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탄생
로버트 루트번스타인, 미셸 루트번스타인 지음 | 에코의서재
1. '생각'을 다시 생각하기
직감이란 쉽게 설명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훗날 유전학분야에서 노벨상을 받은 바바라 매클린턱(Babara McClintock)은 1930년 어느 날, 코넬 대학 주변의 옥수수 밭에서 동료 과학자들과 유전학연구를 하고 있었다. 연구자들은 전체 옥수수의 절반 정도에서 열매를 맺지 못하는 꽃가루가 나올 것이라 예상했는데, 실제로는 삼분의 일 정도에서만 그 현상이 나타났다. 그 차이는 매우 중요한 것이어서 매클린턱은 무척 혼란에 빠져 있었다. 그녀는 옥수수밭을 지나 언덕 위에 있는 연구실로 가면서 혼자 골똘히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30분쯤 후, 그녀는 펄쩍펄쩍 뛰면서 옥수수밭으로 달려 내려갔다. "유레카, 답을 알아냈어! 왜 붙임 꽃가루가 30퍼센트밖에 안 되는지 알아냈다구!" 흥분하는 그녀에게 동료들은 시큰둥하게 대꾸했다. "그럼 증명해봐." 그런데 정작 그녀의 머릿속에는 이 깨달음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바바라 매클린턱 1902~1992(좌), 알버트 아인슈타인 1879~1955(우) 매클린턱의 의문은 '창조적 사고'를 이해하는 데 있어서 가장 핵심이 되는 부분이다. 돌연한 계시와 통찰은 어디서 오는 걸까? 어떻게 우 리는 말하거나 그리거나 쓸 수 없는 것들을 '아는' 걸까? 우리는 과연 창조적 상상이란 것을 이해할 수 있을까? 옥수수 유전자와 교감하고 있었던 그녀는 수십 년 후, 이렇게 회고했다. "옥수수를 연구할 때 나 는 그 안에서 그 체계의 일부로 존재했다. 옥수수를 바라보고 있으면 그것이 나 자신처럼 느껴졌다. 나는 종종 나 자신을 잊어버렸다. 문제를 풀다가 답이라고 할 만한 어떤 것이 갑자기 떠올랐다면, 그것은 말로 설명하기 전에 이미 무의식 속에서 해답을 구한 경우다." 아인슈타인도 과학자는 공식으로 사고하지 않는다고 했다. "연구의 성과는 면밀한 의도나 계획에서 오는 게 아니라 가슴으로부터 바로 나온다. 나에게는 직감과 직관, 사고 내부에서 본질이라고 할 수 있는 심상이 먼저 나타나고 말이나 숫자는 이것의 표현수단에 불과하다."
매클린턱과 아인슈타인의 사례는 느낌과 직관이 합리적 사고의 방해물이 아니라 오히려 합리적 사고의 원천이자 기반임을 알 수 있게 한다. 많은 사람들은 이 사실을 놀라워한다. 창조적으로 생각한다는 것은 '느낀다'는 것이다. 우리가 이 책을 통해 도전하려는 것은 느낌과 이미지와 감정의 초(超)논리를 이해하고 설명하는 일이다. 그런 초논리에 대해 현재 가장 근접한 개념이 '직관'이다. 그런데 오늘날의 교육시스템은 직관이란 생각도구가 무시되고 '창조적 사고과정'이라는 대단히 중요한 부분을 빠뜨리고 있다. 이것은 '생각하기'의 본질을 절반만 이해하는 것이다. 우리가 창조적 상상력의 기반이 되는 느낌과 감정과 직관의 사용법을 배워야 하는 것은 절대적인 명령과 같다. 그것은 교육의 요체다.
2. 상상력을 학습하는 13가지 생각도구
오늘날의 교육에서 만연해 있는 것은 학교지식과 실제 경험 사이의 단절현상이다. 그 결과는 예술가가나 작가의 꿈을 가진 학생들을 정신적 불구로 만든다. 영국의 소설가 버지니아 울프(Virgina Woolf)는 아버지에게서 이 같은 실패의 전형을 발견하고 있다. 울프의 아버지 레슬리 스티븐(Leslie Stephen)은 당대 손꼽히는 걸출한 교양인이었다. 그는 위대한 문학가가 되고자 했지만 그가 남긴 것은 무미건조하고 분석적인 비평이 전부였다. 그는 학문적으로 눈부신 성취를 이루었지만 정작 딸에게는 자신이 그저 그런 이류 지성인에 불과했음을 고백하고 있다.
울프의 회상에 따르면 분석적 사고라는 측면에서 아버지를 보았을 때는 날카롭고 명징하고 군더더기 없는, 그야말로 케임브리지적인 분석정신의 경탄할 만한 전범이었다. 하지만 실생활 측면에서 보면 매우 조야하고 고리타분한 사람이었다. 울프는 아버지가 받은 케임브리지의 교육이 일방적이고 두뇌만 집중적으로 사용토록 하여 정신을 불구로 만드는 교육이었다고 비판하고 있다. '주입식' 공부에 강했던 스티븐은 훗날 케임브리지대학 교수가 되어서도 학생들에게 항상 시험만 생각하고, 책에만 매달리며, 학사학위를 따기 전까진 아무것도 즐기지 말라고 충고했다. 그녀의 아버지가 받은 교육은 음악, 미술, 연극, 여행 같은 여가활동에 대한 심각한 결핍증을 불러왔고 그 결과 지적 편중과 좁은 시야를 갖게 했다는 것이다.
버지니아 울프,1884~1941
이와는 대조적으로 그의 딸 울프는 괄목할 만한 문학적 성취를 이룩했다. 아버 지가 한계와 진부함 속에 머물러 있었다면 그녀는 역대 어느 작가보다도 모험적 이고 창의적이었다. 아버지가 대학에 보내주지 않았을 때만 해도 울프는 좌절감 속에서 하루하루를 보냈다. 하지만 그녀는 정규교육에 얽매이지 않고 독학을 했 던 것이 결과적으로는 가치를 따질 수 없을 정도로 귀한 것이었음을 뒤늦게 깨 닫게 된 것이다. 울프는 집에서 폭넓고 종합적인 방법으로 학습했다. 그녀의 모든 학습 경험은 몸을 통해 이루어진 것이었다.
소설이나 조각·음악 작품을 단순한 하나의 대상, 다시 말해 분석하기 위한 '무엇'으로 보거나 듣는 것은 환상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실재는 예술이 '어떻게' 발생하고 삶과 어떤 연관성을 맺고 있는지 우리가 이해할 때라야만 경험할 수 있다. 교육에서 '무엇'과 '어떻게'의 결별은 곧 어떤 것을 '안다'는 것과 '이해한다'는 것이 분리되는 결과로 나타난다. 어떤 것을 '이해'하지 못한다는 것은 그것을 실제로 '어떻게' 응용해야 할지를 모른다는 것이며, 그것을 '어떻게' 다루어서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야 할지를 모른다는 것이다. '알기'와 '이해하기' 그리고 환상과 실재를 분리시킨 교육은 총명한 머리를 한쪽만 쓰게 만든다. 그 결과는 울프의 아버지 레슬리 스티븐의 경우처럼 심각한 장애로 나타난다. 울프가 '무엇'과 '어떻게'를 분리하는 제도권 교육을 피할 수 있었던 것은 참으로 운이 좋았다고 할 수 있다.
울프의 사례는 실재와 환상, 이 둘을 재결합하는 일의 중요성을 이야기한다. 창조성이 뛰어난 사람들은 그들의 말과 행동을 통해 그 방법을 알려준다. 그들이 각자 발견한 것들을 한군데로 모은 것이 이 책에서 말하는 13가지 '생각의 도구들'인데, 이것이야말로 창조적 이해의 핵심이다.
생각도구 1 관찰
모든 지식은 관찰에서부터 시작된다. 관찰은 수동적으로 보는 행위와 다르다. 날카로운 관찰력은 순간적으로 사물의 정수를 잡아내는 것이다. 외젠 들라크루아(Euge ne Delacroix)는 5층에서 떨어지는 사람이 바닥에 완전히 닿기 전에 그를 그려내지 못하면 걸작을 남길 수 없다고 말하기도 했다. 예리한 관찰자들은 모든 종류의 감각정보를 활용한다. 열대조류 전문가인 생물학자 저레드 다이아몬드(Jaread Diamond)는 청각적 관찰을 크게 강조한다. 그는 뉴기니아의 밀림이 너무 빽빽하여 새를 볼 수 없었고 오직 소리에만 의지해서 새를 식별해야 했던 경험을 들려준다. "어느 날 아침 열대우림으로 들어가서 다음날 아침이 되기 전에 그곳을 빠져나왔는데, 아침 7시 30분까지 나는 총 57종의 새소리를 듣고 무슨 새인지 알아냈다. 눈으로는 한 마리도 보지 못했다."
시력을 상실한 사람들은 일반인들보다 뛰어난 청력을 보인다. 한 감각기관이 마비되면 다른 감각기관의 의존도가 높아질 수밖에 없는데 생물학자 제라트 버메이(Gerrat Vermeij)의 이력은 이런 사실을 뒷받침한다. 그는 말한다. "전에는 그냥 무시해버렸던 것들이 이제는 특별한 의미를 갖게 되었다. 내 세계는 컴컴하거나 희망이 없는 것이 아니었다. 전과 다름없이 찬란했다. 단지 소리, 냄새, 형상의 요철이나 질감으로 느껴지는 것이 달랐을 뿐이었다. 눈으로는 볼 수 없지만 남은 모든 감각기관이 협력해 더할 나위 없이 생생한 세계의 모습을 나에게 보여주었다."
위대한 통찰은 모든 사물에 깃들어 있는 매우 놀랍고도 의미심장한 아름다움을 감지하는 능력에 달려 있다. 현대미술의 많은 영역에서는 일상적인 현상의 가치를 재발견하는 일이 주목을 받고 있다. 르네 마그리트(Rene Magritte)의 〈이미지의 반역The Treason of Images〉은 파이프를 묘사한 그림인데, 거기에는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Ceci n'est pas une pipe)"라고 적혀 있다. 이 명백한 모순은 '파이프'란 단어가 파이프 자체가 아닌 것처럼 파이프 그림 역시 파이프 자체가 아니라는 사실에 주목하게 만든다. 이미지는 단지 하나의 기호일 뿐 자연 그 자체는 아니다. 생각을 조금 달리하면 생각하지 않는 것들을 주의 깊게 생각해 볼 수 있다.
르네 마그리트 작, 〈이미지의 반역〉 1928~29 관찰력에 영향을 끼치는 것은 생각이다. '생각'에서 무엇이 중요한가를 관찰하는 우리의 행위는 우리 자신이 갖고 있는 정신적 편견과 개인적 인 경험에 의해 영향을 받는다. 객관적 관찰은 가능한 것이 아니다. 결 국 관찰행위의 목적은 감각적 경험과 지적 의식을 가능한 한 가깝게 연결하는 데 있다고 할 것이다.
관찰력 기르는 방법 : 눈을 감고 소리만 듣고 주위의 상황을 마음으로 구성해보며 감각을 예리하게 다듬는다./ 물건들을 수집하면 물건의 질과 종류의 차이를 잘 감별하게 되는 수집가의 능력이 생긴다. / 어떤 대상물을 골라 주의력을 모아 그것에 대해 지각한 것들을 적거나 그려보고 대조해보면, 대상을 정확히 평가하고 특성을 제대로 규정할 수 있게 된다.
생각도구 2 형상화
형상화는 많은 분야에서 보편적으로 쓰이는 생각의 도구로 머릿속으로 정교한 형상을 떠올리는 능력이다. 우리는 내면의 눈, 내면의 귀, 내면의 코, 내면의 촉감과 몸감각을 사용할 구실과 기회를 만들어야 한다. 또한 형상화할 때 마음에 떠오른 이미지들을 다른 전달수단으로 변환할 수 있어야 한다. 퓰리처상 수상작인 테네시 윌리엄스(Tennessee Williams)의 희곡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A Streetcar Named Desire〉는 하나의 심상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그 심상은 이렇다. "나는 젊음의 막바지에 이른 한 여인을 떠올렸다. 그녀는 창문 옆 의자에 고적하게 앉아 있다. 달빛이 흘러 들어와 그녀의 쓸쓸한 얼굴을 비춘다. 그녀 옆에는 결혼할 남자가 서 있다."
테네시 윌리암스 1911~1983(좌), 영화화 된 〈욕망이란 이름의 전차〉(우) 베토벤도 이미지 형상화 능력이 뛰어났다. 그 사실은 아주 심한 청각장애자였음에도 불구하고 그가 위대한 음악을 작곡할 수 있 었던 이유를 잘 설명해준다. "나는 악상을 악보로 옮기기 전에 아주 오랫동안, 어느 때는 하루종일이라도 머릿속에 품고 있곤 했다. 그 과정에서 많은 부분을 바꾸기도 하고, 어떤 것은 버린다. 내가 만족할 때까지 계속 반복한다. 그러고 나서 나는 작품을 정밀하게 다듬는다. 악곡의 이미지를 모든 각도에서 보고 듣는 것이다." 소리의 이미지야말로 곡을 이루는 모든 것이다. 작곡자가 실제로 듣느냐 듣지 않느냐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아인슈타인이 다녔던 스위스 주립학교의 설립자인 요한 페스탈로치(Johann Pestalozzi)는 '시각적인 이해'를 가르치는 일이 다른 어떤 교육보다 선행되어야 한다고 믿었다. 이 학교에서 어린 아인슈타인이 배운 것은 현대의 과학자들이 '사고실험'이라고 부르는 것이었는데 이는 '어떤 물리학적인 상황을 구체적인 형체가 있는 것으로 보고, 느끼고, 조작하고, 변화를 관찰하되 이 모든 것을 머릿속에서 상상하는 것'이었다.
형상화 방법 : 자신의 시각적, 청각적, 기타 감각적 이미지를 인식해본다. 읽고 있는 소설을 마치 영화로 보는 것처럼 라디오로 듣고 있는 것처럼 머릿속에 생생하게 떠올린다. / 하고 싶은 것을 무엇이든 마음껏 해본다. 만일 소리를 이미지 형태로 사고하고 싶다면 가장 좋아하는 노래나 협주곡의 선율뿐만 아니라 화성을 머릿속에서 떠올리거나 듣는다. / 예술을 즐긴다. 음악이나 춤, 회화나 요리에 관한 것을 '배우기'만 하지 말고 직접 그리고 작곡하고 시를 쓰고 음식을 만든다. / 눈, 귀, 코, 촉감과 몸감각을 사용할 구실과 기회를 만든다.
생각도구 3 추상화
과학자, 화가, 시인들은 모두 복잡한 체계에서 '하나만 제외하고' 모든 변수를 제거함으로써 핵심적 의미를 발견하려고 애쓴다. 윈스턴 처칠(Winston Churchill)은 5분짜리 얘깃거리를 가지고 하루종일 떠들 수는 있지만, 말할 시간이 5분밖에 주어지지 않는다면 그걸 위해서 하룻동안 꼬박 준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시인 에드윈 A 로빈슨(Edwin A. Robinson)도 이런 말을 남겼다. "나이가 예순이 넘고 보니 시를 짧게 쓰는 것이 너무 힘들구나." 과학의 가장 중요한 발전들도 복잡한듯 하지만 파인먼은 간결하게 적어놓고 있다. "현상은 복잡하다. 법칙은 단순하다. … 버릴 게 무엇인지 알아내라."
추상화란 불필요한 부분을 도려내 가면서 사물의 놀라운 본질을 드러나게 하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어느 한 분야에서 추상화 방법을 배우는 것은 다른 모든 분야에서 추상을 이해하는 열쇠가 된다. 그러나 추상화한다는 게 무엇인지, 그게 왜 중요한지를 깨닫는 것은 문제해결의 절반에 불과하다. 나머지 절반은 어떻게 해야 복잡한 현상 뒤에 숨어 있는 단순한 개념들을 알아내느냐 하는 것이다. 추상화를 할 때 대다수 사람들이 저지르는 실수는 현실을 무시하면서 추상화를 시작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진정한 의미의 추상화란 현실에서 출발하고 있다. 피카소는 말한다. "현실이야말로 화가가 그림을 시작하게 되는 마음이 흥분되고 감정이 동요되는 출발점이 된다."
자신의 말 그대로 피카소는 그 유명한 황소 연작물을 시작하면서 처음에는 황소의 모습을 아주 사실적으로 묘사했다. 그는 황소의 몸에서 펑퍼짐한 부분들이 형태를 만들고 있다는 점에 흥미를 느끼고 이 부분에 초점을 맞추면서 연작을 그려나갔다. 그러다가 평면들의 가장자리와 모서리에서 황소의 특징이 가장 잘 드러난다는 것을 알게 된 그는 간단한 외곽선 몇 개로 황소를 처리한 그림을 그렸다. 그리고 종국에 가서는 황소의 몸을 이루는 요소들을 대부분 제거하고 머리의 특징을 잡아낸 그림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