 나라가 되었다. 비만의 무서운 결과는 단순히 감정적인 문제나 자신감 부족 같은 것이 아니다. 비만은 흡연 다음으로 치명적인 사망 원인이 되었다.") 절제라는 것은 한계를 정하는 것이지요. 음식을 먹을 때, 물건을 살 때, 무언가를 사용할 때, 장사를 해서 이윤을 남길 때 등등, 무슨 일에서든 말입니다. 이런저런 극단적인 태도가 이 나라를 망치고 있어요. 절제는 정상적인 삶을 위한 핵심적인 요소라고 할 수 있습니다."



교육학 박사 셜리 : "절제는 양극단 사이에 있는 습관이겠죠. 특정 부문에 빠져 지낸다고 해서 다 극단주의자가 되는 것은 아니잖아요. 전체 맥락 속에서 습관을 봐야 해요. 특정 부문에 빠져 있더라도 다른 부문에서 만회할 수 있다면 절제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때그때 다른 거죠. 조금 과식하더라도 꾸준히 운동을 한다면, 과식에 대한 만회일 수 있죠. 그건 절제를 지키는 것이라고 해도 됩니다. 여러분 스스로 절제하는지 아닌지를 판단하기 위해서는 습관 전체를 살펴야 하는 거예요. 절제란 책임감 있는 습관을 가지는 것이니까요."

페이지 : "절제란 일종의 중간점이라는 데는 모두 동의할 것 같아요."



지금이 중도를 택해야 할 때

개인이 매일매일의 삶에서 절제하며 살 수 있게 변할 수 있을까? 지금 상황에서 그러한 변화는 필요할 뿐만 아니라 바람직한 것일 수도 있다. 미국의 독립선언서의 주요 작성자였던 토머스 제퍼슨은 미국이 단순히 자유로운 사회가 아니라 도덕적으로나 지적으로 뛰어난 사회가 되기 위해서 개인적으로나 집단적으로 어떤 덕목을 계발해야 하는지를 깊이 생각했다. 제퍼슨은 '도덕적인 뛰어남과 시민으로서의 덕목은 자기 자신을 다스리는 것에서 시작된다'고 믿었다. 그리고 '다른 사람에 대한 의무를 실천하기 전에 우리는 먼저 독립을 성취하고 책임감과 절제, 인내, 그리고 자기 억제를 실행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고 했다.



라슬로 베르세니는 소크라테스적 인본주의』에서 적기를, 소크라테스는 한계를 모르는 욕망이나 열정은 '고통에 이를 뿐이다. 한계가 없는 것은 만족시킬 수 없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방탕한 삶은 만족을 모르는 노예의 삶이다.'라고 믿었다고 했다. 플라톤의 대화록 『카르미데스』에서도 소크라테스는 절제의 핵심적 특징은 자신의 한계를 아는 것이며, 자신의 한계를 알아 가는 것의 핵심은 '자기가 어떤 사람인지 아는 것'이라고 결론지었다.



이러한 결론을 내렸다고 해서 그가 개인이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 해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이 미리 정해져 있다고 말한 것은 아니다. 대신 그는, 세계 안에서 더 뛰어남을 추구하는 개인이라면 자신의 한계에 대해 더 많은 것을 배워 가고 그것을 확장시켜 나간다고 했다. 그리고 이러한 발견이 뛰어남으로 나아가는 그의 행보에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은 소크라테스가 '절제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졌기 때문에 그것을 덕으로 생각하고 있었을 것이라고 여긴다. 하지만 절제를 버려야 하는 때와 장소를 알기 위해서 우선은 절제를 따르는 행동이 무엇인지를 알아야 했다고 보는 것이 더 정확한 견해일 것이다.



3. 정의란 무엇일까요



잘못을 바로잡는 것 - 9·11 테러 그후

테러리스트들이 세계무역센터를 공격하고 몇 달이 지났다. 나는 '그라운드 제로(9·11 테러 이후, 세계무역센터 건물이 있었던 자리를 부르는 이름)'에서 지하철로 몇 정거장 떨어진 맨해튼의 한 카페에서 소크라테스 카페를 열었다. 모두 열다섯 명이 참석했고 고등학생도 더러 보였다. 그날 깊이 생각해 보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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