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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는 천재를 만들고 어머니는 영재를 만든다

노재욱 지음 | 상상하우스
1. 어버이는 자식의 거울이 되어야 한다



한 사람이 이 세상에 태어나기까지의 과정을 살펴보면 무척 경이롭다. 성을 해석하는 데에는 여러 가지 견해가 있으나 사람에게 성은 창조주로서의 하늘이 부여한 본성이다. 그래서 남성은 하늘의 이치에 순응함으로써 천도를 다하며, 여성은 땅의 이치를 받아 지덕을 펼 때에 비로소 제자리를 지키게 된다. 특히 자식을 낳고 기르는 데에 있어 아버지와 어머니가 제자리를 지키는 일은 아주 중요하다. 아버지가 제자리를 찾고 어머니가 제 구실을 해야만 비로소 뜻을 맞추어 씨알을 싹트게 하고 가꾸고 길러서 열매 맺게 하여 다시 씨알이 되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요즘은 남성이든 여성이든 '혼전순결'을 그리 대단한 것으로 여기지 않는 것이 일반적인 추세이다. 혼전순결을 지키라는 말은 단순히 육체적인 순결을 지키라는 것이 아니다. 혼전순결을 지키라는 것은 마음의 상처 입음을 미연에 막고자 하는 뜻에서 나온 말이며, 따라서 여성 못지않게 남성에게도 중요한 덕목이다.



남성의 신랑수업이 절실한 이유는 바로 씨알이기 때문이다. 농부가 봄의 파종기에 가장 마음을 쓰는 일이 씨앗 고르기이다. 아무리 비옥한 땅이라도 부실한 씨앗을 심으면 좋은 수확을 거두지 못하기 때문이다. 남녀가 부부 관계를 맺음으로써 비로소 씨알이 태동하므로 아버지가 되고 어머니가 될 사람들은 순결해야 하며 힘껏 공을 들여야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다. 우리가 흔히 '태교가 중요하다'는 말을 하지만 따지고 보면 태교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어버이 될 자들의 '수양', 즉 태교 이전의 자기관리이다. 결론적으로 말한다면 순결한 여성의 난자와 건전한 남성의 정자가 결합할 때 비로소 온전한 아이가 잉태되고, 그래서 훌륭한 태교를 통해 단정하고 머리 좋은 아이가 태어날 수 있다는 것이다.

흔히 결혼을 앞둔 사람들은 사주와 궁합을 보고 좋은 날을 가려 택일을 한다. 예로부터 혼인에 필요한 사주, 궁합, 택일은 점쟁이들이 아닌 집안어른들이 하는 것이 상례였다. 사주는 생년월일과 태어난 시를 갖고 사람 일생의 진행을 대강 점쳐 보는 것으로 만세력만 보면 알 수 있는 것이며, 궁합은 결혼과 아무 관계가 없는 일이다. 어찌 보면 결혼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택일이다. 택일은 신부 측에서 하는 것이 가장 합리적이고, 옛날 우리 어른들은 이 전통을 지켜왔다. 이는 신부 측에서 부부합궁하기에 어려운 날을 피하자는 뜻이며, 나아가 보다 우수한 씨알을 배태하기에 좋은 날을 가린다는 의미였다.



사주, 궁합, 택일이 완벽하고 결혼조건을 다 갖추었다고 해도 쉽게 결합해서는 안 된다. 씨알의 어버이, 즉 완벽한 어른이 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자신의 몸, 남과 여 인체의 신비를 올바로 알아야만 한다. 요즘 숙녀들, 특히 직장을 가진 여성들은 오직 맵씨만 찾느라고 그 추운 겨울에 아랫도리를 그냥 차게 하고 다닌다. 그 몇 해의 아름다움을 유지하려다 수십 년 긴 세월의 장래는 물론 태어날 자식들까지 불행하게 할 수도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렇다고 남성은 아무렇게나 하고 다녀도 좋은가? 천만의 말씀이다. 여름이건 겨울이건 춥거나 덥거나 그것은 대기의 온도에 늘 적응시켜야 한다. 그래야만 남성 구실, 즉 씨알 구실을 제대로 할 수 있다.



부부가 합궁을 함으로써 2~3억에 달하는 정자가 한 개의 난자와 만나 생명을 잉태하는 일은 그야말로 신비를 넘어선 일이다. 이렇게 한 생명이 어머니의 자궁 안에서 잉태되면 이제 남은 것은 태교이다. 수정란이 어머니의 자궁 안에 착상되는 순간부터 아이가 어떤 자질을 타고날 것인가를 결정하는 중요한 일로서 태교가 작용하는 것이다.



태교가 왜 중요한가. 모태에서 열 달 동안 받는 가르침이 이 세상에 태어나 수십 년을 살아가는 데 필요한 슬기의 바탕이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선천적으로 만들어진 천재 바탕을 제쳐두고, 영재 수재 등은 얼마든지 그 어머니가 아버지의 도움을 받아 키워낼 수 있다는 얘기다. 그리고 선천적인 천재는 태교로 만들지는 못해도 만들어진 천재를 태교의 잘못으로 둔재로 전락시킬 수도 있다. 열 달 동안 자기에게 가장 알맞은 조건이 마련된 모태에서 자라다가 마침내 광활한 세상으로 나오게 되는데 바로 그 순간, 태아가 처음 세상을 만나는 순간의 장소와 때 역시 아주 중요하다. 예부터 전해져 오는 얘기로는 훌륭한 사람을 길러낸 어머니들은 한결같이 출산의 때를 골랐다고 한다.



이제 남은 문제는 출산뿐이다. 요즘은 순산이든 난산이든 거의가 병원에 의존하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편으로서, 아버지로서 준비해야 할 일은 남아 있다. 훌륭한 어버이가 되기 위해서는 어버이 자격증을 갖추어야 한다. 현대는 그야말로 자격증 시대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 가장 중요한 '어버이 자격증'은 없다. 사실 어버이 된 사람은 모든 자격에 앞서 어버이 자격부터 갖추어야 한다. 사춘기를 지나 남성의 기능과 여성의 역할을 하게 되었다고, 또 환경의 여건이 성숙되었다고 해서 불쑥 남녀가 결혼하고 아이를 낳는다고 모두 부모의 자격을 갖추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세상의 아버지들이여, 포기하지 마라. 스스로 씨알이라는 긍지를 갖고 모든 일에 임해야 한다. 자식을 만들기만 하고 낳기만 하고 길러내기만 하면 어버이가 아니다. '어버이는 자식의 거울'이라는 말이 있다. 이 거울 노릇을 제대로 하는 것, 이것이 바로 어버이의 자격증이다.



2. 맑고 밝은 환경이 큰 그릇을 만든다



우리 속담에 '세 살 적 버릇이 여든까지 간다'는 말이 있듯이 어릴 때의 교육이 사람의 일생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가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다. 아버지의 기운과 어머니의 혈육을 받고 열 달 동안을 아늑한 모태에서 온갖 정성을 다 받고 드디어 세상에 아이가 태어났다. 이 순간부터 아이는 인간으로서의 독립된 인격체로 존재하게 되는 것이다. 특히 어버이를 비롯한 가족과 함께 사는 가정이란 아이의 삶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환경으로 작용한다.



그럼 인생을 지배하는 평생교육의 첫 걸음인 유아기 교육은 언제부터 시작되는 것인가. 두말할 나위 없이 태아가 모태에서 벗어나 세상의 첫 기운을 들이마시는 순간부터이다. 이때부터 어버이는 아이의 거울, 아이의 교사 역할을 시작해야 한다. 바로 그 순간부터 아이가 이 땅의 굳건한 동량이 될 수 있는 건강한 떡잎이 될 수 있도록, 그리고 그 떡잎이 튼튼하게 자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야 한다.

영아기는 사람의 모든 기질이 이루어지는 때이다. 그래서 우리가 성질은 선천적이고 기질은 후천적이라고 하는 것이다. 그러나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성질은 잠재적이고, 기질은 발현적이다. 따라서 후천적인 인격 형성의 과정에서도 어버이의 역할은 선천적인 성질 못지않게 중요하다. 자기 씨알을 심술꾸러기, 고집쟁이 어린이 혹은 반항적인 아이로 자라게 하지 마라. 참을성이 없으면서 질투심만 강한 어린이는 인간이 더불어 살아가는 사회에 능히 적응하는 능력을 갖지 못하게 된다. 남에게 의존하는 마음만 있고 매사에 겁을 잘 내는 그런 아이는 커서 오히려 잔인한 행동을 예사로이 하게 될 수도 있다. 이렇듯 씨알 기르기는 만만치 않은 일들이 산재해 있는 과정이다. 그래서 이렇게 어려운 문제들을 풀기 위해 어버이는 교사수업을 평생 해야 한다.



바탕이란 기초이며 인간 학습에 있어서는 가르침을 받아들이는 그릇이다. 때문에 유년기에는 많은 것을 가르치려고 서둘 것이 아니라 많은 것을 담을 수 있는 그릇으로 만드는 데 중점을 두어야 한다. 인간이 인간답게 자라기 위해서는 많은 지식이 필요하지는 않다. 인간의 바탕은 인성이므로 이 인성을 제대로 개발하기 위해서는 지식에 앞서 슬기가 중요하다. 우리의 선조들은 지식보다는 슬기로 자식을 키웠다. 말보다는 행동으로 일상의 모습으로 어떻게 자라야 하는가를 보여주었던 것이다. 그래서 '어버이는 자식의 거울'이 되었던 것이다.



잘 가꾸어진 밭에서 자라는 어린 떡잎은 걱정할 필요가 없다. 이미 기름진 토양에서 비바람을 고르게 받아가며 흠잡을 것이라고는 없는 환경에서 자라고 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좋은 가정환경에서 나무랄 데 없는 유아기를 거친 아이들은 후에 자라서도 그 성품이나 소질이 남보다 늘 뛰어나다. '어릴 때 가정에서 무엇을 가르쳐야 할 것인가?'가 중요하다. 한 세대전만 하더라도 어른들은 주로 아이에게 바탕교육인 인성교육만 시켜놓으면 그들이 학교에 들어가서 그때부터 살아가는 데 필요한 모든 교육을 받게 되어 있었다.



이제는 어버이로서 정성을 다한 10여 년의 선천교육과 태교교육을 거쳐서 모종가꾸기 교육의 6년간을 잘만 하면 유치원, 초등학교에 보내 선생님들에게 맡기기만 하면 되는 낭만적이고, 기초적인 교과서식 가정교육 시대는 지나갔다. 정직하고, 성실하고, 부지런하기만 하면 누구나 살 수 있는 그러한 시대는 지나갔다. 곧 모든 것이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환경 속에서 그것들을 마음대로 부릴 수 있어야 살아남는 시대에 와 있는 것이다. 그러하기 때문에 가정에서 훌륭한 교사로서의 어버이가 되려면 누구에 못지않은 자질을 갖추어야 한다.



오래 전의 어버이들은 요즘처럼 자식 가르치기가 그리 어렵지 않았다. 그저 어버이로서의 권위에 손상이 가지 않을 정도의 근엄과 행동거지, 일반적인 상식만 있으면 되었다. 또한 지금처럼 모든 정보가 신속하지 않았던 때라 집안에서 세상 밖의 돌아가는 형편을 쉽게 알 수도 없었다. 따라서 가족 특히 아이들에게는 나들이에서 돌아오는 아버지가 바깥세상의 유일한 정보 통로였다. 저녁 밥상머리 에서 시작된 재미있는 세상 이야기는 밤늦게까지 계속되어 아이들에게는 그 어버이가 얼마나 훌륭하고 장한 사람으로 보였는지 모른다. 아이들 눈에 아버지는 모르는 것이 없는 척척박사이자 선생님이었다.

요컨대 요즘에는 인간이 만들어낸 첨단 기계가 늘 안방을 차지하고 앉아 교사 노릇을 한다. 일터를 지키는 부모를 대신하는 문명의 이기, 이를테면 컴퓨터, TV 등이 오히려 아이들에게는 더 친근하고 고마울지도 모른다. 그러다 보니 저녁 늦게 집으로 돌아온 가족들이 모여 앉아 대화할 시간이 그리 많지 않다. 아버지들은 대화의 부족을 느끼면서도 무엇을 화젯거리로 삼을지 고민하게 된다. 그런데 매일 쳇바퀴 돌 듯 변화 없는 가정생활에서 재미있는 이야깃거리는 그리 많지 않다. 어쩌다 직장에서 스쳐 들은 화젯거리라도 꺼내면 아이들은 이미 TV 뉴스시간을 통해 알고 있어 흥미를 잃곤 한다. 오히려 요즘의 아이들은 아버지보다 한 발 앞선 정보력을 가지고 살아간다.



이런 세상에서는 오히려 자녀들이 어버이를 앞지르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따라서 요즘의 어버이는 이러한 자각과 더불어 첨단 과학문명 시대를 지탱하고 유지해갈 능력을 자신이 먼저 갖춤과 동시에 다가올 다음 세대에 적응하는 준비를 해야 한다. 또 자녀들을 이러한 환경에 적응하도록 교육시키지 않는 한 우리의 미래는 스스로 만든 인위적 환경에 함몰되어 인간 스스로 파멸의 위기에 이르고 말지도 모른다. 따라서 시대의 변화를 읽어내는 어버이가 되려면 그 변화에 맞는 가치관 확립과 다가올 다음 세대에 걸맞은 세계관 형성을 위하여 끊임없는 자기 수양과 도전이 있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현 세대를 속속들이 파악하고 분석하고, 연구하는 어버이가 되어야 한다.



아이들에게는 어버이들의 손이 닿지 않아야 할 그들만의 세계가 있다는 사실을 부모는 알아야 한다. 그러한 가운데 아이들은 단념하는 것을 익히고, 자기 혼자서 감당해야 할 경우에 부딪쳤을 때, 아이 스스로 어떠한 가능성이 있는가를 생각하는 체험을 통하여 자아는 성장해간다. 꾸미지 않은 인간 본연의 체험을 아이들에게 체험케 함으로써 어찌할 수 없는 현실에 부딪쳤을 때, 스스로 싸우면서 상처를 입고 그래서 마침내는 이겨내고야 마는 강한 자아로 자란다는 것이 오늘까지의 고전적 교육이었다. 그러나 요즘 부모들은 지나친 보호로 자녀들을 완전히 무기력한 아이, 무능력한 아이로 만들고 있다. 이제 부모들의 반성과 각성 없이는 다음 세대의 부모와 자녀들은 어떠한 상황으로 바뀌어 있을지 자못 궁금하다.



예로부터 '사람은 만물의 영장'이라고 하였다. 그런데 짐승들은 어린 새끼가 모태에서 태어나자마자 제 힘으로 걸을 수 있는 자립심을 주었는데도 인간은 그렇지 않다. 열 달 동안의 태중 양육은 제쳐 놓고도 모태에서 태어나 제 발로 걸음마를 하기에는 거의 일 년이란 세월이 걸린다. 또한 인간으로서 제 구실을 하자면 최소한 10년이란 긴 시간을 필요로 한다. 이처럼 그 어버이에 의존하여 살아가는 기간이 가장 긴 생물이 인간이다. 이러한 사람의 유아기는 물론 늦게는 사춘기에 이르기까지 자기 외에 어른이 있어서 그들이 할 일들을 대행하여 주고 있다. 사람이 '사람의 자식'으로 존재하는 동안 늘 어버이에게 의존하고, 어버이는 또 자진하여 자식이 해야 할 역할마저 하고 싶어 한다. 그런데 요즘 세상은 대행자이자 보호자인 어버이에게만 자녀교육을 맡겨 놓지 않는다. 최소한 유아기만이라도 어버이의 품 안에서 자라도록 해야 하는데 사정은 그렇지 못하다.



곧 예전의 아이들은 '인간다운 인간'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반면 오늘날의 아이들은 인간이 아닌 기계의 조작을 통하여 현실을 체험하는 '기계다운 인간'으로 성장한다. 인간인 어버이를 거울삼아서 현실을 알게 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기계의 조작을 통하여 현실을 배워 익혀가는 유소류의 생물로서는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게 되었다. 그 결과 사람에 의하여 키워진 경우와는 전혀 다른 심리구조를 가진 기계적 인간으로 자라고 있음은 오히려 당연한 것인지도 모를 일이다. 우리 어버이들은 자녀를 위한 미래를 지금부터 준비해야 한다. 첨단 과학기술 문명에 익숙해진 젊은 세대들의 특성과 그들이 가고 있는 다음 세대를 예견함으로써 이의 방향을 바로 잡고 이의 내용을 순화시킬 방도를 강구해야 한다.

첨단 기계문명은 지금까지도 그러했듯이 앞으로는 더욱 인간으로 하여금 사람의 바탕인 심성을 서서히 빼앗아 마침내 기계화된 로봇 인간을 대량 생산하고 말지도 모른다. 그 조짐의 하나로 요즘 사람들은 밖으로만 치닫고 안으로 거두어들여 자기 안에 있는 내면세계를 보려고 하지 않는다. 대개 저녁식사를 마치고 넓은 거실에서 가족들이 오순도순 모여 앉아 텔레비전 프로그램에 열중하는 모습은 얼핏 보면 단란한 가정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들은 누구나 말 한마디 없이 프로에 열중하여 웃었다가, 울었다가, 때로는 분노하며 옆에 앉은 아버지나 어머니의 존재는 조금도 아랑곳하지 않는다. 뿐만 아니다. 아내는 남편을, 남편은 아내를 도외시하는 시간일 뿐이다. 그리고 프로그램이 끝나면 한마디 말도 없이 제 방으로 사라지고 마는 가정이 흔한 지금 세상에서 서로의 체온을 느끼는 진지한 대화는 불가능하다.



현대를 사는 모든 인간은 자기를 연출하여 모든 관계를 넓고 얕은 범위에서 조작할 수 있는 기술을 몸에 익힌다. 현대사회 특히, 매스미디어의 사회에서 사람들은 이러한 방법으로 주목받기 위해 애쓰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방법으로 카메라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세상 사람들의 주목을 받던 사람들도 하루아침에 몰락하는 모습들은 보려고 들지 않는다. 오로지 위만 보고 달릴 줄만 알았지 걸으면서 생각하는 사람은 거의 많지 않다. 자기 자신을 속이고, 연출하고, 주위를 조작하는 것만이 자기 자신이라고 생각하는 가운데 연출하고 있는 자기와 현실생활을 하고 있는 자신의 한계를 구분 못하고 혼동시킨다거나 또는 역전시켰을 때에 그 결과는 자기 자신을 완전히 잃어버리는 일이 되고 만다.



세상 어디를 가나 인간관계는 정서를 잃었고, 진실한 인간관계의 적극성은 찾아보기 힘들게 되었다. 컴퓨터에 의하여 만들어진 수험, 진학체제에 편승하여 열심히 과외 공부도 하면서 동조성 지향의 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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