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고전 읽기
공지영 외 9인 지음 | 북섬
공지영 - 전 인류를 향한 인간성 회복의 메시지, 톨스토이 『부활』20세기의 마지막 현자 톨스토이세계적인 대문호(大文豪) 톨스토이(Lev nikolaevich Tolstoi, 1828-1910)의 후기 작품 세계를 대표하는 『부활』은 그의 가장 자전적인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야스나야 폴랴나의 귀족 가문에서 태어나 일찍 부모를 여의고 고모들 손에서 외롭게 자란 톨스토이는 줄기찬 창작에의 열정과 전 인류를 향한 헌신적인 박애 사상을 바탕으로, 평생을 자기완성을 향한 고행의 여정 속에서 보낸다. 그리고 마침내 여든 두 살의 노구(老軀)를 이끌고 부와 명예를 떨쳐버린 채 참 진리를 찾아 표연히 길을 떠나 눈 덮인 아스타포보의 시골 역사에서 마지막 숨을 거두었다. 이제 톨스토이의 대작 『부활』의 주인공 카튜사와 네홀류도프의 사랑과 원죄, 용서에 이르는 대역정(大歷程)을 통해서 인간의 진정한 부활은 과연 무엇인지, 인간의 부활을 위해서 꼭 필요한 것은 무엇인지를 성찰해보자.
매 순간 다른 의미로 다가왔던 소설내가 『부활』이라는 작품에 남다른 애착을 갖는 이유는 이 작품이 내가 작가라는 직업을 가지는 데 지대한 영향을 미쳤기 때문이다. '교양 있는 여성'이 되기 위한 유치한 동기로 중학교 때 처음 펼쳐든 『부활』. 하지만 '어떤 잘생긴 남자와 예쁜 여자가 사랑을 하겠구나' 하는 식의 유치한 상상으로 책을 펴들었다가 뒤로 갈수록 지루하고 어려워서 흐지부지 읽는 둥 마는 둥 억지로 책장을 넘겼던 기억이 난다. 그러고 나서 대학 3학년 때 '러시아 혁명사'를 공부하던 어느 날, 우연히 다시 읽어본 부활은 예전에 읽었던 그 작품이 전혀 아니었다. 등장인물이 상징하는 의미가 머릿속에 쏙쏙 들어왔다. '아! 톨스토이는 이처럼 정확하게 당대의 러시아를 그려냄으로써 러시아 혁명을 예견하고, 더 나아가 그 필요성까지 역설했구나.' 그리고 최근에 다시 한 번 이 책을 읽게 되었다. 작가라는 또 다른 관점에서 좀더 깊이 있게 작품을 바라보니, 톨스토이라는 사람의 내면이 들여다보였다.
어떤 소설가가 되어야 하는가?사람들은 종종 내게 "어떤 소설가가 되고 싶으냐?"고 묻는다. 그때마다 나의 변함없는 대답은 "정말 좋은 작가"이다. 그러면 그들은 다시 "어떤 작가가 좋은 작가냐?"고 묻는다. 그러면 나도 또 예외 없이 "마지막 작품이 그의 대표작인 사람"이라고 대답한다. 세상에 데뷔작이 대표작인 작가는 많다. 그러나 문호(文豪)나 대가(大家)라고 불리는 사람들은 이상하게 죽기 전의 작품이 가장 걸작으로 평가받는다. 톨스토이의『부활』도 고희가 넘어서 쓴 작품이었다. 마지막 작품이 대표작이라는 것, 그 의미는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그 사람이 글을 쓰기 시작한 이후로 끊임없이 성장했다는 의미다. 자신의 영역을 넓혀간다는 것, 성장한다는 것은 고통스러운 일이다. 더군다나 문학적으로 인정을 받고 경제적으로 안정이 된 상태에서 성장을 계속한다는 것은 칭찬해주고 고무해줘야 마땅한 일이다. 그런 점에서 나는 톨스토이를 닮고 싶다.
현대에 와서 톨스토이와 도스토예프스키는 숱한 비교의 대상이 되고 있다. 내 감식안으로는 도스토예프스키의 소설이 훨씬 매력적이고 문학의 영원성을 갖고 있는 듯하다. 기괴하고 비상식적인 인간을 그려낸 도스토예프스키의 작품은 언제 어디서 읽어도 우리를 전율케 하는 특별한 힘이 있는데 반해, 톨스토이의 인물들은 굉장히 현실적이고 종교적이다. 그러다 보니 예술 작품으로서는 도스토예프스키의 소설이 훨씬 매혹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인간적으로 톨스토이를 더 좋아하는 이유는 그의 작품의 중요한 주제가 '인간의 구원'이었기 때문이다. 러시아 명문 귀족 가문에서 나고 자란 톨스토이는 풍요로움 속에서 항상 자신을 회의하며 작품 활동을 했다. 그의 작품이 전 인류를 향한 박애 사상과 인간성 회복의 메시지를 담고 있는 것은 이 때문이다.
유전무죄(有錢無罪) 무전유죄(無錢有罪)얼마 전에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이라는 소설을 펴냈다. 이 책은 내가 직접 취재한 사실들을 바탕으로 독자들의 열렬한 반응을 이끌어낸, 나의 몇 안 되는 작품 중 하나이다.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은 최상류층 여자와 최하류층 남자의 이야기다. 평범한 중류층 집안에서 자란 내가 상류층과 하류층의 삶을 다루게 된 것은 우연치 않은 경험 덕분이었다. 한번은 최상류층 여성들과 여행을 함께할 기회가 있었다. 그들은 문화와 예술의 애호가들로 상당한 교양을 갖추고 있었다. 하지만 여행은 무료하기 짝이 없었다. 당시 여행에 동행한 이들은 보름 동안 한 치의 흐트러짐도 없이 순전히 여행만을 즐겼다. 당시 여행 코스 중에는 무척 더운 곳도 있었지만 그들은 절대로 목을 드러내는 옷을 입는 법이 없었다. 그때 나는 굉장히 궁금했다. '그 많은 돈을 가지고 왜 저렇게 재미없게 사는 걸까?'
시간이 흘러 그때의 일을 까맣게 잊어버린 채 작품 구상을 위해 사형수를 취재하게 되었다. 너무나도 도덕적이지 않은, 아니 어떻게 보면 아예 '몰도덕적'인 사형수들을 보며 그때의 그 상류층 여자들을 떠올렸다. 그들 역시 몰도덕적이기는 마찬가지라는 생각을 하면서. '이 두 부류가 굉장히 닮아 있구나'라고 생각하던 어느 날, 친하게 지내는 사회학자가 "도덕은 중류층을 위한 것이다."라고 명쾌하게 대답을 주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이 두 부류는 통하는 것이 있겠다.'는 생각에 소설을 구상해보아야겠다는 결심이 섰고 마침내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을 썼다. 이 작품을 쓰면서 '사형제도라는 것도 그 두 부류에게는 아무런 의미가 없겠다.'는 생각에까지 이르게 되었다. 여하튼 역사적 실화의 조사 결과 상류층에서 발생한 살인 사건은 조용하게 무죄로 방면되는 사례가 상당했다. '유전무죄(有錢無罪) 무전유죄(無錢有罪)'라는 말이 결코 거짓이 아니었다. 또한 최하류층에게도 사형제는 아무런 위협이 되지 못한다. 날마다 죽음의 위협 속에서 살고 있는 그들은 이래 죽으나 저래 죽으나 상관이 없기 때문이다.
평생을 시대와의 불화 속에 살았던 우울한 지식인톨스토이 시대에도 제도에 의해 생명의 위협을 받는 사람들이 있었다. 일례로 톨스토이의 『기독교 우화집』을 읽고, 러시아의 기독교에 반대하여 '기독교 근본정신으로 돌아가자'고 주장하던 사람들이 그랬다. 러시아 황제는 몹시 분노하여 이들을 모두 잡아들여 극형에 처하라는 엄명을 내렸고 톨스토이는 박해를 피해 외국으로 망명하고자 하는 그들을 지하에서 도우며, 그들의 도피자금을 마련하고자 『부활』을 썼다. 톨스토이는 결코 혁명가가 아니었다. 톨스토이는 근본주의에 가까운 기독교 신자일 뿐이었다. 그렇지만 톨스토이는 그리 편하게 살지는 못했다. 종교와 정부를 비판해 그리스 정교회로부터 파면을 당하고 정부의 탄압까지 받았다. 그 결과 『부활』은 러시아에서는 출판조차 되지 못했고 외국에서 먼저 출판되어 러시아로 역수입되었다.
세상의 낮은 곳, 고통받는 곳에서 부활하다내가 『부활』에서 주목한 것은 처음부터 끝까지 소설을 관통하는 '상류 사회에 대한 분노와 신랄한 비판'이었다(이것은 톨스토이가 귀족 출신이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다). 특히 상류사회의 성적 타락은 톨스토이에게 위기감까지 안겨주었던 것 같다. 성적 타락은 그만큼 사회에 허영, 허식, 거짓이 횡행함을 의미한다. 성적 타락은 사회가 부패하여 헤게모니를 쥔 사회 계층이 성을 단순한 쾌락의 도구로 삼을 때 심각한 문제가 된다. 예를 들어 단순히 재산상의 손실을 막기 위해서 집안끼리 정략 결혼을 했다고 하자. 이 결혼은 신뢰와 사랑에 바탕을 두지 않았기 때문에 굳이 이혼이라는 제도가 필요 없다. 그리고 이런 정략 결혼에 파생되는 것이 바로 성의 도구화인 셈이다. 성의 타락이 갖는 또 하나의 의미는 상류층이 더 이상 생산 활동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성의 타락이 모든 제국의 멸망의 원인이 된 것은 이렇게 수많은 상징이 내포되어 있기 때문이다. 톨스토이가 『부활』을 통해 꿰뚫어 본 것도 바로 이런 것들이었다.
『부활』의 초반부는 카튜사가 타락하는 과정을 섬뜩하리만치 사실적으로 그리고 있다. 그 담담한 묘사에 나는 작가로서 소름이 돋는다. '그 여자의 일생은 평범하였다. 그 여자에게는 남편이 없었으나 매년 아이를 낳았다. 그리고 아이는 돌보는 사람이 없어서 그대로 죽어가는 것이 보통이었다.' 이렇듯 지극히 담담하게 묘사함으로써, 그 시대에는 그런 일이 비일비재했음을 암시하고 있다. 카튜사는 아이를 죽이고도 전혀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다. 단지 예쁜 눈으로 아이를 쳐다보았을 뿐. 이러한 묘사를 두고 평론가들은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늙은 대가가 아니면 이런 경지에 이를 수 없었으리라. 어쨌든 카튜사는 유형지로 보내진다. 실제로 톨스토이는 유형지에 가본 경험이 없음에도 주인공들이 '부활'하는 과정을 너무나 생생하게, 그리고 너무나 감동적으로 그리고 있다.
나는 토머스 머튼이라는 수사의 말을 떠올리면서 세상의 낮은 곳, 고통 받는 곳에서의 부활이야말로 진정한 의미의 부활이 아닐까 생각하게 되었다. 왜 예수는 이 땅에 와서 죽임을 당하고 부활하게 되는가. 바로 이 자리, 이 세상에서 부활하지 않으면 부활은 없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톨스토이의 『부활』도 나는 그런 의미로 받아들였다. 지옥 같은 곳에서 부활하지 않으면 어느 곳에서도 부활할 수 없다는.
러시아 혁명을 예언하다 톨스토이가 평생 동안 절실히 골몰했던 주제는 '삶과 죽음'이었다. 때문에 어떤 인간이 죽고 어떤 인간이 부활하는지에 초점을 두고 『부활』을 읽으면 대문호의 실존적 고민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톨스토이가 마지막 예술혼을 불살라 탄생시킨 이 작품에서 던진 질문은 바로 이것이다. '육신은 살아 있는 인간들이 도대체 정신은 살아 있느냐?' 이것은 19세기 러시아 문학의 테마이기도 했다.
이제 글을 끝맺으면서 톨스토이가 세상을 향해 외치고자 했던 '인간의 구원'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한다. 구원이라는 것은 자신을 온전히 죽일 때 찾아온다. 단순히 예쁜 옷을 입고 싶어서, 일하기 싫어서 유곽으로 흘러들었던 카튜사는 그런 욕망을 죽이고서야 부활할 수 있었다. 네홀류도프는 사회주의자들과의 만남, 그리고 카튜사와의 사랑을 통해 자신의 방탕한 과거를 죽이고 부활할 수 있었다. 영화 『부활』에서 부활한 카튜사가 부활한 네홀류도프에게 인상 깊은 말을 하는 장면이 나온다. "이로써 우리들의 고통은 헛되지 않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무자각의 타락에 빠져 있다가 자신을 죽임으로써 비로소 부활하는 것. 이것이 톨스토이가 얘기하고 싶었던 핵심적인 주제다. 톨스토이는 자각했든 자각하지 못했든 『부활』을 통해 러시아 혁명을 정확하게 예견하고 그 필요성을 전 세계에 알렸다.
나는 가끔 '톨스토이의 『부활』이 없었다면 러시아 혁명이 서구의 지식인들에게 환영받을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러시아 농노들이 착취당하고 있다는 단순한 사실을 알려주는 것과, 러시아 민중들이 어떻게 인간성을 말살당하고 있는지를 알려주는 것 사이에는 커다란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도스토예프스키가 인간의 추악한 면을 끝까지 파헤침으로써 우리에게 인간을 다시 생각하게 한 작가였다면, 톨스토이는 당대의 러시아 민중들과 함께 고통 받고 함께 부활했던 훌륭한 성자(聖者)였다.
노회찬 - 사대부의 시대정신과 온고지신(溫故知新)의 지혜,『조선왕조실록』'왕의 남자' 원본은 『조선왕조실록』사실 나는 역사학자가 아니기에 『조선왕조실록』에 대해서 학술적으로나 문화사적으로 전문적인 해설을 할 수는 없다. 하지만 내 경험과 관련짓는다면 누구보다 풍부하고 흥미롭게 얘기를 풀어갈 수 있을 것 같다. 최근 『조선왕조실록』에 관해 주목할 만한 현상들이 많이 나타나고 있는데, 평소 『조선왕조실록』에 지대한 관심을 갖고 실록의 대중화 작업을 누구보다도 환영하는 사람으로서 참으로 의미 있는 일이 아닐 수 없다. 그 현상의 일단은 무엇보다 '왕의 남자'란 영화에서 비롯된 듯 싶다. 최다 관객 동원을 기록하며 엄청난 흥행 대박을 터뜨렸던 '왕의 남자'의 시초가 바로 『조선왕조실록』이기 때문이다. 또한 『조선왕조실록』이 데이터베이스화되는 기념비적인 일도 있었다. 한글화는 1968년에 착수되어 1993년에 끝났으니 자그마치 25년의 세월이 걸린 셈이다. 최근에 정부가 예산을 들여 사이트를 개설했는데 한번 찾아가볼 만하다.
역사책보다 더 흥미진진한 원전의 세계먼저 나와 『조선왕조실록』의 인연에 대해서 이야기해보자. 나는 역사학자가 아니다. 대학에서 역사학을 공부한 적도 없다. 다만 평범한 시민으로서 평소 역사에 대한 관심은 많았다. 무엇보다 내가 하는 일과 연관이 많았기 때문이다. 나는 학생 운동 10년, 노동 운동 10년, 진보정당 운동 10년, 도합 30년을 사회 운동에 헌신했다. 현재는 현실 정치에 동참하고 있지만 운동과 정치가 크게 다르다고 생각하지 않고 운동의 연장선으로 정치를 하고 있다. 정치와 운동은 결국 현실을 다루는 일이다. 현실을 좀 더 낳은 방향으로 바꾸는 게 바로 정치인 것이다. 그런데 현실을 바꾸려면 현실을 잘 알아야 한다. 현실을 아는 데는 여러 가지 접근법이 있겠지만 역사를 아는 것이 그 초석이다. 그랬기에 역사에 나름대로 관심을 많이 가지게 된 것이다. 더욱이 운동권에 있으면 국가에서 '공부할 수 있는 기간'을 정해준다. '국비장학생'이 되는 셈인데, 이런 시간을 활용해서 『조선왕조실록』을 볼 수 있었다.
왕의 일거수일투족을 모두 기록하다조선 초기는 굉장히 활력적이고 이상적인 제도를 많이 도입하던 시기였다. 그중 하나가 바로 실록 제도였다. 오늘날은 "대통령의 권력은 국민에게서 나온다"고 헌법에 명시된 대로 국민들이 직접 선출한 대통령이 국가를 통치하는 민주주의 국가다. 그러나 대통령의 언행까지 기록되지는 않는다. 하물며 민주주의 국가에서도 기록이 요원한데, 모든 권력을 가지고 있던 왕의 행동거지를 세세하게 기록했으니 실록 제도는 오늘날에도 유례를 찾기 힘든 대단한 언론 제도라고 할 수 있다. 사실 실록이라는 것은 결과로서 남은 기록물일 뿐이다. 보다 중요한 것은 실록을 만들어낸 선진적인 제도 자체인 것이다. 오늘날의 우리조차 따라가지 못하는 선진적인 제도. 나는 특히 이 점에서 『조선왕조실록』에 관심을 갖지 않을 수 없었다. 우리는 어떻게 이 정신을 소화해낼 것인가.
대통령이 퇴임하고 보니 청와대에 커다란 금고가 남아 있더라고 한다. 그러나 누가 그걸 갖다 놓았고 무슨 짓을 했는지 어떤 기록도 남아 있지 않다. 뿐만 아니라 대통령이 다른 나라 국가원수를 만나 얘기한 내용도 별로 남아 있질 않다. 그런 게 없다 보니까 서로 도청하려고 난리를 친다. 그에 반해 조선은 천하의 모든 권력을 갖고 있는 왕도 기록의 대상이 되었다. 바로 이 점이 오늘날의 우리가 눈여겨볼 대목이다. 여기서 당시의 실록제도가 얼마나 왕들을 난처하게 했는지를 살펴볼 수 있는 흥미로운 대목 하나를 소개해보자.
어느 날 사관(실록을 기록하는 사람)들이 임금(중종)에게 당돌하게 묻는다. "폐하의 침전에서 일어나는 일들도 기록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이왕 기록하는 거 다 기록하자는 취지였다. 왕의 눈이 휘둥그레지는 것은 당연지사. 그 대화조차 실록에 소개되어 있는데, 이 대목은 상당히 흥미롭게 전개되어 연극의 한 대목을 보는 것 같다. 여기서 의미심장한 대목은 사관들의 그런 억지스런 주장에도 왕이 마땅한 반박을 못한다는 데 있다. 기껏 하는 말이 "말은 맞는 말인데 글을 제대로 쓸 수 있는 여자가 있겠느냐?"는 궁색한 변명이 전부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중종이 한 번도 자신의 사생활을 보호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