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유, 욕망의 샘
김재명 지음 | 프로네시스
프롤로그 ― 현대 문명의 젖줄흔히 인류 문명의 발생을 이야기할 때 가장 먼저 떠올리는 것은 바로 강이다. 황하, 갠지즈, 티그리스와 유프라테스, 그리고 나일에 이르기까지 강은 고대 문명의 젖줄이었다. 고대 농경사회에서 안정적인 수자원의 확보가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는 굳이 장황하게 설명할 필요도 없다. 과학 기술의 발전이 우주에 식민지를 건설하는 꿈을 꾸게 하는 오늘날에조차 사정이 다르지 않은데, 하물며 고대 사회에서는 더 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그래서 흔히 강을 문명의 젖줄이라고도 부른다. 그렇다면 현대 문명의 젖줄은 무엇일까?
이 책은 현대 문명의 젖줄이자, 달리 보면 온갖 재앙의 근원이라고도 할 수 있는 '검은 황금', 즉 석유에 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20세기의 문명이 시작되면서 석유는 다른 여러 자원들과 달리 아주 독특한 지위를 차지해왔다. 공장에서 대량으로 만들어진 자동차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오기 시작하면서 석유에 대한 수요는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전기를 만들어내는 발전소조차 기본 동력은 석유다. 만약 석유가 없었다면 전기를 에너지로 써서 가동되는 공장들은 아예 등장조차 못했을지 모른다.
하지만 이처럼 현대 기술문명을 지탱하고 있는 석유의 또 다른 얼굴은 환경 파괴와 전쟁이라는 재앙을 부르는 주문이기도 하다. 달리 말해 한편으로는 인간 문명을 보살피는 따스한 얼굴이지만 그 이면에는 모든 것을 삼켜버리는 끔찍한 화마와 같은 얼굴이 숨겨져 있는 야누스적 존재이다. 석유가 돈이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된 후, 석유 생산지를 차지하려는 전쟁은 끊임없이 일어났다. 덕분에 하나뿐인 지구의 자연환경도 덩달아 위협받는다. 2006년 이스라엘―레바논 전쟁에서도 그랬다. 이스라엘 군의 공습으로 레바논의 기름 저장소가 파괴되자, 레바논의 해변과 바다는 쏟아져 나온 석유로 말미암아 끔찍한 상태가 되고 말았다. 분명한 사실은 석유 자신이 그런 재앙에 대해 책임질 이유는 없다는 것이다. 실제로 석유에 무슨 죄가 있겠는가. 문제는 석유에 대한 인간의 탐욕과 갈증에 있다. 그로 말미암아 피비린내 나는 전쟁과 끔찍한 환경파괴가 자행되었고, 그런 상황은 지금도 여전히 진행중이다.
석유가 자연적으로 뿜어져 올라오는 것을 기다리지 않고 지하로 파들어 가는 현대적인 석유산업의 시초는 1859년으로 기록되어 있다. 미국 세네카 석유회사의 기사로 전직 철도원이었던 E.L. 드레이크가 펜실베니아 주 오일크리크에서 로프식 기계로 깊이 21미터의 유정을 파는 데 성공하면서 본격적인 석유산업의 시대가 열렸다. 그로부터 거대 석유 기업체들이 나타나고, 이들이 국가권력과 손을 잡으면서 외국의 석유 이권을 빼앗기 위해 전쟁을 벌였다. 그래서 20세기 현대사의 주요 부분을 장식하는 수많은 전쟁에서 무수한 젊은이들이 '애국'이라는 이름 아래 전쟁터에 투입되어 아까운 목숨을 잃었던 현장들의 보고서에는 석유 이야기가 빠지지 않는 것이다. 이러한 사정은 21세기인 요즘에조차 크게 다르지 않다. 우리나라의 군인들이 파병된 이라크가 바로 그 증거일 것이다.
석유의 두 얼굴, 그것은 현대 기술 문명의 젖줄이기도 하고, 또한 바로 그런 이유 때문에 탐욕의 대상이기도 하다. 분명 그것은 위험한 축복이다. 고대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판도라의 상자 이야기는 인간의 삶에서 어떻게 희망과 절망이 찾아오는지 설명해준다. 호기심 많은 판도라가 신들의 경고를 무시하고 마침내 상자를 열었을 때, 상자 밖으로 먼저 튀어나온 것은 질병과 재앙 그리고 절망이었다. 그래도 우리가 그 이야기에 실망하지 않는 것은 그 상자 속에는 여전히 희망이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과연 석유 이야기도 그럴 수 있을까?
1부 번영과 탐욕의 두 얼굴
석유 시대의 종말과 CSIS 연구보고서우리 인간이 생산 활동을 하려면 동력(energy)이 필요하다. 자전거가 넘어지지 않으려면 계속 폐달을 밟아 줘야 하듯, 산업 시설들을 돌리려면 연료를 때야 한다. 그러나 석유를 비롯한 화석연료가 무진장 남아 있는 것은 아니라는 데 문제가 있다. 우리 인간들이 두 발을 딛고 사는 땅 밑에는 도대체 얼마나 많은 석유가 묻혀 있을까. 브리티시페트롤리엄(매출액 세계 1위의 영국 석유회사)은 해마다 석유 관련 연감을 펴냈다. 2005년판 자료집에 의하면, 지구에는 2004년 말 현재 1조 1,886억 배럴의 원유가 묻혀 있다. 앞으로 새로운 거대 유전이 발견되지 않는다면, 그리고 지금의 생산량을 그대로 이어간다면, 41년 뒤에는 석유가 한 방울도 남지 않는다는 얘기다. 물론 이는 어디까지나 산술적인 계산이다. 문제는 지역마다, 그리고 나라마다 석유 채굴이 가능한 시점이 크게 차이가 난다는 점이다.
사우디아라비아, 이란, 이라크를 비롯한 중동 산유국들과 반미 노선을 걷고 있는 남미의 베네수엘라, 카스피 연안의 아제르바이잔, 아프리카의 리비아 등은 앞으로 짧게는 50년, 길게는 100년쯤 석유 채굴이 가능할 만큼 풍부한 석유가 매장돼 있다. 전 세계적으로 지금까지 확인된 매장량 가운데 62퍼센트인 7,339억 배럴이 묻혀 있는 중동 지역은 앞으로도 82년 동안은 원유를 퍼 올릴 수 있다. 그러나 미국이나 영국을 비롯한 유럽 국가들의 석유 채굴은 10년쯤 뒤면 바닥에 다다를 것이다. 바로 이 점에서 미국과 영국이 이라크를 침공한 동기가 무엇이었는지 읽을 수 있다. 10년과 82년의 차이는 엄청난 것이다.
미국의 이라크 침공이 거의 기정사실처럼 여겨지던 2002년 말, 워싱턴의 싱크탱크인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는 미국의 이라크 침공이 국제유가에 미칠 영향을 내다보는 연구보고서를 내놓았다. 그 보고서는 네 가지 시나리오를 설정했다. 첫째, 미군이 이라크를 침공하지 않을 경우, 둘째, 미군이 이라크 전쟁을 끝내고 이라크를 안정시킬 경우, 셋째, 전쟁이 어느 정도 시간을 끌 경우, 넷째, 미군이 이라크 침공 뒤 정치사회적 혼란이 계속되는 경우다.
그 가운데서 네 번째가 바로 최악의 시나리오다. CSIS 연구보고서는 미군이 이라크를 침공, 점령한 뒤 치안을 바로잡지 못하고 혼란이 이어질 경우, 유가가 급등할 것이라 내다봤다. "걸프 지역에서 계속되는 혼란은 중동의 원유 생산량을 떨어뜨려(2002년 말 당시 수준이었던) 배럴당 20달러 선이라는 장기적 균형을 이루는 데 결정적인 장애요인으로 작용하게 될 것이며, 2004년에는 원유가가 배럴당 평균 40달러 이상을 기록해 지구촌 경제성장을 가로막는다." 불행히도 현실은 이 CSIS 보고서가 네 번째로 짚은 최악의 시나리오대로 펼쳐졌다.
많은 석유전문가들은 유가 100달러 시대가 멀지 않았다고 내다본다. 영국 런던에 본부를 둔 세계적인 컨설팅 기업인 바클레이즈캐피탈의 에너지 동향 분석가 폴 호스넬은 "배럴당 100달러는 웃기는 얘기가 아니다. 중동 지역의 정치적 불안이 깊어지면 100달러가 가능하다"고 전망한다. 그렇다면 언제까지 고유가 시대가 이어질까 하는 궁금증이 생겨난다. 거리를 메우는 자동차 행렬이 말하듯 굳어진 석유 소비행태가 쉽사리 고쳐질 것 같지는 않다. 공급은 늘 수요를 못 따라간다. 설상가상으로 아랍권 을 중심으로 한 산유국들의 자원민족주의는 점점 더 강화되는 것처럼 보인다. 이런 상황으로 미루어 볼 때, 지금 우리가 사는 고유가 시대는 쉽게 끝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일반적으로 자본주의 시장에서 상품 값이 결정되는 것은 수요곡선과 공급곡선이 만나는 지점에서다. 석유 공급은 갈수록 줄어드는데 자동차를 비롯한 기본적인 석유 수요가 함께 줄어들지 않는다면, 석유 값은 치솟기 마련이다. 지금도 비싼 석유 값이 문제가 되고 있지만, 앞으로 40~50년에 걸쳐 갈수록 고유가 행진을 거듭할 것이 뻔하다. 우리는 이른바 석유 위기의 시대를 살고 있는 셈이다. 기름 한 방울 나지 않지만 세계 5위의 원유수입국(2005년에 496억 달러), 에너지 소비량 세계 10위(석유 소비 세계 7위)가 바로 대한민국의 현주소다. 우리는 한마디로 에너지 소비대국에서 살고 있다. 우리나라의 에너지 해외의존도는 97퍼센트에 이른다. 그러니 국제적인 유가 변동을 예민하게 지켜볼 수밖에 없다. 유가 상승은 물가 상승-소비감소, 금리 인상-투자감소, 노동자의 실질임금 하락-고용감소, 수출입 관련 교역조건 악화-경상수지 악화, 국내 총생산(GDP) 감소-경기침체라는 악순환의 고리를 낳는다.
20세기에 일어난 대부분의 전쟁들이 한정된 자원을 둘러싼 전쟁이었던 것처럼, 21세기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자원전쟁의 시대를 살고 있다. 석유 생산국들이 자원민족주의로 나아가는 것을 한탄하기보다는 대책을 세워야 한다. 그 대책이란 명료하고 간단하지만 결코 쉽지 않은 해법이다. 석유시대의 종말을 향해 달려가는 시대, 이제 그 탐욕과 갈등의 현장들을 살펴보자. 그것은 이제 곧 닥쳐올 에너지 위기의 시대에 우리가 얼마나 독한 마음을 먹어야 하는지를 간접적으로 증언해 줄 것이다.
'검은 황금'을 둘러싼 갈등과 각축석유가 경제를 움직이는 주요 에너지원인 한, 값싸고 안정적인 석유자원을 확보하는 일은 국가경제, 나아가 국가안보에서도 매우 중요하다. 석유 공급이 중단된다면, 곧바로 경제활동은 마비될 것이다. 더구나 역설적인 것은 석유 공급이 끊기면 석유를 차지하기 위한 전쟁조차 치르기 어려워진다는 점이다. 작전은커녕 군 병력이 아예 움직이지도 못하고 패배하고 말 것이다. 여러 전쟁사가들은 석유가 승패를 갈랐다는 사실을 기록으로 남겨놓았다. 그리고 20세기 전쟁사는 석유자원을 확보하기 위한 투쟁을 빼고는 제대로 기록될 이야기가 별로 없다.
석유가 발견되고, 그 경제적인 쓰임새가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19세기 중엽부터였다. 또 그때까지만 해도 석유가 오늘날과 같이 귀한 재화로 떠오를 줄은 아무도 몰랐다. 과거 제국주의 시대의 식민지와 의미가 같다고는 할 수 없지만 오늘날 우리가 사는 21세기에도 식민지라는 개념은 여전히 유효하다. 물론 땅이 아니라 그 땅에서 나오는 자원이 문제다. 다시 말해 해당 지역의 자원을 사실상 제 마음대로 지배하는 형태의 식민지다. 그래서 새로울 '신'자가 들어간 '신식민지'라 일컫는다. 무력으로써 신식민지를 개척한 나라는 그 식민지 사람들에게 허울뿐인 정치적 독립을 안겨주면서, 그곳의 자원을 헐값에 약탈해 간다. 이를테면 지금의 이라크가 좋은 예다. 세계에서 세 번째로 많은 석유자원을 지닌 이라크는 미국의 신식민지나 다름없다.
석유는 혁명을 불러일으키는 불씨를 제공하기도 했다. 20세기 초 러시아혁명이 그렇다. 옛 소련의 독재자 요시프 스탈린을 기억하는 사람은 많지만 사실 그가 석유산업 자본가들의 횡포에 대항해 싸웠던 노동운동가 출신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는 20세기 초 러시아 카프카스 유전지대에서 러시아 석유 채굴판매 독점권을 지녔던 외국 자본가들의 노동착취에 대항해서 1905년에 폭동을 일으켰다. 그 무렵 러시아령 카스피 해 일대는 유럽에서 소비하는 석유의 상당 부분을 공급하는 곳이었다. 문제는 러시아 석유 이권을 서유럽의 외국 자본가들이 차지하고, 생산과 판매를 독점하면서 러시아 석유 노동자들을 저임금으로 착취했다는 점이다. 그것은 결과적으로 훗날 러시아 프롤레타리아 혁명의 불씨가 되었다. 스탈린은 카프카스 유전지대의 중심인 바쿠에서 과격한 노동운동을 하면서 이름을 날려, 훗날 모스크바의 중앙 정치무대로 나아가는 바탕을 마련할 수 있었다.
50개국 이상이 참전해 싸웠고 무려 5천만 명이 목숨을 잃었던 제2차 세계대전도 결국은 '석유전쟁'이었다. 즉, 한편으로는 영국-미국-프랑스-러시아를 중심으로 한 연합국이, 다른 한편으로는 독일-이탈리아-일본이라는 추축국이 대립하면서, 그 두 거대한 세력이 석유 한 방울이라도 더 많이 확보하려고 벌인 전쟁이었기 때문이다. 히틀러의 독일이 일본의 제국주의와 이탈리아 무솔리니의 파시즘과 손을 잡고 위협적인 세력을 이루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연합국은 1940년과 1941년 잇달아 이들 세 국가에 대한 석유 금수조치를 선포했다.
전쟁이 터지기 전에 독일은 루마니아의 플로에스티 유전에서 독일 전체 수요의 50퍼센트 이상을 수입해왔다. 전쟁으로 석유 수요가 크게 늘어나자, 히틀러는 카스피 해와 코카서스 유전지대를 차지하려고 소련을 침공했다. '사막의 여우'라는 별명까지 얻은 롬멜 장군을 북아프리카로 보낸 것도 그곳 유전지대를 장악하려는 속셈에서였다. 아프리카 북부의 롬멜 전차군단은 독일군이 자랑하는 정예부대였지만, 결국에는 연료 부족으로 탱크를 제대로 움직이지 못하는 바람에 괴멸당하고 말았다.
러시아 전선의 독일군도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1942년 7월 독일군은 카스피 해 일대와 카프카스 산맥 일대의 유전지대를 차지하기 위해 소련 남부에 대한 공세를 폈다. 그러나 소련군은 스탈린의 명령에 따라 카프카스 일대의 유전 설비들의 파괴하여 초토화 전술을 폈다. 독일군은 카프카스 유전지대의 중심인 그로즈니에는 아예 발도 들여놓지 못했다. 독일군이 다음 목표로 삼은 스탈린그라드(오늘날의 볼고그라드)에서 굴욕적인 패배를 당하면서 제2차 세계대전은 전환을 맞았다(1943년 2월 항복한 9만 1천 명의 독일군 가운데 6천 명만이 살아남아 전쟁이 끝난 뒤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군사 전문가들은 "제2차 세계대전의 승패는 석유가 결정했다"고 말한다. 사람들은 "유전지대를 확보하라"는 히틀러의 명령이 제대로 지켜지지 못한 것을 독일이 패배한 결정적 요인으로 꼽기도 한다.
일본의 진주만 공습(1941년)도 석유와 관련이 깊다. 1937년 중일 전쟁이 터진 뒤로 일본이 중국 본토를 차츰 점령해 들어가자, 미국은 일본의 야심이 동남아까지 뻗치고 있다고 판단했다. 결국 1941년 미국은 "일본으로 가는 석유 수출을 제한한다"는 결정을 내렸다. 당시 일본은 석유를 거의 수입에 의지하고 있었고, 그 가운데 상당한 양을 미국에서 들여왔다. 미국으로부터 들여온 석유가 일본 해군의 연료로 쓰였음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일본의 전쟁 지도부는 "만일 미국이 일본으로 수출하는 석유 수송로 꼭지를 틀어막는다면, 우리 일본 해군의 군함들이 움직일 수 없게 된다. 빨리 다른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마침내 그들이 내놓은 대안은 네덜란드 식민지로서 석유가 풍부한 인도네시아를 점령하는 것이었고, 그 목표를 이루는 데 걸림돌이 되는 미 태평양 함대를 기습공격으로 괴멸시켜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것이 바로 진주만 공습으로 나타났다.
일본은 진주만 공습으로 미 태평양 함대를 괴멸시킴으로써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등의 유전지대로부터 캐낸 석유를 일본으로 안전하게 운반하려 했다. 일본 역시 안전한 석유수송로 확보가 곧 생명이라는 사실을 간파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미드웨이 해전을 비롯한 일련의 해전에서 일본 해군이 패배하면서 남중국해를 지나는 석유수송로가 위협을 받았다. 미군은 일본행 유조선을 공격목표로 삼았고, 그 결과 일본은 심각한 석유 부족에 시달리기 시작했다. 기름이 떨어진 일본 해군이나 공군은 작전다운 작전을 펼 엄두도 못 냈다. 일본의 실제적인 패망은 안전한 석유수송로를 잃은 데서 비롯됐다고 볼 수 있다.
2부 지구촌의 석유 분쟁
자유의 땅 남중국해의 석유 분쟁우리나라가 일본과 독도 주변의 배타적 경제수역(EEZ)를 둘러싸고 갈등을 빚듯이, 동남아시아 지역의 나라들도 같은 문제로 긴장상태다. 서로가 주장하는 배타적 경제수역이 겹치는 탓이다. 유가가 높아지면 높아질수록, 석유자원이 고갈되면 고갈될수록, 그리고 국가 경제력이 커지면 커질수록 이들 국가들의 영유권을 주장하는 목소리도 커질 것이다. 이처럼 문제의 남중국해는 여러 이해 당사국들이 저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