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눈에 축구의 전략을 읽는다
이수열 지음 | 책이있는마을
축구 전략·전술의 변천사
축구에 있어 전략·전술의 의미필자는 축구 전략·전술의 흐름이 크게 세 가지의 중요한 혁명적 사건에 의해 변했다고 본다. 그 첫 번째는 오프사이드 룰의 개정이다. 1925년에 개정된 이 룰은 최초로 일자 수비라인이 등장하는 데 일조했고, 이것이 결국 수비전술의 첨단화를 이끈 출발점이 되었다. 하지만 오프사이드 룰의 개정에도 불구하고, 선수들의 개인 역량에 의해 경기의 흐름이 판가름되는 낭만적 공격축구는 꾸준히 성행했다. 특별히 시스템 변화와 특징에 대해 언급할 것이 많이 없는 이 시대는 이후로 약 30년간 이어졌다. 그리고 현대화로의 진출에 결정적 영향을 끼칠 두 번째 전술 혁명이 찾아왔다. WM, 더블 M의 시대가 가고, 헝가리와 브라질에 의해 탄생한 4-2-4 시스템의 유행을 기점으로 '전술 혁명의 시기'가 찾아온 것이다(60년대). 그리고 찾아온 또 한 번의 전술혁명. 공격축구 부활을 위한 국제축구연맹의 대대적인 룰의 개정과 '실용적인 토털사커'에 입각한 사키의 구상이 다시 한 번 세계 축구 전술의 흐름을 바꾸어놓았다.
피라미드 시스템과 WM 시스템초창기 때(축구의 규칙이 만들어지고 세계적으로 전파를 탄 1860년대)의 축구는 그야말로 극단적인 공격 스타일의 축구였다. 최후방 수비수 한 명을 두고, 전방에 무려 9명을 배치시킨 1-9 시스템이 최초의 전술이었다. 현대적인 관점에서 볼 때 상식적으로는 이해가 가지 않지만 어쨌든 모든 전술의 출발점이 바로 1-9 시스템이었다.
축구 전략·전술 발전에 실질적으로 기여한 규칙이 바로 오프사이드 룰(offside rule)이었다. 오프사이드 룰은 수비의 조직화를 주도했고, 또한 조직화된 수비를 효과적으로 뚫기 위한 각 팀들의 전술 개발을 유도해냈다. 오프사이드 룰의 등장으로 축구는 원시적인 전통 축구의 틀에서 벗어나 한 차원 높은, 고차원적인 스포츠로 발돋움했다. 미드필더의 패스를 받기 직전, 최전방 공격수와 상대 골라인 사이에 두 명의 수비수(골키퍼 포함)가 있을 경우에 오프사이드 반칙이 선언되었던 룰이 1925년 개정되었다. 개정된 내용은 미드필더의 볼을 받기 직전, 최전방 공격수와 상대 골라인 사이에 한 명의 수비수, 즉 골키퍼만 있을 경우에 오프사이드 반칙이 적용된다는 것인데, 이것이 바로 현대 축구에서 활용되어지는 오프사이드 룰이다. 이 룰의 개정으로 인해 전술의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룰의 개정 이후, 최초로 탄생한 현대화된 전형은 잉글랜드 출신의 하버트 채프먼이 고안한 WM 시스템, 즉 3-2-2-3 시스템이다. 3-2-2-3 시스템은 훗날 피라미드 시스템과 함께 세계 축구계를 대표하는 전형이 되었다. 이는 수비수 세 명을 두고 수비형 미드필더 두 명을 배치했으며, 세 명의 최전방 공격수를 두고 두 명의 공격형 미드필더를 배치시킨 전술이다. 언뜻 보기에는 미드필드의 기능을 상당히 강화한 것처럼 보이지만 미드필드에서의 조직적인 플레이를 유도해냈다고는 볼 수 없다. 공격과 수비라는 다소 이분법적인 사고가 지배했던 그 시기에 미드필드에서의 착실한 '패싱게임'과 '압박'은 기대하기 힘들었다. 현대 축구와 비교했을 때 대단히 고전적이라는 인상을 주는 WM 시스템이지만 이 시스템이 현대 축구 발전에 기여한 부분은 결코 적지 않다. 오프사이드 룰의 개정 이후 최초로 등장한 공수의 균형을 이룬 전형이라는 점, 그리고 후방의 탄탄함이 게임을 지배하기도 하는 현대적인 전술의 기틀을 마련했다는 점 등은 WM 시스템이 가지는 중요한 가치다.
WM 시스템의 종말과 새로운 전술1953년 11월 25일은 축구 역사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날이다. 약 30년간 세계 축구계를 주도해왔던 WM 시스템의 종말을 불러온 날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날은 잉글랜드가 홈에서 최초로 패배한 날이기도 하다. 잉글랜드와 헝가리는 54 스위스 월드컵을 앞두고 홈 앤드 어웨이(Home and away) 방식으로 친선경기를 가졌다. 당시 양 팀은 세계 최고의 팀으로 각광받고 있었다. 무엇보다 잉글랜드는 WM 시스템으로, 헝가리는 새롭게 떠오른 4-2-4 시스템으로 세계 축구계를 이끌어가고 있다는 점에서 양 팀의 대결은 전술의 대결이기도 했다. 하지만 경기는 의외로 싱겁게 끝나버렸다. 4-2-4 시스템으로 나선 헝가리가 적지에서 잉글랜드를 6대3으로 완파한 것이다. 이날 경기 결과는 전 세계를 강타한 큰 충격이었다. 헝가리가 홈에서 단 한 차례도 패배한 적이 없는 잉글랜드를 적지에서 완파했다는 점, 그리고 그간 세계 축구계의 중심이라 여겨졌던 WM 시스템이 4-2-4 시스템에 의해 허망하게 무너졌다는 점 때문이다. 이후 헝가리가 활용한 4-2-4 시스템은 전 세계적으로 큰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당시 하버트 애프먼이 고안한 WM 시스템의 유행으로 인해 대인방어가 수비전술의 중심이었으나 4-2-4 시스템에 의해 지역방어의 중요성이 강조되기 시작했다. 네 명의 수비수들은 각각의 지역을 분담하여 자신의 지역으로 들어오는 상대 공격수들을 차단했다. 네 명의 선수가 뛰어난 기술적 능력을 앞세워 자신이 맡은 지역을 굳게 지키자 상대 공격수들은 제대로 공략할 수가 없었다. 이후, 지역방어는 대인방어와 함께 수비전술의 양대 산맥을 이루며, 세계 축구계를 지배했다. 그리고 70년대 이후, 수비 시스템의 유행이 가속화됨에 따라 지역방어와 대인방어를 기초해 다양한 수비 시스템이 등장했다.
58 스웨덴 월드컵 우승국인 브라질은 4-2-4 시스템의 유행을 실질적으로 주도했다. 공격 네 명, 미드필더 두 명, 수비 네 명을 포진시킨 브라질은 공수의 균형 잡힌 경기력을 이끌어내는 데 성공했다. 특히 이 시스템을 활용한 브라질의 공격력은 탄탄한 수비진과 미드필더들의 연결에 힘입어 더욱 탄력을 받았다. 그들의 개인기는 실로 놀라운 것이었고 역사상 가장 위대해 보였다. 그들이 구사한 4-2-4 시스템의 핵심은 바로 자율축구였다.
50년대까지의 축구 전술은 비교적 단조로웠고 공격 중심이었다. 단순하고 실용적인 전술의 활용과 선수들의 화려한 개인기가 그라운드를 장악했다. 하지만 WM, 더블 M 시스템의 시대가 가고 4-2-4 시스템의 성공 이후, 60년대에 이르러 오늘날 유행하는 전술적 모태가 확고히 자리잡기 시작했다. 브라질의 유동적인 공격수들을 제압함과 동시에 공격력을 끌어올린 리누스 미헬스의 토털사커가 60년대 초·중반에 이르러 고안되었고, 수비 전술의 명가 이탈리아의 카데나치오 역시 에레라의 출현과 함께 이 시기에 전성기를 구가했다. 또한 중요한 사실은 브라질이 4-2-4의 변형인 4-3-3 시스템을 유행시켰다는 점이다. 그리고 잉글랜드의 '롱패스 게임' 스타일이 램지의 4-3-3 시스템에 입각한 전술과 융합되며 이 시기에 전성기를 구가했다. 결국 우리가 알고 있는 축구의 4대 스타일, 즉 해피 고 럭키(Happy go lucky), 롱패스게임(Long pass game), 카데나치오(Catenaccio), 토털사커(Total soccer)가 이 시기에 본격적으로 확립된 것이다. '전술 혁명의 시기'라 할 수 있다. 실질적인 전술의 획기적인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한 60년대가 현대화의 진행에 있어서 그 출발점이었다 해도 결코 과언이 아니다.
종주국의 화려한 비상과 몰락축구를 스포츠로 승화시킨 잉글랜드. 그러나 그들의 국제무대 성적은 초라하기만 했다. 월드컵 우승은커녕 번번이 약체로 평가되던 팀들에게 일격을 당해 다수 조기 탈락하는 수모를 겪기도 했다. 더 이상 잉글랜드는 세계 축구계의 최강이라 자부할 수 없었다. 그랬던 그들이 자국에서 열린 66 잉글랜드 월드컵 대회에서 화려하게 비상했다. 66 잉글랜드 월드컵 당시 잉글랜드 팀을 이끌었던 램지 감독은 윙의 생산성을 의심하며 윙이 없는 전술을 고안해내 전 세계를 깜짝 놀라게 했다. 측면을 주로 돌파하여 찬스를 만들어주는 윙이 전체적인 팀 전략에는 그다지 생산적이지 않다고 램지 감독은 판단한 것이다. 결국 미드필드의 기능을 수행하던 선수들의 많은 활동량을 중심으로 전체적인 경기를 운영했던 것이다. 굳이 상대의 문전 깊숙한 곳까지 파고들지 않더라도, 문전으로 볼을 띄울 수 있는 지점에서는 어김없이 롱패스를 시도했다.
잉글랜드 대표팀의 공격은 전방에 위치해 있는 두 명의 키 큰 공격수를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전방 공격수들은 직접 헤딩슛을 시도하거나 혹은 주위의 동료 선수에게 헤딩 패스를 시도하기도 했다. 따라서 그들은 굳이 전문 윙을 둘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미드필드에서의 생산적인 움직임을 강조하고 그들이 내세우는 가공할 포스트 플레이의 위력을 최대한으로 끌어올린 잉글랜드 대표팀은 자국에서 열린 월드컵에서 정상에 오르는 영광을 누렸다. 자국에서 열린 66 월드컵 대회에서 정상에 오른 후, 잉글랜드 축구계는 자신들의 스타일을 좀 더 성숙하게 만드는 데 주력했다. 70년대 잉글랜드 축구는 90%가 넘는 많은 골이 다섯 번 이내의 패스에 의해 이루어졌다는 통계자료를 확인하고, 롱패스 위주의 단조로운 공격방법을 택했다.
단번에 길게 넘어서는 패스를 체력과 힘의 우위를 바탕으로 받아낸다는 그야말로 고전적인 유럽식 축구 스타일이다. 단순하게 생각하면 당시 잉글랜드 축구계의 구상이 맞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러한 플레이 스타일의 확립은 곧, 잉글랜드 축구가 한계에 부딪히는 결과를 초래하고 말았다. 이는 70년대에 잉글랜드 대표팀의 초라한 성적표를 낳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직접 축구를 내세운 잉글랜드는 74 서독 월드컵과 78 아르헨티나 월드컵 본선에조차 참가하지 못했다. 잉글랜드의 '직접 축구'가 실패한 결정적 이유는 단순화된 플레이 스타일에 있었다. 무분별한 롱패스는 많은 팀들이 수비 숫자 보강에 많은 노력을 기울이기 시작했던 당시 축구계에서 그 정확성을 잃었고, 정확하지 못한 잉글랜드의 공격은 과정을 거치는 세밀한 상대의 조직력에 의해 완전히 차단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브라질의 4-3-3 시스템58 스웨덴 월드컵 대회에서 4-2-4 시스템으로 정상에 오른 브라질 대표팀은 62 칠레 월드컵에서 전술변화를 시도했다. 58 스웨덴 월드컵에서 공격을 이룬 자갈루-바바-펠레-가린샤 중, 미드필더의 성향이 강한 좌측 공격수 자갈루를 미드필드로 끌어내려 4-3-3 시스템을 완성한 것이다. 이 시스템을 처음 활용한 감독은 아이모레 모레이라였다. 브라질은 이 시스템으로 다시 한 번 세계 정상에 우뚝 섰다. 이후 60년대 브라질이 추구하는 전술은 4-3-3이 되었다. 그리고 당시 브라질이 유행시킨 4-3-3 시스템은 이내 60년대를 대표하는 전술이 되었다. 66 잉글랜드 월드컵에서는 예선탈락의 고배를 마셔야 했으나 70 멕시코 월드컵 대회에서 다시 한 번 정상에 올라 세계 최강임을 입증하였다.
공격수 한 명을 미드필드로 끌어내려 4-3-3 시스템의 전형을 일궈낸 브라질이지만 자율축구는 변함 없었다. 가장 순수한 스타일을 추구한 팀이었다. 전술이란 틀에 선수를 맞추는 것이 아니라 선수들의 특징을 최대한 고려하여, 선수들이 그라운드 내에서 가장 편안하게 경기를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당시 브라질 대표팀의 축구 철학은 이렇듯 순수하고 자유분방했다.
언제나 그렇듯, 독주체제를 구축한 팀들은 상대방에 의해 집중 견제를 받을 수밖에 없다. 50년대 후반부터 60년대 말까지 그야말로 독주체제를 구축하며 무적함대의 위용을 과시했던 브라질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브라질이 유행시킨 4-2-4 시스템 이후(50년대 말~60년대 초반)부터 가속화되기 시작한 수비전술에 대한 연구는 브라질의 독주와 함께 더욱 심화되었고, 다양한 첨단적 수비전술이 탄생했다. 리누스 미헬스가 브라질의 공격을 막기 위해 고안했다는 전체적인 압박축구가 대표적이다. 공격 중심의 토털사커에 있어서 그가 구사한 수비전법은 후방을 탄탄히 한다는 이론에 편승되어 탄생한 기존의 수비전술에 대한 고정관념을 깨뜨린 획기적인 것이었다. 지역방어에 기초해 전원이 전진하며 수비태세를 갖추고, 상대 공격을 사전에 봉쇄해버리는 매우 과감한 수비 시스템이었다. 이외에도 다양한 수비 시스템이 브라질을 비롯한 공격지향적인 팀들을 괴롭히기 시작했다.
카데나치오(Catenaccio)이탈리아에서는 50년대 초부터 1-3-4-2 등 후방의 기능을 강화한 시스템을 활성화시켰다. '스위퍼', '리베로'라는 신개념 플레이어를 둔 파격적인 전술 혁명이었다. 카데나치오란 이탈리아어로 자물쇠를 뜻하는 용어다. 문전을 단단히 걸어 잠그는 이탈리아의 축구를 빗대어 나타낸 말이기도 하다. 수비에 중점을 둔 이탈리아의 축구는 60년대를 수놓은 세계 최강의 팀 중 하나로 각광받았다.
리베로란 이탈리아어로 '능동적으로 행동하는 자'란 뜻이다. 축구에 있어서는 최후방 수비 중에서도 가장 후방에 위치한 선수를 말한다. 일정한 마크맨이 없이 스토퍼(Stopper) 뒤에 위치하여 상대의 공격을 빗자루처럼 쓸어버리는 역할을 한다. 상대 공격의 흐름을 읽어내는 탁월한 시야와 함께 동료 수비수들의 움직임을 조율할 수 있는 리더십과 경기운영 능력을 지녀야만 이 포지션을 제대로 소화해낼 수 있다. 주로 아군 수비의 빈 공간을 찾아 메운다. 리베로는 또한 팀의 히든카드이기도 하다. 수비가 주된 임무이지만 때에 따라서는 미드필드 전방까지 침투하여 아군의 공격을 돕는 역할을 해낸다. 이탈리아는 60년대, 리베로를 둔 전술로 세계적인 강호들의 무수히 많은 공격을 선방해냈다.
70 멕시코 월드컵 결정전에서 '공격축구의 표본'이라 여겨지는 브라질과 '철옹성 빗장수비' 이탈리아가 만났다. 공격과 수비의 대결로 당시 많은 세계인의 이목을 집중시킨 경기였다. 펠레의 브라질과 파게티의 이탈리아. 이 경기는 공수 대결의 표본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이 경기를 보면서 카데나치오의 한계와 더불어 브라질 공격축구의 위력을 동시에 간파할 수 있었다. 예상대로 경기 초반부터 브라질은 공격, 이탈리아는 수비 위주의 경기를 펼쳤다. 전반전 동안 이탈리아의 철옹성 빗장수비는 위력을 과시했다. 하지만 후반 들어 양상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브라질의 막강한 공격이 활력을 되찾은 반면, 이탈리아의 수비는 후반 중반에 이르면서부터 많은 허점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결국 체력싸움에서 브라질의 공격수들이 이긴 것이었다. 공격-미드필드 간의 조직력을 되찾은 브라질의 공격력을 막을 수 있는 방법은 없었다. 이탈리아의 수비는 브라질에게 내리 3골을 허용하며 결국 1대 4의 쓰라린 패배를 맛볼 수밖에 없었다.
다시 한 번 언급하는 거지만 축구전술의 변화는 수비를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70 멕시코 월드컵 결승전에서 공격축구로 무장한 브라질이 수비축구의 이탈리아를 완파하면서 공격축구가 아직도 우위에 있음을 전 세계에 공고히 하며 그 입지를 다졌지만, 이 결과만 두고 미래에도 공격축구가 주도권을 잡을 것이라고 생각하기는 힘들었다. 실제로 70년대부터는 본격적으로 수비 중심의 전술이 세계 축구를 주름잡기 시작했고, 이는 월드컵 경기 당 평균득점 추이를 살펴보면 쉽게 알아볼 수 있다.
그렇다면 왜 이렇게 세계 축구계는 수비전술 연구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것일까? 그 이유는 안정된 수비라인의 구축이 팀 승리의 밑바탕이 되기 때문이다. 기초공사가 튼튼해야 하기 때문이다. 후방이 탄탄해야 전방에 있는 공격수들이 마음껏 공격을 전개할 수 있다. 3골을 넣어도 4골을 허용한다면 아무런 소용이 없기 때문이다. 반면 골을 넣지 않아도 실점하지 않으면 절대 지지는 않는 것이다. 타이틀과 커리어가 자신과 팀의 가치를 높이는 냉혹한 프로의 세계에서 승리는 절대적인 것이다. 꾸준한 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