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통의 기술
하지현 지음 | 미루나무
CHAPTER 1 마음을 열어주는 관계의 기술
백 마디 말보다 진심이 통하는 한마디가 필요한 이유
여우가 원숭이에게 꽃신을 선물했다. 푹신푹신한 꽃신을 공짜로 얻은 원숭이는 이 꽃신을 매일 신고 다녔다. 그러자 꽃신이 다 해져버렸다. 여우는 한 켤레를 더 선물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꽃신이 또 닳았다. 원숭이는 여우에게 한 켤레를 더 달라고 했다. 그러자 여우가 본심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이제는 공짜로 줄 수 없습니다. 나무에서 따온 잣을 대신 주세요"라고 말했다. 원숭이는 일언지하에 거절하면서 꽃신이야 없어도 그만 아니냐고 했다. 그러나 이미 꽃신에 익숙해진 발바닥은 딱딱한 땅위를 걸을 때마다 아파서 견딜 수가 없었다. 결국 원숭이는 여우에게 꽃신을 달라고 애원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자 여우는 "앞으로 한 달에 한 켤레씩 꽃신을 줄 테니 그때까지 잣을 준비해 놔!" 하고 명령했다.
최근 대중적인 의사소통의 '공간'이 되고 있는 블로그나 미니 홈피는 원숭이의 꽃신과 같다. 익명과 익명의 만남은 현대사회의 각박하고 촘촘한 네트워크로부터의 일탈을 제공한다. 어디서 무엇을 하는 누구라는 속박된 정체성으로부터 자유로워져서, '내가 해야만 하는 것'보다 '내가 하고 싶은 것'에만 오롯이 집중해도 된다. 더불어 이웃 블로거들은 일상 속에서 생긴 괴로움을 서로 치유해준다. 그래서 사람들은 추한 현실의 리얼리티보다는 미니 홈피의 잘 포장된 즐겁고 행복한 소통을 선택하게 된다. 하지만 일상 속에서 겪는 소외감과 외로움을 블로그라는 푹신푹신한 꽃신으로 막다보니 어느새 말랑말랑해진 마음의 발바닥은 세상 속에서 겪는 여러 갈등에 크게 통증을 느끼게 된다. 결국 다시 가상공간의 푹신함을 찾아가지만 그럴수록 현실사회에서 생기는 갈등의 굴곡은 더욱 깊어진다.
프랑스의 패션잡지 엘르의 편집장 장 도미니크 보비는 1995년 뇌졸중에 걸려 전신마비 상태가 되었다. 그가 움직일 수 있는 건 오로지 눈꺼풀뿐이었다. 처음에 그는 너무나 절망했지만 소통할 방법을 찾아냈다. 유일하게 움직일 수 있는 신체기관인 눈꺼풀을 소통에 이용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는 눈꺼풀을 움직이는 방식으로 비서와의 소통을 시작했고, 급기야는 100만 번 이상이나 눈꺼풀을 움직여 자서전 『잠수복과 나비』를 완성시켰다. 이 책을 통해 그는 세상 사람들과의 소통에 성공했다. 그리고 2년 후 자신을 옥죄고 있던 잠수복을 벗고 한 마리 나비가 되어 날아갔다. '인간의 진정한 자유와 삶이 소통에 있다'는 사랑과 희망의 메시지를 남기고 그렇게 날아간 것이다.
'소통의 장애'가 '언어 장애'라는 점에서 '소통의 벽'을 지니고 있는 모든 현대인은 동시에 '언어 장애자'이기도 하다. 말은 많은데 쓸 말이 없고, 소통을 하려고 하면 할수록 소외가 심해진다. 소통하는 방법을 모르기 때문이다. 관계를 맺기 위해 '진심'이란 진검이 오고가다 보면 반드시 상처가 나게 마련이다. 그 상처가 아프고 견디기 힘들어, 사람들은 상처 없이 안전하게 소통을 할 수 있는 방법을 선택한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소외감은 더욱 강해지고, 무엇인가 채워지지 않는 결핍이 느껴진다. 어차피 인간의 삶은 관계의 매듭위에 존재하는 법, 이 매듭을 풀어야만 한다. 그렇다면 이 매듭을 어디서부터 어떻게 풀어야 할까?
말하는 습관을 바꾸면 인생이 바뀐다
고슴도치 두 마리가 한 겨울 동굴 속에서 추운 밤을 지새우고 있었다. 점점 심해지는 추위를 견디다 못한 고슴도치 한 마리가 "우리 서로 껴안고 있으면 따뜻해지지 않을까" 하고 말했다. 역시 추위에 떨고 있던 다른 고슴도치가 그 제안에 흔쾌히 동의하고 가까이 다가갔다. "앗, 따가워!" 서로의 뾰족한 털이 살갗에 닿자 두 마리 고슴도치는 반사적으로 더욱 털을 곧추세웠다. 둘은 상대방의 예민함을 탓하며, "제발 털 좀 세우지마" 하고 똑같이 소리쳤지만 자기도 모르게 털을 곧추세우는 버릇은 어쩔 수 없었다. 두 고슴도치는 서로 다가갈 때마다 상처만 입게 되자, 결국 각자 추위를 견딜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버릇은 몸의 자동적인 반응이다. 습관화된 버릇은 애써 신경을 쓰지 않아도 몸이 '알아서(?)' 상황에 대처하는 편리함이 있지만, 때로는 전혀 적합하지 않은 상황에서 불쑥 튀어나와 어려움을 겪게 하기도 한다. 말하는 습관 역시 마찬가지다. 사람들은 누구나 "너 왜 그래?", "절대 그럴 리 없지", "그런 것도 몰라?"와 같이 자신도 모르게 무심코 사용하는 말버릇을 갖고 있다. 그런데 이처럼 관계에 부정적인 영향을 주는 말들은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혹은 실수를 감추기 위해 자기도 모르게 방어적으로 내뱉는 말들이다. 예를 들어 "내가 그럴 줄 알았어!"와 같은 말이 튀어나오는 것은 자기 주변에서 벌어진 예기치 않은 사건의 용의자 선상에서 자신을 빼내고서 "나는 이 사건과 관련이 없어"라고 자기 확인을 하고 싶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경우, 실수를 한 당사자는 충분히 반성하고 있고, 안 그래도 속상하니 제발 가만히 내버려달라고 마음속으로 외친다. 하지만 가까운 사람일수록 그 사람을 염려하기 때문에 '왜 그런 행동을 했는지' 물어보게 마련이다. 내키지 않지만 '이렇게 저렇게' 해명을 하다보면 어느새 자신이 뭔가 모자란 인간이거나 큰 죄인이 된 듯한 기분이 든다. 그러니 반발심부터 생긴다. 사람들은 '자기애'가 손상 받는 것에 대해 다른 무엇보다 예민하다. 따라서 왜 그랬냐며 묻기보다는 그냥 옆에 있어주고 지지를 해주는 것만으로도 진정한 배려가 된다. 그냥 기다려 주다보면 자연스레 "왜?"와 관련된 궁금증이 해소될 때가 온다. 당사자가 술술 얘기를 털어놓을 때가 오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1987년 뉴욕에서 세 명의 물리학자들이 모여 작은 모래더미가 만들어지고 무너지는 과정을 실험했다. 경사가 완만한 곳은 초록, 경사가 어느 수준을 넘어선 꼭대기 근처는 빨간색으로 표시했다. 초록에서 빨강으로 넘어간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모래더미가 무너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런데 특이한 점은 같은 경사라도 빨간색 모래더미 전체가 무너지지는 않는다는 점이었다. 이때 알게 된 사실은 '임계상태(어떤 물리현상이 나뉘어 다르게 나타나는 경계)'에 이른 빨간 모래더미만이 결국 무너지게 되는데, 그때에는 그저 한 알갱이의 모래만 더해져도 그동안 쌓아온 모든 것이 다 무너지게 된다는 것이었다. 과학자들은 이 실험의 결과를 산불, 경제공황, 주가의 급락, 대지진 등에 적용해 보았다. 그 결과 한 가지 주요 원인이 사건의 결정적인 요인이 될 수 있다는 것이 증명되었다.
이를 인간관계에도 적용할 수 있다. 내가 매일 던지는 수많은 말들은 차곡차곡 쌓인다. 또 그 말에 반사적으로 돌아오는 말들이 내게 축적된다. 그러면 두 사람 사이의 감정의 모래더미가 차곡차곡 쌓여 어느새 임계상황에 도달한다. 어느 순간 둘 중 한 사람이 역시 평소와 다름없이 좋지 않은 말버릇으로 한마디를 던진다. 그 한마디가 정확한 위치에 떨어지게 되면 곧 두 사람의 관계는 송두리째 흔들리는 대격변이 일어난다. 지금 당신이 무심코 하는 말들 중에 소통의 지뢰를 묻고 있는 것은 없을까? 누군가 갑자기 발끈한다면 그것은 당신이 뿌린 지뢰를 밟은 것이다. 인간관계의 대지진은 말 한마디에서 비롯된다.
차이를 인정하면 소통이 쉬워진다
서구에서는 칵테일을 한잔씩 들고 많은 사람들이 모여 파티를 하는 경우가 자주 있다. 이때 어떤 사람과 얘기를 나누고 있다가도 저 멀리서 누군가 내가 관심을 갖고 있는 주제나 나와 관련된 얘기를 하고 있으면 내 앞에 있는 사람의 목소리보다 그 사람의 말소리가 더 잘 들리는 경우가 있다. 이렇게 자기가 관심을 갖고 있는 이야기에 더 집중하게 되는 것이 '칵테일파티 효과'이다. 이런 현상은 특정 사안에 대한 사람들의 선택적 집중력(selective attention)과 관련되어 있다. 우리 주변에서는 매일같이 수많은 정보들이 쏟아져 들어온다. 그런데 우리의 뇌는 청각, 시각, 촉각 등의 감각기관을 통해 그중 가장 쓸 만하며 당장 필요로 하는 것만을 대뇌의 정보처리기관으로 보낸다. 즉 감각기관이 1차로 검열해서 많은 정보를 정보가 아닌 '소음'으로 날려버리는 것이다.
권총을 든 은행 강도 패거리가 복면을 하고 은행에 들어왔다. 사람들은 혼비백산하여 바닥으로 몸을 숙였고, 강도 중 한 명이 지점장에게 다가가 권총으로 위협했다. 겁에 질린 지점장은 금고문을 열었고, 강도들은 돈을 훔쳐 달아났다. 잠시 후 도착한 경찰은 가장 가까운 곳에서 강도를 봤던 지점장에게 범인들의 인상착의를 물어보았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는 강도에 대해 기억하고 있는 것이 거의 없었다. 강도의 키가 어느 정도인지, 목소리의 특성은 어떤지, 무슨 옷을 입었는지, 가까운 곳에서 본 사람만 알 수 있는 신체적 특징 등에 대해서 거의 기억하지 못했다. 그런데 강도가 그를 향해 겨눴던 총 구멍, 총신의 생김새에 대해서는 세세하리만치 자세히 기억하고 있었다.
자신의 생명이 오갈 정도로 중차대한 일을 당한 지점장이야말로 범인의 일거일동에 가장 집중을 했어야 할 사람이다. 그런데 그는 특정한 것에 너무나 과도하게 집중한 나머지 전체 맥락을 위한 큰 그림을 담아내지 못했다. 이처럼 선택적 집중이 과도한 나머지 생기는 기억의 부재를 학자들은 '무기 중심 효과(Weapon Focus Effect)'라고 부른다. 즉 위기상황에서 이성적인 정보 수집을 하지 못한 것은 그 사람의 무능력 때문이 아니라 특정 영역에 대한 무시가 일어났기 때문이다. 사람은 모두 자기가 듣고 싶은 것만 듣는다. 어쩌다 나와 관련이 없는 정보들이 머릿속으로 들어온다 해도 별다른 중요성을 부여받지 못한 채 휴지통으로 가는 신세가 된다. 요컨대 이러한 인간의 생리를 이해함으로써 자신과 타인 사이에 존재하는 어쩔 수 없는 차이를 받아들이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얘기다.
내가 '그렇다'고 믿고 있는 것이 전부가 아닐지도 모른다고 한 발 물러섬으로써 우리는 타자에게 한 걸음 더 다가갈 수 있다. 그리고 상대방도 이와 같이 생각한다면 둘의 관계는 훨씬 가까워질 수 있을 것이다. 기억이란 처음 입력 과정부터 달라진다고 했다. 자신이 관심을 갖고 집중한 것을 위주로 기억하다 보면 흔히 다른 부분을 놓치기 마련인데 이럴 때 내가 보지 못했던 것을 포착하고 기억하고 있는 누군가가 곁에 있다는 것이 얼마나 좋은 일인가. 내가 무심코 지나쳐 버린 일을 누군가가 알려 줌으로써 우리는 보다 큰 그림을 볼 수도 있는 것이다. 내가 특히 잘 기억하는 주제가 있는가? 바로 거기에 당신의 감정의 핵심이 묻어있다. 그것이 무엇이고 어디 있는지 알아야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판단과 소통이 가능하다.
때로는 지혜로운 거짓말로 소통하라
오랜 시간 동안 함께 살아온 부부라 할지라도 어느 날 한 사람의 거짓말이 발각되면 그때부터 두 사람 사이의 소통에는 과도한 검색의 비용을 지불해야만 하는 상황이 벌어지게 된다. 반면 좋은 의도로 하는 거짓말, 살아남기 위한 거짓말은 해도 된다고 우리는 배워왔다. 사냥꾼에게 쫓기던 사슴을 숨겨주고 거짓말을 한 나무꾼은 벌을 받기는커녕 선녀를 아내로 맞아들이는 보답을 받았다. 그러나 아무리 선의의 거짓말이라고 하더라도 도저히 용서하기 어려울 정도로 깊은 상처를 남기는 거짓말도 있다. 상처로 인한 후유증은 불신이다. 그런 면에서 거짓말은 생명을 살리는 위급한 상황에만 약이 되고 평상시에는 독이 되는 존재다. 즉 거짓말은 관계를 깨뜨리는 폭탄이 되기도 하고, 관계를 살리는 배려가 되기도 한다. 그러면 거짓말을 어떻게 다루어야 관계를 잘 풀 수 있는 것일까.
선한 의도로 하는 거짓말을 '하얀 거짓말(White lie)'이라 한다. 하얀 거짓말은 일상에 유연함을 주고 관계의 물꼬를 트기도 한다. 다른 사람의 집에 초대받았을 때 대접받은 음식이 맛이 없어도 우리는 "참 맛있네요"라고 말한다. 그렇지만 아이들은 "이거 맛없어!"라고 말해버려 애써 준비한 사람을 무안하게 만든다. 우리는 일상에서 너무 솔직해서 생길 수 있는 무안함과 껄끄러움을 덮기 위해 의도적으로 이런 거짓말들을 한다. 그런 거짓말은 소통을 우회하도록 만들지만 둘 사이의 관계를 보호해 준다. 그래서 우리는 알면서도 서로 거짓말을 주고받는다. 어차피 거짓말을 완전히 일소할 수 없다면 우리가 할 수 있는 차선은 악의적인 거짓말을 가려내고, 본의 아닌 거짓말로 인해 관계를 해치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악의적인 거짓말을 가려내기 위해서는 드러내지 않고 상대를 살펴야 한다. 의심하고 추궁하는 일이 계속된다면 상대는 자신을 숨기려 들기 시작할 것이고 결국은 통로 자체가 막혀버리는 사태가 벌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평소에 상대의 말뿐 아니라, 말하는 스타일, 말할 때의 동작, 표정에 대해서 정보를 입력해두어야 한다. 이러한 정보의 변화를 보고 거짓말을 가려낼 수 있다. 하지만 행여 거짓말을 알게 되었다 할지라도, 특별한 의도와 배려 때문이라면, 또 어쩔 수 없는 사정에 의한 것이었다면 상대의 거짓말과 결점에 대해 그냥 넘어가는 것이 좋다. 관계를 깰 요량이 아니라면 그냥 눈 감고 넘어가는 것은 지는 것도, 잘못하는 것도 아니다. 거짓말은 소통의 참기름이다. 적당히 쓰면 무슨 반찬이든 맛있고 고소한 냄새가 나지만, 지나치면 모든 음식이 같은 맛이 되어버린다. 이렇듯 거짓말이 지닌 양면의 날을 잘 이용할 때 당신의 소통은 한 단계 높은 유연성을 갖게 될 것이다.
CHAPTER 2 한국인과 통하는 특별한 공감 코드
자존심을 살려주면 관계가 술술 풀린다
영화 〈친절한 금자씨〉. 모범수로 출소한 금자 씨를 마중 나온 전도사가 고생했다면서 두부를 내밀자, 금자 씨는 이렇게 말한다. "너나 잘 하세요." 누군가 내게 충고나 덕담을 할 때, 혹은 하나마나한 위로를 할 때, 서로 간의 관계에서 암묵적으로 정해진 선을 넘어선 훈계를 들어야 할 때, 나도 모르게 마음속에서 피어오르는 한 마디가 바로 '너나 잘 하세요'다. 상대방이 아무리 훌륭한 조언을 해 주고 도와주려고 노력해도 내가 받아들일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지 않으면 도리어 반감만 생기게 된다. 그런 반감은 조언이 허황되고 말이 안 되며 현실을 이해하지 못하는 탁상공론일 때는 오히려 생기지 않는다. 반대로 너무 딱 들어맞는 말을 해서 정곡을 찌를 때 생겨난다.
자신이 명백한 잘못을 했더라도 타인의 '충고'는 쓰디쓰기만 하다.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라 누구에게나 있는 자존심 때문이다. 아무리 가까운 사이라 하더라도 상대의 자존심을 배려하지 않고 충고를 하게 되면, 처음에는 "그게 아니라 사실은……."이라면서 저자세적 변명을 하다가, 다음에는 "네가 뭘 잘 몰라서 그래. 네가 나를 얼마나 이해할 수 있다고 그래?"라는 식의 저항이 시작된다. 그래도 끝이 나지 않으면 결국 "그래, 나 원래 이런 놈이다. 어쩔래? 상관 마, 이렇게 살다 죽을 테니까"라는 막무가내 전법을 동원한다. 결국 관계는 벼랑 끝으로 치닫고 만다.
사람은 자신이 최소한 남보다 못하지는 않다고 여기고 싶은 본능이 있다. '너나 나나'의 메커니즘이다. 내가 하나를 잘못했으면 상대방도 분명히 그에 상응하는 잘못이 있을 것이라 여기고 싶은 것이다. '털면 먼지 안 나는 사람 없다'도 같은 맥락에서 만들어진 말이다. 특히나 한국 사람들은 '배 고프고는 살아도 배 아프고는 못 산다'는 말처럼 무시당하고 자존심이 상하는 것을 못 참는다. 그런데 사람들은 자존심에 상처를 입힌 말을 들은 후에도 방긋 웃으며 "말씀 참 고맙습니다. 선생님 아니면 누가 제게 그런 말을 해주겠어요? 앞으로도 좋은 충고 부탁드립니다"라고 말한다. 그리고 마음속으로는 '그래 너 잘났다'라고 반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