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수업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 외 지음 | 이레
1 자기 자신으로 존재하기한 남자가 건강이 몹시 안 좋은 자기 할머니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그분을 보내 드리는 것이 정말 힘들었어요. 난 간신히 용기를 내어 말했죠. '할머니, 전 할머니를 보내 드릴 수 없어요.' 그러자 할머니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얘야, 난 만족한단다. 내 삶은 멋지고 완벽했어. 더 이상 내 모습이 생기로 가득 차보이지 않는다는 건 알지만, 난 이미 여행에서 많은 것을 누렸어. 삶이란 마치 파이와 같지. 부모님께 한 조각, 사랑하는 사람에게 한 조각, 아이들에게 한 조각, 일에 한 조각, 그렇게 한 조각씩 떼어주다 삶이 끝날 때쯤엔 자신을 위한 파이를 한 조각도 남겨 두지 못한 사람도 있단다. 그리고 처음에 자신이 어떤 파이였는지조차 모르지. 난 내가 어떤 파이였는지 알고 있단다. 그것은 우리 각자가 알아내야 할 몫이지. 난 이제 내가 누구인지 알면서 이 세상을 떠날 수 있단다."
어느 날 갑자기 의사로부터 암 판정을 받거나 시한부 인생을 선고 받을 수도 있고, 사랑하는 사람이 죽음과 싸우거나 지진과 해일 같은 재난을 당하는 것을 지켜봐야 할 때도 있습니다. 그들은 삶의 종착점에 서 있습니다. 동시에 새로운 인생의 문 앞에 서 있기도 합니다. 불행이라는 거대한 '괴물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면서, 죽음과 정면으로 마주하면서, 어느 순간 삶을 바라보는 시각이 완전히 달라집니다. 그것은 근본적인 배움을 얻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절망이라는 어둠 속에서 남은 생 동안 무엇을 할지 결정해야만 했습니다. 이 배움이 모두 즐거운 것은 아니지만, 그것이 삶을 더 의미 있게 해준다는 것을 누구나 깨닫습니다. 그렇다면 그 배움을 얻기 위해 꼭 삶이 끝날 때까지 기다려야 할까요? 지금 이 순간 그 배움을 얻을 수는 없을까요?
수십 년 동안, 죽음을 앞둔 이들과 아직 살아 있는 이들을 치료하면서 우리는 인간에게 필요한 배움 들이 결국은 누구에게나 같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것들은 두려움, 자기비난, 화, 용서에 대한 배움입니다. 또한 삶을 받아들이는 것에 대한 배움, 사랑과 관계에 대한 배움입니다. 배움을 얻는다는 것은 다른 사람이 아닌 자기 자신의 인생을 사는 것을 의미합니다. 갑자기 더 행복해지거나 부자가 되거나 강해지는 것이 아니라, 세상을 더 깊이 이해하고 자기 자신과 더 평화롭게 지내는 것을 의미합니다. "난 내 삶이 불완전하기 때문에 더 즐겁다."라고 누군가가 말했듯이, 삶의 배움을 얻는다는 것은 삶을 완벽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 삶을 받아들일 줄 알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만나 본 대부분의 사람들은 삶에서 큰 상실감에 빠졌을 때 사랑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사랑이야말로 우리가 진정으로 소유하고, 간직하고, 떠날 때 가지고 갈 수 있는 유일한 것입니다. 그리하여 그들은 이제 밖에서 행복을 찾는 일을 중단했습니다. 그 대신 이미 갖고 있는 것에서 삶의 의미와 진정한 부를 발견하는 법을 배웠습니다. 오늘 우리가 불행한 이유는 삶의 복잡성 때문이 아니라 그 밑바닥에 흐르는 단순한 진리들을 놓치고 있기 때문입니다. 지구라는 행성 위를 함께 걸어가고 있지만 우리들 각자는 외롭고, 무기력하고, 부끄러운 존재들입니다. 죽음을 눈앞에 둔 사람을 보고 있을 때 우리는 더 이상 그의 실수, 잘못들을 바라보지 않습니다. 전에는 그것들로 그를 바라보았지만 지금은 아닙니다. 이제는 오직 '그 사람'만이 보일 뿐입니다. 삶의 마지막 순간이 가까워 오면 사람들은 더 진실해지고, 정직해지고, 더 진정한 자신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삶의 시작과 끝에서만 우리는 진정으로 우리 자신일 수 있는 것일까요?
누군가 미켈란젤로에게, 어떻게 피에타 상이나 다비드 상 같은 훌륭한 조각상을 만들 수 있었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미켈란젤로는 이미 조각상이 대리석 안에 있다고 상상하고, 필요 없는 부분을 깎아내어 원래 존재하던 것을 꺼내 주었을 뿐이라고 대답했습니다. 이미 존재하고 있었고 앞으로도 영원히 존재할 완벽한 조각상이 누군가가 자신을 꺼내 주기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마찬가지로 당신 안에 있는 위대한 사람도 밖으로 나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내면에 위대함의 씨앗을 가지고 있습니다. 위대한 사람이란 다른 사람이 갖지 못한 특별한 무언가를 가진 사람이 아닙니다. 그는 단지 가장 뛰어난 자신을 드러내는 데 장애물이 되는 것들을 제거해 버렸을 뿐입니다.
우리는 평생 동안 여러 가지 역할을 맡습니다. 배우자, 부모, 직장 상사, 좋은 사람, 반항아 등. 본래의 자신은 우리가 이 세상에서 맡은 역할들로 정의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생명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진단을 받고 나서야 비로소 사람들은 자신이 누구인가를 알아내려는 최초의 시도를 합니다. 우리는 아인슈타인 같은 천재도, 마이클 조던 같은 뛰어난 운동선수도 아니지만 '필요 없는 부분을 깎아내는 것'만으로도 우리의 타고난 재능을 눈부시게 꽃피울 수 있습니다. 본래의 당신은 가장 순수한 사람이며 완전한 존재입니다. 당신의 진정한 자아는 어둠 속에서 당신을 인도하는 불빛과 같습니다. 겉으로 드러나는 존재와 안에 있는 존재가 하나가 되면 더 이상 숨거나 두려워하거나 자신을 보호할 필요가 없습니다. 상황을 초월한 존재로서의 자기 자신을 볼 수 있게 됩니다.
2 사랑 없이 여행하지 말라사랑, 정의 내리기조차 매우 힘든 이것은 삶에서 유일하게 진실하고 오래 남는 경험입니다. 그것은 두려움의 반대말이고, 관계의 본질이며, 행복의 근 원입니다. 또한 우리 자신을 이루고 있는 가장 깊은 부분이고, 우리 안에 살면서 우리를 연결해주는 에너지입니다. 사랑은 지식, 학벌, 권력과는 아무 관계가 없습니다. 사랑은 모든 행위 너머에 있습니다. 또한 삶에서 결코 사라지지 않는 유일한 산물입니다. 결국 그것은 우리가 진정으로 줄 수 있는 유일한 것입니다. 환상과 꿈, 공허함으로 가득한 세상에서 사랑은 진실의 근원입니다.
우리는 사랑이 어떤 것인지 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것들은 대부분 어린 시절에 갖게 된 그림입니다. 가장 흔한 그림은 갑자기 누군가 특별한 사람을 만나서 완벽하다고 느끼며, 모든 것이 멋져 보이고, 그 후로 영원히 행복하게 산다는 낭만적인 이상형입니다. 그러다가 현실의 삶에서 그렇게 낭만적이지 못한 상황들에 맞닥뜨릴 때, 그리고 대부분의 사랑이 조건적이라는 것을 깨닫게 될 때, 우리는 크게 상처받습니다. 심지어 가족과 친구 간의 사랑도 각자의 기대와 요구에 좌우되고 있습니다. 기대와 요구가 채워지지 않으면 현실의 사소한 갈등은 필연적으로 악몽을 만드는 씨앗이 되고, 우리는 결국 사랑 없는 관계 속에 놓인 자신을 발견하게 됩니다.
서로에게 걸고 있는 기대를 버려야 평화롭고 행복한 사랑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대개 가장 사랑하는 사람에게 가장 엄격한 조건을 내세웁니다. 사랑에 대한 조건은 관계를 무겁게 짓누릅니다. 그런 조건들에서 벗어난다면 생각지도 못한 다양한 방식으로 사랑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무조건적인 사랑을 방해하는 가장 큰 장애물은 그 사랑이 되돌아올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입니다. 우리는 사랑의 감정이 받는 것이 아니라 주는 것에 있다는 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우리가 받는 사랑을 일일이 계산한다면 결코 사랑받는다고 느끼지 못할 것이며, 언제나 손해 본다는 기분이 들 것입니다. 정말로 사랑받지 못해서가 아니라 사랑을 재는 행위 자체가 사랑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상대방이 당신의 마음에 들 때까지 자신의 사랑을 움켜쥐고 있는 것이 해결책이 돼서는 안 됩니다. 그가 또는 그녀가 당신의 마음에 들면 어떻고, 또 안 들면 어떻습니까? 어머니, 친구, 형제들이 변하지 않는다고 그들을 다시는 사랑하지 않을 건가요? 그들이 무엇을 하든 그들을 사랑한다면 당신은 그 변화를 보게 될 것이고, 갇혀 있던 우주의 모든 힘이 해방되는 것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마침내 상대방의 가슴이 열리는 것을 보게 될 것입니다. 마음을 열기 위해서는 사물을 다른 각도에서 보아야 합니다. 우리가 마음을 닫고 편협해지는 것은 다른 사람이 어떤 상황에 있는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그들이 왜 전화를 걸지 않는지, 왜 그렇게 큰 목소리로 말하는지 알지 못합니다. 그래서 그들을 사랑하지 않습니다. 반면 자신이 받은 상처와 고통에 대해서는 할 말이 많습니다.
사실 우리는 웃음과 이해, 사랑을 무조건적으로 주지 않음으로써 서로를 배신하고 있습니다. 신이 우리에게 준 가장 큰 선물을 혼자 움켜쥐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식으로 사랑을 움켜쥐는 것은 상대방이 우리에게 보이는 태도보다 훨씬 더 부당한 것입니다. 신 앞에 서게 되는 날 우리는 이런 질문을 받게 될 것입니다. "너는 너 자신과 다른 사람들에게 사랑을 주고, 또 받았느냐?" 다른 사람들의 사랑을 받아들이고 또 그들을 사랑함으로써 자신을 사랑하는 법을 배울 수 있습니다. 신은 우리에게 사랑하고 사랑받을 무한한 기회를 주었습니다. 그 기회들은 주위 모든 곳에 널려 있고, 우리는 손을 뻗어 잡기만 하면 됩니다.
3 관계는 자신을 보는 눈한 여성이 몇 달 전 남편과 함께 보낸, 어느 평범한 저녁 시간을 회상했습니다. 그날 그들 부부는 저녁을 먹고 텔레비전을 봤습니다. 9시경에 남편은 속이 좋지 않다며 소화제를 먹었습니다. 그러더니 몇 분 후 그는 먼
저 자러 가겠다고 했습니다. 그녀는 좀 더 있다가 자겠다며 남았고, 내일 아침에는 속이 괜찮아지기를 바란다고 말하며 남편에게 키스해 주었습니다. 한 시간 반 정도 지난 뒤 그녀가 자러 갔을 때 남편은 이미 깊이 잠들어 있었습니다. 다음날 아침, 잠에서 깬 그녀는 뭔가 심상치 않음을 느꼈습니다. "난 그냥 느낄 수 있었어요. 옆에 누워 있는 남편이 이 세상 사람이 아니란 걸 말예요. 그는 44세의 나이에 자다가 심장마비로 죽은 거예요." 그 가슴 아픈 일을 겪은 후 그녀는 모든 인간관계와 사람들,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이 그저 당연한 것이 아님을 깨달았습니다.
"남편이 세상을 떠난 뒤 우리가 살아온 삶을 되돌아보자 모든 것이 다르게 보였어요. 그것이 우리의 마지막 키스였고, 마지막 저녁식사였으며, 마지막 휴가였고, 마지막 포옹이자, 마지막으로 함께 웃은 시간이었어요. 누구라도 그런 일을 겪기 전까지는 언제가 마지막 외출이 될지, 언제가 마지막 추수감사절이 될지 결코 알지 못하리라는 걸 난 깨달았어요. 그리고 모든 인간관계에는 마지막이 있다는 것도요. 나는 남편이 내게 잠시 동안 맡겨진 선물일 뿐, 영원히 내 곁에 둘 수 있는 사람이 아니었음을 깨달았어요. 내가 만나는 모든 사람이 그렇듯이, 그걸 깨닫고 나서 지금 이 순간과 사람들을 휠씬 더 소중히 여기게 되었어요."
전 생애 동안 우리는 많은 이들과 관계를 맺습니다. 배우자나 연인, 친구처럼 우리가 선택해서 맺은 관계도 있고, 부모 형제처럼 우리 의지와 상관없이 정해진 관계도 있습니다. 그 관계들을 통해 우리는 많은 배움을 얻습니다. 자신이 누구이며, 무엇을 두려워 하고, 진정한 사랑이란 어떤 것인지 깨닫는 기회를 갖습니다. 관계가 곧 큰 배움의 기회라는 말은 언뜻 이상하게 들릴 수도 있습니다. 관계들이 때로는 우리를 절망하게 하고, 위험에 빠뜨리며, 가슴 아픈 경험을 심어 주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배우자나 가족, 몇몇 친구들을 제외하면 자신과 관계를 맺는 사람들이 그다지 많지 않다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실제로 우리는 만나는 사람 모두와 관계를 맺습니다. 그들은 친구나 친척일 수도 있고, 직장 동료나 선생님, 가게 점원일 수도 있습니다.
이것들은 그 하나하나가 개별적인 관계이지만, 또 많은 공통점을 갖습니다. 왜냐하면 그것들은 바로 나 자신에게서 나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가깝고 친밀한 관계에서부터 먼 관계에 이르기까지, 우리가 맺고 있는 각각의 관계들에는 '나 자신'이라는 공통분모가 있습니다. 완전한 삶은 당신 자신안에서부터 나와야만 합니다. 특별한 누군가를 발견한다고 해서 인간관계나 책임감의 문제가 해결되진 않습니다. 진정한 해답은 특별한 누군가를 찾아 헤매는 대신 자기 자신이 스스로를 완성하는 데 있습니다. 사랑할 누군가를 찾으려고 애쓰기보다는 스스로를 사랑받을 가치가 있는 사람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우연적이거나 중요하지 않은 관계란 없습니다. 지나가는 사람과의 사사로운 마주침에서조차 우리는 자신에 대해 많은 것을 배울 수 있기 때문에 모든 관계는 중요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마주치는 모든 이들은 우리들 마음속 어딘가에 있을 행복과 사랑, 또는 고통과 불행으로 인도해 줄 가능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인간관계가 가져다주는 상황들은 마치 다이아몬드를 세공하듯이 서로의 모난 부분을 다듬어 줄 수 있습니다.
때로 우리는 자신이 맺고 있는 관계들에서 어떤 부분이 달라진다면 행복해질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를테면 배우자를 바꾸거나 관계를 변화시키면 완벽해지고 행복해지리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것은 실로 어리석은 생각입니다. 우리의 행복은 상대방을 '더 좋게' 바꾸는 것에 달려 있지 않습니다. 진실은 이렇습니다. 우리는 상대방을 바꿀 수 없으며, 바꾸려 해서도 안 됩니다. 그들이 절대로 변하지 않으면 어떻게 할 겁니까? 또 그들이 변할 생각이 없다면? 우리가 진정한 자신이기를 원한다면 그들도 진정한 그들로 있도록 해주어야 하지 않을까요? 관계는 '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상대방이 자신이 바라는 인물이 아니라고 해서 관계를 '깨뜨릴' 수도 없습니다. 모든 관계는 상호작용입니다. 곧, 관계 속에서 서로의 모습을 거울처럼 비추고 있습니다.
상대방에게 문제가 있으며, 그러므로 그들이 달라져야 한다고 주장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상대방을 더 좋게 고치려고 해서도 안 됩니다. 언제나 당신이 중심입니다. 당신이 자기 자신의 운명을 만들고 있습니다. 자기 앞에 놓인 문제에서 어떤 배움을 얻을 것인가가 당신이 할 일입니다. 첫 만남에서부터 마지막 작별인사까지, 우리는 관계를 통해 자신의 영혼을 들여다 보고, 그 과정에서 상처를 치유하고 앞으로 나아갑니다. 사랑하는 관계에 관해 자신이 미리 갖고 있는 기준을 버릴 때, 누구를 얼마나 오래 사랑할 것인가의 문제에서도 해방될 수 있습니다. 신에게 선물 받은 위대한 사랑을 찾기 위해서는 이런 한계들을 뛰어넘어야 합니다.
4 상실과 이별의 수업이 세상이 하나의 학교라면, 상실과 이별은 그 학교의 주요 과목입니다. 상실과 이별을 경험하면서 우리는 필요한 시기에 우리를 보살펴주는 사랑하는 이들의 손길을 자각하기도 합니다. 상실과 이별은 우리의 가슴에 난 구멍입니다. 하지만 그것은 다른 사람들로부터 사랑을 이끌어내고, 그들이 주는 사랑을 담아 둘 수 있는 구멍이기도 합니다. 어린 시절 언제나 누군가의 품에 안겨 있던 우리는 갑자기 땅 위에 홀로 서야 할 순간을 맞습니다. 나이가 들면서 친구들은 이사 등의 이유로 우리 곁을 떠나가며, 가지고 놀던 장난감은 부서지거나 사라지고, 야구 시합에서 패배를 경험하기도 합니다. 첫사랑과는 결국 헤어지게 될 뿐입니다. 하지만 이런 일련의 이별들은 겨우 시작에 불과합니다. 한 해 한 해 흘러갈수록 우리는 선생님을 잃고, 친구들을 잃고, 어린 시절의 꿈을 잃습니다.
청춘, 꿈, 자유와 같은 무형의 것들도 결국엔 사라지거나 퇴색해갑니다. 우리가 갖고 있는 모든 것은 잠시 빌려 온 것에 불과합니다. 우리가 그들의 주인이었던 적은 한 번도 없습니다. 현실은 영원하지 않으며, 우리가 갖고 있는 것들에 대한 소유권 역시 영원할 수 없습니다. 모두가 일시적인 것들입니다. 영원한 것은 어디에도 없으며, 모든 것을 언제까지나 소유하고 있으려는 것은 무의미한 일입니다.