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명들의 대화
뚜웨이밍 지음 | 휴머니스트
지은이의 말유학전통은 인류의 정신문명 가운데 하나로, 기독교와 불교, 이슬람교 등과 마찬가지로 현재 인류가 당면하고 있는 곤경을 해결하기 위해 일정한 정신적 자원을 제공해줄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문명의 대화를 통해 우리는 비교적 솔직하게 유학의 득실을 인식하고 이해하고 분석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유학이 문화중국의 정체성 확립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기를 바란다. 유학이 서양 계몽주의의 부족함을 메워줄 수 있을지는 미지수지만, 우리는 반드시 인간중심주의와 자연을 정복하려는 심리태도, 그리고 개인이익 지상주의적 행태를 초월해야 한다. 우리의 목표는 서양을 포함한 인류 전체의 복지이기 때문이다.
서양으로부터 '박학(博學)'과 '탐구', '신사(愼思)', '명변(明辨)', '독행(篤行)' 등의 자세를 배우는 것은 유학의 자기경신을 위해 없어서는 안 될 기본적인 노력이다. 나는 유학이 '일양래복(一陽來復, 사물이 호운(好運)으로 돌아서는 것)'에서 점차 '비극태래(否極泰來, 사물이 막혀 통하지 않다가 극에 달하면 천운이 순환하여 다시 뚫리게 되는 것)'로 나아갈 수 있기를 기대한다. 비록 지금 내가 일종의 우환(憂患)의식을 갖고 있고 현재 인류가 처한 환경이 내게 어떠한 낙관적 희망도 주고 있지 않지만, 그렇다고 기가 죽을 필요는 없다. 유학은 동아시아, 특히 중국의 지식 엘리트들에 의해 방기되고 주변화된 지 오래라, 다시 중심의 자리로 돌아갈 수도, 또 굳이 돌아갈 필요도 없을 것이다. 사실 주변화라는 것 역시 일종의 기회로 자기반성능력을 키우는 계기가 된다. 나는 유교 윤리가 여전히 동아시아의 현대성을 구성하는 중요한 요소의 하나라고 믿고 있다.
1부 세계화 시대, 문명의 대화대화, 타자의 독특한 특성을 이해하는 것(문) 최근 선생께서는 줄곧 문명 간의 대화를 제창하시면서 이를 몸소 실천하고 계신데요. 냉전이 종식된 이후의 국제관계에 대한 헌팅턴(Samuel Huntington)의 '문명충돌론'을 비롯하여 다양한 견해가 제기되고 있습니다만 선생께서 문명의 대화를 제창하시고 실천하시는 배경은 어디에 있는지요?
(답) 저는 중학시절에 유학에 대한 큰 관심을 가졌습니다. 그리고 대학시절에 이미 '동서 문화의 대화'라는 문제를 놓고 사유하기 시작했지요. 현대 중국의 지식인들은 그들의 자각 여부에 관계없이 자신의 문화심리 또는 문화전통에서 갖가지 서로 다른 문화사상 요소들의 충돌 및 대화를 경험하고 있습니다. 고대와 현대의 대화, 중국과 서양의 대화를 경험하고 있지만, 대부분 진정한 대화에는 이르지 못하고 갈등과 충돌이 조성하는 긴장감, 심지어 초조감에 그치고 있지요. 이는 아편전쟁, 특히 중일전쟁과 5·4운동 이후 서양 문화의 충격에 직면하여 중화민족의 지식계가 지난 백 년 동안 누대에 걸쳐 부딪쳐 온 문제이자, 서양을 이해하고자 하는 모든 중국 지식인들이 부딪치는 문제이기도 합니다.
저는 1960년대부터 하버드에서 저에게 아주 큰 영향을 미쳤던 스미스(Wilfred Cantwell Smith) 교수와 오랫동안 대화를 해왔습니다. 그의 주된 관점은 기축시대 문명들(기원전 800년에서 기원후 200년경을 말하며 인류사에 있어 획기적인 정신적·도덕적·지성적 도약을 이룬 시기) 사이에 변론과 논쟁, 대화를 통해 어떻게 공통된 인식에 도달했는가 하는 것입니다. 이는 인류가 평화문화로 나아가는 데 있어 가장 핵심적인 문제로서 저도 줄곧 중요한 과제로 간주해왔습니다.
(문) 문명의 대화의 본질적인 취지는 어디에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답) 저는 줄곧 기축시대 문명이 21세기에도 크게 발전할 전망이라면, 그 문명의 중요한 구성 부분인 유학전통은 어째서 20세기 중국에서 그토록 엄청난 압박과 파괴를 당해야 했는가 하는 문제를 제기해왔습니다. 21세기 들어서 유학전통은 한 걸음 더 발전할 수 있을까요? 이 문제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질문을 던지고 있는데, 특히 그에 대해 회의적인 시각을 보내는 사람들 대부분은 중국의 지식 엘리트들로서 진정으로 유교 문화의 영향을 받은 중요한 학자들입니다. 불교, 힌두교, 기독교, 유대교, 이슬람교 등 다른 종교들은 21세기에도 계속 발전하고 그 세력을 확장하는데, 왜 중국의 유교와 도교는 그 발판이 더욱 축소되고 있는 걸까요? 이는 대단히 중요하면서도 흥미로운 문제입니다.
(문) 하지만 문명의 교류와 대화에 참여하는 과정에서 다른 문명에 속한 집단이나 개인의 역량이 균형을 이루는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답) 그것은 지나친 낙관일 수도 있겠지요. 저는 더 많은 권한과 세력을 갖고 있고 더 많은 자원을 장악한 문명일수록 인류문명에 더 큰 공헌을 하고 인류의 평화문화에 더 훌륭하게 기여하리라 생각합니다. 이는 우리의 희망인 동시에 중국의 전통문화가 본래부터 갖고 있던 견해이지요. 하지만 실제로 전체적인 국제정세로 볼 때는 대단히 불공평한 것이 사실입니다. 헌팅턴은 몇몇 문명권의 충돌을 제기하면서 노골적으로 자신의 입장이 서양과 서양을 제외한 나머지 전부라고 말한 바 있는데, 그것은 앞으로 서양을 제외한 나머지 모두가 서양을 추종해야 한다는 것을 뜻합니다. 헌팅턴이 말한 두 가지 도전 가운데 하나는 이슬람의 도전이고 다른 하나는 유교 문명의 도전인데, 유교 문명의 도전이란 것이 도대체 무엇입니까? 싱가포르의 도전이든 중국의 도전이든, 이는 바로 권위주의를 말하는 것이겠지요.
(문) 제가 알기에, 선생께서는 세계화윤리의 기초로서 문명의 대화는 공동의 가치를 형성하는 데 도움이 될 뿐만 아니라 반드시 필요하다고 말씀하셨지요. 이와 동시에 공동의 가치를 인정하는 것이 문명의 대화를 전개하기 위한 전제라고까지 하셨습니다.
(답) 지금은 어느 문명에 속하든 간에 다른 문명에 대한 이해가 있어야 합니다. 예컨대 아무리 기독교 문명에 속한 사람이라 해도, 힌두 문명이나 이슬람 문명에 대한 이해가 없다면 미래의 기독교 문명의 발전에 어려움이 생기게 되지요. 마찬가지로 유교 문명에 속한 사람들도 다른 문명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면 유교 문명 자체를 한 걸음 더 발전시킬 수 있는 가능성이 그만큼 줄어듭니다. 불교 문명도 마찬가지지요. 과거에 여러 기축시대 문명이 조성해놓은 영향은 이제 새로운 시대로 진입했고, 각종 문명은 하나의 융화 과정을 거치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과거는 이미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지요. 문명의 대화를 통해 우리는 최대한 타자의 독특한 특성을 감상하는 법을 배우게 됩니다. 우리는 앞으로 우리와 타자와 타문명이 융화되어 이루어진 절묘한 다양성을 이해함으로써 자신에 대한 인식을 더욱 풍부히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러한 대화는 우리에게 모든 사람들을 진정으로 포용할 수 있는 공동체를 실현할 수 있는 힘을 줄 것입니다.
(문) 선생께서는 문명의 대화에 일정한 전제조건이 필요하다고 확신하시는 것 같습니다. 또한 선생께서는 대화란 '온 마음을 기울여 만들어내는 일종의 예술'이라고 하셨는데, 저는 이러한 견해가 매우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에 대해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해주시겠습니까?
(답) 어떤 방식으로 친구를 사귀든 간에 처음 그를 만나면 그저 만화처럼 그 사람의 얼굴을 아는 것일 뿐입니다. 그런데 이처럼 얼굴만 아는 걸 가지고 그를 안다고 할 수 있을까요? 그럴 순 없겠지요. 그를 제대로 알기 위해선 서로 간의 대화, 그것도 아주 오랜 시간에 걸친 교류를 거쳐야 할 겁니다. 한두 번 가지고는 안 되지요. 또한 그 사람이 이해되기를 원치 않을 때, 저는 그와의 대화를 원하지만 그가 저와의 대화를 원하지 않을 때 제가 그를 이해할 수 있을까요? 역시 불가능할 겁니다. 반드시 대화가 이루어져야 하고, 그것도 쌍방이 동의한 대화여야 서서히 친구가 될 수 있을 겁니다. 또 한 가지 상황이 가능할 겁니다. 가령 저와 친구가 되고자 하는 사람이 제가 그를 사귀는 목적이 그를 이용하기 위한 것이란 사실을 알게 된다면 이런 교류는 유지되지 못할 것입니다. 이는 대단히 어려운 과정인데 문명의 대화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 친구가 되는 게 일생에 걸쳐 이루어지는 일이라면, 문명과 문명의 대화는 종종 수백 년이 걸리는 일입니다.
(문) 선생께서 대화는 상대를 설복하거나 제압하는 기교가 아니라 상대의 의견을 경청하는 방식이라고 말씀하셨던 것이 생각나는군요.
(답) 그렇습니다. 가령 진리가 제게 있고 저는 진리를 대표하는 목소리이며 상대방이 제 견해를 수용해야 할 책임이 있다고 하더라도, 이런 태도를 가지고는 모순과 충돌을 피할 도리가 없습니다. 대화란 무엇일까요? 한마디로 말해서 자기반성의 능력을 증가시키는 동시에 남을 이해하고, 이런 이해를 통해 자신의 시야를 확대하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대화의 목적이지요. 다시 말해서 스스로 '배우는 마음(學心)'을 갖는 것입니다. 대화란 상대방의 가치를 이해하고 이를 함께 누림으로써 상호이해와 공동창조의 새로운 삶의 의미를 구성하는 것입니다. 만일 타자가 추구하는 의식세계를 억압하고 경청과 학습의 필요성을 강요한다면 대화는 곤경에 빠지고 말 겁니다.
(문) 선생께서 제시하신, 정보화시대에 지혜를 얻는 세 가지 중요한 방법이 매우 의미심장하게 다가오는군요. 첫째는 경청의 예술, 둘째는 얼굴을 마주하고 교류하는 것, 그리고 셋째는 선인들의 지혜를 중시하는 것이라 요약할 수 있겠지요.
(답) 그 가운데 경청의 예술이 가장 어렵습니다. 젊은 세대는 인내심있게 경청하는 태도가 부족해서 다른 사람의 말이 쉽게 들리지 않습니다. 빠른 시간에 많은 정보를 장악하려 하기 때문이지요. 정보는 빨리 장악할 수 있겠지만 지혜는 인내심있는 경청을 필요로 합니다. 그리고 경청하는 데는 단계가 있지요. 『논어』에서는 "예순이 되어야 남의 말을 들어도 거슬리지 않는다(六十而耳順)"고 했습니다. 이전에는 사람들이 그 깊은 뜻을 이해하지 못해 '이(耳)'자를 떼어버리고 "예순이 되면 거슬림이 없다(六十而順)"는 말로 이해하기도 했지요. 하지만 사실 '이(耳)'자는 대단히 중요합니다. 얼굴을 마주하는 교류도, 경험으로 아는 바(體知)가 없으면 불가능하기 때문이지요.
세계화 물결, 중국과 미국은 어떻게 소통할 것인가초강대국인 미국은 종종 유엔을 거치지 않고, 심지어 나토의 결의조차 거치지 않고 독단적으로 행동하면서 다른 나라들과도 협력하지 않곤 합니다. 미국의 이익만을 최고로 여기면서 세계의 수많은 국가들, 특히 이른바 선진국들이 모두 동의한 지구 온난화 문제에 관한 도쿄의정서도 거부하고 있지요. 이런 오만한 태도 때문에 미국은 프랑스와 스웨덴 등에 의해 유엔 인권기구에서 추방되었고, 1972년 소련과 체결한 핵무기 군축협상도 결렬시키려 하고 있습니다. 미국은 다른 문화, 서양 이외의 문화에 대해서는 이해가 부족할 뿐만 아니라 이해하려는 마음조차 없습니다. 이러한 무지와 오만이야말로 세계 평화문명의 발전이라는 관점에서 볼 때 너무나 염려스러운 것이지요. 다가올 미래에 인류의 평화문화를 발전시키려면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쌍방인 중국과 미국의 관계를 잘 처리해야 합니다. 이것이 제가 이 문제를 심각하게 고민하는 기본배경입니다.
1. 현대화에서 세계화로의 패러다임 변화냉전이 종식되고 소련이 붕괴된 후 일어난 걸프전에서 미국의 사상자 수는 손가락으로 꼽을 수 있을 만큼 적었던 반면, 적군의 피해는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였습니다. 최근에 있었던 아프간전에서도 미군 사망자는 네 명에 불과했는데, 그 중 세 명은 오폭으로 인한 사망이었고 나머지 한 명도 적군에 의해 살해된 것이 아니었습니다. 이상한 점은, 세 명이 아니라 단 한 명의 미군이 죽어도 전 세계가 야단법석을 떠는데, 모두가 알다시피 칸다하르(아프가니스탄 남부에 있는 도시)에서 혈전 중에 천 명의 병사가 사망한 사실을 중국에서는 크게 보도하는 데 반해 미국에서는 거의 보도하지 않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는 심각하게 생각해볼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때문에 걸프전 이후 미국의 일본계 학자인 후쿠야마(福山)는 '역사의 종결'이란 관점을 제시했던 것이지요. 역사의 종결이란 헤겔(Hegel)의 견해를 차용한 관점으로, 세계의 모든 중대한 이데올로기의 충돌은 이미 끝났고 모두가 가야 할 길은 단 하나, 즉 미국을 대표로 하는 자본주의의 길뿐이라는 것입니다.
2. '서양과 나머지'가 아닌 '나머지 속의 서양'아랍세계가 미국에 반대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미국과 이스라엘의 긴밀한 협력과 결연에 있습니다. 이는 물론 미국 내 유대인들의 정치세력이 강대하다는 것과 무관하지 않겠지요. 미국에서는 사회 모든 분야에서 유대인들이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어 이스라엘과의 관계가 긴밀할 수밖에 없고, 실제로 이스라엘은 미국의 대외원조를 가장 많이 받고 있는 국가입니다. 미국과 이스라엘의 긴밀한 관계 때문에 미국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잔혹한 투쟁에 직접 개입하고 있을 뿐 아니라 줄곧 이스라엘을 적극 지지함으로써 아랍 세계로부터 극도의 반감을 사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이스라엘과 아랍 원리주의자들의 반이스라엘 집단인 하마스 사이의 투쟁은 갈수록 심화되어 대단히 위험한 단계에까지 와 있습니다.
3. 유교 문명과 미국앞으로 기독교가 어떻게 발전해가고 영어 세계가 어떻게 발전해가며 서양에서 현대화가 어떻게 발전해가든 간에 이슬람 세계는 서양과는 다르지만 일정한 현대적 의의를 갖는 다른 길을 가게 될 것이고 서양과 장기적으로 충돌하는 관계에 놓일 것입니다. 헌팅턴은 『문명의 충돌』개정판 서문에서, "내가 충돌의 위험을 강조하는 것은 문명의 대화를 위한 조건을 만들어 내고 그 중요성을 확대하기 위해서이다"라고 말한 바 있습니다. '9·11' 사건이 결코 문명의 충돌로 간주되어선 안 된다고 전제하면서, 그렇지 않을 경우 폭력조직과 테러를 이슬람교의 체현으로 인정하게 될 것이고, 그래서 이슬람교와 기독교 사이의 충돌이 조성된다면 이 세계에서는 평화를 말할 수 없을 것이라고 지적했습니다. 때문에 현재 미국은 다양한 이슬람 사회와 평화를 유지하려고 엄청나게 노력하고 있지요. 절대 다수의 이슬람인들은 평화의 수호자이기 때문입니다.
4. 다른 문명을 배워야 하는 미국왜 대화를 해야 하냐고요? 가령 갈등이 발생하면 설사 화해할 방법이 없다고 해도 갈등이 충돌로 발전하지 않고 충돌이 대항으로 발전하지 않으며 대항이 서로를 결코 용납하지 못하는 정벌전쟁으로 발전하지 않도록 할 수는 있을 것입니다. 보통 대화는 용인으로부터 시작된다고 하지요. 대화의 목적은 상대를 설복시키고 나의 관점과 견해를 강요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서로를 이해하고 자기를 반성하는 데 있습니다. 용인이야말로 대화의 출발이며 그로부터 시작하여 상대의 존재를 받아들이는 것이 바로 공존입니다. 예컨대 아랍의 팔레스타인과 유대의 이스라엘 사이의 대화는 겉으로는 갈수록 악화되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상당한 진전을 보이고 있습니다. 최소한 지금은 서로의 존재를 인정하고 있으니까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모두, 상대를 완전히 제거할 수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는 겁니다. 공존이 필요하다면 적어도 서로에 대한 존중이 생기게 되는 것이지요.
한스 퀑은 1993년부터 문명의 대화와 보편적 윤리에 관한 연구를 시작했는데 이는 그의 평생의 의지가 담긴 작업이 될 것입니다. 그는 문명의 대화가 발전하기를 원한다면 먼저 두 가지 원칙을 세워야 한다고 했는데, 그것이 바로 싱가포르의 두 가지 원칙이었습니다. 하나는 "자신이 원하지 않는 바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