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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덕 번지점프를 하다

이름트라우트 타르 지음 | 크레듀
1막 도널드 덕, 겁 없이 덤비다가 넘어지다



1장 실패의 얼굴들

실패라는 것은 인생에 필연적으로 따르는 것이다. 우리가 그것을 실패로 받아들이든 받아들이지 않든 우리 모두 실패를 피해갈 수는 없다. 무슨 일이든 해보려고 모험을 무릅쓰는 사람이라면 누구든 실패할 수 있다. 새로운 기술을 배우거나 예술작품을 만들 때, 신상품을 출시하거나 사랑에 빠질 때, 사람들 앞에서 연설을 하거나 새로운 아이디어를 낼 때, 이미 실패의 위험을 무릅쓴 것이다. 그러니까 더 멀리 또는 더 높이 가고자 하는 사람은 이미 발을 헛디디거나 넘어질 위험을 감수한 셈이다. 오늘날에는 자신이 실수를 저지르지 않는다 하더라도 다른 이유 때문에 실패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실패하지 않겠다고 제자리에서 한 발짝도 움직이지 않는 사람이라면 몰라도 말이다. 누군가 이런 말을 했다. "실패는 심각한 게 아니다. 정말 심각한 것은 시도조차 하지 않는 것이다."



실패는 길을 가다가 바나나 껍질을 밟아 넘어지는 단순한 일이 아니다. 그보다는 심장의 피를 쏟는 것에 가깝다. 다리가 무너지고 인생이 바닥부터 내려앉고 카드로 만든 집이 주저앉고 시도했던 일이 좌초되고 희망이 조각나는 것을 의미한다. 실패는 상처를 남기고 때에 따라 그 아픔이 평생 계속되기도 한다.



자신이 세운 목표, 그러니까 자신이 성공한 삶이라 생각했던 것과 자신이 이룬 것이 서로 어긋날 때, 그 어긋남을 실패로 받아들인다. 실패란 개념이 문제가 되는 것은, 우리가 모든 것을 능률 또는 실적이라는 기준에 맞추어 평가하기 때문이다. 누군가 일자리를 잃었다거나 열심히 일했는데도 승진하지 못했다거나 공들여 추진해온 계획이 취소되었다고 해보자. 사람들은 대부분 이를 '실패'라 부르기 쉽지만 사실 그렇게 획일적으로 평가해서는 안 된다. 자기의 직장을 몹시 싫어하는 사람이었다면 그는 해고당한 걸 무척 다행스럽게 생각할지 모른다. 갑자기 가족에게 더 많은 시간을 써야 할 일이 생겼는데 마침 회사에 제출한 프로젝트 기획안이 퇴짜를 맞았다면 안도감을 느낄지도 모른다.



이처럼 '실패'란 개념은 실패라 평가되는 특정 사건들과 맞물려 있다. 그렇지만 승진하지 못하거나 일자리 같은 소중한 것을 잃어버렸다고 해서 실패한 것은 아니다. 즉, 실패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는 말이다. 누가 또는 어떻게 그 일을 평가하느냐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이다. 사건에 대한 평가를 이렇게 나누는 일은 아주 중요하다. 왜냐하면 실패를 한 뒤 자신을 받아들여 새롭게 시작할 수 있는 용기와 능력을 끌어낼 수 있느냐 없느냐 하는 문제가 바로 거기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평생을 살아가는 데 없어서는 안 되는 것이 바로 실패의 경험이다. 실패가 전혀 없는 인생은 사람을 들뜨게 만들어 끝내는 스스로를 과대평가하게 한다. 어린이들에게는 실패할 권리도 있다는 사실을 스스로 겪어 알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 실패가 끝이 아니라는 사실을 일찍부터 배운 사람은 인생을 살아갈 만반의 준비가 되어 있는 셈이다. 어릴 때 한 번쯤은 패배자가 되는 법을 배워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나중에 실패에서 일어서는 것이 정말 어려워진다. 불가능한 것을 이루려다 실패한 후 가능한 것조차 시도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실패의 가능성을 무릅쓰고 모험을 하려 한다면 소매를 걷고 무슨 일이든 시작해야 한다.



용기와 위험 없이는 성공도 없는 것이다! 어쩌면 실패가 성공보다 더 큰 인생의 스승일지 모른다. 실패를 해야 자신의 참모습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승리자는 다른 사람들을 통해 확신을 갖게 된다. 그러나 패배자는 혼자 물러나 오로지 자기 자신과 대면하게 된다. 싫어도 자기 자신을 다시 돌아보아야 한다. 내가 견뎌낼 수 있을까? 내가 다시 힘을 낼 수 있을까? 다시 일어설 수 있을까? 내게 무엇이 남아 있을까?



실패는 스스로를 낮추는 겸손을 가르쳐준다. 겸손이란 자신의 한계를 알고 그 한계를 인정하며 새로 시작할 자리를 찾는 용기이기도 하다. 우리가 바라는 것, 우리가 당연히 우리 몫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늘 우리 생각대로 우리에게 주어지는 것은 아니다. 애초부터 우리 것이라고 정해져 있는 것은 없다. 실패를 통해 배운 겸손 덕분에 앞뒤 가리지 않고 무조건 밀어붙이는 태도를 버리고 사방을 살피고 이해하며 받아들이는 태도를 갖게 된다. 환상 속으로 숨는다고 해서 냉엄한 현실이 저절로 무뎌지는 것은 아니다. 깨어 있는 정신으로 스스로에 대해 객관적인 평가를 내릴 때 비로소 상황을 제대로 파악할 수 있다. 우리는 애초부터 패배를 모르는 무적의 존재가 아니었다. 겸손 덕분에 우리는 삶이 주는 선물을 제대로 볼 수 있는 눈을 뜨게 된다.



실패에 대한 여자와 남자의 태도는 다르다. 여자들이 감정적으로 좀 더 솔직하다면 남자들은 이성적인 편이다. 실패에 대해 이야기할 때 남자들은 능동적이고 합리적이며 사실 위주인 반면 여자들은 수동적이고 정서적이며 관계 위주이다. 여자들은 대체로 어쩔 수 없이 상황에 몰려 실패했다고 느끼는 성향이 강하다. 반면 남자들은 그런 성향이 여자들보다 약하다. 여자들은 감정상태, 자신감 부족, 회의와 두려움, 자기로서는 어쩔 수 없었다는 등의 이야기를 한다. 반면 남자들은 자신을 행동 주체로 삼아 자신의 행동을 강조하고 장단점을 신중하게 저울질하며 스스로 결정을 내리고 주도권을 잡는다.

남자들은 인간관계로 입은 상처는 좀 더 쉽게 이겨내는 편이다. 왜냐하면 자기 증명의 원천이 직업에 있기 때문이다. 그에 반해 여자들은 인간관계로 인한 상처를 쉽게 이겨내지 못하고 그걸 그대로 실패로 정의할 때가 많다. 대신 여자들은 아픔과 고통의 느낌을 더 잘 그리고 더 직접적으로 표현할 줄 안다는 장점이 있다. 덕분에 여자들은 주체할 수 없는 파괴욕과 복수심에 빠지지 않는다.



실패는 무엇이 인간관계를 지탱해주는지, 어떻게 사람들이 서로를 지켜주는지 알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기도 한다. 도움을 청하고 자기 자신을 솔직히 드러내는 일이 얼마나 도움이 되는지 모른다. 아무 두려움 없이 마음을 열 수 있는 사람이 곁에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의미를 가지는지 모른다. 이와 같은 조건들이 갖추어져 있다면 실패는 더 이상 파괴나 파멸이 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마주할 수 있는 상대가 있고 또 그 덕분에 다시 안정을 되찾게 될 테니 말이다.



2장 실패를 받아들이는 5가지 단계

이제부터는 '실패'라는 고난의 길을 단계별로 살펴보자. 그 단계에는 충격의 단계, 두려움의 단계, 분노의 단계, 수치심의 단계, 절망의 단계가 있다. 아무리 큰 상처일지라도 세월은 치유해준다. 인생이란 변화의 연속이다. 아무 상처 없이 헤어 나올 수 있는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흉터는 남지만 그래도 실패로 인한 두려움과 상실감을 마주 하고 이겨낼 마음의 준비가 되면 그만큼 성숙해진다. 단계적으로 서서히 실패를 이겨냄으로써 낡은 자아를 버리고 새로운 자아로 거듭날 수 있다. 말하자면 단계적으로 슬픔을 받아들임으로써 실패를 인정하고 새로운 기회를 만들도록 도와주는 것이다.



충격의 단계 - "이럴 수는 없어!" : 처음에는 커다란 충격 때문에 도무지 믿기지가 않는다. "이럴 수는 없어, 도저히 믿을 수 없어!" 숨이 막혀 겨우 토해내는 말이다. 이때는 완전히 무너져 자신을 다스리지 못하는 지경이 된다. 충격을 겪을 때 본능적으로 나오는 첫 반응은 아픔을 차단하고 약화시키는 것, 바로 감정을 마비시키는 것이다. 이 상태는 그리 오래가지 않는다. 따뜻한 말 한 마디, 전화, 어디선가 들려오는 음악소리 등이 뇌관이 되어 곧바로 몸이 반응을 시작하는 것이다.



이 단계에서는 아무 방해도 받지 않고 일어난 일을 마음껏 느낄 수 있어야 한다. 이때 진심 어린 관심이 필요하다. 섣부른 충고보다는 위로가 되는 말 한 마디, 공감하며 들어주는 태도가 필요하다. 따뜻하게 안아주거나 등을 토닥여주는 일, 이런 게 필요한 때이다. "내가 지켜줄 게! 다른 걱정하지 마"라는 뜻을 담은 따뜻한 몸짓을 상대방이 느낄 수 있도록 해준다. 쇼크 상태에서 필요한 것은 단 한 가지, 아무 일도 하지 말고 그 어떤 아픔도 영원히 계속되지는 않는다는 사실을 되새기며 기다리는 것이다.



두려움의 단계 - "앞으로 어떡하나?" : 사람은 안전을 지키기 위해 이미 알고 있는 것, 익숙한 것에 매달려 있으려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실패한 후에도 마치 아무 일도 없는 듯 행동하거나 하던 일을 계속하거나 이런저런 일에 몰두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아무리 애를 써도 충격의 단계가 지나면 두려움의 단계가 나타나기 마련이다. "오늘 하루는 또 어떻게 보내나? 다른 사람들에게는 이 사실을 어떻게 알려야 하나? 다시 일자리를 구할 수는 있을까? 모두 등을 돌려버리면 어쩌지?"



두려움은 빙글빙글 맴돌면서 헤어날 길 없는 불안으로 사람을 휘감고는 까마득한 절벽 끝에 손가락으로 겨우 매달려 있는 것처럼 아슬아슬한 기분이 들게 한다. 두려움이 점점 커지면 더 이상 경고의 기능은 하지 못한다. 두려움은 이제 새로운 아이디어를 내고 해결방법을 찾는 능력마저 마비시킨다. 그러면서 위험을 무릅쓰고 변화를 시도해 보겠다는 마음마저 사라지고 만다.



분노의 단계 - "세상에, 모두 등을 돌리다니!" : 실패는 그저 두려움과 아픔만을 유발하는 것이 아니다. 화를 내는 것은 상처받은 자아가 스스로를 지키고자 하는 방어적 반응이다. 분노는 아주 뜨거운 감정으로, 변화의 에너지를 내포하고 있다. 부정하거나 억압함으로써 이 에너지가 사라지게 해서는 안 된다. 분노를 드러낸다는 건 무기력 상태에서 벗어나 무엇인가 이뤄볼 수 있겠다는 자신감을 되찾았다는 뜻이다. 또한 분노는 무기력감, 굴욕감 등을 되받아칠 수 있게 해주는 에너지이기도 하다. 분노가 제 역할을 하게 하려면 먼저 분노와 감정을 간추려 정리하는 일이 중요하다.



온갖 비난의 행위는 그 상황을 성급하게 결론 내리게 만든다. 그런 성급한 결론은 정확하지 못하기 때문에 제대로 상황을 파악하지 못하고 그저 되는 대로 반사적인 행동만 하게 만든다. 사실, 상황을 철저하게 파헤쳐보면 훨씬 더 복잡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런 철저한 분석을 거친 후에야 자신의 책임을 볼 수 있고 실제 현실에 훨씬 더 가까운 상황분석을 할 수 있게 된다. 분노, 복수, 책임 떠넘기기 같은 것들을 잘만 이용하면 생산적인 변화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 마음과 정신의 힘을 모을 수 있게 도와주기도 하고 정당한 항의의 목소리를 낼 수 있게도 해주며 새로운 도전의 기반을 닦는 데 크게 도움이 되기도 한다.



수치심의 단계 - "남들이 어떻게 생각하겠어?" : 실패로 인해 견디기 힘든 것이 바로 수치심이다. 창피함, 부끄러움을 나타내는 말 속에 담긴 것은 자신의 잘못을 안타까워하는 책임감이 아니다. 수치심은 다른 사람들의 눈을 통해 생겨난다. 다시 말해, 다른 사람들의 '평가'에 대한 두려움을 뜻한다. 부끄러움에서 가장 중심이 되는 것은 자기 얼굴이 깎이는 것, 즉 체면을 잃을 수도 있다는 두려움이다.

수치심을 이기지 못해 열등감에 사로잡힌 행동을 한다면 다른 사람들도 거기에 맞춰 반응하게 된다. 반면에 지금은 상처를 입었지만 자기 안에 숨은 능력들이 있다는 사실을 잊지 않고 스스로를 존중한다면 다른 사람들에게도 그러한 태도가 먹혀들게 된다. 회사를 운영하다 망한 어떤 여자는 실패하고서도 당당히 웃을 수 있었다. "웃지 못 할 까닭이 없잖아요. 다른 것들이야 몽땅 다른 사람들이 압류해갈 수 있겠지만 내 웃음만큼은 그럴 수 없으니까." 수치심은 자신의 판단보다 다른 사람들의 판단을 중요시할 때에만 만들어진다. 자기 자신의 본질까지 문제 삼지 말고 자기 자신의 판단을 존중하게 되면 수치심은 설 자리를 잃고 만다.



절망의 단계 - "모든 게 물거품이 되고 말았어!" : 처음의 충격이 약해졌을지는 몰라도 여전히 상실감과 절망감은 남기 마련이다. 충격 뒤에 정적은 슬픔과 불쾌감과 어둠으로 채워진다. 헤어날 길은 보이지 않는다. 창피하고 아픈 기억들이 마구 덮쳐온다. 죄책감이 들면서 스스로의 어리석음과 억울함에 대해 절망감이 엄습한다. 끝나고 말았다. 성공하지 못했다. 이미 늦어버렸다. 이제 더 이상 기회는 없겠지, 망했다. 익숙한 것과의 이별뿐만 아니라 기대했던 앞날이 눈앞에서 사라져버린 데 대한 슬픔도 크다. 마음껏 눈물을 쏟아도 좋다. 아니 마음껏 눈물을 쏟아야만 한다. 왜냐하면 묘한 일이지만 절망의 단계를 극복할 수 있게 도와주는 것이 바로 마음 놓고 울어도 좋다는 마음의 허가이기 때문이다. 눈물, 그걸 가리켜 내적 정화라고 말할 수 있다. 자신에게 이 과정을 허락해야만 한다. 결코 서둘러 잘라버리지 말라. 충분히 슬픔에 젖은 후에야 비로소 내려놓을 수도 있고 놓여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절망을 이겨낼 수 있는 비법이란 건 없지만 그래도 무엇보다 효과적인 치료방법은 바로 활동이다. 실패에 매달려 있지 말고 새로운 '터'를 찾아내야 한다. 그런 행동이 무의식에 영향을 미치고, 무의식이 다시 의식에 영향을 미침으로써 상처를 치유해주기 때문이다.



3장 실패자의 7가지 변명

누구나 실패를 하지만 자신의 실패에 대해 말하고 싶어 하는 사람은 없다. 질병과 죽음을 제외하면 실패가 가장 위협적인 주제일 것이다. 실패는 우리의 자존심, 우리의 정체성을 위협하고 때로 영원히 지워지지 않는 흉터를 남기기 때문이다. 그러니 누가 기꺼이 다른 사람에게 자신의 실패를 보여주려 하겠는가? 차라리 실패를 정당화해줄 핑계를 찾아내 자신을 정당화하는 것이 속편한 일일 것이다. 실패의 모습이 다양하듯 그 변명 역시 다채롭지 않은가. 여기서는 사람들이 실패했을 때 가장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7가지 변명을 소개한다. 이 변명은 실패의 유형과도 아주 깊은 관련이 있다.



마른하늘에 날벼락처럼 : 사고와 질병은 운명의 방향을 뒤바꾸는 결정적인 비약을 불러올 수도 있지만 반대로 파괴를 불러오기도 한다. 죽을 만큼 심한 병을 앓은 사람은 지금까지 튼튼하리라 믿어왔던 인생이 갑자기 주저앉는다는 것이 무슨 뜻인지 알게 된다. 자신의 몸으로 직접 그런 경험을 하지 않은 사람들은 주변 사람들이 아프거나 죽는 것을 보고 자신의 인생 역시 갑자기 무너져 내릴 수 있음을 깨닫는다.



이와 같은 충격들은 선택의 여지를 주지 않는다. "마른하늘에 날벼락"이라는 말은 지금껏 안전하다고 방심했던 것이 잘못된 판단이었음을 여지없이 드러낸다. 주의를 덜 기울였거나 지나치게 낙관적인 태도 탓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밑도 끝도 없는 의심에 빠져서 아무리 최선을 다해도 '만족할 정도가 못 된다'고 생각하는 것은 어리석다. 오히려 아무리 자기 자신의 인생이라도 모든 일이 마음먹은 대로 될 수는 없으며, 한 번 일어난 일은 그냥 접어두고 계속 전진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쥐도 새도 모르는 사이에 : 실패라고 꼭 그렇게 연극처럼 드라마틱하게 찾아오는 것은 아니다. 눈에 잘 띄지 않을 만큼 작고 미미한 모습으로 찾아올 수도 있다. 눈에 띄지 않게 서서히 찾아오는 실패는 천천히 진행되어가는 병과 비교할 만하다. 어딘가 몸이 좋지 않은 것 같은 막연한 기분이 들다가 조금씩 이상 증세가 나타나 불안해진다. 그러다 마침내 몸이 아예 주저앉기까지 병은 몇 단계를 거쳐 진행된다. 그리고 이 단계들은 대체로 일정한 순서에 따라 나타난다. 알지 못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은 당장 덮어버리면 그만이다. 그럼에도 까닭 모를 불안감과 소외감은 점점 커져간다.



능력이 부족해서 : 자기 일을 끔찍하게 싫어하면서도 적극적으로 다른 일을 찾아내지 못하는 여 비서, 연습할 때는 잘하다가도 남 앞에만 서면 실수를 연발하는 연주자, 이들이 지닌 문제점은 바로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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