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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의 일치, 신의 비밀인가 인간의 확률인가

마틴 플리머 & 브라이언 킹 지음 | 수희재
1부 현미경으로 들여다본 우연의 일치



우주가 "그렇다!"고 외친다

나와 당신은 전에 만난 적이 있다. 한번 이야기해 보자. 틀림없이 공통점이 나올 것이다. 먼저 넓은 범위에서 살펴보자. 언어, 인종, 국적, 성별, 현관문의 색깔, 이탈리아 요리를 좋아하는 것, 물웅덩이에 풍덩 발을 딛고 싶어지는 충동……, 그리고 이 책! 이번에는 좀 더 초점을 좁혀 보자. 우리 둘 다 찾아간 적이 있는 장소, 거의 만날 뻔했던 순간, 서로 알지 못하는 사람을 사이에 두고 이웃이 되었던 상황, 공통의 지인들……. 들여다보면 볼수록 더 많은 사실들을 찾아낼 것이다. 오래전 같은 마을에서 살았고, 같은 학교에 다녔고, 같은 병원에서 태어났으며, 같은 회계사를 이용하고 있고, 같은 꿈을 꾸었을 수도 있다. 어쩌면 함께 버스를 타고 도시를 돌아다녔을 수도 있고, 그 버스 안에서 서로 어깨를 부딪쳤을지도 모른다. 이런 생각은 우리를 오싹하게 만든다.



우연의 일치를 깨달았을 때, 우리는 대개 전율하게 된다. 특히 그 우연의 일치가 아주 희귀한 일일수록, 보이지 않는 손이 등줄기를 훑어 내리는 듯한 오싹함을 맛보게 된다. 오랫동안 연락이 끊겼던 친구를 외국의 마을에서 우연히 만나거나, 어릴 때 가지고 놀던 장난감을 벼룩시장에서 찾아냈을 때 등등, 청천벽력과도 같은 사건이나 물건을 마주하게 되면 아무리 회의론적인 사람이라도 마음이 흔들리고 만다. '우연의 일치'는 무엇 때문에 그토록 우리의 마음을 사로잡는 것일까? 그것은 외부의 어떤 힘이 자신에게 닿았다는 오싹함이요, 자신이 선택되었다는 느낌 때문이다. 그럴 때면 잠시나마, 자신은 작고 하잘것없는 인간이며 우주는 변덕스럽고 무서운 곳이라는 불안감을 떨쳐 버리게 된다. 그리고 우주에서 크게 들려오는 "그렇다YES!!!"는 소리를 듣게 되며, 우리는 우주의 일부가 된다.

아무쪼록 이 책을 즐기길 바란다. 당신이 나와 마찬가지로 우연의 일치에 흥미를 가지고 있다면, 틀림없이 이 책을 즐기게 될 것이다. 그리고 어느 날인가 당신과 내가 부딪칠 때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다시 한 번 현실적으로 생각해 보면, 아마도 우리는 부딪칠 일이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우연의 일치에 아무리 스릴을 느낄지라도, 역시 우리는 현실적이어야 하는 까닭이다. 그렇지 않으면 하루종일 집에 죽치고 앉아서, 짐을 너무 많이 실은 경비회사의 비행기가 행운의 금방망이를 잔디밭 위에 떨어뜨려 주기를 기다리게 될 것이다. 위대한 우주의 "그렇다!"는 외침과 함께 살아가는 것도 참으로 멋지지만, 일상의 생활은 계속되어야 한다. 코미디언인 아널드 브라운Arnold Brown이 말했듯이, "세계는 작지만, 당신이 다 색칠할 수 있을 만큼 작지는 않다."



사람은 왜 우연의 일치를 좋아하는가?

세상 사람들은 누구나 우연의 일치를 좋아한다. 우연의 패턴과 질서, 즉 그 조화성에 끌린다. 심지어는 중독된 나머지, 전혀 일어날 것 같지 않은 곳에서 우연의 일치를 탐구하기도 한다. 우연의 일치는 일어날 것 같지 않은 것일수록 더 맛이 있다. 누군가를 생각하고 있을 때 전화벨이 울려 수화기를 들고 보니 상대가 바로 그 사람이었던 경험을 당신도 가지고 있을 것이다. 그럴 때면 가슴이 벅찰 만큼 즐거워지고 따스한 마음이 들지 않는가? 이런 일이 생기면 자신이 남들보다 더 예리한 직감을 갖고 있다든가 모종의 정신적인 능력을 갖고 있다고 생각하기 쉽고, 단지 우연과 확률의 법칙이 작용하고 있을 뿐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는 이러한 사건을 물리적 법칙을 초월한, 우연의 일치를 뛰어넘는, 보통과 다른 어떤 것, 즉 거의 초자연현상이라 여기게 된다. 그도 그럴 것이 논리적으로 설명도 되지 않고, 그 의미가 매우 심장해 보이기 때문이다.



우연의 일치에 대한 흥미는 필연적으로 예언을 팔아먹는 사람들을 낳았다. 그중에서도 유명한 사람은 16세기 프랑스의 점성가이자 의사인 노스트라다무스다. 그는 별과 점성술에 대한 연구로부터 이해할 수 없는 극적인 예언들을 수없이 끌어냈다. 프랑스혁명과 제1차 세계대전도 그가 예언했다는 설이 있다. 아주 최근에는 뉴욕 세계 무역센터의 트윈 타워를 덮친 9 · 11 동시다발 테러를 정확히 예언했다는 설이 현대의 신화로서 주목을 받았다. 심령술에 의한 예언이 빗나갔다든가 예고되어 있던 참사가 결국엔 일어나지 않았다는 이야기는 별로 들리지 않는다. 정말로 빗나가는 일이 있었을까? 결코 그랬을 것 같지는 않다. 아마 빗나가면 유야무야 덮어 버렸기 때문일 것이다. 그에 비해 사건이 일어난 뒤에야 비로소 실은 이런 놀랄 만한 예언이 있었다고 밝혀지는 케이스가 얼마나 많은가. 지나고 나서 보니까 예언이더라! 하는 식이다.



사람은 왜 우연의 일치를 좋아하는가? 작가 아서 케슬러Arthur Koestler가 말하는 "사물은 동시에 일어나고 싶어한다"는 보편적 원칙을 본능적으로 즐기고 있기 때문일까? 우연의 일치란 어쩌면 인간 조건의 기본인지도 모른다. 우리는 우연의 일치가 낳는 패턴과 리듬, 조화성을 찾고 있다. 우연의 일치는 무질서한 일상으로부터 해방되는 한때를 제공한다. 그리고 아마도 우리의 뇌는 처음부터 우연의 일치를 탐구하고 그것을 만들도록 짜여져 있을 것이다. 사람은 자신의 분신을 찾고, 또 하나의 자신이 사는 ─ 물론 현실의 자신보다 행복하게 살고 있는 ─ 평행우주를 절대적으로 필요로 하고 있다. 우연의 일치를 연구한 수학자 이언 스튜어드Ian Stewart의 과학자로서의 견해는 더 무덤덤하다. "그렇다. 선술집에서 나누는 잡담의 안성맞춤 소재가 되기 때문이다."



세계는 좁다

과거에 이상하게 여겨졌던 것이 지금도 이상하다고는 인정할 수 없다. 반면에, 우리는 새로 찾아낸 우연의 일치를 무턱대고 이상하다고 생각해 버리는 경향이 있다. 사실, 초자연적 현상인 해석을 선택하는 경향이 점점 강해지고 있음을 보여 주는 증거가 있다. 옛날 사람들보다도 우연의 일치를 만날 기회가 훨씬 많아진 것도 그 이유의 하나인데, 그 빈도는 해마다 늘어나고 있다. 우리의 조상은 지금보다 작은 사회 속에서 살았고, 멀리까지 이동하는 일이 훨씬 적었으며, 경험할 수 있는 일의 범위도 훨씬 좁았다. 생활 속에서 있을 것 같지 않은 관련성을 찾아낼 기회도 한정되어 있었다. 따라서 그런 기회가 찾아왔을 때는 거기에 엄청난 의미를 부여했다. 현대 세계는 덜 미신적이긴 하지만, 여전히 마법처럼 보이는 일이 일어나기 쉬운 세계이기도 하다. 세상은 어수선하고 곤혹스런 일로 가득 차 있고, 그 경향은 점점 더 짙어져 가고 있다.



정보가 방대해지면 우연의 일치가 일어날 확률이 커진다. 통계학자가 사용하는 '큰 수의 법칙'에 따르면, 샘플이 많아지면 전혀 일어날 것 같지 않은 일도 일어날 가능성이 나온다고 한다. 성서의 암호가 좋은 예일 것이다. 예로부터 전해 오는 몇 가지 설에 따르면, 신의 말씀을 직접 기록했다고 하는 헤브라이어 『구약성서』의 창세기에는 암호가 포함되어 있고, 그것을 해독하면 인류에 대한 새로운 메시지가 많이 나타난다고 한다. 벽촌의 허물어진 수도회에 속하는 학자에게, 본문 중의 빈칸이나 구두점을 뛰어넘어 글자만을 규칙적으로 늘어놓은 문자열로 간주한 뒤 숨겨진 암호의 패턴을 찾아내려는 시도는 오래도록 명예로운 일로 여겨져 왔다. 성서에 포함된 엄청난 문자의 수와, 모음을 쓰지 않는 헤브라이어의 표기법을 생각하면 지극히 당연한 일인데도, 조사하는 동안 우연히 일치하는 단어의 패턴이 나오면 거기에 중요한 의미가 있다고 여겼던 것이다.



1967년 사회학자 스탠리 밀그램Stanley Milgram은 지구상에서 어떤 사람으로부터 다른 사람에게 경유하는 사람 수는 불과 6명뿐이라는 것을 예측했다. 이런 생각은 디너파티에서 좋은 이야깃거리가 되었지만, 밀그램이 이를 증명하지 못했던 것을 아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그런데 최근에, 다른 사회학자 던컨J. 왓츠Duncan J. Watts가 똑같은 설을 훌륭하게 증명해 보였다. 왓츠는 먼저 60,000명의 사람들을 나라별, 직업별로 구별하고 타깃을 설정했다. 그리고 타깃 앞으로 이메일을, 반드시 아는 한 사람에게 전송하되 그 아는 사람에게도 똑같이 전송하도록 의뢰하는 방법으로 보내게 했다. 그 결과 이 메일은 평균 5~7인을 경유하여 타깃에게 닿았다. 왓츠의 실험은 세계가 작다는 것을 입증하는 데 한몫했다. 하지만 과학적인 실험으로 증명되지 않는 믿기 어려운 관계가 발전되면, 우리는 섬뜩함과 신비함을 느끼게 된다.



심리학에서는 무작위로 일어나는 사건을 자신의 사고의 흐름과 결부시키려고 하는 시도를 '통제 착각illusion of control'이라고 부른다. 블랙모어는 간단한 예로 교통신호등을 제시한다. 예컨대 교통신호등에 가까이 가자 신호가 '바뀌었다'는 경험은 누구에게나 있을 것이다. 신호가 생각대로 바뀌면 기분이 좋아지는 건 당연하겠지만, 어떤 사람들은 그런 우연의 일치를 마음이 사물을 지배하는 염력의 증거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조사에 따르면 이런 말을 하는 사람들은 신호가 바뀌지 않았을 때는 그것을 알고서도 으레 무시해 버린다고 한다. 블랙모어는 말한다. "우리는 자신의 행동과 일어나는 사건 사이에 우연의 일치를 찾아냄으로써 주변 세계를 통제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싶어한다. 심령적인 사건을 믿게 되면, 그러한 인과관계 착각에 사로잡히게 된다."



과학은 우연의 일치를 포착할 수 있을까?

20세기에 들어서자, 우주라는 바깥을 향한 관점과 원자라는 안을 향한 관점에서 사물을 바라보려는 새로운 사고방식이 생겨났다. 두 방향 다, 그전까지 진실이라 여겼던 것을 혼란시키는 놀라운 새 사실들을 속속 밝혀내었다. 에너지와 물질은 동일한 사물을 나타내는 두 가지 다른 표현이라는 것("일반인에게는 약간 익숙하지 않은 개념일 것이다"라고 아인슈타인은 조심스럽게 말했다), 빛이 중력에 의해 굴절된다는 것, 그리고 사람은 시간을 추월할 수 없다고 했으나 빛의 속도로 이동할 경우에는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또한 빛 자체도 예전의 개념을 뒤집어엎고, 관찰 방법에 따라서 때로는 파도처럼 때로는 입자의 흐름처럼 보인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먼 우주로 나가 보면, 감히 상상도 못할 만큼 고밀도의 블랙홀이 소용돌이치면서 별과 빛을 빨아들이고, 주변의 공간과 시간을 일그러뜨리면서 우주에 굵고 낮은 으르렁 소리를 내지르고 있다.



한편 원자는 예전에는 더 이상 분할할 수 없는 구체(원자 'atom'이라는 용어의 유래는 '떼어 낼 수 없다'는 뜻의 그리스어 'atomos'다) 라고 여겨져 왔지만, 그 안에 축소판 우주가 있어 외부 세계의 물리적 법칙과 모순되는 다양한 일이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이 새로 밝혀졌다. 원자는 아주 강하고 특수한 힘으로 서로가 연결되어 있어, 여기서는 중력이 작용하지 않는다. 게다가 인과관계도 적용되지 않고, 입자의 정확한 상태도 예측할 수 없다. 정통파 과학자들을 더욱 놀라게 한 것은 원자 구조에 대한 연구가 매우 개인적인 성격을 지닌다는 사실이었다. 전자와 같은 원자의 구성 요소는 계측을(즉, 관찰을) 시작할 때부터 그 움직임이 바뀐다. 관찰하려고 하면 입자와 같은 것이 보이거나, 아니면 파도처럼 움직이는 것이 보인다. 보는 순간 모습을 바꾸기 때문에, 보기 전에 어떤 형태를 하고 있는지 절대로 알 수 없다. 그래서 해석이 필요했다. 과학자는 주관적─이 말은 의식과 '우연의 일치'의 본질을 나타내는 형용사다─으로 되지 않을 수 없었다.



융이 남긴 가장 유익한 유산은 '공시성'이라는 말이다. 이는 우연의 일치라는 제한된 의미뿐 아니라 뜻밖에 일어난 사건에 대한 인간의 주관적인 반응도 나타낸다. 공시성이란 본인에게 의미가 있는 우연의 일치로서, 단순한 확률 이상의 어떤 것을 가리킨다. 의미가 있는지 아닌지는 주관적으로 판단할 수밖에 없고, 따라서 해석하기 나름이다. 이는 마치, 입자는 입자인가, 아니면 사실은 파동인가, 대체 무슨 원인으로 입자는 형태를 바꾸는가, 하고 머리를 쥐어짜는 현대 원자물리학자의 모습과 유사하다. 1952년 융은 또 한 명의 훌륭한 통찰력의 소유자, 물리학자 볼프랑 파울리와 공동으로 <공시성―비인과적 연관의 원리>라는 논문을 발표했다. 융은 공시성을 이렇게 정의했다. "인과적인 관련성은 없지만 같은 의미를 가진 두개 이상의 사건이 일어나는, 시간에서의 우연의 일치."



한 가지 충고할 것이 있다. 외계인으로부터 우주선에 올라타라는 말을 듣더라도 냉정함을 잃지 말고 절대로 거절할 일이다. 하지만 우연의 일치에 대해서는 늘 주의를 기울일 것. 그것은 건전한 일이기 때문이다. 런던 골드스미스 대학의 이례(異例) 심리학 연구팀의 수장인 크리스 프렌치Chris French 교수는 말한다.

"인간은 사건을 관련짓는 능력이 뛰어나기 때문에 종으로서 번영해 왔다. 하지만 그 대가로, 인간은 간혹 실재하지 않는 연결이나 패턴을 찾아내려는 경향도 갖고 말았다."

따라서 주의를 게을리 하지 말 일이다. 게다가 심리학자가 인간의 또 한 가지 약점이라고 말하는 '아포페니아apophenia'에도 주의하자. 이것은 관계없는 현상들에 대해 관련성과 의미가 있다고 자동적으로 생각해 버리는 성향을 말한다. 마음이 혼란스러운 사람은 특히 아포페니아에 빠지기 쉽다. 사실 최근에 와서, 이러한 경험이 마음병의 징후냐, 아니면 원인이냐를 둘러싸고 치열한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법정에 선 우연의 일치

1990년대 초로 거슬러 올라가, 마틴 플리머(이 책의 공동 저자 : 옮긴이)는 새로운 타입의 잡지 아이디어를 생각해 냈다. 여러 신문과 잡지에 실린 기사 중에서 최고의 기사들을 선정하고, 뉴스와 스포츠 등 모든 장르의 보도를 다이제스트판으로 정리하자는 것이었다. 마틴은 어떤 출판업자를 찾아가 이 아이디어를 이야기했다. 출판업자는 흥미를 보였지만, 그 후 아무 연락이 없었다. 그런데 그로부터 2년쯤 뒤에 마틴이 생각해냈던 잡지가 2,3개 발행되었다. 마틴의 아이디어는 도둑맞은 것인가, 아니면 그 아이디어가 시대의 풍조에 맞았을 뿐인가? 마틴은 지적소유권을 침해당했는가, 아니면 우연의 일치에 희생되었을 뿐인가?



이런 종류의 소송은 말하자면 법의 지뢰밭 같은 것으로, 많은 소송 당사자들의 발목을 날려 버렸다. 지적소유권을 둘러싼 재판에서 판사나 배심원이 판단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은 문제가 된 유사점이 단순한 우연의 일치인가 아닌가 하는 것이다. 따라서 디자인이나 예술 작품, 혹은 점포의 이름도 마찬가지지만, 한 사람이 다른 사람과 거의 같은 것을 생각해 낼 가능성이 어느 정도 있는가를 고려하지 않으면 안 된다.



스위스의 심리학자 칼 융은 두 사람이 동일한 독창적 아이디어를 생각해 내는 이유에 대해 또 다른 가능성을 제시했다. '집합적 무의식'을 이용하고 있다는 이론이다. 집합적 무의식이란 "같은 문제에 대해 같은 결론에 이르는, 즉 우리를 같은 창조적 공정을 거치도록 이끄는 자연의 힘"이다. 지적재산의 도용 사건 전문변호사 데이비드 배런에게, 타인의 아이디어를 훔쳤다고 고소당한 의뢰인을 변호할 때 이 이론을 사용하면 어떤가 하고 물었더니 이런 답변이 돌아왔다. "이 나라의 고등법원 판사가 그런 철학적인 접근법에 시간을 허락해 줄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해 볼 가치는 있을 겁니다."



아널드 브라운Arnold Brown은 마이크 하나로 관객을 웃기는 스탠드 업 코미디언이다. 이 일은 툭하면 자존심에 상처받기 쉬운 데다, 가장 독창적인 개그 거리를 놓고 격심한 경쟁을 해 나가지 않으면 안 되는 직업이다. 그 같은 직업의 생리상, 소재를 도둑맞지 않을까 하는 불안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 그렇다면 만일 자신의 소재를 다른 코미디언이 사용하고 있다는 말을 들었다면, 그자를 소송하고 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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