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사회의 해체와 재구성
정기효 지음 | 에코리브르
자생적 사고에 대하여우리 사회에서 지적 능력을 평가하는 기준인 시험이라는 것이 아직도 암기력 · 순발력을 중요시하는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 이른바 공부를 잘한다는 학생은 암기력과 순발력이 뛰어난 학생들이다. 반면 스스로 생각하고, 넓고 깊게 사유하려는 욕구를 가진 학생들의 생각은 쓸데없는 잡념으로 폄하되고 결국 그러한 학생들은 열등생으로 전락해버린다. 물론 암기력과 순발력이 뛰어난 학생들이 '사고력'에서 떨어진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또한 역설적으로 공부를 못한다고 평가받는 학생들이 사고력에서 앞선다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문제는 우리사회의 모든 통과 관문인 시험이라는 것이 사고력보다는 암기력 · 순발력을 측정하는 데 맞추어져 있다 보니 학생들이 스스로 생각하는 자생적 사고 능력을 기를 수 없는 것이다.
학교수업을 통해 학생들에게 명사적 지식을 주입하는 것은 시대의 넌센스이다. 그것은 독단과 아집을 파생시키고, 결국 그로인해 어느 누구도 깨뜨릴 수 없는 관념의 우물에 빠지고 만다. 자신의 관념에 절대적 신념을 부여하는 사람은 사회운동가로서는 적당하지만, 학자(생각하는 사람)로서는 끝나버린 인생이다. 이미 만들어져 있는 명사적 지식은 책과 컴퓨터에 넣어두고 필요할 때 꺼내 쓰면 된다. 자생적 사유 능력을 기르기 위해서는 스스로 생각하고 물러나서 반성할 수 있는 학교 수업이 이루어져야 한다. 즉 '동사적 지식'이라는 항체를 우리의 머릿속에 배양해 이식해야 하는 것이다. 세상을 바라보는 자기 자신의 전제(관점)에서 끊임없이 물러나는 지적 자세, 이 '물러남의 사유'가 바로 자생적 사유의 생명이다.
그렇다면 무엇으로부터 물러나서 무엇을 가져야 하는가? 사실 '자생적 사유'는 어떤 목표에 도달하기 위한 과정의 방법일 뿐이다. 중요한 것은 그것을 통해 세상을 나름대로 볼 수 있는 '새로운 생각의 틀'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내가 구상한 새로운 생각의 틀은 '인식론적 논법과 다차원적 논리 공간'이라는 것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틀은 이미 만들어져 있는 '명사적 지식'으로부터 물러나 그것들을 만들어내는 방법론적 지식인 '동사적 지식'을 통해 만들어질 수 있다. 이 개념은 책을 읽는 동안 무수히 접하게 될 것이다. 아무튼 이를 통해 '생각하는 방법'에 관하여 물러나서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가 되길 바라며, 또한 그것이 주는 즐거움과 기쁨에 눈뜨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
글로벌 스탠더드1989년 10월, 나는 파리 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수중에 쥔 것이라곤 편도 비행기표 한 장과 아르바이트로 번 110만 원이 전부였다. 집에서 생활비를 보내줄 형편도 아닌데다가 아는 사람 하나 없는 상황이었다. 그런데도 내가 프랑스로 유학을 떠나기로 결심한 데에는 크게 두 가지 이유가 있었다. 프랑스의 대학은 학비가 거의 들지 않는다는 것(1년 등록금이 10만 원 정도밖에 들지 않음)과, 다른 어떤 나라보다 지적 · 문화적 자유로움에 열려 있을 것이라는 기대 때문이었다.
내가 유학을 떠나올 때만 하더라도 한국 사회는 독재 체제와 권위주의 문화에 깊이 잠겨 있었다. 야간 통행금지가 해제된 지 몇 년 되지도 않았고, 사회정화위원이라는 사람들이 완장을 차고 아침마다 버스 정류장에서 사람들을 지시하고 통제하던 시기였다. 힘 있는 자들은 부패하고, 기득권을 구축하고 있었으며, 힘없는 자들은 가진 것이 없을 뿐 일상 속 그들의 논리도 권위적이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런 문화에 젖어 있던 나에게 서구 사회에서 마주친 자유로움은 엄청난 문화적 충격을 불러일으켰다.
프랑스에는 그곳에서 태어났거나 어릴 때부터 그곳에서 자란 외국인이 많다. 오리지널 프랑스인이라는 사람 중에서도 2, 3대 위로 가보면 할아버지나 할머니 중 한 분이 외국인 출신인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그러한 인종과 종교와 문화의 다양성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그것들을 융화시켜 더 큰 에너지를 만들어내는 능력을 소유하고 있었다. 사실 다양성이라는 개념은 현실에 쉽게 받아들여 질 수 없는 어려움이 있다. 다양성에는 절대로 동일시 할 수 없는 '차별성'이라는 개념이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프랑스인들이 다양성을 융화시켜 화합할 수 있었던 것은 이 '차별성의 문제'를 해결했기 때문이다. 차별성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인간이 존재세계를 바라보는 방식의 전환을 가져야 한다.
나는 인간이 존재세계를 바라보는 방식에는 크게 두 가지가 있고 생각한다. '형이상학적 논법'과 '인식론적 논법'이 그것이다. 형이상학적 논법이란 현상세계를 일으키는 원인의 원인을 찾아 들어가서 궁극적 인과시원 · 절대적 일자를 통하여 현상세계를 설명 · 해석하는 봄의 방식이다. 즉 인간의 의식 속에 일원론적 논리공간을 형성하고 일반적으로 인과와 가치의 위계서열을 강조하는 '피라미드적 논리 공간'으로 나타난다. 이러한 '봄'의 방식은 개별 존재들에게 주체성을 허용해주지 않는다. 따라서 이에 저항하는 '이분법적 논리 공간'으로 변형되기도 하는데, 이때는 붕괴된 일자 대신 자아가 그 자리를 대신하게 되는 '자아 중심적 논리 공간'으로 변형되기도 한다. 이러한 논리 공간들은 모두 '절대적 진릿값'을 형성하는 형이상학적 논법의 산물이다.
우리가 현대로 넘어가기 위해서는 존재세계를 바라보는 새로운 방식, 즉 '인식론적 논법'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인식론적 논법이란 봄과 봄들이 얽혀(어울려) 세상을 보는 논법이다. 즉 세상을 어떤 절대적 진릿값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시각에 의해 끊임없이 재구성되어가는 가변적 · 잠정적 · 과정적 대상으로 보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인식론적 논법을 어떻게 우리의 의식 속에 이식시킬 수 있겠는가? 나는 그것이 교육을 통해서만 이루어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즉 유아기 때부터 개체성과 보편성을 끊임없이 양화 · 고도화시킬 수 있는 사유 능력을 길러주는 것이다. 주체성을 확보하면서도 타자와 더불어 더 큰 보편성을 추출해내는 능력을 소유할 때 우리는 비로소 세계화 시대에 걸맞은 글로벌 스탠더드를 갖출 수 있을 것이다.
명사적 지식에서 동사적 지식으로나는 하나 더하기 하나도 모른 채 초등학교에 입학했다. 그 당시 대부분의 국민이 가난에 시달렸고 우리 가정은 그중에서도 하위권에 속해 있었으니, 부모님은 내가 학교 공부를 제대로 따라가는지, 숙제는 하고 다니는지 신경 쓸 여유가 없었다. 초등학교 4학년 때까지만 해도 나는 공부를 해야 한다는 생각 자체를 못했다. 그런 내가 공부에 눈을 뜨기 시작한 것은 6학년 때부터였다. 그때 담임선생님의 교육방법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초 스파르타식이었다. 선생님은 5~6명을 한 분단으로 배치하고, 그중 제일 공부를 잘하는 학생을 분단장으로 임명했다. 그리고 거의 하루에 한 번씩 시험을 치고 성적이 나쁜 아이들을 무자비하게 두들겨 팼다. 나는 매를 맞지 않기 위해 공부를 했는데, 성적이 90점대로 접어들자 그때부터는 경쟁에 지지 않기 위해 스스로 공부를 하기 시작했다.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나는 일류 중학교에 합격했다. 그런데 두들겨 패서라도 공부를 시키는 선생님이 없으니 또다시 빈둥거리게 되었고, 한번 놓친 과목들은 영영 따라잡을 수 없었다. 그나마 공부에 대해 스트레스를 받는 것도 중학교 3학년 전반부쯤에서 끝이 났다. 가정 형편상 고등학교에 진학할 수 없었던 것이다. 나는 더 이상 공부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고 그냥 마음 편안하게 시간을 때우다가 졸업을 했다. 그 후 공장에 취직을 하고 검정고시를 거쳐 28세에 대학 입학을 하기까지는 파란만장한 인생 역경을 겪어야 했다. 그러나 그만큼 늦게 시작한 공부는 내 대학생활에 큰 이로움을 제공해주었다. 나이가 들면서 이해력이 생겼던 것이다.
나는 사회학을 공부하면서 이런저런 한국 사회의 문제점들에 대한 근본적인 해결책은 결국 교육 부문으로 귀결된다는 생각에 이르렀다. 즉 아이들에게 명사적 지식 대신 동사적 지식을 가르쳐야 한다고 생각하게 된 것이다. 명사적 지식이란 이미 만들어져서 굳어진 지식을 말하고, 동사적 지식이란 그런 명사적 지식을 만들어내는 이면에 개입되어 있는 관점 · 방법론 · 물러나서 반성하는 능력 등을 일컫는다. 따라서 명사적 지식은 절대적으로 옳은 하나의 관점만 있고 그 외의 다양한 관점들이란 틀린 것일 뿐이다. 그러니 절대적 진릿값을 가진 사지선다형 학습방법이 필연적으로 등장할 수밖에 없다. 반면 동사적 지식은 주관식 · 서술식 · 논술식 · 대화식 · 토론식 학습이라는 도구를 통해 만들어지기 때문에 근본적으로 인식론적 논법과 다차원적 물러남의 논리 공간이 필요하게 된다.
논법(봄 · 관점)과 논리 공간은 우리의 의식과 인성, 사회구조 등 모든 부문에 퍼져 있어서 그 모두를 한꺼번에 바꾸기는 쉽지 않다. 즉 당장 부모와 교사들을 동사적 지식과 그 도구인 주관식 · 논술식 · 대화식 · 토론식, 그리고 그 바탕인 인식론적 논법과 다차원적 논리 공간을 갖도록 재교육하려 든다면 개혁의 왜곡 현상이 일어나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그것들을 어떻게 교육의 중심에 이식시켜야 하는가. 가장 좋은 방법은 앞바퀴가 움직이는 대로 뒷바퀴가 따라 움직이게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사실 우리나라의 모든 학교 교육이 대학 입학에 초점을 맞추고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따라서 대학 입시와 각종 국가고시들을 동사적 지식을 측정하는 완전한 주관식 시험으로 바꾼다면 그 나머지는 살아남기 위해 스스로 맞춰지게 되리라고 본다.
새로운 인성과 사회 구성체를 위하여우리는 흔히 동양은 집단주의, 서구는 개인주의가 강하다고 들어왔다. 그러나 그것은 관점을 어디에 맞추느냐에 따라서 달라진다. 우리가 개인주의라고 믿는 서구 사회가 사실은 사회적 연대도 강하게 추구하고 있음을 주목하기 바란다. 프랑스 국민의 절반 이상이 매년 자선단체에 수표를 써서 기부금을 낸다는 사실은 놀랍기만 하다. 또 뉴스에서 가끔 보는 광경이지만, 어느 지역에서 사고로 누군가가 죽었을 경우 많은 주민들이 사망 장소에 꽃을 갖다놓고 시가행진 등으로 애도하는 사회적 연대성은 참으로 인상 깊다. 우리가 이런 연대성을 당장 따라잡기는 힘들겠지만, 우리사회의 문제점인 권위주의나 감정의 극단 이행, 이기주의라는 코드를 제거하는 방법만큼은 모색해야 한다.
일반적인 사회는 수직적 · 수평적 축의 짜임으로 세워진다. 수직적 축에서는 생산성과 효율성 · 경쟁력 · 질서 · 안정 · 통합 등의 가치가 분화되어 나오고, 수평적 축에서는 자유 · 평등 · 분배 · 인권 등의 가치가 생성되어 나온다. 이때 가장 손쉬운 사회 구성 방법은 수직적 축으로 수평적 축을 억누르는 것이다. 마치 가정에서 말 안 듣고 고집 부리는 아이에게 고함을 지르거나 위협해서 가정의 질서를 유지하는 방법과 마찬가지다. 고전적 사회 구성 방법에서는 이것이 딜레마였다. 사회적 통합을 강조하게 되면 개인의 자유가 억압되기 쉽고, 개인의 자유를 강조하다 보면 사회적 통합이 무너지기 쉬웠던 것이다.
오늘날과 같이 다양화 · 복잡화한 사회에서는 획일화하고 전체화한 효율성은 그 효력을 상실하게 되어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수평적 축에 흩어져 있는 개체성과 수직적 축에 맺히는 보편성을 동시에 양화 · 고도화(승화)시켜 나갈 수 있는가? 여기서 나는 '경우의 수'라는 수학적 개념에 주목하고자 한다. 즉 어떤 사태와 관련해 경우의 수(인과시원 · 봄 · 관점)가 많으면 많을수록 그 경우의 수들을 담을 수 있는 논리 공간은 넓어진다. 민주 · 선진 사회의 두드러진 특징은 개인은 무한히 자유로우면서 전체적 연대성은 높다는 것이다. 즉 개체성과 보편성이 동시에 확대되는 것이다. 이런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일자에 의해 일원화하고, 수동적 상태에 놓여 개체화되어 있던 개인들을 주체화 · 다양화시켜 거기서 '논리적 창조력'을 활성화시켜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인식의 전환이 있어야 하며, 그 방법이 바로 교육이다.
인문학 살리기한국에서 인문학이 죽어간다고 한다. 그 징후가 나타나는 이유를 진단해보면, 학생들이 돈을 버는 데 직접적으로 연결되는 학문으로만 몰리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는 철학 · 문학과 같은 인문학이 모든 응용 학문의 기초가 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물리학자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은 철학적 이론으로 구성되었고, 수학의 집합론과 대수 · 위상기하학 등의 이면은 존재세계를 바라보는 관점에 관한 철학적 견해와 연결되어 있다. 예술이라는 것도 그 이면에 흐르는 방법론적 논의들은 과학과 일치한다. 따라서 인문학의 붕괴는 학문적 기둥의 밑둥이 잘리는 것과 같다. 나는 초 · 중 · 고등학교 교과 과정의 국 · 영 · 수를 철학 · 수리철학 · 문학으로 대체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즉 우리 교육이 외우고 계산하는 훈련방식(명사적 지식)에서 벗어나 인류의 지성사에 나타났던 중요한 이론이나 사상적 조류들의 의미를 포괄적으로 이해하는 방향(동사적 지식)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인문학이 죽어가는 또 하나의 징후는 인문학을 업으로 삼아 살아가는 사람들이 먹고살 길이 열려 있지 않기 때문에 나타난다. 나는 이 문제를 한 국가의 학문 시스템이 산업적인 측면에서 어떻게 존속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아주 중요한 문제라고 생각한다. 즉 학문이나 예술 부문을 생산 · 분배 · 소비하는 산업시스템이 갖춰지지 않으면 그 행위 자체가 유지되거나 확대 재생산되기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이른바 순수 인문학자에게 열린 직업이 극히 제한적이다. 대학교수나 극소수 인문과학연구단체의 연구원 빼고는 거의 전무한 실정인 것이다. 대학 교수라는 게 흔한 직업도 아니고 교수되기가 어디 쉬운 일인가. 물론 이러한 현상은 서구 선진국도 거의 비슷하다. 서구 역시 이들을 대학이나 연구소에서 모두 수용할 수 없는 일이다.
그렇다면 서구의 인문학자들은 무엇으로 먹고 사는가? 바로 책 출판이다. 이들의 수입원은 바로 저술 활동에 의해 이루어진다. 나는 프랑스 TV에서 벌어지는 수많은 토론 중에서 대학교수라는 타이틀만으로 초청되는 사람들을 본적이 없다. 토론에는 당연히 그 주제에 관하여 책을 쓴 사람들이 초청된다. 그렇기 때문에 토론은 개론적이거나 총론적인 수준에 머무르지 않고, 깊이가 있고 치열하다. 인문학자가 저술활동으로 생활을 유지하려면 무엇보다도 그 책을 사서 읽어줄 독자의 구매력이 형성되어 있어야 한다. 프랑스에서는 거의 동네마다 공공도서관이 갖추어져 있다. 그리고 그 도서관들은 이웃의 학교들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선생님들은 거의 매일 학생들에게 책을 읽어오도록 하거나, 직접 학생들을 도서관에 데리고 가서 읽고 싶은 책을 빌려오는 습관을 기르게 한다. 즉 어릴 때부터 책을 사거나 빌려서 읽는(소비하는) 습관을 심어주는 것이다.
내가 아는 A라는 프랑스인은 프랑스사 연구로 박사 학위 논문을 썼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기에 프랑스사로 박사 학위 논문을 쓸 정도면 프랑스사 전반에 대해 해박할 것이라고 여기기 쉽다. 그러나 그의 논문 주제는 프랑스 혁명이 일어나기 직전 파리 근교의 한 특정한 지역을 대상으로 '토지 관계의 변화에 의해 혁명이 일어날 수밖에 없었던 사회적 역학 관계'를 분석하는 것이었다. 우리 눈에는 그 일이 부분적이고 가치 없는 작업으로 보일 수도 있다. 그렇지만 프랑스 역사학계가 A가 하는 식의 구체적인 연구를 하는 사람들로 채워져 있다면 그 나라의 역사학 연구가 얼마나 깊고 넓게 양화 · 고도화되어 있는지를 짐작할 수 있다. 더욱이 모든 분야의 학문이 그렇게 철저하게 분화되고 각론화 되어 있다면 그 사회의 학문 풍토는 우리와 비교하지 못할 정도로 넓고 깊게 뿌리 내려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