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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부의 기술

리처드 스텐걸 지음 | 참솔
1. 인류와 함께 해온 생존전략, 아부 - 세상 어디에나 위계 서열이 있다



위계는 모든 종류의 동물사회와 인간사회에 만연해 있고, 위계가 있는 곳에는 반드시 아부가 있다. 아부야말로 지위를 올려주는 탁월한 기술이기 때문이다. 어느 사회이든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과 친하게 지내는 것처럼 현명한 생존전략은 없다. 당신이 십자군 전쟁에서 무시무시한 이슬람교도와 싸우는 것을 피하기 위해 온갖 감언이설로 왕의 마음을 사로잡아 출정을 면제받았다고 가상해보자. 어떤 상황에서 자식을 많이 보겠는가? 창을 들고 말을 타는 기사 생활이 좋을까? 아니면 궁정에서 신분이 높은 아가씨와 춤을 추면서 그녀의 짝이 되는 게 나을까? 아부는 "정말 대단해!"라고 추켜세우는 것 이상의 것이다. 보통 사람에게는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면서도, 유명한 친구에게는 훨씬 덜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는 것이 아부이다. 예를 들어 여동생이 약속시간에 45분 늦게 왔다면, 당신은 그녀를 야단치겠지만 상대가 마돈나라면 그냥 덮어둘 가능성이 아주 높다.



『인간의 기원』에서 찰스 다윈은 미래에 보상받기를 바라면서 다른 사람을 도와주는 저급한 동기에 관하여 적고 있다. 진화생물학자들은 이 저급한 동기를 상호이타주의라는 용어로 바꾸어 부른다. 이들은 자연선택론이 어떤 유기체든지 이기적 유전자의 최대화를 추구한다고 주장하지만 철저한 이기심보다 적당한 공조가 서로에게 도움이 된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상호이타주의는 계산된 호의의 일종으로 기대되는 보상을 위해 행하는 행동이나 제스처를 말한다. 조지 윌리엄스는 상호이타주의를 수학적 정밀성을 빌려 설명한다. "우정을 최대화하고 적개심을 최소화하는 개인은 진화적으로 장점을 갖게 되고, 인간관계의 최적화를 증대시키는 그런 특징이 후세에 선택된다." 아부는 인간관계를 최적화하기 위한 전략이고 따라서 진화적으로 장점을 지닌다. 야생의 상태에서나 문명사회에서나 아부가 개인의 생존기회를 최대화한다는 점에서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자연 상태에서 직접적인 경쟁을 하게 되면 코를 때리거나 두개골을 박살 낼 수 있다. 직장에서 직접적인 경쟁을 하면 당신이 열등한 업무를 맡고 있다는 사실이 노골적으로 드러날 수가 있다. 이럴 경우 스스로 능력을 제한하고 있다는 식으로 경쟁하면 더 좋지 않을까? 아부는 자신이 약자이기 때문에 직접적인 경쟁에서 실패할 가능성이 높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경쟁자가 선택하는 하나의 전략이다. 따라서 실질적으로 불리한 조건을 극복하는 방법이 된다. 게다가 비용까지 적절하다. 인간의 아부는 침팬지의 아부(등 긁어주기, 우두머리의 몸을 깨끗하게 손질해주기)와는 달리 대부분 언어로 그치기 때문이다. 인간이 아무리 과한 수고를 하더라도 찬사, 알랑거림, 고맙다는 메모 등 약간의 투자만 하면 된다. 사실 인간의 언어가 발달하게 된 결정적인 원인의 하나도 아부하려는 인간의 본능적인 욕망을 들 수 있다. 다윈은 다른 사람을 조정해서 자신에게 유리하도록 하기 위한 수단의 하나로 인간의 언어가 발달되었다고 주장하였다.



심리학자 장 피아제는 "거짓말하는 경향은 무의식적이고 자연적인 것이다"라고 말했다. 아부할 때 상대가 눈치 채지 못한 거짓말은 긍정적인 방향으로 강화된다. 사실 진실하게 찬사의 말을 하든 거짓으로 하든 그것으로 인해 누리는 이익에는 큰 차이가 없다. 이를테면 당신이 머리를 잘랐을 때 누군가 공치사로 "보기 좋은데"라고 말해도 당신이 받는 보상에는 차이가 없다. 중요한 것은 당신이 그 말을 믿느냐 하는 것인데 대부분의 경우 믿게 된다. 특히 확신이 서지 않을 때는 더욱 그 말을 믿게 된다. 인간이란 자신이 듣고 싶은 찬사에 대해 굳이 사실 여부를 꼬치꼬치 캐묻지 않으려 한다. 다시 말해 기분을 상하게 하는 진실을 듣기보다는 듣고 싶은 기만을 받아들이려 한다. 거짓으로 한 아부에 대한 벌은 없다. 왕에게 아부한 사람은 왕의 옆자리에 앉을 수 있고, 우두머리에 아부한 사람은 2인자가 되거나 언젠가 우두머리를 없애고 그 자리에 앉을 수도 있다.



2. 강자에게 바치는 아부 - 그가 죽은 후까지도 아부하라



고대 이집트 종교가 사후세계를 중요하게 여긴 까닭에 이집트인들은 현세의 삶보다 사후의 사회적 지위에 더 관심을 가졌다. 그래서 사후에서의 위계가 엄격히 지켜졌다. 경제적 여유를 가진 왕과 귀족들은 무덤을 치장하는 데 많은 돈을 쏟아 부었고, 내세를 잘 준비했다고 인정해주는 말처럼 훌륭한 찬사가 없었다. 실제로 투탕카멘은 위대한 파라오였기 때문이 아니라 무덤(피라미드) 때문에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져 있다. 그는 기원전 14세기 10세의 어린 나이에 왕위에 올라 19세에 죽을 때까지 전장에 한 번도 나가보지 못했다. 그러나 그의 무덤은 전차를 몰며 군대를 지휘하는 위대한 전사로서의 이미지로 가득 차 있다. 그가 누워 있는 관은 순금 242파운드로 주조되었으며 미라로 만든 그의 육신은 143개의 진귀한 물건 외에 황금 샌들, 황금 반지, 목걸이, 팔찌 등과 함께 고운 린넨 수백 야드로 감싸졌다.



이집트 사회에서 처음에는 파라오만 사후의 삶을 기대할 수 있었다. 엄청나게 많은 사람을 동원하여 건설한 무덤은 왕 한 사람을 영원으로 인도하기 위한 것이었다. 한 종교서적에 따르면 파라오가 창조신에게 자신이 몇 세까지 살 수 있겠느냐고 묻자 창조신이 "자네 수명은 수억 년 이야"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수명에 대해 이처럼 거창한 아부가 어디 있으랴! 기원전 1800년경에는 내세로 가는 이가 파라오의 가족과 황실귀족으로 확대되었다. 귀족들은 왕과 친하다는 이유로 내세에서 영원한 삶을 살게 되었는데, 불멸의 삶을 보장해준 것은 바로 아부에 대한 대가였던 것이다. 이들 귀족들은 파라오의 무덤 가까이에 있는 무덤을 무척이나 원했는데 궁극적으로 바로 그곳이 평생에 걸친 아부에 대한 보답으로 불사를 보장받는 곳이기 때문이다. 왕이 살아 있는 동안 충성을 다 바친 시종들도 천국에 들어갈 수 있었다. 천국으로 가는 파라오를 모시기 위해 시종들을 죽이기까지 했는데, 죽이지만 않았다면 그렇게 나쁜 거래로 생각되지 않는다.



파라오의 무덤 건설은 한 인물이 대통령에 취임하기 무섭게 대통령궁을 자신의 마지막 거처로 삼기 위하여 연방정부의 예산을 끌어다 대통령 도서관을 비롯하여 하나의 도시를 세우는 행태와 비슷하다. 파라오는 왕좌에 오르기 무섭게 무덤을 설계하기 시작한다. 람세스 2세는 돌산의 벽면을 깎아 67피트에 이르는 2개의 거상 조각을 새겼고 뒤쪽으로 신전의 내부를 조성하였는데, 이 피라미드는 루스벨트 대통령이 러시모어 산에 워싱턴, 제퍼슨, 링컨과 함께 자신의 얼굴을 조각해 놓은 양상과 비슷하다. 신전 벽에는 파라오의 무용과 용기가 실제 군사적인 치적과 다르게 새겨져 있는데, 람세스는 전쟁에서 패배하고도 승리했다고 하는가 하면 심지어 전쟁이 일어나지도 않았는데도 승리를 날조했다. 그의 주장과 어긋나는 신문이나 TV 보도가 있었을 턱이 없지 않는가? 람세스에 대한 이러한 사료는 오직 바위에만 새겨져 있을 뿐이다.



이집트인들은 예술을 묘사라기보다 일종의 예언이나 르포르타주로 여겼다. 그들이 부조나 벽화로 행동을 묘사하면 그와 똑같은 행동이 일어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적을 무찌르는 파라오에 대한 묘사는 곧 미래의 적을 무찌를 것이라는 예언이었다. 또한 이집트 미술에는 원근을 나타내는 기법이 전무했다. 이집트인들이 원근의 개념을 알지 못했던 것이 아니라 파라오는 원근으로 묘사될 수 없는 존재였기 때문이다. 파라오는 자연세계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커다랗게 묘사되었다. 백성들은 난쟁이에 불과했지만 이들은 지상에 걸터앉아 있는 거인이었다. 파라오 묘사에서 사실성 따위가 개입될 여지가 없는 것은 있는 그대로 묘사하면 아부를 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아부에 적절하도록 파라오는 실제보다 더 크고, 더 멋있고, 더 젊고, 더 강해야 했다. 파라오들을 이렇게 표현한 이유는 인간적인 모습보다 그들의 가장 이상적인 모습을 남기려고 의도했기 때문이다.



3. 하나님이 원하는 아부 - 나 이외에는 절대로 아부하지 말라



태초에 하나님은 외로웠다. 대화를 나눌 친구도, 형제도, 부모님도 없었기 때문이다. 자신의 형상대로 처음 빚은 사람(아담)이 최초의 친구가 되자 하나님은 사람과 놀기를 원했다. 그런데 그것은 하나님의 놀이였으므로, 하나님은 규칙도 직접 만들었다. 에덴동산에 있는 선악과를 따먹지 말 것이며, 그것을 지키지 않을 경우 무서운 결과가 있을 거라고 겁을 주었다. 그런데 아담과 이브가 뱀의 꼬임에 넘어가서 선악과를 먹는 인류 최초의 범죄를 저지르자 하나님은 꾸짖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이브에게는 출산의 고통을 아담에게는 평생 노동을 하도록 하였다. 그리고 "너는 흙으로 돌아갈 것이리라"라고 말한다. 이 이야기에서 하나님은 인간의 작은 잘못에 대해 지나치게 노하고 있다.

잭 마일즈는 "인간에게 인정받기 위해서인가, 사랑받기 위해서인가, 아니면 섬김을 받기 위해서인가? 하나님은 왜 인간을 창조했는가?"라고 문제를 제기했다. 나는 '세 가지 모두가 이유'라고 생각한다.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여호와는 약간 불안한 존재이다. 그래서 그는 자신이 삼라만상으로부터 존경받는다는 느낌이 필요했다. 하지만 무슨 수로 신성한 세로토닌 수치를 끌어올릴 수 있겠는가? 다행히 한 가지 방법이 있다. 칭찬이나 아부로 수치를 끌어올리면 되는 것이다. 여호와가 발견한 방법은 강요였다. 그래서 하나님은 "나 여호와 이외의 것에 아부하지 말라"고 이야기하는 것이다. 구약의 하나님은 자신의 마음에 드는 것에만 관심과 사랑을 주며, 성격이 까다롭고 참을성이 없으며 끊임없이 불평한다. 또한 수만 명이 살고 있는 소돔과 고모라를 멸절시킨 사례에서 보듯이 자신에게 불경한 태도를 보이는 사람에게 대단히 민감하다. 지금 우리가 설명하는 하나님은 자신을 놀리는 사람이면 누구든지 죽여버리고 마는 성질 못된 폭력배나 다를 바 없다. 심리적으로 불안정해 마음이 평안한 사람에게 화를 내는 이가 바로 하나님인 것이다.



하나님은 '내가 못한다면 감히 어느 누구도 하지 못해!' 식의 태도를 지니고 있는 것 같다. 이런 자세는 어떤 방식으로 아부를 받고 싶은지 이스라엘 민족에게 알려준다. "나는 처음이요 마지막이라, 나 외에 다른 신은 없느니라(이사야 44장 6~8절)" 자화자찬하는 저자거리의 사람처럼 하나님은 자기 자신에 대해 과장되고 정확하지 못한 의식을 지니고 있다. 『출애굽기』에서 자신이 자비롭다고 말해 놓고는 이스라엘 사람들이 바알 신을 경배하자 역병을 보내 2만 4천 명을 죽여버리는 하나님에게서 어떻게 자비라는 단어가 연상될 수 있단 말인가. 하나님의 불안에는 이스라엘 민족의 성격도 일단의 책임이 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민족에게 사랑받고 칭찬받기를 간절히 원했지만 그들은 그렇게 행동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언약이란 단어는 실제 거래에 사용되는 멋진 말이다.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들은 다음과 같은 거래를 한다. "나를 믿으라. 그러면 내가 잘해주리라" 언약은 상호 호혜적인 거래라고 할 수 있다. 거래는 양쪽 당사자에게 유익한 것이다. 하나님은 자신을 섬기는 백성을 지니게 되었고, 이스라엘 민족은 섬길 하나님을 가지게 된 것이다. 이처럼 상생하는 관계가 어디에 있을까! 사실 아부는 언약의 일종이다. 아부를 하고, 상대가 그것을 받아들일 때 침묵의 동의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구약에서 경외는 언약을 암묵적으로 구성하는 요소이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라는 표현이 『잠언』에 반복해서 나온다. 하나님은 예측할 수 없다는 점에서 일정 부분만 존경받는 마피아 두목과 다를 바 없다. 인간을 뜨겁게 포용하기도 하지만 폭력을 행사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구약 뒷부분에 이르면 이스라엘 민족은 성숙해진 하나님을 만나게 된다. 엄청난 힘으로 통치하던 하나님이 충성뿐 아니라 미덕에도 상을 주는 윤리적인 하나님으로 변모한 것이다. 하나님 언약의 성격도 바뀌었다. 과거에는 십계명을 지키고 예배를 드리는 것만으로도 훌륭한 유대인이 될 수 있었지만 이제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스스로에게 도움이 되기 위해서는 선량해져야 했다. "남에게 대접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하나님을 찬양하는 방법이 이렇게 변한 것이다. 선한 행위를 강조함으로써 유대교는 기독교로 발전하는 기틀을 마련하고 하나님은 이제 진실로 보편적인 존재로 자리 잡기 시작한다. 유대교는 이방인들에게 문호를 개방하고 기독교로 발전하게 된다. 이것이 기독교가 성공한 이유다.



4. 대중에게 향하는 아부 - 아부의 세계에는 민주주의가 없다



그리스인은 민주주의에 대한 대표적인 내부 위협으로 아부를 들고 있다. 그들은 개인끼리 나누는 아부는 문제를 삼지 않았지만 공적 아부에 대해서는 지나치게 걱정했다. 공적 아부란 구체적으로 대중에 대한 아부(대중선동)를 뜻한다. 아테네에서 이루어진 대중선동이란 야심에 불타는 정치인들이 여러분처럼 멋지고 고결한 사람은 없다고 대중에게 아부하는 것을 말한다. 이들의 주장을 빌리면 대중은 결코 잘못한 적이 없고, 그들의 지혜는 오류가 없으며, 대중이야말로 인간선의 총합이다. 어디서 많이 들어본 소리 같지 않은가? 미국 대통령을 비롯하여 전 세계 지도자들은 하나같이 유권자에게 아부한다. 레이건 대통령은 국민들에게 어쩜 이렇게 멋있을 수 있냐고 입버릇처럼 말했다. 자신의 탄핵소추안을 가지고 하원에서 투표하던 날 빌 클린턴은 "미국인은 항상 지혜를 올바르게 사용하였습니다"라고 말했다.



아부가 음흉한 것인 만큼 그에 대한 해결책이 있는데, 그리스인들은 그것을 '파르헤시아'라고 불렀다. 현대식으로 말하면 솔직한 비판이라고 할 수 있다. 파르헤시아는 사람들의 기분을 일시적으로 좋게 만드는 가공의 것이 아니라, 인정할 수밖에 없는 기분 나쁜 진리였다. 그리스와 로마의 작가들은 친구와 아첨꾼을 구별하는 방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을 파르헤시아로 보았으며, 한 변론가는 "군주에게 조언하는 신하가 반드시 갖춰야 할 미덕은 솔직함"이라고 말하기도 하였다. 파르헤시아야말로 권력자에게 진실을 말하는 힘인 것이다. 그러나 아부와 달리 파르헤시아는 위험천만했다. 소크라테스의 경우 그는 지나치게 솔직했다는 이유로 사형을 당했다. 그에 대한 사형집행은 아테네의 모든 것이 민주적인 가치에 기반하고 있지 않았다는 증거로 볼 수 있다.



아테네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신분을 철저하게 지키는 로마사회에서는 순종을 가장한 아부가 하나의 원칙처럼 지켜졌다. 네로나 도미티아누스 등 병적인 황제들이 통치하던 시대에는 아부만 한 충성이 없기 때문이다. 로마의 유력자들은 매순간 아부하는 무리들에 둘러싸여 하루 종일 지냈다. 그들이 광장을 지나는 모습은 흡사 실베스타 스탤론이 식당에 들어가는 모습과 같다. 세인의 관심을 끌기 위해 고용한 보디가드와 추종하는 식객에 의해 유력인사가 둘러싸여 있기 때문에 근처의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유력인사를 바라보게 된다. 로마에서 경제적인 능력이 없는 젊은 시인, 작가, 철학자들은 자발적으로 고관대작의 식객이 되었다. 후원을 받는 조건으로 직업적 아부꾼이 된 것이다. 시인의 경우 온갖 축일, 생일, 기념일 등 행사에 쓰일 시를 지어야 했으며, 후원자가 짓는 엉터리 자작시에 대해서도 마음에 없는 상찬의 말을 바치는 수모까지 견뎌야 했다. 정말이지 그처럼 꼴사나운 짓도 없었다.

그리스 사상가들이 시민을 기만하는 정치 지도자로부터 시민을 보호하는 일에 관심을 기울인 반면, 로마 사상가들은 정치 지도자들을 기만하는 아첨꾼으로부터 정치 지도자들을 보호하는 데 관심을 기울였다. 아부꾼을 경계하도록 통치자에게 조언하는 일은 로마에서 유망한 지식산업이었다. 2천 년 전 플루타르크는 비즈니스에서 상대방의 환심을 사는 방법에 대해 연구를 거듭한 끝에 '자신을 사랑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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