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아무도 NO라고 말하지 않는가?
제리 B. 하비 지음 | 크레듀
에빌린 패러독스(Abilene Paradox): 잘못된 선택1974년 7월 오후, 텍사스 콜맨의 여름은 수은주가 섭씨 40도까지 올라갈 정도로 무더웠다. 오랜만에 처가를 방문한 나는 가족들과 함께 선풍기 앞에 모여 앉아 시원한 레모네이드를 마시며, 도미노 게임(28개의 패를 가지고 하는 점수 맞추기 게임-역자주)을 즐기고 있었다. 갑자기 장인이 "우리 에빌린에 가서 외식이나 하지"라고 제안하기 전까지는 말이다. 나는 속으로 내키지 않았지만 아내가 맞장구치자 어쩔 수 없이 동의했다. 그러자 장모 역시 기다렸다는 듯이 찬성했다. 이렇게 해서 우리는 고물 자동차를 타고 왕복 170킬로미터를 달려 4시간쯤 지난 뒤, 더위에 지칠 대로 지친 채 콜맨으로 돌아왔다. 얼마 후 나는 썰렁한 분위기를 깨기 위해 예의상 이렇게 말했다. "오늘 그런대로 괜찮았죠?" 마침내 장모가 짜증 섞인 목소리로 불평을 했고, 우리는 한참 서로를 탓한 후에 겨우 조용해질 수 있었다. 실은 단 한 명도 에빌린에 가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많은 조직들이 실제로 달라스나 휴스턴, 도쿄에 가고자 하면서도 '에빌린으로 가는 길'을 선택했다. 그렇게 본인의 의사와는 달리 잘못된 행선지를 선택했을 때, 조직의 구성원들이 겪어야 하는 고통과 경제적 손실은 우리 네 식구가 에빌린에서 외식을 했던 것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컸다. 나는 조직의 구성원들이 아무도 원치 않는 여행을 떠나는 그러한 성향을 '에빌린 패러독스'라고 부른다. 어느 조직이 에빌린 패러독스에 빠지게 되면, 그 조직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과는 반대되는 행동을 취하게 되며, 결과적으로 원하는 목표를 달성하지 못하게 된다. 대부분의 경영 이론 전문가들은 갈등 관리manage conflict가 조직이 직면한 가장 큰 어려움 중의 하나라고 지적한다. 하지만 나의 에빌린 패러독스의 논리에 따르면 합의 관리manage agreement를 하지 못함으로써 조직이 기능장애에 빠지는 것이 더 큰 문제이다.
에빌린 패러독스의 일반적인 증상대체로 합의를 효과적으로 관리하지 못하는 조직들은 다음 다섯 가지의 특성을 보이는데, 우리 가족도 예외는 아니었다.
첫째, 각 조직의 구성원들은 조직이 처한 상황이나 조직이 당면한 문제의 본질에 대해 겉으로 표현하지는 않지만, 동일한 생각을 가지고 있다.
둘째, 각 조직의 구성원들은 자신의 욕구나 생각을 서로에게 정확하게 전달하지 못한다. 사실, 정반대로 행동해서 서로가 조직의 상황을 오해하게 만들뿐이다.
셋째, 각 조직의 구성원들은 그들이 처한 상황이나 문제를 해결하는 데 필요한 조치에 대해 '무언의 합의'를 한다.
넷째, '무언의 합의'에 동참하게 된 조직의 구성원들은 조직에 대한 분노와 불만을 느끼게 되며, 그로 인해 친숙한 몇몇 구성원 간에 하위집단을 형성하고 다른 집단을 비난한다.
끝으로 만약 조직의 구성원들이 합의를 관리할 수 있는 능력이 부족하여 끝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이러한 악순환은 계속 반복되면서 강도가 거세진다. 다행히 우리 가족은 그런 상황까지 가진 않았다.
에빌린 패러독스에 빠지는 5가지 요인모든 패러독스가 그렇듯이 에빌린 패러독스에도 불합리한 요소가 개입되어 있다. 부부나 기업, 관료집단, 정부 등 그것이 어떤 조직이든지 조직의 중요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개인의 의사를 접어야 한다는 것은 참으로 불합리하다. 그와 같은 행동은 오히려 문제를 악화시키고, 더 나아가 조직의 목표 달성을 어렵게 만들기 때문에 매우 비합리적이다. 에빌린으로 향하고 있는 대부분의 조직들이 난항을 거듭하는 까닭은 그들에게 패러독스를 해결할 수 있는 이론이나 모델, 즉 제대로 길을 찾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지도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윤을 추구하는 기업과 관료 조직의 근본 심리를 잘만 활용한다면 그와 같은 지도는 얼마든지 만들어 낼 수 있다. 이 지도에는 불안감, 부정적인 상상, 실질적인 위험, 소외에 대한 두려움, 성공과 실패의 심리적인 역전 등 5가지 지표가 표시되어 있다. 이러한 지표들은 조직이 진정으로 가고자 하는 목적지에 도달할 수 있도록 해 준다.
불안감 - 불안감은 에빌린으로 빠지지 않고 올바른 길을 찾을 수 있도록 해 주는 첫 번째 지표이다. 흔히 조직의 구성원들은 자신의 믿음대로 행동하는 것에 대해 두려움을 가지고 있다. 대부분의 조직원들은 이러한 불안감 때문에 자신의 의사결정에 따른 행동이 아니라, 다수의 의견에 따라 실행 불가능한 연구 프로젝트를 추구하거나 불법적인 행동에 가담하기도 한다. 이렇듯 그들은 불안감을 피하기 위해 자신의 개인적 손실이나 조직의 경제적 손실을 감수하는 무모한 선택을 한다.
부정적인 상상 - 흔히 조직의 구성원들은 자신의 믿음대로 행동하는 것에 대해 부정적인 상상을 하곤 한다. 이는 앞서 살펴본 불안감의 원인이기도 하다. 결론적으로 말해 불안감은 조직 구성원들이 자신의 소신대로 행동했을 때의 결과에 대해 부정적인 상상을 함으로써 야기된다. 그 부정적인 상상은 한 사람에게도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부정적인 상상은 조직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행동을 취해야 하는 책임감으로부터 심리적으로 벗어날 수 있는 핑계를 제공한다.
실질적인 위험 - 위험은 삶의 현실이며, 존재의 조건이다. 존 F. 케네디John F. Kennedy가 기자회견에서 "삶은 불공평합니다"라고 말했을 때도 아마 이러한 의미였을 것이다. 이는 우리가 직면한 어떤 사건에 취한 행동의 결과를 예측하거나 통제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의 삶에는 언제나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그리고 우리의 모든 행동에는 어떤 식으로든지 결과가 뒤따른다. 간혹 그 결과는 현재 우리가 처해 있는 어려운 상황보다 더 나쁠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에게 닥친 위험을 인정하지 않는다면, 더 큰 위험을 무시한 채 조직을 에빌린으로 끌고 갈 수도 있다.
소외에 대한 두려움 - 우리가 알고 있는 것 중에서 조직의 행동을 어리석게 만드는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다름 아니라 분리, 소외, 외로움, 두려움이다. 여러 연구와 경험에 비추어볼 때, 소외되는 것, 즉 추방이나 배척이 가장 무서운 처벌이다. 독방감금의 가장 큰 위력은 신체적 고통이나 물리적 결핍에서 오는 것이 아니다. 사람은 서로 연결되어 관계를 맺으려는 기본적인 유대의 욕구를 가지며, 분리되거나 고립되지 않으려는 필요성을 느낀다. 에빌린 패러독스의 중심에는 자신을 다른 사람들에게서 소외시키는 결과를 낳을지도 모르는 위험 감수에 대한 두려움이 자리잡고 있다. 그 두려움은 무의식적으로 표현되며, 결국 조직의 자기 파괴적인 결정을 초래하는 집단 기만의 원인이 된다.
성공과 실패의 심리적 역전 - 마지막으로 한 가지 지표가 남아 있다. 그것은 에빌린 패러독스에 대처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이상한 역전 현상이다. 예컨대 사람들은 자신이 취한 행동으로 말미암아 자신이 조직 내부의 다른 사람들로부터 소외될까 두려워서 '무언의 합의'에 가담하게 된다. 포터의 말대로 '충성심이 없는 사람'으로 낙인찍히거나 '조직에 협력하지 않는 사람'으로 평가되는 것이 두려워 소신대로 행동하지 못하는 것이다. 바로 그러한 패러독스 안에 또 다른 패러독스가 숨어 있다. 분리와 소외가 두려워 취했던 행동이 오히려 그렇게 두려워하던 분리와 소외라는 결과를 초래하는 것이다. 상상 속에서 존재했던 불확실한 가능성을 실재에서의 확실성으로 바꾸어 버린 것이다.
에빌린 패러독스의 함정에 빠지지 않는 6가지 방법
실존하는 위험은 항상 우리의 삶 속에 내재되어 있다. 그러므로 위험이 전혀 없는 지도를 제공할 수는 없다. 그러나 여러 지표들을 한눈에 보기 쉽게 표시해 줌으로써, 예상되는 위험을 예방할 수는 있다. 그러나 이를 위해서는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희생자, 가해자, 공모, 책임, 갈등, 복종, 용기, 대결, 현실, 지식 등과 같은 말들을 새롭게 정의해야 한다.
희생자와 가해자의 역할 논쟁 - 일단 어떤 기업이나 정부 조직이 합의 관리에 실패해서 에빌린에 도착하게 되면 모든 조직 구성원들이 희생자가 된다. 결국 희생자와 가해자를 가리는 논쟁과 비난으로 조직이 원하는 방향으로 새로운 길을 모색하기 위해 써야 할 에너지가 고갈될 뿐이다.
공모의 상호작용 - 에빌린으로 향하는 자멸적 조직의 각 구성원은 의식적으로나 무의식적으로 동료, 상사, 부하 직원과 공모하여 위험을 만들어 낸다. 그런 의미에서 모든 구성원은 조직이 에빌린으로 가게 된 것에 대한 책임이 있다. 이를 인지하지 못하고 책임전가를 하기 위한 대상을 찾는 것은 조직은 물론 자신에게도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문제 해결의 책임 전가 - 치명적인 에빌린 패러독스의 영향을 제거할 힘은 그러한 현실에 맞서서 문제를 논의하는 데 있으며, 조직 내의 높은 위치와는 무관하다. 현실에 맞서면서 생기는 위협을 감수할 결심만 한다면 누가 됐든지 조직을 에빌린 패러독스의 손아귀로부터 구해 낼 수 있다.
현실, 지식, 대결 - 조직이 처한 딜레마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조직에 대한 구성원들의 인식과 실재의 차이를 정확히 이해해야 한다. 예컨대 에빌린 패러독스의 기본 역학은 조직 구성원들이 대체로 조직이 당면한 문제에 대해서 정확히 인식하고 있음을 보여 준다. 대결이란 근본적으로 현실에 대한 이러한 인식이 주어지고 그것들의 관계를 바르게 알고 있을 때를 의미한다. 즉, 조직이 처한 현실의 본질이 합의의 문제인지 아니면 갈등의 문제인지를 파악하기 위해 문제를 공개적이며 직접적으로 정확하게 직시하는 것이다.
진짜 갈등과 가짜 갈등 - 에빌린 패러독스에서는 가짜 갈등이 발생한다. 왜냐하면 '무언의 합의'에 동참한 행동이 사실은 본인의 의사결정과 상관없는 가짜 행동이기 때문이다. 그 결과 발생하는 분노와 좌절, 희생양 만들기 등을 우리는 갈등이라고 부르지만, 사실상 의견 차이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므로 가짜 갈등이다. 즉, 처음부터 아무도 찬성하지 않은 결정이 잘못된 결과를 낳았을 때 발생하는 방어적인 행동에 불과할 뿐이다. 일종의 패러독스의 패러독스로서 그와 같은 갈등은 합의 부족에 의해 야기된 증상이다.
집단횡포의 복종 - 에빌린 패러독스의 근본 원리를 분석해 보면, 각자 잘못 관리된 합의에 따라 행동하면서도 집단의 강제적인 압력에 따르고 있다고 착각할 가능성이 있음을 보여 준다. 그것은 자신이 해야 할 일의 책임에서 벗어나게 해 주는 변명으로 이용된다. 그러므로 지금까지 집단의 폭력적인 압력에 따르고 있다고 생각해 왔던 조직 내의 많은 행동들이 사실상 집단 불안의 표현이며, 행동을 취하지 않은 것에 대한 변명으로 새롭게 정의되어야 한다.
에빌린 패러독스를 극복할 수 있는 방법
에빌린 패러독스가 집단 구성원들 간의 공모에 기초하고 있으므로, 해결책 또한 집단의 맥락에서 검토하는 것이 중요하다. 따라서 이러한 딜레마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에빌린 패러독스로 이끈 각 개인이나 작은 하위집단과 함께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가장 기본적인 접근 방식은 문제와 해결책을 마련하는 데 꼭 필요한 조직의 구성원들을 회의로 이끌어 내는 것이다. 회의에서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회의를 소집한 사람, 즉 대결을 주도하는 사람이 자신의 심정을 먼저 털어놓고, 다른 참석자들의 피드백을 기다리는 것이다. 이러한 입장 털어놓기를 통해 참석자들은 대결을 주도하는 사람이 조직원의 바람과 반대되는 결정을 할까 걱정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대결을 주도한 사람은 어떤 결과를 기대한 것일까? 나는 그 결과가 기술technical과 실존existential적 결과라는 두 가지 범주로 나타난다는 것을 알고 있다. 아울러 대결을 시작한 사람에게 실존적 경험이 더욱 중요하게 평가된다는 것도 안다.
기술적 결과 - 에빌린 패러독스에 빠져 있음을 정확하게 진단했다면, 기술적인 문제의 해결책은 허망할 정도로 간단하고 신속하게 다음과 같은 순서로 이루어진다.
"우리들 가운데 누구도 성공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은 프로젝트를 우리 모두 계속해 왔단 말입니까? 우리가 그런 일을 했다는 것이 믿기지 않지만, 그것이 사실이라면 그 프로젝트를 취소하고, 보다 생산적인 프로젝트를 시작할 방법을 찾아봅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렇게 간단하고 신속하게 문제가 해결된다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갈등을 해결하는 데에는 기나긴 과정이 필요하다고 믿도록 교육을 받았기 때문이다. 또한 토론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하면서, 즉 실존적 위험의 개념을 구체화함으로 인해 그 위험을 시작한 사람이 오히려 해고될 가능성도 없지 않다. 그러나 바로 그렇기 때문에 그와 같은 대결의 결과를 실존적 수준에서 평가해야 하는 것이다.
실존적 결과 - 실존적 수준에서 대결의 결과를 평가하는 것은 그것을 기술적 기준에서 평가하는 것과 질적으로 전혀 다르다. 나는 에빌린 패러독스에 맞선 사람들과 그들의 반응을 목격한 사람들을 면담하고 나서 하나의 결론에 도달했다. 간단히 말해서, 에빌린 패러독스에 맞서 심리적으로 성공이나 실패를 거두는 것은 조직에서 생각하는 성공이나 실패의 기준과는 다르다. 에빌린 패러독스에 맞서는 행동이 그것을 시도한 사람들에게 기술적인 결과와 관계없이 심리적인 만족감을 준다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므로 실존적 경험의 진정한 의미와 여러 조직에 대한 그 타당성은 의사 결정의 과학적 분석에 있는 것이 아니라 시시포스의 시련(굴러 떨어지는 돌을 영원히 반복해서 밀고 올라가야 하는)을 이해하는 데 있다.
캐구리 연못(Phrog Farms): 길들여진 사람들얼마 전, 대기업의 인적자원부 부장으로 있는 친구에게서 전화가 걸려 왔다.
"제리, 나 해고됐네."
"행크, 왜 밀려난 건가?"
"모르겠네. 그 이유를 직접 들은 건 아니거든. 위에서 나를 해고하라고 했다더군."
"뭣 때문에?"
"상사가 말을 얼버무리고 확실하게 이야기하지 않아서 모르겠어. 그
저 자기 상사가 말하기를 내가 그 일을 수행할 만한 충분한 능력이 없다고 했다더군."
"상사의 상사라는 그 사람에게 자네를 해고한 이유를 직접 물어봤나?"
"물어보지 못했어."
"왜 안 물어봤나?"
"그건 명령 체계를 무시하는 행동이라네. 우리 회사에서는 그런 짓 못해."
"왜?"
"그런 짓을 했다간 해고될 수도 있어."
"그렇지만 행크, 자넨 벌써 해고됐잖아."
"그렇군!"
최근에 아이들에게 『개구리 왕자』라는 동화책을 읽어 주어서 그랬는지는 모르지만, 나는 행크에게 이런 말을 해 주었다.
"행크, 아무래도 자네 윗사람이 잘 생각한 것 같네. 자네는 그 일을 수행할 능력이 충분하지 않은 것 같아. 모든 면에서 그는 자네를 캐구리phrog로 만들어 버린 거야. 한번 생각해 보게. 자네는 커다란 캐구리 연못에 있고, 자네 상사의 상사는 버드나무 그루터기에 앉아 '저놈 행크를 캐구리로 만들어야겠다'라고 생각하면서, 마술봉을 휘두르며 이렇게 주문을 외우는 거야. '캐구리가 되어라. 얍!' 그러면 갑자기 자네의 발에 물갈퀴가 생기고 캐구리로 변하는 거지."
내 말을 들은 친구는 한동안 말이 없었다. 그러더니 "개굴" 하고 외마디를 남겼다.
캐구리 연못에서의 삶나는 한동안 행크와 함께 캐구리 연못에서의 삶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면서 대부분의 조직이 캐구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