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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은 어떻게 책이 되었을까

윌리엄 슈니더윈드 지음 | 에코리브르
서문



책은 수천 년 전부터 만들어져왔다. 그리고 책은 싱싱하게 살아서 번식을 계속하고 있다. 책은 시작도 끝도 없이 만들어지는 것처럼 보이지만, 책이 처음으로 만들어진 시점은 분명히 있었다. 고대의 설교자도 이를 알고 있었다. 전도서는 당시만 해도 새로운 일이었을 책을 쓰는 것에 대해 경고하면서, '지혜자의 말씀'이 아닌 '글'을 몸이 피곤할 만큼 많이 공부하지 말라고 했다. 공부하느라 몸이 피곤해질 것을 염려하는 일은 글이 이제 막 소개된 문화, 또는 구술문화에서 문자문화로 전환하는 위험스런 과도기에 있는 사회에서나 있을 법한 일이다. 이 전환기에 성경이 거룩한 글이 된 과정은 다양한 종교 전통에 심오한 의미를 던져준다.



성경은 어떻게 책으로 기록되었을까?



이 질문에 답하려면 기록 활동이 고대 이스라엘 사회가 거쳐 온 다양한 역사적 시기에 어떤 기능을 했는지, 성경의 형성 과정에 비추어볼 때 고대 이스라엘에서 기록 활동의 중요성은 어떻게 증대되었는지, 성경 자체는 스스로의 '문자성'을 어떻게 보고 있는지, 구전의 전통과 텍스트 사이의 관계는 어떠했는지 등의 여러 질문을 먼저 생각해보아야 할 것이다. 이러한 질문들에 답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우리는 성경이 어떻게 책으로 기록되었는지를 이해할 수 있다.



위의 질문들은 성경을 둘러싼 세 가지 기본 쟁점과 관련이 있다. 그 첫 번째는 '누가' 성경을 썼는가라는 문제이다. 그러나 이 책에서는 '성경은 언제 씌어졌는가'라는 질문을 던질 것이다. 이 질문은 성경을 하나의 문학작품으로 보는 통찰력과 더불어 고대 이스라엘이 힘겹게 문자문화를 이루어낸 과정을 이해할 수 있는 안목을 줄 것이다. 이어지는 두 번째 질문은 '성경이 어떻게 씌어졌는가' 하는 것이다. 기원전 7세기 이전에 살았던 이스라엘 사람들은 대부분 문맹이었다. 어떻게 고대 이스라엘처럼 구전을 고집한 문화가 자신들의 정체성을 글로 표현하여 성경을 문서로 만들어냈을까? 어떻게 기록된 말씀이 교사들과 이스라엘 공동체의 살아 있는 목소리를 대체할 수 있었을까? 그리고 마지막 쟁점은 과연 '어떤' 특정한 역사적 상황이 성경을 문서화하여 마침내 '거룩한 책'이 되게 했는가 하는 것이다.



성경 자체가 저자에 관한 언급을 엄히 삼가는 탓에 성경의 저자들을 알아내기는 어렵다. 아이러니하게도 성경을 기록한 이들에게는 자신이 누구인지를 밝히는 것이 전혀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던 것 같다. 성경이 전하는 메시지의 권위나 본문 자체의 의미를 이해하는 데도 저자가 누구인가는 별 관심이 없었다. 반면 성경이 언제 씌어졌는지 알 수 있다면, 성경이 고대 독자에게 무엇을 의미했는지 우리는 좀더 많은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어쨌든 성경의 해석은 기록자들이 아니라 그것을 읽는 독자들과 더욱 밀접하게 연결된다.



'왜 성경은 기록된 글인가'라는 이 책의 두 번째 질문은 성경의 저자를 묻는 질문보다 훨씬 흥미롭다. 대부분의 사람이 글을 알게 된 것은 현대에나 가능해진 일이다. 아무도 읽을 수 없는데, 어째서 글로 썼을까? 당시 쓰기 도구였던 두루마리는 비싸서 널리 유통되지도 못했는데, 왜 굳이 글로 써야 했을까? 성경의 형성 과정을 연구하려면 역사의 흐름에 따른 구술문화에서 문자문화로의 이동과 더불어 구두전승과 기록된 글 사이의 경쟁이라는 두 가지 면을 모두 고려해야 한다. 구술문화와 문자문화는 연장선상에 놓였던 반면, 기록된 글과 살아 있는 목소리는 갈등관계에 있었다. 이러한 갈등은 이 둘이 문화적, 종교적 권위의 기반을 두고 자리다툼을 하면서 더욱 고조되었다.



사도 출신인 사도 바울은 고린도 사람들에게 "이것은 먹물로 쓴 것이 아니라, 살아계신 하나님의 영으로 쓴 것이요, 돌판에 쓴 것이 아니라, 사람의 마음에 쓴 것입니다"라고 말하며, 나아가 "글자는 사람을 죽이지만, 영은 사람을 살립니다"라고 말한다. 바울은 기록 행위나 책의 존재가 성령과 공동체의 역할을 대체하는 데 위협을 느끼던 사람들의 비판의식에서 비롯된 은유적 표현을 쓰고 있는 것이다. 2세기경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트도 자신의 책 『잡록』을 다음과 같은 역설적인 말로 시작한다. "이 글은… 망각에 대한 구제책이다. 꼭 들어둘 만한 명징하고 생생한 말들의 그림자이고 불완전한 이미지다."



그러나 종교적 권위가 구두전승에서 기록된 글로 옮겨간 것은 표면상으로 보이는 것 이상의 의미가 있었다. 권위 있는(또 혁신적인) 경전을 읽다 보면 이따금 죄에 대한 자각이 생기면서 급진적 개혁의 필요성이 대두된다. 성경에서 이에 대한 두 가지 두드러진 예가 나타난다. 첫 번째는 율법책의 발견으로 시작된 요시야 왕의 개혁이고, 두 번째는 '모세의 율법책'을 읽어주기 위해 백성들을 한데 모았던 에스라의 개혁 이야기이다. 에스라는 큰소리로 율법책을 읽어주었고 이에 대한 백성들의 반응은 즉각적이었다. 백성들은 말씀을 들으면서 모두 울었고, 또 기록된 말씀에 의거하여 자신들을 다른 민족 사람들로부터 거룩히 구별하겠다고 다짐한다.



개신교의 종교개혁이 글쓰기의 기술 혁신 덕분에 가능했던 것처럼, 유대교의 문자화 역시 사회적, 기술적 변화 덕분에 가능했다. 마르틴 루터의 '오직 성경'이라는 부르짖음은 인쇄의 발명 없이는 울려퍼질 수 없었을 것이며, 고대사회에서 알파벳의 발명이 없었다면 문자문화의 확산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기원전 8세기, 최초의 대제국인 앗시리아의 발흥과 더불어 알파벳 사용은 고대 이스라엘에서 기록된 말씀이 권위를 얻는 데 촉매 역할을 했다. 이후 1세기 무렵 책의 형태인 코텍스의 발명으로 이리저리 따로 돌아다니던 성경 각 권의 두루마리들을 한데 모아 더욱 쉽게 성경을 읽을 수 있게 되었다.



'성경이 씌어진 시기는 정확히 언제일까?' 나는 성경이 기원전 8세기에서 6세기 사이, 다시 말해 예언자 이사야의 활동 시기와 예레미야의 활동 시기 사이에 씌어졌다고 주장하려 한다. 나의 이러한 논지는 소수의 학자들 사이에 유행하는, 성경이 페르시아 시기 후반과 헬레니즘 시기, 즉 기원전 4세기에서 기원전 2세기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만들어졌다는 설을 정면으로 반박하는 것이다. 만약 그 설이 사실이라면, 성경은 영리한 사기꾼들의 날조품일 것이다. 아니면, 민족주의자들이나 종교적 관념론자들의 선전물일 것이다. 성경의 기록 시기를 지나치게 후기로 보는 견해는 이처럼 심각한 문제를 지닌다. 정경으로 승인된 각 권들을 모아 한 권의 책으로 묶은 오늘날의 성경이 기원전 5세기와 기원후 4세기에 걸쳐 제작되었다는 주장은 사실 맞는 말이다. 그러나 이는 성경이 이 시기에 처음으로 기록되었다는 뜻은 아니다. 나는 이 책에서 어떻게 성경 각 권이 모아져 한 권의 책으로 만들어졌는가보다는 성경의 내용이 맨 처음 두루마리들에 기록된 당시의 상황에 좀더 관심을 기울여 다루고자 한다.

성경이 어떻게 책으로 만들어졌는가라는 질문은 유대 민족의 역사에 대해 묻는 것과 마찬가지다. 성경의 기록이 유대 민족 역사의 중심을 이루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책은 유대 민족의 초기 역사와 그들의 책, 바로 타나크(Tanak; 히브리 성경을 구성하는 세 부분, 즉 모세오경을 뜻하는 토라Torah, 예언서인 네비임Nebi^m, 성문서를 뜻하는 케투빔Ketubim의 머리글자를 합친 단어)라고도 불리는 성경에 대해 이야기할 것이다. 그러므로 이 책은 히브리 성경 또는 그리스도교의 구약성경에 초점이 맞춰질 터인데, 여기서는 간단히 '성경'이라 부르겠다.



성경이 그토록 풍부한 내용을 담고 있는 까닭은 성경은 특정 시기에 한 장소에서 씌어진 것이 아니라 기나긴 시간을 거쳐 만들어짐으로 인해 생긴 복잡성 때문이다. 사해에서 발견된 가장 오래된 두루마리는 기원전 3세기의 것이지만, 이를 원본 성경의 작성 시기로 볼 수는 없다. 이는 언어상의 특징에서도 알 수 있다. 사해 사본에 씌어 있는 주석은 성경 원문을 그대로 베낀 부분보다 훨씬 후대의 언어를 보여준다. 또한 그 예를 성경 안에서 들어보자. 바로 기원전 925년에 있었던 이집트 시삭 왕의 예루살렘 출정기가 들어있는 열왕기상 14:25-28이다. 이 이야기는 언제 성경이 책으로 만들어졌는가를 물을 때 그냥 넘어가서는 안 되는 성경의 역사성을 보여주는 사례이다. 학자들은 대개 열왕기의 연대를 일러도 기원전 8세기 후반 정도로 보지만, 성경 본문 자체는 이집트 시삭 왕의 출정을 이보다 적어도 두 세기 이전으로 회고한다. 시삭이 이집트의 카르나크 성전 벽에 기록케 한 이 출정에 관한 내용은 이 이야기가 역사적으로 분명히 일어났음을 보여주는 증거가 되는데, 여기서 우리는 연대적으로 너무나 정확한 대조역사 연표를 볼 수 있다.



페르시아 시기(기원전 4, 5세기)에 씌어진 역대기는 이스라엘의 역사를 새로 쓰는 과정에서 열왕기를 그 자료로 사용했기 때문에, 우리는 이를 통해 성경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살펴볼 수 있다. 역대기하 12:2-11에는 열왕기에 대한 다음과 같은 부연설명이 나온다. "그들이 야훼께 범죄한 결과로, 르호보암 왕이 즉위한 지 오 년째 되던 해에 이집트의 시삭 왕이 예루살렘을 치러 올라왔다." 여기서는 무엇보다 왜 시삭이 예루살렘을 공격했는지 먼저 설명한다. 이러한 원인 해설은 역대기의 전형적인 특징이며, 이러한 부연설명을 덧붙인 부분의 앞뒤에 원자료의 구절이 정확히 반복되는 것은 히브리 성경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편집기술이다. 이것은 후대의 기록자가 원자료로 쓰인 이전 텍스트 또는 전승을 자신의 글과 구분하였음을 말해준다. 요컨대 기원전 10세기경 왕실이나 성전의 연대기로 사용되었을 텍스트는 다시 기원전 8세기에 열왕기의 한 부분이 되었을 것이다. 이후 기원전 4, 5세기경 역대기를 기록한 이들은 당시에 얻을 수 있었던 다른 자료들을 참고해가며 기존의 열왕기를 해석하고 보완한 것이 분명하다.



우리에게는 성경 기록 과정에 관한 정확한 출처나 참고자료가 거의 없다. 그렇지만 확실한 증거들로부터 연구를 시작하여 계속해가면서 그 과정을 상상해볼 수는 있다. 또한 전승이 입에서 입으로 전해오다가 기록이 남겨지고, 마침내 우리가 현재 갖고 있는 성경으로 편집되기까지의 사회적 배경을 재구성해볼 수도 있다. 참으로 성경이 지니는 힘은 이러한 복잡한 과정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성경 전승 자체가 지닌 생명력과 더불어 고대 이스라엘과 초기 유대교에서 차지하는 엄청난 중요성으로 말미암아 사람들은 성경을 기록하고, 읽고, 해석하고, 때때로 교정하고, 다시 읽어온 것이다.

글의 신령한 힘



글은 특히 문자 사용 이전의 사회에서, 신령한 힘이 깃들여 있는 것으로 여겨왔다. 처음에 글은 종교 행위의 규범을 만드는 데 사용된 것이 아니라 종교적 경외심을 불러일으키기 위해 사용되었다. 글은 신의 선물이었다. 글은 축복이나 저주를 담는 초자연적 능력을 가진 것으로 믿어졌으며, 신이 천지를 창조하고 그 질서를 유지하는 데도 한몫을 했다. 고대 유대 전승에서 히브리어 문자와 글쓰기 기술은 신의 창조의 여섯 번째 날 창조되었다. 글쓰기가 신의 천지창조의 일부분으로서 인류에게 주어졌다는 관념은 고대 이집트와 메소포타미아에서도 흔히 찾아볼 수 있다. 글은 일상의 세속적인 용도가 아니라 제사 행위나 암송을 통해 현재와 미래에 일어날 일들에 영향을 미치기 위해서 신들과 교통하는 데 사용되었다.



유대 전승에 나오는 시내 산에서 주어진 돌판(십계명이 적힌) 역시 천지창조의 여섯 번째 날에 창조되었다. 하나님이 두 돌판에 친히 손가락으로 기록했다는 것이다. 고대 메소포타미아의 창조 신화인 에누마 엘리쉬(운명의 돌판)에서도 하늘의 돌판에 대한 언급을 찾아볼 수 있다. 성경에서는 하나님이 사람들의 이름을 기록한 책을 가지고 있다고 말한다. 그 책에 내용을 보태기도 하고 지우기도 하면서 사람들의 영원한 운명을 결정한다는 것이다. 모세의 책들(모세오경)은 글쓰기를 신령하게 여기는 이러한 초기의 관념을 반영한다. 이렇게 글쓰기를 신비롭고 신령한 것으로 여기는 태도는 고대 이스라엘과 같은 구술문화 사회에서 전형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었다.



한편 사람의 이름은 그 사람의 아주 본질적인 무언가를 담고 있는 것으로 여겨졌다. 성경에서 하나님은 족장이었던 아브람('존귀한 아버지'라는 뜻)의 이름을 아브라함('많은 사람의 아버지')으로 바꾸어 주었다. 이는 그에게서 많은 자손이 태어나 그가 많은 민족의 조상이 될 것을 알리기 위함이었다. 누군가의 이름을 바꿈으로써 사실 그 사람의 운명도 바꿀 수 있었다. 이름을 적는 것은 한 인간의 본질을 집약적으로 담아내는 일이었다. 이것이 이집트 저주문의 배후에 깔린 개념이었는데, 단지 사람들의 이름을 명단에 적어놓기만 해도 제의적 힘을 가질 수 있었다. 그랬기 때문에 민수기나 사무엘하에 나오는 인구조사, 즉 사람들의 이름을 목록에 적는 일은 신의 영역을 침범하는 행위였던 것이다.

이렇게 이름을 기록하는 일에 신령한 힘이 깃든다는 믿음은 유대교에서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이어져온다. 페르시아의 헬레니즘 시기에 씌어진 성경 본문에서는 하나님의 이름에 대한 경외심이 점점 더 커지는 것을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역대기는 원 출처에 나오는 야훼의 이름에 쓰인 성스러운 네 개의 문자를 좀더 일반적인 이름인 '엘로힘'으로 대체한다. 사해사본에서는 하나님의 이름을 직접 기록하는 것을 피하기 위해 몇 가지 방법이 고안되었다. 네 개의 점을 찍어 하나님의 이름을 뜻하는 4개의 히브리어 문자를 대신하거나, 고대 히브리어 문자를 차용하여 하나님의 이름을 나타냈던 것이다.

글의 신비스런 속성은 시내 산에서 모세에게 주어진 두 개의 돌판을 통해 가장 극명하게 드러난다. 성경은 모세가 시내 산 위에서 하나님이 직접 쓴 두 개의 돌판을 받았다고 말한다. 돌판을 넣고 나서 언약궤는 신령한 힘을 얻는다. 이것은 신이 친히 기록한 글 때문이었을까? 언약궤는 성소 안에 자리잡았고, 하나님은 이제 모세와 대제사장들에게 말씀하시던 곳이 아니라 바로 언약궤 위에 임재한다. 신의 임재를 아무나 보지 못하도록 언약궤 주위는 휘장으로 가렸다. 감히 범접해서는 안 될 위험천만의 글은 휘장으로 가려진 궤 안에 봉해진 것이다.



하늘의 '생명책'은 신이 기록한 글의 또다른 예이다. 성경에서는 모든 사람의 이름이 적힌 신의 책이 여러 번 언급된다. 그 책에서 이름이 지워진 자는 생명이 끊어지는 것이다. 이와 같은 하늘의 책에 대한 개념은 모세의 훨씬 후기까지 이어진다. 다니엘서는 "옛적부터 계신 분"이 책을 펼치며 세상을 심판할 것인데 이 책을 통해 하나님의 백성을 구별할 수 있다고 말한다. 또한 이 책은 의심할 여지없이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생명책'을 말한다. 최후의 심판에서 이 생명책에 기록되어 있지 않은 사람은 누구나 다 불바다에 던져지겠지만, 다만 어린양의 생명책에 기록되어 있는 사람들만이 새 예루살렘에 들어간다. 각자의 운명은 그 이름이 신의 책에 기록되었는지의 여부에 달려 있는 것이다.

초기 이스라엘의 글



초기 이스라엘에서 '문학'은 구전문학이었다. 신명기에서는 모든 이스라엘 사람들이 자신들의 조상에 관하여 "내 조상은 떠돌아다니면서 사는 아람 사람"이라고 고백한다. 고고학적 연구 역시 가나안에 정착한 초기 이스라엘 사람들이 결국에는 농경생활을 선택한 반유목민이었음을 시사한다. 이는 초기 이스라엘의 뿌리가 기원전 1300년경까지 근동의 사막 주변에서 살았던 반유목의 목자들이었다는 이야기다. 그렇다면 이런 목자와 농부가 과연 책을 만들었을까? 설령 그렇다 해도 책을 읽을 줄 아는 사람은 극소수였을 것이다. 글의 보편적 확산을 가능케 한 사회구조는 이스라엘 왕정 후기에 이르러서야 제대로 갖추어지기 시작했다. 성경은 한 세대에서 다음 세대로 전해지는 이야기와 노래처럼 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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