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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자신을 경이롭게 재창조하라

스티브 챈들러 지음 | 리드리드출판
Part 1. 활력의 소유자



족쇄를 벗어던져라 / 사는 것도 제기랄, 죽는 것도 제기랄! / 인간이라는 놀라운 창조물 / 나다워야 한다는 생각에서 자신을 해방시켜라




활력의 소유자가 되는 법을 배우기 위해서는 활력을 지닌 사람이 어떤 모습을 하고 있으며 그것이 어떤 느낌인지를 아는 것이 중요하다. 활력의 소유자들을 볼 때마다 나는 항상 똑같은 느낌을 받는다. 데뷔 시절 엘비스 프레슬리의 모습이 그랬다. 험한 입담으로 유명한 야구 선수 척 세실의 경기 모습도 마찬가지다. 독감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농구 코트를 누비고 다니는 마이클 조던을 보면서도 그랬다. 활력의 소유자와 만나면 여러분도 그 느낌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차후에 다른 누군가에게서 그러한 활력을 목격하게 된다면 여러분은 그저 감탄만으로 끝내서는 안 된다. 자신의 활력을 어떻게 끄집어 낼 것인지 생각해보아야 한다. 마냥 부러워만 하지 말고 따라 해 보는 것이다. 스스로에게 되뇌고 그것에 관해 생각하는 것이다. 다른 사람들이 훌륭한 일을 해내는 것을 볼 때마다 '나도 할 수 있다'고 스스로에게 말하는 연습을 해야 한다. 사람들은 대부분 "우와, 대단하다. 나는 죽었다 깨어나도 못할 텐데"라고 말한다. 그렇게 말함으로써 자신은 그저 그런 평범한 사람이라는 환상에 사로잡히고, 그 착각은 더욱 굳어지게 된다.



여러분 안에는 다양한 인간이 존재한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우리는 연습을 통해 자신이 원하는 그 누구도 될 수 있다. 여러분 안에는 아직도 만들어지기만 기다리고 있는 놀라운 인간 창조물이 수없이 많다. 사람들이 영화를 좋아하는 이유 중 하나는 좋아하는 배우를 통해 인간 창조력의 극단을 경험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배우들은 완전히 다른 인간을 창조한다. 우리는 배우의 뛰어난 연기력에 깊이 탄복한다. 그들이 다양한 인간 존재들을 창조해내기 때문이다.



인간의 성격에 대한 근거 없는 인식을 극복해야만 우리는 진정 행복에 도달할 수 있다. 그것은 우리가 자신의 모습에 대한 고삐를 쥐고 있음을 깨달았을 때 누구라도 할 수 있는 일이다. 만약 여러분이 자신에게 어떤 성격이 있다고 말한다면 여러분의 행동반경은 그만큼 좁아진다. 스스로에게 '수줍어한다' 또는 '게으르다', '비겁하다', '엉망이다' 같은 꼬리표를 붙여놓으면 어떤 일을 성공적으로 해낼 능력도 그만큼 차단당하고 만다. 훌륭하게 해낼 수 있는 가능성을 배제시켜버리는 것이다. 그러고 나서는 자신이 들어갈 누에고치를 짜기 시작한다. 어쩌면 자신을 해방시켜줄 수 있는 상황이 벌어지길 기원할지도 모른다. 문제는 그런 힘이 어디에 존재하는지 전혀 이해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그 힘은 '바깥 어딘가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여러분 안에 있는데도 말이다.



우리를 불행하게 또는 강하게 만드는 것은 우리 자신이다 / 지나친 대중 현혹 / 여러분의 살과 피에 관한 것이 아니다 / 안주의 뜰에서 숨을 거두다



활력의 소유자들이 문제를 보는 방식은 보디빌딩 하는 사람들이 바벨을 상대하는 것과 같다. 일종의 저항 훈련으로 기분 좋게 받아들이는 것이다. 반면 피해의식의 소유자들은 그런 무거운 것을 들어 올리고 싶어 하지 않는다. 그들은 바벨을 두려운 눈으로 바라보고, 문제 발생을 무슨 배신행위처럼 여긴다. 무엇보다 안타까운 점은 문제 해결에 써야 할 에너지가 문제를 회피하는 데 사용된다는 것이다. 문제를 머릿속에서 떨쳐내는 데도 정신적 에너지가 소모되기 때문이다. 의식의 초점을 되도록 인생에서 멀리, 다른 방향으로 계속 바꾸어주면서 주의를 다른 데로 돌리려고 애쓰는 것도 에너지 소모가 많은 일이다. 우리는 자신을 불행하게도 만들지만 반대로 강하게 만들기도 한다.



피해자들이 가장 먼저 피해야 할 일로 간주하는 것은 당혹스러운 상황이다.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할까?' 어떤 행동을 고려하기도 전에 머릿속에 자동적으로 떠오르는 문제가 바로 이것이다. 하나의 성격 안에 갇혀 있다고 느끼는 사람은 더 깊은 안쪽에 강력한 활기를 지닌 자아가 존재함을 깨닫지 못하는 사람이다. 그리하여 스스로의 가능성도 알지 못한 채 '자신의 모습'에 최면이 걸리고 만다.

공사장에서 일을 하다 떨어져 병원으로 실려 간 더그 드랜트에게 허리 아래쪽에 일시적으로 마비 증상이 나타났다. 입원하고 며칠이 지나자 그를 도와주기 위해 간호사와 상담사가 찾아오기 시작했다. 그가 현재 상황에 정신적으로 잘 대처할 수 있도록 도와주려는 것이었다. "나는 그런 사람들과 만나면 만날수록 더 화가 났습니다." 세미나의 휴식 시간에 그는 내게 이렇게 말했다. "그들은 계속해서 반신불수에 대처하는 법을 배우라고 했습니다. 그것은 내가 가장 하고 싶지 않은 일이었습니다. 나는 내가 원하는 것, 즉 다시 걷는 일에 정신을 완전히 집중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더그는 싫은 일 대신 자신이 원하는 일에 정신을 집중하면 자신의 바람을 실현하는 길이 보일 것이라고 확신했다. "나는 또다시 내게 반신불수에 대처해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은 내가 반신불수를 만들어놓고 말겠다고 경고했습니다." 결국 더그 드랜트는 다시 일어나 걸을 수 있게 되었을 뿐 아니라 세계역도 챔피언 대회에 나가 금메달까지 수상했다. "사고를 당한 후 나는 내 건강과 체력의 빈자리를 열정과 집념으로 채웠습니다." 그는 자신의 비극적 상황을 받아들이고 스스로를 그 상황의 주인으로 재창조했다. 고통이 무엇인지 잘 알고 있는 그는 이렇게 지적했다. "고통에만 집중해 그 이외의 것은 전혀 생각하지 않으면 그 사람은 아무것도 이룰 수 없게 되죠. 고통 자체를 받아들이고 그 다음 자신이 원하는 것에 철저히 집중해야 합니다. 원하는 것에 더 집중할수록 고통은 줄어듭니다."



치명적인 미끼를 사용하는 교환 게임 / 두려움을 떨치고 행동에 나서라 / 열정의 저돌성 / 더 이상 나약해지지 않기로 결심했다



때로 우리는 인생 노정의 초반부에 매우 놀라운 성과를 달성하고도 자신이 한 일을 인식조차 못할 때가 있다. 엘비스 프레슬리의 삶이 그런 예다. 그가 맨 처음 TV에 출연했을 때 전 세계는 그의 유쾌한 자립정신과 용기에 매료되었다. 그때까지 그런 엄청난 에너지와 열정을 발산하며 노래 부르는 백인 가수를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엘비스 이전의 백인 가수들은 모두 돌처럼 꼼짝 않고 서서 입만 움직여 노래를 불렀던 것이다. 그렇게 조심스러운 노랫소리로는 사람들의 언 가슴을 녹일 수 없었다.

내가 열세 살 때 일이다. 토미 도시와 에드 설리번이 진행하는 TV쇼 프로그램에 엘비스 프레슬리가 출연했는데, 무대 위에서 열창하는 모습에 나는 완전히 얼어붙고 말았다. 노래를 부르며 무한한 자유와 순수한 환희를 발산한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상상할 수 있겠는가? 행복과 만족의 미소가 만면에 가득한 채 그런 폭발적인 성량과 가창력을 누가 감히 선보일 수 있겠는가? 나는 그렇게 엄청난 활력의 소유자는 처음 보았다. 엘비스는 그 노래들을 자신만의 것으로 승화시켰고 열광하는 관중들까지 휘어잡았다. 그의 목소리는 오존을 뚫고 하늘 높이 올라가 반항적 즐거움과 결합했다.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가장 많이 잃고 사는 것, 바로 열정을 보기 위해 우리는 영화관으로 향한다. 톰 행크스 주연의 〈터미널〉을 보면서 사람들은 모두 그의 순수한 삶의 열정에 감동했다.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 감동적인 영화 장면들은 대부분 자기를 버리고 순수한 활력을 표출하는 대목이었다. 우리는 바로 그런 모습을 보기 위해 비싼 돈을 내고 영화를 보러 간다. 우리 삶에서 가장 결핍되어 있는 부분과 정확히 들어맞기 때문이다.



자신의 활력에 이르는 길을 아는 것이 활력을 보고 알고 깨닫고 항상 인식하는 이 싸움의 대부분을 차지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내 자신의 삶을 보더라도, 나도 초기에 피해자적 사고에서 벗어나 주인적 사고에 도달하기까지 수많은 어려움에 직면했다. 내 능력이 어느 정도인지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덫에 갇힌 느낌이었다. 그 덫은 부드럽게 나를 옥죄었다. 그 덫 안에서 부드러운 피해자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래, 네가 무엇을 할 수 있겠니? 네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어." 그러나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많이 있었다. 다만 그것을 보지 못했을 뿐이다. 바로 그거였다.



Part 2. 관계의 주인



사랑은 숫자놀이다 / 우리는 사다리를 오르고 있다 / 자아의 사다리는 여러분 안에 살고 있다 / 천국의 계단을 오를 수 있다




내 딸 마지가 아홉 살 때의 일이다. 어느 날 마지는 아주 화난 얼굴로 내게 다가왔다. "왜 스테파니 언니만 저렇게 편지를 많이 받는 거예요? 언니는 항상 편지를 받는데 저는 한 통도 못 받았어요. 이건 불공평해요." 그래서 나는 차분히 이렇게 물어보았다. "그럼 너는 편지를 쓰니? 편지를 써서 누군가에게 보낸 적이 있느냐는 말이다." "아니요, 없는데요. 하지만 제가 편지를 보내도 답장을 받을 수 있을지 없을지 모르니까 안 쓰는 거예요. 편지를 썼는데 아무도 답장을 보내지 않는다면 지금보다 더 처참해질 거예요. 훨씬 더 실망하게 될 거라구요. 답장을 받을지 아닐지 어떻게 알 수 있겠어요? 그건 아빠도 모르시잖아요?"



"그래, 모르지. 결코 알 수 없지." "그것 보세요. 그렇다면 왜 제가 편지를 써야 하죠?" "왜냐하면 답장을 받을지도 모르니까." "하지만 만약 못 받는다면요? 그렇게 되면 저는 더 슬플 거라구요." "그래 좋다. 안 써도 돼." "하지만 그러면 저는 앞으로 편지를 못 받게 되나요?" "절대로 못 받겠지." "지금도 그렇고 앞으로도 그럴 거라는 걸 저도 알아요. 그런데 스테파니 언니는 편지를 많이 받아요." "왜냐하면 스테파니는 편지를 많이 쓰잖니." "만약 제가 편지를 많이 쓴다면 답장을 받을 수 있을까요?" "그렇게 될 것 같은데." "그렇지만 아빠도 모르잖아요?" "물론 모르지, 나도 장담할 수는 없단다."

마지의 얼굴에는 낭패감이 역력했다. 그녀는 자기 방으로 가버렸고 나 역시 더 이상 그 문제에 대해 생각하지 않았다. 며칠 후 마지가 편지봉투를 산더미처럼 들고 왔다. 봉투에는 그녀가 직접 손으로 쓴 주소들이 적혀 있었다. 벌써 몇 년 전 일이다. 그리고 지금까지도 우리 집 우편함에는 마지 앞으로 편지들이 배달되고 있다. 그 일을 계기로 마지는 사랑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알게 되었다.



나는 LSD에 대해 생각하기를 좋아한다. 내가 자주 사용하는 말로 Laughing(웃음), Singing(노래), Dancing(춤)의 첫 글자에서 따온 것이다. 웃음은 언제나 신속하고 폭발적인 방식으로 여러분을 위로 올라가게 해준다. 이때 유의할 점은 그 상태를 계속 유지해야 한다는 것이다. 우습게 여기다 아래로 떨어져서는 안 된다. 더 위쪽에 머물수록 더 즐거운 삶을 살 수 있다. 그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 최상의 방법이다. 노래 역시 여러분을 저 높은 곳에 도달하게 해준다. 미국의 심리학자이자 종교 철학자인 윌리엄 제임스가 '행복하기 때문에 노래를 부르는 것이 아니라 노래를 부르기 때문에 행복한 것'이라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 그도 비밀을 터득했던 것이다.



그리고 춤을 출 수도 있다. 세계 곳곳의 사람들이 춤을 춘다. 진짜 무도장에서 춤추는 사람들의 표정을 한번 유심히 살펴보라. 남녀노소 상관없이 고등학교 댄스파티에서 춤추는 아이들의 얼굴, 문화센터에서 프랭크 시나트라의 곡에 맞춰 춤추는 노인들의 얼굴에는 모두 행복감이 묻어난다. 그것은 이 세상의 정상, 즉 자아의 꼭대기에 오른 사람들의 얼굴이다.



웃음, 노래, 춤은 여러분이 살아가면서 매일매일 조금씩 보탤 수 있는 것들이다. 사실 이 세 가지를 모두 하지 않은 날은 하루를 허비한 것으로 계산해야 한다. 자신에게 이 점을 엄격하게 적용하기 바란다. 웃는 사람, 노래하는 사람, 춤추는 사람으로 여러분을 재창조하기 바란다. 충만한 삶을 살기 위해서는 이런 학습도 중요하다.



1일 여왕이 될 필요가 없다 / 긍정은 부정의 땅에서 산다 / 사랑은 가슴으로 하는 것이 아니다 / 느낌 그 이상이 되어라



활력의 소유자는 부탁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들이 영업이나 연애활동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반면 피해의식의 소유자들은 남에게 '아니오' 소리도 못할 뿐 아니라 상대방에게 '아니오' 소리를 듣지 않으려고 몸부림을 친다. 이런 사람들에게 '아니오'는 거부를 의미한다. 그것도 철저히 파괴적인 거부다. 이들은 '아니오'를 단순히 '아닌 것'으로 듣지 않고 '당신은 일고의 가치도 없는 사람이다'라는 뜻으로 받아들인다.



그러나 활력의 소유자에게 '아니오'는 그저 '예'의 반대일 뿐이다. '아니오'와 '예'는 함께 공존한다. 모든 사람에게는 '예' 또는 '아니오'라고 말할 수 있는 권리가 있으며, 활력의 소유자에게는 이것이 아무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아니오' 소리를 들어도 무슨 큰일이라도 난 듯 받아들이지 않는다. 또 인생이 불공평하다고 단정 짓지도 않는다. 그냥 또 다른 부탁으로 넘어갈 뿐이다. 인생은 부탁과 약속의 연속인 것이다.



활력의 소유자는 실패에 대한 비이성적이고 미신적인 두려움이 없기 때문에 성공하는 것이다. 그들은 '아니오'라는 부정의 땅을 용감하게 누비고 다닌다. 넘어지면 일어나고 또 넘어져도 다시 일어난다. "선수 시절, 나는 9,000개도 넘는 공을 놓쳤다. 게임에서 진 적도 300번 이상이나 된다. 승부를 결정짓는 중요한 순간에 나를 믿고 토스해 준 슛을 놓친 경우도 26차례나 된다. 나는 살아가면서 수많은 실수를 거듭했다. 그것이 바로 내가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다"라고 마이클 조던은 말했다.



지는 것과 패배를 당하는 것 사이에는 커다란 차이가 있다. 의식에 사로잡힌 사람은 질 수 있기 때문에 게임을 그만두는 것이라고 자신을 정당화한다. 그러나 활력의 소유자들은 아름답게 진다. 그들은 게임에서 져도 이를 통해 스스로를 격려한다. 행동은 '예'와 '아니오'를 신경 쓰지 않는다. '예'와 '아니오'는 그저 좌우, 상하를 가리키는 신호등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기죽고 주눅들 이유가 하나도 없다. 행동에 더 많은 주의를 기울일수록 여러분이 원하는 것을 더 빨리 손에 넣을 수 있다.



우리는 주는 사람 아니면 받는 사람이다 / 피해자를 변화시키는 방법 / 용서=어머니



어떤 관계든 주는 사람이 있으면 받는 사람이 있기 마련이다. 주는 사람이 되느냐 받는 사람이 되느냐는 개개인의 선택 문제다. 물론 그에 따른 결과도 다를 수밖에 없다. 주는 사람들은 타인과 더불어 즐거움을 누린다. 그들은 자신이 남에게 무언가를 베푸는 사람이라는 데 자부심을 갖는 반면 받는 사람은 일반적으로 자신이 받는 사람으로 보이는 데 편집증적 반응을 보이면서 관계를 망쳐버리고 만다.



나는 한때 영업활동을 하는 사람들과 함께 일한 적이 있었다. 그런데 영업 실적이 아주 저조한 사람들은 대부분 스스로를 받는 입장이라고 여긴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그들은 약속을 잡기 위해 전화를 걸면서 유선 상으로 누군가의 시간을 빼앗는 데 대해 사과했다. 그런 다음 직접 만나 상품 설명을 하고 싶은데 상대방이 시간을 내줄 수 있는지 물어본다. 그리고 상품 설명을 마치면 고객에게 상품을 사줄 수 있느냐고 물어본다. 한마디로 그들은 받는 인생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초라하고 비참하게 느껴진다.



그러나 뛰어난 세일즈맨은 자신이 받는 사람이라고 여기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들은 자신을 주는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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