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아이가 책을 읽는다
박영숙 지음 | 알마
1부 아이 키우기 정말 힘들지요?저마다 타고난 호기심이 큰 세상을 만나도록아이들은 참으로 신기하다. 스스로를 키워 가는 힘이 놀랍다. 태어날 때부터 호기심 덩어리이기 때문이다. 호기심은 모든 걸 배우게 만드는 힘이다. 그런데 어른들은 자꾸 서둘러 가르치려 하고 제대로 뒷바라지를 못할까 봐 두려워하고 죄책감마저 느낀다. 신경생리학자 리즈 엘리엇은 아이들은 가만히 놔두어도 스스로 자극을 받아들일 잠재력을 타고난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바로 그런 자극이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게 어른들의 몫이다.
그렇다면 아이들을 책만 수북히 쌓인 창고 같은 곳에 혼자 내버려둔다고 책하고 친해질까? 아이들은 놀이가 삶이다. 놀면서 배우고 놀면서 자란다. 놀면서 궁금한 게 생기고 하고 싶은 것도 생긴다. 그러니 책도 놀면서 만날 수 있으면 된다. 아이들이 책과 친해지려면 책 읽기도 즐거워야 한다. 아이 눈길이 닿고 호기심을 일으키는 것에서부터 상상력과 감정이 살아 움직인 이야기를 자유롭게 만날 수 있어야 한다. 책 읽기가 숙제나 시험공부처럼 여겨지지 않고 아이들을 행복하게 만들 수 있어야 한다. 재미있게 책을 읽어주고 수다도 떨면서 놀 권리를 누릴 수 있는 곳. 그래, '책이 있는 놀이터'를 만들자!
아이 업고도 갈 수 있는 도서관아이들을 데려오는 부모들을 만나면서 아이들이 도서관을 제대로 누리려면 어른들 먼저 책을 나누면서 자유롭게 책을 만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가야 한다는 걸 확인했다. 도서관 개관 직후 네댓 살 난 아이들만 도서관에 들여보내고 두어 시간씩 볼일을 보고 오는 사람이 한둘이 아니었다. 자라면서 도서관을 제대로 경험하지 못한 우리 세대에게 도서관은 그렇게 낯선 곳이었다. 도서관 곳곳에 안내글을 써 붙이고 끊임없이 말을 건네야 했다. 도서관은 보육교사가 있는 보육시설이 아니라고, 아이와 함께 와서 책을 읽어주자고.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주고 함께 읽으면서 부모들 책꽂이에 꽂힌 책들도 움직이기 시작했다. 엄마들은 아이가 도서관에서 책을 보다 잠이 들거나 또래들과 어울리는 틈을 타서 책에 빠져들었다. 아이 키우던 엄마들이 책을 펼치는 건 특별한 뜻을 의미했다. 부모 노릇도 앞으로의 삶도, 다시 공부하며 길을 찾아가고 싶다는 마음이 간절해진 것이다. 그런 사람들과 독서모임도 만들었다. 아이에게 좋은 부모가 되기 위한 고민을 나누면서 새롭게 사회와 관계를 맺어 가는 자리가 되었다.
2부 아이들 가슴마다 책씨를 심다책 읽기, 습관이 아니라 권리다처음엔 손에 잡히는 대로 책을 골라 아이들과 돌아가며 읽는 식이었다. 아이들이 심드렁할 땐 혼자 읽어주기도 했다. 그러다 목이 아프다는 핑계로 옆에 있는 아이에게 책을 넘기기도 하고, 아이들 얼굴에 작은 움직임이라도 보일라치면 거기서부터 한 가닥씩 이야기를 풀어나갔다. 누군가 잡지를 들춰보는 게 눈에 띄면 그 날은 잡지에 실린 수수께끼나 낱말 맞추기를 풀어보기도 했다. 어떤 날은 시집을 쌓아놓고 아무 데나 펼쳐서 돌아가며 읽어주기도 하고 나란히 앉아 만화책에 파묻혀 보내기도 했다. 굳이 아이들에게 가르쳐준 걸 꼽는다면 작가에 대한 이야기나 출판사에서 책을 만들게 된 뒷이야기쯤이다. 그것도 아이들이 궁금한 걸 찾아낼 때 알려주는 식이다.
조금씩 아이들 얼굴이 편안해지고 수다도 늘었다. 아이들이 먼저 책을 알아보기도 했다. 같은 작가가 그린 다른 책을 보고 '이 아저씨가 이런 그림도 그렸네' 해서 오히려 도우미 아줌마가 몰랐던 걸 알려줄 때도 있다. 서로 책을 읽어주고 귀 기울여 이야기를 들어준다. 이웃 아줌마들과 마주 보며 이야기에 빠진 아이들 눈은 밝게 빛난다. 아이들이 청소년기에 접어들 때쯤이면 저희끼리 독서 모임을 꾸리고 열띤 토론도 벌일 것이다. 이런 시간이 쌓이면서 아이들의 삶이 풍성해지는 게 아닐까. 아이들에게 선생님이 되려고 하거나 가르치려고 하지 않는다면 그 순간부터 정말 많은 걸 할 수 있게 된다.
갈수록 궁금한 게 많아지고 보고 싶은 책이 늘어가면서 아이들은 학교에서 내준 권장목록이나 필독목록 같은 데 매달리지 않게 되었다. 권장이나 추천이라는 말을 달고 있어도 목록을 받아든 아이는 책 읽기를 숙제나 시험공부와 다르지 않게 여긴다. 책 읽기를 가르치려고 하기 전에 생각해봐야 할 게 있다. 왜 책을 읽히려고 하는 걸까? 제발 책이 유효기간 몇 년짜리 입시도구가 되어버리지 않기를 바란다. 책이 아이들 삶에 위로를 주고 용기를 주면 좋겠다. 사람과 어울리는 가운데 책을 읽으면서 편안하고 즐겁게 쉼을 누리고 상상력을 펼칠 실마리를 얻었으면 좋겠다. 그래서 책을 좋아할 권리를 누리게 되면 그 나머지, 어른들이 바라는 지식은 벌써 아이들 손안에 다 들어 있는 셈이니까. 느티나무에 모여 책 읽기 모임을 가지면서 아이들이 가장 크게 얻은 건 바로 책으로부터 자유로워진 것이었다.
내가 도서관에 오다니, 게다가 책까지!도서관 문을 열고 첫 여름을 맞을 무렵이었다. 땀으로 범벅이 된 아이들이 우당탕탕 문을 열어젖히며 뛰어 들어왔다. 늘 하던 대로 신발을 벗어 던지자마자 정수기로 몰려가 벌컥벌컥 물을 들이켰다. 도서관은 아파트 단지에서 노는 아이들에게 눈치 보지 않고 물을 먹을 수 있는 곳으로 통했다. 물만 먹고 나가는 아이들에게 인사 대신 노래를 불러댔다. "물만 먹고 가지요~"
어쩐 일인지 그 날은 아이들이 도서관에 눌러앉았다. 에어컨 앞에 매미처럼 달라붙어 선 녀석, 자리를 잡고 누운 녀석 등등. 모니터를 들여다보고 일을 하면서도 귀는 온통 그 녀석들한테 쏠렸다. 그런데 한 아이가 책을 한 권 뽑아 들고서 친구들을 불렀다. "어? 여기 수수께끼도 있네." 녹초가 되었던 아이들 얼굴에 생기가 돌았다. 눈을 반짝거리며 책을 펼쳐 들고 둘러앉았다. '이때다!' 나는 하던 일을 다 제쳐두고 끼어 들었다. "아줌마도 수수께끼 무지 좋아하는데, 끼워줄래?" 아이들은 못 이기는 척 자리를 내주더니 하나 둘 수수께끼를 풀어가면서 조금씩 무릎을 당겨 앉았다. 번번이 답을 놓치고 약이 오르면서도 싫지는 않은 모양이었다. 나중엔 아예 문제를 내면서 내 얼굴만 쳐다봤다.
앉은 자리에서 수수께끼 책 한 권을 처음부터 끝까지 다 풀었다. 아이들이 싱글벙글 농담도 건넸다. 이렇게 수수께끼 잘 푸는 아줌마 처음 봤다나. 당연하지. 벌써 다 풀어본걸. 며칠 뒤 아이들이 다시 찾아왔다. 친구 생일잔치에 가는 길인데 수수께끼 놀이를 하고 싶다며 그 책을 빌려달라고 했다. 잠깐 고민. 하지만 이럴 때 주민등록등본 어쩌고 해서 기회를 놓칠 수는 없지. 아줌마 카드로 빌려줄 테니까 며칠까지 꼭 돌려줘야 한다고 다짐을 하고 책을 내주면서 얼른 손을 들어 하이파이브! "너희들 오늘 인기 짱이겠다. 파이팅!" 햇볕에 그을려 새카맣던 개구쟁이들은 그때 빌려간 수수께끼 책을 돌려주면서 만든 대출카드를 가지고 중학생이 된 지금도 책을 빌리러 온다.
아이들은 그렇게 물 먹으러 오다가, 놀러 갈 때 핑계삼아 들르다가, 심심해서 뒹굴다가, 어느 날인가 책을 펼치게 되고 읽어달라고 조르게 되고 책을 좋아하게 되었다. 진짜 거짓말처럼 말이다. 아이들이 책을 만나는 기회는 백이면 백, 다 다르다는 게 지금까지 수많은 아이들을 만나며 얻은 깨달음이다. 아이들은 우리가 도서관을 만들어놓고 정말 해야 할 몫이 무엇인지도 알게 해주었다. 언제든 보고 싶어질 수도 있는 책들을 잔뜩 꽂아놓고 반갑게 맞아주기만 하면 된다는 걸 말이다.
"만날 놀러 오라고만 해요? 명색이 도서관장이." 수없이 들은 말이다. 어딜 가도 아는 아이들을 만나지만 한번도 책 보러 오라는 말은 하지 않았다. 아이들에게 책을 보라고 해서 정말 보러 올 아이들이라면, 나는 아마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책 보라는 말만 주문처럼 외고 다닐 테니까. 오늘도 도서관 오가는 길에 아이들을 만났다. 몰라보게 부쩍 자란 아이와 마주치거나 자전거를 타고 가면서도 반갑게 손을 흔드는 아이들을 만나는 건 큰 기쁨이다. "아줌마 안 보고 싶었어? 왜 놀러 안 와!" "네, 이따 꼭 갈게요!"
책 읽는 소리가 아이를 키운다6년 전 여름, 환등기를 마련한 건 한꺼번에 여러 아이들에게 그림책을 읽어주기 위해서였다. '어린이도서관'이라는 이름을 붙인 만큼 우리는 늘 책을 읽어주는 도서관이 되길 바랐다. 도서관 개관 후 한두 달 시간이 지나면서 내 아이 남의 아이 가리지 않고 책을 읽어주는 사람이 늘어갔다. 아이들은 처음 보는 아줌마나 아저씨라도 어깨에 매달리고 무릎에 기대며 책에 빠져들었다. 서로 그림을 들여다보려고 실랑이를 벌이기도 했다. 아이들이 아무리 많이 모여도 다 함께 볼 수 있을 만큼 커다란 책이 있으면 참 좋을 것 같았다. 온갖 궁리를 하다가 떠올린 게 바로 환등기였다.
처음엔 걱정도 되었다. 텔레비전, 비디오, 컴퓨터 게임처럼 빠르고 느낌이 강한 애니메이션을 보던 아이들이 찰칵찰칵 슬라이드를 넘기며 읽어주는 것을 따분해하지 않을까? 하지만 쓸데없는 걱정이었다. 이웃 아줌마들이 공들여 준비한 슬라이드는 아이들 마음을 빼앗기에 충분했다. 불을 끄고 커다란 막에 영화처럼 비춰지는 그림책은 아이들에게 새로운 느낌으로 다가갔다. 아이들은 오롯이 책 읽어주는 소리에 빠져들었다. 이야기극장이 끝나고 나면 그 날 본 책을 빌려가려는 아이들이 줄을 섰다. 어느새 7년째, 수요일이면 어김없이 40~50명씩 꼬마 관객들이 찾아와 자리를 메운다. 이야기극장이 수요일에 열리니까 자기 생일도 수요일이면 좋겠다는 아이도 있다. 기어다니는 아기부터 어른까지 나이도 상관없다. 구석구석에서 아이처럼 깔깔대고 때론 눈물을 글썽이는 어른들을 늘 만나게 되니까.
3부 물고기를 잡으려다 시인이 될 수도 있다놀이도 돈 내고 배운다고요?몇 해 전 '놀이학교'라는 게 생겼다고 해서 잔뜩 호기심이 일었다. 놀이학교(학원이겠지만)에서 논다니 정말 좋은 일이잖아. 그러면서도 마음 한구석에서는 혹시 놀이마저 발달과업처럼 가르치는 건 아닐까 미심쩍었다. 아니나 다를까. 놀이학교는 단계를 정해 반을 가르고 교실도 정해놓고 시작하고 끝나는 시간에다가 그날그날 놀아야 할 시간표까지 정해놓고 있었다. 도무지 놀이라고 할 수 있는 조건이 하나도 없었다. 놀이가 뭔가. 놀고 싶을 때 놀고 싶은 곳에서 놀고 싶은 사람과 하고 싶은 놀이를 해야 하는 것 아닌가. 놀이마저 돈 내고 가르치는 세상이 되었다고 생각하니 씁쓸했다.
우리 도서관에도 즐겁게 놀자고 '꼬마또래방'이라는 동아리를 만들었다. 처음에는 어쩔 줄 몰라 하던 엄마들이 힘을 얻은 건 요리를 통해서였다. 떡이랑 버섯이랑 데쳐서 아이들이 꼬챙이에 꽂으면 지글지글 프라이팬에 구워 먹기도 하고 추석이면 산에 가서 솔잎을 따다 송편도 빚었다. 소꿉놀이 장난감이 아니라 진짜 살림도구들이 제 차지가 되니 아이들은 잘 먹지 않던 것도 맛나게 먹었다. 바느질도 빼놓을 수 없는 놀거리였다. 입지 못하게 된 옷이나 양말을 가져다 콩주머니도 만들고 손가락 인형도 만들었다. 대여섯 살 아이들에게 바늘 하나씩 쥐어주는 걸 보고 화들짝 놀라는 사람도 있었다. 하지만 위험하다고 말리기만 할 게 아니라 바늘을 어떻게 잡고 실은 어떻게 꿰는지, 찔리지 않으려면 어딜 조심해야 하는지 손을 잡고 가르쳐주자고 설득했다.
아이들은 용케도 잘 따라했고 또 스스로를 보호하는 힘을 타고나기 때문에 그리 걱정할 일도 없었다. 어쩌다 바늘에 찔리기도 하지만 지금까지 우는 아이는 하나도 없었다. 뭐든 어른들 하는 대로 따라하고 싶어하는 아이들은 늘 해보고 싶었던 일을 마침내 하게 되었으니 훈장이라도 받은 것처럼 눈을 반짝였다. 모처럼 주어진 자유를 누리며 재잘대는 아이들을 보면서 엄마들도 마음이 열리기 시작했다. 그래, 아이들은 저렇게 놔두면 잘 어울려 노는걸. 이제 어른들도 흥을 돋우며 같이 즐길 줄 알게 되었다.
나들이를 가기로 했는데 비가 와서 발이 묶이면 밀가루 풀어 부침개를 부쳐먹으며 책을 읽어주었다. 찰흙 놀이를 하려다가 햇살이 좋으면 나가서 모래 놀이도 했다. 아이들이 가장 기다리는 건 역시 나들이. 처음 나들이를 나설 때 아줌마들은 먹을거리와 비상약품은 말할 것도 없고 도감까지 한 꾸러미씩 챙겨갔다. 하지만 몇 차례 철이 바뀌면서 거기서도 벗어났다. 이름을 꼭 가르쳐주지 않아도 아이들은 그냥 나무나 풀과 친구가 된다는 걸 알게 되었다. 같은 자리를 수없이 지나다니면서 아이들은 저절로 배웠다. 철이 바뀔 때 산에 사는 친구들 모습이 어떻게 달라지는지, 어떻게 서로 어울려 살아가는지. 도서관에서 책을 들추다 산에서 본 나무나 꽃을 만나도 아이들이 먼저 알아봤다.
그렇게 우리는 수업이나 프로그램 대신 놀거리로 아이들과 어울리는 법을 배웠고 아이들은 고만고만한 동생들을 달래고 돌볼 줄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어른과 아이들은 친구가 되었다. 아직도 '꼬마또래방'에서 어떤 프로그램을 하느냐고 묻는 사람이 많다. 거기 다니면서 아이들이 달라졌다고 하던데 도대체 뭘 하기에 그런지 궁금하다는 것이다. 신나게 뛰어와서 코가 닿도록 얼굴을 들이대며 씩 웃어주는 아이들, 비단조개 같은 입으로 쏟아내는 놓치기 아까운 말들, 밀가루 반죽만 갖고도 온 세상을 빚어내는 예쁜 아이들을 그저 업어주고 안아주면서 함께 노는 엄마들의 행복한 이야기를 어떻게 한마디로 말할 수 있겠는가.
"정해놓은 건 없고요. 도서관에 와서 함께 지내는 게 그냥 다 프로그램이에요. 몇 번 와서 보실래요?" 그러면서 덧붙인다. "일러드릴 게 있어요. 또래방에서 가장 인기가 좋은 사람은 신나게 노는 아줌마더라고요." 정말 그랬다. 아이들은 자상하게 챙겨주고 양보하는 사람보다 저희를 제치고 먼저 하겠다고 나서고 이겼다고 좋아라 하고 때로는 아이들을 골탕 먹이기도 하는 아줌마를 더 좋아했다.
4부 오빠, 무슨 책 읽어줄까?'다른' 사람들과 어울리며 배우고 자란다세상에는 참 많은 사람이 있고 그 사람들이 다 다르다는 걸 아이들에게 어떻게 알려줄까. 우리는 등급을 나누고 편을 가르는 것보다 서로 다른 사람들이 어울리는 게 훨씬 좋다는 걸 아이들 스스로 느끼게 되길 바랐다. 우리는 무얼 하든 나이, 성별, 장애, 계층, 학습능력까지 통합하는 걸 원칙으로 삼았다.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었다. 그저 아이들을 다 섞어놓고 모든 걸 똑같이 하는 게 통합은 아니기 때문에 때로는 특별한 서비스도 필요하다. 그러다 보니 불만도 많고 갈등도 많았다.
통합이 어려운 이유는 늘 학습능력에 닿아 있다. 부모들은 앞서가려면 잘하는 아이들 사이에 섞여 있어야 한다고 믿는다. 그래서 나이가 다른 아이들을 섞어놓는 것도 좀처럼 받아들이기 힘들다. 부모들이 불안해서 어쩔 줄 모른다. 배워야 할 걸 제대로 못 배우고 뒤쳐질까 봐. 하지만 아이들은 그런 불안이 쓸데없다는 걸 보여주었다. 우리가 미처 알아차리기도 전에 아이들은 어울려 함께 배우고 있었다. 누가 누구를 한쪽으로 가르치는 것도 아니다. 가르쳐주고 거들어주면서 오히려 아이들 스스로가 배워나간다.
이제 나들이를 가도 동생들 돌보는 일은 도우미 아줌마들이 아니라 큰 아이들 몫이다. 기저귀를 갓 뗀 이웃 꼬마가 쉬 마렵다고 하면 겨우 한두 살 많은 아이가 얼른 동생 손을 잡고 화장실에 데려간다. 서로 골탕을 먹이고 놀리기도 하지만 실수를 덮어줄 줄도 안다. 그렇다고 아이들을 모아놓고 '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